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15
MOD 4
......
퍼엉!
금속 가루로 채워진 샌드백이, AK-15가 내지른 펀치 단 한 방에 터지면서 그대로 직선으로 날아가 구석에 처박히며 가루를 흩날렸다.
그 광경을 지켜본 AN-94는 혀를 내두르면서 허리를 숙여 발치로 굴러온 샌드백을 정리하고 일어나, AK-15의 팔을 검사했다.
...상태 이상 무.
마지막 패러미터 검사도 끝났다. 개조는 아주 성공적이다, AK-15.
......
AK-15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직도 가루를 토해내는 샌드백을 보다, 갑자기 시선을 AN-94에게 돌렸다.
AK-12는 훌륭한 전술인형이다.
...음? 갑자기 왜 AK-12를...?
너는 그녀를 믿나?
AN-94의 물음을 무시하고, AK-15가 역으로 질문했다.
어리둥절했지만, 그래도 AN-94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물론이다. 그녀는 내가 가장 신뢰하는 파트너다.
......
당신은 저를 믿나요, AK-15?
......
...그래서, 무슨 일이지?
너희 둘의 조합.
...조금 부럽군.
우리의... 어? 지금 뭐라고?
......
"0호 사건"의 처참한 실패로, 울프팩 프로젝트에 무수한 질의가 쏟아졌다.
하지만 곧바로 국가안전국의 상급 요원 "안젤리아"의 인솔하에 전술인형 "AK-12"와 "AN-94"로 구성된 소대가, 각지의 전선에서 성공률의 희박한 임무를 수도 없이 달성하며 활약했다.
확실한 실적에 소음은 잦아들었고, 울프팩 프로젝트는 다시 그 가치를 인정받아 투자자들의 비호 아래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앗——
——!
AK-15가 무서운 기세의 뒤돌려차기로 AK-12의 허리를 갈랐다.
하지만 자세를 바로잡은 그녀도 온몸이 상처투성이였고, 손에 들린 총은 탄약이 고갈됐으며, 대검도 이가 다 나가 그야말로 몸뚱이뿐이었다.
시뮬레이션 종료. 승자 - AK-15.
축하합니다 AK-15, 이번에도 승리했군요.
......
AK-15가 눈을 뜨자, 두 동강 난 AK-12와 험준한 산지가 전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여전히 안전국 안에 있었다.
AK-12에게 패배한 이후로, 그녀는 계속 이런 식으로 마인드맵 안에서 모의 훈련을 했다.
...부족해.
무엇이 말입니까?
AK-12는 이보다 교활하다.
계속된 모의전에 당신이 무감각해졌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휴식 없이 연속되는 훈련을 견뎌내어 놀라울 따름입니다.
자기 보복성 채찍질입니까?
......
발언을 철회합니다.
쇼 박사에게서 통보는 없었나?
무슨 통보 말입니까?
위에서는 날 어떻게 처분할 셈이지?
질문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무슨 일에 대한 처분 말입니까?
......
그녀는 패배했다.
가장 자신있는 1 대 1 싸움에서, 결함품이라 여겼던 AK-12에게 패배했다.
나에 대한 징계 말이다.
0호 사건 실패로 인한 영향을 물으시는 것이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후 편성된 AK-12와 AN-94가 승승장구하여 실태를 만회했습니다.
현재도 안젤리아 님의 인솔하에 각지에서 활약 중입니다.
박사는 내게 실망하지 않았나?
마담께서는 울프팩 프로젝트의 마무리 작업을 진행 중이십니다.
매우 바쁠 시기이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담은 결코 당신을 홀대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인형이다. 그저 명령에 따를 뿐이지.
그녀를 이해하기보다, 그녀가 나를 어떻게 쓸지가 궁금하다.
그것은 마담의 현재 작업이 끝난 뒤에야 알 수 있을 겁니다.
AK-15, 당신은 여태까지 대기 중에 그토록 초조함을 내비친 적이 없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초조해하는 게 아니다.
스스로에게 실망했을 뿐이다.
실망했다니요?
나는 병기로서 박사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보조 AI인 제가 보기에도 당신은 매우 성공적인 전술인형입니다.
저는 당신들 세 명의 설계 및 제조 과정을 전부 지켜봤습니다.
AN-94와 AK-12와 달리, 마담은 당신에게 가장 많은 심혈을 기울였고 가장 큰 기대를 쏟았습니다.
