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
MOD 4
동물 구호소로 가는 길.
갈릴 그 녀석, 왜 아직도 통신을 안 받지?
종합근무팀의 업무가 너무 바빠서겠죠.
이게 다 네게브가 그렇게 간단히 갈릴을 보내서야.
......
스스로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해보겠다는데, 의견을 존중해 줘야지.
어휴, 그래서 뭐가 증명됐는데. 갈릴에게 가능성은 잔뜩인데 우린 걔 없인 못 산다는 거?
......
도착했으니까 그만 싸워요.
안 돌아오겠다 하면 어떡하지?
그럴 리 없어.
그걸 어떻게 알아?
네게브가 구호소의 문고리를 잡았다.
생각은 바보나 하는 짓이지, 천재는 직감으로 충분해.
문이 열리자, 온갖 동물들의 냄새가 한꺼번에 몰려와 인형들의 코를 찔렀다.
그리고 잡동사니들로 잔뜩 어질러진 방 한가운데에, 친숙한 그 인형이 구조된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그만 그만, 봉지 물어뜯지 마 우지!
그거 방금 다 먹었잖아, 이제 없다고!
야, 야! 얼른 뱉어 이 바보야!
갈릴이 퍼그 한 마리를 붙잡아, 입에 문 비닐 봉지를 끄집어냈다.
......
네게브! 너 거기 숨은 거 다 알아!
어휴 진짜, 또 사냥 놀이 하고 싶어서 그래?
알았어, 놀아 줄 테니까 화내지 말고 이리 와.
뒤이어 갈릴은 능숙하게 고양이용 장난감을 흔들어, 캣타워 뒤의 삐진 서벌캣을 달랬다.
......
아휴 우리 타보르~ 역시 타보르가 말 제일 잘 들어.
이거 봐, 얌전하게 깃털 다듬는 게 얼마나 보기 좋아?
너희도 타보르 좀 보고 배워 이 말썽쟁이들아! 이게 바로 진짜 교양 있는 아가씨라고!
그리고 어느샌가 그녀의 어깨에 내려앉아 우아하게 깃털을 손질하는 뱁새를 대견하다는 듯이 쓰다듬었다.
......
후우... 이걸로 챙겨 줬나?
나 이제 퇴근하니까 모두 얌전히 있어야 해, 알았지?
갈릴은 이마의 땀을 훔치고, 동물들에게 당부하면서 가방을 들고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럼 내일 보자 얘들아, 안——
녀엉......
......
안녕, 갈릴.
잠시 후, 카페.
테이블의 커피는 식은 지 오래였지만, 네 인형들 모두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종합근무팀 일은 잘 하고 있어?
어... 괜찮은 편이지.
너희는? 이번 임무 어땠어?
응, 괜찮은 편이었지.
하하...
그거 다행이네.
어색한 안부 인사 후에 또 다시 침묵에 잠겼다.
결국 설탕 스틱을 만지작대던 우지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 진짜, 괜찮긴 뭐가 괜찮았어!
앗, 우지...!
엉?
......
갈릴이 없으니까 네게브가 광전사 모드가 돼도 브레이크를 못 거는데!
시작은 분명 잠입 작전이었는데, 결국 섬멸 작전이 돼 버리고!
나도 타보르도 모두 죽는 줄 알았단 말이야! 게다가――
우지, 그만.
네게브가 언짢은 표정을 비쳤지만, 갈릴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푸흡... 아하하하!
우지, 그만해요. 네게브 화났어요.
사실대로 말한 건데 뭐.
헤헤... 미안, 실은 나도 괜찮지 않았어.
갈릴은 지난 며칠간 있었던 일을 모두에게 털어놓았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핫!!
갈릴도 고생이 많았네요.
뭐, 그래도 받은 일은 어찌저찌 다 끝내긴 했지...
......
그럼 말이야, 카페에서 일하면 휴식마다 간식 좀 슬쩍해도 돼?
당연히 안 돼지 이 밥통아!
에~이, 시시해.
......
우지도 마음이 흔들리나 봐요?
쬐끔은? 이 광전사님의 성깔을 받아 줄 인형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어!
엉?
......
어휴 정말, 우지는 좀 생각을 한 다음에 말하세요.
그리고 네게브, 왜 여태 말이 없어요?
......
갈릴, 그만 돌아와.
으에에에엑?!!
네게브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어!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는 거야?!
확실히 처음 있는 일이네요.
......
개조도 소대 일도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봐, 갈릴.
