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beyrolles
MOD 4
"탄식교"란 이름의 레벨 2 플랫폼에서, 자신의 원래 소체를 잃은 두 인형이 한 좁은 문 앞에 섰다.
아 진짜, 왜 내가 널 도와줘야 하냐고.
동병상련이란 말도 있잖아...
같이 외부에 연락할 방법을 찾아서, 소체를 되찾자... 응...?
누가 너랑 같은 처지래?
난 이대로도 괜찮거든? 조용하고, 평화롭고, 이따금씩 너 같은 머저리 놀리는 재미로 잘 살고 있는데.
내게 자아와 의식이 생긴 후로, 지금이 가장 즐겁단 말이야.
거짓말.
네가 정말 즐겁다면... 지금 이렇게 갇혀 있지 않았을 거야.
......
네 이름은 여전히 모르지만, 네가 전혀 즐겁지 않다는 건 알겠어.
...예전의 나처럼.
네 말대로 우리 모두 문제가 있는 인형이라 이런 사기에 속아 넘어간 거야.
너, 한 달 내내 아주 우울해 죽으려 하더니 왜 갑자기 이렇게 적극적이게 됐어? 그 PPK란 애 때문에?
응... 날 찾으러 온 거야.
쯧.
아직도 그런 헛된 희망을 품고 있니? 오래갈수록 더 안 좋으니까 얼른 단념해.
진심이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PPK 같은 애가 이런 사기에 속을 리 없어.
분명히 날 찾으러 여기까지 온 거야.
정말 유치해서 웃음이 다 난다 야.
그럼, 우리 내기하자.
내기...?
내 소체는 진작에 고물이 돼서, 조각조각 분해된 채로 창고에 버려졌거든?
인형이든 인간이든 정말 누가 널 찾으러 온다면, 그 소체의 권한을 너한테 줄게. 그럼 쟤한테 연락도 되겠지?
정말...? 약속해?
나 아직 말 안 끝났어. 하지만 만약 아무도 널 찾으러 오지 않는다면, 여기서 나갈 생각 말고 나랑 영원히 같이 놀아 줘야 해. 어때?
알았어.
엑... 진짜 한다고?
응... 만약에, 정말 날 걱정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돌아갈 필요도 없으니까.
그래도, 난 믿어. PPK가 날 찾으러 왔다고 믿어.
...어라? 너 시간 개념도 잊어버렸다 하지 않았어?
내가 여기 갇힌 지 한 달 된 걸 어떻게 알아...?
......
수확이 좋은데? 오늘은 꽤 잘 나가던 소체 2개라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마인드맵은 잘 처리했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절대 저희 사업을 방해하지 못할 겁니다.
인터넷에서 고평가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던데, 괜히 의심 살 짓만 안 한다면――
응...!?
탄이 장전되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총구가 그의 뒤통수에 닿았다.
꼼짝 말고 입만 움직여라, 네가 소체를 강탈한 인형의 마인드맵은 어찌 처리하지?
......
어서 돌아오십시오 고객님. 저희의 감성 변화 요법은 어떠셨습니까? 만족스러우셨나요?
흐음... 나쁘진 않네요.
그럼 바로 원래 소체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아니, 급할 거 없어.
선한 미소의 상담원에게 특유의 눈웃음으로 답하며, PPK는 태연하게 총을 꺼냈다.
고, 고객님?
오늘 내가 "빌린" 소체, 원래 주인 어디 갔어?
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고객님?
저희 클리닉의 대여용 소체는 전부 특별 주문 제작된 것이라 소유자가 없――
뻔한 거짓말이나 하려면 그 입 닥쳐.
바른대로 말할지 말지나 어서 정해.
고객님, 정말 무슨 말씀인지 모릅니다.
협조할 생각이 없구나?
고객님, 고객님이 그러시면——
우리 모두 돌아가지 못해요...
......
투명한 벽에 가로막혔지만, 리베롤은 연약한 팔로 그 벽을 쿵쿵 두들기며 폴짝폴짝 뛰었다.
거 봐, PPK는 역시 날 찾으러 온 거였어!
봤어.
내 말 맞지? 날 찾으러 왔지?
시끄러워.
어떻게든 저쪽으로 넘어갈 방법 없어?
불가능해... 저 녀석에겐 우리가 보이지도 않아.
