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S12
MOD 1
어느 여름날의 오후, 그리폰 임시 기지의 인형들 몇 명은 탕비실에 흩어져 앉아 애프터눈 티타임을 즐기는 중이었다.
그래서, 너희도 들었어? 한밤중에 기지를 어슬렁거린다는 유령 얘기.
그런 헛소문에 휘둘릴 여유 있으면 전술 연습에나 더 집중해.
그럼 오늘 아침 건물 밖에서 발견된 발자국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깊이를 보니까 적어도 200kg은 되겠던데!
......
왜 나 쳐다봐! 여자의 몸무게는 비밀이라지만 나 절대절대저얼때 200kg이나 되진 않거든!?
그렇게 항변하며 SPAS-12는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쿠키를 테이블에 다시 내려놓았고, 도자기 접시도 다시 조금 늘어난 무게에 달그락 불평을 했다.
지휘관이랑 내기 했어, 이번 주는 간식 입에 대지도 않겠다고.
...이런 걸 보고 허무맹랑한 소리라 하――
그랬구나!
이쪽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Saiga 308의 이야기에 빠져있던 P30이 대뜸 외쳤다.
Saig 308 말이 맞아! 그리폰에 "이물"이 들어온 게 틀림없어!
난 어젯밤에 그 유령을 본 거야!
자리의 인형들 모두 마시던 차를 내렸고, SPAS-12도 소파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젯밤?! 어디서!?
어젯밤에 2층에 있었는데, 인기척이 들려서 밑을 내려다봤더니 아무도 없었어. 그런데 잠시 후 1층으로 내려오니까 문이 열려 있었어!
그냥 그 타이밍에 누가 나간 게 아니고?
아니야, 그 다음 갑자기 내 뒤의 계단 불이 켜졌는걸! 바로 돌아봤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단 말이야.
으음... 진짜 유령 같네.
그리고 그 잔디밭의 발자국은 내가 내려다본 창문 바로 아래에 있었다고! 분명해, 내가 어젯밤 본 건 "그리폰의 유령"이야!
그러고 보니 요새 한밤중에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이 많긴 해.
난 말이지, 지휘관을 도와 나쁜 풍조를 바로잡으라고 윗선에서 파견한 인형이야. 그런데 이렇게 그리폰의 풍기를 어지럽히는 놈이 나타났다고?
그렇다면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놔둘 수 없지! 오늘밤 나와 함께 이 신출귀몰한 유령을 잡으러 갈 사람, 있어?
나!
난 빠질게, 내 총 정비해야 해서.
야 AR-57, 왜 자꾸 네가 무서워 보인다는 말 나오는지 알아? 사람들이랑 안 어울려서 그래!
어쨌든 단체 활동은 친화력 상승에 좋은 기회야.
...이번만이야.
SPAS-12는?
어휴... 싫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
Saiga 308은 중앙으로 걸어가, 안경을 치켜올리고 당돌하게 선언했다.
좋았어, 그럼 "그리폰 심야 초자연 현상 단속반" 결성! 새벽 1시에 다시 여기서 보자!
그날 밤. 낮의 화창하던 하늘은 온데간데 없이, 어디선가 밀려든 구름이 달을 가려 창밖까지 온통 시꺼매졌다.
다 왔지?
아니, SPAS-12가 아직 안 왔어. 설마 겁먹었나?
또 어디서 야식 먹느라 늦는 건 아니고?
아, 그러니까 생각났다. 너희 전에 같이 불법 인형 개조 공방 쳐들어갔을 때 SPAS-12가 너한테 케이크를 던졌다며?
윽... 기억나게 하지 마...
2주 전, 어느 도심가.
지정 위치에 도착, 현재 이상 무.
좋아, 그럼 이번 임무 다시 확인할게. 이번 임무의 목표는 불법 인형 개조 공방의 제압이야. 민간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관련자를 모두 체포해야 해.
