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beyrolles
MOD 3
1개월 후, 현재.
여기는 PPK~ 작전 개시 전에 마지막으로 상황 확인할게~
웰로드 수신, 현재 뒷문에 도착했다.
작전 내용을 재확인한다. 너는 목표의 행적 및 경위를 조사, 나는 목표 위치를 수색. 이상 없지?
정확해. 사전 준비도 완료됐고, 위장도 아주 순조롭게 마무리됐어.
추적기도 문제 없나?
응, 아주 멀쩡해.
알았다. 그럼 나는 지금부터 목표 지점의 중앙 통제실로 잠입한다. 사전 계획대로, 너에게 문제가 발생할 경우 내가 바로 작전 지휘권을 인계받겠다.
OK~
좋아. 그럼 구출 작전, 개시.
돌아가지 못하면... 내가 사라진 걸 알까...?
툭하면 입원해서, 몇 개월이나 기지에서 안 보여도 아무도 모르겠지...
하아... 설령 알아채도 이 쓰레기가 어디로 도망쳤나 생각하겠지...
역시 튼튼한 몸 같은 건 내겐 환상이었어... 다 사기극이었어... 훌쩍...
풋.
어... 넌 누구니...?
여기 있는데 누구겠어? 너처럼 속아서 갇힌 신세지.
아... 그, 그럼 이름이 뭐야...?
몰라, 이젠 기억도 안 나. 아무 의미도 없어졌고.
그냥 너 좋을대로 불러. "야", "너", "저기", "떠돌이"... 다 상관없어.
여기서 얼마나 있었어...?
글쎄다. 한 달? 1년? 10년? 갇혔는데 그런 거 따져서 무슨 의미야.
...우리, 이대로 죽는 거야?
흥, 인간의 특권을 우리가 어떻게 누려?
우린 그저, 드라이브 정리 과정에서 점점 더 구석탱이로 쫓겨날 뿐이겠지.
이 빌어먹을 곳에서 죽지도 못하고 사는 거야, 영원히.
그래, 마인드맵 따위가 무슨 상관이야? 소체가 멀쩡하게 움직이면 됐지. 위대하신 인간님들은 소체의 마인드맵이 정상인지, 원래대로인지 아무 관심도 없는걸.
하긴... 나 같은 건 아무도 신경쓰지 않겠지...
만약 지금 자신의 소체였다면, 리베롤은 펑펑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때, 이 영원히 살게 된 레벨 2 플랫폼의 어딘가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여기가 "탄식교"인가?
어... PPK...? PPK!
환영합니다 고객님, 탄식교 전속 상담원 1968번 "앤젤"입니다.
첫 방문에 스페셜 코스를 이용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고객님의 취향에 따라 설문을 작성해 주시면, 그에 가장 적합한 소체로 배정해드리겠습니다.
상담원의 목소리를 들은 리베롤은 곧장 소리질렀다.
안 돼요 PPK!! 이 사람들 사기꾼이에요!!
흐응~ 인형을 위한 심리 치료가 이런 거였어요?
그렇습니다. "자신과 전혀 다른 소체를 빌려 완전히 다른 생활을 체험하면서, 원래의 생활 속에서 받던 근심걱정을 벗어던지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이것이 저희 클리닉의 방식입니다.
고객님의 본래의 신분을 내려놓고, 소체의 제약이나 복잡한 인간 관계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실 수 있습니다.
어떠한 심적 부담 없이, 자신만의 롤플레잉을 마음껏 즐겨 주십시오.
속으면 안 돼요――!!
리베롤의 외침은 전해지지 않았다. 플랫폼의 그녀와 PPK 사이에 두껍고 투명한 벽이 있는 것만 같았다.
손님들이 빌려 쓰는 소체는 다 클리닉 소유겠네요?
맞습니다. 대여해드리는 소체는 하나하나가 고객님이 최고의 경험을 하실 수 있도록 저희 클리닉이 특별 주문 제작한 것입니다.
그렇군요, 얼른 시작해보고 싶네요.
이 설문지를 작성해 주십시오.
PPK!
어떡해... 어떡하면 좋지...
어우 귀청이야... 시끄러우니까 소리는 지르지 말아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그리고 헛수고야, 쟤한텐 우리 목소리 안 들려.
이쪽이랑 저쪽은 단절돼서, 우리가 저쪽을 보고 들을 순 있어도 저쪽은 우리가 여기 있는지도 몰라.
......
PPK... PPK...
리베롤은 하염없이 자신의 외침을 듣지 못하는 PPK를 불렀다.
초조함과 무력함이 리베롤의 마음을 교차했지만, 시간은 이를 아랑곳않고 흘러갔다.
작성 다 됐어요.
감사합니다. 고객님의 요구 사항에 알맞는 소체가 배정되었습니다. 바로 권한을 개방하겠습니다.
