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type
MOD 1
최고의 식재료는 최고의 보석처럼 모두의 눈길을 끌기 마련이다.
보석의 반짝임은 상자로 덮을 순 있지만, 식재료의 향기는 상자로 덮을 수가 없다.
두 그림자가 돈의 향기를 맡고 끌려와 같은 문 앞에 걸음을 멈췄다.
너도 눈치챘구나, 최근 숙소에서 풍기는 이 그윽한 향기를.
캐비어는 아니지만 꽤 센스가 있어... 네 방에서 풍기는 건 줄 알았는데.
두 인형이 고개를 들고 문에 적힌 이름을 보고선 눈을 의심하며 몇 번이고 확인했다.
구두쇠로 이름난 92식이잖아, 이게 말이 되나?
아직 모르지, 걔가 음식 재료에 얼마나 깐깐한지도 알잖아.
두 인형이서 긴가민가하던 때, 갑자기 누가 둘을 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두 인형 틈 사이에서 한 작은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둘이서 뭘 우물쭈물하고 있었던 거야...? Bonjour, 92식!
92식은 뜯던 중인 택배 봉투를 내려놓고 세 불청객을 바라봤다.
다음엔 먼저 노크하고 들어와.
AAT52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냄새 좋다, 대체 뭐야?
92식은 함부로 물건을 만져대는 AAT52의 손을 툭 쳐냈다.
곧 단오절이니까, 직접 쫑즈를 만들려고 재료를 샀지.
쫑즈? ...그 퍽퍽하고 딱딱한 물건 주먹밥 말이야? 작년에 한 입 먹고 다 버렸는데.
버렸다고!? 확실히 창고에서 일괄로 뿌린 냉동 쫑즈라 56-1식이 아닌 이상 먹기 힘들 거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92식은 "너무 낭비잖아"라고 소리지를 충동을 겨우겨우 참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실례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나는 올해 받은 명절 보너스로 직접 완벽한 맛의 쫑즈를 만들 거야.
재료들은 모두 특별 주문한 최고급품으로, 거기에 쫑즈 전용 압력솥까지 샀다고.
다 만들면 좀 나눠줄 수 있을까? 듣자 하니 내 품격에도 맞을 것 같은데.
그걸로 단오절의 자신의 품위를 과시할 생각이지? 이 교활한 녀석. 나도 살 거야, 값이라면 걱정 마!
92식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재료의 양이 한정적이라 많이 싸지 못할 텐데...
이만큼 낼게.
흥, 고작 그 정도냐. FAL이 얼마를 내든 나는 두 배로 낼게.
두 인형은 서로 지지 않겠다고 경매를 시작했다, 옆의 92식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눈치채지 못한 채...
더 올려라 더 올려... 내가 이 악물고 복도에 향신료를 뿌려서 끌어왔으니까...
92식이 당연히 이렇게 비싼 재룟값을 안 아까워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직접 만드는 쫑즈인만큼 약간의 의식감을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92식은 일부 쫑즈를 FAL과 PPD-40에게 팔아서 지출을 메꾸자는 생각을 떠올렸다.
음, 이제 둘 다 나눠줄 테니까 싸우지 말라고 할 때네.
자자, 둘 다...
그때, 갑자기 터진 비명이 92식의 목소리를 덮었다.
와아아악! 넘어진다!!
모두가 잊고 있었던 AAT52가 또 주특기인 맨땅에 넘어지기를 시전했다.
게다가 이번엔 손에 92식이 뜯다 만 택배 봉투를 들고 있었고, 안의 화초가 봉투 안에서 떨어졌다.
내 화초...!
AAT52는 재빨리 택배 봉투를 잡으려 했다가, 바닥의 동글동글한 화초를 밟고 말았다.
그대로 미끄러져 넘어진 AAT52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망했다, 화초를 밟아서 92식이 날 죽일 거야...!
AAT52는 저항을 포기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처형 직전의 몇 초는 마치 백 년처럼 느껴졌다.
...어라?
AAT52는 자신의 머리를 만져봤다, 아직 목에 붙어있다. 팔다리도 멀쩡하다.
용기를 내어 눈을 떠보니, AAT52는 다른 세 명의 시선이 화초에 고정되어 있고, 모두 질색하는 표정인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시커멓게 번진 저질품이 네가 말한 최고급 재료야?
그, 그럴 리가. 화초의 품종, 생산지, 품질, 가공법 모두 엄선했는데!
이번 건은 다시 생각해봐야겠네, 역시 마구잡이로 만든 저질 음식이야...
잠깐 기다려봐...
92식의 해명도 기다려주지 않고, FAL과 PPD-40은 고개를 저으며 방에서 나갔다.
미안해...
닥쳐, 너는 이따가 손 봐주겠어.
92식은 입술을 깨물고 그 화초 봉투를 집었다. 봉투에는 눈에 박히는 세 글자 "초와자"가 마치 소리 없는 조롱 같았다.
이딴 쓰레기로 나의 계획을 망치다니... 용서 못해!
