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섬의 휴일
"소녀들의 은밀한 모험, 운명을 바꾸는 보물을 찾아라!"
......
따사로운 햇빛이 눈꺼풀을 뚫고 시신경을 찔렀다.
의식이 맑아지고, 다시 파도 소리가 귓가에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눈부신 저 빛을 가리고 싶어도, 팔이 뭔가에 짓눌린 듯 움직이질 않았다.
......
대체... 언제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조난당해 이 섬으로 흘러든 게 언제였는지, 이젠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하지만, 그런 건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목말라... 배고파... 섬에는 먹을거리 하나 없고... 이대로 죽는 건가...
응...?
헛것이라도 보는 걸까? 주위에서 인형들이 떠드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
하지만, 그런 건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미안하다, 모두들... 난 아무래도 여기까지인가 봐...
지...휘관... 나...
......?
더 이상은 못 참아!
거기 혼자 누워서 그게 뭔 쇼야?! 엄청 몰입해 가지고, 징그러!
AA-12는 지휘관 곁에서, 능숙한 솜씨로 막대사탕의 포장지를 뜯어 당분을 섭취하는 중이었다.
따가운 햇볕에 단단히도 짜증났는지, 신경질적으로 파라솔의 각도를 조절해 빛을 가렸다.
그냥 내버려 둬, AA-12. 난 지금 휴가를 만끽하는 중이라고.
...적어도 오늘은 걱정할 일 하나도 없잖아.
그래... 오늘은, 바닷가에서 휴가를 즐기는 것 외엔 아무 일도 없다.
사흘 전, 그리폰 지휘실.
해변에서 휴가라고?
네! 농담 아니에요!
하지만... 외딴섬에 존재하는 위협을 제거해 달라는 의뢰 아니었어?
맞아요. 하지만 제가 어제 위성 사진을 조사해 봤는데요, 환경 오염 탓인지 다른 행정 문제 탓인지는 몰라도, 저번 세기말부터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가 됐더라고요.
덕분에 수십 년 이상 방치돼서, 섬에 남아 있던 인류 문명의 흔적도 거의 사라졌어요.
그리고 최근 그 섬을 조사하던 지질 탐사대가 풍부한 광맥을 발견했지. 그곳에 광산을 건설할 수 있도록, 섬을 통째로 사들인 개발업체가 안전을 확보해 달라고 우리에게 부탁한 거잖아.
의뢰서에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
중요한 점은!
현재 섬 면적의 90% 이상이 숲으로 뒤덮여 있다는 거죠. 남겨진 시설이고 뭐고 다 자연에 삼켜진 상태라, 철혈마저도 그런 데는 흥미 없어 할걸요?
그런 오지에서의 위험 요소라고 해봤자, 야생동물이 많은 정도일 거예요.
그리고 그 정도 무인도의 답사쯤, 그리폰이라면 하루면 해치울 수 있다고요.
하루만 열심히 일하고, 남는 기간 동안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시면 돼요!
듣고 보니... 정말 별문제 없을 것 같네.
흥, 누구누구 씨가 작전보고서 쓰라 하지 않았으면 저도 따라갔어요!
어... 커흠...
헤헤, 물론 항상 최전방에서 싸우신 지휘관님이 더 고생하셨죠.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의뢰는 쓱싹 해치우고 푹 쉬다 오세요!
......
모두에게 수영복 챙겨 오라 하길 잘했다.
그래도 맡은 일은 확실하게 처리해야 하니, 섬에 상륙하고 꼬박 하루를 탐색했다. 하지만 역시 카리나의 말대로, 이곳엔 나무와 모래, 바닷물 외엔 온통 야생동물뿐이었다.
"어떤 위협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섬"이라기 보단, "아름다운 휴양의 성지"라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지휘관, 가만있어... 이 이사카만이 만들 수 있는 예술 작품이 곧 완성돼!
어... 이사카 씨? 너무 거기에만 많이 쌓는 거 아니에요?
지금 내가 이렇게 꼼짝도 않고 누워 있는 이유는, 이사카와 개런드가 모래로 내 위에다 무언가를 만들고 있어서다.
한창 즐기고 있는 모양이니, 조금만 더 참도록 해야겠다.
