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를 뚫고
진실을 장작으로 타오르는 복수의 화염이 거짓된 무대와 마지막 환몽을 불태웠다.
파사두의 은퇴 공연 당일, 관객들로 가득 찬 극장.
"내 그대 앞에 서서 그대를 바라본 그 순간..."
"언어가 이토록 창백하다는 것에 놀랐죠..."
파사두의 모습이지만, 이것이 AH400의 마지막 공연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TAC-50은 슬픈 감정이 차올랐다.
"아주 잠깐 사이, 우리 사이의 틈새는 깊어만 갔고..."
"깨달았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었어요."
파사두 씨, 연기가 여전히 감동적이네...
그러게 말이야, 오늘로 은퇴라니 너무 안타까워.
......
TAC-50은 끓어오르는 충동을 억눌렀다. 지금 당장 무대로 뛰쳐나가, 극장의 모든 사람들에게 지금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건 자신의 친구 AH400이라 외치고 싶었다.
"거짓말을 풀 삼아 틈새를 이어 붙이려 해도..."
"틈이 다시 벌어지면 그만큼 거짓말도 늘어나네요."
"어느덧 우리는 멀어질 대로 멀어져, 다신 그대를 잡을 수 없게 됐어요."
모든 관객들이 AH400의 노래에 푹 빠져 있던 그때였다.
TAC-50의 눈에, AH400의 뒤에서 까만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들어왔다.
킁킁, 이게 무슨 냄새지?
뭔가 타는 냄새 같은데...?
"그대 걸음을 멈춰, 저를 돌아보실 때..."
"저는 이미 상처로 가득해, 버틸 수가 없을 거예요."
그리고 순식간에, 불길이 두꺼운 장막과 카펫을 타고 극장 전체로 퍼졌다.
관객들은 비명을 지르며 부리나케 극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불이야! 빨리 나가!
AH400!
TAC-50은 인파를 헤치고 반대로 무대를 향해 달렸다.
하지만 AH400은 주위의 불길에도 아랑곳 않고, 그저 촉촉한 눈으로 계속 노래했다.
AH400! 도망쳐, 빨리!
......
아가씨...
파사두가 비틀거리며 무대 뒤편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녀는 뮤지컬에서 자주 등장하는 성공한 악역이 아닌, 넋이 나간 허탈한 모습이었다.
눈물로 붉게 부은 눈가와는 반대로,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했다.
인형아, 오늘 공연은 즐거웠니?
아가씨... 괜찮으세요...?
물론이지... 이제 네가 나를 위해 죽기만 하면.
......
어째서... 어째서 절 그렇게 미워하세요?
네가 내 자리를 빼앗으려 했잖아.
아뇨! 맹세코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 없어요!
전부 다 아가씨가 명령하셨잖아요, 다른 마음은 전혀 품지 않았어요!
아가씨께서도 바란 일이잖아요? "파사두"가 계속 노래하게 해 달라고요!
아가씨의 몸이 나아서, 다시 직접 무대에 오를 수 있을 때까지만...
입에 발린 말은 됐어, 이게 불치병이란 건 너도 알잖아.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세요?
알라 씨가 들으시면 얼마나 속상해하시겠어요...
아가씨를 낫게 할 방법을 찾으려고 얼마나 고생하고 계시는데...
그 남자가 속상하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인데!?
내가 어떤 심정인지 관심도 안 가졌으면서 뭘 안다고!
네가 "파사두"로서 공연하는 걸 지켜보기만 하는 내 심정을, 그 자식이 알겠냐고!
네가 내 무대에 서서, 내 목소리로 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내 팬들이 널 떠받쳐 주고, 너만 바라보고 있어!
언론도 하나같이 "오늘도 성공적으로 무대를 마친 파사두"니, "돌아온 파사두와 알라 부부 공동 인터뷰"니, "시간을 멈춘 듯한 파사두의 미용 비결"이니...
그런데, 진짜 파사두는 어디 있지?!
진짜 파사두는 병상에 누워, 병마가 목을 조르면서 모두가 널 잊었다고 비웃는 걸 듣고만 있다고!
아가씨... 그럼 여태까지 왜 그렇게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파사두는 울분을 토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그 자식이 속상하다고? 하하하하하!
허튼 생각에 자업자득이지!
너로 날 대신하려 했잖아! 하하하하하!
하지만 그 자식도 이제 됐어, 불바다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할 테니까!
아직도 헛된 꿈이나 꾸고 있겠지...
무슨 짓을 하신 건가요?! 설마 알라 씨를...!
뭘 했냐고? 내 친애하는 남편이 나한테 한 짓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 술에 살짝 뭣 좀 뿌린 거 가지고...
아주 비몽사몽이니, 불에 타도 너무 괴롭진 않겠지?
날 배신한 사람한테까지 이렇게 인자하다니, 나 정말 착한 사람 아니니?
안심하렴 인형아, 너도 너무 괴롭진 않게 죽도록 해 줄게.
...아, 내 정신 좀 봐. 인형이 뭘 괴로워할 줄 알겠어? 영원히 젊고 건강한 괴물인데...
...파사두 씨, 저도 괴로울 줄 알아요.
어머나 신기해라.
그럼 말해 봐, 어떨 때 괴로워?
아가씨가 홀로 방에 틀어박혀서 울고 계신데, 전 문 앞에서 뭘 할 수 있을지 고민밖에 못할 때나...
제가 아가씨의 모습으로 공연하는데, 아가씨가 무대 뒤에서 흐느껴 우시는 걸 보고도 안아드릴 수 없을 때...
아가씨가 병환으로 아프고 짜증나셔서, 아가씨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을 모두 밀쳐낼 때요!
