뿌리를 물어뜯는 드래곤
니드호그 프로토콜은 모든 IOP제 인형의 가동을 정지하고 지휘권한을 강제 회수한다.
...엘모호.
지휘관, 스틱스가 도주했습니다.
예상한 대로입니다.
잘했어.
추적 신호는 잘 잡혀?
매우 잘 잡힙니다. 404와 리벨리온이 현재 추적 중입니다.
계속 추적하고, 너무 깊이 들어가진 말라고 전해. 우리를 꼭 기다리라고.
예.
삐삐. 암호화 통신 채널이 울렸다.
지휘관, 훈작사에게서 통신입니다.
......
연결해.
지휘관은 자세를 고치고, 통신기에 뜬 영상에 몸을 돌렸다.
훈작사, 지시라도 있으십니까?
우선 자네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네. 프랑크푸르트에서 자네는 자신과 G&K 모두에게 명예를 가져다줬네.
...군인의 본분을 다했을 뿐입니다.
자네에겐 마땅한 포상이 있을 걸세.
그리폰의 인형들도 더욱 큰 권한을 갖게 될 테고.
...인형들 대신 감사드립니다.
시큰둥하게 안부를 주고받으며, 지휘관은 탁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동안 독일에서 고생 많았네.
베를린에 돌아오면 우리 함께 한잔하세나, 크루거와 함께 말이지.
그렇습니까? 저는 아직 끝이라고 생각 안 합니다.
배후 주도자 카터는 이미 사망했네.
왜 끝나지 않았다는 겐가?
패러데우스는, 윌리엄은요?
훈작사, 아직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하지만 자네의 임무는 끝났다네.
나머지 일은 내게 맡겨주게.
...맡기면 어쩌실 셈입니까?
패러데우스를 손에 넣으실 겁니까? 윌리엄을 휘하에 두시게요?
훈작사, 당신은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사무실 안에만 계셨죠.
그 높은 위치에서 시민들의 고통과 피눈물은 전혀 안중에도 없으셨겠죠.
이아손의 상자에 죽은 사람들, 패러데우스의 실험 재료가 된 사람들.
그 사람들이 당신 눈에 들어온 적이 있습니까?
당신에겐 그 사람들 모두 보잘것없는 희생양일 뿐이에요?
윌리엄의 목숨이 그들보다 훨씬 값지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나는 자네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전장에서 지내왔다네.
그러신 분이, 지금 전장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눈에 안 들어오시는 겁니까!?
지휘관! 루련의 성립이 바로 코앞이네. 오버슈타인과 카터가 모든 책임을 끌어안았어.
이것이 바로, 모두의 희생을 보듬어줄 최선의 방식이란 말이네!
이제 곧 평화의 시대가 올 걸세. 그런데 자네는 다시 한 번 전란을 일으킬 셈인가?
죽어간 이들의 영혼도 당신만큼 너그러울까요?
땅에 묻힌 망령들한테도 설파해보시죠, 당신이 말하는 소위 평화를요. 그들이 납득할 것 같습니까?
사람은 살아있는 이들만을 위해서 살아야 하네.
살아있는 이들을 위해서 노력해야만 해.
...그것이 당신이 그리는 미래로군요.
하지만 그건 제 미래가 아닙니다.
지휘관, 자네는 아직 너무 젊네.
젊은 혈기로 자기가 뭐든 해낼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
그렇게 큰소리칠 수 있는 토대를 과연 누가 깔아준 건지도 잊어버리고 말이네.
......
크루거가 너무 오냐오냐 해준 바람에,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잊어버린 게야.
상대방이 통신을 끊었다.
AR-18은 조용히 지휘관을 지켜봤다.
지휘관...
...괜찮아.
지휘관은 찌그러진 소파 팔걸이를 놓고, 펄떡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그가 이대로 넘어갈 리가 없어.
......
예방 조치로 뭐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지휘관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또 통신이 울렸다.
