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96
MOD 2
그리폰 지휘실.
그... 예전 주인이란 사람에 대해서 아시는 게 있나요?
과연 지휘관님, 거기까지 알아내셨군요!
그렇군요. 모르신다면 어쩔 수 없죠...
저는... 그 일에 대해서 전혀 몰랐어요.
다 제 불찰이에요...
성대한 공연 준비에만 정신이 팔려서, 조수가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속상해하지 마. 딱히 기밀도 아니니까 내가 알려 줄게.
C96은 헬리안 씨가 데려온 인형이야.
헬리안 씨요?! 예쁘고 정숙한데 아무도 작업을 안 거는 그 헬리안 씨요?!
어... 그 말 절대로 본인 앞에서 하면 안 돼, 알았지...?
아무튼, 헬리안 씨는 그 애를 그리폰으로 데려왔을 뿐이야.
당시에 어느 용병 단체가 해체되면서, 갖고 있던 온갖 장비에 화기까지 다 경매에 내놨다고 해. C96도 그중 하나였고.
예전 주인은 친구랑 한 내기에서 져서 그 애를 산 거래. 용병 단체에서 허드렛일하면서, 가끔씩 적을 꿰어 내는 미끼 역할을 맡기도 했대.
미끼 역할이요?
아,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이 C96을 Red9이라고 불렀어요.
자세한 사정은 나도 잘 모르지만, 순진한 여자애처럼 꾸며서 방심하게 만드는 사이에 포위하는 식이었다나 봐.
심지어는 총을 쥐여 주고 전투에 나간 적도 있다고 하던데... 헬리안 씨가 경매에서 C96을 산 이유도 그 점을 눈여겨봐서겠지.
Red9은 아마 용병 단체에 있던 시절 불리던 코드네임일 거야.
그렇다면... 우리 같은 계약직이 아니라, 완전히 그리폰의 소유인 인형이란 뜻이네요?
그렇지... 하지만 대우는 너희랑 똑같단다? 월급도 받고 휴가도 나간다고.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그 사람이 C96을 찾은 거죠...
혹시, 직장 찾는 걸 도와 달라는 걸까요? 귀여운 C96을 앞장세워서?
음...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요, 지휘관님...
나도 느낌이 좋지 않아.
아무 미련도 없이 팔아버렸으면서, 이제 와서 다시 찾아와서는 도움을 청하다뇨. 한물간 인터넷 소설에서 나오는 쓰레기 전남친 같아요.
그럼... 설마 C96게 나쁜 짓을 시킬 작정일까요!? 강제로 몸을 팔아 돈을 벌게 한다든가...!
큰일이에요, C96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진 않을지 걱정돼서 다른 일에 집중할 수가 없어요...
어떡하죠 지휘관님?!
아무리 흑심을 품었더라도, 몸을 팔게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설마 현역 PMC인 그리폰의 정직원을 납치하고 쉽게 빠져나갈 수 있을 줄 알겠어요?
하지만... 그래도 무슨 조치는 해야 할 것 같아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지휘관님?
......
인파로 북적이는 도시.
으으... 시내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푹푹 쪄요... 옷을 확 벗고 싶은데...
아저씨, 아저씨는 이제 뭐라 불려요? 전처럼 두꺼――
야이씨, 그 역겨운 이름으로 부르지 마! 지금의 난 그때와는 다르다고! "토드"라 불러!
음, 역시 이쪽이 더 폼나지.
엑... 알았어요 토드 아저씨.
젠장, 요즘 도시는 무슨 카메라를 곳곳에 달아놓은 거야?
야 Red9, 옷 벗지 마라.
하지만 너무 덥단 말이에요...
쓸데없이 눈길을 끌면 안 된다고. 탈 없이 한 건 해치워야 한단 말이야...
야, 카메라 위치 다 파악할 수 있지?
네? 네,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카메라를 찾아서 뭘 하려고요?
한 건 해치운다니, 그건 또 무슨...
알아서 뭐 하게. 인형이면 인형답게 얌전히 시키는 대로 하라고.
그치만 그리폰에선 물어보면 가르쳐 주는걸요! 더울 때 옷을 벗어도 아무도 뭐라 안 하는데...
허, 거기선 잘도 지내나 보구먼. 뭐, 어차피 이 일이 끝나는 대로 돌려보낼 거니까.
