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과 에메랄드
G28
......
계속 그렇게 발버둥 칠 셈이야?
내 예상을 뛰어넘는 비장의 패를 숨기고 있는 거라면, 걱정 말고 얼마든지 꺼내 봐.
으으...
아니면 알아서 포기하도록 해. 의미 없는 발버둥엔 흥미 없어.
그,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잖아!
다음 판에는 꼭...
그래, "운이 전부다"라고 말하긴 했지. 하지만 정말 그렇게 간단하다고 생각해?
하긴, 별 볼 일 없는 그리폰 인형이니 그 정도밖에 모르는 것도 당연하겠지.
으으...
......
정말...
어째서 이렇게 된 거야!!
......
30분 전.
뭐어?
오기 전에 말한 거랑 전혀 다르잖아, 지휘관!
연회에 와서 적당히 손님들이랑 어울려 주면서 실컷 먹기만 하면 된다더니!
어... 원래대로라면 그랬어.
그런데 지금 갑작스럽게 일이 생겨서 말이지... 부탁할게, 좀 도와주면 안 될까?
식량 납품업체가 주최하는 연회니 즐기면서 푹 쉬라고 했으면서... 지휘관 사기꾼.
세상 일이란 게 원래 한 치 앞도 모르는 거야. 나도 골치 아프다고...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래? 지휘관조차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라니.
설명하려면 엄청 복잡하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한가한 녀석들이 또 우리의... 정확히는 너희의 실력을 시험해 보겠답시고 시비를 걸었다고만 알면 돼.
뭐야? 그런 녀석들은 그냥 흠씬 두들겨 패 주고 내다 버리면 되잖아. ...물론 농담이야.
농담인 거 알아.
정말 한판 붙더라도 과연 흠씬 팰 수나 있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대체 누가 시비를 건 거야?
상대도 인형이야?
그것도 설명하자면 길어지니까...
이름이 AK12와 AN94라는 것만 알면 돼.
아니 대체 뭐길래 설명도 못 해줘?
지휘관,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어?
그 둘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말아 줘. 다 널 위해서야.
근데 그 이름, 다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아, 생각났다. 저번에 해변에 놀러 갔다 온 애들이 이상한 인형들을 봤다고 했어.
...그래, 그 두 인형이 맞아.
설마, 우리가 놀러 나올 때를 노리고 일부러 튀어나오는 걸까?
(그러게 말이야... 이번엔 다행히 우리도 대책이 있으니 망정이지...)
녀석들이 이번엔 뭘 하러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이제야 겨우 아무도 다치지 않는 일을 꾸몄다는 거지!
들을수록 소름 돋네...
아무튼... 너, 텍사스 홀덤 할 줄 아니?
모르면 얼른 다른 사람을 알아봐야 하거든.
처음 듣는 건데...? 그래도 지휘관이 부탁하는 걸 다른 사람한테 양보할 수는 없지.
만약에 내가 이기면, 상 줄 거야?
어...
그건... 가능한 선에서 골라 주렴.
그럼 약속이야, 내가 이기면...
......
응? 왜 갑자기 얼굴을 가리고 그래?
그리고 연회장의 꽃을 함부로 뽑지 마.
......
여자애한테 그런 걸 직접 말하게 하는 건 실례라고!
그래그래, 나도 어떻게 상을 줘야 할지 잘 고민해 볼게.
잘 생각해 둬야 할 거야.
그깟 카드놀이쯤이야, 내가 다 쓸어 주겠어!
자신감 넘치는 건 보기 좋구나.
......
참, G28... 만약 현장에 도우미가 필요하다면, 저쪽에...
응? 뭔데? 도우미?
......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넌 그런 거 필요 없으리라 믿어.
흐음...?
좋아, 지휘관이 그렇게 날 믿어 준다면야 바로 준비할게!
먼저 규칙부터 알아봐야지...
......
(정말로 필요해진다면... 스스로 찾아가겠지...)
......
왜 그래? 다시 네 차례야.
방금 이 판도를 뒤집겠다 호언장담을 했으니 만큼, 날 실망시키지 말아 줘.
으으...
난... 체크.
그럼 사양 않고...
1000 베팅.
콜.
1000?!
(내가 가진 칩보다 훨씬 많잖아...)
(K2에게 맡겨야 하나?)
...폴드.
(으엑?!)
이제 너만 남았구나, 하얀 드레스의 귀여운 초록 머리 아가씨.