......
아가씨, 전 언제나 아가씨를 마음 깊이 사랑했어요.
지금도 아가씨가 진심으로 행복해지시길 바라요.
아가씨가 처음 무대에 오르셨을 때, 전 감격에 겨워 관객석에서 냉각 기능이 고장날 정도로 울었어요.
아가씨가 알라 씨와 결혼하셨을 때도, 제가 아가씨의 들러리였잖아요...
그리고, 함께 즐거웠던 기억들도 잔뜩 있잖아요. 아직 기억하세요?
......
푸하하하... 거짓말, 거짓말이야...
파사두 아가씨! 전 아가씨를 결코 속이지 않았어요!
제가 눈을 떴던 그 순간부터, 전 아가씨 곁에 있었어요!
저에게 아가씨는 그저 주인이 아니라, 제 가족이자 제 모든 것이에요...
AH400은 양팔을 벌리고 천천히 파사두에게 다가갔다.
그만... 멈춰! 강제 입력 모드로 전환해! 당장 그 자리에 멈춰!
AH400은 제자리에 굳었다.
하하하하하... 이건 몰랐지?
널 개조할 때, 네가 언젠가 날 대신하려고 마음먹을 거라 예상했거든.
그래서 돈을 조금 더 지불해서, 네 마인드맵에 강제 명령 입력 기능을 설치했지.
어때?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기분은?
정말 원하신다면, 강제 모드 따위 필요하지 않아요. 아가씨가 원하신다면, 전 아가씨 바람대로 죽겠어요.
됐어, 말도 그만해. 더 들어주다간 눈물 바다 되겠다.
하지만 기억해 주세요. 전 아가씨의 명령으로 죽는 게 아니라, 제가 스스로 원해서 죽는다는 것을.
제가 죽어서 아가씨가 행복하게 살아가실 수 있다면...
닥쳐! 닥쳐 닥쳐 닥쳐, 닥치――
그때 천장에서 불타던 소품이 파사두에게 떨어졌고, 그녀는 그 충격으로 기절했다.
AH400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가, 파사두를 소품 잔해 밑에서 끌어냈다.
아가씨! 아가씨!
......
그리고 멀리서 모든 걸 지켜보던 TAC-50은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으면서, AH400에게 달려갔다.
...AH400.
TAC-50! 다행이다, 이를 어떡하면 좋을까 했는데...
AH400가 파사두를 들어 안아, TAC-50의 품에 넘겼다.
아가씨를 데리고 대피해 줘. 누구도 아가씨를 봐선 안 돼!
......
TAC-50...?
왜 이렇게까지 해? 이렇게 최악인 주인한테 왜 이렇게까지 충성해?
나랑 같이 가자, AH400! 그냥 이대로 도망치는 거야! 내가 이 지옥에서 꺼내 줄게!
...같이 어디로 가는데?
당연히 그리폰으로지!
만약 이 "아가씨"가 배상하라고 소송이라도 걸면, 지휘관한테 부탁해서 월급을 당겨 받아서라도 내가 도와줄 테니까!
지휘관도 좋은 사람이니까 분명 도와주실 거야!
그리고 그리폰에 시설이 얼마나 다양한데! 카페에서 간식도 만들 수 있고, 구호소에서 동물을 돌봐 줄 수도 있어!
그리고 휴가 나오면 같이 외식이나, 쇼핑이나, 여행도 하러 갈 수도 있고...
아무튼 그리폰에서 즐거운 일을 잔뜩 할 수 있어!
그거 좋겠다. 듣기만 해도 즐거워.
그치? 그러니까 같이 가자, 어려운 일 있으면 내가 어떻게든 해결할게!
...미안해.
난 어디에도 갈 수 없어.
왜?
......
강제 입력 모드 때문이야? 그거라면 내가 네 마인드맵에 접속해서 해제해 줄게!
아니...
그 강제 모드란 거, 켜지지도 않았어. 기술자가 사기쳤나 봐...
그럼 대체 왜...
난 가정용 인형, 모델 AH400이야. 이 모델이 얼마나 구식인진 너도 알지?
난 아주 오랫동안 창고에서 먼지나 쌓인 채로 있다, 겨우 아가씨와 만나게 됐어.
내가 처음 눈을 뜬 그 순간부터, 내 곁엔 파사두 아가씨가 계셨어.
아가씨가 꿈을 위해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매일매일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을 봐 왔어.
그거 알아? 아가씨가 꿈에 그리던 이 극장에 채용되셨던 날, 어린애처럼 기뻐하시면서 날 끌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함께 구경했어.
아가씨가 사랑하는 분과 결혼하실 때,식에서 두 분께 반지를 드린 것도 나야.
아가씨가 병환에 짓눌려 희망을 잃으셨을 때도 곁을 벗어나지 않았지...
아가씨에 대한 내 감정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어.
하지만 결국 깨달았어, 파사두 아가씨가 내가 아는 세상의 전부란 걸.
비좁은 세상이긴 하지만, 내가 가장 안심하고 있을 수 있는 곳이야.
......
너무 슬퍼 마. 넌 내 하나뿐인 친구야.
네 이야기를 들으면서, 바깥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재밌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도 알게 됐어.
나도 몇 번이고 너와 함께 여행하면서 직접 세상을 구경하는 상상을 해봤는데.
하지만... 우리 모두,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언젠가는 결국 제자리로 돌아가야만 하잖아?
네겐 그리폰이 돌아갈 곳이잖아. 얼마나 오래 임무에 나갔다 돌아와도, 길을 찾아 돌아가면 그곳의 모두가 널 반겨 주잖아.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돌아갈 곳은 바로 여기야.
아니야... 돌아갈 곳은 다시 정할 수 있어!
