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두근거림
M1014
참아야 해, M1014!
다신 없을 절호의 기회란 말이야!
땅바닥에서 3.06m 높이의 테라스에서 30분이나 머무는 중인 M1014는 강하게 자기암시를 걸었다.
고소공포증이 도지는 3.54m보단 낮지만, 높은 건 마찬가지였기에 오래 있자니 역시 스트레스가 쌓여 갔다.
그런 M1014가 왜 웨딩드레스를 입고 천사 조각상과 함께 높은 테라스에서 서있는가 하면, 이야기는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전 8시, M1014는 지휘관의 방에서 M950A의 압박 취조에 해명하느라 고생 중이었다.
그럼 이 결정적인 단서에는 뭐라 변명할 건데?
M950A는 지휘관의 침대 옆에 떨어져 있던 머리카락을 쭈욱 잡아당겨, M1014의 머리와 비교했다.
고작 머리카락 몇 가닥으로 뭐가 증명된다고 그래?
그날 밤에 나타났던 모습도 검은색에 장발이었지, 마카로프?
그건 그렇지만, 우리 정말 생인형 잡는 중이었어.
누가 오늘 아침의 숙소 감시 카메라 영상을 보냈는데, 직접 봐봐.
지휘관님, 현재 시각 아침 6시 00분입니다! 7시 00분부터 기지 내 인형들의 어침 점호가 있어요!
8시 00분에는 지휘실에서 아침 회의도 있잖아요, 카리나 씨가 다음 일정을 전달해 드릴 거예요!
지휘관님, 제 말 다 들으셨어요? 지휘관님!
이른 아침, M1014는 지휘관의 방에 들이닥쳐 폭풍처럼 오늘의 일정을 설명하면서 지휘관을 침상에서 일으켰다.
하지만 M1014란 "폭풍"이 휘몰아쳐도, 지휘관은 잠기운에 정신을 차리질 못해 M1014는 계속해서 지휘관의 귓가에 소리쳐댔다.
어... 어어, 잘 잤니 M1014?
어제 너무 마셔서 그런지 아직도 어질어질하네...
시간 맞춰 깨워 줘서 고마워, 15분만 더 잤어도 일정이 완전히 꼬일 뻔했네.
어젯밤에 한 지휘관님과의 약속을 지키러 왔을 뿐이에요.
밤에 분명 엄청 취해서 인사불성이 될 거라 하셨잖아요.
꼭 아침 6시에 와서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깨워 달라고 5번이나 신신당부하신 거 벌써 잊으셨어요?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그때 이미 완전히 취했나 보네...
안심하세요, 정말 그랬어야 해도 힘조절은 했을 테니까요.
자신을 기어코 깨워 일으켜 세운 M1014를 보며 모종의 경외심을 느끼는 지휘관의 표정까지, 감시 카메라 영상에 또렷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정말 깨우러만 온 거야?
함부로 M1014를 의심한 걸 사과해야겠는걸.
그런데, 지휘관을 깨우러 온 거였으면 그냥 처음부터 말하지.
지, 지휘관님의 이미지를 생각해서 그런 거야!
모처럼 지휘관님이 나한테 특별히 부탁하셨는데, 둘만의 비밀로 하고 싶었다고...
으... 미, 미안해, 내가 너무 성급하게 판단했어...
사과하는 의미로, 사건이 해결되면 너한테 꼭 보상할게.
그럼, 다음 단서는 탁상에 있던 그 누가 포장 뜯고 한입 베어먹은 초콜릿이지?
M1014의 알리바이가 입증된 후, 그 초콜릿으로 인해 다들 의심의 화살을 FNC에게 돌렸다.
그럼에도 M1014는 결국 다음날 발생한 사건에도 휘말리고 말았다.
아무튼, 얼른 피팅룸에서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골라 보세요.
이번엔 또 무슨 짓거리야? 녹화 영상으로 내가 범인이 아니란 건 증명됐잖아.
무고한 널 의심했던 것에 대한 사죄라 생각해.
그러니까 괜히 캐묻지 말고 빨랑 가서 입을 옷이나 고르라고.
