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천담화
"그래서 그녀는 그들에게 의미 깊은 극장에서 죽기로 다짐했어."
.........
달려야 한다. 멈춰서는 안 된다.
머릿속에는 오직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 생각만으로 지저분한 거리를 미친 듯이 달렸고, 내딛는 발에 바닥의 더러운 물웅덩이가 사방으로 튀겼다.
저 뒤에서 쫓아오는 살벌한 목소리들에게서 도망쳐야 했다.
잡아라――!!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사기꾼 년! 잡아라!!
분노로 가득 찬 고함이 귓가에 울렸다.
숨이 턱에 차오르고 다리는 점점 무거워져 갔건만, 거리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가씨, 이쪽이요!
어두운 골목에서 손 한 쌍이 불쑥 뻗어나와, 나의 손을 붙잡았다.
인간의 손과 차이가 거의 없음에도 그것이 인형의 손인 것을 깨달았다.
누구지? 날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지?
빨리, 더 빨리요!
끊어질 것만 같은 다리를 다시 움직였다.
인형의 안내를 따라 나는 어디론가 달렸고, 눈앞의 빛은 점점 눈부셔져 가...
핼러윈 전날 밤, 어느 외딴곳의 개인 요양원.
후두토 씨, 깨셨나요?
으음...? 책을 읽다 잠들었나...
고요한 창밖에 순간 번개가 번쩍이더니, 소나기가 쏟아졌다.
돌보미 인형은 즉시 하던 일을 멈추고 창문을 닫았다.
비가 갑자기 엄청 내리네요!
......
꿈에서 본 것과 똑같은 폭우.
후두토는 방금까지 꾸었던 꿈을 다시 떠올렸다.
난폭하게 고함을 지르며 뒤쫓아오던 무리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자, 그 생생함에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십니까?
실례합니다, 그리폰의 전술인형 TAC-50이라고 합니다.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던 중 폭우에 내비게이션 기능이 고장 났는데, 때마침 이곳을 발견해서요.
지금 에너지 잔량도 위험해서... 폐가 안 된다면 잠깐 쉬었다 가도 될까요? 이용료도 지불하겠습니다!
어떡할까요, 후두토 씨?
꿈속에서, 어두운 골목에서 두 손이 뻗어나와 자신의 손을 붙잡았었다.
그건 인형의 손이었다.
인형이라...
인간이든 인형이든, 핼러윈을 즐겁게 보낼 권리가 있지.
밖에 비도 저렇게 쏟아지니 들어오라 해.
알겠습니다. TAC-50 씨, 들어오십시오.
후두토 씨라고 하셨나요? 정말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충전 포트는 저쪽에 있어요.
식탁에 사탕도 있으니 원한다면 드셔도 됩니다.
네, 정말 감사드려요.
꾸벅 인사하고 충전 포트로 향하는 TAC-50을 보며, 후두토는 목소리를 낮추고 돌보미 인형에게 당부했다.
저 인형 잘 지켜 보고, 충전 끝나면 바로 떠나게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후두토는 서재로 들어가, 읽다 만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저, 안녕하세요. 이 포트가 맞나요?
네, 이걸 쓰시면 됩니다.
고마워요.
TAC-50는 안도하며 충전 케이블을 포트에 꽂았다.
"세상 끝에 있는 이 농장에..."
"깊은 밤마다 유령의 탄식이 들리네..."
"방심하지 말고 낯선 이를 조심하시오."
"그림자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니."
그 노랫소리에 책장을 넘기던 후두토의 손이 멈췄다.
음? 이 소리는 뭐죠?
아, 이거요? IOP가 최근에 업데이트로 추가한 충전 알림음 기능인데, 저희 기지에서 엄청 유행 중이에요.
당신도 IOP제죠? 업데이트하면 설정할 수 있을 거예요.
오오... 한번 해볼게요!
돌보미 인형은 들뜬 마음으로 자신도 포트에 연결했다.
...아까워라, 역시 전 해당 업데이트가 없네요.
