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Zero1
MOD 4
얼른 시트부터 덮자.
뒷골목의 집으로 돌아오니, 지붕으로 쓰던 검은 비닐 천이 깃발처럼 벗겨진 채로 나부끼며 그들을 반겼다.
바람이 너무 강해요, 그쪽을 눌러요!
이미 떨어지는 빗방울에 우박까지 섞이기 시작하자, Rex Zero 1은 당황해서 빨리 비닐 천을 잡아당겨 다시 고정하려 했다.
손이 안 닿아!
마틸다는 격하게 펄럭이는 "지붕"을 잡지 못해 몇 번이나 폴짝이면서 발받침이 될 만한 걸 찾으려고 애썼다.
찌지지익!
하지만 천은 결국 강풍에 찢어져 버렸다.
더는 지붕으로 쓸 수는 없지만, Rex Zero 1은 급한대로 그걸 주워 마틸다에게 우비처럼 둘러 주었다.
일단 비를 피할 곳을 찾아요, 치우는 건 비가 그치고 난 뒤에 해요.
왼쪽 사거리의 저 식료품점, 차양막을 안 걷은 거 같아.
Rex Zero 1과 마틸다가 골목 입구를 향해 달리는 와중에도 빗발은 점점 더 거세졌다.
철퍽!
그런데 웬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골목 입구에서 튀어나와 두 사람에 앞에 쓰러져, 흙탕물이 튀었다.
어딜 도망치려고?
그 뒤로 지렛대 방망이 같은 흉기를 든 괴한들이 나타났다.
두목으로 보이는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사람이 다가와, 바닥에 쓰러진 남성의 얼굴을 짓밟았다.
이제 여긴 내가 접수한다.
길이 막혀버린 Rex Zero 1과 마틸다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상황을 살폈다.
도널드...?
그리고 어떻게 된 건지 깨달은 Rex Zero 1이 마틸다를 붙잡았다.
어라? 낯익은 얼굴이군.
바닥에 쓰러져 뒤통수에서 피를 흘리는 남성은 다름아닌 이 일대를 쥐고 흔들던 조직 폭력배의 두목, 도널드였다.
마틸다도 상황을 파악하고는 Rex Zero 1의 손을 뿌리치고 달려나가, 도널드를 냅다 발로 걷어찼다.
도널드는 그 뚱뚱한 몸에 상처는 보이지 않았지만, 부상을 입은 모양인지 바닥에 엎어진 채 신음하기만 했다.
하하핫! 이런 날이 다 오는구나!
안녕하세요 두목님!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이놈 눈치를 보느라 고생했거든요!
저희 모두 두목님을 환영해요! 앞으로는 두목님 말을 따를게요!
흐음? 눈치 좋은 꼬맹이군.
이제 이 일대를 접수하게 된 조폭의 두목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자, 마틸다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두 손으로 그에게 건넸다.
성의예요, 받으세요.
비가 많이 오니까 방해하지 않을게요, 저희는 그냥 비를 피하려던 참이었거든요.
두목은 고개를 흔들어 보내 주라 신호했고, 마틸다가 손을 흔들어 보이자 Rex Zero 1도 그녀를 따라 나서려 했다.
잠깐. 인형은 두고 가라.
Rex Zero 1이 지나갈 때, 조폭 두목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봐서 얼마에 팔 수 있나 알아보고, 헐값이면 그냥 분해해서 부품이나 팔아.
Rex Zero 1이 꽉 잡고 있던 마틸다의 손을 놓으려는 순간, 다시 손을 붙잡혔다.
두목님, 얘는 그냥 고물이에요. 쓰레기통에서 주워서 간신히 수리한 거라 돈도 별로 안 될걸요?
하지만 저랑 같이 사기를 치고 다녀요, 방금 드린 돈도 그렇게 벌었고요! 그러니까 헐값에 팔기보단 저랑 같이 돈을 벌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남자는 마틸다의 말을 가늠하듯 Rex Zero 1을 위아래로 유심히 살피던... 그때.
바닥에 엎어진 도널드가 벌겋게 부은 눈을 간신히 뜨며 꿈틀했다.
