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위험지대
"운명을 비틀긴 비틀었는데... 좋은 쪽이 아니네."
......
따사로운 햇빛이 눈꺼풀을 뚫고 시신경을 찔렀다.
의식이 맑아지고, 다시 파도 소리가 귓가에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눈부신 저 빛을 가리고 싶어도, 팔이 뭔가에 짓눌린 듯 움직이질 않았다.
......
아까도 이런 느낌이 들지 않았나...?
그런 의문이 든 순간, 가슴에 이물질이 가득한 느낌에 격하게 구역질을 하며 눈을 떴다.
지휘관님, 깨어나셨군요!
R93! 지휘관님 정신 차리셨어!
휴우... 다행이에요,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쿨럭쿨럭... R, R93...?
지휘관님, 저부터 부르셔야죠!
아니 넌 왜 그런 걸 신경 쓰고 그래?
잠깐, 난 분명... 뭐가 어떻게 된거지? 여긴 어디고?
아, 저흰 보물을...
P38이랑 같이 섬의 미개발 지역 몇 곳을 조사하고 있었어요!
뭐? 그게 무슨... 아!
네! 미개발 지역을 조사하고 있었어요!
묘하게 짝짜꿍이 맞는 듯 안 맞는 듯한 두 인형을, 딱히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그보단 나 자신의 상태가 문제였다. 온몸이 얼얼한 게, 마치 두들겨 맞은 듯했다. 파도에 휩쓸리면서 바위에 부딪히기라도 한 걸까?
기억나는 의식을 잃기 전의 장면은, 물세례를 받다 어디선가 날아온 콩알만한 무언가에 이마를 맞고, 물살에 뒤통수를 바위에 부딪힌 것이었다.
아야야... 심하게도 부딪혔나 보네.그런데 내가 뭘 하다 파도에 휩쓸렸더라?
내가 얼굴을 찌푸린 걸 보면 P38은 더욱 걱정했다.
괘, 괜찮으세요?
R93, 역시 먼저 지휘관님을 돌려보내야지 않을까?
그럼 너무 늦어!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다고!
맞아, 해변에서 일이 있었지.
어디선가 나타난 적이 해변을 습격했어. 빨리 돌아가야 해...
나 좀 부축해 줄래?
지휘관님!
응?
어...
여, 여긴 길이 많이 복잡하니까, 저희가 안내해드릴게요.
그래? 그럼 부탁해.
잠깐 휴식을 취하고 나니 다시 움직일 만해졌기에, 곧바로 두 인형의 도움을 받으며 숲속으로 향했다.
이곳의 지형은 어제 답사 결과로 본 것과 완전히 달랐다. 길도 구불구불해서, 방향 감각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R93, 이쪽은 돌아가는 길이 아닌데?
당연히 아니지.
지휘관님 몸 상태가 괜찮아 보이긴 하지만, 역시 돌아가는 게...
행운의 보물이 바로 코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여기서 포기하긴 싫어.
그나저나, 그불게에 어느 비치 발리볼 잘하는 인형이 누구누구 씨를 응원하는 글을 올렸던데, 댓글이 아예 없더라?
마, 말하지 말라니까!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확실해졌지? 알았으면 계속 움직이자고.
으응...
그리고, 지휘관님과 함께 보물을 찾아낸다면 지휘관님께도 좋은 일 아니겠어?
일리는 있네...
...너희끼리 눈빛 교환하면서 뭐하니?
도, 돌아가는 길을 확인하는 중이에요!
그래?
그런데 어째 갈수록 길이 험해지는 거 같은데... 너희 정말 여길 지나온 거야?
그, 그게...
그리고, 너희들 뭔가... 음?
내가 질문을 이어가려던 그때, 눈앞에 숲에 완전히 융화되기 직전인 거대한 건물이 나타났다.
차, 찾았다!
찾다니 뭘?
R93가 이상하게 엄청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난 그제서야 그녀의 손에 낡은 지도가 들려 있는 것을 알아챘다.