그런데, 당신의 알림음은 노래인가요? 왠지 익숙하던데...
네, 제가 엄청 좋아하는 뮤지컬 "나비의 고치"의 곡이에요.
아~ 어쩐지 익숙하더라니, 후두토 씨가――
크흠!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 그나저나,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렸나 봐요. 비가 아직도 쏟아지네요.
돌보미 인형이 난처해하자, TAC-50은 눈치 있게 화제를 돌렸다.
그, 그렇죠? 아까까지만 해도 건조하고 시원했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고, 요즘 날씨가 참 이상하네요.
정말이지, 일기예보는 믿을 게 못 된다니까요...
당신의 기지는 대략 어디쯤에 있나요? 제가 근방의 지리를 잘 아는데, 방향에 맞는 지름길이 있을지도 몰라요.
음... 말씀은 감사하지만, 곧장 복귀하던 길이 아니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를 추모하러 갈 생각이었거든요.
폭우에 흠뻑 젖은 TAC-50이 망토를 열어, 다치지 않도록 감싼 꽃다발을 보여 주었다.
활짝 핀 붉은 장미는 피처럼 선명한 색에 타오르는 불꽃 같은 모양새였다.
붉은 장미네요? 정말 아름답네요...
그런데, 붉은 장미가 조화로 쓰이던가요?
보통은 아니지만, 그 배우가 생전에 붉은 장미를 좋아했거든요.
고개까지 돌리진 않았지만, 후두토는 서재에 앉은 채로 가만히 인형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혹시 추모한다는 배우가...?
파사두 씨요, "나비의 고치"로 유명한 그분 맞아요.
아하, 역시 그랬군요. 저도 파사두 씨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공연을 직접 관람하지 못해 정말 아쉬워요. 무척이나 훌륭한 뮤지컬 배우였다던데.
연기만큼이나 애틋한 인생으로 유명했다고...
맞아요. 뮤지컬의 무대를 오르내리는 사람은 수없이 많지만,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은 손에 꼽죠.
파사두 씨는 세상을 떠난 지 1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도 구설수에 오를 정도예요.
정말로요?
하아, 이곳은 외딴곳인지라 그런 이야기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어서 말이죠. 요즘 세간에선 뭐라 하나요?
후두토는 어느새 소리 없이 서재의 문 앞까지 몸을 옮겨, TAC-50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으음... 이걸 어찌 설명하면 좋을지...
말하기엔 영 거북한 내용인가요?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그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어서요.
방금 TAC-50이 난처해하던 자신의 눈치를 봐 준 것을 떠올리며, 돌보미 인형은 아는 듯 모르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 어색한 화제를 끝내기로 했다.
그럼, 모처럼만의 손님이신데 바깥의 다른 이야기를 더 해 주실 수 있나요?
네? 아, 물론이죠. 얼마든지요.
하지만 이를 엿듣던 후두토의 안색은 어두워졌고, 결국 참지 못하고 서재 밖으로 나왔다.
아가씨...?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내 정신 좀 봐, 전술인형도 못 견딜 정도로 비가 내리는데 마당의 꽃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어.
아! 죄송합니다, 당장 안으로 들여 놓을게요!
돌보미 인형은 헐레벌떡 여전히 폭우가 쏟아지는 바깥으로 나갔다.
그런데, 둘이서 얘기하던 중이었나요? 중요한 때에 끊은 게 아니면 좋겠는데.
아뇨, 별거 아니에요, 후두토 씨.
그냥 제가 좋아하는 배우 파사두 씨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호오?
와아, 당신도 그분을 아시는군요.
어...? 저기, 갑자기 실례되는 질문이라는 건 알지만...
후두토 씨, 파사두 씨와 많이 닮으셨네요...? 혹시 친척분 되시나요?
아하하, 무슨 말씀을! 그 사람은 유명인이잖아요.
