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type
MOD 3
심야, 그리폰 숙소.
【92식 vs 56-1식 복수대작전 제1편】
92식의 눈동자에 수많은 사이트 링크가 비쳤다.
이 이틀 동안 92식은 각 온라인 쇼핑 사이트의 재고량, 유저수, 입고 시각, 매진 시간 등 데이터를 자세하게 통계했다.
그리고 데이터를 종합하여 구매 경쟁 난이도 순위표를 작성했다.
92식은 망설임 없이 난이도 1위를 선택해 사이트 링크를 56-1식에게 전송했다.
고마워하라고, 너를 고생시키려고 내가 대신 잔뜩 공부했으니까...
92식, 이 링크는 뭐야?
쫑즈 재료 구매 사이트야, 난 이 사이트의 품질만 믿어.
히이이익!? 이렇게 비싸? 게다가 수량 한정이라니, 이 트러플 50몫밖에 없어...? 이걸 누가 정말 산다고?
맞아, 새벽 5시에 입고해서 매진되면 끝나.
이걸 사는 사람이 있는진 네가 직접 체험해 봐. 내일 결과 보고하는 거 잊지 말고.
92식은 싱긋 웃으며 통신을 끊었다.
이 정도론 아직 싱겁지, 56-1식의 발을 더 묶어야 돼.
92식은 권한 범위 내의 모든 데이터 포트를 호출했다.
새벽 4시 반이면 이 포트들은 자동으로 공용 네트워크를 통해 그리폰 매 주년 파티 8K 화질 영상을 다운로드 받을 것이다, 이는 필시 인터넷 속도를 크게 떨어뜨릴 것이다.
응, 이 시간대면 지휘관이나 다른 사람한테 안 들키겠지.
아참, 하나 더 있지. 이렇게 재밌는 광경은 기록해 둬야지.
......
다음날, 92식이 꼼꼼하게 배치해둔 카메라는 56-1식이 신호를 찾기 위해 버둥거리는 각종 자세를 충실하게 기록했다.
창밖에 매달리거나, 옥상 피뢰침 위에 물구나무를 서거나 온갖 웃긴 꼴이 다 있었다.
물론 마음씨 넓은 92식은 일부 영상을 익명으로 사내 게시판에 올렸다.
날이 어두워 누구인지 알아볼 수가 없고, 굉장히 엽기적인 자세로 그리폰의 괴담으로 퍼지기까지 했다.
이렇게 작업을 잔뜩 했지만, 구매 경쟁의 힘겨움을 호소하는 56-1식에게 92식은 계속 무덤덤한 반응을 유지했다.
92식, 사이트에 사람이 그렇게나 많고, 인터넷은 느려터졌는데 너는 어떻게 다 산 거야?
다 단련해서 기른 실력이지.
그리고 56-1식의 탄복하는 눈빛을 즐겼다.
【92식 vs 56-1식 복수대작전 제2편】
이른 아침.
92식은 개운한 기분으로 주방에서 길 잃은 어린 양을 기다렸다.
56-1식은 아무 자각도 없는 듯, 입에는 전병을 씹으면서, 손에는 도시락을 네다섯 통이나 들고, 전혀 타격이 없어 보였다.
잘 잤어, 92식! 내가 네 아침밥도 가져왔어!
아무래도 장보기만으론 56-1식을 무너뜨릴 수 없나 보네...
괜찮아, 상대가 끈질겨야 재미가 있으니까, 진짜 어려운 건 이제부터라고.
응, 다 먹으면 빨리 자리에 위치에, 오늘의 연습을 시작할 거야.
이 며칠 동안 56-1식은 대다수 시간을 조리대 앞에서 댓잎을 쥐고 쫑즈를 싸는 데 썼다.
겉보기에는 한계를 목표로 하는 요리 훈련 같지만, 92식에게 이건 트집 잡기 놀이에 가까웠다.
크기, 면적, 각도, 무게...
