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련화
CZ75
그리폰 기지, 근무 교대 시간.
네, 75 언니. 그래도 괜찮아요.
어, 정말 괜찮겠어?
괜스레 미안해지네.
근무 시간을 바꾸는 것뿐인걸요. 미안해하실 필요 없어요.
그리고 전 설날용 옷도 마련하지 못했기도 하고요...
자, 어서 설맞이 행사에 가세요. 사진 찍어서 나중에 꼭 보여주셔야 해요, 알았죠?
그럼 부탁할게, Spitfire!
재밌는 사진들 잔뜩 찍어 올 테니까 기대하고 있어!
CZ75는 Spitfire에게 손을 흔들며, 설맞이 행사가 열릴 곳으로 달려갔다.
Spitfire 덕분에 살았네. 설 인사 돌린대서 모처럼 준비했는데, 하마터면 물거품이 될 뻔했어.
가서 물건 정리하고, 옷 갈아입고, 같이 갈 애들을 불러서...
그리폰 인형 숙소, CZ75의 방.
뭐어?! 무슨 소리야, 그걸 왜 네가 해?!
너야말로 무슨 소리야, 너 오늘 야간 근무잖아. 그러니까 내가 대신 리더를 맡은 거지.
잠깐, 그런데 너 지금 왜 여기 있어?
너 설마 땡땡이친 거야!?
다른 사람이랑 교체해서지 왜겠냐!
그리고 리더는 내가 맡기로 했잖아!?
다들 너처럼 앞뒤가 꽉 막힌 줄 알아? 네가 근무하게 됐으니까 계획도 수정해야지.
이미 이렇게 정해졌으니까, 얌전히 뒤에서 따라와!
내가 순순히 짝퉁의 말을 들을 것 같아?!
하, 그딴 허접한 도발에는 안 넘어가니까 쓸데없는 말싸움일랑 그만두셔. 내가 비록 너의 모조품이긴 하지만, 이번 행사의 리더는 바로 나야!
......
그래 맞아, 이런 쓸데없는 말싸움은 그만두자고.
그렇게 빨리 납득하다니 별일이네.
그럼 얌전히...
누가 포기한대?
덤벼, NZ75! 진정한 리더의 자리를 놓고 결투다!
어휴...
너 말이야, 요즘 들어 콜트 리볼버랑 자주 어울린다 싶더니 그런 것까지 옮았어?
누가 그 콜라 중독자랑 같이 논대!?
뭐야, 쫄았냐?
쫄기는 무슨! 그래, 너하곤 진작에 한판 붙어볼 셈이었어! 누가 더 강한지 확실하게 정해보자고!
리더 자리쯤이야 얼마든지 양보해줄 수 있어. 물론 네가 이긴다면 말이지만!
흥, 마냥 겁쟁이는 아니었구만.
좋아, 그럼 8시에 기지 정문에서 보자고.
정문 앞 광장 말이지?
좋아, 8시 정각에 보자.
그렇게까지 모두 앞에서 망신당하고 싶다면, 소원대로 해주겠어.
통신 종료.
CZ75는 옷걸이에 걸린 새 옷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똑똑히 보여주겠어, NZ75... 짝퉁은 꿈도 못 꿀 정품의 우수함을!
잠시 후, 그리폰 기지의 정문 앞.
안 도망치고 시간에 딱 맞춰 오다니... 용기가 가상하구나, NZ75.
절대 양보하지 않겠어, CZ75. 이번에야말로 내가 더 강하단 걸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겠어.
그래서, 뭐로 대결할 건데?
나도 비겁하게 나만 잘하는 거로 겨루진 않아.
작년 설날 때 네가 지휘관한테 보여준 그걸로 하자고.
뭐라고!?
뛰어난 균형감각과 평정심이 네 자랑이라며?
널 정정당당하게 쓰러뜨려서, 내 명예를 드높이겠어!
되게 소란스럽네. 둘이서 뭐 하고 있어?
나도 껴도 돼?
호오... 후후후, 괜스레 날 욕보일 생각은 아닌가 보군. 좋아, 받아주겠어.
그리고 97식 너 마침 잘 왔다.
지금 CZ75랑 대결할 참인데, 네가 심판 맡아줄래?
97, 저런 거 함부로 끼어들면 안 돼.
에이, 재밌어 보이는데 뭘. 그리고 CZ52와의 약속 시간까진 아직 한참 남았으니까, 심판 봐주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
한 발로 오래 버티기라, 재밌겠다! 내가 심판할게! 다섯 세면 시작이야~ 다섯! 넷!
얘도 참... 잠깐만이다?
셋! 둘! 하나! READY~ GO!
...30분 후.
97, 아직 안 끝났니?
어우 다리야... 한 발로 서 있는 거 의외로 되게 힘드네... 응, 아직 안 끝났어.
난 아직 멀쩡한데.
흥, 무리하지 마시지. 나야 물론 아직 한참은 더 버틸 수 있지만!
...25분 후.
으으으...
무리! 더는 못 버텨, 항복 항복!
과연 CZ75랑 NZ75네. 꼼짝달싹도 안 해.
하아...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났어. 실컷 놀았지?
끄응... 알았어, 언니.
그런데 쟤넨 아직 안 끝났는데 어쩌지? 내가 심판 맡겠다고 했잖아.
말 한마디에 천금이 오르내린다고, 한 말은 반드시 지켜야지. 별수 없구나, 그럼 난 먼저 가서 준비할 테니, 끝나면 딴 데로 새지 말고 곧장 오렴.
알았어! 끝나자마자 바로 갈게!
아니... 97식 너도 그만 가봐.
응? 왜? 심판 안 필요해?
내가 지켜보지 않아도 되겠어?