TAC-50이 둘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치우려 했지만, AH400은 그저 손을 내밀어 살포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난 극장이 정말 좋아, 진심으로.
아가씨 때문만이 아니야. 내가 처음으로 무대에 올라 아가씨 대신 노래했을 때, 내가 여길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어.
비록 관객들이 외치는 게 내 이름이 아니고, 나도 나로서 무대에 서는 게 아니지만...
그래도 난 극장이 좋아. 연극과 이야기 모두, 정말 좋아...
극장이든 뮤지컬이든 세상에 잔뜩 있단——
세상엔 다른 기지도 다른 지휘관도 잔뜩 있어.
하지만 네게 진정 소중한 기지는 단 하나뿐이고, 네게 진정 소중한 지휘관도 단 한 명이지?
......
네가 지휘관을 위해 네 모든 걸 바칠 수 있는 것처럼, 나도 내 아가씨를 위해 모든 걸 바치고 싶어.
그게 톡 건드리면 터져버릴 환상일지라도...
하지만... 하지만 이 사람이 널 신경이나 써 줬어?!
내가 한 번 고장났을 때, 무거운 날 업고 3km나 달리신 적이 있어. 그리고 수리비 때문에 보름 동안 죽밖에 못 드셨지...
함께 소풍하러 간 적도 있어. 집 근처의 공원이긴 했지만...
아가씨와 함께한 즐거운 추억은 잔뜩 있어. 그저... 세월에 모든 게 변해버린 거야...
......
걱정해 줘서 정말 고마워, TAC-50.
하지만 난 결심했어.
난 계속, 이 극장과 파사두 아가씨를 지키고 싶어.
싫어... 널 두고 가기 싫어...
걱정 말래도.
난 언제까지고 이 극장에 있을 거야. 내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찾아와.
AH400...
어서 가. 여기 계속 있으면 아가씨가 위험해.
......
"꽃처럼 아름다운 오늘도..."
"내일이면 흩어져 사라지겠죠."
"그대도 언젠가 알게 될까요?"
"시간은 죽음과 함께라는 것을."
불길 너머로, AH400은 TAC-50의 눈물을 훔쳤다.
잘 가, 내 친구. 아가씨를 부탁해.
그리고 AH400은 뒤로 돌아, 극장 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거센 불길이 그녀의 치마 끝에 옮겨붙었다.
TAC-50은 의식을 잃은 파사두를 안고 달리면서 계속 뒤를 돌아봤다. AH400의 몸에 붙은 불은 점점 커져, 그녀의 뒷모습은 마치 붉은 유령 같았다.
하지만 끝까지, AH400은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에요.
......
파사두 씨,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어요.
비록 운명이 당신을 병들게 했지만, 주변엔 여전히 당신을 걱정하는 가족이 있었어요.
하지만 당신이 그 손으로 죽였죠.
......
두 사람이 살아있었다면, 이 요양원도 이렇게 썰렁하진 않았을 거예요.
AH400이 매일 레시피를 바꿔 가면서 간식을 만들어 당신을 기쁘게 했을 테고...
알라 씨는 하루 일을 마친 뒤 싱그러운 꽃다발을 사서 돌아왔을 수도 있죠.
하지만 지금 여기엔 그 누구도 없어요. 여기엔 오직 절망이란 수렁에 빠진 고독한 여인 한 명뿐이에요.
그만! 듣고 싶지 않아!
후회하신 적 있나요? 밤에 잠들 때, 그들의 얼굴이 떠오른 적은 없나요?
으아아아!!!
파사두는 그대로 주저앉아 귀를 틀어막았다.
파사두라는 이름의 환상을 영원히 남기겠다고, 그렇게 많은 것을 희생할 가치가 정말 있었나요?
그래서 어쩔 셈인데!?
인형인 주제에 뭘 어쩌겠다고! 날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그럴 리가요. 흉기조차 없는 민간인에게 발포라니, 제 프로그램이 용납하지 않아요.
물론, 그렇다고 당신을 순순히 놓아줄 생각도 없어요.
그럼 어떡할 건데?!
당신의 꿈을... 부숴 버리겠어요.
뭐...?
당신은 사랑하던 남편과 오랜 시간 함께한 인형을 희생하면서까지 "영원한 가희 파사두"라는 환상을 만들어냈죠.
그 환상을 깨뜨려 버리겠어요. 온 세상이 그 거품이 터지는 순간을 목격하게 만들겠어요.
그 거품 뒤에 숨어 있던 진정한 파사두의 모습이 얼마나 추악하고 꼴사나운지, 만천하에 폭로하겠어요.
TAC-50가 창문을 열었다. 바깥의 폭우는 이미 그쳤지만, 빗소리 대신 자동차들이 앞다퉈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저 소리가 들리나요? 아마 가까운 도시의 연예계 기자란 기자가 모조리 여기로 몰려오는 중일 거예요.
무... 무슨 짓을 한 거야? 여길 어떻게 알고 와?!
TAC-50이 손가락을 튕기자, 드론 메이플 문이 그녀의 뒤에서 부웅 날아올랐다.
잠시 방송을 했을 뿐이에요.
파사두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속상해하지 마세요, 지금 스트리밍 인기도가 모든 플랫폼을 통틀어 1위라고요.
지금 모니터 너머로 당신을 보고 있는 시청자의 수는, 아마 당신의 순회공연 총관객 수를 가볍게 넘었을 거예요.
뒤이어, 거의 문을 부술 기세로 노크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벌써 선발대가 도착한 모양이네요. 그럼 이만 헤어지죠.
안녕히 계세요, 파사두 씨.
