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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22 · 라이칸의 성역

약과 독의 노래

"희극을 보는 자 또한 희극 속 인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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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려앉은 해변, 투표 시간이 마침내 막을 내렸다.

WA2000은 ‘늑대들의 명패’의 우세에 힘입어 MVP 자리에 올랐다.

시상대 근처에서 인형들이 초조하게 기다리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시상식이 시작된 지 벌써 10분이 지났지만, 상을 받아야 할 WA2000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카리나

지휘관님, 이대로 더 기다리다간 또 소동이 일어날지도 몰라요...

카리나는 근심 어린 표정으로 단상 위의 지휘관에게 초조하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휘관

그럼 어떡하지?

카리나

차라리 지휘관님이 WA2000 대신 이 메달을 먼저 받으시고, 나중에 직접 전달해 주시는 건 어떨까요?

지휘관

그건... 알았어.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가운데, 지휘관은 멋쩍게 웃으며 카리나가 WA2000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기념 메달을 건네받았다.

분명 ‘주민’ MVP였지만, 득표 유형 비율 때문에 메달 상단에는 ‘늑대인간’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지휘관

후우...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만약 WA2000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내게 이 기념 메달을 직접 받았다면, 분명 화가 나서 다신 나랑 말도 안 섞으려 했겠지...

그런데 그나저나, 이 애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같은 시각, 밤.

달빛과 별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다 위에서, WA2000과 ZB-26은 기분 좋게 바닷물에 몸을 담근 채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헤엄치고 있었다.

ZB-26

그러고 보니, 말도 없이 밤 수영을 하러 나와도 정말 괜찮을까? 다들 늑대인간 게임을 하고 있는데, 우리만 겉도는 것 같아서...

WA2000

흥, 살아남은 녀석들이나 마지막 승패에 신경 쓰겠지.

어차피 난 첫 라운드에서 탈락했으니까, 지휘관이 나처럼 운 없는 녀석한테 투표할 리도 없고... 차라리 이렇게 수영이나 하면서 즐기는 게 훨씬 나아.

ZB-26

...오후에 했던 게임, 별로 즐겁지 않았어?

WA2000

시끄러운 늑대인간 두 명 사이에 끼어 있었는데, 즐거울 리가 있겠어...

카리나

밤이 되었습니다, 눈을 감아주세요... 늑대인간은 눈을 뜨고, 서로의 정체를 확인해 주십시오.

퍽! 오른쪽에 앉아 있던 녀석이 짜증스럽게 팔을 움직이다가, 딱딱한 가방을 세게 들이받았다.

WA2000

<color=#A9A9A9>진짜! 내 총기 가방 건드리지 마!!!</color>

WA2000은 자신의 배낭을 꽉 움켜쥐었다.

왼쪽의 목소리

히히......

교활한 웃음소리가 WA2000의 왼쪽에서 들려왔다.

WA2000

<color=#A9A9A9>...뭘 실실 웃는 거야?! 게임 좀 제대로 할 수 없어?!</color>

카리나의 목소리

늑대인간은 죽일 대상을 정해 주세요.

왼쪽의 목소리

<size=25>너희는 왜 다들 통신으로 말해? 입술은 하나도 안 움직이는데, 너무 무섭잖아!</size>

부스럭부스럭... 부스럭부스럭...

옷감이 스치는 소리, 기침 소리, 하품 소리, 슬리퍼가 모래사장에 끌리는 소리...

사방에서 온갖 이상한 소음이 들려오자, 예민한 WA2000은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오른쪽의 목소리

디저트 만들 줄 아는 녀석 탈락시켜서 만들어 달라 하자.

왼쪽의 목소리

푸하핫! 그거 괜찮겠네! 어디 보자...

오른쪽의 목소리

달달한 거 만들어 달라 시키게 G36 죽여...

왼쪽의 목소리

자꾸 그러니까 나도 포도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졌다. 나도 G36!

WA2000

......

ZB-26

그래서...... 나중에 G36 씨는 정말로 “살해”당한 거야?

WA2000

응, 첫 번째 라운드에서 바로 탈락했어.

하지만 솔직히, 늑대인간이 G36을 죽이려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속으로는 조금 좋아했어.

날씨가 정말 더웠는데 G36 씨가 만든 디저트가 너무 맛있었거든... 유혹을 참을 수가 없어서, 그래서...