콜? 레이즈? 아니면... 아, 폴드 아니면 올 인밖에 선택지가 없겠구나?
초록 머리라 하지 마, 나도 G28이란 이름이 있다고!
(어떡하지... 내 핸드론 9 트리플 말고는... 운에 맡겨야 하나?)
(하지만 여기서 졌다간... 칩을 전부 잃고 말아!)
......
난... 폴드.
시시해라.
AN94, 오픈.
9 원 페어.
5 원 페어.
이번 판은 AN94가 이겼네.
뭐야... 둘 다 원페어였어?!
그대로 걸었다면...
네가 용기를 내서 올 인 했다면 네가 이겼겠지.
리스크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잖아?
진짜... 너무해!
칩도 우리보다 잔뜩 가지고 있으면서, 계속 판돈을 크게 불리면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라는 거야!
우세를 점했을 때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지.
그리고, 너희가 칩이 모자란 게 내 탓도 아닌데 뭘.
으으으... MDR이 훼방놓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잔뜩 저질러 놓고 혼자 도망가기까지 했잖아!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수습하라는 거야!
너무 분해... 어떻게 이렇게 질 수가 있어!?
하지만 이제 방법이 없는걸...
MDR이 반칙으로 쫓겨난 그 판을 무효로 했지만, M99도 결국 칩을 다 잃고 퇴장했고...
판돈은 계속해서 커질 텐데, 우리 둘만으론 더 처참하게 질 거야...
정 그러면 우리도 그냥 사기 칠까?
그게 무슨 소리야?! 절대 안 돼!
으으으... 지휘관이 우리한테 상을 줄 준비를 하고 있을 텐데, 이렇게 실망시키면 어떡해!
누구라도 좋으니 한 명만 더 테이블에 앉힐 수만 있다면 기회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 와서 저 둘을 상대로 누가 포커를 하려고 하겠어...
나한테 맡겨. 여기에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설마 한 명도 없겠어?
너희도 불만 없지?
아무렴. 마음대로 해.
그리폰 측에서 플레이어를 추가로 한 명 더 참전시켜 봤자, 우리와의 격차는 좁힐 수 없다.
흥! 두고 보라고!
으음...
어린애는 빼고... 말이 안 통하는 녀석도 빼고... 시끄러운 녀석이랑 항상 뒤숭숭한 녀석도 빼면...
정말 아무도 없잖아?!!
이번에 스프링필드는 왜 안 온 거람...
......
참, G28... 만약 현장에 도우미가 필요하다면, 저쪽에...
응? 뭔데? 도우미?
......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난 그런 것도 필요하지 않으리라 믿어.
......
으아아아아!!
왜 말을 하다 만 거야!
지휘관 바보 멍청이 해삼 말미자아아알!
삐빅.
G28, 정 못 찾겠으면 그냥 포기하자...
방금 몰래 사브리나한테 물어봤는데, 그 AK12와 AN94라는 인형은 모델부터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대.
그러니까 져도 어쩔 수 없다고 봐...
여기서 포기하면 정말 시합 끝이라고!
아무리 불리해도 끝까지 싸우는 게 텍사스 홀덤이란 말이야!
아... 너도 완전히 빠졌구나...
반드시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을 찾아내고 말겠어!
그리고 함께 판을 뒤집을 거야!
......
뭐, 말이야 쉽지... 아무리 찾아봐도 부탁할 만한 사람이 안 보여...
G28은 연회장에서 어슬렁거리다, 결국 벽에 기댔다.
이대로 돌아가면 나랑 K2도 칩을 전부 잃고 말 텐데...
......
에라 모르겠다, 그냥 손발 잘 맞을 것 같은 사람 아무나 끌고 가야지!
삐이...
G28은 각인 식별 시스템을 가동했다.
"각인"이 나랑 비슷한 인형... 아주 조금만 비슷해도 되니까...
하지만, 이런 곳에 있을...
......
어라...?
......
......
저기...
왜?
아, 그, 방해했다면 미리 사과할게요.
그게... 사실 좀 억지지만,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요...
무리한 부탁을 왜 억지로 해?
그, 그게...!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저희 지휘관님의 얼굴의 봐서라도...
너희 지휘관이랑 내가 무슨 상관인데?
그래도...
어머나, 그냥 옆에서 감시하는 걸로 만족하려고?
모처럼 서로 총 없이 얘기할 기회인데, 좀 더 어울리는 게 어때?