놈들 중 전술인형까진 아니어도 전투용 개조를 한 인형이 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번화가에 위치한 곳인 만큼, 만약 무력 충돌이 발생한다면 외부로의 피해를 최소화해 줘.
라저.
그럼, 안전에 주의하면서 속전속결로 처리해.
표정이 왜 그래?
길모퉁이의 서점의 2층 발코니에서 「홈 베이킹 입문」을 들고 염탐 중이던 SPAS-12가, 맞은편의 불이 꺼진 카페의 간판을 보며 아주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으으음 시작부터 문제 발생이야, 목표 바로 앞에 카페가 있어...
제보자의 정보에 따르면 저 카페의 사장이 바로 불법 개조 공방의 운영자야.
평소엔 평범한 카페지만, "사업"을 할 때면 창고의 뒷문을 통해 지하에 있는 비밀 공방으로 간다고 해.
뭐어? 그래도 믿기 어렵네, 이렇게나 눈에 띄고 손님이 많이 드나드는 곳인데 불법 사업을 한다니...
앗, 저기 봐! 누가 들어갔어!
어디선가 나타난 소녀가 문을 열고 카페로 들어가, 창고의 뒷문 너머로 사라졌다.
헝클어진 긴 머리와 푹 눌러쓴 야구 모자 때문에 소녀의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인간인가? 정보엔 없었는데... 일이 귀찮아졌는걸, 지금 우린 인간을 제압할 권한이――
...그 케이크, 어디서 났어?
대체 언제 어디서 났는지, SPAS-12의 손에 딸기와 체리로 장식된, 현재 상황에 매우 부적절하다는 것만 빼면 정말 맛있어 보이는 새하얀 생크림 컵케이크 한 상자가 들려 있었다.
이거? 저기 길모퉁이에 있는 디저트 가게에서 샀어. 딸기 케이크 되게 잘하는 집인데 너도 하나 먹을래?
AR-57는 눈꼬리를 파르르 떨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현장에 인간이 있어서 무력을 행사하기 어렵겠어, 만약 피해가 겉잡을 수 없어지면――
이 카페 아주 유명한 데야, 헤이즐넛 카라멜 라떼는 갓 구운 헤이즐넛을 다져서――
......우리 지금 임무 수행 중이야.
아이 그러니까, 나 저 카페 단골이라고.
그래서, 소체를 개조하려는 손님으로 위장해 잠입했다?
솔직히 나도 그놈이 우릴 손님으로 믿었다는 게 아직도 신기해. SPAS-12가 아무리 봐도 그리폰에서 나온 것 같지가 않아서였으려나?
역시 SPAS-12야. 전부터 내가 뭐랬어, 걔는 역시 부업으로 맛집 탐방 블로거를 하면 아주――
맛집 탐방!?
마침내 SPAS-12가 도착하자, P30이 소파에서 뛰어내리고 삿대질을 했다.
이거야 원 SPAS-12! 11분이나 지각하다니!
미안해~ 핑계 대는 건 아니지만 일이 좀 있었거든.
모두 모였으면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말자, 오늘밤 그리폰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밤의 유령을 찾아내야 해! 출발!
어디로?
......글쎄?
아무리 어쭙잖은 단체라도 그럴 듯한 명목은 있는 법. 그래도 다행히, 한밤중의 괴담 같은 것을 조사하는 데에 치밀한 계획은 필요하지 않았다.
......
............
..................
또 같은 자리야...
왜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목적도 없이 돌아다녀? 그냥 보안 카메라 영상을 확인하면 되는데.
지휘관이랑 카리나가 지난달에도 여길 방문했어서 보안 영상을 열람하려면 둘한테 신청부터 넣어야 해. 겨우 이런 일로 귀찮게 하기엔 미안하잖아.
밤에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첫 번째 목격담이 나온 날부터 계산한다면, "그리폰의 유령"이 돌아다니기 시작한지 2주나 됐는데 단 한 번도 경보가 울린 적이 없어.