그리폰 좋아요! 그리폰도, 지휘관도 좋아요.
마침 그리폰에서 사람을 모집하고 있는데, 토드 아저씨도 이력서 넣어 보는 게 어때요?
그딴 규칙으로 숨 막히는 곳에 왜 가냐? 잔말 말고 카메라에 안 찍히는 곳이나 찾아.
그런 곳을 왜 찾아요? 위험한데...
이게 맞고 싶냐?
우으으 때리지 마세요! 사각지대라면 몇 군데 찾았어요...
처음부터 그럴 것이지. 정확히 어디인지 이 전자 지도에다 표시해.
으응... 여기랑, 여기... 그리고 여기요.
이 골목이 괜찮겠군. 가자.
야, 예전에 미끼 작전할 때 요령 아직 안 까먹었지?
기억하는데... 뭘 하려고요?
이따가 내가 지나가는 사람을 지목하면, 네가 가서 도움을 청하는 척해서 이리로 데려와.
네. 그다음에는요?
그다음엔... 당연히 기절시켜야지.
기절시키기! 네네! 그리고 그다...
...엑?! 기절시켜요!?
기절시킨 다음, 돈이 될만한 건 다 뜯어내고 협박 전화로 몸값까지 받아낼 거야.
그건 강도질이잖아요! 저보고 강도질을 도와 달라는 거였어요?!
그걸 말이라고 하냐? 이런 짓보다 큰돈을 쉽게 벌 방법은 없다고. 이거 한 건만 해내면 한동안 굶고 다닐 걱정도 없지.
하... 하지만 이건 범죄예요!
Red9, 내가 너한테 이삿짐 나르는 것 좀 도와 달라 하려고 부른 줄 알았냐?
입 다물고 시키는 대로나 해, 자꾸 말 안 들으면 두들겨 패서 어디 쓰레기통에 처넣어버릴 줄 알아!
아, 안 돼요... 아무리 그래도... 전...
전 이제 그리폰의 정직원이란 말이에요. 무고한 인간을 해친 기록이 남으면...
아 진짜 쫑알쫑알 시끄럽네.
그래, 그리폰&크루거 말이지? 그 회사에 대해선 나도 좀 들은 게 있지.
안 보이는 데서 지저분한 짓을 일삼는다지, 아마? 네 지휘관도 사람 몇 명 담가 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넌 여태까지 인간을 공격한 적 없냐?
없어요! 그런 짓 절대 안 해요!
목소리 줄여.
네 지휘관이란 녀석은 겉으로는 깨끗한 척하는 모양인데, 이름을 암시장 상인들에게서 들은 적도 있다고.
허구한 날 인형들을 보내서 깽판을 치고 다닌다는데, 너 진짜 모르냐?
아니에요, 지휘관은 좋은 사람이에요! 지휘관을 헐뜯지 마세요!
헛소리 말고 일이나 똑바로 해. 너도 내 밑에서 일한 경험 아니었으면 그리폰에 들어갈 수나 있었겠어?
아... 안 되는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C96은 고개를 끄덕였다.
망했다...
그래, 인형이 인간의 명령을 거역하면 안 되지.
그, 그치만 지휘관님이 위험한 일은 하면 안 된다고...
위험한 일 아니야, 그냥 돈 좀 받는 거지. 길가에서 구걸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니까.
나 참,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말라고.
...그래, 그럼 약속하면 되겠냐? 이번 딱 한 번만 할게. 누굴 해치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돈만 조금 받으면 그걸로 끝이야.
돈을 얻는 대로 바로 외국으로 뜰 거니까, 네가 잡힐 일도 없을 거다. 됐어?
그래도...
명령에 복종한다, 실시!
히익... 시, 실시!
번거롭게, 그냥 처음부터 윽박지르면 될 일이었네.
음... 그래, 저기 저 여자로 하자. 보이냐? 저 붉은 머리.
C96은 울상을 지으며 토드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붉은 머리... 붉은 머리 여자...
앗!?
얼른 가!
토드가 골목 밖으로 떠밀어서, C96은 균형을 잃고 목표물 앞에 넘어졌다.
어머나? 어디 안 다쳤니?
와아, 귀여운 꼬마네~
아, 안 다쳤어... 그런데, 너...
화려한 옷차림의 여성은 C96에게 손을 내밀며 활짝 미소 지었다.
나? 난 그냥 지나가던 댄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