하벨 씨입니다.
연결해.
오랜만이구먼, 지휘관.
오랜만입니다, 하벨 씨.
안색이 아주 엉망이구먼, 어서 장기 휴가를 처방해야겠어.
...휴가보다 지금은 총알이 더 필요합니다.
기쁜 일이나 좀 말합세, 지휘관.
자네에게 훈장이 수여될 게야. 그것도, 소련 군인이라면 모두가 꿈꾸는 금성 훈장을 말이야.
...대가로 뭘 내면 됩니까?
자네는 충분히 그 훈장에 걸맞는 대가를 치렀네.
이젠 그만 다른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게나.
자네 자신을 보게, 지휘관.
자네에겐 이제 무궁하게 빛나는 앞날이 펼쳐져 있어.
그 앞날을 위해서 윌리엄을 척살하는 걸 포기하라 이 뜻입니까?
훈작사가 보낸 거군요? 절 설득해 달라고. 맞으시죠?
......
이미 여기까지 왔습니다. 기나긴 원정길이었죠. 제가 지나온 길은 피와 주검으로 가득합니다.
그건 저의 복수를 독려하는 피의 칼날이지, 제 앞날에 깔린 레드 카펫이 아닙니다.
지휘관, 아직 이 늙은이를 친구로 여긴다면 잘 생각해 보게나.
지금 자네는 중요한 갈림길 앞에 서 있네. 한쪽 길은 금성 훈장을 달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혁혁한 공을 세운 영웅이 되는 길이네.
반면 다른 한 쪽은, 존재가 말소되어 이름 없는 자로 전락하는 길일세.
그런 선택으로 얻는 훈장이라면, 그거야말로 금성 훈장을 모욕하는 짓입니다.
......
윌리엄은 자신이 한 짓에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
훈작사 말대로구먼, 누가 와도 귓구멍을 딱 틀어막아버리니 원...
크루거가 자네에게 지나친 자유를 준 게야.
그 양반도 지금 자네처럼 훈작사와 대화를 거부하고 있거든.
그렇다면 이 일은... 이 하찮은 노인네가 처리해야겠지.
...무슨 뜻이죠?
니드호그 프로토콜이라고 들어봤는가?
예?
이 프로토콜을 발동하면 IOP와 G&K의 협력관계는 종료일세.
모든 IOP제 인형의 가동을 정지시키고,
자네의 지휘 권한을 강제로 회수하는 프로토콜이라네.
...그런다고 제가 굴복할 것 같습니까?
하벨 씨, 인형이 없어도 저는 윌리엄을 지구 끝까지 쫓아가 죽일 겁니다.
그래, 그저 자네가 혹시나 진정해줄까 해서 던져본 말일세.
지휘관, 나도 자네가 오늘 여기까지 오는 것을 쭉 지켜봐왔네. 얼마나 힘든 길이었는지도 잘 알고 있네.
그리고 바로 지금, 그 결과를 붙잡기까지 한 걸음, 딱 한 걸음 남았을 뿐 아닌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한 걸음이죠. 하벨 씨, 제 대답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습니다.
......
통신 너머에서 안타까워하는 탄식이 들렸다.
그동안 자네가 해준 공헌에 감사하네.
...이 늙은이가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건, 프로토콜의 발동을 몇 번으로 나눠서 진행하는 것 정도일세.
12시간.
12시간에 걸쳐서, 전투력이 가장 낮은 인형부터 니드호그 프로토콜을 발동하겠네.
......
자네가 무엇을 하려고 하든, 이제 남은 것은 12시간뿐이라네.
...아무쪼록, 감사드립니다.
잘 있게나, 지휘관.
하벨이 통신을 끊었다.
엘모호의 전원이 자동으로 끊어졌다.
지휘관, 엘모호 기능 정지했습니다.
......
