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되는 내일
GepardM1
그리폰 기지, 지휘실.
우리 기지의 재정이 걸린 일이니, 부디 인성에 대해서도 심사숙고하시길 바라요.
반드시 의뢰측의 요구를 만족시키면서 폭력 사태도 막을 수 있는 인원들로 부탁드려요. 만약 피해가 발생하게 되면, 다 지휘관님 월급에서 깎을 거예요.
아니 그러니까, 왜 우리 예산은 금세 바닥을 드러내는 거냐고...
......
카페.
연이은 야근으로 인한 두통이 아직 가시지도 않았건만, 또 커다란 골칫덩이가 굴러들어왔다.
나 같은 남자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 내가 여자면 이딴 고민하지도 않을 텐데...
아예 카리나랑 내가 직접 나갈까? 옛날 같았음 나도 시집갈 나이인데, 한 번쯤은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고 싶다...
어휴 짜증 나... 그나저나, 우리 예산은 대체 다 어디로 사라지는 거야...?
온갖 고민을 품고서, 지휘실을 나와 기지의 광장에서 산책을 하다 보니, 어느샌가 카페의 문 앞에 와 있었다.
지금 내 눈앞에 거울이 있다면, 내 표정은 지금 저 앞에서 오는 인형과 마찬가지로 지치고 고민으로 가득한 얼굴일 것이다.
......
......
아... 좋은 아침, 지휘관.
아니, 왜 열흘 연속으로 밤을 샌 듯한 표정이야...? 괜찮아?
어... 괜찮아... 그냥, 요즘 들어 일이 엄청 밀려와서 쉴 틈이 없었을 뿐이야... 이제 겨우 다 끝났어.
마침 잘 됐다, 안 그래도 지금 휴가 신청서를 제출하러 가려던 참이었는데.
게파드는 정말로 힘들어 보였다. 역시 기지의 예산과 인력이 부족한 걸까...
게파드의 기운 없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미안해, 지금은 휴가를 허가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하지만, 마침 쉽고 편한 의뢰가 하나 들어왔는데, 관심 있니?
... 편하고 쉬운 임무란 게 있어?
물론 있고말고.
간단히 말하자면, 그냥 예쁘게 차려입고, 사진 몇 장 찍고, 사람들 앞에서 몇 번 왔다 갔다 걸으면 되는 일이야.
어때, 해볼래?
으음... 확실히 편한 것 같네?
우리 그리폰이 블랙 기업도 아니고, 네가 그렇게 고생한 것도 임무를 배정한 내 책임이기도 하니까 말이야.
무급 휴가보단, 편하게 일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이 기회가 더 낫다고 생각하지 않니?
그, 그럼 그 일 해볼게...
설마 나한테 사기 치는 건 아니겠지...?
믿음직한 부하를 어쩌자고 속이겠어?
그리고 나도 현장에 보러 갈 테니까, 정말 사기당한 것 같으면 날 때려도 좋아.
아무튼, 그럼 하는 거지? 당장 지휘실에 가서 신청서를 작성하자.
...며칠 후. 패션쇼 분장실.
다른 인형들과 함께, 게파드는 임무 첫날부터 패션쇼의 분장실에서 준비 작업을 시작했다.
동료들은 그저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있고, 오직 스태프들만이 분주한 것을 보고 나서야, 게파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정말로 편한 임무인가 보네. 서류를 정리할 필요도 없고, 메이드 노릇을 할 필요도 없고...
저기...
...!
아, 죄송해요. 놀랐어요?
오늘은 운이 좋다고 감탄하던 와중, 귓가에 들려온 소리에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기획사의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것을 깨닫곤, 게파드는 미안해하며 손을 저었다.
네, 실례했습니다. 그럼 저쪽의 분장실로 따라와 주시겠어요? 메이크업 시작할게요.
네... 부탁드릴게요...
...1시간 후, 여전히 분장실.
막 왔을 때만 해도 홀가분했던 게파드는, 이젠 왠지 미묘한 기분이었다.
으으... 엉덩이에 아예 감각이 안 느껴져... 엉덩이에도 쥐가 나나...
분장실에 들어와 앉은 지 1시간이 지났음에도, 게파드는 의자에서 꼼짝달싹도 하지 못했다.
아직 자신이 입을 드레스를 구경도 못했는데 말이다.
조금만 움직여도 메이크업에 지장을 주는 걸까...?
하지만 방금 화장 다 끝난 거 아니었나? 왜 또 처음부터 다시 하는 거지?