네게브가 서류 두 장을 내밀었다.
부서 인사 조정 신청서와, 개조 동의서였다.
......
먼저 일어날게.
그럼 난 갈릴이랑 좀 더 있다―― 아, 아! 아파아파 잡아당기지 마아아...
네게브는 우지를 질질 끌고 카페를 나섰고, 타보르도 갈릴에게 인사한 후 그들을 뒤따라갔다.
잠시 평소처럼 시끌벅적하던 테이블에 다시 갈릴 혼자 남게 되었다.
네게브...
네게브 소대의 방.
갈릴 녀석, 왜 아직도 안 오지?
조급해할 것 없어요, 갈릴도 천천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
할 말은 다 했어.
그래, 제 발로 집 나간 사람한테 돌아와 달라는 데서 머리를 숙이면 우리 네게브가 아니지.
아이 참, 우지!
음...? 발소리가 들리네요?
갈릴인가?
똑똑똑. 누군가 문을 노크했다.
스프링필드의 사무실.
갈릴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갈릴 씨, 무슨 일이신가요?
미안해, 스프링필드.
어머, 왜 오자마자 사과하세요?
그게...
갈릴이 손에 쥔 서류를 본 스프링필드는 바로 눈치를 챘다.
당신에게 어울리는 곳을 찾으셨나요?
뭐... 그런 셈이지.
축하드려요, 그런데 왜 속상한 얼굴이세요?
아직... 확신이 안 서서.
이상하지? 나 자신이 아닌 남에 대해선 뭐든 참견할 정도로 많이 아는데...
아뇨, 이상할 것 없어요. 오히려 지극히 정상이죠.
갈릴 씨,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곳"이란 어떤 곳이라 생각하세요?
음... 내가 자신 있게 일을 맡을 수 있는 곳. 달리 말하자면, 내가 떳떳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이겠지.
갈릴 씨라면 어디서든 떳떳하실 수 있잖아요.
에이, 비행기 태우지 마. 지난 며칠 동안만 해도 종합근무팀에서 얼마나 사고를 쳤는데...
그런가요? 이상하네요, 제가 들은 바랑은 전혀 다른데.
모두, 갈릴 씨가 처음이라 익숙지 않을 텐데도 책임감이 강하고, 어떤 돌발 상황에도 주눅들지 않는 용기 있는 분이라고 했는걸요?
그, 그래? 아하하하...
저희의 평가 기준상으로도 당신은 합격점을 충분히 넘었어요.
어디서든 당신답게 있을 수 있다고 한 것도 그래서고요.
하지만 갈릴 씨의 진짜 문제는, 그중에서 어디에 몸담을 것인지를 판단할 기준이겠죠?
그렇긴 한데... 솔직히, 객관적인 기준은 없을 거 같아.
네, 저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다 당신이 마음먹기에 달렸죠.
바로 지금처럼요. 이미 답을 찾지 않으셨나요?
인형에게도 마음이란 개념이 있을까...?
글쎄요, 과연 어떨까요?
스프링필드는 살짝 갸우뚱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도 스스로 답을 찾으라고?
후훗, 그럼요.
하핫... 정말 고마워, 스프링필드.
며칠뿐이지만 신세 많았어.
저야말로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모두가 좋아했는데 이렇게 가신다니 왠지 섭섭하네요.
종합근무팀의 문은 항상 열려있답니다. 행운을 빌어요.
갈릴은 예의바르게 꾸벅 인사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그리폰 숙소, 네게브 소대의 방.
벌써 몇 명이나 왔다갔는데...
갈릴 진짜 돌아오는 거 맞아?
......
분명 돌아올 거예요.
다시 한번, 숙소의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났다.
누구인가? 내 경고하노니, 지금 네게브 각하께서 매우 기분이 안 좋으시다!
하지만 방문자는 겁먹지 않고 다시 문을 두드렸다.
오우, 이거 용사네.
문 열게요, 잠시만요.
문 앞에는 낯익으면서도 다소 낯선 모습의 인형이 서 있었다.
오오!
안녕, 갈릴이라고 해.
여기가 네게브 소대의 숙소 맞지?
풋... 맞아. 반가워, 난 네게브야.
킥킥킥, 안녕~ 난 우지!
타보르라 불러 주세요♪
모두... 앞으로도 잘 부탁해!
네 인형은 서로를 꼬옥 껴안았다. 말로는 다 전하지 못한 마음을, 뜨거운 포옹으로 대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