......죽...어...!
콰앙!!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채 깨닫기도 전에, 그 자리의 모두가 폭음에 집어삼켜졌다.
다시 눈을 뜬 Rex Zero 1이 본 광경은 완전히 엉망진창이었다.
서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녀도 몸의 절반이 폭발로 부서진 벽돌과 타일에 묻혀 있었다.
마틸다... 마틸다!
빗줄기가 너무 굵어서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 Rex Zero 1은 손으로 주위를 더듬었다. 마틸다는 그녀 바로 곁에 있었으니, 분명 지금도 그럴 터였다.
더듬던 손에 살덩이와 끈적한 액체가 만져졌다. 아무래도 도널드가 몸에 숨겨 뒀던 폭탄을 터뜨린 모양이었다.
마틸다... 어딨어요, 마틸다...
......여기 있어...
바로 뒤였다.
Rex Zero 1은 황급히 그곳을 파헤쳐, 마틸다를 덮은 잔해를 최대한 빨리, 조심조심 들어올렸다.
하지만 그녀의 소체로는 마틸다의 체온을 느낄 수 없었다.
마틸다... 괜찮아요?
마틸다는 다리가 부자연스러운 모양으로 뒤틀리고, 피투성이가 된 머리에 온통 긁힌 자국 투성이였다.
쿨럭... 괜찮아, 안 아파... 게흑...
피거품을 토해내는 소녀. 그제서야 Rex Zero 1은 그녀의 왼쪽 갈비뼈가 움푹 꺼진 것을 발견했다.
병원...! 당장 병원으로 가요!
당장에라도 마틸다를 안아 들고 싶었지만, 차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일어났다. 하지만 도움을 청하러 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빗소리가 너무 커서, 조금만 거리가 있어도 소녀의 목소리가 닿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까.
가지, 마... 내 말... 들어줘...
너... 나한테... 빚, 갚아야지...
학교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들은 도널드 아저씨는 또 뒷목을 잡으면서 저에게 매일 밤 마틸다의 숙제를 봐 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아예 간식으로 저를 꼬셔서 숙제를 대신 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등불이 켜진 거리에 노점들이 들어섰다.
토끼 모양 치즈 케이크, 말린 꽃잎으로 만든 펜던트...
그리폰의 여름 자선바자회가 예정대로 열린 것이었다.
자, 받아. 풍선은 한 사람당 하나야! 아앗 거기! 새치기하면 안 되지!
인형들이 저마다 물건을 팔거나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는 사이, Rex Zero 1은 마르타에게 "도널드의 디저트 하우스" 이야기를 이어 갔다.
선생님, "꽃 쿠폰" 하나 더 받아도 돼요?
대여섯살짜리 남자아이가 분홍색 꽃 모양 스티커를 들고 마르타에게 달려왔다.
안 돼요, 물건을 살 수 있는 "꽃 쿠폰"은 한 사람 앞에 3장만이에요.
네에...
남자아이는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이고는 다시 바자회장으로 달려가, 똑같이 노란 조끼를 입고 솜사탕과 장난감, 풍선을 들고 뛰노는 또래 아이들 무리로 섞여 들었다.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애들이 정말 장난꾸러기네요.
그렇죠...
마르타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봉투를 꺼냈다.
여기 수입이 참 짭짤하네요... 이게 마지막이에요, 받으세요.
마르타의 돈 봉투를 받은 Rex Zero 1은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마틸다의 머리핀이에요. 돌려드릴게요.
마르타는 상자를 열어, 머리핀을 꺼내지 않은 채로 발레리나의 하얀 드레스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발레리나 장식의 흰 레이스에는, 여러 번 세탁해도 지워지지 않는 오래된 얼룩 같은 연갈색의 자국이 있었다.
"도널드의 디저트 가게" 이야기는――
제가 3년 전 그리폰으로 오기 전까지,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았어요.
...네, 고마워요.
마르타는 상자를 닫아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서, 바자회장의 아이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아이들을 보니 또 마틸다가 생각나네요... 어쩌면, 마틸다도 어딘가의 육아원에서 이렇게 보살핌을 받고 있겠죠?