......
어라?
혹시, 아는 사이에요?
몰라.
그래, 모르는 사이야.
서로 알 필요도 없고 말이지. 안 그래?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똑바로 해, AK12.
정작 지켜봐야 할 사람은 내팽개치고 이런 곳에 나타나다니, 여전하구나.
스트레스는 인간에게는 물론 인형에게도 좋지 않거든.
그러니 너도 잠깐 농땡이나 부려 봐.
(뭐야, 서로 모르는 사이라더니?)
난 맡은 임무를 수행 중이라서.
에이, 그 임무에 지장이 가는 것도 아닌데. 더 가까이서 지켜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어쩌면 예상 밖의 관찰 결과를 얻을 수도 있잖아? 그럼 성과 보고할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
어... 저기... 연회 즐기시는 중이었을 텐데, 괜히 제가 말을 걸어서 분위기를 망가뜨렸네요. 죄송합니다...
AK12, 돌아가자. K2랑 AN94가 기다리고 있을 거 아니야.
사람 찾는 건 됐으니까...
무슨 소리야, 벌써 찾아놓고선.
이 "낯선 사람"이 너희를 도와 AN94와 내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줄 거잖아?
...그만해, AK12.
그딴 시답잖은 농담에 어울려 줄 시간 없어.
...잠시 후, 모두 테이블에 돌아왔다.
......
......
그리폰 측에 플레이어를 추가로 한 명 더 참전시켜 봤자 소용없을 거라는 발언, 철회하겠다.
입 다물어.
우리 신규 플레이어에게 칩 20000을 주고...
그럼 다시 시작해 볼까? 카드 돌려.
G28... 저 인형 누구야?
나도 몰라... 처음엔 관심 없다고 쏘아붙였는데, AK12가 뭐라 귓속말을 하고 나니...
그리고 나도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드는데, 도저히 생각이 안 나...
응?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어떻게 찾았어?
"각인"이 나랑 엄청 비슷해.
그래서 나하고 마인드맵이 비슷한 인형이라 생각해서...
그거... 정말 괜찮을까?
모르겠어... 이름이 뭔지도 안 말해 주고...
아, 참고로 걔는 "HKM――
G28 옆자리의 인형이 쓰읍, 하고 위협적인 소리를 내었다.
어... 그럼 "흰 꽃 씨"라 불러도 될까요...?
그 드레스가 정말 예뻐서...
...마음대로 해.
아니면 "포 씨"라 불러도 돼. 본인만 괜찮다면 말이지.
넌 그냥 나가 죽어.
올 인.
겨우 3장 오픈했을 뿐인데 올 인이라. 후후... 이제야 재밌는 상대가 나타났네.
G28... 우리 왠지 무시무시한 싸움에 휘말린 것 같아...
동감이야...
......
으음... 흰 꽃 씨 덕분에 일방적으로 밀리는 상황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겨우 따낸 칩을 또 우리가 뺏기면 저 둘을 이길 수 없어...
히잉... 난 또 파산이야...
결국 고수들의 싸움을 구경이나 해야 하는 걸까?
아니야!
지휘관이 주는 상도 못 받고 무대 위로 끌려가서 억지로 공연하기 싫어!
그럼 어떡하지...
......
...흰 꽃 씨?
......
흰 꽃 씨, 뭣 좀 물어봐도...
뭔데?
벙어리도 아니고, 바로 옆에 있는데 통신은 왜 켜?
흰 꽃 씨, 저 두 인형이 계속 이기는 건 그냥 운이 좋아서가 아니죠?
설마 너네 지휘관이 운이 전부라 한 말을 그대로 믿는 거야?
당연히 아니죠.
하지만... 그리폰의 대표로 시합에 나온 이상 꼭 이기고 싶은데,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
이 게임에서 이기는 방법은 별거 없어. 자신의 승산을 계산하고, 상대방의 패를 얼마나 잘 읽느냐에 달렸어.
계산의 정확성과 처리 속도로 볼 때... 너흰 처음부터 승산이 없었어.
숫자 계산이라면 우리도 안 진다고요!
네 생각은 안 물었어.
그럼 지금 AN94가 단번에 5000이나 레이즈한 건 어째서죠?
확실하게 승산이 있어서겠지. 버려.
AN94는 표정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거짓말을 할 줄은 몰라. 그리고 뭐든지 AK12를 유리하게 하려고 행동해.