불안해진 게파드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옆에 놓인 거울을 흘겨보았다. 거울에는 게파드의 뒤에 서서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자세히 살펴보는 사람이 비치고 있었다.
그래, 바로 이런 느낌이야... 얘가 입을 드레스는 비교적 단아한 스타일인데, 아까는 아이라인을 너무 진하게 칠했어.
헤어스타일은... 역시 바꿔야겠네. 땋은 머리를 자연스럽게 퍼지게 해보자. 너무 꽉 묶지 말고.
으음... 저번 회의 때 정한 방안에서 많이 수정해야겠는걸...
그 사람이 의견을 제시할 때마다, 게파드의 얼굴과 머리에 추가 작업이 가해졌다.
왜 메이크업하는 것부터 이렇게 오래 걸리지? 기지에선 다른 사람이 화장하는 것도 5분이면 뚝딱이던데...
아야야... 발까지 쥐가 난 것 같아...
......
얼마나 오랫동안 앉아있었을까, 드디어 디자이너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스태프가 게파드를 일으켜 세웠다.
휴우... 아이고 발이야... 이제 끝났어요?
다른 스태프가 다가왔다.
네, 수고하셨어요. 이제 드레스 맞추러 가야 해요.
네... 부탁할게요...
...15분 후.
전신 거울 앞에서 코디네이터가 자신의 머리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며, 게파드의 눈살은 다시 찌푸려졌다.
왠지... 오늘도 역시나라고 할까... 또 지휘관한테 속은 것 같아...
...며칠 후, 패션쇼 회장의 런웨이.
게파드는 품에는 부케를, 손으론 치마 끝을 조심스럽게 들고서, 영 불안하게 삐거덕거리는 걸음걸이로 유리 무대 위를 걸었다.
스톱!
무대 밑의 디자이너가 외치자, 게파드는 또 삐거덕하며 걸음을 멈췄다.
그렇게 꼭 치마를 잡고 있을 필요 없어. 부케는 두 손으로 들고 있도록 해.
그리고 스텝은 좀 더 가볍게. 자, 다시.
아, 예에...
게파드는 다시 시작 위치로 되돌아가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말이야 쉽지...
벌써 열 번은 넘게 왔다 갔다 했는데, 어떻게 가볍게 걸으라는 거야...
내가 패션쇼 회장에 도착하니, 마침 게파드가 아주 비장한 얼굴을 하고서 긴 꽃길 위를 걷고 또 걷고 있었다.
기지에 있을 때보단 기색이 훨씬 나아지긴 했는데, 표정이 왜 저러지...
게파드의 리허설이 끝나자, 나는 무대 밑에서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그녀를 따라갔다.
가까이 가서 보니, 게파드는 "그럼 그렇지"하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지휘관... 안녕.
어... 그래, 안녕. 휴게실까지 같이 가줄게.
이번 임무는 어떠니?
게파드는 고개를 돌리고 한숨을 내뱉었다.
말한 거랑 전혀 다르잖아...
얼마나 다르길래?
매일 화장하느라 한참을 앉아 있어야 해서 엉덩이에는 쥐가 나고...
드레스는 입기도 힘들고, 움직이기도 불편해서 항상 조심스레 움직여야 하고.
전혀 편한 일이 아니잖아. 급여 없어도 좋으니까 차라리 휴가를 보내주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옷을 입혀주지 않아?
그리고 런웨이도 그냥 사진 찍으면서 왔다 갔다 하는 거 아니었어?
말도 마, 듣기만 해도 진절머리가 나니까.
심지어는 촬영도 엄청 힘들었다고!
온갖 포즈를 잡으면서 찍어야 하는데, 사진사는 표정이 왜 그리 고통스럽냐, 울상 좀 짓지 마라 잔소리나 해대고...
난 저 소품대하곤 도저히 안 맞는 것 같아. 저 옆에 서 있을 바에야, 차라리 꽃을 쥐고 바닥에 누워 있을래...
그건 장례식이지...
어휴... 어찌어찌 촬영이 끝났기에 망정이지, 다시는 사진 같은 거 찍고 싶지 않아...
정말? 내가 구경할 땐 그렇지 않아 보였는데.
응?
사진은 전부 다 예쁘게 잘 나왔는걸?
비행기 태워도 화 안 풀 거야.
그러니까... 그 17세기의 신비주의 시인이 쓴 것처럼 말이야.
"장미에겐 이유가 없다. 자기 자신을 아랑곳하지 않고, 누가 자신을 봐주는지 궁금해하지도 않는다."라는 것처럼.
