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구멍에 볕들 날
"수수께끼 생물이 해변에 출현! 혹시 이것이 행운의 징조!?"
......
마지막 적을 쓰러뜨려, 바닷가는 다시 조용해졌다.
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할 줄이야.
인형들이 현장을 조사하는 모습을 보니, 사흘 전 카리나가 호언장담하던 것이 떠올랐다. 나는 그제서야 그것이 데자뷰였음을 깨달았다.
내 팔자야... 그래도 이걸로 끝――
빈틈 발견! 이번에야말로 본때를 보여 주겠어요!
...끝난 거겠지?
감히 나한테 도전이라니, 간이 부었구나! 이거나 먹어라!
꺄하하하하~!
사람의 키를 웃도는 바위 너머로, 신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교적 깔끔하고 경치도 좋은 백사장을 피서지로 삼은 덕분에, 저 아이들은 아침부터 새장을 벗어난 새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놀았다.
사실상 휴가이기에 내버려뒀지만, 설마 방금 전투가 일어난 것도 눈치채지 못할 줄이야.
조금 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의 장난치는 웃음과 파도의 소리가 다시 들리니, 완전히 다른 세계로 넘어온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쟤네들, 물놀이 기구까지 가져왔지?
지휘관님, 모든 적 섬멸 완료했습니다. 정말 훌륭한 지휘였어요!
대답이 없는 걸 의아해한 세르듀코프는 내 시선을 쫓았고, 해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신나게 놀고 있는 인형들의 존재를 눈치챘다.
저렇게 시끄러운 걸 보니, 정말 즐겁게 노는 모양이네.
죄송합니다, 긴급 호출 때 저 애들은 통신 모듈이 꺼져 있었어서... 물장난하느라 눈치채지도 못했나 봐요.
애초에 돌발 상황이었는걸. 눈감아 주자. 하지만 적이 대체 어디서 왔는지 파악하기 전까진 경계 상태를 유지해야겠지.
노는 것도 좋지만, 일단 의뢰를 받아 왔으니 지나치게 정신이 팔려서는 안 돼. 쟤네들 모레면 돌아가야 하는 것도 까먹었을걸?
네? 저희 내일 복귀인데요?
응?
네?
아...!
크흠... 주변을 정찰하고 와 주렴. 저 녀석들은 내가 가서 데려올게.
눈치 빠른 세르듀코프는 다른 인형들과 함께 섬 안쪽을 수색하러 갔다.
그들을 눈으로 배웅한 뒤, 나는 한숨을 쉬며 백사장의 바위 뒤로 돌아가, 아직도 갯벌에서 "전쟁" 중인 아이들을 찾았다.
헤헤헤, 방금 당한 걸 배로 갚아줄 거예요!
흥, 그런 소린 나부터 잡은 다음에 하시지!
두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마치, 진짜 전쟁은 더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
갑자기 오싹한 느낌이 들어 주위를 둘러봤지만, SPAS-12와 도끼는 보이지 않았다. 역시 잡다한 생각은 당분간 하지 말아야겠어...
한창 노는 중에 끼어들어서 미안하지만, 지금은 놀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얘들아! 그만 놀고 즉시 저쪽으로 집합해!
......
두 꼬맹이들은 여전히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청각 모듈까지 끈 건 아니겠지?
아! 마침 잘 왔어 지휘관! 네가 나설 차례야!
숨어 봤자예요! 반격 개시~!
반격이라니 무어푸풉! 날 쏘면 어떡해 G41?!
부하로서 당연히 방패가 되어 줘야지! 오늘의 희생은 잊지 않을게!
방패가 되어 준다고 하지도 않았다만...
이럴 수가! 주인님을 이용하다니 절대 용서 못해요! 받아라~!
어푸푸, 아니 그걸 왜 내 얼굴에 조준해서 쏘냐니까?!
잠깐, 너희들 물총에 뭘 채운 거야?
G41과 C-MS의 격전에 휘말린 통에, 도저히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결국 당겨지고 밀쳐지면서, 나까지 갯벌에 빠지고 말았다.