R93, 손에 그거 뭐야?
R93은 흥분해서 듣지도 못했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지도와 대조했다.
건물은 높은 벽으로 둘러싸였고, 앞에는 정문이 보였다. 양쪽의 이끼로 뒤덮여 있는 건... 군대에서나 쓰이는 표식 같았다.
어라? 예상한 거랑 좀 다른데...?
R93, 잠깐 기다려. 대체 뭐하는 거니?
R93이 중얼거리며 건물에 가까이 다가갔고, 말리려 했지만 때는 늦고 말았다. 벽 위의 작은 장치가 튀어나와, 붉은 빛을 발했다.
이런!
피하기엔 너무 늦었다. 적외선 스캔이 우리를 빠르게 훑었고, 곧이어 귀청이 터질 듯한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아무래도 이곳의 경비 시스템은 건재한 모양이었다.
R93! 당장 여길 벗어나야 해!
R93도 정신을 차리고 돌아와 나를 부축해 건물에서 멀어지려 했다.
하지만 기계음과 함께 땅이 갈라지더니, 아래에서 컨베이어 벨트가 올라와 수많은 자율병기를 뱉어냈다. 바닷가에서 봤던 적과 똑같은 놈들이었다.
오늘은 운이 대체 얼마나 나쁜 거야!?
지휘관님, 포위당한 것 같아요!
진정하고 긴급 구조 요청 보내!
R93은 즉시 신호를 보냈고, P38과 함께 날 바라보며 명령을 기다렸다.
다른 애들이 신호를 받고 올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보자고...
고요하던 숲은 총성으로 시끄러워졌다.
휴가나 다름없다는 의뢰를 받아 왔더니 난데없이 습격을 받고, 인형들의 지나친 장난에 휘말려 바다에 빠지고, 지금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라니...
돌아가면 카리나한테 임무 평가를 좀 더 꼼꼼하게 하라고 해야겠다.
지금으로서 확실한 점은, 해변에서 봤던 자율병기도 다 저 버려진 군수공장에서 생산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연유에서인지, 경비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설계 한번 튼튼하다 해야 할지, 자신의 불행함을 한탄해야 할지...
적의 사격이 잦아든 틈을 타 나도 고개를 내밀어 응수했지만, R93과 P38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의 지원 사격이었다.
뭐야, 왜 날 쫓아오는 건 항상 멀쩡한 팬이 아니냐고!
난 그저 평범하게 인기를 누리고 싶단 말이야!
그 "평범한 인기"란 개념이 대체 뭔데!?
재수없게 총에 맞기 싫으면 정신 똑바로 차려! 안 그래도 더미를 몇 기 안 데려왔는데!
보물 찾다 이런 일이 생길 줄 누가 알았겠어!
잠깐, 지금 뭐라고?
아... 그, 그게... 운이 좋으면 뭐라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R93의 기어들어가는 변명은 금세 총소리에 묻혀 버렸다.
하지만 녀석들이 이런 데에 뭘 하러 왔는지는 똑똑히 들었다. 너무나 황당한 이유였기에,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이거 아까 네가 말한 그 상황 아니야?
보물을 지키는 괴물들. 어쩌면 정말 보물이 가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보물? 지금 같은 정신없는 상황만 아니었다면 아마 배꼽 빠지게 웃었을 것이다.
이대로는 못 버티겠는데... 아, 저기로 들어가자!
들어가다니, 어디를요?
놈들 뒤의 저 공장!
방금 전부터 저 안에서는 아무 움직임이 없었어! 분명 방어 체계는 외부에만 배치되어 있는 거겠지!
여길 돌파할 수 없다면, 적어도 포위만큼은 당해선 안 돼!
하지만 그러면 퇴로가 아예 없어지는데요?!
지휘관님 말씀이 맞아, 지금 우린 어떻게든 시간을 더 벌어야 해! 들어갈 수밖에 없어!
R93이 연속 사격으로 자율병기 몇 대를 파괴해 틈을 만들었고, 우리는 서로를 엄호하며 군수공장 앞까지 내달렸다.