트집이 정당한지 여부는 사실 중요하지 않고, 56-1식의 각종 당황하는 표정을 감상하는 것이 중요했다.
어, 안 돼, 이건 못생겼어, 다시 싸.
그래, 그거야, 더 억울해하라고.
으에에... 이걸로 9999번째란 말이야. 92식, 좀 봐줘라...
이딴 걸 쫑즈라고 해? 대충 타올 두르는 거랑 무슨 차이야?
...마음껏 독설을 쏟아내는 것도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92식도 몇 번 56-1식을 인정해줄까 망설였다.
56-1식이 쫑즈를 싸는 솜씨는 확실히 빠르게 성장해서 트집을 잡기가 갈수록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초 56-1식이 얼마나 얄미웠는지를 떠올리면 잠깐 떠오른 연민심은 바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쫑즈를 싸는 방법부터 플레이팅까지, 재료의 비율하고 잎사귀의 모양까지...
다 자세히 연구해서 요리사의 각종 능력을 깐깐하게 요구할 수 있어.
어디 네가 먼저 무너지나, 내가 먼저 질리나 두고보자고, 56-1식.
【92식 vs 56-1식 복수대작전 제3편】
92식에게 연습 성과를 수십 번이나 기각당하고, 56-1식은 마침내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56-1식에게 마지막 일격을 먹이기 위해선 역시 음식을 건드려야겠지...
벌써 연속 열흘이나 식당 영업시간을 놓쳤단 말이야 으에엥... 너무 배고파, 내보내줘!
내가 만족할 정도로 싸야 내보내줄 수 있어.
그러지 말고, 지금 냄새난단 말이야, 지금 밖에 홍소육, 라조기, 바삭한 오리구이의 냄새가...
핑계 대지 마.
너는 못 맡은 거야, 92식? 저 기름기 가득한 향기를!
당연히 나지, 내가 문밖에 둔 거니까.
그런가? 재료 냄새가 아닐까?
56-1식은 간절하게 문밖을 바라보지만 92식에게 조리대 앞으로 질질 끌려갔다.
92식은 턱을 받치고서 56-1식이 음식의 유혹을 견디는 괴로운 표정을 감상했다.
...안 되겠어!
정말 잘못 맡은 거라 해도 내가 직접 확인하겠어!
92식이 잠깐 한눈판 사이 향기에 군침이 입 안에 가득 고인 56-1식은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그 무엇도 맛있는 음식을 향한 내 사랑을 막을 수 없어!
56-1식이 문을 박차고 그토록 바라던 요리를 향해 달려가는 걸 내버려 두면서 92식은 카메라의 녹화 버튼을 슬쩍 눌렸다.
누가 거기에 음식을 둔 건지도 모르면서 56-1식은 바로 허겁지겁 입에 넣었다, 바삭하고 고소한 오리 껍질의 향이 입 안에...
우웨에엑...!
이거 왜... 화초투성이야!!
56-1식은 벽을 짚고 막 구역질하다가 바닥에 떨어진 오리 뱃속에 시커먼 화초가 가득 차있는 걸 무심코 보고선 뱃속이 또 울렁거렸다.
흥, 너의 "초와자"가 드디어 쓸모를 발휘했네.
【92식 vs 56-1식 복수대작전 반격?】
밤, 92식은 침대에 누워서 이 한 달간 이어진 작전 기록을 되살피기로 했다.
장보기든 쫑즈 싸기든, 56-1식은 잔뜩 시달려서 죽을 맛이었다.
화초를 뺏긴 원한도 56-1식이 대가를 치르게 했다.
좋아, 자기 전에 56-1식의 개그 영상을 다시 감상하자고.
92식은 습관적으로 팔을 뻗었지만 거기에 카메라는 없었다.
아뿔싸, 주방에 두고왔나 보다. 누가 그걸 보기라도 한다면...!
92식은 헐레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달려갔다.
하필이면 이때 주방 안에 누군가 있었다.
