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석의 약탈자
M4 SOPMOD II
깜깜한 숙소.
RO! 나 다 갈아입었어! 얼른 가자!
...어라? 왜 아무도 없지?
SOP2가 갸우뚱하며 통신기를 켜자, RO635가 남긴 메시지가 떴다.
SOP2, 난 M4 씨랑 먼저 현장 일을 도우러 갈게.
받은 드레스 다 입는 대로 연회장으로 오도록 해.
그럼 거기서 보자.
이상이 메시지였다.
치이...
SOP2는 양손에 든 술잔에 고개를 떨궜다.
같이 건배하려 했는데...
......
뭐, 이렇게 됐으니 날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야호~!
신이 나서 RO635의 침대로 폴짝 뛰어오른 SOP2는 동료들의 침대를 방방 뛰며 넘나들었고...
그렇게 어두컴컴한 숙소에 SOP2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몇 분 후, 예의바른 노크 소리가 났다.
여보세요, 아무도 없나요? 소포 배송 왔습니다.
엥? 누구지?
그 소리에 SOP2는 침대에서 내려와 숙소의 문을 열었다.
안뇽~ 웬 소포야?
안녕하세요 SOP2 씨, 혹시 M4 씨 계세요?
아~니, 없어. 지금은 나뿐이야.
그렇군요...
그럼, 대신 수령해 주시겠어요? 이거 급한 물건이라고 했거든요.
응!
SOP2는 흔쾌히 소포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업무 평가에 별 다섯 개 부탁드려요!
MG34를 배웅한 뒤, SOP2는 M4A1의 소포를 가지고 들어왔다.
보기보다 좀 무겁네... 안에 뭐가 들었지?
SOP2의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슬쩍 M4A1의 침대로 향했다. 물론, 거기엔 엉망진창으로 구겨진 베개뿐이었다.
히히, 살짝만 볼게! 아무것도 안 망가뜨릴 거라구~
SOP2가 조심조심 상자의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가장 먼저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한 장의 쪽지였다.
<Size=55>"SOP2! 뜯지 마세요!!"</Size>
......
씩씩대며 뚜껑을 내려놓은 SOP2는 다시 M4A1의 침대로 고개를 돌렸다.
흥... M4, 설마 이런 쪽지 한 장으로 이 SOP2 님을 막을 수 있다 생각한 건 아니겠지?
SOP는 상자의 뚜껑을 홱 뒤집고, 쪽지를 어깨 너머로 휙 던져 버렸다.
우와아, 술이 잔뜩!
별의별 종류가 다 있네?
오오... 이건 딱 봐도 비싸 보인다... 어?
많은 술병들 중, SOP2는 유독 눈에 띄는 것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 술병엔 마찬가지로 눈에 확 띄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제발 부탁이에요 SOP2, 딴 건 마음대로 해도 되니까 이 술만큼은 제발 건들지 말아 주세요."
......
여기까지 예측하다니!
아 몰라 몰라, 나머진 내 맘대로 해도 된댔으니까 참아 줘야지... 으히히!
"허락"을 받은 SOP2는 싱글벙글해하며 상자 속을 더 뒤지기 시작했고, 이윽고 분홍색을 띄는 술을 발견했다.
이건 뭐지? 오늘 내 드레스랑 어울리는 색깔이네.
으음... 무슨무슨 체리 샴페인?
"...과다 음용 시 환각을 일으킬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맛부터 볼까나!
경고문을 무시하고, SOP2는 뚜껑을 따 병째로 꿀꺽꿀꺽 마셨다.
그러자 진한 꽃향기와 블랙체리, 오렌지가 섞인 향이 코를 찔렀다.
그리고 그 향이 채 가시기도 전에, 숙성된 코코아향이 약간 씁쓸한 느낌과 함께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그와 거의 동시에, 시큼한 자몽의 향과 농후한 우유의 냄새가 천천히 혀를 자극하면서...
후아아... 이거 엄청 맛있다아...
중독돼 버릴 것 같아아...
SOP2는 자기도 모르게 한 모금씩 계속해서 그 술을 마셨다.
그렇게 얼마나 마셨을까, SOP2는 점점 몸이 가벼워지면서 두둥실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후에... 나... 어디로 날아가는 거야아...?
헤헤헤헤... 근데 되게 기분 좋다아...
세상이... 다 예쁘게 보여엉...
난다 날아... 우헤헤...