많이 닮았단 소릴 많이 듣긴 했지만 친척도 뭣도 아니에요. 전 그 사람 같은 카리스마도 없을 뿐더러, 신이 내린 목소리도 아닌걸요.
그렇군요... 무심코 기대해 버렸어요.
정말 파사두를 좋아하는군요...
밤이라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잠깐 이야기나 할까요? 저 아이가 말했을 테지만 정말 오랜만의 손님이라서.
네! 저야 좋죠, 다른 사람과 파사두 씨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니 정말 기뻐요!
잠시 후, 후두토의 침실.
단출하게 병실처럼 꾸며진 침실에 들어서자, TAC-50는 소독약의 냄새를 맡았다.
후두토 씨, 어디 편찮으시군요?
몸이 좀 안 좋아요. 의사 선생님이 안정을 취하라 해서, 이렇게 외딴곳까지 이사 오게 됐답니다.
아하...
TAC-50은 후두토를 부축해 침대에 눕히면서, 세심하게 베개도 머리 밑에 받쳐 주었다.
친절하셔라,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아까 둘이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요?
파사두 씨가 생전에 좋아했던 붉은 장미랑, 그분의 대표작에 대해서요.
그리고... 파사두 씨는 세상을 떠난 뒤에도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리고 있다고도 했죠.
후두토 씨도 뮤지컬 좋아하시나요?
네, 좋아하는 편이에요. 언제부터였는진 모르겠지만요.
"나비의 고치" 공연도 관람한 적 있죠.
당신의 충전 알림음도 그 뮤지컬의 것이죠?
네, "나비의 고치" 공연이 엄청 마음에 와닿거든요.
파사두 씨가 그 극에서 연기했던 아내 역할이 정말 멋졌어요.
노래가 감동적일 뿐만 아니라, 모든 감정선의 연기에 생동감이 넘쳤죠.
하지만 "나비 고치"의 표는 구하기 어려웠을 텐데요?
제 기억이 맞다면, 공연마다 표가 순식간에 매진된 걸로 알아요.
그야 파사두 씨의 대표작이니까요.
과거부터 지금까지, 파사두 씨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계세요.
분명 미래에도, 파사두 씨는 세간에서 잊혀지지 않을 거예요.
그걸 어떻게 장담하나요? 소식이 끊긴 지 꽤 오래 됐잖아요, 그러니까...
...작년 핼러윈 전날 밤, 파사두 씨의 은퇴 공연 도중 일어난 화재 사건. 후두토 씨도 아세요?
뉴스에서 떠들어댄 만큼은요.
당시, 파사두 씨는 건강 문제로 점점 공연 횟수가 뜸해졌죠.
그때 "제인 도"라는 배우가 그 기회에 파사두 씨를 대신해 무대에 올라, 점점 극장의 지배인이자 그분의 남편이었던 알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해요.
아... 기억나네요, 그 일로 언론이 시끄러웠죠.
하지만 파사두를 완전히 대신하긴 불가능해서, 그 제인 도란 사람은 아예 파사두처럼 성형한 뒤 그녀를 살해하려 했다고 했던가요?
불쌍한 파사두 씨... 진실을 알곤 은퇴 공연에서, 무대 위에서 자신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그 순간 죽기로 결심하셨을 거예요.
하지만 불행히도 알라가 파사두 씨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고, 제인 도는 그대로 모습을 감춰 버렸다...
참 나쁜 여자네요.
...라는 추측이, 여태까지는 정설이었어요.
음...? 그 말인즉슨, 신빙성 있는 다른 추측이 나왔다는 뜻인가요?
네...
어디서 시작됐는진 알 수 없지만, 최근에 그런 주장이...
하지만 그건 파사두 씨를 완전히 부정하는 관점이라, 들을 때마다 속상해요...
TAC-50은 슬픈 얼굴로 창밖을 바라봤다. 아직도 멈출 기미가 없는 비가 그녀 대신 유리창에 눈물 줄기를 남겼다.
...어떤 주장인데요?
