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5
MOD 2
......
여자아이는 무서운 꿈을 꾸었다.
처음 보는 나쁜 사람이 자신을 어딘가로 끌고 가더니, 어두컴컴한 곳에다 혼자 버리고 가는 꿈을.
힘들고, 춥고, 목마르고, 배고팠지만, 도움을 청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던 갑자기 세상이 흔들려 아이는 간신히 이 악몽에서 깨어나, 엄마의 따뜻한 품으로 돌아갔다.
엉엉 울었던 아이는 입을 열어, 엄마에게 자신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다 말하고 싶었다.
으응... 엄마아...
여자아이의 잠꼬대가 K5의 의식을 깨웠다.
충격으로 인한 혼란을 간신히 뿌리치고, K5는 힘겹게 마인드맵을 굴려 직면한 상황을 파악했다.
큭... 생각보다 더 크게 손상됐는걸...
아!
K5는 황급히 왼다리를 질질 끌면서 여자아이에게 몸을 옮겼고, 그렇게 너무 급히 움직이는 바람에 등의 상처가 더 크게 벌어졌다.
크게 다치진 않았네, 다행이다... 그래도 유리에 좀 베인 상처가...
얼마 없는 것으로 최대한 아이의 상처를 처치한 후, K5는 동료들을 호출했다.
Vivi! 인질인 애는 확보했는데 폭발에 휘말려서 잔해 밑에 묻혔어, 얼른 구해......?
Vivi, 내 말 들려? 얘들아!
젠장! 통신 모듈이 고장인지 신호가 안 잡히는 건지도 모르겠네... 어쩌지...
K5가 짜증내며 통신을 포기하는 그때, 여자아이가 정신을 차리고 몽롱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것을 눈치챘다.
......
먼지투성이인 K5의 얼굴을 본 여자아이는 알아차렸다.
방금 그건 꿈이 아니라, 저 언니가 자신을 지켜준 것이었다.
정신 드니?
K5는 불안감이 드러나지 않도록 애써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나... 죽는 거야...?
안 죽어, 내가 꼭 지켜줄게.
그치만... 나 목도 아프고, 배도 아프고... 다 아픈데...
엄마가 병 걸려서 돌아가실 때도... 다 아프다 했는데...
...배고파서 그래, 뭐라도 좀 먹으면 나을 거야.
K5는 지저분해진 주머니에서 초콜릿이 든 봉지를 꺼내 몇 알을 주었지만, 여자아이는 하나만 먹고 고개를 저었다.
어, 맛 없어?
언니도 먹어...
언니 피 엄청 나는데, 안 아파...?
아...
K5는 무심한 척 어깨의 검붉은 액체를 닦았다.
걱정 마, 난 인형이라서 안 먹어도 배 안 고프고, 이것도 진짜 피 아니야.
그럼... 인형도 죽어?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K5는 흠칫했지만 다시 애써 태연한 척했다.
...그렇긴 하지.
하지만 여기선 안 죽어. 너도, 나도.
정말로...?
여자아이는 두껍게 쌓인 잔해를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 희망을 잃은 얼굴이, K5에겐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
끝이 보이지 않는 황무지는 옐로우존 특유의 썩은내가 진동했다.
거리 감각은 진작에 잃었고, 눈에 보이는 이 사람이 자신을 업고 얼마나 걸었는지도 가물가물했다.
우리... 진짜 살 수 있는 거야...?
당연하지, 내가 몇 번을 말해? 말하기도 힘드니까 좀 조용히 있어.
암시장 사람들 금방 쫓아오지 않을까...?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들리는 거 같은데...
그런 거 같네, 짜증나게스리. 저것들 어떻게 따돌린담...
......
됐어 윤선아, 나 신경쓰지 말고 너 혼자서라도 도망쳐...
마음의 준비는 이미 되었다.
다른 인형들이 당한 것처럼, 그들에게 끌려가 마인드맵 코어를 융해당할 각오가.
...좋아, 그럼 여기 있어.
윤선은 의외로 시원스레 대답하면서 그녀를 풀숲에 내려놓았다.
응... 이러면 됐――
됐기는 개뿔, 내가 가서 저 놈들 따돌릴 테니까 넌 절대 들키지 마.
대신 여기부터는 네가 알아서 가야 되니까, 죽지 말라고.
뭣... 그, 그럼 너는?!
아 걱정 말래도? 난 저기로 쭉 가면 나오는 도시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너도 나도, 여기서 허무하게 죽진 않을 거라고.