나도 찬성이야. 난 아직 한참 더 버틸 수 있는 데다, CZ75 저 녀석도 쉽게 무너질 것 같진 않거든.
야, 너 발에 무슨 균형 유지 장치 같은 거라도 몰래 단 건 아니지?
뭐 임마? 내가 그런 비겁한 짓 할까보냐!
CZ75가 제자리에서 폴짝 뛰었다.
봤지? 내 발엔 아무것도 없어!
너나 어서 항복하지 그래?
괜히 의심한 건 사과하지만, 나도 질 수야 없지! 어디 끝장을 내 보자고!
어... 그럼 난 먼저 간다?
나중에 설 인사 돌리기 시작할 때 보자. 안녕~ 언니~! 기다려~!
97식은 95식을 뒤쫓아 달려갔다.
...그리고 한참 뒤, 오후 10시 35분.
NZ75 씨, 지금 인사 돌리기에 참여하는 인형들 대부분이 준비를 마쳤어요. 지금 어디 계세요?
흥... 아직 버틸 수 있어.
아, IWS2000? 미안한데 잠깐만 더 기다려줄래? 이 승부만큼은 꼭 이겨야 하니까!
승부요...?
지금 뭐 하고 계세요? 혹시 위험한 일이라도 벌어진 건가요?
NZ75 씨, 지금 위치를 알려주세요!
아니아니, 기지 밖 아니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지금 CZ75하고 결투 중이야.
야, 지금 통신할 정신이 있냐? 몸 흔들리거든?
아차! 아무튼 잠깐만 더 기다려줘! 지금 집중해야 하니까! 끊는다!
...오후 11시 05분.
결투하고 있다 해서 와봤더니... 이게 그 결투 방식이에요?
그래. 불만 있어?
아뇨. 두 분 사이의 일이니까요. 이해하긴 힘들지만...
아무튼, 이제 설날까지 55분 남아서 NZ75 씨가 제시간에 오실 수 있는지 확인하러 왔어요.
...지금 발을 내렸다간, CZ75한테 지고 말아. 절대 그럴 순 없어.
그럼, 다른 대책을...
나도 마찬가지야. 지금 포기하면 저 녀석한테 지는 거라고!
이건 더 이상 리더의 자리를 건 승부가 아니라, 누가 더 뛰어난지 자웅을 가리는 결투야!
하지만 행사를 주도할 사람이 없으면 안 되는데요... 승부는 나중으로 미루면 안 될까요?
다 함께 즐기는 행사니, 단체 활동을 우선시해야...
............
IWS2000, 부탁할게.
...네?
이번 행사는 네가 리더를 맡아줘.
나도 CZ75도, 외부 요인에 의한 패배는 절대 인정할 수 없어. 다른 누군가가 행사의 리더를 맡아야 해... 그러니까 IWS, 너한테 맡길게.
하지만...
...알았어요, 제게 맡겨 주세요.
자정. 새해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기지는 한층 더 시끌벅적해졌다.
그런 요란한 소리에 CZ75도 조금 정신이 팔렸다.
지금쯤이면 세배 중이겠네.
왜, 같이 못 가서 후회돼?
조금은.
하지만 승부를 시작한 이상, 무를 수야 없지.
그래... 나도 동감이야.
......
새해 복 많이 받아라, CZ75.
내가 먼저 말하려 했는데!
...너도 새해 복 많이 받아.
하, 방심하니까 선수를 뺏긴 거지. 새해 인사도 절대 방심해선 안 된다고. 그래가지고 리더 할 수나 있겠어?
그건 또 어느 동네 논리야?!
어휴, 왜 설날에도 너랑 말싸움해야 하는 건데... 에이 몰라, 일단 이 승부부터 결판을 내고 보자!
...설맞이 행사도 다 끝난 오전 3시. 기지 문 앞에 누군가가 찾아왔다.
이쪽이 맞나요?
글쎄요. 저도 이 근처에 있다고만 들었거든요. 그런데 연락도 전혀 되질 않으니... 조금 무서워요.
그럼 도대체... 아, 저기 있네요! 75 언니, 괜찮으세요?! 말 좀 해보세요!
......
......
주변에 적대 신호는 없어요. 어서 가보죠!
......
HK45, 무슨 일이에요?
......
이건...
에너지가 바닥났네요...
이 둘, 여기서 대체 뭘 하고 있던 거죠?
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전 75 언니를 데려갈 테니, HK45 씨는 NZ75 씨를 부탁드릴게요.
물론이죠! 아이돌은 힘으로도 안 진답니다!
...오전 5시.
으음...
어... 어째서 내가 숙소에...?
안녕히 주무셨어요, 75 언니? 설맞이 인사 돌리기 행사는 잘 마무리됐어요.
...뭐야, 벌써 끝났어?!
NZ75는?
언니처럼 완전히 방전돼서, 아마 똑같이 숙소에서 충전 중일 거예요.
그나저나, 거기서 대체 뭘 하고 계셨던 거예요?
결투 중이었어... 에이 씨, 이래선 누가 이겼는지 알 수가 없잖아!
이기긴 누가 이겨?
보아하니 너도 충전이 끝났나 보네.
...흥.
그래, 무승부는 납득할 수 없지. 다시 승부다.
CZ75도 NZ75도, 서로를 노려보며 히죽 웃었다. 둘 다 자신의 패배라고 인정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럼 바로 시작해 볼까?
7시부터 88식이 아침 인사를 돌린댔으니까, 그전에 승부를 내자!
바라던 바야! 각오해, NZ75!
어휴, 새해 첫날부터...
...그래도 75 언니다운 멋진 모습이라서 보기 좋네요.
새로운 한 해를 여는 싸움, 지금 여기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