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3
MOD 4
단말기 화면이 쉬지 않고 깜빡이며, 그리폰 게시판의 "식당 신메뉴"에 관한 인기 댓글이 올라왔다.
EVO3는 한숨을 쉬면서 화면을 아예 꺼버리고 쓸쓸히 창고 구석에 쪼그려 앉았다.
자신을 고집하는 것...
나는 대체, 어떤 대장이었을까...?
EVO3 씨! 여기 계셨군요!!
정말 대단하세요!!!
M45는 앞치마도 벗지 않은 채 돌풍처럼 달려와 EVO3의 손을 잡았다.
꿈에도 몰랐어요... 식사빵이 G36 씨한테 선택받으리라곤 생각도 못해봤는데!
우으으... 정말 잘 됐어요! 제 소망이 마침내 이루어졌어요!
축하해! 이것도 다 M45 씨의 솜씨가 좋아서지.
아참, 저번에 식사빵 1000개는 팔아야 한다고 중얼거리지 않았나요?
이제 그것도 같이 해결됐으니 서로 윈윈이네요! 해피 해피!
응... 그럴지도.
......?
뭔가 고민이 있으신 것 같네요... 무슨 일 있나요?
조금 머릿속이 복잡해서...
그래서... 스콜피온 소대원이 "진정한 EVO3 씨"를 받아들이지 못할까봐 걱정하시는 건가요?
응. 사실 나 요리엔 별 흥미가 없어. 대원들이 바라는 좋은 대장이 되고 싶어서, 길을 잘못 들어 플러그인이란 샛길로 빠진 거야...
전에 케이크를 만들 때면, 머리는 텅 비워놓고 플러그인을 켜서 그게 내 팔다리를 조종하도록 내버려두고...
이상하게 들리지?
음... 저는 플러그인을 써본 적이 없어서 어떤 느낌인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대장으로서 대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시간과 기력을 쓰는 마음 자체로도 충분히 훌륭해요!
그렇게 대단한 건 아냐, 그냥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뿐이지.
하지만 이 이틀 동안의 경험으로 다른 생각이 들었어——
만약 어느 날, 내가 정말 이 플러그인들을 버리고 원래의 평범하고 내세울 것 없는 인형으로 돌아가도...
대원들은 여전히 나를 인정하고 반겨줄까?
그 고집스러운, 단순히 식사빵을 좋아하는 그 사람들처럼...
EVO3 씨는 대원들을 믿나요?
음, 잘 모르겠어...
하지만 저는 EVO3 씨를 믿어요!
EVO3 씨의 성실함이 G36 씨의 마음을 움직인 것처럼, 대원들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요!
대원들은 언제 돌아오나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
어라, 저기요? 지금 어디로 데려가시는 건가요?!
......
저녁, 그리폰 카페.
스콜피온 소대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여러분이 사랑하는 소대장, EVO3를 뜨거운 박수로 환영해주세요!
오오!
대! 장! 대! 장!
도르르...
정교한 손수레가 은색 덮개로 덮은 "히든 메뉴"를 싣고 카운터 뒤에서 나타났다.
오래 기다렸어.
이 덮개를 열기 전에 먼저 너희에게 말할 것이 있어.
스콜피온과 CZ2000는 반듯이 앉아, 기대하는 눈빛으로 EVO3를 바라봤다.
스콜피온 소대의 대장으로서 부끄럽지만...
사실 나는 케이크도 만들 줄 모르고, 옷도 지을 줄 몰라...
지금까지 너희에게 만들어줬던 것들은, 다 플러그인이라는 꼼수를 동원해서 만들어낸 "성과"야.
......
하지만 요 이틀 사이에 나는 깨달았어.
평생 거짓된 칭찬과 기대 속에 살기보다는, 모두가 진정한 EVO3를 봐줬으면 한다고...
그래서 한번 노력해 봤는데... 보고 비웃지 말아주길 바라.
EVO3는 다소 쑥스러워하며 덮개를 열었다, 엉성한 모양의 초콜릿 케이크가 접시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표면에 바른 크림은 두께가 고르지 않아, 듬성듬성 안의 케이크 빵이 엿보였다. 주변에는 군데군데 흘러내린 초콜릿 파우더가 떨어져 있었다.
이건 내가 플러그인을 포기하고, M45 씨의 지도를 받아 열심히 만들어 본 첫 번째 케이크야.
많이 엉망이지만, 그래도 우리 대원들이 한 입 먹어줬으면 해...
EVO3는 케이크를 두 조각 잘라서 스콜피온과 CZ2000의 접시 위에 담았다.
그런데 평소 게걸스럽게 음식에 달라붙던 두 녀석은 식기를 들지 않았다.
대장... 사실 우린 대장이 케이크를 만들 줄 몰라도 괜찮아.
대장은 언제나 우리 마음 속 1번이니까!
위로해주는 건 고맙지만...
대장, 아직 기억해요?
우리 셋이 처음으로 임무에 나갔을 때, 스콜피온 이 덜렁이 녀석이 무작정 돌진해가지고 ELID를 잔뜩 끌어왔잖아요. 그야말로 워킹 데드가 따로 없었다고요!
다행히 대장이 당황하지 않고 탈출 경로를 정확하게 판단해서 지금 우리 둘이 살아있는 거잖아요!