만수무강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TAC-50은 창문을 넘어, 어두운 밤 풍경 속으로 사라졌다.
......
하하... 하하하하...
이걸로 날 이겼다고 생각해? 순진해 빠졌구나!
파사두는 눈물범벅인 얼굴로 미친 듯이 웃으면서, 비틀거리며 주방으로 갔다.
TAC-50이 떠나자 문 앞에서 정지되어 있던 돌보미 인형도 다시 기능이 돌아왔지만, 정신 차릴 틈도 없이 난데없이 우르르 몰려온 연예 기자들을 상대해야 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갑자기 몸이 안 움직인다 싶더니 어디서 기자가 이렇게 몰려온 거야?!
저기, 밀지 말아 주세요! 여긴 개인 사유지입니다, 들어오면 안 돼요!
파사두 씨! 인터뷰 좀 받아 주시죠!
여기 인형 씨, 혹시 파사두 씨의 새 인형 되십니까?
파사두 씨가 가정용 인형을 자기 대역으로 썼다는 게 사실입니까?
가정용 인형마저도 인간 대신 완벽하게 무대 공연을 할 수 있는데, 인형을 배우로 기용하지 않는 극장가의 관행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희 채널에서 새로운 프로그램 기획이 있는데 파사두 씨를 섭외하고 싶습니다! 배우들끼리 서로 디스 배틀을 하는 프로그램인데요!
섭외비는 부르시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으아악! 살려 줘요, 전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아가씨――! 아가씨, 어디 계세요?!
현관이 아수라장일 때, 파사두는 중얼대며 여기저기 식용유를 부었다.
난 지지 않아... 질 순 없어... 망할 인형들...
파사두는 가장 꽃다운 나이에 멈춰서, 영원히 고귀하고 화사하게, 꾀고리처럼 노래해...
파사두는 영원한 세기의 가희야... 에바 프리드도 결코 견줄 수 없어!
하하하... 하하하하하!!
식용유를 몽땅 부은 뒤, 파사두는 손에 쥔 라이터를 켰다. 자그마한 불꽃은, 미쳐버린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춤을 췄다.
이제... 딱 하나 남았어...
나만 사라지면, 파사두는 비로소 완전무결해지는 거야...
파사두는 영원히 노래할 거야...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리고, 라이터가 떨어졌다.
오늘 밤은 달빛도 없이 시커먼 하늘이었다. 하지만 TAC-50의 어깨 너머의 하늘은 붉게 빛났고, 사람들의 고함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TAC-50은 계속해서 기지를 향해 걸었다. 그녀의 뒷모습은 마치 검은 유령 같았다.
가는 길 내내, 그녀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고치 속 나비] - END
1년 전, 핼러윈.
안녕하세요, 여기 장미꽃 한 다발 포장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그런데, 핼러윈에 장미꽃을 이렇게 많이 사 가시는 분은 또 처음이네요.
하하, 오늘이 특별한 날이라서요.
알라는 웃으며 돈을 내고 조심스럽게 장미 다발을 받아들었다.
오늘만 지나면 전부 좋아질 거야... 그렇지?
손목시계가 약속 시간을 가리켰다.
알라는 걸음을 서둘러 극장으로 향했다.
오늘 밤은 "파사두"의 은퇴 기념 무대였다. 오늘이 지나면, 그는 모든 걸 내려놓고, 사랑하는 아내와 그녀의 인형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새롭게 다시 시작할 셈이었다.
드디어 이 날이 왔구나...
어, 오너? 오너가 그렇게 기뻐하시는 거 참 오랜만에 보네요.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하하하, 별일 아니야.
알라는 준비 중인 배우들과 살갑게 인사를 나누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예상 밖의 인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이 여기엔 왠 일이야?
내 은퇴 공연인데, 어떻게 안 올 수가 있어?
그래... 그렇지...
참, 당신 주려고 장미 사 왔어.
어머나... 고마워, 엄청 마음에 들어.
표정 풀고 안심해, 트집잡으러 온 거 아니니까. 그냥, 마지막으로 한 번 이 극장을 보고 싶어서.
내일이면 떠날 거잖아?
원한다면 나중에 다시 보러 오자.
돌아와 보는 건 나중에 생각하고 말해.
파사두는 서랍에서 와인잔을 꺼내 와인을 따랐다.
적어도, 이 마지막 밤은 기쁘게 보내자고.
그래, 우리 새로운 시작을 위해 건배!
알라는 의심도 않고 잔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당신도 너무 마시지 마, 몸조심해야지.
알아, 알아.
어음... 머리가 좀 어지럽네. 시간 있으니 잠깐 눈 좀 붙여야겠어.
여보도 어디 가지 말고 옆에 있어 줘...
응... 잘 자, 계속 곁에 있을게...
파사두에게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받으면서, 알라는 달콤한 단잠에 빠졌다.
꿈에서, 가족끼리 고향인 시골로 돌아와, 외딴 산기슭에 작은 집을 지었다.
알라는 매일 차를 몰고 근처 마을에 출근하고, 인형은 집에 남아 파사두를 간호했다.
퇴근할 때면 마을의 꽃가게에서 꽃을 한 다발 사, 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가 집에 돌아올 때면, 인형이 때맞춰 만든 요리로 가족이 식탁에 모여, 즐겁게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그렇게 평범한 나날을 보내면서, 모두 함께 늙어 가고...
여보, 꽃 시들었으면 그냥 버려... 새로 하나 사 올게...
그리고 인형... 오늘 간식도 맛이 정말...
텅 빈 사무실에, 대답해 줄 사람은 없었다.
바닥에 버려진 장미는 불꽃에 휩싸여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지고, 재가 되었다.
