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구한 수호자
GepardM1
......
조금 늦은 시각, 인형 카페.
......
이거, 자리 엄청 차지하네.
그러게 말이에요, 지휘관님과 루이스 씨가 설마 이렇게 큰 삼나무를 구해 오실 줄은 몰랐어요.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 있어? 바닥도 온통 흙투성이가 됐잖아.
지저분해.
모양새도 너무 엉망이라 잔가지를 좀 더 정리해야겠어요. 후우... 청소하는 것도 고생이겠네요.
그래도, 꾸미고 나면 분명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겠죠?
그런 건 진짜 나무가 아니어도 만들 수 있잖아.
맞는 말이지만... 그러면 좀 시시하지 않나요?
그나저나, 게파드 씨 오늘 아침부터 여기 계셨죠?
아무것도 안 하시던 것 같은데, 지루하진 않으세요?
크리스마스를 끼고 모처럼 만에 즐기는 휴가니까, 느긋하게 지내고 싶어.
그리고 스프링필드가 타 주는 커피가 입맛에 맞거든.
후훗, 칭찬 고마워요. 한 잔 더 드릴까요?
응, 부탁해...
네. 으음... 청소 끝내면 선물 구입 상황도 확인해야 하고, 오늘은 할 일이 산더미네요.
게파드 씨는 계속 여기 계실 건가요?
응... 별일 없으면 쭉 있을 거야.
혼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아.
알았어요, 그럼 제가 없는 동안 가게를 봐주시겠어요?
응...
스프링필드!
어라... 스프링필드 없어?
카리나... 스프링필드라면 일 있어서 방금 나갔어. 엇갈렸나 보네.
그래? 골치 아프게 됐네...
카리나도 바쁜 모양이네... 무슨 일이야?
나도 크리스마스 파티 준비 작업을 돕고 있거든. 지휘관님은 루이스한테 끌려가서 잔뜩 고생하셔서 드러누워 버리셨고.
그래서 내가 잠시 준비 작업 총괄을 맡게 됐어.
그렇구나... 그래서, 스프링필드한테 무슨 볼일이야?
저거 때문이야.
카리나는 손에 든 서류로 카페 중앙에 세워진 삼나무를 가리켰다.
루이스랑 지휘관님이 엄청 고생해서 가져온 나무야.
뭐, 힘쓰는 작업은 당연히 루이스가 다 했지만 말이지.
응... 안 그래도 스프링필드랑 저거 얘기를 했어.
그래서? 자리 차지하는 것도 모자라 다른 말썽까지 생긴 거야?
말이 왠지 저 나무에 불만이 많다는 듯이 들리네... 아무튼, 딱히 말썽이라 할 정도는 아니야.
하지만 봐 봐, 크리스마스 트리로 쓰기엔 나뭇가지가 좀 지나치게 넓잖아? 게다가 위에는 아직도 흙이랑 눈이 꽤 묻어 있고.
제대로 청소하고 가지치기하지 않으면 트리로 쓸 수 없어.
그래서 카리나가 손보러 온 거야?
하하하, 나한테 그런 솜씨가 있다면 그랬겠지. 유감스럽지만, 내 실력으론 밤새 작업해도 다 못 끝낼걸?
게다가 지금은 다른 일도 산더미라서 일손이 너무 부족한 상태라서 말이지...
그래서 스프링필드한테 일손을 더 불러 달라 할 셈이었는데, 아무래도 그쪽도 여유가 없는 모양이네.
그렇구나... 그래도 역시 모르겠어. 그렇게까지 고생할 이유가 어디 있어?
응? 고생이라니?
모처럼의 휴일이잖아. 왜 다들 사서 고생하는 건지...
트리쯤이야, 스티로폼이나 플라스틱으로도 만들 수 있잖아?
그리고, 애초에 연말 휴일에 파티를 열겠다고 바쁘게 준비 작업을 하는 게... 이해가 안 돼.
아... 그런 거?
그러니까 왜 휴일을 굳이 힘들게 보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거지?
뭐... 대충 그런 거지.
물론 크리스마스 파티는 즐겁지만, 스프링필드랑 카리나가 쉴 틈도 없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니...
많이 걱정돼.
헤헤, 게파드는 정말 상냥하구나. 그래도 괜찮으니까 걱정 마.
그러고 보니...
게파드는 오늘 아침부터 스프링필드랑 같이 있었지?
응... 오늘 내내 카페에 있었어.
하지만 스프링필드가 하루 종일 일하느라 바빠서 말은 제대로 못 했어.
게파드가 보기에 스프링필드가 고생하는 것 같았니?
엄청. 평일에도 그 정도는 아닐 텐데...
보고 있자니, 뭐랄까... 스프링필드는 왠지 휴일이 없는 것 같아서 불쌍했어.
