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MB93
MOD 1
험준한 절벽 사이로 일사불란한 발걸음이 가득했고, 그 위로 일렁이는 초연이 바다괴물처럼 주위를 맴돌았다.
완전무장한 사람들은 붕괴 복사와 자욱한 안개 속을 헤치며 조용히 달리다, 로브를 두른 인물 앞에 멈춰 섰다.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만종이 준비되었구나...
자아, 이제 진혼곡을 울려 퍼뜨리자! 우리의 울분을 토해내자!
두 자루의 열쇠가 사슬을 끊고 길을 열어, 우리를 그린존이라는 미래로 인도하리니!
열쇠는 두 자루, 하나라도 성공한다면 웃는 것은 우리 "레퀴엠"일지어다!
콰――앙――!!
그리폰, 전술인형 마인드맵 수복실.
시스템 가동 - 논리 모듈 동기화, 상태 분석 중...
당신의 모델명은?
RMB-93...
복창합니다, "모닝 엔젤".
...모닝 엔젤.
당신이 왜 여기 왔는지, 이유를 압니까?
...압니다.
테스트 준비 완료.
식별명 RMB-93. 경찰 특별작전팀의 의뢰 임무에서의 명령 위반으로, 마인드맵 테스트를 실시합니다.
이상의 사항을 이해했습니까?
이해했습니다.
마인드맵 테스트를 시작합니다.
테스트 1. 당신은 개인의 판단이 사전에 구상된 계획보다 우선이라 생각합니까?
그리폰 작전 자료실.
최근 조직되어 장기간 C3 지역을 점거 중이던 반체제 무장 집단 "레퀴엠"이, 점점 더 빈번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에 인근 그린존의 경찰 특별작전팀이 여러 차례에 걸쳐 무력 제압을 시도했지만, 이렇다할 성과는 얻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해당 지역에서 극심한 무력 충돌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오니, 각 지휘관님께선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보다시피, 최근에 "레퀴엠"이라는 폭력 조직이 출현했어. 구성원은 그린존 입경이 여러 번 거부된 난민이 대다수고, 상황은 지금 뉴스에서 설명한 대로야.
그리고 우리가 얻은 첩보에 따르면, 놈들은 약 3시간 후에 그린존의 정화 시설을 파괴해서 안으로 돌입하려 한다고 해. 너희의 임무는 그걸 저지하는 거야.
그 테러범들, 저쪽에서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리가 만무하니 그런 초강수를 두는 거겠지?
일단은 특수작전팀도 상황이 심각해지지만 않으면 협상을 고려 중이래.
그럼 상황이 심각해지면?
일이 더 커지기 전에 해결해야지. RMB, 현재 상황 보고해.
하하, 그렇게 불쑥 나타나는 것도 이제 다 익숙해졌네~
마카로프였다면 벌써 잔소리부터 한 트럭 쏟아냈겠지만.
네 반사 신경은 거의 장거리 탄도 미사일급이구나...
아무튼, 그 테러리스트들이 강하게 나왔다 이거지?
목표는 그린존의 정화 시설이래. 첩보로 확인한 폭약만 해도 웬만한 가옥 10채는 가루로 만들고도 남을 양이야.
그래? 조금 흥미가 생기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아? 그놈들 목적이 그린존에 들어가는 거라면, 왜 거기의 유일한 정화 시설을 박살내려는 걸까? 죽어도 같이 죽겠단 심본가?
이유야 나중에 알아보면 되지. 당장은 테러를 막는 게 급선무야.
그렇다면야. 카리나, 시간 얼마나 남았어?
어... 2시간 50분.
우리 승산 있기는 해?
정 걱정되면 3시간 전으로 돌아가서 준비하든가.
둘 다 자신감 넘치네~
이만 출발하도록 해, 난 여기서 계속해서 상황을 전달해 줄게.
예상 폭발 시각까지 앞으로 1시간 47분.
RMB-93과 M1887은 목적지인 정화 시설의 외부 지점에 도착해, 열원을 탐지하며 "레퀴엠"의 종적을 샅샅이 수색했다.
...스캔 완료, 생명체 반응 무.
이상한걸...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곧 잿더미가 될 곳에 사람이 남아있을 리가 없잖아.
특수작전팀이 벌써 대피를 끝마친 건가?
그리폰의 전술인형인가? 여기는 특수작전팀이다, 지금 어디――
현장이야.
알았다, 보아하니 설명은 생략해도 되겠군. 현재 이 작전의 지휘자는 나다. 너희는 내부로 진입해 폭탄을 찾아내, 해체하는대로 철수하도록.
알았어.