바닷가의 다른 곳.
새로 개량한 방수 키트가 잘 작동하려나... 어라?
으음... 부품이 필요한데, 역시 이런 데선 찾기 어렵겠지...
Z-62 씨, 무기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네?!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무기 정비라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
아뇨, 괜찮아요. 저 혼자서 해결할 수 있어요. <Size=20>...아마도.</Size>
아... 그런가요? 그럼 방해 안 할게요.
네, 마음만 감사히 받을게요.
다른 사람한테 들킬 줄이야... 게다가 폐를 끼칠 뻔했어.
...그냥 조용한 데서 독서나 하자.
Z-62 씨? 쉬는 날인데 무기를 가져오셨어요?
아, 네... 저도 모르게 그만... 실례하겠습니다...
잠시만요, 제가 머핀을 가져왔는데...
...가버렸네요.
아기 상어 흐흥 흥흐흥~ 바닷속의 귀여운 아기 상어~♪
어머나, 95식 씨가 그런 귀여운 노래를 부르실 줄은 몰랐네요.
후훗, 오랜만에 이런 멋진 바닷가에 오니 저도 모르게 들떴나 봐요. 그리고 97식이 바다 하면 상어라면서 불러댔거든요.
그렇군요. 그런데, 95식 씨는 수영 안 하세요?
잘 못하는 데다, 97식이 물속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냐고 잔소리를 해서요. 이렇게 바닷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걸로 충분해요.
아쉽게 됐네요... 참, 그럼 일광욕에 좋은 선크림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도 하나쯤은 구비해 둬야겠다 싶어서요.
이거 어떠세요? 얼마 전에 산 브랜드인데, 인형의 피부에도 효과가 좋은 성분이에요. 발라보실래요?
와아, 그런 제품도 있었군요! 부탁드려요.
수박 가져왔어~ 지금 자를까?
잠깐 잠깐, 그냥 먹기만 하면 아깝잖아.
무슨 소리야? "아깝다"는 먹을 걸 안 먹을 때나 하는 소리라고.
하여간... 내가 수박으로 할 수 있는 재밌는 놀이를 가르쳐 줄게.
......
어... 우리가 마지막으로 휴가 나왔던 게 언제였지?
왜 또.
아니 그게, 갑자기 초연이나 진흙이 아니라 싱그러운 냄새만 맡고, 근심 걱정에 궁지에 몰려 발버둥칠 일도 없으니... 오히려 불편한 느낌이 들어서.
어제만 해도 전장에서 평화를 갈망했는데, 막상 정말로 평화로운 환경에 놓이니 왠지 나 자신이 쓸모없어진 것 같달까?
...나한텐 평화로운 일상이 안 어울릴지도 모르겠네. 아니, 그냥 내가 평화에 적응하지 못하게 변해 버린 건가?
뭔 소리래...
AA-12는 무심하게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몸을 덮은 모래는 햇볕을 받아 따뜻해졌고, 주위에서 인형들이 뛰노는 소리는 마치 자장가처럼 귓가를 맴돌아, 점점 졸음이 쏟아졌다.
......
컥!?
그리고 묵직한 냉병기에 수박이 쪼개지는 소리에 졸음이 싹 달아남과 동시에, 차가운 액체가 얼굴에 튀었다.
...야전 도끼?
머리에서 겨우 한 뼘 정도 떨어진 곳에, 웬 커다란 수박을 두 동강 낸 시퍼런 도끼날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도끼를 쥐고 있는 SPAS-12는, 눈을 가린 채로... 왠지 엄청 신나 보였다.
57! 나 맞춘 것 같아!
지금 갈게~ 와, 정말 제대로 맞췄네! 대단――헉, 지휘관?!
뭐어?! 나 지휘관 찍었어!?
하마터면 찍을 뻔했다!
대체 뭐하는 거야?!
아하하... 수, 수박 깨기 놀이하고 있었어...
미안해 지휘관, 몸이 모래 속에 완전히 묻혀 있어서 못 봤어... 그 수박 줄 테니까, 우리 먼저 갈게!
