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안의 G36C
G36C
그리폰 기지, 인형 숙소.
......
......
......
저기 G36C, 날 불러와 놓고 같이 명상하자는 건 아니지?
그런 취미는 또 언제 만들었어? 심심하면 체스판 가져올게.
아, 아니야 XM8. 그러니까... 호크 씨가 내일 핼러윈 기념 담력 시합이 있다고 해서, 나도 참가하려고...
오오! 그거 좋네!
근데 설마 혼자 가기 무서워서 나보고 같이 가자는 거야?
응... 그리고 내일 어떻게 입을지 아이디어를 줬으면 해.
그런 건 G36에게 묻는 편이 낫지 않아?
언니도 내일 같이 가기로 했어. 하지만 언니를 깜짝 놀라게 하고 싶어서.
그런 거라면 깜짝 놀랄 분장을 하면 되겠네. 좀비라든가 말이야... 잠깐 옷장 좀 보자.
...아니 이게 뭐야. 무슨 옷장이 제복만 한가득이야?
미안... 전장에 나가지 않으면 기지에서 가만히 있기만 해서, 다른 옷을 마련한 적이 없어...
이거 완전 시작부터 체크메이트인데? 차라리 그냥 빨간 물감을 몸에 잔뜩 뿌려서 피투성이 여고생 귀신이라고 하자.
그건 너무 끔찍하지 않을까? 그리고 나중에 빨래하기도 힘들고, 언니가 또 많이 고생할 거야.
까다롭기는...
응? 이 옷은...
...맙소사, 다른 옷이 있긴 있구나 했더니 유카타잖아? 나팔꽃 무늬라니 뭐 이리 촌스러워!?
그런가? 난 언니 것과 비슷해서 마음에 드는데... 하지만 그런 옷으론 누굴 놀래킬 순 없겠지?
사람을 놀래키고 싶다면서 또 너무 끔찍한 건 싫다니, 요구란 것도 정도가 있어요, 이 아가씨야!
역시 너무 어려운 부탁이었구나. 미안해...
그럼 됐어. 고민 들어 줘서 고마워, XM8.
아이... 무슨 비 맞은 강아지 같은 표정 짓지 마, 괜시리 내가 더 미안해지잖아.
알았어, 좀 더 같이 궁리 좀 해 볼게.
정말? 귀찮지 않아?
이미 사람 불러다 놓고서 그런 말 하지 말래도.
끄응... 보면 깜짝 놀랄 법하면서 너무 끔찍하진 않게... 최소한 G36이 깜짝 놀랄 만한 분장이라...
...생각났다. 그런데... 이거 입으려면 G36C도 용기를 내야 해.
정말? 역시 XM8에게 부탁하길 잘했어! 어떤 분장이야?
그건 말이지...
담력 시합 경기장, 입구.
......
늦어서 미안해요 언니! 화장에 시간이 걸려서...
아, 카페 제복 입고 왔네요? 그 옷도 보기 좋아요.
괜찮아, 내가 일찍 온 거니까.
너는 어떤 옷을...
......
이 복장... 어때요 언니?
......
콱侶角等척죄?槨痂척누냥侶湳?
어, 언니?!
槨痂척乖돨쳉쳉긴냥죄侶몸湳綾... 轟랬잿썩
언니! G36 언니! 어떡해, XM8이 괜찮을 거랬는데...
어떡해, 어떡해... 아, 재부팅! 재부팅 버튼이 어디 있더라...
10분 후.
......헉!
여... 여긴 어디지...?
아, 언니! 정신이 들어요? 다행이다, 이제야 말을 제대로 하는구나... 방금 마인드맵이 과부하돼서, 언어 모듈에 인코딩 오류가 났던 모양이에요...
...아. G36C, 옷차림이 왜 그 모양이니?
혹시 누가 괴롭히기라도 했어? 옷을 뺏어 간 거야?
아, 아뇨, 이건 제가 직접... 아아아 언니 논리 정리하고 진정하세요! 또 과열되겠어요!
...괜찮아, 난 괜찮아. 그런데 G36C, 넌 항상 제복만 입었잖니? 오늘은 왜 갑자기 이... 이런.... 으음, 예상 밖의 모습인 거니?
사실은...
핼러윈 이벤트 전날.
에엑!? 이건 너무 과감하지 않을까...?
24시간도 안 남았는데 다른 옷을 구하기엔 너무 늦었어. 부탁할 거면 좀 더 일찍 했어야지, 이 아가씨야.
미, 미안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왜? 이게 제일 간단하면서 확실한 방법인데. 재료도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거잖아? 정 부끄러우면 제복 치마라도 입던가.
그럼 조금은 낫겠지?
붕대만 감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그래도 역시...
G36C.
어, 어? 응?
너 말이야, 담력 시합에 참가해서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고 싶은 거지?
갑자기 왜 그런...
...응, 여태까지 언니와 지휘관님의 등뒤에서 숨기만 하고, 안일하게 있었으니까...
하지만 사실은 스릴을 즐기고 싶지? 전투에서 항상 제일 앞에 나서는 것도, 이렇게 담력 시합에 나가려는 것도.