이용 시간은 24시간이며, 잔여 시간이 20분 미만이 될 시 알림 연락을 드리니 주의해 주십시오.
20분이라, 알았어요.
그럼, 부디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안 돼... 다 끝났어...
그렇게 우울해하지 마.
저 녀석도 푹 빠지게 되면, 결국 여기로 와서 네 말동무가 되어 줄 테니까.
안 돼!
다 나 때문에... PPK는 분명 날 찾으러 온 거야...
그리폰의 모두가... 날 버리지 않았구나... 우에엥... 다 나 때문이이야, 나 때문에 PPK가...
자의식 과잉 아니야? 저런 애가 뭣하러 널 찾...?
잠깐, 그리폰? 너 그리폰&크루거의 전술인형이었어? 허이구, 난데없이 월척이 낚였네.
아니야! PPK는 절대 안 속아! 그리폰의 인형들이 다 나 같진 않다고!
PPK도 나랑 달리 엄청 활기차서... 나... 나 같은 타입의 인형이 아니야...
PPK는 내가 사라졌단 걸 알아챈 거야... 우으으...
그래, PPK가 이딴 사기 수단에 속아 넘어갔을 리가 없어... 분명 날 찾으러 온 거야...
흥.
너 여기 처음 왔을 때부터 봤어.
그때부터 상상했지, 마지막엔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고 말이야.
여기엔 너 같은 인형 많아. 버려졌는데도 헛된 희망이나 한가득 품으면서 기다리던 머저리들.
"날 걱정하고 있을 거야", "날 찾고 있을 거야", "분명 날 찾아 구하러 와 줄 거야" 하면서.
다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지.
사라지면 버려지고 잊혀지는 게 인형의 숙명이야. 전자제품이랑 다를 바 없어.
사기당해서 이런 데에 갇히는 게 아니더라도, 결국 시대의 흐름에 밀려 도태되어 버리지.
결국엔 다 똑같아.
아니야... 그건 아니야!
그럼 왜 여기에 너밖에 없는데? 다른 인형은 어딨어!
다 포기하고 숨어버렸거든. 난 남 놀리는 게 좋아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고.
저, 정말 그렇더라도... 백 번 양보해서 네 말대로 날 걱정하는 사람도 없고, 기억해 주는 사람도 없더라도...
PPK가 나처럼 몸을 잃는 걸 가만히 두고볼 수만은 없어!
정말? 내심 쟤가 너처럼 되길 바라진 않고?
그러면 적어도 쟤가 널 놀리진 않을 거 아니야. 결국엔 똑같아지는데.
아니야, PPK는 나 놀린 적 없어! 기지의 모두가 나한테 잘해줬다고! 이런 허약하고 병든 몸에, 툭하면 병원에 가야 하는데도... 아무도.... 지휘관님도...!
아무도 날 놀린 적 없어!
......운도 좋아라.
그러니까... PPK까지 나처럼 몸을 잃고 영영 이곳을 떠돌게 놔둘 수 없어.
그래도 금방 쟤가 네 길동무가 되어 주길 바라게 될걸?
여기 온 지 얼마 안 돼서 모르나본데, 금방 알게 될 거야. 인간이랑 마찬가지로, 고독이 인형한테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그것 못된 생각이야... 난... 난 PPK가 나처럼 되게 하기 싫어.
나는 이대로도 참을 수 있어. 어차피 쓰레기였는걸... 하지만... PPK가 나처럼 된다면, 절대 못 참아...
쟤랑 친구 사이야?
아니... 아는 사이긴 하지만 친구라고 하기엔...
그런데 왜 쟤를 걱정해?
...병약한 게 얼마나 괴로운지 아니까, 버려진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아니까.
PPK가 나처럼 되지 않았으면 해.
훗.
난 너랑 다른데. 난 더 많은 인형이 이렇게 버려진 기분을 느껴봤으면 좋겠어.
너...!
발버둥 쳐봤자 헛수고니까 그만 포기해.
애초에, 우린 문제 있는 인형이라서 이런 사기에 보기 좋게 넘어간 거니까.
그만해! 더는 안 들어!
PPK와 연락할 방법을 꼭 찾고 말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PPK를 나 같은 신세가 되도록 놔두지 않겠어!
그리폰 기지.
검사해봤는데, 소체에 바이러스가 심어져 있네. 리베롤의 마인드맵 의식도 감쪽같이 사라졌고.
아무래도 이 바이러스가 그 애의 의식이 소체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막는 거겠지.
이쪽 창고엔 낡은 부품밖에 없다. 놈들이 확보한 소체는 전부 "영업"에 투입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탄식교"에도 접속 완료. 이 레벨 2 플랫폼, 생각보다 헛점이 꽤 많군. 지휘관, 기술 지원을 요청한다.
둘 다 잘하고 있어. 무슨 일이 있어도 리베롤을 되찾아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