......
......핫!
뭐야, 여기 어디야? 왜 온통 꽃밭이지? RO가 연회장으로 오랬는데!
...어라? 내가 언제 옷을 갈아입었지?
SOP2 공주님, 오셨군요.
RO? 너 옷이 왜 그... 잠깐, 뭐? 공주님?
왜 그러시죠, 공주님? 배가 고프신가요?
어... 쬐끔?
특별 간식을 준비했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어안이 벙벙한 SOP2는 눈을 비볐다. 그러자...
...2? SOP2! 여기서 멍때리고 뭐하는 거야?
그러자 SOP2의 주위가 시끌벅적한 연회장으로 변했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인형들이 한데 모여 춤추고 떠들고...
그리고 눈앞의 RO635는 잔뜩 인상 쓴 얼굴로 SOP2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대고 있었다.
어어...? RO? 너 언제 또 옷 갈아입었어?
SOP2가 멀쩡해 보이는 걸 확인한 RO635는 안도하면서도 퉁명스럽게 디저트가 담긴 접시를 건넸다.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나 아까부터 이 옷으로 현장 일 돕고 있었어.
아무튼, 이거 내가 너 주려고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알아? 조금만 더 늦었어도 이것마저 없었을 거라고.
헤헤헤, 고마워 RO. 근데 지금은 공주님이라 안 부르네?
뭐어? 네가 공주는 무슨...
아, 내 정신 좀 봐. 지금 너랑 수다 떨 시간 없으니까, 괜한 말썽 피우지 말고 이거 먹으면서 얌전히 있어, 알았어?
네~에.
여전히 못미덥단 눈빛이었지만, RO635는 바쁜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이상하다... 왜 아닌 척하지?
아니, 설마 내가 헛것을 본 건가?
한손에 간식이 담긴 접시를 든 SOP2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 이내 다른 손의 술을 다시 꿀꺽꿀꺽 마셨다.
푸하――! ...엑, 여긴 또 어디래?
나 분명 연회장에 있었는데?
이번에는 조용한 호숫가가 SOP2의 눈앞에 펼쳐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던 인형들은 지금은 다들 깜찍한 복장에 토끼귀까지 달린 것이, 마치 동화책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SOP2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다, 멀리서 아주 익숙한 얼굴이 풍선 한 다발을 들고 어디론가 향하는 것을 보았다.
오, M4! M4도 여기 있었구나!
......
그 풍선은 다 어디서 난 거야?
SOP2, 전 여길 떠날 거예요.
뭐? 떠난다니 어디로?
아주 아주 머나먼 곳으로요.
...그럼 나도 같이 가.
안 돼요, 너무 먼 곳이에요...
그러니, 여기서 작별이에요.
그 말과 함께, M4A1의 발이 지면에서 떨어지면서 두둥실 떠올랐다.
가지 마! 내가 못 가게 할 거야!
SOP2는 펄쩍 뛰어, 하늘로 떠오르는 M4A1을 와락 껴안았다.
...2!? 이, 이거 놔 주세요!
...어라?
M4, 풍선 어쨌어?
SOP2는 어리둥절해하며 M4A1을 품에서 놓아 주었다.
콜록콜록... 숨 막히는 줄 알았어요...
무슨 일이에요, SOP2? 갑자기 절 와락 껴안고...
응...? 너 방금 멀리멀리 가 버린다고...
네? 제가요? 어디로요?
몰라... 아주 아주 먼 곳으로 간다고 했잖아.
같이 못 갈 정도로 먼 데로...
...?
꿈이라도 꾼 것 아닐까요? 전 여기 있잖아요.
...응!
그럼 이제 괜찮죠? 전 아직 일이 있어서, 이만 AR-15를 찾으러 갈게요.
M4A1는 약간 걱정되는 눈빛으로 SOP2를 보다, 몸을 돌려 촬영장 쪽으로 향했다.
뭐지...?
아까부터 이상한 게 보이네...
SOP2는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려고, 다시 한번 술을 한 모금 넘겼다.
또 여기야?!
......
아 몰라, 모두 여기 있는데 뭐 어때.
여기서 M4는... 풍선팔이 아가씨가 됐네! 히히히...
오오, RO도 토끼귀 생겼다! 이렇게 되면 AR-15랑 M16도 어떨지 궁금해지는데~?
SOP2은 배시시 웃으며 사람들이 모인 쪽으로 걸어갔다.