ZB-26

괜찮아, 그건 인지상정이니까.

그나저나 늑대인간들이 그렇게 소란을 피웠는데, 발언 기회 때 네가 정체를 폭로할 거란 생각은 안 한 걸까?

어둠 속에서 들은 걸 자세히 설명하기만 해도 주민 진영은 네 정보를 바탕으로 늑대인간 두 명을 특정할 수 있었을 텐데... 그건 꽤 대단한 전과잖아!

WA2000

확실히 그렇지만,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았어...

삐이—

늑대인간의 행동이 끝난 직후, WA2000은 갑자기 비밀 통신 요청을 받았다.

WA2000

95식?

95식

<color=#00CCFF>WA2000 씨, 갑작스럽게 실례할게요! 당신도 방금 이상한 소리를 들으셨죠? 정말 신기하네요!</color>

WA2000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95식

<color=#00CCFF>제 자리가 바로 근처였거든요!</color>

<color=#00CCFF>그녀들의 “밀담”이 너무 노골적이라, 이렇게 심각한 장외 간섭이 있는 상황에선 카리나 씨가 경기를 중단시켰어야 했어요.</color>

WA2000

됐어... 카리나가 이대로 진행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도 일단은 맞춰서 해 보자고...

95식

<color=#00CCFF>그럼 WA2000씨는 이따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모두에게 말씀하실 건가요?</color>

<color=#00CCFF>아주 유리한 증언이긴 하지만, 이런 장외 요소가 섞인 발언은 아무래도 어느 정도 논란이 생길 수도 있겠네요...</color>

WA2000

걱정 마. 장외 요소로 공격하는 시시한 짓은 안 하니까! 난 반드시 녀석들의 발언 속에서 늑대인간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낼 거야!

95식

<color=#00CCFF>그렇군요... 그럼 WA2000 씨의 멋진 추리를 기대하고 있을게요!</color>

띡. 통신이 종료되었다.

ZB-26은 가볍게 턱을 괴고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ZB-26

95식 씨의 통신은 타이밍이 아주 좋았지만... 그런 ‘장외’ 교류도 엄연한 위반 행위야.

분명 스스로 선을 넘었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겐 규칙을 지키라고 언질을 주다니... 이건 좀 불합리하지 않아?

WA2000

맞아, 바로 그 점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갑자기 95식의 통신이 기가 막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왜 그런지 알아?

ZB-26은 WA2000의 자신만만한 미소에 전염된 듯,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경청할 준비를 했다.

WA2000

그때 우리 좌석이 원형이었는데, 내가 딱 늑대인간 두 명 사이에 끼어 있었거든. 그것도 정확히 나 혼자만...

그 말은 즉, 이 현장에서 나만이 늑대 두 마리의 위치를 정확히 특정할 수 있었다는 뜻이야. 다른 애들은 기껏해야 스프링필드처럼 소리 방향으로 짐작하는 게 전부였겠지.

만약 눈을 감고 있던 플레이어라면 AA-12, 나, KAC-PDW 중에서 누가 시민이고 누가 악당인지 어떻게 알겠어?

그런데 95식은 어쩜 그렇게 정확하게 나를 골라 통신을 보냈고, 입을 열자마자 나를 주민으로 단정 지었을까... 이건 그 애가 밤에 눈을 떴다는 증거 아니겠어?

그러니까 95식은 세 번째 늑대인간이었던 거야, 그것도 제 발로 굴러 들어온 늑대!

ZB-26

설마 그런 중요한 단서를 쥐고 있었을 줄이야!

그래서 그 뒤엔 어떻게 됐어? 낮에 발언할 때 모두에게 다 말해줬어?

WA2000

......

WA2000

<size=50>말도 마, 그 얘기만 나오면 화가 치밀어 오르니까!</size>

보안관 선출, 발언 단계.

WA2000

<color=#A9A9A9>젠장... 내 발언 순서가 끝에서 두 번째라니, 너무 불리해...</color>

<color=#A9A9A9>아니야, 일단 진정하자... 우선 현장 상황을 살피면서 애들의 허점을 찾아보는 거야...</color>

카리나

보안관 선출에 출마한 선수들은 차례대로 발언해 주세요.

95식

평소처럼 선출에 참여할게요, 전 주민이에요. 다음 분.