이 늦은 시간에 누가 주방에 있는 거야...
......
56-1식!?
엇, 92식? 너 무슨 일이야?
56-1식이 들고 있는 건 틀림없는 92식의 카메라였다.
내용을 본 건가!? 안 그래도 내가 잔뜩 괴롭히고 있는 걸 눈치챘을 텐데...
혹시 지금 나한테 다시 보복하기 위해 저 카메라로 내 명성을 실추시킬 생각일까?
그 생각에 92식은 바로 56-1식 품 안의 카메라를 뺏으려 했다.
56-1식은 깜짝 놀라 몸을 틀어 92식의 공격을 피했다.
뭐하는 거야, 92식?
92식은 대답하지도 않고 56-1식의 발을 걸었다.
56-1식은 그대로 식탁 위에 넘어졌다, 만세 자세로 들어올린 손엔 아직도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92식은 이어서 연속 공격을 퍼부었고, 56-1식은 식탁 위를 구르며 공격을 피해 식탁 한쪽 끝에서 반대 끝까지 공방전을 이어갔다.
그러다 92식의 빗나간 일격이 식탁에 내리쳤다.
쿵!
아차!
무심코 쫑즈 소를 담은 항아리를 건드렸고, 항아리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바로 그때, 56-1식이 몸을 굴려서 한쪽 무릎을 땅에 꿇고서 이빨로 항아리 입을 물었다.
92식은 잠깐 멍했다가, 바로 무거운 항아리를 받아서 식탁 위에 도로 올려놨다.
너 치악력이 대단하네.
헤헤, 이 정도쯤이야. 양 통구이도 물어서 들어올릴 수 있다고, 92식의 쫑즈 소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너...
그렇게나 진심으로 쫑즈를 신경쓰고, 내가 억지로 보복하는 걸 모르는 건가?
이 수준의 지능으론 화초를 잘못 가져가고 쫑즈를 훔쳐먹은 것도 고의가 아니겠지...
92식은 고개를 막 흔들었다, 바보한테 진지해진 자신까지 바보처럼 보였다.
아참, 카메라... 그거 돌려줘.
이거 네 거였구나, 방금 이게 삑삑하고 울리길래 뭔가 했지.
그래서 살펴보니까 배터리가 나간 것 같더라, 걱정 안 해도 돼.
92식은 카메라를 받아서 살펴봤다. 확실히 켰던 흔적은 없었다.
그럼 방금 왜 막 피하고 그래?
네가 이걸 가져가려고 하는 건 줄 몰랐지. 왜 갑자기 날 때리나 했고.
네가 때리는데 당연히 피해야지, 내가 바보도 아니고.
잘도 바보가 아니란 소리가 나오네...
그래서 이 늦은 시간에 주방에서 뭐하고 있었던 거야?
그게 매일 밤 주방에서 몰래 연습하고 있었어...
그래서 겨우겨우 지금 이 정도 수준이지, 물론 92식에 비하면 한참 멀었지만.
56-1식은 말을 줄줄 이어갔다, 92식의 성격이 좋다, 요리 실력이 대단하다 등등 진심어린 칭찬을 쏟아냈다.
흥, 다 입에 발린 말이지...
92식은 고개를 돌려 쫑즈를 아무거나 하나 집어 자신의 감정을 감췄다.
자세히 살피니 92식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각이 살아있고 완벽 대칭한 모양의 이 쫑즈는 가장 엄격한 기준으로 봐도 트집 하나 잡을 수 없었다.
가장 복잡한 방법으로 한 달 내내 자신감을 타격했으면서도...
56-1식은 꾸준히 노력해서 실력을 이렇게나 키워냈다.
......
이 한심한 난리극도 그만 끝내야지, 내일로 끝내자.
결정을 내린 92식은 숙소에 돌아가 고민했다.
그리폰 게시판에 올린 56-1식의 녹화영상도 모조리 지웠다.
이 영상들은 역시 나 혼자서 즐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