그날부터 저는 대장의 사생팬이 됐어요! 대장을 우리 대장으로 인정했다고요!
제 영원한 대장이에요!!
하아? 내가 덜렁이라고?
너도 전에 어느 임무에서 적한테 인질로 잡힌 적 있잖아?!
대장이 어떻게든 구출하지 못했으면, 지휘관이 놈들한테 몸값을 내고 우리 소대 완전 망신당할 뻔했다고!
뭐라고오...? 네가 저지른 게 더 많으면서!
웃기시네! 너야말로 우리 소대 애물단지지!
그만 그만! 둘 다 그만.
조용히 케이크를 먹어, 어서!
스콜피온과 CZ2000은 서로 콧방귀를 뀌고 등을 돌리더니, 동시에 숟가락을 집어 케이크를 크게 한입 떠먹었다.
...어때?
스콜피온과 CZ2000은 서로 의미심장한 시선을 교환했다.
저기... 대장, 혹시 설탕 넣는 거 깜빡했어요?
어? 정말로?
EVO3가 케이크를 작게 한 조각 잘라서 꼭꼭 씹어먹어 보았다.
...제법 달지 않아?
에에? 전혀 안 단데!?
어떻게 된 거야! 우리 대장, 소체 바꾸더니 미각이 고장난 거 아니야!?
이거 어떡하지, CZ2000?
그렇네... 이렇게 하면 되겠다!
앞으로 대장이 매일 케이크를 만들고, 우리가 옆에서 맛을 봐주면 되잖아!
그러니까 내쫓지 말라고요, 대장?
EVO3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난 케이크 만드는 거 안 좋아하는데...
그럼 그 플러그인 우리한테 주든가. 우리가 만들고 대장이 먹으면 되지!
아무튼 우리 스콜피온 소대는 영원히 함께야!
영원히...
응, 영원히!
두 작은 몸이 EVO3의 품을 가득 채웠다.
카페의 부드러운 불빛 아래, 스콜피온 소대가 단란하게 서로 껴안았다.
고마워...
EVO3가 살며시 입술을 움직였다.
한 테이블 너머에서, M45는 상냥하게 웃고서 조용히 자리를 비켰다...
다음 날, 지휘실.
이건 신규 소체 정식 수령 합의서, 다른 하나는 구 소체 파기 합의서.
각각 2부씩 해서 총 4부. 여기에 서명 부탁해.
슥슥...
거침 없는 펜끝이 종이 위를 누비며 깔끔한 잉크 흔적을 남겼다. "EVO3".
됐어.
카리나는 미소 지으며 서류를 한번 쭉 검토한 뒤, 갑측 보관용 1부를 가져갔다.
히히... 축하해, EVO3!
생각 바꿀 줄 알고 있었어! 사서 빚을 지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빚하고는 관계 없어.
스콜피온 소대가 나를 인정해줬으니 그걸로 충분해.
그렇지! 아마 기지 전체를 찾아봐도 EVO3 말고 스콜피온 소대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아무튼, 새로 태어난 것을 축하해! 내가 사실 그대로 지휘관님께 보고할게.
그럼 부탁할게, 카리나.
아 참, 며칠 전 미식 페스 아르바이트의 보수는 나왔어?
응? 그건...
지금 G36이 심의 중이니까, 금방 나올 거야!
알았어, 그럼 부탁해.
카리나는 조마조마한 듯 양손을 비비면서, EVO3가 사무실에서 나가는 걸 눈으로 배웅했다.
상대가 멀리 간 것을 확인하자, 그녀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슬금슬금 문을 잠그고 옆에 꽂아둔 통신기를 집었다.
......
보아하니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 모양이군요.
히히... 전혀 눈치 못 챘다니까!
발주 의뢰를 EVO3가 따내게 해서 자신감을 주고 나아가 깨달음을 주자는 작전!
이것도 다 G36이 신경써 준 덕분이야!
그 점에 대해서는... 표현에 어폐가 있군요.
저는 딱히 신경써준 점이 없습니다. 식사빵의 발주 역시, 모두 객관적인 사실에 기반하여 공정한 평가를 내렸을 뿐입니다.
EVO3 씨의 변화는 순전히 그녀 스스로 얻어낸 깨달음이죠. 저의 공로가 아닙니다.
그래 그래... G36은 언제나 공정하니까!
맞다, 방금 EVO3가 이야기한 급여에 관해서, 살짝 G36이랑 상의하고 싶은데...
이제 EVO3는 딱히 빚을 갚기 위해 일할 필요도 없어졌잖아. 그런 푼돈 정도는 그냥... 예를 들어 식당 명의로 기지에 기부한다든가 그런 건...?
통신 창 너머로, G36의 가벼운 탄식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10분 전, 이미 인보이스를 지휘관님께 전달하여 수리받았습니다.
저는 아직 처리할 업무가 남아있으니, 이만 끊겠습니다.
삐익.
역시 공정무사의 화신 G36이네...
탁자 위에 앉아있던 카리나는 다시 일어서서 지휘실의 문을 열었다.
어휴, 뭐 됐다!
아무튼간에 EVO3의 소체는 완성됐으니까! KPI 하나 채운 거지 뭐!
오늘 점심은 닭다리 하나 추가할까...
응! 그걸로 결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