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스타
PKP
그리폰 기지, 작전 지휘실.
지휘관, 호출을 받고 왔다.
컨디션도 최상이니 언제든지 출발할 수 있다. 이번 섬멸 대상은 무엇이지?
항상 진지한 모습이 보기 좋구나, PKP.
하지만 이번 임무는 섬멸 작전이 아니야.
정찰 임무인가? 기도비닉 실력을 다지는 것도 괜찮겠지.
그것도 아니야. 가르쳐주지, 이번 임무는 바로――
사람들의 하트를 저격하는 거다!
......
어... 너무 썰렁했나...?
지휘관, 우리의 사명은 인간을 보호하는 것으로 안다만.
아, 아니, 싸울 일 없는 아주 평화로운 일상 임무야.
그럼 왜 심장을 저격하라는 거지?
아니 그건 그냥 비유법이고...
그러니까, 어느 패션쇼 기획사가 모델로 전술인형들을 쓰고 싶다는 요청을 보내왔거든. 일반적인 임무는 아니니, 나도 돌발 상황에 대비해서 현장에 함께 갈 거야.
홍보 문구도 대충... "드레스와 총기, 그리고 총알처럼 그대의 심장을 꿰뚫는 아름다움"이라는 느낌이라고 하고.
너에게 제격인 임무라고 생각해.
그것참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군.
나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임무지만...
지휘관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믿고 따를 뿐이다.
정말 고마워. 자세한 임무 내용은 카리나가 설명해줄 거야. 부탁한다.
안심해라 지휘관. 임무인 이상, 반드시 완벽하게 수행하겠다.
모델 임무 첫날.
난 내 일과 업무를 마친 후, 슬그머니 스튜디오를 찾아갔다.
이제야 왔나.
아...
순식간에 들켜 버렸네.
인간이 아무리 기척을 감춘들, 인형의 탐지 능력을 속일 순 없다.
그래서 일부러 화장하는 시간을 노려서 온 건데 말이지...
눈을 돌리지 않고도 지휘관에게 응답하는 수준의 처리 능력도 없으면 엘리트 인형이라 할 수 없지.
문턱 너머에서, PKP를 둘러싼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분주하게 드레스를 정리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문을 등진 채로 서 있는 PKP의 흔들리는 머릿결 사이로, 그녀의 가느다란 몸매가 엿보였다.
...지휘관?
아, 미안. 딴 생각을 좀 하느라.
오늘 지휘관의 업무를 회고하는 건가, 아니면 무의미한 걱정을 하는 건가?
네 능력을 어찌 의심하겠어.
그 발언은 현재 지휘관의 행동과 모순된다.
PKP도 이런 임무는 처음이잖아?
그래서 내가 걱정되어 애써 찾아온 건가?
어휴, 네 통찰력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래, 네가 걱정돼서 와봤어. 그리고 수오미도 함께니 서로 다투지는 않을까 해서.
겨우 그런 고민이었나... 전혀 걱정할 것 없다.
수오미가 날 어떻게 보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임무에 지장이 가는 것도 아니니.
지휘관은 편하게 쉬면서 내 승전보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역시 무슨 문제가 있나 보네.)
실례합니다! 지나갈게요!
검푸른 색의 리본 말이를 한 아름 든 여성 스태프가 큰 소리로 외치며, 문 앞에 서 있던 내 옆구리를 비집고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서둘러 길을 비키곤 사과하려 했지만, 움직이기가 무섭게 그 스태프는 PKP에게 달려가 장식을 두르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추가 작업에도 PKP는 그저 다시 일어서서 스태프의 지시에 따를 뿐이었다.
(PKP는 확실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다른 애들은 어떤지 보러 가보자.)
나는 안심하며 다른 인형들의 상태를 보러 갔다.
패션쇼 홍보 영상 촬영일, 스튜디오.
어라? 여기가 아닌가?
실례합니다, 홍보 영상 촬영실이 어디인지――
지나가던 스태프에게 스튜디오의 위치를 물어보려던 찰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지휘관? 이 시간에 여기엔 무슨 일이지?
아, 괜찮습니다. 실례했습니다.
......
뒤돌아보니, PKP는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누군지 못 알아볼 정도네.
그 정도로 지쳤나?
아니, 평소와는 많이 다르다는 뜻이야.
정말 예쁜 드레스구나.
칭찬 고맙다.
하지만 이런 옷차림으론 움직이기가 불편해. 그저 예쁘답시고 이런 옷을 내게 사 입히지 않았으면 좋겠군.
어... 그런 건 그때 가서 말하자.
그런데, PKP야말로 왜 벌써 나와 있어? 촬영 중에 문제라도 생겼니?
정반대다. 전부 완벽하게 진행되었다.
내 임무를 완수해서, 지휘관에게 보고하려던 참이었다.
벌써 끝났어? 사진사가 그러길 아직 한참은 더 남았다던데?
이야, 이 아가씨 정말 대단하던데요? 다른 모델분들보다 훨씬 잘해요.
여러 번 찍어볼 것도 없이 한두 번만 찍으면 됐어요.
사진 나오면 꼭 보세요, 아주 별처럼 반짝인다니까요!
그렇습니까? 정말 기대되는군요.
하하, 실망하지 않을 겁니다.
다음에 또 부탁하게 된다면, 이 아가씨 꼭 다시 보내주세요!
그건 지휘관이 결정할 일이다.
물론, 지휘관이 또 이런 임무를 맡긴다면 협조하지. 그쪽도 바쁠 테니 수고해라.
스태프가 떠나고, 스튜디오에는 나와 PKP만 남게 되었다.
.....
진짜 대단하구나, PKP!
당연한 일이다.
겉치레뿐인 인형들과는 달리, 나는 어떤 임무든 완벽하게 소화해낼 수 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엘리트란 이름에 부끄럽지 않지.
역시 PKP구나.
가식적인 아부는 됐다. 그리고, 나보다 수오미의 상태를 확인해야 할 거다.
수오미?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그렇다고 본다.
지난 며칠간 촬영 내내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였다. 일정도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그렇구나, 보러 갈게.
하지만 수오미가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지 않나?
아, 너도 아까 내가 길 묻던 거 봤구나.
물론.
내가 안내하지. 아직 스튜디오를 떠나지 않았을 거다.
부탁해.
어... PKP, 내 손 잡을래?
지휘관은 어린애도 아니면서, 왜지?
PKP는 그렇게 대꾸하면서도, 두 손으로 안고 있던 부케를 한 손으로 쥐고서 다른 손을 내 손에 얹었다.
하이힐을 신은 채로는 걷기 힘들어 보이길래.
지휘관이 그런 걸 신경 쓸 줄은 몰랐는데.
나야말로, 네가 사이도 안 좋은 동료를 신경 써줄 줄은 몰랐어.
수오미의 개인 사정은 내 알 바 아니다.
하지만 이 임무가 단체 행동인 이상, 다른 인원의 상태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해.
내가 맡은 일을 완벽히 처리했는데 타인의 착오로 임무를 망치는 것은 내가 용납할 수 없다.
그렇구나, 확실히 네 스타일답네.
그래도 네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한참 뒤에나 알았을 거야.
알려줘서 고마워.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아무 말도 더는 않고 나란히 걸었다.
PKP의 손은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웠다. 마치, 평범한 인간의 손처럼.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나는 마치 신부와 함께 결혼식장으로 가는 신랑처럼 보이겠지. 물론 어디까지나 그렇게 보이기만 할 뿐이겠지만.
그래도, 이 임무가 끝난 뒤에도 PKP와 나는 오래오래 함께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