그럼, 스프링필드의 기분은 어때 보였어?
......
...괜찮았어.
오히려... 즐기고 있는 것 같았어.
바로 그거야. 휴일을 즐기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 하지만 공통점이라면, 자신이 즐겁게 보내는 거지.
게파드처럼 느긋하게 휴일을 만끽하는 것도 좋은 방식이지만, 스프링필드는 모두가 즐겁게 크리스마스를 보내도록 하는 게 자신에게 있어 즐거운 일일 거야.
모두가 크리스마스를 즐겁게 보내도록...
네가 늘어지는 게 잘못됐다는 말이 아니야. 말했듯이, 그저 휴일을 즐기는 방식이 다를 뿐인 거지.
듣고 보니, 왠지...
카리나랑 스프링필드는 모두가 쉬는 걸 자신이 쉬는 걸로 보는 것 같네.
에이, 그 정도는 아니지.
그리고 나는 휴일근무수당을 받으니까 좋아서 하는 거야.
뭐야, 거창하게 말해놓곤 결국 특근이네.
딩동댕!
아차, 수다를 너무 오래 떨었네. 이만 가볼게.
아직 못 끝낸 일이 잔뜩이라서... 나무를 손볼 사람이 정 없으면 일단은 내버려 둬야겠어.
그냥 이대로 장식하면 안 돼?
엉망진창이라 이대로 장식하면 보기 엄청 나쁠걸?
정말 안 되면, 게파드 말대로 인공 나무라도 써야 할지도 모르겠네.
에이, 그건 지휘관님이 깨시면 상의해야지.
......
그럼 또 봐. 온 김에 스프링필드한테 스페셜 라떼 한 잔 주문하려 했는데 아깝다...
카리나는 온몸으로 "바쁘다 바빠"를 외치며 카페를 떠났다.
...정말 바빠 보이네.
게파드는 머그컵을 입에 댔다. 뜨거웠던 커피는 적당히 따뜻하게 식어 있었다.
...다리에 얼굴 비비지 마, 고양아.
알았어, 알았어...
모처럼의 휴일에... 모처럼의 크리스마스니까...
그럼 바로 깨웠어야지!
에에, 그럼 제 잘못이란 말이에요?
지휘관님이 괜히 무리해서 녹초가 되어 가지고 쓰러지신 거잖아요. 앞으로 그런 일은 그냥 잘하는 사람한테 맡기시라고요.
나무를 베고 옮기는 일은 다 루이스가 했다니까... 난 그냥 좀 피곤해서 눈 좀 잠깐 붙인 건데...
그래서, 가지치기할 사람은 아직도 못 찾았어?
못 찾았어요.
그 후에 스프링필드를 찾긴 했는데, LWMMG랑 함께 식자재를 점검 중이어서 다른 인형을 찾으러 갈 시간이 없었어요.
하는 수 없지... 가자 카리나, 우리가 직접 가지치기할 수밖에 없어!
네에에?! 그런 일은 잘하는 사람한테 맡기라니까요!
어쩔 수 없잖아, 루이스가 고생해서 가져온 나무인데 낭비할 수도 없고...
아, 안녕 게파드.
안녕 지휘관... 이제 깼어?
응... 맙소사, 점심까지 잤어? 저녁 파티까지 앞으로...
그런데, 게파드는 미리 와서 파티 기다리고 있었니?
아니, 딱히 기대도 안 했어...
그냥 아침부터 여기서 있었어.
고양이랑 커피가 있고, 조용하니까.
그래... 듣기만 해도 느긋한 하루였구나.
과연 게파드야, 휴일을 보내는 방법을 잘 안다니까.
어... 이게 잘 쉬는 거야?
지휘관님!
뭐, 뭔데?
뭐냐뇨, 저거 보시면 알잖아요!
저거라니 뭐... 응?
카페 중앙에 세워진 삼나무는 말끔했다. 우거진 잔가지도 깔끔하게 정리됐고, 곳곳에 묻은 진흙과 죽은 나무껍질도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장식과 선물로 꾸며지기만을 기다리는 완벽한 크리스마스 트리의 모습이었다.
가지치기할 사람 못 찾았다며?
확실히 맡길 사람을 찾지 못했는데...
그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괜히 헐레벌떡 뛰어왔네... 설마 요정들이 했나?
그렇게 물으셔도...
......
어라? 게파드의 손톱 사이에 흙이...
아하...!
와아, 정말 신기한 일도 다 있네요!
카리나, 너 방금 뭔가 깨달은 표정이었는데? 뭐야, 어서 말해.
몰라요.
산타클로스라도 왔다 갔나 보죠.
시치미 떼지 말라니까?
......
...시끄러워.
게파드는 다가온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나지막이 푸념했다.
그래도...
확실히... 즐거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