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위성
FP6
크리스마스 당일, 그리폰 기지의 로비 위.
FP6은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 망할 굴뚝은 대체 누가 설계한 거야?
뭐가 이렇게 작아! 이렇게 작아가지곤 산타클로스가 난쟁이가 아니고서야 들어갈 수가 없잖아!
그때였다. 사뿐사뿐한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고, FP6이 끼인 집 앞에서 멈추더니 누군가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지금 누가 들어온 거 맞지? 누구든 간에 여기 좀 봐! 굴뚝에 사람이 끼었어!!
뭐야? 너무 높아서 잘 안 보이는데...
근데, 이 목소리는 설마?
응? 왠지 익숙한 목소리네.
부탁할게, 나 좀 굴뚝에서 꺼내줘!
......FP6이구나! 목소리가 딱 너네!
흥이다! 너 같은 건 안 도와줘!
뭐야... 꼬맹이었어? 왜 또 너야?
꼬맹이면 어때서! 어쨌든 넌 안 도와줄 거야!
그 일 때문에 아직도 삐진 거야?
그때 네가 방심해서 추적당한 거였잖아. 내 탓이 아니라고.
그리고 지휘관의 동의하에 너한테 그런 거야.
뭐가 어째!? 아무리 지휘관이 허락했다 해도 그렇지, 굳이 공개석에서 그래야 했어?!
크으으... 모두 앞에서 그런 꼴을 보이게 만들고, 아직도 제대로 눈을 못 마주치겠단 말이야!
겨우 그 정도 벌칙 게임 가지고, 꼬맹이답게 속도 참 좁네.
그래봤자 방식이 좀 특이했을 뿐이잖아. 네가 울기 전에 그만둬 주기까지 했건만.
너... 너...!
나한테 그런 짓을 하고도 그렇게 뻔뻔하게...!
절대 안 구해줄 거야! 날 그렇게 놀린 벌로 혼자 굴뚝 위에서 잘 지내보셔!
내일 아침까지 거기서 반성하고 있으라고!
사적인 복수는 나쁜 짓이란다, 꼬맹아.
그리고 분노는 새로운 실수를 초래하지. 너, 전혀 반성하지 않았구나?
나 화 안 났거든?! 그리고 반성은 무슨 반성! 그딴 수준 낮은 도발에는 안 넘어가.
어디보자... 아, 찾았다. FN57이 가져와 달라 부탁한 연장.
그럼 난 간다. 잘 있어.
정말로 답이 없는 녀석이네...
철컥철컥.
어...? 뭐야, 이거 왜 안 열려?
들어올 때 잘만 열렸는데...?
Super-Shorty는 다시 힘껏 문을 당겨봤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방금 누가 문을 확인했거든. 열려 있어서 바로 잠그고 가더라.
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안에서 소리가 나는데도 몰랐단 말이야?! 잠깐 들어와서 보기만 해도...
대체 어떻게 보지도, 듣지도 못한 거야!?
오늘 기지의 모두가 바쁘잖아.
여기저기 시끄러운 소리가 잔뜩인데, 네 몸집만큼 작은 소리는 주변의 소음에 다 묻혀 버린다고.
그리고 방 안에 물건이 그렇게 많은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너 같은 꼬맹이는 있는지도 모를걸?
그, 그럼 넌 어떻게 알았는데?!
바로 위에 있었으니까. 내가 방금 말했지? "분노는 새로운 실수를 초래한다"고.
실수에서 교훈을 얻긴커녕, 남의 충고도 새겨듣지 않는구나, 꼬맹아.
으으으...
정곡을 찔린 듯, Super-Shorty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너, 위에서 들었댔지. 왜 안 알려줬어?
내가 충고했는데 네가 듣지 않았잖아. 그건 내 잘못이 아니지.
이렇게 계속 실랑이를 벌여봤자 의미 없어. 이제 너도 선택지는 하나뿐이야.
말하지 마. 안 들을 거야. 절대로 네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겠어.
다른 수가 없을 텐데.
먼저 날 굴뚝에서 밀어내고, 그다음 너도 굴뚝으로 나오는 거야.
이 집을 부숴서 월급 떼이기 싫으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으으으...
아니면, 누가 와서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릴 거니?
내가 여기서 반나절을 허비하는 동안, 온 사람은 너밖에 없었어.
그건...
정말 월급 떼이는 걸 감수하고 문을 부수고 나갈 셈이니?
그러면, 음... 저번에 네가 지휘관에게 "아동복 입고 데이트하기 싫다"고 불평했지, 아마?
