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5
MOD 3
......
초조한 목소리가 콘크리트 잔해 더미 아래서 외로이 메아리쳤다.
누구 없어――? Vivi――! PP-90, R93――!!
돌아오는 것은 대답이 아닌 메아리.
벌써 3일이나 지났건만, 두 사람은 완전히 세상에서 격리된 듯했다.
......
아이는 상처가 세균에 감염돼 상태가 갈수록 악화됐다.
이에 K5는 거의 쉬지도 않고 구멍을 내고 잔해를 치워 나갔지만, 쌓인 잔해는 그 끝이 보이질 않으니...
점점 후회감까지 들 정도였다.
마인드맵 업그레이드로 소체도 교체했으면 진작에 굴을 파내서 빠져나갔을지도...
애꿎은 돌기둥만 K5의 화풀이에 얻어맞을 뿐이었다.
내가 업그레이드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점괘가 아무리 엉망이어도, 지금처럼 무력한 것보단 훨씬 나을 텐데!
언니...
힘없는 아이의 목소리에 K5는 바로 하던 일을 멈추고 돌아가 손을 꼬옥 쥐었다.
조금만 더 참아, 금방 여길 나갈 수 있어!
비상식량으로 가져왔던 초콜릿은 다 떨어진 지 오래. 아이는 뺨이 홀쭉해졌고, 입술도 핏기가 많이 사라졌다.
그러면서도 흐릿한 눈빛으로 K5가 그동안 점을 쳐 준 타로카드를 바라보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듯했다.
언니... 우리 오늘 점 안 쳤지...?
나... 오늘도 괜찮을까...
그럼 물론이지!
며칠 내내 좋은 점괘만 나왔잖아, 오늘도 분명 괜찮을 거야!
K5가 타로카드 뭉치를 꺼내자 위에서 돌먼지가 잔뜩 떨어졌다.
냉큼 먼지를 털어냈지만 심상찮은 기운이 느껴지기가 무섭게, 주위가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위험해!
K5가 아이에게 몸을 던지는 그 순간, 위로부터 굉음이 났다.
건물을 폭파하고 남은 불발탄이라도 있었던 걸까. 잔해가 다시 무너져, 잔혹한 교향곡처럼 K5의 등을 마구 두들겨댔다.
크윽...!
아아악!!
아이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오른다리가 묵직한 돌판에 깔린 것이었다.
괘, 괜찮아!? 바로 치워줄게!
상처투성이인 손으로 황급히 돌판을 치웠지만, 아이의 다리는 이미 피범벅이었다.
하아... 하아...
언니... 우리... 못 빠져나가...?
아니... 아니야...
그치만... 길이...
여태까지 사력을 다해 파냈던 구멍이 온데간데 없었다.
언...니...
아이의 숨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미약해졌다.
K5는 당황스런 마음에 바닥에 흩어진 타로카드를 아무거나 3장 집어, 떨리는 손으로 아이의 힘없는 손바닥에 쥐여 주었다.
우린 살아남을 거야, 괜찮아... 괜찮을 거야...
응...
그, 그래, 오늘의 운세 점치자고 했지? 지금 바로 보자!
조금만 더 참아, 조금만 더 참으면 돼, 우리의 운명을 믿어, 알았지?
......
무수한 벽돌과 콘크리트 조각에 둘러싸인 소녀에게 여자아이는 몸을 기댔다.
벌써 천 번은 넘게 해온 일이건만, 지금 K5가 카드를 뽑는 손놀림은 초짜처럼 서툴렀다.
몇십초가 몇백년처럼 느껴질 정도로 닫힌 공간에서, 바닥에 놓인 카드 한장을, K5는 도저히 뒤집을 수가 없었다.
그때, 여자아이가 여린 손바닥을 살며시 K5의 손등에 얹었다.
언니... 운명이란 거, 나 잘 모르지만...
그래도... 언니를 믿어...
아니야... 넌 몰라...
사흘 전.
그녀는 망설임을 떨쳐내고 운명을 믿기로 했다.
드러난 앞면은... 헤일로가 있는 수난자.
헌데 나무에 거꾸로 매달렸어야 할 모습이 반대 방향이었다.
역위치의 "매달린 사람"... 헛된 노력과 희생...
똑같은 그림인데도, 단지 위아래의 방향 차이로 전혀 다른 운명을 가리킨다니.