애써 침착하게 되물으며, 후두토는 필사적으로 요동치는 마음을 억눌렀다. 주먹 쥔 손의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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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야 한다. 멈춰서는 안 된다.
머릿속에는 오직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 생각만으로 지저분한 거리를 미친 듯이 달렸고, 내딛는 발에 바닥의 더러운 물웅덩이가 사방으로 튀겼다.
저 뒤에서 쫓아오는 살벌한 목소리들에게서 도망쳐야 했다.
잡아라――!!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사기꾼 년! 잡아라!!
분노로 가득 찬 고함이 귓가에 울렸다.
숨이 턱에 차오르고 다리는 점점 무거워져 갔건만, 거리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가씨, 이쪽이요!
어두운 골목에서 손 한 쌍이 불쑥 뻗어나와, 나의 손을 붙잡았다.
인간의 손과 차이가 거의 없음에도 그것이 인형의 손인 것을 깨달았다.
누구지? 날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지?
빨리, 더 빨리요!
끊어질 것만 같은 다리를 다시 움직였다.
인형의 안내를 따라 나는 어디론가 달렸고, 눈앞의 빛은 점점 눈부셔져 가...
핼러윈 전날 밤, 어느 외딴곳의 개인 요양원.
후두토 씨, 깨셨나요?
으음...? 책을 읽다 잠들었나...
고요한 창밖에 순간 번개가 번쩍이더니, 소나기가 쏟아졌다.
돌보미 인형은 즉시 하던 일을 멈추고 창문을 닫았다.
비가 갑자기 엄청 내리네요!
......
꿈에서 본 것과 똑같은 폭우.
후두토는 방금까지 꾸었던 꿈을 다시 떠올렸다.
난폭하게 고함을 지르며 뒤쫓아오던 무리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자, 그 생생함에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십니까?
실례합니다, 그리폰의 전술인형 TAC-50이라고 합니다.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던 중 폭우에 내비게이션 기능이 고장 났는데, 때마침 이곳을 발견해서요.
지금 에너지 잔량도 위험해서... 폐가 안 된다면 잠깐 쉬었다 가도 될까요? 이용료도 지불하겠습니다!
어떡할까요, 후두토 씨?
꿈속에서, 어두운 골목에서 두 손이 뻗어나와 자신의 손을 붙잡았었다.
그건 인형의 손이었다.
인형이라...
인간이든 인형이든, 핼러윈을 즐겁게 보낼 권리가 있지.
밖에 비도 저렇게 쏟아지니 들어오라 해.
알겠습니다. TAC-50 씨, 들어오십시오.
후두토 씨라고 하셨나요? 정말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충전 포트는 저쪽에 있어요.
식탁에 사탕도 있으니 원한다면 드셔도 됩니다.
네, 정말 감사드려요.
꾸벅 인사하고 충전 포트로 향하는 TAC-50을 보며, 후두토는 목소리를 낮추고 돌보미 인형에게 당부했다.
저 인형 잘 지켜 보고, 충전 끝나면 바로 떠나게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후두토는 서재로 들어가, 읽다 만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저, 안녕하세요. 이 포트가 맞나요?
네, 이걸 쓰시면 됩니다.
고마워요.
TAC-50는 안도하며 충전 케이블을 포트에 꽂았다.
"세상 끝에 있는 이 농장에..."
"깊은 밤마다 유령의 탄식이 들리네..."
"방심하지 말고 낯선 이를 조심하시오."
"그림자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니."
그 노랫소리에 책장을 넘기던 후두토의 손이 멈췄다.
음? 이 소리는 뭐죠?
아, 이거요? IOP가 최근에 업데이트로 추가한 충전 알림음 기능인데, 저희 기지에서 엄청 유행 중이에요.
당신도 IOP제죠? 업데이트하면 설정할 수 있을 거예요.
오오... 한번 해볼게요!
돌보미 인형은 들뜬 마음으로 자신도 포트에 연결했다.
...아까워라, 역시 전 해당 업데이트가 없네요.
