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 청소부
ART556
크리스마스 파티가 시작하기 전인 오후.
인형 숙소.
빈둥빈둥 웹서핑이나 하던 ART556에게 갑자기 메시지가 도착했다.
진짜 뭐냐구... 올해가 가기 전에 또 사고 치지만 않으면 용서해 준다더니...
왜 꼭 명절 전에 "설날 때의 일을 잊진 않았겠지?" 같은 쪽지를 보내는 거야!
삐익!
새로운 메시지? 그 망할 지휘관이 보낸 거면 그냥 무시해야지...
응? FN57이네.
혹시 숙소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인형이 있다면, 지금 일손이 부족하니까 지휘실에 와서 임무 좀 받아.
가장 먼저 온 인형에겐 임무가 끝나면 카페에서 사탕 2인분을 주겠어.
ART556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음흉한 표정으로 손을 몇 번 비비고, 옷장에서 며칠 전 만들어둔 옷을 꺼냈다.
히히히... 이걸로 지휘관도 날 막을 수 없어!
이건 임무니까! 응!
1시간 후.
그리폰 기지의 공터.
...아니, 정확히는 공중에서.
하하하, 야호! 선물 배달은 원래 이렇게 신나는 일이었구나!
기억해둬야겠다, 선물 배달은 심부름보다 1만 배는 재밌는 임무라고!
ART556은 커다란 선물 보따리를 짊어지고서, 기지 건물들의 지붕을 폴짝폴짝 넘나들었다.
이번 선물은... 에이 몰라, 그냥 던져 넣어야지!
ART556이 열려 있는 창문으로 냅다 선물을 던졌다.
쿵!
아야! 뭐야?! 머리에 뭐가 떨어진 거지?
흐흥~ 크리스마스 선물 폭격이지롱~!
ART556은 계속해서 지붕의 사이사이를 날렵한 몸짓으로 뛰어다녔다.
누― 구― 없나요오오~?
...!? 거기 누구냐!
(깜짝 놀라게 해줘야지♪)
ART556이 굴뚝을 통해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으앗! 까, 깜짝이야...!
크윽... 너도 어둠에 물든 인형이냐? 정의의 철퇴를 맛봐라!
으아악! 무슨 짓이야?! 좋은 분위기 다 망치네!
ART556은 그 방에서 허겁지겁 도망쳐 나온 후, 다시 지붕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휴우... 기습 방문은 대상을 가려서 해야겠네.
그럼 다음 집으로 가보실까!
다음 집에 도착한 ART556이 지붕을 발로 차봤지만, 반응이 없었다.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을 쳐봐도 마찬가지였다.
어라? 아직도 자나... 지금 해가 중천에 떴는데 뭐해! 일어나서 선물 받아!
ART556은 다시 지붕으로 가, 굴뚝을 통해 들어가 이 잠꾸러기를 놀래키려 했다.
이거 식은 죽 먹기네... 약~간 지겨울 정도인데?
FP6 그 녀석, 알고 보니 지휘관이랑 똑같은 타입의 바보였나 봐!
겨우 이런 임무에 백기를 들다니, 으이구...
그냥 이렇게, 굴뚝으로 쏙 들어가면 되는 일 가지고――
으아아아아아악!
ART556은 굴뚝의 중간쯤에 엉덩방아를 찧고 나서야, 이 집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굴뚝을 나무판자로 막아둔 것을 발견했다.
뭐야, 굴뚝을 막아 버리는 녀석이 어디 있어? 낭만을 몰라도 너무 모르잖아!
에이, 선물은 그냥 문밖에다 두자...
...어라? 어어어?!
나... 안에 끼인 거야...?
으에에에에에엑???!!
1시간 후.
옥상.
살려줘―!! 나 ART556이 굴뚝 안에 끼었어―!!
콜록 콜록...
계속 소리 질렀더니 힘드네...
게다가 아무도 도와주러 오질 않고... 다들 오늘 바빠서 그런가?
으으... 갑자기 친구가 다 사라진 느낌이야... 평소엔 다 함께 놀았는데...
날은 저물어 갔고, 아무도 ART556의 도움을 청하는 소리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여기 사는 인형이 낮잠 자던 게 아니라, 정말 집에 아무도 없었나 보네.
우이씨, 설마 저녁에 사람이 돌아와서야 이 빌어먹을 굴뚝에서 나갈 수 있는 거야?
ART556은 굴뚝 속에서 아등바등 몸부림치면서, 나무판자 사이에서 선물 보따리를 끌어당겼다.
허나 거절한다!
이대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지! 내가 무슨 MT9이 자기 전에 읽던 동화책의 백마 탄 왕자님 기다리는 잠자는 공주인 줄 알아?!
이런 위기의 순간에도 마음껏 즐길 거라구!
헤헤, 그럼 어디... 이 커다란 선물부터 뜯어볼까나!
ART556은 기묘한 포즈로, 움직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몸을 비틀어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리고 보따리에서 푸른색 선물 상자를 꺼내서... 뜯었다.
와아! 이, 이건 진공 포장한 칠면조 구이잖아!?
아무래도 이건 사브리나의 선물인가 보네. 부러워라~ 어디 비싼 포장지만큼 맛있나 보자고.
이어서 길쭉한 주황색 선물 상자를 뜯었다.
응? 이건 뭐야? 새로 출시된 크바스인가?
거 참 술병 한번 사치스럽네. 이런 걸 수집하다니 돈이 남아도나? 그냥 페트병이면 충분하잖아...