마냥 얌전한 인형으로서 있긴 싫지?
...맞아.
역시. G36한테서 너의 얌전한 여동생 이미지를 깨부수고, 믿음직하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거지?
응... 어떻게 알았어?
체스에서 이기려면 먼저 상대를 꿰뚫어 봐야 하는 법이지. 이래 봬도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자신 있다고.
자아, 그리고 지금 네 눈앞에 기회가 있어. 언니의 선입견을 깨부수고, 너의 진정한 모습을 보이는 거야. 어때?
......
그리고 애당초 핼러윈은 마물들이 날뛰는 밤이잖아.
괴물과 귀신으로 가득한 날인데, 아무리 해괴망측한 옷차림도 대충 합리화할 수 있을 거야.
...그래, 내가 용기를 내야 해.
이, 이 옷차림은 아무리 봐도 너무 과감하지만... 꼭 해야만 해. 그렇지, XM8?
난 더 이상 할 말 없어, 나머진 다 네 선택이야.
이 모습으로 나갈지 말지는, 네가 알아서 결정하라고. 나 간다.
어? 어, 자, 잘 가...
그래... 스스로 선택해야 해! 해내고 말겠어!
......
G36C? 역시 무슨 일이 있었니?
아, 아뇨! 아무 일 없었어요!
사실, 꼭 한번 이런 모습을 해 보고 싶었어요...
그럼 언니, 진정하고 제 말을 들어 주세요!
진정했어. 말해 보렴.
아직도 이마가 뜨거운데요...
저, 여태까지 언니와 지휘관님에게 신세를 지기만 했어요...
그야 넌 내 동생이고, 지휘관님의 소중한 부하잖니.
그래도, 다른 인형들과는 대접이 많이 다르잖아요?
마치 깨지기 쉬운 물건을 다루는 것처럼요! 아무리 민수용 인형 출신이라 해도, 지금은 언제든지 전장에 나갈 수 있는 어엿한 전술인형이라고요.
그래도 소중히 대해 줘야지.
하지만 저도 언니와 지휘관님을 지킬 수 있어요.
절 똑바로 보세요, 언니. 저는... 저는 대담하고 새로운 것을 접할 용기가 있어요!
그건 받아줄 수 없어.
......안 되나요?
죄송해요, 언니를 곤란하게 만들어 버렸네요...
아니 그게 아니라, 네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 옷차림은 너무 춥잖아.
...네?
듣고 보니, 확실히 조금...
용기를 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건 좋지. 하지만 때를 가려야지 않겠어? 인간이었으면 벌써 감기에 걸렸을 거야.
아, 네...
...제가 싫어지거나 그러진 않죠?
귀여운 내 동생인데 어떻게 싫어하겠니.
따뜻한 음료를 사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렴.
네.
어디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고,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려. 알았지?
그렇게 잔소리 안 해도 돼요!
G36은 엘레베이터를 타고 자리를 떠났고, G36C는 그 앞에서 조용히 언니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주위는 고요했고, 오직 바람소리와 벌레들의 울음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정말 쌀쌀하네... 밤이 깊어져서 그런가?
그때, 엘레베이터의 램프가 켜졌다. 벨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
음...? 언니가 벌써 돌아왔나?
안녕 G36C, G36 대신 음료를 주러 왔어.
아, 고마워요. 언니는 어디 갔나요?
PSG-1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G36은 네게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래도 알아야 한다고 봐...
네? 뭐를요?
PSG-1이 G36C에게 속삭였다.
그거 알아? 핼러윈날 밤에는 인형과 인간이 서로 뒤바뀌고, 마물들도 그 틈을 타서 사냥하러 나온다는 걸.
자신이 인간이 된 줄도 모르는 채 멍하니 있는 너희들은 손쉬운 사냥감이야.
사냥감이요...?
G36은 영리해서 진작에 이변을 눈치챘지. 그래서 널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내게 부탁했는데... 순진하게도, 동료를 너무 철석같이 믿었어.
내가 이미 마물이 되어 버렸다면 어떡하려고? 이렇게 가없은 어린 양을, 순순히 내게 바치다니...
인형이 인간이 되고, 마물들이 우릴 사냥한다니...
농담...이죠?
아직도 이해가 안 가니?
불쌍한 G36C. 넌 언니가 오기 전에, 네 손 안에 있는 물건의 원래 주인처럼...
그제서야 G36C는 손 안의 잔에 담긴 것이 뜨뜻하고 검붉은 액체인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PSG-1의 송곳니를 보더니...
<Size=55>꺄아아아아아 언니이이이이이이이!!!</Size>
겁에 질린 G36C는 언니를 부르며 꽁무니 빠지게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그러니까, 내가 봤을 땐 이미 밑층으로 굴러떨어진 상태였어.
왜 자꾸 그런 눈으로 쳐다봐? 내가 넘어뜨린 게 아니라니까!
노려보는 게 아니라, 언니가 원래 눈이 좀 안 좋아서 그래요...