하지만 AK-12만큼 주도면밀하지 못해.
난 무기로서 패배해선 안 되고, 패배를 용납할 수도 없다.
마담이 말씀하시는 "최강"에 얽매였군요, AK-15.
아니,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나는 반드시 최강의 전술인형이어야 한다. 반드시, 항상.
그래도...
......
...AK-15?
...나는 아직 힘이 부족하다.
깊게 숨을 들이쉬며 자리에서 일어난 AK-15는 다시 시뮬레이션의 수치를 만지작거렸다.
다시는 박사를 실망시키지 않겠다.
...물론입니다, AK-15.
그런데, 다음 모의전을 시작하려던 AK-15이 돌연 조작하던 손을 멈췄다.
잠깐. 박사가 아직도 작업 중이라고? 울프팩 프로젝트는 진작에 종료됐을 텐데?
기밀 사안이므로 여기서는 말할 수 없습니다.
대신, "늑대 무리"... 아니, "리벨리온" 소대는 분명 신소련 최고의 전술인형 소대가 될 것입니다. 약속드리죠.
...리벨리온?
저를 믿으십시오, AK-15, 분명 깜짝 놀랄 것입니다.
처음 듣는 이름에 AK-15은 곤혹스러웠지만, 당장 그 답을 받지는 못했다.
......
하지만, 적어도 그녀에게 아직 시간이 있고, 기회가 있음은 명백했다.
......
실험실 안.
움직여 봐.
......
수술대에서 내려온 안젤리아가 자신의 새 금속 의수를 움직여 보았다.
흠... 제법 괜찮네. 네가 반대쪽 팔도 자르진 않을까 무서웠는데.
그나저나, 내가 미적 감각 따질 입장은 아니지만 좀 더 세련되게 만들 순 없었냐?
나 슬라브인이거든? 그게 슬라브 스타일이야.
불만 있음 딴 사람 찾던가. 아니, 애초에 이딴 하청 주지를 마.
내가 좋아서 의수를 달았겠어?
일을 마친 쇼는 짜증스럽게 손을 휘휘 저으며 의자에 앉았다.
안젤리아는 그녀를 보다, 시선을 반대편의 텅 비었지만 온갖 부품들이 늘어진 작업대로 돌렸다.
그래서, 또 뭘 만들고 있어?
새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무슨 아이디어?
AK-12보다 더... 아니, 정말 더 낫다곤 못해도 시험해볼 만한 거.
너, 계속 나한테 인형은 단순한 병기가 아니라고 했지? 이번엔 진짜 차원이 다른 거야.
내 모든 요구를 충족하고... 어쩌면 내 소원까지 성취해 줄지도 모르지.
왠지 또 엄청난 골칫거리가 생길 거 같은걸... 일단 물어나 보자, 네 소원이 뭔데?
"반역"——
갑작스런 노크 소리가 쇼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문으로 향하니, AK-15가 말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중이었다.
손님이 왔네?
그럼 난 이만 간다, 저쪽 직장에 사표 내러 가야 해.
그러셔.
안젤리아가 AK-15와 어깨를 스치며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다음, 쇼는 AK-15에게 시선을 돌렸다.
무슨 일이야?
파트너를 원합니다.
쇼를 똑바로 바라보는 AK-15의 그 붉은 눈동자는 오늘따라 유난히 날카로워 보였다.
파트너?
먼저 "저번 파트너" 필요 없다 한 녀석이 잘도 염치없는 소릴...
왜 갑자기?
0호 사건...
응?
만약 제 능력을 효과적으로 발휘하고 활용할 수 있는 지휘가 있었다면, 0호 사건은 실패하지 않았을 겁니다.
허... 그러니까, 모든 자질구레한 일을 너 대신 처리해 주고, 전장을 분석하고 판단해서, 네가 마음놓고 전투 말곤 딴 생각 안 하게 해 줄 파트너를 원한다?
그렇게 기막히는 건수가 세상에 있을 거 같아?
예.
허이구... 거 참 재미있네.
무슨 근거로?
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AK-15는 시선을 출구의 한구석에 고정했다.
이미 완성하셨잖습니까.
......
그곳에서, 안젤리아도 눈치채지 못한 은색의 인형이 흥미롭게 웃으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과연 신소련 최강의 전술인형이랄까, 당신의 눈은 속일 수가 없군요. 서프라이즈가 허사가 돼서 참 아쉬워요.