음, 맛은 좋네.
ART556은 계속해서 다른 선물들의 포장을 뜯었다.
이건 또 뭐지? CD인데... 이상한 마스크를 쓴 사람들만 있잖아?
대체 누가 이런 이상한 선물을 보낸 거지?
엑, 짠 소시지까지 있잖아... 크리스마스에도 이런 걸 먹고 싶어 하는 녀석은 대체 뭐야?
그래도 어디 맛 좀 볼까... 으엑, 진짜 엄청 짜네...
신제품 미채복에 보드카라... 우웩 맛없어!
아니 근데, 명절마다 줄창 퍼마시다 곯아떨어지는 주정뱅이 녀석들이 선물까지 술로 받아? 가만히 둘 수 없지.
쬐끔만 버려 버릴까나... 어차피 굴뚝 속이니 아무도 모르겠지? 히히히, 나는야 모두의 건강을 지켜주는 수호천사!
하하하, 이번 크리스마스는 정말 즐거운걸!
1시간 후.
배부르게 먹은 ART556은 보따리 밑바닥에 아직 선물 상자가 하나 더 남아있는 것을 보았다.
으으, 이거 잘 안 꺼내지네... 아이고 내 허리... 아이고 내 엉덩이! 어휴, 여기 굴뚝 막은 녀석은 천벌이나 받아라!
어디보자... 음? 이건 꽤 눈에 익은데...
마지막 선물 상자를 연 ART556은 내용물을 보곤 기쁨에 소리쳤다.
폭죽이다~! 우와, 이거 저번 설날 때 SAT8이 만든 거랑 똑같네?
아싸~ 또 폭죽놀이다!
어어... 그러니까, 여기에 불을 붙이면...
ART556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폭죽의 절반가량에 불을 붙였다.
역시 이렇게 하는 거네!
나도 기억력이 참 좋다니까♪
좁고 네모난 밤하늘을, 폭죽의 불꽃이 수놓았다...
반짝이는 불꽃과 굉음 덕분에, ART556은 굴뚝 속에 홀로 갇힌 고독감마저 잊었다.
우오오오! 진짜 멋지다!
역시 명절엔 불꽃놀이가 빠질 수 없지!
아 맞다, 모처럼이니까 찍어서 MT9에게 보여주자.
ART556은 힘겹게 뒷주머니에 손을 넣어, 통신기를 꺼내 들었다.
한 장 찰각. 오오, 잘 나왔다! 한 장 더 찰칵...
좋아, 게시판에도 올려야지.
하하하하, 추천수 엄청나네! 그래, 더 많이 눌러라 눌러!
그렇게 통신기를 바라보며 웃던 ART556은 불현듯 깨달은 점이 있었다.
어... 잠깐만...
통신기! 으아아, 처음부터 통신기로 구조 요청했으면 됐잖아!!
ART556이 아차 하며 이마를 탁 치고, 지휘관에게 연락하려던 그때였다. 문득 귀를 기울이니, 방금까지만 해도 조용하던 주변이 지금은 말소리로 시끄러웠다.
뭐가 이리 시끄럽지? 밖에 사람들이 모인 것 같은데... 쳇, 굴똑 안이라서 뭐가 보이질 않으니...
아, 알겠다. 방금 쏘아 올린 폭죽 때문에 사람들이 모인 거구나! 다들 불꽃놀이를 보러 온 거야! 역시 명절은 불꽃놀이로 장식해야지!
에잇! 펑펑!
ART556은 들뜬 마음에, 나머지 절반의 폭죽에도 불을 붙였다.
하하하! 이래야 분위기가 살지!
폭죽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멋진 물건이야!
누구야! 지금 폭죽 터뜨리고 있는 사람 누구야!
......헐.
......30분 후.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며진 카페.
에헤헤... 아이, 알았으니까 그만 소리 질러...
그만 소리 질러 달라? 지금 그렇게라도 안 하면 네 귀에 들어가기나 하겠어?
어휴 정말! 어떻게 하나같이 고작 선물 배달하는 일 가지고 사고를 치는 거야...
너 말이야, 행동하기 전에 아주 쬐에에끔만이라도 생각을 해야 되지 않겠어? 네 마인드맵은 장식이야?!
ART556은 혼나면서도 여전히 배시시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헤헤... 알았다니까 그러네...
겨우겨우 빠져나왔는데,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네가 그렇게 소리 질러 대면 창피하단 말이야...
FN57이 눈살을 찌푸렸다.
창피한 줄은 아는구나...
또 이렇게 말썽을 부렸다간, 나도 더는 안 봐줄 거야. 지휘관이 이 일을 알게 되면, 널 며칠이나 독방에 가둘지 어디 두고 보자고.
히이익! 지, 지휘관한테는 이르지 말아줘!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다구...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니까...
이브니까 뭐? 변명할 거라도 있어?
아니아니 그게 아니라!
내 말은,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이브는 모두 즐겁게 보내는 날이잖아?
그래서, 넌 오늘 하루 즐거웠어? 굴뚝에 반나절이나 처박혀 있었는데도?
물론이지!
ART556은 통신기를 꺼내, 굴뚝 안에 있을 때 찍은 사진을 FN57에게 보여줬다.
굴뚝 속에서 올려다본 네모난 밤하늘에서 타들어 가는 불꽃의 사진이었다.
이런 경험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아무리 좁은 세상에서도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 아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