간신히 모래 더미에서 몸을 빼내고 나니, Five-seveN은 이미 SPAS-12를 끌고 저 멀리 도망친 뒤였다. 바닥의 두 동강 난 수박을 다시 보니 식은땀이 흘렀다.
......
전쟁이니 평화니, 그런 철학적인 문제는 그만두자...
지휘관님!
아, 난 무사해. 걱정 말고 저기서 물장난치는 인형들 잘 감시해 줘.
그게 아니라요, 방금 정체불명의 적대 신호가 포착됐어요!
적대 신호?!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말고 누가 섬에 상륙하기라도 했어?
아뇨, 신호는 섬 안쪽의 숲에서 나타났어요.
아무래도 적은 어제 아주 치밀하게 은폐하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저희가 샅샅이 조사하지 않은 탓이니...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아, 자세한 사항은 나중에 조사하자고. 당장 모두에게 연락해서 전투 준비해!
......
사흘 전, 그리폰 숙소.
MDR은 홀로 침대 위에 엎어져, 휴대폰을 두들기고 있었다.
에... 에...
<Size=80>푸헹취!</Size>
훌쩍... 우이씨, 뭐야 갑자기. 생리 반응 모듈 꺼놔야겠다.
아, 느닷없이 재채기가 나온다는 건 누가 내 얘기를 한단 뜻이랬나?
혹시 지휘관이? 아하하핫, 그거 대박이네!
MDR~ 여기 있었구나. 저번에 내가 빌려준 선글라스 돌려줘.
......
뭐야, 그 실망과 혐오로 가득한 표정은.
뉘신가 했더니 너여서... 그런데 무슨 일이라고?
내 선글라스 돌려달라고. 다리에 행운의 문양을 새긴 거.
내가 그런 걸 빌렸었나... 잠깐만, 찾아볼게.
그런데 그건 왜 이제 와서 찾아?
내일 작전하러 무인도로 가잖아?
지휘관님이 수영복 있으면 챙겨 오라 하셨거든.
아~ 그 갈라... 뭐시기...? 아무튼, 그불게에 올라온 그 섬 말이지? 알아 알아.
별로 부러워하는 눈치가 아니네?
난 그런 섬보단 "행운을 부르는 보물"에 관한 전설이 더 흥미롭걸랑.
<Size=32>그거 진위 여부가 어쩌네 하면서 10페이지 가까이 키배를 떴지...</Size>
행운을 부르는 보물?
아하... 너라면 꽤 관심 있겠네. 소문에 의하면...
그 섬 어딘가에 묻혀 있는 그 보물은, 찾아내는 사람의 운명을 고쳐 써서 평생 행운이 따르게 해 준다더라!
내, 내 운이 그 정도로 나쁘진 않잖아?!
그래도, 행운의 보물이라... 조금 찾아볼 만할지도?
아, 선글라스 찾았다. 방금 뭐랬어?
그 행운의 보물이란 거, 섬의 어디에 있대?
내가 알면 그게 전설이게?
위성 사진 봐봐, 섬은 온통 숲으로 뒤덮였다고. 보물이니까 대충 깊은 숲속 어딘가에 숨겨져 있지 않겠어?
정말 숲속에 있을까?
만약 운이 나빠서 찾아내지 못하면 어쩌지...
뭐, "섬의 보물"이라니까 적어도 바닷속에 있지는 않겠지.
자, 네 선글라스. 어쩌면 그 행운의 문양이 널 이끌어 줄지도?
......
사흘 후, 섬의 정반대편.
R93은 선글라스를 꺼내 머리에 썼다.
좋았어... 선글라스야, 내게 행운을 가져다줘!
응?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야~
준비는 다 됐어?
준비는 섬에 도착했을 때부터 됐지!
행운을 부르는 보물이라~ 정말 찾아낸다면 지휘관님의... 아니, 어쩌면 그리폰 최고의 인기 스타가 될 수 있을 거야!
나도 데려와 줘서 정말 고마워, R93!
<Size=32>관심 있어 한 사람이 얘뿐이었다고는 절대 말 못해...</Size>
그런데, 정말 지휘관님한테 보고하지 않아도 돼?
따지고 보면 무단 행동이잖아. 들켰다간...