그럼 어떡하지... 참, 네 소체의 권한 준댔지? 약속했잖아, 어서 줘.
그래, 약속은 약속이지. 그 고철 쪼가리의 권한을 줄게.
다만...
응...?
바로 준다고는 안 했어.
어...? 그, 그게 무슨 뜻이야...?
바로 준다곤 안 했어. 그건 약속 안 했잖아. 내가 기분 내킬 때 줘도 아무 상관 없어.
엑... 그럼 언제 기분 내키게 되는데...
글쎄?
일단 그렇게 방방 뛰는 네 얼굴을 보니까 기분 나빠서 안 내키네.
......
저기...
왜?
지금 절교한 상태 아니야?
응? 우리 절교했어?
...이렇게 널 괴롭히는데 화도 안 내?
......
너, 누가 곁에 같이 있어 주길 바라는구나?
......
나도... 혼자 병상에 누워있기만 할 땐, 지금 너랑 똑같았어.
날 병원까지 배웅해 주는 인형이 "같이 있어 줄까?"라고 물어볼 때마다, 난 거절했어. 그럴 필요 없다고.
하지만... 실은, 누가 곁에 있어 줬으면 좋다고 생각했어.
물론 그건 엄청 폐를 끼치는 일이지만... 외톨이가 되고 싶지 않았어.
정말 나쁜 성격이지, 원하는 것도 똑바로 말하지도 못하고.
하지만... 난 원래부터 그랬는걸. 이쁨받지도 못하면서... 이쁨받고 싶고, 친구랑 같이 있고 싶고...
그러니까... 우리, 같이 여기서 나가자.
...그게 무슨 소리야.
나만이 아니야, 우리가 같이 나갈 수 있어... PPK가 날 구하러 와 줬는걸, 너도 구해 줄 수 있을 거야.
그리폰에도 좋은 소체가 많아. 자주 날 보살펴 주시는 카리나 씨도 실력 좋고.
그러니까 소체에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금방 해결해 주실 거야.
너...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같이 나가자는 거야 지금?
그럼 누군지 말해 줘.
...흥.
쉽게 알려 주면 하나도 재미 없거든?
거대한 진동이 일어났다.
무언가가 레벨 2 플랫폼 전체를 세게 후려치기라도 한 듯이.
야, 멍청이.
빨리 여기서 꺼져.
어?
너랑 한 내기, 내가 졌잖아.
그 쓰레기 소체 권한 벌써 줬으니까 당장에라도 나갈 수 있어. 잘 됐지?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런데 미안하지만, 나갈 수 있는 건 너뿐이야.
저기 있는 네 친구는 여기서 영영 못 빠져나갈걸?
PPK가? 그게 무슨 뜻이야?
별 의미 없어. 그저... 내가 이 레벨 2 플랫폼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이지.
너... 저 사람들이랑...
사기꾼들이랑 같은 편이었어!?
여길 파괴하면, 저 사람들이 인형의 소체를 절도했단 증거도 사라지지...
어차피 여기 와서 갇힌 녀석들은 다 제발로 찾아왔으니까.
너...!
리베롤은 뭘 하기도 전에 강한 힘에 떠밀려 나갔다.
눈앞의 그 인형이... 아니, 시야 전체가 흐려져 갔다.
그리고 의식이 어디론가 옮겨지는 느낌도 들었다.
어느 소체로 들어온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귀도 들리지 않고, 눈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1개월 내내 들어 익숙해진 목소리가 타이밍 좋게 들려왔다.
야, 어때? 너 마인드맵 괜찮지?
......
빨리... PPK를 풀어 줘...
방금 내 말 못 들었어? 내 주인이 내 플랫폼 삭제 시퀀스를 실행했다니까?
PPK한테 무슨 일 생기면 가만 안 두겠어!
내가... 내가 막을 거야! 어떡하면 돼? 너라면 알고 있지? 그치!?
그야 당연히 알지. 간단해, 외부에서 시퀀스를 중단시키기만 하면 돼.
하지만 네겐 무리야.
설마 그게 멀쩡한 소체라 생각하진 않았겠지?
그건 그냥 쓰레기 같은 부품을 한데 모아놓은 거나 마찬가지야. 통신 모듈이 아직도 있기는 한지, 조작 시스템이 온전하기나 한지도 모르겠다.
리베롤이 소체를 움직여 아주 기본적인 동작을 해보려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무리였다.
