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회의 지배자
OTs14
......
그리폰 기지.
오늘은 지휘관이 휴무니, 대신 내가 카리나 양과 함께 정시 회의를 진행하겠어.
응!
그럼, 각자의 업무 현황 브리핑을.
최근 들어서 우린 전투 임무도 없었으니 기지 내 업무 보고밖에 없겠네.
나부터 시작할게.
그로자는 간결명료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자신의 업무 내용을 전부, 꼼꼼하게 기억해 두었기에 사전에 따로 내용을 적어 둘 필요도 없었다.
덕분에, 브리핑을 하면서 모두의 표정을 찬찬히 관찰할 수 있었다.
저번의 그 지역에서의 진행될 경계 작전에는, 기업 보안 업무 경험이 있는 인형들을 선발해 특별 임무를 맡겨야――
AR팀의 모두가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M200도 열심히 메모를 적었다.
최근 후방지원팀의 예산 초과 문제는 스프링필드와 논의한 결과, 다음의 몇 가지 방안을 고안했어. 우선――
KSVK와 QBU-88, Zas M76은 브리핑을 경청하면서도 각자 손에 쥔 종이를 훝어보는 중인 것이, 아무래도 자기 차례의 브리핑을 준비하는 듯했다.
다음으로, 이 시간대의 근무표 편성에 관해서는――
반면, M1911과 Saiga-12는...
...M1911, 질문 사항이라도 있어?
더...
더?
더는 못참아아아!!!
자리의 모두가 M1911의 고함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특근에 특근에 특근에 특근!!
요즘 계에에속 특근밖에 안 했어요! 제가 상하차 직원인지 착각이 들 정도란 말예요!!
파자마 파티도 취소! 단체 여행도 취소! 많이 먹기 대회도 결국 흐지부지되어버리고!
즐길 거리가 요만~큼도 없는데, 대체 어떻게 살라는 거예요?!
어... 그, 그래도 요즘은 싸움도 없으니 좋은 게 좋은 거 아닐까...?
평화로운 만큼 더예요! 무슨 이벤트라도 없으면 저 진짜 마인드맵 코어 뜯어버릴지도 모른다고요!
으아아, 일단 좀 진정해 봐!
그때, 누가 M1911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녀 옆에서 의젓하게 똑바로 앉아 있던 Saiga-12였다.
다만, Saiga-12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해맑게 미소 지으며 M1911의 손바닥을 부드럽게 주물렀다.
......
...불만이 있고, 그걸 토로하고 심정은 이해해.
하지만 회의 도중 소리지르거나 딴청 피우는 짓은 규율 위반이야.
다음엔 안 넘어가.
그치만 너무 지루한걸...
M1911이 자리에 다시 털썩 앉았다.
그렇게, 약간의 소동이 있었지만 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회의가 끝나고 2분 후, Saiga-12가 회의실에 돌아왔다.
Saiga-12입니다.
들어와. 왜 불렀는진 알지?
어...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몰라? 한 번 더 기회를 줄게.
......아까 마인드맵 속에서 게임했어요.
넌 엘리트 전술인형이니까, 모두의 앞에서 체면 구기지 않도록 넘어가 준 거야. 그러니 은혜를 갚아야겠지?
그건...
나도 모두의 기분은 이해해.
"큰 싸움"이 일단락됐으니, 당분간 우리 일은 전장을 청소하는 등의 사소한 일들뿐이겠지. 다들 허전할 거야.
그렇겠죠.
그래서 파티를 주최할 생각인데, 네가 참모 역을 맡아 주렴.
아... 역시 그런 건가요.
파티라... 그럼 오락 코너랑, 모두가 자기가 좋아하는 걸 먹을 수 있도록 요리도 이것저것 다 준비해야 하고...
식성 차이로 괜한 불화가 생겨서도 안 되지.
<Size=25>식성이라니 무슨 동물도 아니고...</Size>
다 들리거든? 적당한 단어가 바로 안 떠올랐을 뿐이니까 괜한 소리 마.
아무튼 그러니까, 구역을 나눠야 한다는 거죠? 그럼 규칙도 정해야겠네요. 아무데나 쓰레기 버리지 말고, 남은 음식은 지정된 장소에만 버리고...
확실히 규칙도 필요하겠어.
파티의 프로세스는 지금 틀을 잡아두도록 하자. 나머지는 이따 모두를 불러서 보완하면 되니까.
다른 사람도 부르게요?
그래야 모두가 참여한단 실감이 나잖니.
두 인형은 파티의 기초 계획을 짜고서, 파티의 예정과 매너 수칙을 모두에게 공개했다.
모두, 내가 파티를 주최하려는데 기본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아.
거들어 줄 사람 있어? 다 끝나면 특별 기념 선물 줄 생각인데.