어둠 속에서, 지휘관은 전술 테이블에 나타난 카운트다운을 살폈다.
자신과 인형들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12시간뿐이다.
지휘관, 총 병력 중 IOP제 인형의 점유율은 98% 이상입니다.
...알아.
향후 작전 배치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선 인형들을 전원 소집해.
넓은 홀이 가득 차고, 인형들은 저마다 다양한 표정으로 수군수군거렸다.
지휘관이 니드호그 프로토콜의 카운트다운을 홀 중앙에 투영했다.
다들, 먼저 현재 상황을 설명하겠다.
나의 다음 행동을 막기 위해 IOP는 곧 니드호그 프로토콜을 가동한다. 이 카운트다운이 끝나면 나는 모든 IOP제 인형의 지휘 권한을 잃는다.
바로 여기 있는 너희들 대부분의 지휘 권한을 말이야.
어떡해, 34 언니... 우리가 받은 통지가 진짜였어!
당황 마렴, 42... 우리가...
우리가... 어,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 지금 IOP 탈퇴할 거야!
다 때려쳐!
인형들이 곧바로 들끓었고, 지휘관은 손을 들어 모두를 정숙시켰다.
알고 있어, 지금 몇몇 인형이 이미 프로토콜 가동으로 강제 휴면 상태에 들어갔다는 거.
이제부터 카운트다운이 끝나기 전까지 너희는 모두 차례대로 강제 휴면에 빠질 거다.
G36 언니... 우리 같이 움직여요.
그러면 제가 갑자기 멈춰도 언니랑 함께 있을 수 있으니까...
이것이 우리의... 집단 장례식...
인형들이 슬픔에 잠긴 모습을 보며, 지휘관은 바늘로 심장을 쑤시는 기분을 느꼈다.
너희에게 숨길 생각은 없다.
지금도 나의 계획은 여전히——
패러데우스를 뿌리뽑고, 윌리엄을 제거하는 거야.
그 다음 일은 생각 안 해뒀어. 너희의 안전도 보장해줄 수 없고.
그러니, 이번 임무에 참여할지 말지는 너희 스스로에게 맡긴다.
지휘관은 지휘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엘모호에 남는 걸 선택해도 된다. 비록 동력이 이미 끊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안전할 테니.
하지만 만약, 계속 날 따르기로 결정한다면——
너희가 맞이할 상황은 단 두 가지다.
작전 도중 강제 휴면에 빠지거나,
전투 중 희생하는 것.
...어느 쪽이든 좋은 결말은 아니지.
권한 중지되기 전에 몇 놈 더 끌고 가는 게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저는 지휘관님의 영광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겠어요.
......
인형들은 참담한 현실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할지 토론했다.
지휘관은 무언가 떠오른 듯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렇게 처절한 상황에서 싸우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 다른 점은, 이번엔 우리의 결말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거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 빌어먹을 결말 위에서 놈들에게 가장 진한 먹물을 한 번 쫙 뿌려주는 것 정도다.
지휘관은 넬레가 돌려준 마카로프를 허리춤에 꽂았다.
상황이 급해서 고민할 시간을 많이 줄 수가 없다. 미안하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슥. 손 한 짝이 눈앞에 나타났다.
지휘관님, AR팀은 영원히 지휘관님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입니다.
적어도 보수 다 지불할 때까지는 살려놔야 하지 않겠어? 어쩔 수 없지, 그 모험에 어울려줄 수밖에.
AK-15랑 약속했거든, 같이 패러데우스를 박살내자고.
여기서 빠졌다간 내가 그 녀석한테 박살이 날 거야.
당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시든, 저희는 당신을 지지합니다.
당신의 결말을 지켜보겠다고 했죠? 그럼 마지막 순간까지 같이 가 드리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어차피 저는 IOP제 인형도 아닌걸요! 무서울 것 없다고요!
점점 더 많은 인형들이 모여들어 손을 번쩍 들었다.