WA2000

<color=#A9A9A9>...거짓말쟁이!</color>

C-MS

난 영매야, 내가 꼭 보안관이 되어야 해! 다들 빨리 나한테 투표해!

WA2000

<color=#A9A9A9>...이러면 정체가 탄로 나는 거 아니야?!</color>

NTW-20

난 그냥 머릿수 채우러 온 거야... 난 무시해 줘.

WA2000

..................

<color=#A9A9A9><size=50>살려줘! 도대체 제정신인 사람이 있긴 한 거야?!</size></color>

Five-seveN

안녕 얘들아, 난 예언가야.

Five-seveN이 여유롭게 일어났다. 단 한 순간에 장내 모든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Five-seveN

어젯밤에 내 오른쪽에 있는 NTW의 정체를 확인했어. 얘는 주민이야.

앞서 발언한 사람들에 대해선 아직 들은 게 없어서, 그들 진영이 어느 쪽인진 판단할 수 없어...

다들 유일한 예언가인 나를 믿고 투표해서 보안관으로 뽑아줬으면 좋겠어, 고마워.

WA2000

<color=#A9A9A9>음... Five-seveN의 말에는 딱히 빈틈이 없는 것 같지만, 늑대왕이 있는 판에선 함정 수사일 수도 있어...</color>

<color=#A9A9A9>잠깐! 곧 내 차례잖아, 저 셋이 늑대인간인 이유를 제대로 생각해 내야 해!</color>

<color=#A9A9A9>그래, 맞아... 장외 요소를 끌어들이면 안 돼... 먼저 쟤들의 행동에 이상한 점이 없었는지 분석하자...</color>

WA2000이 끙끙 고민하던 그때, FAL이 기세등등하게 벌떡 일어났다.

FAL

<size=50>다들 Five-seveN을 믿지 마, 쟤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 내가 이 판의 유일한 예언자라고!!!</size>

방금 안심했던 인형들의 마음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고, 의구심 가득한 시선들이 FAL과 Five-seveN 사이를 망설이며 오갔다...

WA2000

<color=#A9A9A9>으으... 어떻게 해야 논리적으로 저 녀석들이 늑대인간이라는 걸 추론할 수 있지?</color>

<color=#A9A9A9>저 녀석들이 늑대인간이라고 가정하면... 아니아니, 늑대인간이 아니라고 가정하면...</color>

<color=#A9A9A9>......</color>

<color=#A9A9A9>제길!! 하지만 어둠 속에서 진짜로 떠들었단 말이야! 쟤들은 분명히 늑대인간이라고!!!</color>

Five-seveN

<size=50>백랑왕, 자폭! FAL을 데려가겠어!</size>

WA2000

어?!

생각에 잠겨 있던 WA2000은 Five-seveN의 갑작스러운 전개에 정신이 번쩍 들어 현실로 돌아왔다.

카리나

확인했습니다!

큼큼, 본 사회자가 지금 선언합니다. 보안관 선출 단계 종료, 보안관 배지는 소멸합니다. Five-seveN, FAL, FN-49 세 명 아웃!

카리나

이어서, 첫날 밤의 사망자 두 분——G36, WA2000——도 함께 아웃! 유언은 없습니다!

WA2000

<size=50>하아?!</size>

WA2000은 깜짝 놀라 일어났지만, 95식의 기세등등하면서도 부드러운 미소만을 보았을 뿐이었다...

촤악——

WA2000은 분노하며 수면을 내리쳤고, 커다란 물보라가 일었다.

WA2000

지금 생각해도 너무 화나! 모든 걸 알고 있었고, 진실에 그렇게나 가까웠는데, 정말 조금만 더 하면 됐는데...

FAL 그 녀석은 왜 하필 백랑왕을 자극해서 자폭하게 만든 거야?!

게다가 마녀인 스프링필드는 해독제로 G36을 살리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눈이 멀어서 나를 독살하다니!

<size=50>내가 얼마나 중요한 발언을 할 수 있었는지 전혀 모른단 말이야!!!</size>

ZB-26

운명이란 때로 이렇게 무상한 법이지만, 그게 바로 게임의 묘미 아니겠어?

방금 네 이야기를 들으니, 오늘 밤 경기에서 주민 진영이 이길 수 있을지 정말 걱정되네...

WA2000

그게 뭐가 어려워? 통신으로 대충 물어보면 그만이지.