선물? 나 나 나! 나 할 수 있는 거 무지 많아!
코너 편성은 제가 맡을게요.
평화를 기념하는 의미로도 좋겠군요. 저도 돕겠습니다.
나도 나도!
......
기지에서 대기 중이던 인형들 중 상당수가 파티 준비에 동참했다.
그로자의 지도하에 기본적인 틀은 금방 정해졌고, 각자 일을 맡은 인형들은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파티 날짜도 정해졌나요?
아... 임무 있는 때네요... 모두 저 대신 재밌게 즐겨 주세요.
그로자는 M200의 메시지를 잠시 바라보다, QBU-88과의 채팅창을 열었다.
QBU-88, 잠깐 괜찮을까?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응, 시간 돼. 뭔데? 파티장 세팅?
그건 아니고, M200의 상태가 어딘가 안 좋아 보여서. 별일 없는지 네가 물어봐 줬으면 해.
나 걔랑 그렇게 잘 아는 사이는 아닌데... 괜찮을까?
너흰 외관 연령도 비슷한 데다, 내가 알기론 넌 특히 팀워크를 중요시하잖아? 다른 사람보다 네가 적임이야.
으에... 뭐 그건 그렇지만...
알았어, 내가 가서 물어볼게. 모처럼의 파티인데 역시 다 함께 즐겨야지.
통신 종료.
자아 그럼, 디테일을 구상할 차례네.
지휘관한테는 돌아오면 보고하도록 하고, 카리나 양한테도... 하아, 할 일이 잔뜩이구나.
그로자는 펜을 내려놓고, 숨을 돌릴 겸 파티 예정 장소로 향했다.
그곳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M1911과 Zas M76은 파티 일정을 논의 중이었고, KSVK는 무언가 설치할 것이 있는지 중앙 통로 옆에 선을 긋고 있었다.
회장을 한 바퀴 둘러본 그로자는 도중에 만난 M16A1을 비롯한 인형들과 세부적인 계획을 논의했다.
...그럼 입장 수칙은 이렇게 하죠.
해는 또 언제 저물었대... 오늘은 이쯤 할까?
그러자. 모두 수고했어, 내일 계속하자.
네, 내일 봐요.
...응? 넌 안 쉬러 가?
밤 새는 건 이골이 나서 말이지. 그리고, 누가 지켜보지 않다가 말썽이라도 생기면 어떡하겠어?
너도 참 피곤하겠구나.
통신 요청.
M200? 갑자기 무슨 일이니? 파티에 관해서면――
그로자 씨!! 구조 요청합니다!!
M200, 우선 진정하렴. 침착하게 상황 설명해.
M16A1도 살짝 고개를 기울여 통신을 엿들었다.
후우... 3번 전투 지역에서 다수의 폐기 기갑 유닛들과 조우했어요. 일부는 화기 시스템이 살아있는 데다, QBU-88이 사로잡혔어요.
좌표는 지금 전송했습니다... 최대한 빨리 와 주세요! 부탁드려요!
...말이 씨가 됐네.
별 수 없지, 갔다 올 테니 넌 여기――
아니, 나도 같이 가겠어.
전장 청소인데, 속도도 중요하지만 안정성도 챙겨야지.
맞는 말이네. 그럼 어서 가자.
......
이, 이 녀석 움직인다...? 야! 너 날 어디로 끌고 가려는 거야!? 살려 줘 M200!
다시 관절을 노려서... 젠장, 총알이 바닥났어...!
저깄다!
M200은 이미 꼴이 엉망이었고, 저만치에서 한쪽 다리를 질질 끄는 기갑에게 붙들린 QBU-88은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사이를, 다른 기갑 유닛들이 가로막았다.
상황을 파악한 M16A1은 그로자와 시선을 교환하고, 곧장 섬광탄을 꺼내 들었다.
M200! 눈 감아!
......!
그 말에 M200은 주저 않고 눈을 질끈 감았다.
괜찮아? 움직일 수 있겠어?
저는 괜찮아요... 하지만 QBU-88이...
낟도 앤... 안...
...부상이 심각해요.
M16A1이 그로자에게 고개를 돌리면서 손짓했다.
같은 리더의 직감으로, 그로자는 M16A1의 찌푸린 눈살의 의미를 읽었다.
너희 먼저 후퇴하렴.
하, 하지만 기갑 유닛의 숫자가 너무 많잖아요, 지원을...
우리만으로 충분하니까, 부상자 데리고 얼른 가.
...알겠습니다. 조심하세요.
M200은 QBU-88을 들쳐업고 서둘러 퇴각했다.
그로자는 눈으로 그들을 배웅한 뒤, M16A1과 함께 폭풍 전야처럼 적막한 전장을 바라봤다.