너희들...
알고 있는 거야? 너희가 어떤 길을 선택한 건지?
모든 지원을 잃고 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거야. 이미 보장된 미래를 등지는 짓이라고.
우리는 질 거야. 그건 필연이야. 승자는 우리의 존재를 완전히 지워버릴 거고.
그런데도, 너희는 여전히 나를 따르겠다는 거야?
404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걸.
우리는 언제나 그림자 속을 거닐지. 잊히는 것이 최고의 결말이고.
저희의 대답은 변한 적 없습니다.
......
지휘관은 정중하게 손을 얹었다.
알고 있다. 이것은 신뢰를 상징하는, 죽음까지도 함께하겠다는 맹세임을.
...긴급 속보 전해드립니다.
프랑크푸르트 공습 및 모스크바 쿠데타를 주도한 수괴 카터 페트로비치 노이슈타트가 현재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모스크바 방면에선 방어 병력이 결집하여 잔존한 카터 일당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이 혼란도 머지 않아 종결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어서 프랑크푸르트 재건 작업 현장으로 시선을 옮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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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모호.
지휘관, 스틱스가 도주했습니다.
예상한 대로입니다.
잘했어.
추적 신호는 잘 잡혀?
매우 잘 잡힙니다. 404와 리벨리온이 현재 추적 중입니다.
계속 추적하고, 너무 깊이 들어가진 말라고 전해. 우리를 꼭 기다리라고.
예.
삐삐. 암호화 통신 채널이 울렸다.
지휘관, 훈작사에게서 통신입니다.
......
연결해.
지휘관은 자세를 고치고, 통신기에 뜬 영상에 몸을 돌렸다.
훈작사, 지시라도 있으십니까?
<color=#00CCFF>우선 자네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네. 프랑크푸르트에서 자네는 자신과 G&K 모두에게 명예를 가져다줬네.</color>
...군인의 본분을 다했을 뿐입니다.
<color=#00CCFF>자네에겐 마땅한 포상이 있을 걸세.</color>
<color=#00CCFF>그리폰의 인형들도 더욱 큰 권한을 갖게 될 테고.</color>
...인형들 대신 감사드립니다.
시큰둥하게 안부를 주고받으며, 지휘관은 탁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color=#00CCFF>그동안 독일에서 고생 많았네.</color>
<color=#00CCFF>베를린에 돌아오면 우리 함께 한잔하세나, 크루거와 함께 말이지.</color>
그렇습니까? 저는 아직 끝이라고 생각 안 합니다.
<color=#00CCFF>배후 주도자 카터는 이미 사망했네.</color>
<color=#00CCFF>왜 끝나지 않았다는 겐가?</color>
패러데우스는, 윌리엄은요?
훈작사, 아직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color=#00CCFF>하지만 자네의 임무는 끝났다네.</color>
<color=#00CCFF>나머지 일은 내게 맡겨주게.</color>
...맡기면 어쩌실 셈입니까?
패러데우스를 손에 넣으실 겁니까? 윌리엄을 휘하에 두시게요?
훈작사, 당신은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사무실 안에만 계셨죠.
그 높은 위치에서 시민들의 고통과 피눈물은 전혀 안중에도 없으셨겠죠.
이아손의 상자에 죽은 사람들, 패러데우스의 실험 재료가 된 사람들.
그 사람들이 당신 눈에 들어온 적이 있습니까?
당신에겐 그 사람들 모두 보잘것없는 희생양일 뿐이에요?
윌리엄의 목숨이 그들보다 훨씬 값지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color=#00CCFF>나는 자네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전장에서 지내왔다네.</color>
그러신 분이, 지금 전장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눈에 안 들어오시는 겁니까!?