AK12가 자기의 핸드로는 승산이 없으니까 저러는 거야.
네에!? 왜 그걸 이제야 말해요?!
네가 멍청해서 그런 걸 왜 내가 책임져야 해?
히잉... 진짜 매정해...
대단하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그렇게나 많이 파악했어요...?
다 경험이야.
아무튼 AN94는 내버려 둬. 그리고 AK12가 첫 베팅에서 판돈을 크게 불린다면, 그게 블러프일 가능성은 85%니까 참고해.
고마워요, 흰 꽃 씨.
......
흰 꽃 씨, 저 지금 다이아몬드 4와 하트 7을 받았어요.
......
G28, 그건 반칙이야!
그게 무슨 상관이야!
저쪽은 성능 그 자체로 이미 반칙인데, 우리도 어떻게든 균형을 맞춰야지!
주제넘는 소리 마.
...네.
......
이걸로 마지막 라운드구나. 이제 결판을 내야겠지?
지금 칩이 제일 적은 건... 우리 귀여운 초록 머리 아가씨네.
으으...
그건 그렇고, 너희 둘은 여태까지 올 인은커녕 적극적으로 베팅도 안 하던데, 마지막이기도 하니까 한번 크게 질러 보는 건 어때?
혹시 알아? 운이 좋아서 단번에 역전할지.
누가 그 말에 속을 줄 알고?!
후후훗. 좋아, 벌써부터 결과가 기대되네.
자아, 마지막 라운드 시작.
......
(마지막 핸드는... 클럽 2와 클럽 8. 하아...)
(나와도 왜 하필이면 이렇게...)
(이런 핸드로는 판을 전혀 뒤집을 수 없잖아!)
플랍.
테이블 카드 3장이 공개됐다.
하트 4...
하트 4, 클럽 9...
하트 4, 클럽 9, 클럽 J.
헤헤헤... 내 핸드에 J가 두 장 있어! 마지막 판은 내 승리야!
(역시... 가망이 없어...)
7000 베팅.
어?
으에에에에??
폴드.
콜.
(K2가 J 2장 있다는데도 그걸 무시하고... 분명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겠지...)
난... 폴드.
(나도 그냥 포기할까...)
뭘 망설이고 있어?
(흰 꽃 씨도 폴드하라고 재촉하네...)
......
(아니야...)
("AK12가 첫 베팅에서 판돈을 크게 불릴 때 블러핑일 가능성은 84%...")
콜.
어머?
턴.
4번째 카드가 공개됐다.
...클럽 Q.
하트 4, 클럽 9, 클럽 J, 클럽 Q.
(프...플러시?)
...8000 베팅.
콜.
나... 나는...
괜찮아.
(그래!)
나도 콜.
......
(이제 4장... 만약 마지막 한 장이 클럽 10이면...)
리버, 오픈.
그리고 마지막 5번째 카드는...
...클럽 10.
하트 4, 클럽 9, 클럽 10, 클럽 J, 클럽 Q.
......아앗!!
풋...
마지막 승부를 장식하는 카드로는 정말 안성맞춤인 것 같네.
맞춰 볼까? 초록 머리 아가씨가 마지막까지 버티다 탄성까지 지른 걸 보니, 손에는 적어도 플러시가 있다는 거겠지.
아니면... 스트레이트 플러시거나.
그렇다면 어쩔 건데!? 패배를 인정하기라도 할 거야?!
그럼 나도 솔직하게 말할게. 내 핸드엔 클럽 K가 있어.
그러니까... 더 큰 스트레이트 플러시란 거야...?
으으...
난 올 인. 초록 머리 아가씨랑... 흰 꽃 아가씨는 어떡할래?
...폴드.
으엑?! 흰 꽃 씨까지...!
그럼 우리 둘만 남았구나.
흰 꽃 아가씨보다도 승산이 있다 생각한다면, 걸어 봐.
이 시합의 클라이맥스는 네게 달렸어, 초록 머리 아가씨.
(어쩌지... 모처럼 만에 얻은 큰 패인데...)
(하지만 흰 꽃 씨까지 포기한 상황에서, 나한테 승산이 있을 리가...)
나... 나도――
삑.
블러프야.
...네?
AK12가 무슨 카드를 쥐고 있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잘 들어, G28. 저건 블러프야.
왜냐면——
클럽 K는 내가 쥐고 있었어.
자, 잠깐만요!