유령이 아니라면 기지에 있는 누군가의 장난일 테니, 둘의 시간을 뺏기는 좀 그래.
귀신은 그림자도 안 보이고, 지루해 죽겠다아...
오늘은 이만 철수할까? 유령이라니 솔직히 안 믿기잖아.
동의해. 이렇게 계속 늦게까지 돌아다니면 우리가 괴담의 주인공이 되어버릴걸.
......
아까 얘기하다 말았는데, 어쩌다가 SPAS-12가 임무 중에 케이크를 너한테 던진 거야?
?
아앗! 그거 그냥 사고였어!
...그 케이크 좀 내려놓으면 안 될까?
카페 지하에 숨겨진 불법 공방은 바닥이 쏟아진 엔진 오일 때문에 미끄럽고, 곳곳에 온갖 부품이 산을 이루는 등 그야말로 난잡하기 짝이 없었다.
이 아수라장 속에서, 벌써 손에 컵케이크가 2개밖에 남지 않은 SPAS-12는 코를 찌르는 엔진 오일 냄새도 식욕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 듯했다.
그치만 아깝잖아~ 그리고 지금 우린 손님이라구.
저기요, 케이시 씨? 당신과 친구분이 전술인형이란 건 사장님한테도 못 들었는데요.
공방의 두목으로 보이는 훤칠한 인형이 창고에서 나와, SPAS-12가 사장과 소통할 때 사용한 가명을 대며 물었다.
아아 신경쓰지 마세요, 무기를 개조하러 온 게 아니거든요.
저는 좀 가벼운 소체로 바꾸려고 왔고요, 제 친구는...
...아, 안면 부위를 좀 더 착해 보이도록 고치고 싶어요. 미소를 지을 때 치아가 8개 정도 드러나면 좋겠어요.
흐으음... 뭐, 그러시다면야. 걱정 마세요, 우린 어떤 요구도 만족시킬 수 있답니다.
먼저 공방을 좀 구경할 수 있을까요? 제 얼굴을 맡기는 건데, 믿을 수 있는지 보고 싶은데요.
여긴 창고입니다, 보시다시피 시중의 거의 모든 소체용 자재까지 완비되어 있죠. 만약 특별 요청 사항이 있다면 저희 사장님이 어떻게든 들어주실 겁니다.
이쪽이 작업실입니다. 야! 이리 와!
......
밖에서 본 그 소녀였다.
저희 정비사입니다.
인간...? 작업 정확도가 인형보다 떨어지지 않나요? 전문성이 의심되는데요.
아 글쎄 걱정 마시라니까요, 인간이지만 실력만큼은 저희 가게에서 제일 좋은 에이스예요.
그리고 정확도라면 시술을 보조하는 전문 인형이 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럼 이곳 정비사는 다 인간인가요? 특이하네요.
아뇨, 가게에 인간은 이 "앤" 하나입니다. 손님이 사장님이랑 친하셔서 솜씨가 제일 좋은 얘를 추천해 드리는 거예요.
지원을 부를 필요는 없을 것 같아, AR-57과 SPAS-12는 나지막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 바퀴 살펴본 결과, 이 불법 인형 개조 공방은 무기를 소량 갖췄지만 그리폰의 전술인형에게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무력 투사에 문제가 되는 인간이 한 명뿐이라면, 미리 현장에서 빼돌리기만 하면 될 터였다.
얘, 앤? 잠깐 이리 와볼래?
......
가 봐.
사장님이 이 녀석은 하루가 멀다 하고 비싼 커피 먹으러 오는 호구니까 잘 접대해 주랬어.
...안녕하세요.
열대여섯 살밖에 안 되어 보이는 소녀는 옆의 남자가 무서운 듯 고개를 떨구었다.
그런 그녀의 장갑을 끼지 않은 손은 손톱 사이사이가 검은 얼룩으로 더럽고 손가락 마디도 부자연스럽게 굵어서, 매일같이 거친 일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 애가 우리 몸에 손 댈 자격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데, 괜찮죠? 단둘이서 얘기 좀 할 테니 따라오지 말아 주세요.