지휘관? 설마 당신이 이런 애들 장난에 어울릴 줄은 몰랐는걸. 내가 너무 과대평가했나?
물총 들고 잘도 그런 소릴...
잘 들어, 상황 발생이니까 하던 짓 그만두고――
꺄하하하하~!
푸하학! 마, 말 좀 들어!
(저렇게 기운찬 지휘관 나리의 모습은 처음 보는군... 반드시 소재로 삼아야겠소이다! 좀 더... 좀 더 가까이!)
소, 소녀도 참전하겠소!
어째선지 모두가 나를 집중 공격하기 시작했다.
파도를 동반한 물총과 물장구의 세례에, 앞을 제대로 볼 수조차 없게 되었다.
공세가 살짝 더뎌져 겨우 시야가 돌아왔을 땐, 뭔가 콩알만한 것이 얼굴에 날아든 뒤였다.
빠악!
그 단단한 물체는 총알처럼 내 이마에 명중했고, 충격으로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꺄악! 내 단추! 어... 어디로 날아갔지?
내 팔자야...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차가운 파도에 삼켜졌다.
설상가상으로, 해류에 휩쓸려 깊은 곳까지 떠밀렸다. 그리고 몸의 균형을 되찾기도 전에, 딱딱한 무언가에 뒤통수를 세게 부딪혀, 의식을 잃고 말았다...
지휘관님, 주변 상황 확인 끝마쳤습니다. 애들은 진정시키셨나요?
어라...? 지휘관님?
지휘관님 여기 안 오셨어요?
왔어요! 주인님 여기... 어? 주인님? 방금까지 여기 계셨는데!
어디에 숨었구나!
어... 나리는 수영 못하시진 않으오?
할 줄 알든 모르든 지금 딱 보면 무슨 상황인지 파악 안 돼?
지휘관이 물에 빠졌다고!
물에 빠졌어요?
크, 큰일이에요! 바로 구해드릴게요 주인님!
내 최우수 부하가 위험에 빠졌다!
으아아, 파도가 너무 거세오!
(침착하자... 침착하자... 이럴 때일수록 당황하면 안 돼!)
모든 인형에게 전달! 긴급 사태 발생!
지휘관님이 위험합니다! 즉시 제 위치로 집합하세요!
앗, 누가 왔어요!
벌써? 아니야... 저건 적이에요!
하필이면 이럴 때 행차라니, 눈치도 없는 놈들이네.
방금 주변을 수색할 땐 아무 신호도 없었는데...? 우, 우선 요격부터 하죠!
전원, 곧 아군이 집합하니 눈앞의 적부터 제거하세요!
한편, R93과 P38은 여전히 숲속에서 보물을 찾고 있었다.
보물을 찾으러 왔는데, 왜 사라진 동료부터 찾아야 하는 거람...
길은 또 왜 이렇게 울퉁불퉁한데... P38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달려갔지?
물론, 숲속에 혼자인 R93의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바람과 새들의 소리가 대신 들려올 뿐이었다.
시간도 벌써 이렇게... 지금쯤이면 지휘관님도 우리가 말도 없이 사라진 걸 알아챘을지도 몰라.
하아... 이럴 줄 알았으면 P38 놀리지 말걸. 괜히 시간만 낭비하고...
...어?
R93이 투덜거리던 와중, 멀리서 익숙한 비명이 다시 들려왔다. 아까보다 더 창백해진 얼굴로 비명을 지르며 뛰어오는 P38이었다.
<Size=60>R, R93――!!!</Size>
<Size=60>시끄러워!</Size>
살짝 장난친 거 가지고 뭘 그렇게 놀라?!
아니, 그게 아니라! 저저저저기에!
P38을 곧장 R93의 뒤로 숨어, 방금 달려온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에 뭐? 설마, 보물을 찾은 거야?
아니 아니, 그거 말고!
그게 아니면 뭔데?
설마... 정말 유령이라도 본 거야?
괴물! 저기에 바다 괴물이 있어!
바다 괴물..? 에이, 유령 이야기에 비하면야 별거 아니네.
괴담 같은 게 아니야!
진짜 괴물이라고! 정말이야! 방금 밟았는데 흐물흐물해서 엄청 징그러워!