알라의 잠꼬대를 들어주는 것은, 서서히 다가오는 불길뿐이었다.
전체 대사 보기 (169줄)
파사두의 은퇴 공연 당일, 관객들로 가득 찬 극장.
"내 그대 앞에 서서 그대를 바라본 그 순간..."
"언어가 이토록 창백하다는 것에 놀랐죠..."
파사두의 모습이지만, 이것이 AH400의 마지막 공연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TAC-50은 슬픈 감정이 차올랐다.
"아주 잠깐 사이, 우리 사이의 틈새는 깊어만 갔고..."
"깨달았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었어요."
파사두 씨, 연기가 여전히 감동적이네...
그러게 말이야, 오늘로 은퇴라니 너무 안타까워.
......
TAC-50은 끓어오르는 충동을 억눌렀다. 지금 당장 무대로 뛰쳐나가, 극장의 모든 사람들에게 지금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건 자신의 친구 AH400이라 외치고 싶었다.
"거짓말을 풀 삼아 틈새를 이어 붙이려 해도..."
"틈이 다시 벌어지면 그만큼 거짓말도 늘어나네요."
"어느덧 우리는 멀어질 대로 멀어져, 다신 그대를 잡을 수 없게 됐어요."
모든 관객들이 AH400의 노래에 푹 빠져 있던 그때였다.
TAC-50의 눈에, AH400의 뒤에서 까만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들어왔다.
킁킁, 이게 무슨 냄새지?
뭔가 타는 냄새 같은데...?
"그대 걸음을 멈춰, 저를 돌아보실 때..."
"저는 이미 상처로 가득해, 버틸 수가 없을 거예요."
그리고 순식간에, 불길이 두꺼운 장막과 카펫을 타고 극장 전체로 퍼졌다.
관객들은 비명을 지르며 부리나케 극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불이야! 빨리 나가!
AH400!
TAC-50은 인파를 헤치고 반대로 무대를 향해 달렸다.
하지만 AH400은 주위의 불길에도 아랑곳 않고, 그저 촉촉한 눈으로 계속 노래했다.
AH400! 도망쳐, 빨리!
......
아가씨...
파사두가 비틀거리며 무대 뒤편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녀는 뮤지컬에서 자주 등장하는 성공한 악역이 아닌, 넋이 나간 허탈한 모습이었다.
눈물로 붉게 부은 눈가와는 반대로,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했다.
인형아, 오늘 공연은 즐거웠니?
아가씨... 괜찮으세요...?
물론이지... 이제 네가 나를 위해 죽기만 하면.
......
어째서... 어째서 절 그렇게 미워하세요?
네가 내 자리를 빼앗으려 했잖아.
아뇨! 맹세코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 없어요!
전부 다 아가씨가 명령하셨잖아요, 다른 마음은 전혀 품지 않았어요!
아가씨께서도 바란 일이잖아요? "파사두"가 계속 노래하게 해 달라고요!
아가씨의 몸이 나아서, 다시 직접 무대에 오를 수 있을 때까지만...
입에 발린 말은 됐어, 이게 불치병이란 건 너도 알잖아.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세요?
알라 씨가 들으시면 얼마나 속상해하시겠어요...
아가씨를 낫게 할 방법을 찾으려고 얼마나 고생하고 계시는데...
그 남자가 속상하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인데!?
내가 어떤 심정인지 관심도 안 가졌으면서 뭘 안다고!
네가 "파사두"로서 공연하는 걸 지켜보기만 하는 내 심정을, 그 자식이 알겠냐고!
네가 내 무대에 서서, 내 목소리로 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내 팬들이 널 떠받쳐 주고, 너만 바라보고 있어!
언론도 하나같이 "오늘도 성공적으로 무대를 마친 파사두"니, "돌아온 파사두와 알라 부부 공동 인터뷰"니, "시간을 멈춘 듯한 파사두의 미용 비결"이니...
그런데, 진짜 파사두는 어디 있지?!
진짜 파사두는 병상에 누워, 병마가 목을 조르면서 모두가 널 잊었다고 비웃는 걸 듣고만 있다고!
아가씨... 그럼 여태까지 왜 그렇게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파사두는 울분을 토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그 자식이 속상하다고? 하하하하하!
허튼 생각에 자업자득이지!
너로 날 대신하려 했잖아! 하하하하하!
하지만 그 자식도 이제 됐어, 불바다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할 테니까!
아직도 헛된 꿈이나 꾸고 있겠지...
무슨 짓을 하신 건가요?! 설마 알라 씨를...!
뭘 했냐고? 내 친애하는 남편이 나한테 한 짓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 술에 살짝 뭣 좀 뿌린 거 가지고...
아주 비몽사몽이니, 불에 타도 너무 괴롭진 않겠지?
날 배신한 사람한테까지 이렇게 인자하다니, 나 정말 착한 사람 아니니?
안심하렴 인형아, 너도 너무 괴롭진 않게 죽도록 해 줄게.
...아, 내 정신 좀 봐. 인형이 뭘 괴로워할 줄 알겠어? 영원히 젊고 건강한 괴물인데...
...파사두 씨, 저도 괴로울 줄 알아요.
어머나 신기해라.
그럼 말해 봐, 어떨 때 괴로워?
아가씨가 홀로 방에 틀어박혀서 울고 계신데, 전 문 앞에서 뭘 할 수 있을지 고민밖에 못할 때나...
제가 아가씨의 모습으로 공연하는데, 아가씨가 무대 뒤에서 흐느껴 우시는 걸 보고도 안아드릴 수 없을 때...
아가씨가 병환으로 아프고 짜증나셔서, 아가씨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을 모두 밀쳐낼 때요!
......