가까이서 보니, 굳게 닫힌 줄 알았던 정문은 딱 사람 한 명이 통과할 수 있을 만큼만 열려 있었다.
운이 좋군. R93은 후방 차단하고, P38!
넵!
적의 화력을 다소 제압하면서 공장 내부로 진입했다. 그리고 문에서 약간 멀어졌을 때, 유탄이 날아들어 우리가 있었던 위치에서 폭발했다.
낡은 철문은 폭발에 일그러졌고, 벌어진 그 틈으로 바깥의 자율병기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기 병기 재고가 대체 얼마나 되는 거야, 끝이 없잖아!
R93, 감제고지로 삼을 만한 위치 찾아! 탄은 최대한 절약하고!
네!
지휘관님! 여기서도 더는 못 버텨요!
쳇...!
차고로 이동한다!
적은 점점 우리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차고는 복잡하지 않았지만, 2층으로 물러나고 보니 유일한 길은 복도뿐이었고, 그마저도 벌써 벽에 가로막혔다.
왜 이런 곳에 벽이 있는 거야?!
길이 완전히 막혔잖아!
재수 참 없네! 나도 탄창 몇 개 안 남았어!
지, 지휘관님!
당황하지 마, 내가 방법을 찾아볼게!
엄폐물 뒤로 숨느라 주변을 자세히 파악할 순 없었지만, 뒤쪽의 바닥에 레일이 깔려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레일... 레일이라...
길을 가로막은 강철벽은, 벽이 아니라 거대한 차단문이었다. 그리고 한 켠에 작은 제어실이 보였다.
좋아, 저거다.
R93, 엄호!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나는 R93의 엄호 사격을 받으며 포복 전진으로 차단문 옆 제어실로 들어갔다.
제어 패널은 60년은 더 된 물건이었고, 컴퓨터도 아주 낡은 모델이었다. 카리나만큼 손재주가 좋진 않지만, 그래도 시도해봐야 했다.
문에서 벽을 타고 날아드는 눈먼탄을 신경쓸 겨를도 없이, 나는 눈앞의 패널의 전원을 켰다. 그러자 스피커에서 소리가 났다.
공장 제어 시스템 가동. 시스템 점검 중...
메인 발전기 고장! 메인 발전기 고장!
태양광 전원으로 전환합니다. 잔여 전력 31%.
오류 코드 E-R-0694. 정비부에 연락하여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태양광이라... 그래서 저것들이 움직이는 거였군.
문을 열려면... 이건가?
제어판에서 유독 눈에 띄는 레버를 올리자, 다시 방송이 흘러나왔다.
잠금 장치 해제.
수송 통로가 열립니다.
바깥의 복도에서 노란 경고등이 빛났고, 찢어지는 기계음과 함께 차단문도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됐다!
차단문이 열리자, 끈질기게 쫓아오던 자율 병기들이 돌연 행동을 멈추곤 대열을 이루어 복도를 빠져나갔다.
어라?
저 녀석들... 도망친 건가?
대단해요 지휘관님!
아니, 내가 한 게 아니야.
이 복도는 수송 통로였어. 아무래도 저놈들은 이제 여길 지나갈 물건에게 길을 비킨 거겠지.
지나갈... 물건이요?
P38의 물음에 대답하듯, 다시 방송이 나왔다.
탄약 장전 완료.
구동부 점검 완료.
화기 관제 시스템 가동.
경고. 모의 실전 테스트가 곧 시작됩니다.
적어도, 좋은 물건은 아니겠지.
제어실에서 나와, 두 인형과 함께 활짝 열린 차단문의 안쪽을 살펴보았다. 어두컴컴한 복도의 끝에서 괴기한 붉은 빛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고, 육중한 동력 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하아... 행운은 무슨...
R93이 유난히 손을 부들부들 떨며 선글라스를 만졌다.
지, 지휘관님...