또 몰래 땅콩버터를 먹다 알러지로 입원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Rex Zero 1의 손에 쥐고 있던 고무줄이 끊어졌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우리 아이 이야기를 들려줘서 정말 고마워요...
......
...미안해요.
Rex Zero 1이 주머니에서 구겨진 낡은 카드를 꺼내 건넸다.
그리고 마르타는 그 카드에 적힌 주소에서 "묘지"라는 단어를 똑똑히 보았다.
이게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마르타는 떨리는 손을 뻗었다, 손끝이 그 카드에 닿는 순간 마치 화상을 입은 듯 손을 뒤로 물리고 고개를 돌렸다.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
...며칠만 더, 시간을 주실 수 있을까요?
허공에서 멈춘 손을 도로 물리며, Rex Zero 1은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세우셨나요?
여기 있으려고요. 원장님과도 이미 얘기를 마쳤어요.
마르타는 Rex Zero 1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해, 다시 왁자지껄한 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때마침 멀리서 불꽃놀이가 피어났다.
와아, 예쁘다!
저거 봐! 불꽃 지인짜 커!
화려한 불꽃놀이 아래서 "노란 조끼들"이 즐겁게 뛰노는 모습은 그야말로 아이들의 무궁무진한 생명력과 가능성을 드러내는 것만 같았다.
저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를 위해서... 여기에... 머무려...
마르타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며 눈물을 훔치고, Rex Zero 1에게 미안함을 표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아이, 옷이 또 작아졌네요... 역시 아이들은 정말 빨리 큰다니까요.
일주일 후.
멀리서 희미한 폭발음이 울려 퍼지고,= 오토바이 한 대가 어두운 밤중의 골목길로 돌진했다.
여기는 Rex Zero 1, 임무 완료 후 철수 중입니다.
라저. 좌표 B137로 이동하세요, 거기서 합류해요.
라저.
다시 속도를 높이며, Rex Zero 1은 임무를 완수한 안도감에 콧노래를 흥얼이며 목표 지점으로 향했다.
흥, 흐흐흥, 흐흥...
그렇게 즐거워 보이는 Rex Zero 1은 간만에 보네요, 마인드맵 업그레이드를 받은 소감은 어때요?
...수년간 저를 짓누르던 돌덩이를 내려놓은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네요.
마침내 그 머리핀을 주인에게 돌려 줬으니.
정말 이 일을 모두에게 설명하지 않을 셈인가요? 당신이 마르타에게 일할 곳을 마련해 주고, 보수까지 자비로 대줬잖아요.
행여라도 다른 사람들이 육아원과 병원에서 그렇게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고 오해하면 어떡해요.
아... 그건 생각해본 적 없네요.
고인 물웅덩이 위를 오토바이가 빠르게 질주해, 물보라가 Rex Zero 1의 신발과 양말을 적셨다.
그녀가 딸을 찾는 것 외에는 아무런 미련도 없어 보였어서,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할까 걱정됐어요. 그래서 그녀에게 이 세상엔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잔뜩이라는 걸 가르쳐 줘야 했죠.
그리고 마르타는 이제 육아원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죠. 딸을 찾는 게 더 이상 그녀의 삶의 전부가 아니게 됐으니, 어느 정도는 목적을 달성한 셈이네요.
네, 오해는 나중에라도 풀 수 있으니까요.
――살려 주세요!
어렴풋이 들려온 누군가가 도움을 청하는 소리에, 오토바이가 어수선한 골목길에서 급제동하면서 앞바퀴에서 거친 브레이크음이 났다.
Rex Zero 1? 무슨 일 있나요?
임무도 완수했으니, 2분 정도 늦어져도 괜찮겠죠?
후훗, 언젠가 본 익숙한 장면이네요. 그래도 너무 지체하지는 마세요.
이 머리핀... 네가 가져.
안 돼... 이러지 마...
가져... 이게, 내가 바라는 "보수"야.
...내 몫까지 해서, 열심히 살아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