아가씨, 전 언제나 아가씨를 마음 깊이 사랑했어요.
지금도 아가씨가 진심으로 행복해지시길 바라요.
아가씨가 처음 무대에 오르셨을 때, 전 감격에 겨워 관객석에서 냉각 기능이 고장날 정도로 울었어요.
아가씨가 알라 씨와 결혼하셨을 때도, 제가 아가씨의 들러리였잖아요...
그리고, 함께 즐거웠던 기억들도 잔뜩 있잖아요. 아직 기억하세요?
......
푸하하하... 거짓말, 거짓말이야...
파사두 아가씨! 전 아가씨를 결코 속이지 않았어요!
제가 눈을 떴던 그 순간부터, 전 아가씨 곁에 있었어요!
저에게 아가씨는 그저 주인이 아니라, 제 가족이자 제 모든 것이에요...
AH400은 양팔을 벌리고 천천히 파사두에게 다가갔다.
그만... 멈춰! 강제 입력 모드로 전환해! 당장 그 자리에 멈춰!
AH400은 제자리에 굳었다.
하하하하하... 이건 몰랐지?
널 개조할 때, 네가 언젠가 날 대신하려고 마음먹을 거라 예상했거든.
그래서 돈을 조금 더 지불해서, 네 마인드맵에 강제 명령 입력 기능을 설치했지.
어때?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기분은?
정말 원하신다면, 강제 모드 따위 필요하지 않아요. 아가씨가 원하신다면, 전 아가씨 바람대로 죽겠어요.
됐어, 말도 그만해. 더 들어주다간 눈물 바다 되겠다.
하지만 기억해 주세요. 전 아가씨의 명령으로 죽는 게 아니라, 제가 스스로 원해서 죽는다는 것을.
제가 죽어서 아가씨가 행복하게 살아가실 수 있다면...
닥쳐! 닥쳐 닥쳐 닥쳐, 닥치――
그때 천장에서 불타던 소품이 파사두에게 떨어졌고, 그녀는 그 충격으로 기절했다.
AH400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가, 파사두를 소품 잔해 밑에서 끌어냈다.
아가씨! 아가씨!
......
그리고 멀리서 모든 걸 지켜보던 TAC-50은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으면서, AH400에게 달려갔다.
...AH400.
TAC-50! 다행이다, 이를 어떡하면 좋을까 했는데...
AH400가 파사두를 들어 안아, TAC-50의 품에 넘겼다.
아가씨를 데리고 대피해 줘. 누구도 아가씨를 봐선 안 돼!
......
TAC-50...?
왜 이렇게까지 해? 이렇게 최악인 주인한테 왜 이렇게까지 충성해?
나랑 같이 가자, AH400! 그냥 이대로 도망치는 거야! 내가 이 지옥에서 꺼내 줄게!
...같이 어디로 가는데?
당연히 그리폰으로지!
만약 이 "아가씨"가 배상하라고 소송이라도 걸면, 지휘관한테 부탁해서 월급을 당겨 받아서라도 내가 도와줄 테니까!
지휘관도 좋은 사람이니까 분명 도와주실 거야!
그리고 그리폰에 시설이 얼마나 다양한데! 카페에서 간식도 만들 수 있고, 구호소에서 동물을 돌봐 줄 수도 있어!
그리고 휴가 나오면 같이 외식이나, 쇼핑이나, 여행도 하러 갈 수도 있고...
아무튼 그리폰에서 즐거운 일을 잔뜩 할 수 있어!
그거 좋겠다. 듣기만 해도 즐거워.
그치? 그러니까 같이 가자, 어려운 일 있으면 내가 어떻게든 해결할게!
...미안해.
난 어디에도 갈 수 없어.
왜?
......
강제 입력 모드 때문이야? 그거라면 내가 네 마인드맵에 접속해서 해제해 줄게!
아니...
그 강제 모드란 거, 켜지지도 않았어. 기술자가 사기쳤나 봐...
그럼 대체 왜...
난 가정용 인형, 모델 AH400이야. 이 모델이 얼마나 구식인진 너도 알지?
난 아주 오랫동안 창고에서 먼지나 쌓인 채로 있다, 겨우 아가씨와 만나게 됐어.
내가 처음 눈을 뜬 그 순간부터, 내 곁엔 파사두 아가씨가 계셨어.
아가씨가 꿈을 위해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매일매일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을 봐 왔어.
그거 알아? 아가씨가 꿈에 그리던 이 극장에 채용되셨던 날, 어린애처럼 기뻐하시면서 날 끌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함께 구경했어.
아가씨가 사랑하는 분과 결혼하실 때,식에서 두 분께 반지를 드린 것도 나야.
아가씨가 병환에 짓눌려 희망을 잃으셨을 때도 곁을 벗어나지 않았지...
아가씨에 대한 내 감정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어.
하지만 결국 깨달았어, 파사두 아가씨가 내가 아는 세상의 전부란 걸.
비좁은 세상이긴 하지만, 내가 가장 안심하고 있을 수 있는 곳이야.
......
너무 슬퍼 마. 넌 내 하나뿐인 친구야.
네 이야기를 들으면서, 바깥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재밌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도 알게 됐어.
나도 몇 번이고 너와 함께 여행하면서 직접 세상을 구경하는 상상을 해봤는데.
하지만... 우리 모두,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언젠가는 결국 제자리로 돌아가야만 하잖아?
네겐 그리폰이 돌아갈 곳이잖아. 얼마나 오래 임무에 나갔다 돌아와도, 길을 찾아 돌아가면 그곳의 모두가 널 반겨 주잖아.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돌아갈 곳은 바로 여기야.
아니야... 돌아갈 곳은 다시 정할 수 있어!