어... 저번에 소문만 믿고 행동했다 좀 안 좋은 일을 겪었거든...
그래서, 이번엔 확실한 단서를 찾은 다음 지휘관님께 연락할 거야!
아, 낚싯바늘에 수영복이 벗겨져서 한참을 숨어 있었다는 그거?
뭣... 어, 어떻게 알았어?!
그불게에서 비치 발리볼 시합을 주제로 잠깐 시끄러웠던 적이 있는데, 거기서 평소에도 불펍 소총 찬양으로 게시판을 도배하는 녀석이 그 이야기를 했어.
네 그 선글라스 사진도 첨부해서.
누구 짓인지 대충 알겠네...
그게 진짜였구나?
예, 예전 일은 됐으니까 얼른 보물이나 찾으러 가자!
...5분 후.
으으... 무슨 숲이 이렇게 우거졌어...
수십 년이나 방치됐다지만, 이래서는 완전히 원시우림이잖아...
게다가 으스스해...
음... 확실히 좀 으스스하네. 인간들은 이런 어두운 밀림을 공포물의 무대로 삼길 좋아하더라.
무심코 숲에 발을 디딘 사람 앞에, 갑자기 유령이 나타나서...
뭐뭐뭐뭐야, 왜갑자기괴담얘기해?
응? 아니, 그냥 생각나서 말해본 건데... 왜 그래?
R93가 뒤를 돌아보니, P38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P38, 너... 유령이 무섭구나?
아...
아~하하하!
에이, 그럴 리가! 우린 전술인형이라고!
게다가, 과학적으로 유령이 존재할 리도 없잖아? 그치? 그치?!
흐음~?
아, 아무튼 빨리 보물을 찾고 여기서 나가자!
P38은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씩씩하게 앞장서 나아갔다. 하지만 R93은 장난기가 발동해...
쿡.
<Size=60>꺄아아아아악!!!</Size>
비명에 놀란 새들이 하늘로 날아올랐고, R93의 손가락에 등을 찔린 P38은 마인드맵이 폭주하기라도 한 듯 전속력으로 내달려, 깊은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겁먹은 거 맞네 뭘.
하아... 운이 따라서 빨리 보물을 찾아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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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사로운 햇빛이 눈꺼풀을 뚫고 시신경을 찔렀다.
의식이 맑아지고, 다시 파도 소리가 귓가에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눈부신 저 빛을 가리고 싶어도, 팔이 뭔가에 짓눌린 듯 움직이질 않았다.
......
대체... 언제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조난당해 이 섬으로 흘러든 게 언제였는지, 이젠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하지만, 그런 건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목말라... 배고파... 섬에는 먹을거리 하나 없고... 이대로 죽는 건가...
응...?
헛것이라도 보는 걸까? 주위에서 인형들이 떠드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
하지만, 그런 건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미안하다, 모두들... 난 아무래도 여기까지인가 봐...
지...휘관... 나...
......?
더 이상은 못 참아!
거기 혼자 누워서 그게 뭔 쇼야?! 엄청 몰입해 가지고, 징그러!
AA-12는 지휘관 곁에서, 능숙한 솜씨로 막대사탕의 포장지를 뜯어 당분을 섭취하는 중이었다.
따가운 햇볕에 단단히도 짜증났는지, 신경질적으로 파라솔의 각도를 조절해 빛을 가렸다.
그냥 내버려 둬, AA-12. 난 지금 휴가를 만끽하는 중이라고.
...적어도 오늘은 걱정할 일 하나도 없잖아.
그래... 오늘은, 바닷가에서 휴가를 즐기는 것 외엔 아무 일도 없다.
사흘 전, 그리폰 지휘실.
해변에서 휴가라고?
네! 농담 아니에요!
하지만... 외딴섬에 존재하는 위협을 제거해 달라는 의뢰 아니었어?
맞아요. 하지만 제가 어제 위성 사진을 조사해 봤는데요, 환경 오염 탓인지 다른 행정 문제 탓인지는 몰라도, 저번 세기말부터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가 됐더라고요.
덕분에 수십 년 이상 방치돼서, 섬에 남아 있던 인류 문명의 흔적도 거의 사라졌어요.