그런데, 당신의 알림음은 노래인가요? 왠지 익숙하던데...
네, 제가 엄청 좋아하는 뮤지컬 "나비의 고치"의 곡이에요.
아~ 어쩐지 익숙하더라니, 후두토 씨가――
크흠!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 그나저나,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렸나 봐요. 비가 아직도 쏟아지네요.
돌보미 인형이 난처해하자, TAC-50은 눈치 있게 화제를 돌렸다.
그, 그렇죠? 아까까지만 해도 건조하고 시원했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고, 요즘 날씨가 참 이상하네요.
정말이지, 일기예보는 믿을 게 못 된다니까요...
당신의 기지는 대략 어디쯤에 있나요? 제가 근방의 지리를 잘 아는데, 방향에 맞는 지름길이 있을지도 몰라요.
음... 말씀은 감사하지만, 곧장 복귀하던 길이 아니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를 추모하러 갈 생각이었거든요.
폭우에 흠뻑 젖은 TAC-50이 망토를 열어, 다치지 않도록 감싼 꽃다발을 보여 주었다.
활짝 핀 붉은 장미는 피처럼 선명한 색에 타오르는 불꽃 같은 모양새였다.
붉은 장미네요? 정말 아름답네요...
그런데, 붉은 장미가 조화로 쓰이던가요?
보통은 아니지만, 그 배우가 생전에 붉은 장미를 좋아했거든요.
고개까지 돌리진 않았지만, 후두토는 서재에 앉은 채로 가만히 인형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혹시 추모한다는 배우가...?
파사두 씨요, "나비의 고치"로 유명한 그분 맞아요.
아하, 역시 그랬군요. 저도 파사두 씨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공연을 직접 관람하지 못해 정말 아쉬워요. 무척이나 훌륭한 뮤지컬 배우였다던데.
연기만큼이나 애틋한 인생으로 유명했다고...
맞아요. 뮤지컬의 무대를 오르내리는 사람은 수없이 많지만,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은 손에 꼽죠.
파사두 씨는 세상을 떠난 지 1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도 구설수에 오를 정도예요.
정말로요?
하아, 이곳은 외딴곳인지라 그런 이야기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어서 말이죠. 요즘 세간에선 뭐라 하나요?
후두토는 어느새 소리 없이 서재의 문 앞까지 몸을 옮겨, TAC-50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으음... 이걸 어찌 설명하면 좋을지...
말하기엔 영 거북한 내용인가요?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그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어서요.
방금 TAC-50이 난처해하던 자신의 눈치를 봐 준 것을 떠올리며, 돌보미 인형은 아는 듯 모르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 어색한 화제를 끝내기로 했다.
그럼, 모처럼만의 손님이신데 바깥의 다른 이야기를 더 해 주실 수 있나요?
네? 아, 물론이죠. 얼마든지요.
하지만 이를 엿듣던 후두토의 안색은 어두워졌고, 결국 참지 못하고 서재 밖으로 나왔다.
아가씨...?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내 정신 좀 봐, 전술인형도 못 견딜 정도로 비가 내리는데 마당의 꽃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어.
아! 죄송합니다, 당장 안으로 들여 놓을게요!
돌보미 인형은 헐레벌떡 여전히 폭우가 쏟아지는 바깥으로 나갔다.
그런데, 둘이서 얘기하던 중이었나요? 중요한 때에 끊은 게 아니면 좋겠는데.
아뇨, 별거 아니에요, 후두토 씨.
그냥 제가 좋아하는 배우 파사두 씨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호오?
와아, 당신도 그분을 아시는군요.
어...? 저기, 갑자기 실례되는 질문이라는 건 알지만...
후두토 씨, 파사두 씨와 많이 닮으셨네요...? 혹시 친척분 되시나요?
아하하, 무슨 말씀을! 그 사람은 유명인이잖아요.
많이 닮았단 소릴 많이 듣긴 했지만 친척도 뭣도 아니에요. 전 그 사람 같은 카리스마도 없을 뿐더러, 신이 내린 목소리도 아닌걸요.