빨리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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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사로운 햇빛이 눈꺼풀을 뚫고 시신경을 찔렀다.
의식이 맑아지고, 다시 파도 소리가 귓가에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눈부신 저 빛을 가리고 싶어도, 팔이 뭔가에 짓눌린 듯 움직이질 않았다.
......
아까도 이런 느낌이 들지 않았나...?
그런 의문이 든 순간, 가슴에 이물질이 가득한 느낌에 격하게 구역질을 하며 눈을 떴다.
지휘관님, 깨어나셨군요!
R93! 지휘관님 정신 차리셨어!
휴우... 다행이에요,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쿨럭쿨럭... R, R93...?
지휘관님, 저부터 부르셔야죠!
아니 넌 왜 그런 걸 신경 쓰고 그래?
잠깐, 난 분명... 뭐가 어떻게 된거지? 여긴 어디고?
아, 저흰 보물을...
P38이랑 같이 섬의 미개발 지역 몇 곳을 조사하고 있었어요!
뭐? 그게 무슨... 아!
네! 미개발 지역을 조사하고 있었어요!
묘하게 짝짜꿍이 맞는 듯 안 맞는 듯한 두 인형을, 딱히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그보단 나 자신의 상태가 문제였다. 온몸이 얼얼한 게, 마치 두들겨 맞은 듯했다. 파도에 휩쓸리면서 바위에 부딪히기라도 한 걸까?
기억나는 의식을 잃기 전의 장면은, 물세례를 받다 어디선가 날아온 콩알만한 무언가에 이마를 맞고, 물살에 뒤통수를 바위에 부딪힌 것이었다.
아야야... 심하게도 부딪혔나 보네.그런데 내가 뭘 하다 파도에 휩쓸렸더라?
내가 얼굴을 찌푸린 걸 보면 P38은 더욱 걱정했다.
괘, 괜찮으세요?
<color=#A9A9A9>R93, 역시 먼저 지휘관님을 돌려보내야지 않을까?</color>
<color=#A9A9A9>그럼 너무 늦어!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다고!</color>
맞아, 해변에서 일이 있었지.
어디선가 나타난 적이 해변을 습격했어. 빨리 돌아가야 해...
나 좀 부축해 줄래?
지휘관님!
응?
어...
여, 여긴 길이 많이 복잡하니까, 저희가 안내해드릴게요.
그래? 그럼 부탁해.
잠깐 휴식을 취하고 나니 다시 움직일 만해졌기에, 곧바로 두 인형의 도움을 받으며 숲속으로 향했다.
이곳의 지형은 어제 답사 결과로 본 것과 완전히 달랐다. 길도 구불구불해서, 방향 감각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color=#A9A9A9>R93, 이쪽은 돌아가는 길이 아닌데?</color>
<color=#A9A9A9>당연히 아니지.</color>
<color=#A9A9A9>지휘관님 몸 상태가 괜찮아 보이긴 하지만, 역시 돌아가는 게...</color>
<color=#A9A9A9>행운의 보물이 바로 코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여기서 포기하긴 싫어.</color>
<color=#A9A9A9>그나저나, 그불게에 어느 비치 발리볼 잘하는 인형이 누구누구 씨를 응원하는 글을 올렸던데, 댓글이 아예 없더라?</color>
<color=#A9A9A9>마, 말하지 말라니까!</color>
<color=#A9A9A9>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확실해졌지? 알았으면 계속 움직이자고.</color>
<color=#A9A9A9>으응...</color>
<color=#A9A9A9>그리고, 지휘관님과 함께 보물을 찾아낸다면 지휘관님께도 좋은 일 아니겠어?</color>
<color=#A9A9A9>일리는 있네...</color>
...너희끼리 눈빛 교환하면서 뭐하니?
도, 돌아가는 길을 확인하는 중이에요!
그래?
그런데 어째 갈수록 길이 험해지는 거 같은데... 너희 정말 여길 지나온 거야?
그, 그게...
그리고, 너희들 뭔가... 음?