바다 괴물이라니, 그럴 리가...
...잠깐, 정말 바다 괴물이 나타난 거라면, 오히려 좋은 징조잖아?
당장 가보자!
돌아가는 게 아니라?!
뭐라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잖아.
그 왜 있잖아, 전설에 자주 나오는 "보물을 지키는 괴물".
싸우려고?! 그냥 돌아가자!
보기만 할 거야.
하지만 이번엔 정말 행운이 찾아온 것 같은 느낌이야!
바들바들 떨며 울상인 P38의 손을 잡아끌며, R93은 숲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숲 너머는 바위로 가득한 바닷가였다. 빨간 게가 R93의 발치를 지나, 왠지 부자연스러운 해초 더미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해초 더미가 움찔했다.
저거! 저거 저거 저거!
저 해초 더미가?
그냥 해초가 아니야! 괴물이라고!
선수필승이라는데, 해치울까?
적어도 뭔지는 확인해보자.
R93은 그 "바다 괴물"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관찰했다. 생각보다 커다랗고, 해초로 덮이지 않은 부분도 보였다.
전체적인 외형으로 봐선... 괴물이라기보단, 오히려 인간에 가까웠다.
호, 혹시 ELID 아니야?
시선을 교환한 R93과 P38은 괴물에게 자갈을 툭 던져 보았지만, 이번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시 가까이 접근해보려던 찰나, 괴물이 갑자기 꿈틀거리더니, 양손을 뻗어 R93과 P38의 발목을 붙잡았다.
으어어어어억!
<Size=60>와아아아아악!!!</Size>
<Size=60>꺄아아아아악!!!</Size>
기습에 놀란 두 인형은 무기를 뽑아 들 겨를이 없어, 비상 수단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리폰류 CQC였다.
전술인형에겐 무기마저 잃은 절박한 상황에서나 동원할 법한 격투술이지만,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써보겠는가.
그리고 이 바다 괴물은 보기보다 꽤 약한 모양인지, R93과 P38의 반격에 너무나도 손쉽게 쓰러졌다.
헉... 헉...
해... 해치웠나?
일단 급소는 때리지 않았어...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해.
뭐가?
목소리... 왠지 엄청 익숙한 목소리지 않았어?
P38의 말에 R93은 흠칫했다. 방금 들은 목소리를 마인드맵 기록에서 일치하는 음성을 검색한 R93은, 동공이 흔들리면서 입꼬리가 부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추측을 확인하려는 듯이, P38도 나뭇가지를 주워 괴물을 덮고 있는 해초를 슬쩍 들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다.
지, 지휘관님!?
P38은 나뭇가지를 홱 내던지고 지휘관을 부둥켜안았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이런 일이...?
P38...
<Size=60>대체 누가 지휘관님께 이런 짓을!</Size>
<Size=80>너잖아!!!</Size>
즉시 긴급 조치를 취해 지휘관의 안색이 다소 나아진 뒤에야, R93과 P38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우리 모두 당황해서 전력으로 때리진 않았고, 해초가 쿠션 역할도 해 줘서 심각한 부상은 없어.
그런데, 왜 지휘관님이 이런 곳에 쓰러져 계신 거지?
서, 설마 저쪽에 무슨 큰일이라도 났나?
그건 지휘관님이 정신을 차리시면 여쭤보자... 응?
방금 지휘관에게서 뜯어낸 해초 더미 속에, 뭔가 이상한 게 감겨 있었다.
해초와 따개비가 잔뜩 들러붙은 투명 서류 봉투였다. 오랜 세월로 인해 물이 좀 새어 들어가긴 했지만, 방수 처리 덕분에 내용물은 아직 멀쩡했다.
그건, 한 장의 지도였다.
이, 이건?!
......
진짜야, 정말 있나 봐... 행운을 부르는 보물이, 정말로 있나 봐!
행운의 여신이 우리에게 윙크하고 있어!
R93, 눈에서 광선 나오겠다...