그렇군요... 무심코 기대해 버렸어요.
정말 파사두를 좋아하는군요...
밤이라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잠깐 이야기나 할까요? 저 아이가 말했을 테지만 정말 오랜만의 손님이라서.
네! 저야 좋죠, 다른 사람과 파사두 씨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니 정말 기뻐요!
잠시 후, 후두토의 침실.
단출하게 병실처럼 꾸며진 침실에 들어서자, TAC-50는 소독약의 냄새를 맡았다.
후두토 씨, 어디 편찮으시군요?
몸이 좀 안 좋아요. 의사 선생님이 안정을 취하라 해서, 이렇게 외딴곳까지 이사 오게 됐답니다.
아하...
TAC-50은 후두토를 부축해 침대에 눕히면서, 세심하게 베개도 머리 밑에 받쳐 주었다.
친절하셔라,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아까 둘이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요?
파사두 씨가 생전에 좋아했던 붉은 장미랑, 그분의 대표작에 대해서요.
그리고... 파사두 씨는 세상을 떠난 뒤에도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리고 있다고도 했죠.
후두토 씨도 뮤지컬 좋아하시나요?
네, 좋아하는 편이에요. 언제부터였는진 모르겠지만요.
"나비의 고치" 공연도 관람한 적 있죠.
당신의 충전 알림음도 그 뮤지컬의 것이죠?
네, "나비의 고치" 공연이 엄청 마음에 와닿거든요.
파사두 씨가 그 극에서 연기했던 아내 역할이 정말 멋졌어요.
노래가 감동적일 뿐만 아니라, 모든 감정선의 연기에 생동감이 넘쳤죠.
하지만 "나비 고치"의 표는 구하기 어려웠을 텐데요?
제 기억이 맞다면, 공연마다 표가 순식간에 매진된 걸로 알아요.
그야 파사두 씨의 대표작이니까요.
과거부터 지금까지, 파사두 씨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계세요.
분명 미래에도, 파사두 씨는 세간에서 잊혀지지 않을 거예요.
그걸 어떻게 장담하나요? 소식이 끊긴 지 꽤 오래 됐잖아요, 그러니까...
...작년 핼러윈 전날 밤, 파사두 씨의 은퇴 공연 도중 일어난 화재 사건. 후두토 씨도 아세요?
뉴스에서 떠들어댄 만큼은요.
당시, 파사두 씨는 건강 문제로 점점 공연 횟수가 뜸해졌죠.
그때 "제인 도"라는 배우가 그 기회에 파사두 씨를 대신해 무대에 올라, 점점 극장의 지배인이자 그분의 남편이었던 알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해요.
아... 기억나네요, 그 일로 언론이 시끄러웠죠.
하지만 파사두를 완전히 대신하긴 불가능해서, 그 제인 도란 사람은 아예 파사두처럼 성형한 뒤 그녀를 살해하려 했다고 했던가요?
불쌍한 파사두 씨... 진실을 알곤 은퇴 공연에서, 무대 위에서 자신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그 순간 죽기로 결심하셨을 거예요.
하지만 불행히도 알라가 파사두 씨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고, 제인 도는 그대로 모습을 감춰 버렸다...
참 나쁜 여자네요.
...라는 추측이, 여태까지는 정설이었어요.
음...? 그 말인즉슨, 신빙성 있는 다른 추측이 나왔다는 뜻인가요?
네...
어디서 시작됐는진 알 수 없지만, 최근에 그런 주장이...
하지만 그건 파사두 씨를 완전히 부정하는 관점이라, 들을 때마다 속상해요...
TAC-50은 슬픈 얼굴로 창밖을 바라봤다. 아직도 멈출 기미가 없는 비가 그녀 대신 유리창에 눈물 줄기를 남겼다.
...어떤 주장인데요?
애써 침착하게 되물으며, 후두토는 필사적으로 요동치는 마음을 억눌렀다. 주먹 쥔 손의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