M1014는 어리둥절해하면서 어두운 피팅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스위치로 방의 등불을 켜자,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기회가 눈앞에 펼쳐졌고... 지금에 이르게 된다.
M1014가 정말 드레스를 입을까?
평소에도 일에 열심인 여자애일수록, 예쁜 물건에 저항력이 떨어지는 법이랍니다.
그때, M1014가 쭈뼛쭈뼛하며 피팅룸에서 나왔다. 마치 천사와도 같은 자태에, 카노와 스테츠킨은 저 인형이 자기들이 아는 M1014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저기, 이거... 어, 어때...?
마... 마치 현세에 강림한 천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네요! 음! 그만큼 잘 어울리는 촬영 장소를 선정할 필요가 있겠어요!
옆의 스튜디오에 천사 조각상 있는데, 거기 어때?
카노의 초대를 받아, 나도 웨딩드레스 촬영회 이벤트 회장으로 왔지만... 참가하는 인형들의 대다수가 발렌타인 파티 직후의 소동과 관련 있는 아이들임을 알게 되었다.
불필요한 소란을 피하기 위해, 나는 결국 잠시 몸을 숨길 장소를 찾아 헤맸다.
아, 조각상 뒤에 숨을 만한 공간이 있네? 여기서 잠깐 쉬면서 현재 상황을 정리 좀 해야지...
있잖아, 지휘관님 요즘 들어 더욱 진중하고 듬직해지셨단 느낌 들지 않아?
그래서인지 최근엔 지휘관님과 함께 업무 볼 때 예전과는 사뭇 다른 무게감이 느껴지는 거 있지?
앞으로도 곁에서 지휘관님 더더욱 도와드릴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
그래 그래, 벌써 몇 번이나 말했어.
윽!? M1014랑 스테츠킨이잖아, 왜 여기 왔지?
M1014와 스테츠킨이 다가오는 것을 본 나는 더욱 자세를 낮추고 천사 조각상 뒤로 숨었다.
M1014는 말하느라 정신이 팔려, 자신이 천사 조각상이 세워진 리프트형 테라스에 올라섰다는 걸 깨닫지 못했고...
결국 스테츠킨의 조작으로 테라스가 갑자기 상승하고 나서야 당황하기 시작했다.
자자자잠깐?! 이거 갑자기 왜 올라가!?
대충 그 높이가 창밖의 햇빛을 받기 딱 좋거든.
잠깐 거기서 기다려, 촬영 장비 가지고 올게.
으으... 얼른! 3.54m 미만이라도 높은 데에 있으면 긴장된단 말이야!
걱정 마 걱정 마, 금방 올게~
스테츠킨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도 않았고, 그녀의 목소리만이 멀어져 갔다.
그리고 그렇게, M1014는 테라스 위에서 30분이나 방치되었다.
어휴... 스테츠킨 녀석, M1014를 그불게 이슈 소재로 써먹을 생각이겠지.
M1014가 고소공포증으로 발작하는 높이는 아닌 거 같은데, 그래도 분명 스트레스가 잔뜩 쌓일 텐데...
이를 어쩐다...
참자... 꾹 참아야 해...!
이렇게 차려입고 사진을 찍을 기회가 얼마나 있다고!
카노도 극찬한 내 자태를 사진으로 찍어서, 내 진심과 함께 지휘관님께 전하는 거야!
어찌하여 지금 그 모습을 사진으로 지휘관에게 전하려 하느냐?
너의 진심이란 또 무엇이더냐?
흐엑!? 누, 누구야?!
M1014는 화들짝 놀라 제자리서 두리번거렸지만, 소리가 자기 뒤의 천사 조각상이 있는 방향에서 들려오고 있다는 것밖엔 알 수가 없었다.
천사...? 난 인형인데 왜 천사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지...?
굳센 아이여, 두려워 말라. 내 근면한 너에게 특별히 계시를 내리노라.
나로 하여금 이 곤경에서 마음을 놓을지어다.
어찌됐든 혼자가 아니란 생각이 든 M1014는 마음이 다소 안정되었다.
어... 그게 그러니까... 천사님, 저는 오늘 아침 지휘관님과 약속한 대로 지휘관님을 깨워드리러 갔어요.