정화 시설 내부.
폭발까지 앞으로 57분.
한 차례의 수색으로 ,RMB-93과 M1887은 어렵지 않게 설치된 폭탄을 찾아냈다. 하지만 그걸 살펴보던 RMB-93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왜 그래?
이거, "크레이들"형 폭탄이야.
그게 뭔데?
간단히 설명하자면, 폭탄을 해체하면 이게 가동해서 신호 범위 안의 다른 폭탄을 기폭시키게 되어 있어.
응... 모의훈련 때 처리해본 거랑 똑같으니까 틀림없어.
성가시게 됐네.
빼도 박도 못하는 추가 업무지? 지금부터는 특근 수당을 3배로 받아야겠는데~
그렇게까지 계산을 해야 하는 건가...
이봐 오퍼레이터, 문제가 생겼어.
설마 벌써 폭탄이 터졌다는 건 아니겠지?
풋, 의외로 유머 감각 있는 사람이네. 우리가 그렇게 못미덥나? 이거 무시당했는걸~
나도 정시 퇴근하고 싶으니까 얼른 무슨 일인지나 말해.
응? 저기——
무선 "크레이들" 폭탄이야. 무작정 건드렸다간...
하나를 해체하면 다른 하나가 폭발하겠군. 귀찮은 짓을 하는구만...
아무튼 그렇게 됐어. 이제 한 시간도 채 안 남았는데...
나머지 폭탄의 위치는 파악했나?
아니, 하지만 신호의 출력으로 봐선 멀리 있진 않을 거야.
알았다. 폭탄 해체는 중지. 거기서 다음 지시를... 그래, 마침 거기 있으니 반경 3km에 차단선을 구축하도록.
차단선? 누굴 막으려고?
그야 당연히 난민들이겠지. 하아... 폭탄까지 터지게 생겼는데 위험수당 더 받아야겠는걸?
폭탄을 내버려두고 차단선을 세우라고? 이 정화 시설이 파괴되면 이 그린존은 끝장이야. 저들이 그걸 모르진 않을 텐데.
음... 일단 카리나한테 연락해 보자.
여기는 그리폰. 지금 상황 어때?
아무래도 추가 근무에 위험 수당도 추가로 받아야 할 것 같아.
정보 받았어. 음... "크레이들" 폭탄이라... 특수작전팀도 다른 폭탄이 어디 있는진 모른대?
신호의 출력이 약해서 근처에 있는 것만은 확실해.
어휴 참, 이 테러리스트들 정말 이판사판으로 부...
...힐 생각...가 보...
응? 여보세요? ...통신 교란?
아아, ...디어 연...됐나. 애먹이는 채널이군. 크흠... 안녕하신가, 그리폰의 귀빈 여러분.
그린존의 심판자들이 우리의 걸작에 골치를 썩이고 있겠지?
...?!
이건 기밀 채널인데?
당신 누구야? 무슨 속셈이야? 대답해.
하, 과연 인형이나 할 질문이로군. 역시 기계는 독선적이야.
이런 짓으로라도 그린존에 들어갈 생각이걸랑 꿈 깨셔.
그럼 특별히 말해 주지. 이 옐로우존의 난민들은 오직 우리 "레퀴엠"만이 모든 것을 치유하리라 믿고 있다.
거지 꼴로 붕괴 복사에 천천히 죽어 가는데도 배척받을 바에야, 차라리 "진혼곡"의 음표가 되겠다면서...
참 유감이네, 우리가 예상한 그대로의 헛소리라서.
그럴지도. 하지만 네가 놓친 것이 있다. 그리고 마침 우리는 아직 오늘 밤의 주인공을 정하지 않아서 말이지...
어서 각자 자리에 앉으라 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시간상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군.
우린 너네 "파티"에 어울려 줄 생각 없거든? 특수작전팀도 마찬가질 테고.
본디 초대를 받은 건 그들이다만, 대신 이렇게 너희가 와 주었지. 진심으로 감사한다, 덕분에 실험이 더욱 가치 있어질 거야.
RMB-93이 M1887에게 시선을 줬지만, M1887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신호원 분석 실패. 생각보다 교활한 놈들이야.
너희 눈앞의 "크레이들" 폭탄은 그저 에피타이저일 뿐. 메인디쉬는 북동쪽 2시 방향에 있는 특수작전팀의 세이프하우스에 있다.
하지만 명심하도록, 이건 원래 그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야.
...아, 복구됐다!
괜찮아? 방금 대체 어떻게 된 거였어?
채널이 해킹당했어, 예비 채널로 전환해.