TAC-50이 둘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치우려 했지만, AH400은 그저 손을 내밀어 살포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난 극장이 정말 좋아, 진심으로.
아가씨 때문만이 아니야. 내가 처음으로 무대에 올라 아가씨 대신 노래했을 때, 내가 여길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어.
비록 관객들이 외치는 게 내 이름이 아니고, 나도 나로서 무대에 서는 게 아니지만...
그래도 난 극장이 좋아. 연극과 이야기 모두, 정말 좋아...
극장이든 뮤지컬이든 세상에 잔뜩 있단——
세상엔 다른 기지도 다른 지휘관도 잔뜩 있어.
하지만 네게 진정 소중한 기지는 단 하나뿐이고, 네게 진정 소중한 지휘관도 단 한 명이지?
......
네가 지휘관을 위해 네 모든 걸 바칠 수 있는 것처럼, 나도 내 아가씨를 위해 모든 걸 바치고 싶어.
그게 톡 건드리면 터져버릴 환상일지라도...
하지만... 하지만 이 사람이 널 신경이나 써 줬어?!
내가 한 번 고장났을 때, 무거운 날 업고 3km나 달리신 적이 있어. 그리고 수리비 때문에 보름 동안 죽밖에 못 드셨지...
함께 소풍하러 간 적도 있어. 집 근처의 공원이긴 했지만...
아가씨와 함께한 즐거운 추억은 잔뜩 있어. 그저... 세월에 모든 게 변해버린 거야...
......
걱정해 줘서 정말 고마워, TAC-50.
하지만 난 결심했어.
난 계속, 이 극장과 파사두 아가씨를 지키고 싶어.
싫어... 널 두고 가기 싫어...
걱정 말래도.
난 언제까지고 이 극장에 있을 거야. 내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찾아와.
AH400...
어서 가. 여기 계속 있으면 아가씨가 위험해.
......
"꽃처럼 아름다운 오늘도..."
"내일이면 흩어져 사라지겠죠."
"그대도 언젠가 알게 될까요?"
"시간은 죽음과 함께라는 것을."
불길 너머로, AH400은 TAC-50의 눈물을 훔쳤다.
잘 가, 내 친구. 아가씨를 부탁해.
그리고 AH400은 뒤로 돌아, 극장 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거센 불길이 그녀의 치마 끝에 옮겨붙었다.
TAC-50은 의식을 잃은 파사두를 안고 달리면서 계속 뒤를 돌아봤다. AH400의 몸에 붙은 불은 점점 커져, 그녀의 뒷모습은 마치 붉은 유령 같았다.
하지만 끝까지, AH400은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에요.
......
파사두 씨,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어요.
비록 운명이 당신을 병들게 했지만, 주변엔 여전히 당신을 걱정하는 가족이 있었어요.
하지만 당신이 그 손으로 죽였죠.
......
두 사람이 살아있었다면, 이 요양원도 이렇게 썰렁하진 않았을 거예요.
AH400이 매일 레시피를 바꿔 가면서 간식을 만들어 당신을 기쁘게 했을 테고...
알라 씨는 하루 일을 마친 뒤 싱그러운 꽃다발을 사서 돌아왔을 수도 있죠.
하지만 지금 여기엔 그 누구도 없어요. 여기엔 오직 절망이란 수렁에 빠진 고독한 여인 한 명뿐이에요.
그만! 듣고 싶지 않아!
후회하신 적 있나요? 밤에 잠들 때, 그들의 얼굴이 떠오른 적은 없나요?
으아아아!!!
파사두는 그대로 주저앉아 귀를 틀어막았다.
파사두라는 이름의 환상을 영원히 남기겠다고, 그렇게 많은 것을 희생할 가치가 정말 있었나요?
그래서 어쩔 셈인데!?
인형인 주제에 뭘 어쩌겠다고! 날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그럴 리가요. 흉기조차 없는 민간인에게 발포라니, 제 프로그램이 용납하지 않아요.
물론, 그렇다고 당신을 순순히 놓아줄 생각도 없어요.
그럼 어떡할 건데?!
당신의 꿈을... 부숴 버리겠어요.
뭐...?
당신은 사랑하던 남편과 오랜 시간 함께한 인형을 희생하면서까지 "영원한 가희 파사두"라는 환상을 만들어냈죠.
그 환상을 깨뜨려 버리겠어요. 온 세상이 그 거품이 터지는 순간을 목격하게 만들겠어요.
그 거품 뒤에 숨어 있던 진정한 파사두의 모습이 얼마나 추악하고 꼴사나운지, 만천하에 폭로하겠어요.
TAC-50가 창문을 열었다. 바깥의 폭우는 이미 그쳤지만, 빗소리 대신 자동차들이 앞다퉈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저 소리가 들리나요? 아마 가까운 도시의 연예계 기자란 기자가 모조리 여기로 몰려오는 중일 거예요.
무... 무슨 짓을 한 거야? 여길 어떻게 알고 와?!
TAC-50이 손가락을 튕기자, 드론 메이플 문이 그녀의 뒤에서 부웅 날아올랐다.
잠시 방송을 했을 뿐이에요.
파사두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속상해하지 마세요, 지금 스트리밍 인기도가 모든 플랫폼을 통틀어 1위라고요.
지금 모니터 너머로 당신을 보고 있는 시청자의 수는, 아마 당신의 순회공연 총관객 수를 가볍게 넘었을 거예요.
뒤이어, 거의 문을 부술 기세로 노크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벌써 선발대가 도착한 모양이네요. 그럼 이만 헤어지죠.
안녕히 계세요, 파사두 씨.
만수무강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TAC-50은 창문을 넘어, 어두운 밤 풍경 속으로 사라졌다.