그때 발을 삐끗해서 균형을 잃었어요. 아마 뭔가를 잘못 밟았겠죠. 누가 계단에 버린 쓰레기라던가...
하아... G36C를 도와 줘서 감사합니다, QBU-88.
개인적인 보답으로, 찢어진 옷을 수선해 드리죠.
내가 알아서 고칠 수 있는데...
치마가 이렇게 찢어졌잖습니까. 지금 바로 꿰메는 편이 나아요.
어? 그 천조각이랑 반짇고리 어디서 꺼냈어? 신기하네.
메이드의 기본 소양입니다. 잠시 앉아 보세요.
...다 됐습니다. 같은 재질의 천이 없으니 이 정도로만 할게요.
솜씨 좋은데? 어두운 곳에서 얼핏 봐서는 전혀 모르겠어!
고마워. 그럼 난 먼저 골에 집합하러 갈게!
천만에요.
구름 무늬는 스티커였구나...
QBU-88은 강시처럼 폴짝폴짝 뛰며 떠났다.
죄송해요 언니... 가만히 있으라고 했는데...
발은 아직도 아프니?
네? 아뇨, 이제 괜찮아요.
나야말로 미안해, 너랑 함께 갔어야 했는데.
아니에요... 넘어지긴 했지만, 깜짝 놀라야 진짜 핼러윈을 경험한 것 아니겠어요?
다들 자신의 캐릭터를 재밌게 연기하는 걸 보면서, 저도 조금은 배운 것 같아요!
그렇구나, 그럼 다행이야.
그리고, 언니...
응?
호박 껍질 소품을 두고 왔어요... 다른 사람에게 빌린 물건이라 찾으러 가야 하는데...
그러니? 그럼 같이 찾으러 가자.
다행이다! 잃어버렸다간 XM8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거든요.
XM8...? 걔가 준비해 준 거니?
네, 핼러윈 분장 아이디어를 부탁했어요! 정말 기발한 발상이죠?
기대로 가득 찬 동생의 표정에, G36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응, 깜짝 놀랐어.
다 XM8 덕분이에요. 그러니까 그 호박 껍질을 꼭 찾아서 돌려줘야 해요.
거기 두 분, 시합 다 끝났어.
왜 아직도 남아 있는 거야?
아, MG3 씨! 그게 무슨 일이냐면...
커다란 호박 껍질?
아, 그거였구나.
아까 M870이 어디서 났는지 모를 호박 껍질 속에 끼어 있었거든. 아무래도 그게 네가 말하는 그거인가 보네.
어... 왜 M870 씨가 안에 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찾아서 다행이네요! 그럼 지금 M870 씨는 어디에...
그거 부서졌어.
...네?
아주 단단히 끼어서, 뭘 어떻게 해도 녀석을 못 빼내겠더라고. 그래서 호크가 총으로 박살냈지.
박...살...
산산조각난 것들도 벌써 다 치웠을걸? 찾을 것도 없어.
아... 그때 들린 총소리가 그거였군요. 고마워요, MG3 씨.
별거 아닌데 뭘. 그럼 늦었는데 얼른 돌아가도록 해. 난 먼저 실례할게.
우리도 가자.
언니... 같이 한 바퀴 돌다 가지 않을래요?
한 바퀴 돌다 가자고? 시합은 끝났잖아.
언니가 저를 찾을 때 달려왔잖아요?
도중에 정성 들여 꾸민 모습을 감상할 여유도 없었을 테니까, 같이 보러 가고 싶어요.
......
안 되나요...? 혹시 아직 업무가 남았어요? 그러고 보니 작업복 차림으로...
아니, 그냥 네가 그런 말을 해서 조금 놀랐어.
네가 워낙 배려심이 강한 애다 보니, 자기주장을 내세운 적이 거의 없었잖아.
그런가요? 그럼 저도 확실히 조금 변한 거네요!
그래, 나도 기뻐. 한 바퀴 돌다 가자, 둘이서 함께.
네!
얼마 뒤, 인형 숙소.
미안해 XM8, 오래 기다리게 한 것도 모자라, 빌려 준 물건까지 잃어 버려서...
고작해야 호박 껍질인데 뭘. 미안해할 필요 없어.
흔하디 흔한 물건이니까 막 버려도 괜찮아.
그렇구나. 그리고 고마워, 네가 아니었으면 난 변하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였을 거야.
하하, 도움이 됐다니 기쁘네!
자 자, 나 그만 잘 거니까, 얘기는 나중에 하자.
응. 잘 자, XM8.
휴우, 겨우 돌려보냈네...
...어라, 왜 등골이 싸늘하지...
싸늘하니?
와악!?
뭐야, G36이었어?
...왜 그렇게 무서운 얼굴로 그래?
그건 네가 잘 알 텐데.
응? 그게 무슨 말이야?
G36C를 부추긴 게 너라면서?
그런... 파렴치한 옷차림을 입게 만들고는, 뭐? 이미지 타파...?
아하하... 그게 말이지... 잠깐만, 야, G36... 히이익 오지 말고 잠깐만 기다려 봐!
이미 늦었어, XM8.
마땅한 죗값을 치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