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MOD 1
어두운 밤, 어느 밀림의 전장.
한 소대가 비행기에서 뛰어내렸다.
음, 도착했어요!
우리가 임시 편성된 소대긴 하지만, 이번 임무는 주로 각자 따로 행동하게 될 테니 모두 안전에 주의하세요!
이건 모두를 위해 준비한 물자팩이니 잘 보관하시고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우유가 있어요?
지휘관님은 우리가 키가 작아서 작은 구멍에도 잘 들어갈 수 있겠다고 이런 임무를 주신 거예요!
나도 키가 좀만 더 컸더라면...
그래도 키가 작으니까 이 임무에 선발된 거잖아요. 그리고, 적의 후방 거점을 청소하는 일이니 단련도 되고요.
어린애 취급을 받은 건 사실이잖아요! 우리 키가 좀 더 컸다면 더 멋지게 활약하는 임무를 받았을 텐데!
어? F1, 오늘따라 유난히 조용하네요?
그런가? 기분 탓이겠지.
수상한데요...
뭐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우선 임무를 수행하죠!
지형도 복잡하고 신호까지 나쁜 악조건 속에서도, 세 인형들은 작은 몸집 덕분에 금세 안전한 구역을 확보하고 임시 보급고로 삼았다.
하아, 왜 작전명도 하필 "리틀 걸즈"라 지으셨담... 우리 모두 나름 산전수전 다 겪은 역전의 용사인데!
응? M1897, 거기 제가 청소했어요.
아직도 먼지가 잔뜩이잖아요! 짐도 바닥에 두면 안 돼요, 실수로 밟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앗, F1? 당신 가방에서 물건 떨어졌어요. 어... 이건 책이네요?
응? 책? 아아앗 그거 얼마 전에 산 시집이잖아!
어떡해, 더러워졌어...
괜찮아요, 세제 있으니까 제가 닦아볼게요.
책에 묻은 진흙을 조심스레 닦아내고, M1897은 세 명의 짐을 싸서 선반 위에 올려놨다.
휴우... 고마워!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거라 벌써 상하면 엄청 속상했을 텐데, 덕분에 살았어.
천만에요, 제 특기인걸요.
그런데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요? 오늘따라 왠지 당신답지 않은데요...
안 좋은 일이라... 혹시, 지휘관님이 정하신 일정과 관련 있나요?
그러고 보니 F1이 다음 개조 명단에 올랐다던데.
와아, 그거 좋은 일이네요. 우리도 개조받고 강해졌잖아요~
개조를 받기 전엔 누구라도 불안한 법이에요, M1897도 싫다고 떼쓴 적 있는걸요.
...왜 꼭 개조를 해야 해? 그냥 이대로의 나면 안 돼? 그리고 뭘 개조하는데? 몸? 성격? 마인드맵?
으음... F1은 자신을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 생각해본 적 없나요? 예를 들어, 키가 커지고 싶다던가요.
카리나 씨도 요구 사항 있으면 지휘관님한테 미리 말씀드리랬어요.
하지만 제 키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난 말이야, 하루 종일 싸움만 하고 싶지 않아. 물론 전술인형의 일이 싸우는 거지만, 난... 나 스스로 추구하는 게 따로 있다고.
그게 뭔데요?
...인형한텐 딱히 쓸모없는 일.
그런 거라면 저도――
너랑은 달라! 네 청소 취미는 실용성이라도 있지! 언제 전역하더라도 다시 가정부 일을 할 수 있잖아!
하지만 난... 내가 좋아하는 일은 실생활에 별로 쓸모도 없고, 어떨 땐 다른 사람 기분까지 상하게 한단 말이야... 그래도 난 이런 내가 좋아! 개조 따위 전~혀! 받고 싶지 않아!
그럼 다르게 생각해보는 건 어때요? 카리나 씨의 마인드맵 업그레이드 실력이 얼마나 좋다고요. 분명 F1의 마음에도 쏙 들 모습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거예요.
웃기고 있네, 얼마 전에 누구 손을 거꾸로 끼웠더만!
에, 에이~ 그 정도야 사소한 문제죠... 마인드맵을 잘못 설치한 것도 아닌데.