이거 시간이 좀 걸리겠는걸...
저번에 청소를 꼼꼼하게 하지 않은 모양이니, 하는 수 없지.
우선 지휘관에게 보고하고, 여기부터 다시 수색하자.
......
해가 저물어 밤이 찾아오고, 다시 동이 트고 낮이 되었다.
마지막 남은 기갑 유닛의 코어를 완전히 파괴한 그로자는, 석양을 등지고 일어나 한쪽의 M16A1에게 상황 종료를 알리는 수신호를 보냈다.
끄응... 시간이 예상보다 훨씬 오래 걸렸는걸.
나도 설마 며칠씩이나, 이렇게 잔뜩 돌아다닐 줄은 몰랐어.
미리 지휘관에게 말해 둬서 다행이지만, 이 정도 시간이라면... 파티는 진작에 시작됐으려나.
많이 기대했나 봐?
당연하지. 모두 함께 떠들고, 맛있는 걸 먹으면서, 평온을 즐기는 일...
총 들고 싸우는 것보다 훨씬 좋잖아?
훗, 하긴. 얼른 돌아가자, 잘하면 파티장 정리가 끝나기 전엔 도착할 수 있을지도 몰라. 좋은 술도 있다면 좋겠는데...
그로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M16A1과 함께 호출한 헬리콥터에 올라탔다.
하지만 기지로 돌아온 목격한 광경에, 산전수전 다 겪은 그들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로자! M16! 어서 돌아와~!
연회 거의 끝나 가는 참이니까, 얼른 지휘관님이 준비해 두신 드레스 입고 오도록 해!
연회...?
응? 이 연회 그로자가 조직한 거 아니었어?
아니, 맞긴 한데... 도중에 지휘관한테서 통지를 받긴 했지만, 설마... 규모가 이렇게 커질 줄이야.
...후훗. 그래, 이런 것도 괜찮지.
두 인형이 드레스로 갈아입고 파티장에 들어서니, 카리나의 말대로 연회는 막바지에 접어드는 참이었다.
스피커에서 잔잔한 음악이 흐르며 무도회의 시작을 알렸다.
그로자는 조용히 옆문으로 들어와, 술 한 잔을 들곤 댄스 플로어 옆에 앉아 모두가 즐기는 모습을 감상했다.
샴페인, 음악, 평온한 분위기.
함께할 파트너도 있다면 완벽할 텐데.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그로자는 플로어의 중앙으로 눈길을 돌렸다.
쏟아지는 밝은 조명을 받으며, 지휘관이 M16A1과 함께 즐겁게 춤을 추고 있었다.
그로자는 슬쩍 웃으며 샴페인을 음미했다.
한 곡 한 곡 음악이 이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플로어를 들락날락했다.
그리고 어느덧, 마침내 무도회의 막이 내려질 때가 되었다.
주모~옥!
다들 재밌게 놀았나요~?
네――!!
그럼 오늘의 마지막 코너! 금일 한정 특별 갤러리 쇼가 있겠습니다~!
우리의 촬영사 KSVK와 M200이 연회의 준비 단계서부터 지금까지의 많은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그 사진들 중 어쩌면 당신의 모습이 담겼을지도?
찬찬히 감상하고,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에 투표해 주세요~!
그런 이벤트도 준비했어? 재밌는걸.
그로자도 고개를 들어 벽에 비춰지는 프로젝터 영상을 보았다.
차례차례 확대되는 사진들 중엔 전장 한구석에 핀 꽃이나, 무도회 도중 일어난 웃긴 순간도 있었다.
고작 며칠인데 참 많은 일이... 음? 저 사진은 뭔데 득표수가 저렇게 급상승... 아.
득표수가 많을수록 점점 확대되는 사진 중 하나가 그녀의 시선을 끌었다.
바로, 그녀 자신이 플로어 옆에 앉아 가볍게 술잔을 흔들며 부드러운 미소로 플로어 어딘가를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오오~ 우승 후보가 좁혀진 모양이네요!
승자는 과연 "연회의 지배자"일까요, 아니면 "앞길의 인도자"일까요?
이거 정말 기대되는데요~!
후훗... 정말이지, 정성을 참 많이 들였구나.
그녀도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에 살짝 그늘을 드리운 쓸쓸함은 여전했지만, 저 이벤트의 승자가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로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금 그 순간에도 카메라를 놓치 않는 M200 일행에게 걸어갔다.
앗, 그로자 씨!
오오! 돌아왔다 들었는데 안 보여서 얼마나 찾았는데요! 어서 이리 와요!
응, 다녀왔어.
네에~ 투표 마감합니다!
특별 갤러리 쇼 최고의 사진! 우승은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