P38도 R93이 펼친 지도를 보았다. 바닷물에 불어 글자는 완전히 지워졌지만, 섬의 윤곽과 중앙의 유일하게 선명한 붉은 별표는 알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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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적을 쓰러뜨려, 바닷가는 다시 조용해졌다.
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할 줄이야.
인형들이 현장을 조사하는 모습을 보니, 사흘 전 카리나가 호언장담하던 것이 떠올랐다. 나는 그제서야 그것이 데자뷰였음을 깨달았다.
내 팔자야... 그래도 이걸로 끝――
빈틈 발견! 이번에야말로 본때를 보여 주겠어요!
...끝난 거겠지?
감히 나한테 도전이라니, 간이 부었구나! 이거나 먹어라!
꺄하하하하~!
사람의 키를 웃도는 바위 너머로, 신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교적 깔끔하고 경치도 좋은 백사장을 피서지로 삼은 덕분에, 저 아이들은 아침부터 새장을 벗어난 새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놀았다.
사실상 휴가이기에 내버려뒀지만, 설마 방금 전투가 일어난 것도 눈치채지 못할 줄이야.
조금 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의 장난치는 웃음과 파도의 소리가 다시 들리니, 완전히 다른 세계로 넘어온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쟤네들, 물놀이 기구까지 가져왔지?
지휘관님, 모든 적 섬멸 완료했습니다. 정말 훌륭한 지휘였어요!
대답이 없는 걸 의아해한 세르듀코프는 내 시선을 쫓았고, 해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신나게 놀고 있는 인형들의 존재를 눈치챘다.
저렇게 시끄러운 걸 보니, 정말 즐겁게 노는 모양이네.
죄송합니다, 긴급 호출 때 저 애들은 통신 모듈이 꺼져 있었어서... 물장난하느라 눈치채지도 못했나 봐요.
애초에 돌발 상황이었는걸. 눈감아 주자. 하지만 적이 대체 어디서 왔는지 파악하기 전까진 경계 상태를 유지해야겠지.
노는 것도 좋지만, 일단 의뢰를 받아 왔으니 지나치게 정신이 팔려서는 안 돼. 쟤네들 모레면 돌아가야 하는 것도 까먹었을걸?
네? 저희 내일 복귀인데요?
응?
네?
아...!
크흠... 주변을 정찰하고 와 주렴. 저 녀석들은 내가 가서 데려올게.
눈치 빠른 세르듀코프는 다른 인형들과 함께 섬 안쪽을 수색하러 갔다.
그들을 눈으로 배웅한 뒤, 나는 한숨을 쉬며 백사장의 바위 뒤로 돌아가, 아직도 갯벌에서 "전쟁" 중인 아이들을 찾았다.
헤헤헤, 방금 당한 걸 배로 갚아줄 거예요!
흥, 그런 소린 나부터 잡은 다음에 하시지!
두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마치, 진짜 전쟁은 더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
갑자기 오싹한 느낌이 들어 주위를 둘러봤지만, SPAS-12와 도끼는 보이지 않았다. 역시 잡다한 생각은 당분간 하지 말아야겠어...
한창 노는 중에 끼어들어서 미안하지만, 지금은 놀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얘들아! 그만 놀고 즉시 저쪽으로 집합해!
......
두 꼬맹이들은 여전히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청각 모듈까지 끈 건 아니겠지?
아! 마침 잘 왔어 지휘관! 네가 나설 차례야!
숨어 봤자예요! 반격 개시~!
반격이라니 무어푸풉! 날 쏘면 어떡해 G41?!
부하로서 당연히 방패가 되어 줘야지! 오늘의 희생은 잊지 않을게!
방패가 되어 준다고 하지도 않았다만...
이럴 수가! 주인님을 이용하다니 절대 용서 못해요! 받아라~!
어푸푸, 아니 그걸 왜 내 얼굴에 조준해서 쏘냐니까?!
잠깐, 너희들 물총에 뭘 채운 거야?
G41과 C-MS의 격전에 휘말린 통에, 도저히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결국 당겨지고 밀쳐지면서, 나까지 갯벌에 빠지고 말았다.
지휘관? 설마 당신이 이런 애들 장난에 어울릴 줄은 몰랐는걸. 내가 너무 과대평가했나?