여기서 쓸데없이 감봉당한다면, 아동복 말고 외출할 때 입을 근사한 옷을 언제쯤에나 마련할 수 있을까나... 꼬, 맹, 아?
괘... 괜한 참견이거든?!
네가 먼저 저번 일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으면, 나도 절대 안 구해줄 거야!
왜 내가 먼저 사과해야 해? 난 잘못한 거 없는데.
너 정말 성격이 뭐가 그렇게 더러워!?
널 구해줄 바에야, 차라리 여기서 있을 거야! 해가 지기 전에는 누가 오겠지!
난 사실대로 말한 것뿐인데.
오오... 구름이 갠다. 이제 보니 여기 경치 정말 좋다.
...잠깐, 한 가지만 묻자.
FP6, 너 대체 왜 굴뚝에 끼어 있는 거야? 문 놔두고 거기서 뭐 해?
G36이 오늘 하루는 쉬어야 해서, 선물 중 일부를 내가 나눠주기로 했어.
그래서, 굴뚝으로 들어가려다 끼었다고?
시간 절약하려고, 최단 경로를 따라 전동휠을 타고 지붕 위를 돌아다녔거든.
그러다가 여기가 크리스마스 파티 장소인 걸 깜빡하고 실수해서, 그만 굴뚝에 끼어 버리고 말았어.
기지에서 여기하고 건너편 빼면 다 현대식 건물이잖아.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거야?!
아무리 인형이라 해도 그렇지, 안전에 주의해야 할 거 아니야!
그래그래, 나도 지금 반성하고 있어. 그러니까 꼬맹이 너도 괜히 힘 빼지 말고 얌전히 쉬고 있도록 해.
흥, 결국엔 네 자업자득이란 거네.
밑에서 털썩하는 소리가 났다. Super-Shorty가 적당한 자리에 앉는 소리였다.
FP6도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저 주머니에서 초콜릿을 꺼내 입을 물고는, 눈을 감은 채 메모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때, Super-Shorty가 다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근데... 네가 선물을 나눠주는 일을 맡다니, 좀 의외네.
평소에는 실수를 저지른 녀석을 찾아가서 골려 먹기나 하면서 말이야...
전혀 너답지 않은걸.
......
...FP6? 야, 괜찮아?
설마 방전되기라도 했어?
...아니, 입에 초콜릿 있어서 대답 못 했어.
뭐야... 혼자서 먹기 시작한 거야?
미안. 지금 같은 상황에선 같이 나눠 먹을 수도 없잖아.
그리고 난 언제나 착실하게 일하면서, 예절과 규범을 지키고, 자신의 원칙을 어기지 않는 모범 전술인형이거든.
어린애처럼 잘못을 저지르고도 변명만 늘어놓는 누구누구 씨랑은 다르게 말이지.
으으으으!
넌 역시 성격이 글러 먹었어!
네에, 네에.
......
아얏! 무슨 짓이야?!
너만 사람 벌줄 줄 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야...!
남한테 말로 상처입히고, 그런 괴팍한 놀이로 망신시키는 녀석은 엉덩이 좀 맞아야 해!
뭐?! 아, 아! 야!!
함부로 남의 엉덩이를 때리는 녀석이 더 이상하지!
그것보다, 키도 작은 꼬맹이가 여기까지 어떻게 손이 닿는 거야?!
키가 작은 게 내 자랑거리라고!
키도 작고, 덩치도 작으니까... 굴뚝 속을 오르내리는 것쯤이야 간단하지!
그런 게 무슨 자랑거리야!?
그리고 꽤 높으니까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
여기는 신호 감도가 나빠! 만약 네가 떨어져서 다치더라도 바로 도움을 못 부른다고!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상관 마!
가만히 있어, 지금 방법을 생각하고 있으니까.
어?
가만히 있으라고. 계속 움직이면 진짜 내버려 둘 테야.
(방금까지 안 구해준다더니.)
그래, 가만히 있을게.
흐응... 꼬맹이 주제에 팔힘이 꽤 세네...
흥, 그러니까 키가 작다고 얕보지 말라고.
그래서, 뭘 어쩌려고 그래?
느낌상 손으로 내 엉덩이를 미는 것 같지는 않은데...
좀 가만히 있으라니까... 손으로는 안 밀려서, 지금 어깨로 밀어내고 있어.
어깨라...
알았어, 조심해.
끄응...
이제, 조금만... 더——
으랏차!
Super-Shorty가 FP6를 굴뚝에서 밀어내는 순간, 반동으로 인해 몸이 공중에 붕 떴다.
됐――
어... <Size=50>꺄아아아아아악!</Size>
위험해!