우연은 정말 우연으로 가득할 뿐만 아니라, 실없는 장난까지 치는 것일까.
아무리 노력해도 헛수고고, 이미 결말은 정해졌단 거야...?
웃기지 마, 얘가 겨우 희망을 갖게 됐다고! 이딴 게 운명이라고 어떻게 말해!
그때, R93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한 장이 '똑바로'냐 '반대로'냐에 따라 길흉이 완전히 달라지잖아. 점괘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좀 꼼수 써도 되는 거 아니야?"
......
여태까지, 난 카드가 가리키는 운명만 보고 따랐어...
그렇지만, 이번엔...
이번만큼은, 이 애의 운명을 내가 이끌 거야!
카드 앞면의 이 익숙한 그림을 보며, K5는 또박또박 말했다.
이건 정위치의 "매달린 사람". 아무리 끔찍한 처지라도 그저 결국엔 이겨낼 시련에 불과하니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이란 뜻이야.
점괘를 믿어, 넌 반드시 구조될 거야.
응...
그후 이틀 내내, K5는 여자아이에게 점을 쳐 줬다.
부디 좋은 점괘가 나와, 이전의 점괘가 엉터리였음을 말해 주길 간절히 기도했지만...
왜... 왜 자꾸 끔찍한 결과만 나와?
운명아, 제발 부탁이야...
아주 조금이라도 되니까, 제발 희망이 있다고 해 줘!
K5는 용기를 다해 눈을 부릅뜨고, 운명에게 자비를 기도하며, 마침내 카드를 뒤집었다.
......
............
구름 위로 솟은 탑이 벼락을 맞아 무너지고, 두 사람이 꼭대기서 추락하는 그림.
파멸의 "탑". 정위치든 역위치든, 악운의 징조였다.
......
이를 지켜보던 여자아이는 K5의 이상한 침묵에 내심 눈치챘다.
언니... 나 죽어도 언니 탓 아니야...
언니... 열심히 노력했잖아...
그러니까... 언니 꼭... 살아남아...
힘이 서서히 풀리는 그 가녀린 손바닥에서, 구겨진 초콜릿 포장지가 굴러 떨어졌다.
...젠......자아아앙!!!
K5는 그 카드를 덥석 집어 갈갈이 찢어버렸다.
설령 여태까지 정해진 운명을 바꾼 이가 아무도 없다 하여도, 애초에 인형이란 인간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 아닌가?
그러니, K5는 오기로라도 기필코 이 아이를 구하겠다 마음먹었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기필코.
조금만 참아... 내가 반드시 구해줄게!
마인드맵을 활활 불태우는 결의로, 그녀는 맹수처럼 앞을 가로막는 잔해 더미에 달려들었다.
인간이 젖 먹던 힘을 다하듯 있는 출력 없는 출력 다 끌어내, 뭐가 어떻게 되든 다 무시하고 그저 앞만 보고 나아갔다.
날카로운 쇠못이 살갗을 찢고, 유리 조각이 손끝에 박히고, 뒤틀린 수도관이 굴러떨어져 이마에 상처를 내고, 등과 왼다리의 상처가 점점 더 벌어지고...
그래도 이 찢어질 듯 아픈 마음에 비하면 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괜찮아... 거의 다 나왔어, 이번엔 진짜야...
그리고 마침내 가느다란 빛줄기가 시멘트 기둥의 틈새로 새어 들어온 순간, K5는 참지 못하고 소리질렀다.
빛이다! 봐봐! 밖이 보여!
그녀가 고개를 돌려 외쳤지만, 등뒤의 아이는 눈을 감은 채 깊게 잠든 듯했다.
쏟아지는 빗물이 머리를 적시는 것도 아랑곳 않고, K5는 아이를 의식이 없는 아이를 더욱 세게 껴안았다.
바로 앞에 의료소가 있어! 넌 여기서 죽지 않아, 날 믿――
진흙 범벅이 된 발이 미끄러져, K5는 물웅덩이에 고꾸라졌다.
바로 팔꿈치로 땅을 짚고 다시 일어서려 했지만, 어째선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어...라?
소체가 진작에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반 세기 전 지어졌던 광장에 엎어진 채, K5는 고개를 떨궜다.
내가 소체를 업그레이드 했다면...
너를 구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