물총 들고 잘도 그런 소릴...
잘 들어, 상황 발생이니까 하던 짓 그만두고――
꺄하하하하~!
푸하학! 마, 말 좀 들어!
(저렇게 기운찬 지휘관 나리의 모습은 처음 보는군... 반드시 소재로 삼아야겠소이다! 좀 더... 좀 더 가까이!)
소, 소녀도 참전하겠소!
어째선지 모두가 나를 집중 공격하기 시작했다.
파도를 동반한 물총과 물장구의 세례에, 앞을 제대로 볼 수조차 없게 되었다.
공세가 살짝 더뎌져 겨우 시야가 돌아왔을 땐, 뭔가 콩알만한 것이 얼굴에 날아든 뒤였다.
빠악!
그 단단한 물체는 총알처럼 내 이마에 명중했고, 충격으로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꺄악! 내 단추! 어... 어디로 날아갔지?
내 팔자야...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차가운 파도에 삼켜졌다.
설상가상으로, 해류에 휩쓸려 깊은 곳까지 떠밀렸다. 그리고 몸의 균형을 되찾기도 전에, 딱딱한 무언가에 뒤통수를 세게 부딪혀, 의식을 잃고 말았다...
지휘관님, 주변 상황 확인 끝마쳤습니다. 애들은 진정시키셨나요?
어라...? 지휘관님?
지휘관님 여기 안 오셨어요?
왔어요! 주인님 여기... 어? 주인님? 방금까지 여기 계셨는데!
어디에 숨었구나!
어... 나리는 수영 못하시진 않으오?
할 줄 알든 모르든 지금 딱 보면 무슨 상황인지 파악 안 돼?
지휘관이 물에 빠졌다고!
물에 빠졌어요?
크, 큰일이에요! 바로 구해드릴게요 주인님!
내 최우수 부하가 위험에 빠졌다!
으아아, 파도가 너무 거세오!
(침착하자... 침착하자... 이럴 때일수록 당황하면 안 돼!)
모든 인형에게 전달! 긴급 사태 발생!
지휘관님이 위험합니다! 즉시 제 위치로 집합하세요!
앗, 누가 왔어요!
벌써? 아니야... 저건 적이에요!
하필이면 이럴 때 행차라니, 눈치도 없는 놈들이네.
방금 주변을 수색할 땐 아무 신호도 없었는데...? 우, 우선 요격부터 하죠!
전원, 곧 아군이 집합하니 눈앞의 적부터 제거하세요!
한편, R93과 P38은 여전히 숲속에서 보물을 찾고 있었다.
보물을 찾으러 왔는데, 왜 사라진 동료부터 찾아야 하는 거람...
길은 또 왜 이렇게 울퉁불퉁한데... P38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달려갔지?
물론, 숲속에 혼자인 R93의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바람과 새들의 소리가 대신 들려올 뿐이었다.
시간도 벌써 이렇게... 지금쯤이면 지휘관님도 우리가 말도 없이 사라진 걸 알아챘을지도 몰라.
하아... 이럴 줄 알았으면 P38 놀리지 말걸. 괜히 시간만 낭비하고...
...어?
R93이 투덜거리던 와중, 멀리서 익숙한 비명이 다시 들려왔다. 아까보다 더 창백해진 얼굴로 비명을 지르며 뛰어오는 P38이었다.
<Size=60>R, R93――!!!</Size>
<Size=60>시끄러워!</Size>
살짝 장난친 거 가지고 뭘 그렇게 놀라?!
아니, 그게 아니라! 저저저저기에!
P38을 곧장 R93의 뒤로 숨어, 방금 달려온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에 뭐? 설마, 보물을 찾은 거야?
아니 아니, 그거 말고!
그게 아니면 뭔데?
설마... 정말 유령이라도 본 거야?
괴물! 저기에 바다 괴물이 있어!
바다 괴물..? 에이, 유령 이야기에 비하면야 별거 아니네.
괴담 같은 게 아니야!
진짜 괴물이라고! 정말이야! 방금 밟았는데 흐물흐물해서 엄청 징그러워!
바다 괴물이라니, 그럴 리가...