그게 우리의 운명이야. 정 못 믿겠음 내가 점으로 보여 줄게.
점...?
내가 말 안 했던가? 난 점집에서 일하다 암시장에 팔렸다고.
......
우리 둘 다, 살아남을 거야. 그게 우리의 운명이야. 정 못 믿겠음 내가 점으로 보여 줄게.
점...?
응, 사실 난 점술가거든.
아까 전에도 이렇게 넓은 데에서 널 점술로 찾아냈다?
그 말을 들은 여자아이가 눈동자를 반짝였다.
어때, 한번 해볼래?
아이가 내심 기대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K5는 능숙하게 품에서 타로카드 뭉치를 꺼냈다.
자아, 그럼 지금 네가 가장 바라는 걸 생각해 봐...
아니는 얌전히 눈을 꼭 감고, 자신의 운명을 예견할 카드를 뽑았다.
이에 K5도 정신을 집중해 아이가 뽑은 3장의 카드를 차례대로 뒤집어 보였다.
이 카드가 나타내는 것은 너의 과거... 정위치의 "광대"네, 네가 아직 삶의 시작점에 있음을 의미해.
그리고 이 카드는 현재... 정위치의 "검 네 자루". 우리가 힘을 아껴서 위협에 맞서야 한다는 뜻이야.
아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와, 다 맞았어!
여자아이의 긴장하면서도 약간의 기대를 품은 눈빛이 세 번째 카드를 향했다.
그런데 그 얇디얇은 카드가 무척이나 무거운 듯, K5의 손이 느려졌다.
미래를 나타내는 카드는... 뭘까?
정위치, 아니면 역위치?
그녀는 망설임을 떨쳐내고 운명을 믿기로 했다.
드러난 앞면은...
헤일로가 있는 사람이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조용히 세상의 고난과 고통을 주시하는 모습.
휘날리는 기억이 또다시 마인드맵에서 솟아나, K5는 운명의 아이러니함에 속으로 감탄했다.
......
체력은 이미 한계에 달해, 호흡마저 버거울 정도였다. 그래도 손에 쥔 타로카드 한 장을 굳게 믿으며, 팔을 뻗어 몸을 끌었다.
이대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이 카드를 만지면 윤선의 목소리가 다시 귓가에 들리는 듯해서, 조금이나마 힘이 났다.
이건 정위치의 "매달린 사람", 아무리 끔찍한 처지라도 그저 결국엔 이겨낼 시련에 불과하니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이다...
이제 믿기지? 우린 살아남을 거야, 반드시.
허나 이번엔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몸을 뒤집었고, 탁한 빗물이 얼굴에서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윤선아... 그때 한 말, 나 기운내라고 지어낸 말이지?
이게 없었으면 진작에 포기했을 거야...
그래도... 이젠 진짜 지쳤어... 그만 쉴래...
응, 고생했어. 푹 자도록 해.
오늘 꿈 속의 윤선은 유난히 상냥했다.
...정말 쉬어도 돼? 안 갈궈?
내가 널 왜 갈구냐? 이렇게 다시 만났는데. 쉬고 싶은 만큼 실컷 쉬어.
어...? 너, 너 진짜야?!
우, 우리, 우리 정말 살아남은 거야!?
그녀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윤선을 바라봤다.
그런 윤선은 허리를 숙여, 그녀의 손에서 "매달린 사람" 카드를 뽑아 들었다.
내가 말했지, 점괘는 결국 실현된다고. 이제 믿겨져?
그것이 그녀가 점술을 배우게 된 계기였다.
다만 그녀는 설마 자신도 점술로 남에게 삶의 희망을 주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카드 앞면의 이 익숙한 그림을 보며, K5는 또박또박 말했다.
이건 정위치의 "매달린 사람". 아무리 끔찍한 처지라도 그저 결국엔 이겨낼 시련에 불과하니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이란 뜻이야.
점괘를 믿어, 넌 반드시 구조될 거야.
아이는 그제서야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고, 씨익 웃었다.
응...!
지금 내 동료들이 저 밖에서 우릴 찾고 있을 거야, 물론 우리도 이대로 가만있을 순 없지.
좀 쉬었다가 내가 구멍을 팔 수 있나 볼게.
그 말을 들은 여자아이가 입을 오물거리며 K5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응?
언니...
언니도 죽으면 안 돼... 약속.
K5는 흐뭇하게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응,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