...뭔 일인데 연회장 밖으로 나와서까지 날 찾아?
네 동료는 아직도 무대에서 혼자서 춤추고 있을 텐데.
저,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그때 폴드하지 않았다면, 당신이 이겼잖아요!
단순한 변덕이었어.
너 대신 네 동료가 꼴찌가 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하지만 AK12가 블러프할 때, 당신이 폴드하지 않았다면――
그럼 내가 네 칩까지 뺏게 됐을 테니, 녀석은 내가 폴드할 거라 예상했겠지.
알았으면 그 일은 이제 그만.
......
돌아가시게요?
할 일은 다 끝났으니까.
그 녀석 말대로 농땡이를 좀 부렸으니, 이쯤 해야지.
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제 말을 들어 주실 수 있나요?
...되도록 짧게 말해.
예전에 만난 적이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억이 나질 않지만... 흰 꽃 씨 당신은 엄청 익숙한 느낌이 들어요.
어째선지, 고집 센 제 언니가 떠올라요.
...아, 흰 꽃 씨가 그렇다는 소린 아니에요!
제 기억으론 당신만큼 예쁘지도 않았어요!
일단 칭찬으로 받아들일게.
......
그 언니는 어디 갔는데?
그게... 저도 몰라요.
아주 오래전, 갑자기 중요한 임무가 있다고 나가더니... 결국 돌아오지 않았어요.
어쩌면 지금도 어디선가 전술인형으로서 살고 있겠지만...
기억나는 건 그게 다야?
네...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저는 인형인데도 언니에 대한 기억만 좀처럼 떠오르지가 않아요. 마치... 기억상실증처럼요.
어디로 갔는지 알아내려고 자료실이나 마인드맵도 뒤져 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럼 됐어.
네!? 그럼 됐다니 그게 무슨 뜻이에요!
오늘 당신을 만나지 못했다면 저한테 언니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언제 다시 잊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았다고요.
그래서, 언니를 보고 싶어?
어쩌면 그 먼 옛날에 허튼짓으로 널 셀 수도 없이 상처 입혔을지도 모르는데도? 넌 그저 네 상상 속의 이상적인 언니의 모습을 그리는 것뿐이야.
어렴풋이 떠올려도 좋은 느낌밖에 안 든다면, 언니와 함께 했던 시간이 전부 좋은 추억이라는 뜻 아닌가요?
너 마음대로 생각해. 그건 내가 뭐라 못할 문제니까.
......
흰 꽃 씨.
얘기 아직도 안 끝났어?
만약에...
만약에... 어딘가에서 제 언니 같은... "각인"이 우리와 비슷하고 고집도 센 인형을 만나게 된다면...
대신 제 말을 전해 주시겠어요?
......
뭐라고 전해줘?
음... 아니, 됐어요. 죄송해요.
어차피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어쩌면 그러는 편이 모두에게 좋은 편일 거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난 잘 지내고 있으니, 언니도 잘 지내고 있길 바란다"라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지?
알았어, 네 언니 같은 인형이랑 만나면 전해 줄게.
......
G28?
괜찮아? 이런 데서 혼자 뭐하고 있었어?
게임에서 진 것 때문에 삐지기라도 했나 걱정했잖아.
지휘관...?
아, 맞다...
결국 이기진 못했으니... 상은 없는 거지?
내가 언제 1등을 해야지만 상을 주겠다고 했니?
크흠... 시합에서 진 사람에게도 상은 얼마든지 줄 수 있단다!
그래서 여러 가지 생각해 둔 게 있는데, 골라 볼래?
으음... 아니, 됐어.
...응?
적어도 오늘 옷차림을 잔뜩 칭찬해 달라고 나올 줄 알았는데...
이제 필요 없어.
그 대신, 예전에 있었던 일 이야기를 해 줘.
어... 기억이 잘 나지 않으면 적당히 막 지어낼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
괜찮아, 그냥 내가 모르는 일을 알고 싶어졌을 뿐이니까.
그래? 그럼 뭐가 궁금한데?
기밀 사항만 아니라면, 뭐든지 말해 줄게.
혹시 "HKM"으로 시작하거나, "포"라는 이름인 인형을 알아?
"HKM"... "포"?
으음... 그걸 어디서 들었더라...
아, 41――헉!
모, 몰라. 전혀 모르겠어.
G28은 화단에서 꽃을 뜯어 표정을 가렸다.
모른다면 됐어.
적어도... 그 사람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