자, 작전용 통신 채널에 끼어들었다고? 그 정도의 해킹 실력까지 있다니...
녹음 파일은 전송했어. 다만, 아무래도 그 세이프하우스를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
RMB, 준비됐어?
응, 언제든... 엥? 잠깐, 나 혼자 가라고?
이 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곳에 있는 것이 "크레이들"의 나머지 폭탄일 거야.
그리고 우리 둘 중 폭탄 제거의 전문가는 너지.
차단선 설치와 주위 경계는 내가 맡을게.
도저히 반박 불가능한 논리네...
신중에 신중을 기하도록 해. 이 임무, 점점 심상찮게 느껴져.
걱정 마, 너도 나도 보통 인형은 아니잖아?
폭발까지 남은 시간 - 28분.
특수작전팀의 세이프하우스.
RMB-93은 곧바로 진입하지 않고 문앞에 서서, 실내의 동향을 파악했다.
RMB-93이 M1887에게. 지금 세이프하우스에 도착했어.
M1887 수신. 정화 시설 주위의 봉쇄 완료했고, 나도 방금 막 위험 반경 밖으로 철수했어. 하지만 특수작전팀에서 아직도 움직임이 없는 게 걸리는걸.
정말이지 엄청 까다로운 클라이언트네... 아무튼 지금부터 돌입할게.
유사시엔 즉시 보고해.
RMB-93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세이프하우스에 돌입해, 방을 살펴봤다.
어? 저건...!
텅 빈 방 한가운데에, 웬 여자아이가 전선 케이블에 꽁꽁 묶인 채로 나무 의자에 앉혀져 있었다.
앗...!
안심해, 구하러 왔어. 이름이 뭐니?
으아아앙...
위험하니까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기다려, 언니가 금방 풀어 줄게.
훌쩍... 아...
어머, 이거 갖고 싶어? 자, 줄 테니까 괜찮다고 할 때까지 얌전히 있으렴, 알았지?
RMB-93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목걸이를 벗어 여자아이에게 걸어 주었다.
애도 달랬으니 일에 집중해야지.
마음에 드니?
응.
그게 놈이 말한 "메인디쉬"인가...
똑같은 "크레이들"형...
뭐라고!?
틀림없어.
칫... RMB, 함부로 움직이지 마. 당장 특수작전팀에게 연락할게.
특수작전팀, 여기는 그리폰. 응답 바란다, 소대원이 다른 폭탄의 위치를 확인했다. 지시 바란다.
그...폰, 이... 됐다. 이후... 처리......
뭐지? 또 통신 교란인가?
저쪽에서 뭐래? 이제 몇 분 안 남았어!
...리폰? 그......, 응답... 젠장, 이 말... 들리면 ......
불안정한 통신은 결국 완전히 끊어졌고, RMB-93에겐 M1887이 통신을 재시도하는 소리만 들렸다.
1887! 이제 정말 시간 없어!
그 담당자한테 통신이 불가능해. 제기랄, 지휘관과 카리나에게도 신호가 닿질 않으니...
...잠깐, 저건... 특수작전팀의 장갑차잖아? RMB, 폭탄 처리반이 왔어. 이제――
무슨 일이 있든 내가 임무를 완수하겠어!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임무는 폭탄 해체를 중단하고 차단선을 구축하는 거야.
크레이들 장치의 다른 폭탄을 찾아내서 어떻게 처리할지는 특수작전팀의 책임이고.
이 애 두고는 절대 못 가!
RMB, 우리 임무는 끝났어. 판단은 작전 지휘권을 가진 저쪽의 몫이야. 우린 다른 폭탄을 찾아내란 명령도 받지 않았어.
폭발까지, 앞으로 47초... 46초...
저쪽이 폭탄의 해체를 시작하면 네 위치의 폭탄이 폭발할 거야.
언니... 나 숨 막혀...
괜찮아, 언니가 지금 바로――
RMB-93! 당장 거기서 이탈해! 명령이야!
앞으로 30초... 크레이들 장치의 신호 범위 밖으로 나가기엔 늦었어... 그럼, 남은 방법은...
RMB! 너 지금 무슨 생각해!?
언니...!
특수작전팀... 아직 여기 가까이는 안 왔지?
너 설마! 안 돼!!
똑딱이는 시계 소리가 모두의 통신 채널에 울렸고, 오직 한 사람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모든 것이 멈췄다.
콰아앙!!
......
그것이 너희의 "선택"인가...
기계는 결국 기계로군. 무고한 인간을 해치지 못하도록 설정된 이상, 눈앞의 상황밖에 안 보이겠지.
하하하, 참 아름다운 위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