<color=#00CCFF>지휘관! 루련의 성립이 바로 코앞이네. 오버슈타인과 카터가 모든 책임을 끌어안았어.</color>
<color=#00CCFF>이것이 바로, 모두의 희생을 보듬어줄 최선의 방식이란 말이네!</color>
<color=#00CCFF>이제 곧 평화의 시대가 올 걸세. 그런데 자네는 다시 한 번 전란을 일으킬 셈인가?</color>
죽어간 이들의 영혼도 당신만큼 너그러울까요?
땅에 묻힌 망령들한테도 설파해보시죠, 당신이 말하는 소위 평화를요. 그들이 납득할 것 같습니까?
<color=#00CCFF>사람은 살아있는 이들만을 위해서 살아야 하네.</color>
<color=#00CCFF>살아있는 이들을 위해서 노력해야만 해.</color>
...그것이 당신이 그리는 미래로군요.
하지만 그건 제 미래가 아닙니다.
<color=#00CCFF>지휘관, 자네는 아직 너무 젊네.</color>
<color=#00CCFF>젊은 혈기로 자기가 뭐든 해낼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color>
<color=#00CCFF>그렇게 큰소리칠 수 있는 토대를 과연 누가 깔아준 건지도 잊어버리고 말이네.</color>
......
<color=#00CCFF>크루거가 너무 오냐오냐 해준 바람에,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잊어버린 게야.</color>
상대방이 통신을 끊었다.
AR-18은 조용히 지휘관을 지켜봤다.
지휘관...
...괜찮아.
지휘관은 찌그러진 소파 팔걸이를 놓고, 펄떡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그가 이대로 넘어갈 리가 없어.
......
예방 조치로 뭐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지휘관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또 통신이 울렸다.
하벨 씨입니다.
연결해.
<color=#00CCFF>오랜만이구먼, 지휘관.</color>
오랜만입니다, 하벨 씨.
<color=#00CCFF>안색이 아주 엉망이구먼, 어서 장기 휴가를 처방해야겠어.</color>
...휴가보다 지금은 총알이 더 필요합니다.
<color=#00CCFF>기쁜 일이나 좀 말합세, 지휘관.</color>
<color=#00CCFF>자네에게 훈장이 수여될 게야. 그것도, 소련 군인이라면 모두가 꿈꾸는 금성 훈장을 말이야.</color>
...대가로 뭘 내면 됩니까?
<color=#00CCFF>자네는 충분히 그 훈장에 걸맞는 대가를 치렀네.</color>
<color=#00CCFF>이젠 그만 다른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게나.</color>
<color=#00CCFF>자네 자신을 보게, 지휘관.</color>
<color=#00CCFF>자네에겐 이제 무궁하게 빛나는 앞날이 펼쳐져 있어.</color>
그 앞날을 위해서 윌리엄을 척살하는 걸 포기하라 이 뜻입니까?
훈작사가 보낸 거군요? 절 설득해 달라고. 맞으시죠?
<color=#00CCFF>......</color>
이미 여기까지 왔습니다. 기나긴 원정길이었죠. 제가 지나온 길은 피와 주검으로 가득합니다.
그건 저의 복수를 독려하는 피의 칼날이지, 제 앞날에 깔린 레드 카펫이 아닙니다.
<color=#00CCFF>지휘관, 아직 이 늙은이를 친구로 여긴다면 잘 생각해 보게나.</color>
<color=#00CCFF>지금 자네는 중요한 갈림길 앞에 서 있네. 한쪽 길은 금성 훈장을 달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혁혁한 공을 세운 영웅이 되는 길이네.</color>
<color=#00CCFF>반면 다른 한 쪽은, 존재가 말소되어 이름 없는 자로 전락하는 길일세.</color>
그런 선택으로 얻는 훈장이라면, 그거야말로 금성 훈장을 모욕하는 짓입니다.