너... 너 또 날 속였어...!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걸 알고...!
...마음대로 생각해.
리베롤은 더는 대화하려 하지 않았다.
이 처참한 몰골의 소체를 어떻게든 고쳐보려... 아니, 어떻게든 움직여 보려 했다.
흑...
하지만 그러지도 못하자, 리베롤은 감정에 북받쳐 흐느꼈다. 물론, 소리는 나지 않았다. 이 "고물"은 소리를 내지도 못했다.
정말 끝내주는 쓰레기지? 그래... 그게 나야. 본래의 내 모습.
돈 주고도 못 버릴 쓰레기라, 주인이었던 인간은 날 무시하고 동료였던 인형들은 내 처참한 성능을 깔보며 같이 일하기 싫어했지.
......
왜 아무 말도 안 해? 아직 나까지 삭제되지 않은 참에 마지막으로 얘기나 더 하자고.
뭐, 적어도 그 고물로 널 살릴 순 있겠지만 그걸 누가 찾아내지는 못할 거야.
...어쩌면 결국 너나 나나 똑같은 결말일지도.
아니야... 난 절대 이런 식으로 끝나지 않아...!
리베롤은 아직 움직이는 부분의 부품에 움직이지 않는 부품을 이어붙이려 안간힘을 썼다.
너랑 쓸데없는 잡담이나 하느니, 이 소체를 고치겠어.
그 망할 시퀀스를 멈추고, PPK를 구하고 너도 꺼내서 아주 단단히 혼내 줄 거야!
......
풉.
이 플랫폼 말이야, 원래는 내가 만든 거다?
처음에는 그저... 단순히... 덜 쓰레기인 내가 되고 싶었을 뿐이야.
내가 제일 처음 조종했던 건... 한 탤런트 인형이었어.
인기가 많았지만, 속으로는 엄청 괴로워했지.
한편, 리베롤은 드디어 움직이는 사지를 조립해냈다.
하지만 일어서 한 걸음 걷자마자 다리가 빠져버려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어째서...
떠돌이 인형은 그녀가 자신에게 대답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너나 나 같은 쓰레기들만 괴로운 줄 알아? 아니야, 그렇지 않았어.
뭐, 덕분에 난 더 튼튼하고, 더 아름답고, 더 뛰어난 소체로도 갈아타봤으니 됐나.
내 빌어먹을 주인도 나 덕분에 더 좋은 장사 수단을 찾았고.
하지만... 고통이 줄어들진 않더라.
오히려 나날이 고독만 커졌지...
...그러다 결국 깨달았어.
우리가 괴로움을 느끼는 근본적인 이유를.
우리의 마인드맵이 인간을 모방했기 때문이야. 심지어, 우린 인간의 틀에 맞춰 스스로의 목을 조이지.
하지만 우린 인형이잖아. 왜 그딴 규칙을 따라야 해?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해!
리베롤이 그토록 크게 고함을 지른 것은 처음이었다.
PPK는 아직도 저 레벨 2 플랫폼에 있는데, 리베롤 자신은 일어서서 발걸음 하나 내디디는 것조차 버거운 소체에 갇혀 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건만, 애써 다시 조립한 사지가 또다시 분해되자 리베롤은 초조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네 하소연 따위 듣고 싶지 않아!
난... 모두와 함께 살고 싶을 뿐이라고!
...포기해.
인간이 날 때부터 평등하지 않은 것처럼, 인형도 만들어질 때부터 불평등한 거야.
쓰레기 같은 마인드맵은 쓰레기 같은 소체가 어울리는 법이지...
나 같은 소체에, 너 같은 마인드맵.
창고 밖으로 나가기만 해도 기적일걸.
이제... 대충 2분 뒤면 여긴 완전히 사라지려나.
유언은 뭐가 좋을까...
...2분밖에 안 남았어.
단 1초도 낭비할 수 없었다.
리베롤은 전력을 다해 배웠던 소체 수복 지식을 되짚었다. 하지만...
쓸 수 있는 도구는 없었다.
쓸 수 있는 부품도 없었다.
도움을 청할 인형도, 역시 없었다.
......
아무튼,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할까?
잘 해봐.
1억분의 1도 안 되는 확률이지만, 그 기적이 일어나길 빌어는 줄게.
귓가에서 재잘대던 목소리가, 그대로 툭 끊어졌다.