내가 질문을 이어가려던 그때, 눈앞에 숲에 완전히 융화되기 직전인 거대한 건물이 나타났다.
차, 찾았다!
찾다니 뭘?
R93가 이상하게 엄청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난 그제서야 그녀의 손에 낡은 지도가 들려 있는 것을 알아챘다.
R93, 손에 그거 뭐야?
R93은 흥분해서 듣지도 못했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지도와 대조했다.
건물은 높은 벽으로 둘러싸였고, 앞에는 정문이 보였다. 양쪽의 이끼로 뒤덮여 있는 건... 군대에서나 쓰이는 표식 같았다.
어라? 예상한 거랑 좀 다른데...?
R93, 잠깐 기다려. 대체 뭐하는 거니?
R93이 중얼거리며 건물에 가까이 다가갔고, 말리려 했지만 때는 늦고 말았다. 벽 위의 작은 장치가 튀어나와, 붉은 빛을 발했다.
<color=#A9A9A9>이런!</color>
피하기엔 너무 늦었다. 적외선 스캔이 우리를 빠르게 훑었고, 곧이어 귀청이 터질 듯한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아무래도 이곳의 경비 시스템은 건재한 모양이었다.
R93! 당장 여길 벗어나야 해!
R93도 정신을 차리고 돌아와 나를 부축해 건물에서 멀어지려 했다.
하지만 기계음과 함께 땅이 갈라지더니, 아래에서 컨베이어 벨트가 올라와 수많은 자율병기를 뱉어냈다. 바닷가에서 봤던 적과 똑같은 놈들이었다.
오늘은 운이 대체 얼마나 나쁜 거야!?
지휘관님, 포위당한 것 같아요!
진정하고 긴급 구조 요청 보내!
R93은 즉시 신호를 보냈고, P38과 함께 날 바라보며 명령을 기다렸다.
다른 애들이 신호를 받고 올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보자고...
고요하던 숲은 총성으로 시끄러워졌다.
휴가나 다름없다는 의뢰를 받아 왔더니 난데없이 습격을 받고, 인형들의 지나친 장난에 휘말려 바다에 빠지고, 지금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라니...
돌아가면 카리나한테 임무 평가를 좀 더 꼼꼼하게 하라고 해야겠다.
지금으로서 확실한 점은, 해변에서 봤던 자율병기도 다 저 버려진 군수공장에서 생산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연유에서인지, 경비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설계 한번 튼튼하다 해야 할지, 자신의 불행함을 한탄해야 할지...
적의 사격이 잦아든 틈을 타 나도 고개를 내밀어 응수했지만, R93과 P38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의 지원 사격이었다.
뭐야, 왜 날 쫓아오는 건 항상 멀쩡한 팬이 아니냐고!
난 그저 평범하게 인기를 누리고 싶단 말이야!
그 "평범한 인기"란 개념이 대체 뭔데!?
재수없게 총에 맞기 싫으면 정신 똑바로 차려! 안 그래도 더미를 몇 기 안 데려왔는데!
보물 찾다 이런 일이 생길 줄 누가 알았겠어!
잠깐, 지금 뭐라고?
아... 그, 그게... 운이 좋으면 뭐라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R93의 기어들어가는 변명은 금세 총소리에 묻혀 버렸다.
하지만 녀석들이 이런 데에 뭘 하러 왔는지는 똑똑히 들었다. 너무나 황당한 이유였기에,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이거 아까 네가 말한 그 상황 아니야?
보물을 지키는 괴물들. 어쩌면 정말 보물이 가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보물? 지금 같은 정신없는 상황만 아니었다면 아마 배꼽 빠지게 웃었을 것이다.
이대로는 못 버티겠는데... 아, 저기로 들어가자!
들어가다니, 어디를요?
놈들 뒤의 저 공장!
방금 전부터 저 안에서는 아무 움직임이 없었어! 분명 방어 체계는 외부에만 배치되어 있는 거겠지!
여길 돌파할 수 없다면, 적어도 포위만큼은 당해선 안 돼!