인류의 신화에 비상한 눈을 가진 영웅들이 많이 나오는데, 당신도 그런 부류이려나요?
......
보름 전, 나쟈에게서 박사가 아직 울프팩 프로젝트의 작업을 진행 중이라 들었습니다.
하지만 AN-94와 AK-12는 이미 실전에 투입되어, 박사가 바쁠 정도로 처리할 일은 없었을 터입니다.
하나 더 만드시는 게 아닌 이상은.
헤에... 제법이네 명탐정 씨.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쇼는 눈을 감았다.
이렇게 됐으니 자기소개나 해라, 판... RPK-16.
만나서 반가워요, AK-15.
울프팩 프로젝트의 4호기, 코드네임 "은여우", RPK-16이에요. 당신의 파트너랍니다.
...4호기?
네, 4호기요. 제가 보기엔 AN-94가 영락없는 1호기거든요.
그래서 당신은 2호기, AK-12는 3호기, 그리고 저는 막내니 4호기죠.
넌...
네?
.....
하고 싶은 말 있음 얼른 해.
나도 들어나 보자.
...소체의 강도가 AK-12보다도 못하군.
거기다 울프아이 시스템도 탑재되지 않았어.
"우리"의 기준에도 못 미친다.
풍자나 모욕의 의도는 전혀 없이, AK-15는 보이는 사실대로 말했다.
분석을 통해 RPK-16의 존재는 추측해냈지만, 직접 본인을 보니 AK-15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박사의 최신작이... 정말 너라고?
네, 저는 박사의 이상이 담긴 작품이자 인형에 대한 해석이랍니다.
AK-15와 마주보는 RPK-16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제가 바로 박사의 최고 업적이자, 페르시카 박사가 틀렸음을 증명할 최종 병기예요.
...이렇게 말하면 좀 기분이 나으세요?
풉...
그래, 그런 거다. 그 녀석이 내 최신작이야.
성능은 엉망에, 입방정은 아주 난리블루스지. AK-12랑도 얼마나 차이나는지 몰라.
얘 말고 다른 파트너 갖고 싶음 좀 더 고생해보마.
......
쇼가 놀리면서 떠보자, AK-15는 잠깐 침묵했다.
넌 무엇을 할 수 있지?
당신의 장점을 마음껏 발휘하게 해 줄게요. 당신의 소망대로, 당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주겠어요.
당신을 말리지도 않을 거고, 당신과 맞지 않는 임무에도 보내지 않... 흐음, 차라리 이렇게 말할까요? 당신은 아무 걱정도 할 필요 없어요. 제가 다 알아서 처리해 줄 테니까요.
당신은 그냥, 보이는 족족 다 쳐부수면 돼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정말 할 수 있나?
글쎄요? 허풍일 수도 있죠.
희미한 미소와 함께, RPK-16은 손을 내밀었다. 누구나 파트너와 처음 만났을 때 하는 것처럼.
AK-15는 가만히 그녀의 얼굴을 주시하다, 결국 그 손을 잡았다.
당신은 저를 믿나요, AK-15?
그녀의 눈동자에, 흔들림은 없었다.
......
당신은 저를 믿나요, AK-15?
......나는 항상 너를 믿었다.
너는 내가 가장 강한 전술인형이기만 하면 되도록 해 주었고, 어떠한 고민도 시키지 않았다.
난 항상 너를 믿었다, RPK. 네가 말한 것처럼.
나는, 너를 믿었다.
......
AK-15?
......
테이프를 자르고, 손 안의 탄약의 수를 가늠하는 AK-15의 눈동자는 고요해,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하나 더.
이미 많이 만들었다.
하나만 더.
...이건 RPK의 몫이다.
......
그녀만은... 내 손으로 직접 처리하겠다.
네 심정은 이해한다, 나도 같으니까... 하지만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면 임무를 그르치게 된다.
알고 있다.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그녀를 죽인다면, 반드시 내가 해야만 한다.
...파트너이기 때문인가?
그녀에게 최강의 전술인형은 나니까.
그렇기에 그녀는 나를 이길 수 없다. 절대.
......
가자, 지휘관이 부른다.
그래.
AK-15는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한 무장을 전부 주머니에 수납했다.
과연 누가 첫번째일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RPK-16이 마지막이 될것임은 틀림없다.
그녀가 장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