그때 지휘관님의 주무시는 얼굴을 보니, 여전히 무척 피곤하시단 게 느껴졌어요. 전보다 훨씬 무거운 짐을 지고 계신 탓이겠죠.
그런데 저는 지휘관님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수조차 없다 생각하니, 엄청 속상한 거 있죠...
저도 저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진지하고 고지식하단 생각은 들어요. 적어도 지휘관님 앞에선 항상 그런 모습만 보였고요.
그래서 오늘 이 기회를 빌어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지휘관님께 그동안 쌓아 왔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걸 직접 말할 용기가 없어요...
...너의 그 가상한 뜻, 잘 들었도다. 네 마음의 그자도 분명 그 말을 들으면 아주 기뻐하겠지.
기회가 되면, 내가 네 마음을 그자에게 전해 주겠다.
네? 정말요?
나는 망설이는 자를 인도하고 고민을 풀어 주기 위해 존재하느니라.
그때, 리프트가 다시 움직여 하강하기 시작했다.
테라스가 점점 내려가면서, 햇빛이 깨진 유리창을 넘어 M1014를 비췄다.
햇살을 받는 그녀의 모습은, 등 뒤의 천사 조각상보다 훨씬 성스럽게 느껴졌다.
M1014 씨, 괜찮으세요?!
스테츠킨 녀석이 이상하게 얌전하게 굴 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후아아... 살았어 카노...
M1014, 나와의 약속을 그렇게 소중히 해 줘서 정말 고마워.
지, 지휘관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놀라며 묻던 찰나, M1014는 지휘관이 천사 조각상 뒤에서 나타났음을 깨달았다.
그럼... 그 천사의 목소리는 지휘관님이었어요?
내가 목소리를 한껏 낮게 깔기도 했고, 네가 너무 긴장해서 바로 알아듣지 못한 탓도 있지.
어... 제가 오기 전에 일이 있었나 보네요?
그렇다면, 제 생각도... 다 들으셨네요.
본의 아니게. 나도 너희가 그저 병사이기만 한 것이 아니란 걸 종종 잊어버리곤 해.
너희의 지휘관으로서, 너희 앞에서 지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삼가했지.
그래도 넌 내 짐이 더 무거워졌단 걸 눈치챘구나.
M1014가 난생 처음으로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지휘관과의 거리가 사라지고, 상대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M1014는 자신도 모르게 다가가, 지휘관의 손을 쥐었다.
지휘관님... 언제든지, 제게 기대셔도 돼요. 저도 그 신뢰에 반드시 부응할게요...
어... 정말 M1014다운 대답이구나.
그럼 나도 네 신뢰에 부응하도록, 앞으로도 계속 그리폰의 지휘관으로서 마땅히 짊어질 의무를 다할게.
말을 마치고, 지휘관은 소동을 마무리짓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지휘관과 M1014의 마음이 얽힌 정오의 햇빛은 점점 흩어져 갔지만, 천사의 여운은 여전히 눈부셨다.
괜한 소란을 더 키우지 않도록, 나는 M1014와 카노가 떠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역시, 방금 내가 천사 행세로 M1014의 긴장을 해소해 준 일은 평생 비밀로 간직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미안해 M1014, 사실은 내가 목소리 낮추고 천사인 척한 거야...
그래도, 덕분에 네가 평소엔 밖으로 꺼내지 않는 진심을 들을 수 있었어.
천사님, 아직 거기 계세요?
어... 천사님이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저 조각상 말이에요?
아직 계신다면, 이 말도 대신 전해 주세요!
방금 제 마음을 지휘관님이 들으신다면 어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저, 저도 지휘관님과 제가 다르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그런 건 저희 사이에 장애물이 되지 않아요!
연령, 성별, 종족이나 가치관의 차이 전부 신경쓰지 않아요! 지휘관님은 지휘관님이시니까요!
M1014에게 이런 면도 있었구나...
천사에게 감사해야 하는 사람은, 어쩌면 나일지도 모르겠는걸.
정오의 햇빛은 점점 흩어져 갔지만, 서로의 마음이 얽힌 천사의 여운은 여전히 눈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