FP6은 선물 보따리를 버리고 Super-Shorty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Super-Shorty가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리면서, 겨드랑이에 끼워뒀던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조심해서 올라와.
내가 붙잡고 있으니까 걱정 말고, 침착하게, 천천히 올라와.
응...
발 디뎠으니까, 그만 손 놔도 돼.
좋아, 헛디디지 않게 조심하고.
잠깐의 난리 끝에, 두 인형 모두 지붕 위에
FP6은 Super-Shorty를 붙잡느라 뒹굴면서 몸에 묻은 눈을 털어낸 뒤, 내팽개쳤던 선물 보따리를 다시 주워들고 전동휠에 올라탔다.
상황 종료. 나 먼저 갈게. 이 위에 너무 오래 있지는 마.
잠깐, FP6!
응? 말싸움이라면 어울려줄 시간 없어.
지쳤으니까 그건 됐어...
자, 사탕 받아. 메리 크리스마스.
아... 고마워.
그건 그렇고, 오늘 저녁에 너도 카페에 갈 거야?
기분 내키면. 왜?
그냥 가보면 알아.
...설마 이거 또 무슨 벌칙게임인 건 아니지?
아니야. 약속할게.
그럼 나도 기대 안 할 거야.
Super-Shorty는 FP6를 향해 씨익 웃고 떠났다.
FP6는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몰래 웃으며 시동을 걸었다.
확실히 옥상은 위험하네. 녀석 말대로 지상으로 다니자.
...참 솔직하지 못한 녀석이라니까.
화해하려고 그런 연기까지 하는 너도 솔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데.
......
어머, 590. 어서 와.
다시 순찰 나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
네 계획이 잘 진행됐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내 도움까지 빌렸으면서, 이렇게 걱정하게 만들다니... 너무한 거 아니야?
.........
오늘 날씨 참 나쁘네.
눈은 펑펑 내리지, 구름도 잔뜩 껴서 햇빛은 한 줄기도 안 보이고.
590, 아직 있어?
아까부터 여기 있었어.
FP6... 너무 무모한 계획이라는 생각, 안 들어?
"가시덩굴 속에 손을 넣지 않으면, 장미꽃을 얻을 수 없다."
걱정 마, 녀석의 성격상, 날 내버려 두고 가진 않을 테니까.
만약 내버려 두고 간다면?
그땐 네가 날 구해줘야지.
너도 참 낙천적이구나...
......
목표가 나타났어. 네 위치에서 90m. 이만 통신 종료하고 신호 차단할게.
그럼 부탁해.
FP6은 통신을 종료했다. 그리고 힘을 풀고 굴뚝에 더 깊숙히 몸을 쑤셔 넣었다.
이렇게까지 쑤셔 넣는데도 조금밖에 안 들어가네... 하아... 이 망할 굴뚝은 대체 누가 설계한 거야?
뭐가 이렇게 작아! 이렇게 작아가지곤 산타클로스가 난쟁이가 아니고서야 들어갈 수가 없잖아!
그때였다. 사뿐사뿐한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다 집 앞에서 멈추더니, 누군가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
역시 네가 가장 믿음직하다니까.
후우... 역시 위험했어. 그대로 돌아가지 않고 지켜보길 잘했네.
방금 네가 걔를 붙잡지 못했다면, 내가 긴급 구조 요청을 해야 할 판이었어.
아... 그건 그냥, 사소한 사고야.
그래도 결과적으론 꽤 괜찮았잖아?
그래가지고 어떻게 "화해"하겠다는 건지...
누가 "화해"한대? 이건 서먹한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첫걸음이야.
저렇게 귀여운 얼굴로 맨날 인상 쓰고 다니면 불쌍하잖아. 안 그래?
사람을 손바닥 안에서 가지고 놀았으면서, 그게 무슨 "관계 개선"이야...
아무튼, 저녁에 정말 사과할 생각이야?
글쎄, 제2단계는 아직 계획하지 않았거든.
뭐, 애드리브가 제일 재미있는 법 아니겠어? 어떻게든 되겠지.
나 참... 실력은 출중한데, 성격이 엉망이라니...
그래, 너희를 믿지 못하면 누굴 믿겠니.
그래도 이런 일은 다시는 안 해. 이렇게 몰래 문을 잠그는 일 같은 거.
그래 그래, 다시는 그런 일 안 시킬게.
정말로?
당연하지. 나를 뭘로 보는 거야?
똑같은 놀이를 반복하면 금방 싫증 난다고.
어휴... 그럴 줄 알았어...
자아, 그럼 다음은 누구 차례일까나?
어떻게 하면 좋을지, 선물을 나눠주는 동안 고민해 봐야겠네.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