그리고 최근 그 섬을 조사하던 지질 탐사대가 풍부한 광맥을 발견했지. 그곳에 광산을 건설할 수 있도록, 섬을 통째로 사들인 개발업체가 안전을 확보해 달라고 우리에게 부탁한 거잖아.
의뢰서에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
중요한 점은!
현재 섬 면적의 90% 이상이 숲으로 뒤덮여 있다는 거죠. 남겨진 시설이고 뭐고 다 자연에 삼켜진 상태라, 철혈마저도 그런 데는 흥미 없어 할걸요?
그런 오지에서의 위험 요소라고 해봤자, 야생동물이 많은 정도일 거예요.
그리고 그 정도 무인도의 답사쯤, 그리폰이라면 하루면 해치울 수 있다고요.
하루만 열심히 일하고, 남는 기간 동안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시면 돼요!
듣고 보니... 정말 별문제 없을 것 같네.
흥, 누구누구 씨가 작전보고서 쓰라 하지 않았으면 저도 따라갔어요!
어... 커흠...
헤헤, 물론 항상 최전방에서 싸우신 지휘관님이 더 고생하셨죠.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의뢰는 쓱싹 해치우고 푹 쉬다 오세요!
......
모두에게 수영복 챙겨 오라 하길 잘했다.
그래도 맡은 일은 확실하게 처리해야 하니, 섬에 상륙하고 꼬박 하루를 탐색했다. 하지만 역시 카리나의 말대로, 이곳엔 나무와 모래, 바닷물 외엔 온통 야생동물뿐이었다.
"어떤 위협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섬"이라기 보단, "아름다운 휴양의 성지"라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지휘관, 가만있어... 이 이사카만이 만들 수 있는 예술 작품이 곧 완성돼!
어... 이사카 씨? 너무 거기에만 많이 쌓는 거 아니에요?
지금 내가 이렇게 꼼짝도 않고 누워 있는 이유는, 이사카와 개런드가 모래로 내 위에다 무언가를 만들고 있어서다.
한창 즐기고 있는 모양이니, 조금만 더 참도록 해야겠다.
바닷가의 다른 곳.
새로 개량한 방수 키트가 잘 작동하려나... 어라?
으음... 부품이 필요한데, 역시 이런 데선 찾기 어렵겠지...
Z-62 씨, 무기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네?!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무기 정비라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
아뇨, 괜찮아요. 저 혼자서 해결할 수 있어요. <Size=20>...아마도.</Size>
아... 그런가요? 그럼 방해 안 할게요.
네, 마음만 감사히 받을게요.
다른 사람한테 들킬 줄이야... 게다가 폐를 끼칠 뻔했어.
...그냥 조용한 데서 독서나 하자.
Z-62 씨? 쉬는 날인데 무기를 가져오셨어요?
아, 네... 저도 모르게 그만... 실례하겠습니다...
잠시만요, 제가 머핀을 가져왔는데...
...가버렸네요.
아기 상어 흐흥 흥흐흥~ 바닷속의 귀여운 아기 상어~♪
어머나, 95식 씨가 그런 귀여운 노래를 부르실 줄은 몰랐네요.
후훗, 오랜만에 이런 멋진 바닷가에 오니 저도 모르게 들떴나 봐요. 그리고 97식이 바다 하면 상어라면서 불러댔거든요.
그렇군요. 그런데, 95식 씨는 수영 안 하세요?
잘 못하는 데다, 97식이 물속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냐고 잔소리를 해서요. 이렇게 바닷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걸로 충분해요.
아쉽게 됐네요... 참, 그럼 일광욕에 좋은 선크림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도 하나쯤은 구비해 둬야겠다 싶어서요.
이거 어떠세요? 얼마 전에 산 브랜드인데, 인형의 피부에도 효과가 좋은 성분이에요. 발라보실래요?
와아, 그런 제품도 있었군요! 부탁드려요.
수박 가져왔어~ 지금 자를까?
잠깐 잠깐, 그냥 먹기만 하면 아깝잖아.
무슨 소리야? "아깝다"는 먹을 걸 안 먹을 때나 하는 소리라고.
하여간... 내가 수박으로 할 수 있는 재밌는 놀이를 가르쳐 줄게.