화가 치밀어오른 92식은 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생상측과 유통회사 모두 규정을 엄수하여 일을 처리했다 알리바이를 제출하며 "초와자"는 듣도보도 못했다고 말했다.
92식이 택배 배대지의 감시 카메라까지 찾고 나서야 약간의 실마리를 찾았다.
크기와 모양이 완전히 똑같은 화초 소포가 있잖아? 아마 누가 잘못 가져간 모양이야...
92식은 녹화 영상을 수차례 되감아 재생했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계속 같은 뒷모습에 가려져 누가 자신의 택배를 가져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92식은 아무 성과 없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92식이 화풀이할 곳을 찾지 못해 짜증을 부리던 그때 어느 눈치 없는 녀석이 그녀를 건드렸다.
...56-1식?
92식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카리나가 단오절에 보너스를 뿌릴 때 가장 야단법석이었던 게 56-1식인 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56-1식은 92식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었다.
그러고선 카리나의 다리를 부둥켜안고선 떼를 썼다.
다른 수 없어요? ...작년의 남은 쫑즈로도 괜찮으니까요!
방금 그건 날 도발하는 건가... 쫑즈로 다시 고치겠다고? 꿈깨!
하지만 92식이 나서기도 전에 56-1식의 떼쓰기는 바로 실패했다.
작년 거를 먹을 수 있는지는 둘째치고... 매년 남은 쫑즈는 네가 다 먹어치웠잖아?
그쵸, 우으으으으...
56-1식 뜻대로 되지 않아서 다행이네, 만약 그랬다면...
녀석을 쫑즈와 함께 삶아서 먹었을 거야.
56-1식은 자신이 목숨을 건진 것도 모르는 모양인지, 관심어린 눈빛으로 92식을 바라봤다.
92식, 설마 너한테 충격이 그렇게 클 줄은 몰랐어... 하지만 날 믿어, 나도 네 기분 완전 이해하니까.
56-1식이 진심을 담아 위로를 하니 92식은 잠깐 벙쪘다.
...네가 내 기분을 어떻게 안다는 건데?
혹시 AAT52가 소문을 퍼뜨렸나?
에이, 당연히 알지! 내가 너한테 선물도 챙겨왔다고.
56-1식이 화초 한 봉지를 꺼내서 92식에게 건넸다.
56-1식 이 단세포 녀석이 이렇게 내 심정을 알아준다고?
92는 살짝 감동하고 화초를 받아 한 줌 집어 문질러봤다.
확실히 품질이 좋은 화초였다, 모양, 색깔, 향 모두 1등급이여서 92식은 살짝 감탄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화초는 아무데서나 구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아무때나 산다고 살 수 있는 게 절대 아니야...
92식은 어떤 추측이 떠올라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어디서 난 화초야?
56-1식은 92식 손 위의 화초의 향에 취한 듯이 맡으며, 의기양양하게 영수증을 꺼냈다.
헤헤, 품질 괜찮지?
오늘 택배로 도착한 건데, 내가 링크 줄까? "초와자"라는 가게야!
초, 와, 자?
......
그 익숙한 이름은 바로 92식의 센서를 건드렸다.
그 쓰레기 이름이잖아? 설마 이 멍청이가 내 화초를 가져간 거야?
그러고 보니 감시 카메라를 가린 그 뒷모습도 별모양 머리끈을 묶고 있었던 것 같던데...
92식은 성질나서 손안의 화초를 뭉개버리고 56-1식을 붙잡았다.
당장이라도 56-1식의 뼈를 갈아버릴 충동을 억누르면서 일단 말이라도 들어보기로 했다.
너 택배를 제대로 확인하고 가져간 거 맞아?
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56-1식은 해명하질 않았다.
너 평소 그렇게 시끄럽더만, 지금 겁먹어서 말이 안 나오는 거야?
92식의 예상과 달리, 56-1식의 표정은 엄청 이상하게 변하더니, 다음 순간...
에에에에에에... 에취!! 에취!!
화초 가루를 머금은 56-1식의 재채기가 튀었다. 92식은 피하지도 못하고 정면으로 맞고 말았다.
너 뭐야, 지저분하게...!
56-1식은 92식의 손바닥을 가리키면서 연달아 기침했다.
92식은 그제서야 56-1식이 그녀 손에 묻은 화초가루를 마신 것을 깨달았고, 자신의 추측을 더욱 확신했다.
그렇게 나오겠다? 범행이 들통나니까 지저분하게 굴면 내가 널 못 건들줄 알고?!
그럼 내 택배를 가로챈 걸 자랑하지를 말던가!? 대체 네 마인드맵엔 뭐가 든 거냐고, 56-1식!?
내가 놓친 장사를 물어내애애애——!
에취! 에취! 잘 안들려! 지금 뭐라고?
에엑... 에취! 안 되겠다, 나 코 씼으러 갈게! 안녕!
어딜 그딴식으로 발빼려고 해! 거기 서——!
...결국 92식은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을 뿐더러 심신 양면의 대미지를 받았다.
한편, 비록 56-1식이 이번에도 목숨을 건지고 빠져나갔지만, 강호에서 원수를 졌으면 결국엔 업보를 받게 될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