우헤헤, 다들 너무 귀엽다아~! 허그 허그~ 나랑 허그해 조~!
엑? 어... 으, 응...
히히히...
SOP2는 꽃밭 위를 지나면서 만나는 인형마다 꼬옥 껴안았다.
......
AR-15! 여기 있었구나!
SOP2, 나 대신 이 꽃다발을 M4한테 전해 줄래?
물론이징! 근데 왜?
......
난 아직 할 일이 있어.
......
어서 가, SOP2.
M4가 널 기다리고 있어. 그녀를 잘 지켜 줘, 부탁할게...
악몽 같은 단편이, SOP2의 마인드맵을 스쳤다.
안 돼애애애!!
안 돼!! 이번엔 절대 안 보내 줄 거야!!
SOP2가 소리지르며 AR-15의 옷깃을 덥석 붙잡았다.
...?! 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후에엥... AR-15...
어, 뭐, 뭐야? 너 왜 울어?
무슨 일이야? 누가 너 괴롭혔어?
너어어... 또 나 버리고 혼자 가려고오...
뭐어? 내가 언제?
지금!
......
마인드맵 정리하다 기억이 꼬이기라도 했나 보네. 뭐라도 마시고 진정해.
응...
SOP2가 훌쩍이며 손의 술병을 AR-15에게 건넸다.
우리 한 잔씩 마시고, 속상한 일은 전부 잊어버려.
그럼 너 더 마셔야 돼애... 나 방금 엄청 속상했단 말이야아...
......
그래, 알았어. 까짓것 몇 모금 더 마시면 되지 뭐.
히히히, 이거 M4가 산 술인데 엄청 맛있어!
뭐?! 그걸 왜 네가 함부로――
AR-15가 당황해 틈이 보이자, SOP2는 그녀의 턱을 붙잡더니 술병의 주둥이를 냅다 입에 꽂아 넣었다.
자 자, 많이 마셔~!
읍?! 웁! 우웁! 꿀꺽꿀꺽...
술병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고, 그걸 확인한 뒤에야 SOP2는 AR-15를 놓아 주었다.
헤헤헤... 디저트도 먹어! RO가 남겨 준 거야!
두 조각... 아니, 한 조각만 먹어!
......
하지만 AR-15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안 먹어? 그럼 내가 다 먹어야지~
SOP2는 초록색의 민트 맛 과자를 집어 입에 물었다.
와작와작...
오오... 엄청 상쾌한 맛... 몸이, 몸이 또 떠오른다아!
얼굴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SOP2는 내달렸다.
스쳐지나가는 나뭇가지들이 바스락거리고, 꽃잎이 휘날렸다...
꺄하하하하핫! 초고속이다――!!
거기... 게흑... 거기 서 SOP2...!!
AR15의 외침은 저멀리 따돌려졌다.
무한한 하늘, 저 너머로오오오!!
엄마야, 쟤 저게 뭐하는 거야!?
SOP2가 질주하며 일으킨 돌풍에 인형들의 치맛자락이 펄럭였고, 사방에 비명이 터져나왔다.
누가 쟤 좀 붙잡아!
꺄하하하하하핫!!
잡아볼 테면 잡아 봐~라~!!
SOP2는 날렵하게 꽃 더미 속으로 몸을 숨겼다.
사라졌다!? 누구 못 봤어?!
히히히... 어~느~것~을~먹~을~까~요... 이거다!
SOP2는 이번엔 붉은색의 복분자 맛 과자를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
이 느낌... 힘이 난다! 온몸에서 힘이 난다아아!!
SOP2가 꽃 더미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미니, M4A1과 스쳐지나가는 하얀 토끼 기사가 보였다.
M16!
엥, SOP2? 넌 또 어디서 튀어나왔어?
지금 어디 가?
그 말에 뜨끔한 M16A1은 곧바로 산뜻한 미소로 얼버무렸다.
아... M4 대신 가져올 게 있어서.
그럼 내가 갈게, 내가 제일 빠르잖아!
하하... 이건 M4가 나한테 맡긴 일인데?
왜...
너무 고민하지 마, 언젠가는 답을 찾을 날이 올 테니까.
.....
너는 얌전히 RO랑 같이 가, 알았지?
M16A1은 평소와 같은 미소로 SOP2의 머리를 쓰다듬곤, 어디론가 떠나려 했다.