......
하하... 하하하하...
이걸로 날 이겼다고 생각해? 순진해 빠졌구나!
파사두는 눈물범벅인 얼굴로 미친 듯이 웃으면서, 비틀거리며 주방으로 갔다.
TAC-50이 떠나자 문 앞에서 정지되어 있던 돌보미 인형도 다시 기능이 돌아왔지만, 정신 차릴 틈도 없이 난데없이 우르르 몰려온 연예 기자들을 상대해야 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갑자기 몸이 안 움직인다 싶더니 어디서 기자가 이렇게 몰려온 거야?!
저기, 밀지 말아 주세요! 여긴 개인 사유지입니다, 들어오면 안 돼요!
파사두 씨! 인터뷰 좀 받아 주시죠!
여기 인형 씨, 혹시 파사두 씨의 새 인형 되십니까?
파사두 씨가 가정용 인형을 자기 대역으로 썼다는 게 사실입니까?
가정용 인형마저도 인간 대신 완벽하게 무대 공연을 할 수 있는데, 인형을 배우로 기용하지 않는 극장가의 관행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희 채널에서 새로운 프로그램 기획이 있는데 파사두 씨를 섭외하고 싶습니다! 배우들끼리 서로 디스 배틀을 하는 프로그램인데요!
섭외비는 부르시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으아악! 살려 줘요, 전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아가씨――! 아가씨, 어디 계세요?!
현관이 아수라장일 때, 파사두는 중얼대며 여기저기 식용유를 부었다.
난 지지 않아... 질 순 없어... 망할 인형들...
파사두는 가장 꽃다운 나이에 멈춰서, 영원히 고귀하고 화사하게, 꾀고리처럼 노래해...
파사두는 영원한 세기의 가희야... 에바 프리드도 결코 견줄 수 없어!
하하하... 하하하하하!!
식용유를 몽땅 부은 뒤, 파사두는 손에 쥔 라이터를 켰다. 자그마한 불꽃은, 미쳐버린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춤을 췄다.
이제... 딱 하나 남았어...
나만 사라지면, 파사두는 비로소 완전무결해지는 거야...
파사두는 영원히 노래할 거야...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리고, 라이터가 떨어졌다.
오늘 밤은 달빛도 없이 시커먼 하늘이었다. 하지만 TAC-50의 어깨 너머의 하늘은 붉게 빛났고, 사람들의 고함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TAC-50은 계속해서 기지를 향해 걸었다. 그녀의 뒷모습은 마치 검은 유령 같았다.
가는 길 내내, 그녀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고치 속 나비] - END
1년 전, 핼러윈.
안녕하세요, 여기 장미꽃 한 다발 포장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그런데, 핼러윈에 장미꽃을 이렇게 많이 사 가시는 분은 또 처음이네요.
하하, 오늘이 특별한 날이라서요.
알라는 웃으며 돈을 내고 조심스럽게 장미 다발을 받아들었다.
오늘만 지나면 전부 좋아질 거야... 그렇지?
손목시계가 약속 시간을 가리켰다.
알라는 걸음을 서둘러 극장으로 향했다.
오늘 밤은 "파사두"의 은퇴 기념 무대였다. 오늘이 지나면, 그는 모든 걸 내려놓고, 사랑하는 아내와 그녀의 인형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새롭게 다시 시작할 셈이었다.
드디어 이 날이 왔구나...
어, 오너? 오너가 그렇게 기뻐하시는 거 참 오랜만에 보네요.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하하하, 별일 아니야.
알라는 준비 중인 배우들과 살갑게 인사를 나누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예상 밖의 인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이 여기엔 왠 일이야?
내 은퇴 공연인데, 어떻게 안 올 수가 있어?
그래... 그렇지...
참, 당신 주려고 장미 사 왔어.
어머나... 고마워, 엄청 마음에 들어.
표정 풀고 안심해, 트집잡으러 온 거 아니니까. 그냥, 마지막으로 한 번 이 극장을 보고 싶어서.
내일이면 떠날 거잖아?
원한다면 나중에 다시 보러 오자.
돌아와 보는 건 나중에 생각하고 말해.
파사두는 서랍에서 와인잔을 꺼내 와인을 따랐다.
적어도, 이 마지막 밤은 기쁘게 보내자고.
그래, 우리 새로운 시작을 위해 건배!
알라는 의심도 않고 잔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당신도 너무 마시지 마, 몸조심해야지.
알아, 알아.
어음... 머리가 좀 어지럽네. 시간 있으니 잠깐 눈 좀 붙여야겠어.
여보도 어디 가지 말고 옆에 있어 줘...
응... 잘 자, 계속 곁에 있을게...
파사두에게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받으면서, 알라는 달콤한 단잠에 빠졌다.
꿈에서, 가족끼리 고향인 시골로 돌아와, 외딴 산기슭에 작은 집을 지었다.
알라는 매일 차를 몰고 근처 마을에 출근하고, 인형은 집에 남아 파사두를 간호했다.
퇴근할 때면 마을의 꽃가게에서 꽃을 한 다발 사, 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가 집에 돌아올 때면, 인형이 때맞춰 만든 요리로 가족이 식탁에 모여, 즐겁게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그렇게 평범한 나날을 보내면서, 모두 함께 늙어 가고...
여보, 꽃 시들었으면 그냥 버려... 새로 하나 사 올게...
그리고 인형... 오늘 간식도 맛이 정말...
텅 빈 사무실에, 대답해 줄 사람은 없었다.
바닥에 버려진 장미는 불꽃에 휩싸여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지고, 재가 되었다.
알라의 잠꼬대를 들어주는 것은, 서서히 다가오는 불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