<color=#00CCFF>......</color>
윌리엄은 자신이 한 짓에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color=#00CCFF>......</color>
<color=#00CCFF>훈작사 말대로구먼, 누가 와도 귓구멍을 딱 틀어막아버리니 원...</color>
<color=#00CCFF>크루거가 자네에게 지나친 자유를 준 게야.</color>
<color=#00CCFF>그 양반도 지금 자네처럼 훈작사와 대화를 거부하고 있거든.</color>
<color=#00CCFF>그렇다면 이 일은... 이 하찮은 노인네가 처리해야겠지.</color>
...무슨 뜻이죠?
<color=#00CCFF>니드호그 프로토콜이라고 들어봤는가?</color>
예?
<color=#00CCFF>이 프로토콜을 발동하면 IOP와 G&K의 협력관계는 종료일세.</color>
<color=#00CCFF>모든 IOP제 인형의 가동을 정지시키고,</color>
<color=#00CCFF>자네의 지휘 권한을 강제로 회수하는 프로토콜이라네.</color>
...그런다고 제가 굴복할 것 같습니까?
하벨 씨, 인형이 없어도 저는 윌리엄을 지구 끝까지 쫓아가 죽일 겁니다.
<color=#00CCFF>그래, 그저 자네가 혹시나 진정해줄까 해서 던져본 말일세.</color>
<color=#00CCFF>지휘관, 나도 자네가 오늘 여기까지 오는 것을 쭉 지켜봐왔네. 얼마나 힘든 길이었는지도 잘 알고 있네.</color>
<color=#00CCFF>그리고 바로 지금, 그 결과를 붙잡기까지 한 걸음, 딱 한 걸음 남았을 뿐 아닌가.</color>
영원히 닿을 수 없는 한 걸음이죠. 하벨 씨, 제 대답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습니다.
<color=#00CCFF>......</color>
통신 너머에서 안타까워하는 탄식이 들렸다.
<color=#00CCFF>그동안 자네가 해준 공헌에 감사하네.</color>
<color=#00CCFF>...이 늙은이가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건, 프로토콜의 발동을 몇 번으로 나눠서 진행하는 것 정도일세.</color>
<color=#00CCFF>12시간.</color>
<color=#00CCFF>12시간에 걸쳐서, 전투력이 가장 낮은 인형부터 니드호그 프로토콜을 발동하겠네.</color>
......
<color=#00CCFF>자네가 무엇을 하려고 하든, 이제 남은 것은 12시간뿐이라네.</color>
...아무쪼록, 감사드립니다.
<color=#00CCFF>잘 있게나, 지휘관.</color>
하벨이 통신을 끊었다.
엘모호의 전원이 자동으로 끊어졌다.
지휘관, 엘모호 기능 정지했습니다.
......
어둠 속에서, 지휘관은 전술 테이블에 나타난 카운트다운을 살폈다.
자신과 인형들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12시간뿐이다.
지휘관, 총 병력 중 IOP제 인형의 점유율은 98% 이상입니다.
...알아.
향후 작전 배치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선 인형들을 전원 소집해.
넓은 홀이 가득 차고, 인형들은 저마다 다양한 표정으로 수군수군거렸다.
지휘관이 니드호그 프로토콜의 카운트다운을 홀 중앙에 투영했다.
다들, 먼저 현재 상황을 설명하겠다.
나의 다음 행동을 막기 위해 IOP는 곧 니드호그 프로토콜을 가동한다. 이 카운트다운이 끝나면 나는 모든 IOP제 인형의 지휘 권한을 잃는다.
바로 여기 있는 너희들 대부분의 지휘 권한을 말이야.
어떡해, 34 언니... 우리가 받은 통지가 진짜였어!
당황 마렴, 42... 우리가...
우리가... 어,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 지금 IOP 탈퇴할 거야!
<size=50>다 때려쳐!</size>
인형들이 곧바로 들끓었고, 지휘관은 손을 들어 모두를 정숙시켰다.
알고 있어, 지금 몇몇 인형이 이미 프로토콜 가동으로 강제 휴면 상태에 들어갔다는 거.