WA2000과 ZB-26은 천천히 해변으로 헤엄쳐 가, 바닷물에 의한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꺼두었던 통신 모듈을 켰다.

띠링—— 띠링——

폭풍처럼 쏟아지는 메시지가 WA2000의 통신 시스템을 가득 메웠다.

WA2000

<size=50>엣?! 읽지 않은 메시지가 200개나 넘는다고?!!! 어떻게 된 거야?!</size>

WA2000이 상세 내용을 확인하기도 전에 지휘관에게서 통신이 걸려 왔다.

WA2000

여보세요... 지, 지휘관?

ZB-26이 수건을 WA2000의 머리에 살며시 덮어주며 머리카락을 말려 주었다.

그때, 갑작스러운 비명이 밤공기를 갈랐다——

WA2000

<size=50>하아??! 머, 뭐라고?!</size>

<size=50>내, 내가 MVP라고???!</size>

WA2000은 너무 놀라 하마터면 총기 가방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ZB-26

WA, 일단 진정해, 조심——

WA2000

그게 아니라, 이건... 그건... 와아아아아악...!

WA2000은 비명을 지르며 통신을 끊어버렸다.

WA2000

그, 그게, 나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갈게! ...금방 올게!

WA2000이 질풍같이 달려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ZB-26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ZB-26

승패에 집착하는 건 생존자들뿐만이 아닌 모양이네...

카리나의 투표소 근처.

WA2000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얼굴을 붉히며 투표소 안으로 들어갔다.

지휘관

아, WA2000, 드디어 왔구나... 아까 시상식 때는 제때 알리지 못해서, 지금 이렇게 초라하게 메달을 건네주게 됐네. 정말 미안해.

WA2000

사, 상관없어... 내가 직접 통신 모듈을 끈 거니까 어쩔 수 없잖아...

<size=25>그보다 네가 나한테 투표할 줄은 몰랐는데...</size>

지휘관

뭐?

WA2000

아, 아무것도 아니야!

WA2000은 얼굴을 붉히며 지휘관의 손에서 메달을 건네받았다.

불이 환하게 켜진 투표소 안에서 MVP라는 세 글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하지만 메달을 앞뒤로 몇 번이나 살펴보던 WA2000의 표정은 기쁨에서 점차 당혹감으로 바뀌었다.

WA2000

잠깐만... 이 늑대인간 문양은 뭐야? 난 분명 주민 팀이었잖아!

카리나

히히... WA2000 씨의 득표 양상이 아주 독특했거든!

지휘관님이 WA2000에게 ‘늑대들의 명패’를 아주 많이 던져주셔서, 결국 승리를 축하하는 의미로 ‘늑대인간’ 문양을 넣기로 결정한 거야!

WA2000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고, 지휘관의 등 뒤로 불길한 기운이 솟아올랐다...

지휘관

저기, WA2000, 절대로 널 놀리려던 게 아니야! 투표할 때 그냥 실수로—

카리나

에이, 너무 따지지 마세요!

‘늑대들의 명패’랑 ‘선량함의 증표’는 똑같이 집계되거든요! 어떤 표를 던지든 상관없잖아요?

결국 WA2000이랑 주민 진영이 이겼으면 된 거죠! 제 말이 맞죠, 지휘관님?

퍽!

딱딱한 메달이 지휘관의 얼굴에 정면으로 날아들었고, 지휘관은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WA2000

<size=50>‘선량함의 증표’랑 ‘늑대들의 명패’가 어떻게 같을 수가 있어?!!!</size>

오늘 내가 게임에서 얼마나 괴로웠는지 알아?!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도 못 하는 기분이 어떤 건지 아냐고?!

너, 너... 나한테 투표해 준 건 그렇다 쳐도, 왜 하필 늑대인간 표로 날 골탕 먹이는 건데?! 너 일부러 그랬지, 처음부터 내 꼴사나운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거지?!

지휘관

<size=50>미안해!!! 아니야! 정말 그런 뜻이 아니었어!!</size>

<size=50>빨리 나 대신 설명 좀 해줘, 카리나— 아, 아니, 넌 설명하지 마!!!</size>

좁은 가판대 안에 WA2000의 분노 섞인 질책이 울려 퍼졌다.

지휘관의 끊임없는 비굴한 사과와 카리나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어우러져, 여름밤의 독특한 풍경을 자아냈다...

......

라이칸의 성역【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