...잠깐, 정말 바다 괴물이 나타난 거라면, 오히려 좋은 징조잖아?
당장 가보자!
돌아가는 게 아니라?!
뭐라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잖아.
그 왜 있잖아, 전설에 자주 나오는 "보물을 지키는 괴물".
싸우려고?! 그냥 돌아가자!
보기만 할 거야.
하지만 이번엔 정말 행운이 찾아온 것 같은 느낌이야!
바들바들 떨며 울상인 P38의 손을 잡아끌며, R93은 숲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숲 너머는 바위로 가득한 바닷가였다. 빨간 게가 R93의 발치를 지나, 왠지 부자연스러운 해초 더미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해초 더미가 움찔했다.
저거! 저거 저거 저거!
저 해초 더미가?
그냥 해초가 아니야! 괴물이라고!
선수필승이라는데, 해치울까?
적어도 뭔지는 확인해보자.
R93은 그 "바다 괴물"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관찰했다. 생각보다 커다랗고, 해초로 덮이지 않은 부분도 보였다.
전체적인 외형으로 봐선... 괴물이라기보단, 오히려 인간에 가까웠다.
호, 혹시 ELID 아니야?
시선을 교환한 R93과 P38은 괴물에게 자갈을 툭 던져 보았지만, 이번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시 가까이 접근해보려던 찰나, 괴물이 갑자기 꿈틀거리더니, 양손을 뻗어 R93과 P38의 발목을 붙잡았다.
으어어어어억!
<Size=60>와아아아아악!!!</Size>
<Size=60>꺄아아아아악!!!</Size>
기습에 놀란 두 인형은 무기를 뽑아 들 겨를이 없어, 비상 수단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리폰류 CQC였다.
전술인형에겐 무기마저 잃은 절박한 상황에서나 동원할 법한 격투술이지만,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써보겠는가.
그리고 이 바다 괴물은 보기보다 꽤 약한 모양인지, R93과 P38의 반격에 너무나도 손쉽게 쓰러졌다.
헉... 헉...
해... 해치웠나?
일단 급소는 때리지 않았어...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해.
뭐가?
목소리... 왠지 엄청 익숙한 목소리지 않았어?
P38의 말에 R93은 흠칫했다. 방금 들은 목소리를 마인드맵 기록에서 일치하는 음성을 검색한 R93은, 동공이 흔들리면서 입꼬리가 부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추측을 확인하려는 듯이, P38도 나뭇가지를 주워 괴물을 덮고 있는 해초를 슬쩍 들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다.
지, 지휘관님!?
P38은 나뭇가지를 홱 내던지고 지휘관을 부둥켜안았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이런 일이...?
P38...
<Size=60>대체 누가 지휘관님께 이런 짓을!</Size>
<Size=80>너잖아!!!</Size>
즉시 긴급 조치를 취해 지휘관의 안색이 다소 나아진 뒤에야, R93과 P38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우리 모두 당황해서 전력으로 때리진 않았고, 해초가 쿠션 역할도 해 줘서 심각한 부상은 없어.
그런데, 왜 지휘관님이 이런 곳에 쓰러져 계신 거지?
서, 설마 저쪽에 무슨 큰일이라도 났나?
그건 지휘관님이 정신을 차리시면 여쭤보자... 응?
방금 지휘관에게서 뜯어낸 해초 더미 속에, 뭔가 이상한 게 감겨 있었다.
해초와 따개비가 잔뜩 들러붙은 투명 서류 봉투였다. 오랜 세월로 인해 물이 좀 새어 들어가긴 했지만, 방수 처리 덕분에 내용물은 아직 멀쩡했다.
그건, 한 장의 지도였다.
이, 이건?!
......
진짜야, 정말 있나 봐... 행운을 부르는 보물이, 정말로 있나 봐!
행운의 여신이 우리에게 윙크하고 있어!
R93, 눈에서 광선 나오겠다...
P38도 R93이 펼친 지도를 보았다. 바닷물에 불어 글자는 완전히 지워졌지만, 섬의 윤곽과 중앙의 유일하게 선명한 붉은 별표는 알아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