네? 아니 잠시만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남자가 눈짓하자, 입구를 지키던 전투인형이 총구를 들어올렸다.
케이시 씨, 저희 가게는 정직함을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 소체를 개조받으러 왔다면 그냥 개조만 받고 가세요. 다른 건 저도 사장님께 말씀드리기가 곤란하거든요?
보시다시피, 저희가 경영 정차에 약간의 문제가 생겨서 말입――?!
얼른 데려가.
가뜩이나 무뚝뚝한 얼굴이 더욱 차가워진 AR-57이 문을 지키던 인형을 한 발로 해치웠다.
결국 이쪽에서 방아쇠를 당긴 꼴이 됐지만, AR-57의 판단이 옳았다. 현장에 인간인 앤만 없으면 저 쓰레기들을 해치우기란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
가자!
AR-57이 태도를 바꾼 순간, SPAS-12은 소녀의 팔을 잡아 끌었다.
자, 잠깐...!
소녀의 제지를 듣지 못한 SPAS-12는 손을 잡고 문으로 달려갔다.
화력이 이 애한테 미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흥.
하지만 그 순간 앤은 실이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주저앉았고, 갑자기 뒤로 잡아당겨진 SPAS-12는 급제동을 걸었지만 그대로 미끄러져 버렸다.
재수없게도 바닥의 엔진 오일 웅덩이를 밟은 것이었다.
그리고 새빨간 체리로 장식된 마지막 컵케이크가 그녀의 손을 벗어나, AR-57의 뒤통수를 향해 날아가...
결국 AR-57은 폭발하고 말았다.
왜애... 아직도 케이크를 들고 있는 거야!!
하지만 SPAS-12는 이번엔 AR-57의 말을 듣지 못하고 황급히 쓰러진 소녀부터 살폈다.
괜찮아!?
바닥에 주저앉은 소녀는 식은땀으로 젖은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갈색 눈동자에서 고통이 역력했다.
아으윽...
총성도 없었고 상처도 보이지 않았지만, 소녀의 고통은 연기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런 와중, AR-57이 공방을 안내한 인형도 쓰러뜨리면서 재촉했다.
왜 그래? 빨리 그 애 데리고 나가.
그렇게 말하는 사이에도 AR-57은 인기척을 듣고 달려온 인형들을 두 명 더 해치웠다. 보아하니 한두 명으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SPAS-12는 소녀를 번쩍 안아 들고서, 문을 박차고 나갔다.
"앤"은 몸에 초소형 전기충격기가 심어진 채로 공방에서 강제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었어.
사장 놈이 어떻게 당시 상황을 모니터링했는지는 몰라도, 도망치려는 걸 보고 충격기를 켜서 무력화시킨 거지.
애가 너무 불쌍하다...
너보다 키 큰 사람을 "애"라 부르긴 좀 그렇지 않아?
...키 크다고 마인드맵도 성숙한 건 아니거든?
두 인형들이 말다툼을 벌이려는 낌새에, SPAS-12가 냉큼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앤은 당분간 치료를 겸해서 우리가 보호하기로 했어! 카리나가 육아원에 연락했으니 다음주면 데리러 올 거야.
꼬맹이 돌보긴 보통 일이 아니지, 음음.
그 애가 새로운 집에서 마음 편히 살았으면 좋겠어.
저기, 이렇게 밤에 순찰하는 목적을 잊진 않았겠지? 뭐 찾아낸 거 있어?
아니. 근데 솔직히 말야, 온지도 얼마 안 된 "임시" 기지인데 어떻게 유령이 있어? 그냥 누가 몽유병이라도 걸린 거 아니야?
우리가 이런 지도 벌써... 1시간이나 됐네.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냥 해산하는 게 낫지 않을까?
동의.
이 녀석들이――
그때, 날카로운 금속 마찰음이 고요한 밤의 정적을 깨뜨렸다.
위층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