......
어... 우리가 마지막으로 휴가 나왔던 게 언제였지?
왜 또.
아니 그게, 갑자기 초연이나 진흙이 아니라 싱그러운 냄새만 맡고, 근심 걱정에 궁지에 몰려 발버둥칠 일도 없으니... 오히려 불편한 느낌이 들어서.
어제만 해도 전장에서 평화를 갈망했는데, 막상 정말로 평화로운 환경에 놓이니 왠지 나 자신이 쓸모없어진 것 같달까?
...나한텐 평화로운 일상이 안 어울릴지도 모르겠네. 아니, 그냥 내가 평화에 적응하지 못하게 변해 버린 건가?
뭔 소리래...
AA-12는 무심하게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몸을 덮은 모래는 햇볕을 받아 따뜻해졌고, 주위에서 인형들이 뛰노는 소리는 마치 자장가처럼 귓가를 맴돌아, 점점 졸음이 쏟아졌다.
......
컥!?
그리고 묵직한 냉병기에 수박이 쪼개지는 소리에 졸음이 싹 달아남과 동시에, 차가운 액체가 얼굴에 튀었다.
...야전 도끼?
머리에서 겨우 한 뼘 정도 떨어진 곳에, 웬 커다란 수박을 두 동강 낸 시퍼런 도끼날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도끼를 쥐고 있는 SPAS-12는, 눈을 가린 채로... 왠지 엄청 신나 보였다.
57! 나 맞춘 것 같아!
지금 갈게~ 와, 정말 제대로 맞췄네! 대단――헉, 지휘관?!
뭐어?! 나 지휘관 찍었어!?
하마터면 찍을 뻔했다!
대체 뭐하는 거야?!
아하하... 수, 수박 깨기 놀이하고 있었어...
미안해 지휘관, 몸이 모래 속에 완전히 묻혀 있어서 못 봤어... 그 수박 줄 테니까, 우리 먼저 갈게!
간신히 모래 더미에서 몸을 빼내고 나니, Five-seveN은 이미 SPAS-12를 끌고 저 멀리 도망친 뒤였다. 바닥의 두 동강 난 수박을 다시 보니 식은땀이 흘렀다.
......
전쟁이니 평화니, 그런 철학적인 문제는 그만두자...
지휘관님!
아, 난 무사해. 걱정 말고 저기서 물장난치는 인형들 잘 감시해 줘.
그게 아니라요, 방금 정체불명의 적대 신호가 포착됐어요!
적대 신호?!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말고 누가 섬에 상륙하기라도 했어?
아뇨, 신호는 섬 안쪽의 숲에서 나타났어요.
아무래도 적은 어제 아주 치밀하게 은폐하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저희가 샅샅이 조사하지 않은 탓이니...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아, 자세한 사항은 나중에 조사하자고. 당장 모두에게 연락해서 전투 준비해!
......
사흘 전, 그리폰 숙소.
MDR은 홀로 침대 위에 엎어져, 휴대폰을 두들기고 있었다.
에... 에...
<Size=80>푸헹취!</Size>
훌쩍... 우이씨, 뭐야 갑자기. 생리 반응 모듈 꺼놔야겠다.
아, 느닷없이 재채기가 나온다는 건 누가 내 얘기를 한단 뜻이랬나?
혹시 지휘관이? 아하하핫, 그거 대박이네!
MDR~ 여기 있었구나. 저번에 내가 빌려준 선글라스 돌려줘.
......
뭐야, 그 실망과 혐오로 가득한 표정은.
뉘신가 했더니 너여서... 그런데 무슨 일이라고?
내 선글라스 돌려달라고. 다리에 행운의 문양을 새긴 거.
내가 그런 걸 빌렸었나... 잠깐만, 찾아볼게.
그런데 그건 왜 이제 와서 찾아?
내일 작전하러 무인도로 가잖아?
지휘관님이 수영복 있으면 챙겨 오라 하셨거든.
아~ 그 갈라... 뭐시기...? 아무튼, 그불게에 올라온 그 섬 말이지? 알아 알아.
별로 부러워하는 눈치가 아니네?
난 그런 섬보단 "행운을 부르는 보물"에 관한 전설이 더 흥미롭걸랑.