내가 못 알아듣는 말로 에둘러 표현해봤자 전혀 나아지지 않아.
난 그저 사실대로 말하고 있는 거야.
무슨 사실?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일은 객관적으로 값진 일이란 거지.
값진 것엔 대가가 따르는 법이야. 네가 지금 힘들다고 불평하는 게 그 대가고.
하지만 "힘든 일"이 정말 값진 걸까? 잘 모르겠어...
난 차라리 꽃 속에 조용히 파묻혀 있고 싶어...
그런 말은 하지 마! 불길하잖아!
에휴, 지휘관을 때릴 기운도 없어...
아무튼, 이번 임무 끝나면 휴가 신청서 수리해줘...
게파드는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고, 분장실에 터벅터벅 들어갔다.
내가 나서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카리나한테 시키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네... 그랬다면 나한테 위자료 내라고 따졌겠지?
......
분장실.
게파드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Mk23이 거울 앞에 멍하니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 Mk23도 있었구나... 안녕...
게파드는 기운 없는 소리로 인사했다.
너 기운이 없어 보이네... 무슨 일이야?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어?
게파드는 중얼중얼 Mk23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Mk23은 게파드를 끌어당겨 거울 앞에 앉혔고, 밝은 조명 때문에 게파드는 눈이 부셨다.
Mk23의 상냥한 위로에, 게파드는 그동안 쌓아왔던 고민을 다 털어냈다.
방금 지휘관에게도 했던 말과, 여자들 간의 더욱 감정적인 투정까지 다 토해내었다.
...이래서야 매일 힘들어 죽겠어! 매일 야근해도 이 정도는 아닐 거야!
으으, 이게 다 지휘관 때문이야!
지휘관이 "편한" 일이라 속여서 이렇게 된 거라고...
지휘관 앞에선 꺼내지 못했던 말까지 뱉어내니, 약간 홀가분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일은 끝까지 해야겠지...
이것만 버티고 휴가를 나가자...
게파드가 그렇게 생각을 하던 중, Mk23이 갑자기 게파드의 어깨를 잡고 거울을 향하도록 돌렸다.
넌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 안 해?
그건...
화장하기 귀찮지, 가장 좋은 장면이 나오도록 사진 찍는 것도 번거롭지, 게다가 디자이너가 원하는 느낌대로 보일 수 있도록 런웨이를 왔다 갔다 해야지...
하지만 잘 생각해 봐. 전장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것 말고도, 우리 전술인형이 이렇게 또 다른 매력을 뽐낼 수 있는 기회는 정말 드물잖아?
게파드는 이 일은 계속 "부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개인적으로 조언해주자면, 반대로 "포상"이라고 생각해봐.
스스로를 위해 즐거운 마음을 가져보는 거야.
게파드는 약간 넋 나간 표정으로 거울 속의 자신을 살펴보았다.
보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거의 매일 멍하니 바라보았던 자신의 얼굴.
하지만 볼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렇게 잔뜩 화장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네...
게파드는 Mk23에게 고개를 돌렸다.
Mk23은 엉덩이에 쥐가 나도록 앉아도, 다리가 뻣뻣해질 정도로 리허설을 계속해도 그렇게 생각해?
정말... "포상"이라고 생각해?
Mk23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물론이지... 값진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값진 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이 옷을 입었을 때, 기분이 정말 좋았어. 오래 걸려서 그렇지, 화장도 예쁘고...
하지만 기쁜 건 잠시뿐이고, 그 이상으로 피곤해져서...
하지만 나도 여태까지 나 자신을 위해서 한 일이 전혀 없었던 것 같아.
그러게. 넌 볼 때마다 야근하고 있더라.
그건 휴가를 아주 길게 받으려고 그러는 거야.
뭐, 휴가라 해도 온종일 침대에 드러누워 있는 거지만...
게파드는 다시 고개를 돌려, 거울 속의 우울한 자신의 표정을 보곤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리허설 때문에 발도 저리고 허리에 힘도 안 들어가지만... 고마워, Mk23. 덕분에 기분이 한결 나아졌어.
예쁘게 꾸며서 기뻐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네... 그치?
......
조용히 복도를 빠져나온 나도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번 임무가 끝나면 야근쟁이 씨의 휴가 계획을 짜 보자.
약간 참견해도 괜찮겠지?
역시 침대에 누워 있기만 하는 건... 안 좋기도 하고, 보기도 불길하니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