그런 일도 있었던 것 같은데...
M1897! F1을 격려해 줘야 하는데 그런 말 하면 어떡해요!
글쎄 중요한 건 그게... 에이 몰라, 어차피 지휘관이 정한 일이라 거스르지도 못하는걸. 나중에 너희랑 수다 떨 F1은 과연 몇 세대일지 모르겠다.
여기요, 시집 다 말랐어요.
그런데, 종이에 기록을 남기는 건 영 비효율적이지 않나요? 요즘은 다 전자책인데, 왜 아직도 종이 서적을 수집해요?
기록이 아니라 시야, 내 우상의 시집이라고!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 중 한 명, 살면서 스쳐 지나간 사람까지 시로 담아낸 분이지!
도로변의 잡초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의지를 보고, 귀갓길을 밝히는 달님도 당연하다 여기지 않고 맞이하니.
지나가던 행인이 술 한잔 권하면, 절대 눈을 돌리는 일 없이...
아하, 그런 화려한 구절들이 전부 그 두꺼운 책에 적혀 있군요?
맞아! 그의 생각과 영혼이 담긴 책이야!
영혼이요? 그 책에서 메모리칩 같은 건 감지 안 되는데요?
아 진짜, 생각! 시에 대한 애정과 열정!
우와, F1이 엄청 눈을 반짝여요.
내가 이분의 시를 처음 본 건 인터넷에서였긴 하지만, 언제나 전통적인 서적으로 출판하길 고집했어.
나도 계속 그의 발자취를 쫓아 새 작품이 나올 때마다 바로 한 권 샀어. 이것도 가장 최근에 나온 판본이야!
아아, 직접 만나 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친필 사인 받고 싶다아...
그분 성함은 어떻게 돼요? 나중에 한번 찾아볼게요.
한스.
...거의 철수와 영희 수준으로 널린 이름 아니에요?
데이터 처리 잘하는 인형에게 부탁하면 어떻게든 되겠죠.
나도 진작에 찾아봤지만, 그가 살던 곳은 10년 전에 전장이 됐대.
아... 하긴, 인간은 연약하니까요. 아무리 약골인 인형이라도 일반인을 상대로 힘싸움에서 지는 일 없는걸요. 어쩌면...
억지라는 거 나도 알아...
그래서 기분이 그렇게 안 좋아 보였군요...
하아아... 인간은 기쁨도 슬픔도 다 기록으로 남기는데, 우리는 우리의 기분을 다른 이에게 전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그거야 쉽죠, 데이터 허브를 이용하면 되잖아요.
아니 그런 식 말고! 내 말은, 어... 그러니까, 이걸 뭐라 해야 하나...
각자의 이해와 관점이 다르더라도, 무언가를 보고 같은 아름다움을 느끼는 거.
타인의 생각을 정확하게 이해할 순 없어도, 몇 마디 글에서 느껴지는 "마음" 말이야.
엄청 심오한 말이네요.
그러니까 "밀림의 시인"이죠.
역시, 아무리 인형끼리여도 서로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하룻밤의 휴식과 보급을 마치고, 세 인형은 다시 작전을 수행할 준비를 했다.
여기는 상당히 난잡한 지형이라 임시 거점이 열 곳은 넘게 있을 거예요. 그래도 다 작전 능력이 엄청 떨어지는 낙오 병력들일 테니, 흩어져서 수색해도 큰 문제는 없겠죠.
네.
알았어.
그럼, 이 보급고를 중심으로 흩어져서 수색해요.
신호가 나빠서 연락 두절되기 쉬우니, 수색 결과가 어떻든 3일 후에 여기로 복귀해서 정보를 교환하도록 하고요.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혼자서 너무 깊숙이 침투하는 건 삼가하도록, 알았죠?
우와, MP5한테 이런 면도 있다니 놀랐어요. 돌아가면 XM8한테도 말해 줘야겠는데요?
정말, M1897까지 놀리기에요!?
그럼 모두 무사하길 바랄게. 난 별로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걱정 마요 F1, 지휘관님도 카리나 씨도 분명 당신의 기분을 이해해 줄 거예요.
대화를 마치고, 세 인형은 각자 맡은 방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