......
가지 마.
어?
등을 돌린 M16A1에게, SOP2가 달려들었다.
이야얍——!
그리고 양팔로 M16A1의 허리를 감싸고 번쩍 들어올렸다.
뭐, 뭐야?!
어... 야 SOP2, 이게 무슨 짓이야?
어디에도오오... 어라? 또 돌아왔다...?
SOP?! 뭐하는 거예요!?
괜찮아, M4.
SOP2는 어리둥절해하며 M16A1을 살포시 내려놨고, 그 광경을 목격한 M4A1도 걱정스런 얼굴로 다가왔다.
SOP2, 무슨 일이에요?
난... 난 괜찮아, 기운 쌩쌩해애!
이거 엄청 마셨구만?
에에이... 아니거드은...!
M4A1과 M16A1이 잠깐 눈을 돌린 사이, SOP2는 입에 초록색 과자를 물곤 홱 뒤돌아 도망쳤다.
SOP――
하하... 걱정 마 M4, 쟤 잡을 사람은 따로 있어.
M16A1은 이미 달관한 표정으로, 이쪽으로 헐레벌떡 달려오는 인형을 미소로 바라봤다.
왁자지껄하던 꽃밭과는 정반대로, 호숫가는 인기척 없이 조용했다.
또 여기로 돌아왔네...
SOP2가 호수로 첨벙 발을 디디자, 사방으로 튄 물이 햇빛을 받아 무지개를 그렸다.
다들 어디 갔지?
고요한 호숫가엔 물이 첨벙이는 소리만 들렸다.
SOP2는 발을 멈추고, 발치에 일렁이는 수면을 내려다봤다.
왠지 이상한 기분이었다.
...음, 재미없어.
RO랑 다른 애들은 뭐하고 있을까...
밖으로 나와, SOP2는 호숫가의 가장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차가운 물에 두 다리가 잠겼다.
......
왜 아무도 안 오는 거람?
일렁이던 호수의 수면도 잔잔해졌다.
여기 싫어.
풍경이 그리폰 기지보다 훨씬 예쁘고, 인형들도 다 토끼귀까지 있어서 귀엽지만...
그래도 우리 애들이 없잖아.
보고 싶어졌어, 찾으러 갈 거야!
SOP2가 의욕을 불태우며 일어났다.
RO——!
M4——?
AR-15——!
M16——!
메아리가 물결처럼 퍼져 나갔다.
RO... M4... AR-15... M16...!
우으으...
다들 어딨어...?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나만 두고 가지 마...
혼자 있기 싫단 말이야...
SOP2——!
RO...? RO!!
나 여깄어! RO——!!
자신을 찾는 RO635가 보이자, SOP2는 눈물을 쓱 닦고 큰 소리로 외쳤다.
SOP——2——!
RO——!!
SOP2는 팔을 활짝 벌리고 달려가 RO635를 와락 껴안으려 했다.
하지만 가까워진 그 순간, RO635는 숙달된 몸놀림으로 SOP2를 제압하고 수갑을 채웠다.
...엥?
너의 죄를 세어라! "정신교란"!!
그리고, SOP2 눈앞의 세상이 등뒤로 쓸려가 사라졌다.
얼마 후, 정신이 돌아온 SOP2는 연회장 바깥의 분수대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에엥?
아, 깼다.
어휴 너 진짜...
대체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셔서 마인드맵이 뒤죽박죽이 다 된 거야?
으응... 또 사고 쳤어?
두말하면 잔소리지 이 녀석아. M4 씨가 너 대신 뒷수습 중이야.
으... 미안...
RO635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흠뻑 젖은 치마를 쥐어짠 다음,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마찬가지로 흠뻑 젖은 SOP2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RO.
왜?
나 때문에 화났어?
...아니.
RO635는 한숨을 푹 쉬면서 SOP2를 분수대에서 끌어내고, 그녀의 치마의 물도 짜 주었다.
가자, 옷 갈아입어야지.
응!
그리고 앞으론 술 한 방울도 입에 못 대는 줄 알아.
엑! 아이잉~ 그건 봐주라~
이게 어디서 애교를 부려? 이번엔 진짜 절대 안 봐줄 거야!
두 인형은 티격태격 숙소로 향했다.
비록 몸이 흠뻑 젖고, 연회의 가장 즐거울 때를 놓치게 되었지만...
SOP2는 바로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