이제부터 카운트다운이 끝나기 전까지 너희는 모두 차례대로 강제 휴면에 빠질 거다.
G36 언니... 우리 같이 움직여요.
그러면 제가 갑자기 멈춰도 언니랑 함께 있을 수 있으니까...
이것이 우리의... 집단 장례식...
인형들이 슬픔에 잠긴 모습을 보며, 지휘관은 바늘로 심장을 쑤시는 기분을 느꼈다.
너희에게 숨길 생각은 없다.
지금도 나의 계획은 여전히——
패러데우스를 뿌리뽑고, 윌리엄을 제거하는 거야.
그 다음 일은 생각 안 해뒀어. 너희의 안전도 보장해줄 수 없고.
그러니, 이번 임무에 참여할지 말지는 너희 스스로에게 맡긴다.
지휘관은 지휘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엘모호에 남는 걸 선택해도 된다. 비록 동력이 이미 끊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안전할 테니.
하지만 만약, 계속 날 따르기로 결정한다면——
너희가 맞이할 상황은 단 두 가지다.
작전 도중 강제 휴면에 빠지거나,
전투 중 희생하는 것.
...어느 쪽이든 좋은 결말은 아니지.
권한 중지되기 전에 몇 놈 더 끌고 가는 게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저는 지휘관님의 영광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겠어요.
......
인형들은 참담한 현실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할지 토론했다.
지휘관은 무언가 떠오른 듯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렇게 처절한 상황에서 싸우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 다른 점은, 이번엔 우리의 결말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거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 빌어먹을 결말 위에서 놈들에게 가장 진한 먹물을 한 번 쫙 뿌려주는 것 정도다.
지휘관은 넬레가 돌려준 마카로프를 허리춤에 꽂았다.
상황이 급해서 고민할 시간을 많이 줄 수가 없다. 미안하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슥. 손 한 짝이 눈앞에 나타났다.
지휘관님, AR팀은 영원히 지휘관님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입니다.
적어도 보수 다 지불할 때까지는 살려놔야 하지 않겠어? 어쩔 수 없지, 그 모험에 어울려줄 수밖에.
AK-15랑 약속했거든, 같이 패러데우스를 박살내자고.
여기서 빠졌다간 내가 그 녀석한테 박살이 날 거야.
당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시든, 저희는 당신을 지지합니다.
당신의 결말을 지켜보겠다고 했죠? 그럼 마지막 순간까지 같이 가 드리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어차피 저는 IOP제 인형도 아닌걸요! 무서울 것 없다고요!
점점 더 많은 인형들이 모여들어 손을 번쩍 들었다.
너희들...
알고 있는 거야? 너희가 어떤 길을 선택한 건지?
모든 지원을 잃고 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거야. 이미 보장된 미래를 등지는 짓이라고.
우리는 질 거야. 그건 필연이야. 승자는 우리의 존재를 완전히 지워버릴 거고.
그런데도, 너희는 여전히 나를 따르겠다는 거야?
404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걸.
우리는 언제나 그림자 속을 거닐지. 잊히는 것이 최고의 결말이고.
저희의 대답은 변한 적 없습니다.
......
지휘관은 정중하게 손을 얹었다.
알고 있다. 이것은 신뢰를 상징하는, 죽음까지도 함께하겠다는 맹세임을.
<color=#00CCFF>...긴급 속보 전해드립니다.</color>
<color=#00CCFF>프랑크푸르트 공습 및 모스크바 쿠데타를 주도한 수괴 카터 페트로비치 노이슈타트가 현재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color>
<color=#00CCFF>현재 모스크바 방면에선 방어 병력이 결집하여 잔존한 카터 일당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이 혼란도 머지 않아 종결될 것으로 예상됩니다.</color>
<color=#00CCFF>이어서 프랑크푸르트 재건 작업 현장으로 시선을 옮겨보겠습니다...</col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