하지만 그러면 퇴로가 아예 없어지는데요?!
지휘관님 말씀이 맞아, 지금 우린 어떻게든 시간을 더 벌어야 해! 들어갈 수밖에 없어!
R93이 연속 사격으로 자율병기 몇 대를 파괴해 틈을 만들었고, 우리는 서로를 엄호하며 군수공장 앞까지 내달렸다.
가까이서 보니, 굳게 닫힌 줄 알았던 정문은 딱 사람 한 명이 통과할 수 있을 만큼만 열려 있었다.
운이 좋군. R93은 후방 차단하고, P38!
넵!
적의 화력을 다소 제압하면서 공장 내부로 진입했다. 그리고 문에서 약간 멀어졌을 때, 유탄이 날아들어 우리가 있었던 위치에서 폭발했다.
낡은 철문은 폭발에 일그러졌고, 벌어진 그 틈으로 바깥의 자율병기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기 병기 재고가 대체 얼마나 되는 거야, 끝이 없잖아!
R93, 감제고지로 삼을 만한 위치 찾아! 탄은 최대한 절약하고!
네!
지휘관님! 여기서도 더는 못 버텨요!
쳇...!
차고로 이동한다!
적은 점점 우리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차고는 복잡하지 않았지만, 2층으로 물러나고 보니 유일한 길은 복도뿐이었고, 그마저도 벌써 벽에 가로막혔다.
왜 이런 곳에 벽이 있는 거야?!
길이 완전히 막혔잖아!
재수 참 없네! 나도 탄창 몇 개 안 남았어!
지, 지휘관님!
당황하지 마, 내가 방법을 찾아볼게!
엄폐물 뒤로 숨느라 주변을 자세히 파악할 순 없었지만, 뒤쪽의 바닥에 레일이 깔려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레일... 레일이라...
길을 가로막은 강철벽은, 벽이 아니라 거대한 차단문이었다. 그리고 한 켠에 작은 제어실이 보였다.
좋아, 저거다.
R93, 엄호!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나는 R93의 엄호 사격을 받으며 포복 전진으로 차단문 옆 제어실로 들어갔다.
제어 패널은 60년은 더 된 물건이었고, 컴퓨터도 아주 낡은 모델이었다. 카리나만큼 손재주가 좋진 않지만, 그래도 시도해봐야 했다.
문에서 벽을 타고 날아드는 눈먼탄을 신경쓸 겨를도 없이, 나는 눈앞의 패널의 전원을 켰다. 그러자 스피커에서 소리가 났다.
<color=#00CCFF>공장 제어 시스템 가동. 시스템 점검 중...</co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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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이라... 그래서 저것들이 움직이는 거였군.
문을 열려면... 이건가?
제어판에서 유독 눈에 띄는 레버를 올리자, 다시 방송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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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00CCFF>수송 통로가 열립니다.</color>
바깥의 복도에서 노란 경고등이 빛났고, 찢어지는 기계음과 함께 차단문도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됐다!
차단문이 열리자, 끈질기게 쫓아오던 자율 병기들이 돌연 행동을 멈추곤 대열을 이루어 복도를 빠져나갔다.
어라?
저 녀석들... 도망친 건가?
대단해요 지휘관님!
아니, 내가 한 게 아니야.
이 복도는 수송 통로였어. 아무래도 저놈들은 이제 여길 지나갈 물건에게 길을 비킨 거겠지.
지나갈... 물건이요?
P38의 물음에 대답하듯, 다시 방송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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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00CCFF>구동부 점검 완료.</co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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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좋은 물건은 아니겠지.
제어실에서 나와, 두 인형과 함께 활짝 열린 차단문의 안쪽을 살펴보았다. 어두컴컴한 복도의 끝에서 괴기한 붉은 빛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고, 육중한 동력 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하아... 행운은 무슨...
R93이 유난히 손을 부들부들 떨며 선글라스를 만졌다.
지, 지휘관님...
빨리 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