<Size=32>그거 진위 여부가 어쩌네 하면서 10페이지 가까이 키배를 떴지...</Size>
행운을 부르는 보물?
아하... 너라면 꽤 관심 있겠네. 소문에 의하면...
그 섬 어딘가에 묻혀 있는 그 보물은, 찾아내는 사람의 운명을 고쳐 써서 평생 행운이 따르게 해 준다더라!
내, 내 운이 그 정도로 나쁘진 않잖아?!
그래도, 행운의 보물이라... 조금 찾아볼 만할지도?
아, 선글라스 찾았다. 방금 뭐랬어?
그 행운의 보물이란 거, 섬의 어디에 있대?
내가 알면 그게 전설이게?
위성 사진 봐봐, 섬은 온통 숲으로 뒤덮였다고. 보물이니까 대충 깊은 숲속 어딘가에 숨겨져 있지 않겠어?
정말 숲속에 있을까?
만약 운이 나빠서 찾아내지 못하면 어쩌지...
뭐, "섬의 보물"이라니까 적어도 바닷속에 있지는 않겠지.
자, 네 선글라스. 어쩌면 그 행운의 문양이 널 이끌어 줄지도?
......
사흘 후, 섬의 정반대편.
R93은 선글라스를 꺼내 머리에 썼다.
좋았어... 선글라스야, 내게 행운을 가져다줘!
응?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야~
준비는 다 됐어?
준비는 섬에 도착했을 때부터 됐지!
행운을 부르는 보물이라~ 정말 찾아낸다면 지휘관님의... 아니, 어쩌면 그리폰 최고의 인기 스타가 될 수 있을 거야!
나도 데려와 줘서 정말 고마워, R93!
<Size=32>관심 있어 한 사람이 얘뿐이었다고는 절대 말 못해...</Size>
그런데, 정말 지휘관님한테 보고하지 않아도 돼?
따지고 보면 무단 행동이잖아. 들켰다간...
어... 저번에 소문만 믿고 행동했다 좀 안 좋은 일을 겪었거든...
그래서, 이번엔 확실한 단서를 찾은 다음 지휘관님께 연락할 거야!
아, 낚싯바늘에 수영복이 벗겨져서 한참을 숨어 있었다는 그거?
뭣... 어, 어떻게 알았어?!
그불게에서 비치 발리볼 시합을 주제로 잠깐 시끄러웠던 적이 있는데, 거기서 평소에도 불펍 소총 찬양으로 게시판을 도배하는 녀석이 그 이야기를 했어.
네 그 선글라스 사진도 첨부해서.
누구 짓인지 대충 알겠네...
그게 진짜였구나?
예, 예전 일은 됐으니까 얼른 보물이나 찾으러 가자!
...5분 후.
으으... 무슨 숲이 이렇게 우거졌어...
수십 년이나 방치됐다지만, 이래서는 완전히 원시우림이잖아...
게다가 으스스해...
음... 확실히 좀 으스스하네. 인간들은 이런 어두운 밀림을 공포물의 무대로 삼길 좋아하더라.
무심코 숲에 발을 디딘 사람 앞에, 갑자기 유령이 나타나서...
뭐뭐뭐뭐야, 왜갑자기괴담얘기해?
응? 아니, 그냥 생각나서 말해본 건데... 왜 그래?
R93가 뒤를 돌아보니, P38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P38, 너... 유령이 무섭구나?
아...
아~하하하!
에이, 그럴 리가! 우린 전술인형이라고!
게다가, 과학적으로 유령이 존재할 리도 없잖아? 그치? 그치?!
흐음~?
아, 아무튼 빨리 보물을 찾고 여기서 나가자!
P38은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씩씩하게 앞장서 나아갔다. 하지만 R93은 장난기가 발동해...
쿡.
<Size=60>꺄아아아아악!!!</Size>
비명에 놀란 새들이 하늘로 날아올랐고, R93의 손가락에 등을 찔린 P38은 마인드맵이 폭주하기라도 한 듯 전속력으로 내달려, 깊은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겁먹은 거 맞네 뭘.
하아... 운이 따라서 빨리 보물을 찾아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