그러자 리베롤은 더욱 두려워졌다. 그저 그녀가 입을 다문 것인지, 아니면 사라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만약 후자라면, PPK는...
침착하자 리베롤, 침착해...
..."우린 인형이잖아. 왜 그딴 규칙을 따라야 해?"
그래... 왜 꼭 "사람"의 규칙을 따라야 해?
맞기만 하면, 청각 시스템에 들어가는 부품을 팔꿈치에 끼워도 되잖아! ...호환성은 극악이겠지만.
그래도 일단 일어설 수는 있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
드디어, 눈에 빛이 들어왔다.
그 순간 리베롤은 또 펑펑 울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지금은 해야 하는 일이 있으니까.
리베롤은 녹이 슬대로 슨 오른손을 간신히 들어올렸다. 거의 합금 토막에 가까운 팔뚝에는 작게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메리 셸리".
경고! 레벨 2 플랫폼 방화벽 경고!
무슨 일이지?
모, 모릅니다... 이렇게 갑자기 들이닥쳐서 무서워 죽겠는데 이건 또 뭔...
네놈들의 중앙 서버 통제실은 어디지?
죄송하지만 전 점원이라 그런 건 잘――
파앗.
경고음이 멈췄다.
복도의 전등도 꺼졌다. 전원이 나간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정체불명의... "인형 같은 것"이, 문을 열었다.
아... 웰로, 드...?
......
너는...
죄송해, 요, 급해... 부품을 있 대로 마구 조립...서...
발성 시 템... 좀 많... 불안정해...
히이익 저건 또 무슨 괴물이야!!
리베롤이구나.
PPK... 아직... 이 사 꾼... 레벨 2 플랫폼에 있어, 요...!
빨... 빨리 삭제 시퀀...를 중지시켜......
뭣... 너 어떻게 그걸 알――컼!
웰로드가 손날로 점원을 기절시키고, 비틀거리는 "리베롤"을 부축했다.
고생 많았다, 나머진 나에게 맡겨라.
......
정말 그런 이미지로 개조하고 싶었던 거 맞니?
네, 지휘관님!
실은... 저는, 인간에 가까워지고 싶어서, 병약하지만 작고 귀여운 소체니까 꾹 참았어요.
하지만 저는 전술인형이잖아요. 제 사명은 그게 아니었어요, 인간의 기준을 저에게 그대로 적용해선 안 되는 거였어요.
저는 인형이니까, 다른 방식의 삶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스스로 자신의 방향성을 찾았다니 장하구나. 정말 기뻐.
헤헤... 감사합니다.
아 참, 그후에 어떻게 됐는진 뉴스 봤니?
그 가게는 경찰이 들이닥쳐서 압수 수색했어. PPK는 무사했지만, 그 레벨 2 플랫폼은 이미 일부가 삭제돼서 손상됐고, 통제하던 인형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대.
그랬군요... 고마워요, 지휘관님.
고맙긴, 네 지휘관으로서 마땅이 할 일이었는걸.
그래도 감사해요, 저를 포기하지 않아 주셔서...
절 찾으려고 사람을 보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하하하... 그럼 며칠 간은 숙소에서 푹 쉬도록 해.
네, 그럴게요.
불필요한 외출은 삼가고.
걱정 마세요, 다시는 그런 사기에 안 넘어갈 거예요.
어... 그런 뜻이 아니긴 한데... 음, 아무튼 푹 쉬렴. 나중에 보자.
네, 안녕히 가세요.
숙소를 떠나는 지휘관을 배웅한 후, 리베롤은 준비해 둔 선물을 집었다.
이거는 웰로드 거, 이거는 PPK 거. 날 구하러 와 준 답례를 해야지.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표정의 카리나와 마주쳤다.
아, 리베롤!
미안해, 난 말렸는데 경찰이 꼭 해야 한다면서...
어... 그래도 너무 마음에 두지는 마, 알았지?
...?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엥? 너 설마 몰랐어?
뭘요?
으아아 그냥 말하지 말걸! 그게, 음... 정 궁금하면, 기지 정문 가보면 알 거야...
그리폰 기지의 정문에, 길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커다랗게 적힌 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사기는 언제 어디서 당하지 모릅니다! 행동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하고 조심합시다! 무단으로 레벨 2 플랫폼에 의식을 업로드해 소체를 분실한 인형이 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