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정착자
M4A1
......
......
허벅지에 덩굴을 본딴 멋들어진 고리를 찬 뒤, M4A1은 거울 앞에 서서 화장을 다시 한번 꼼꼼히 확인했다.
...응!
완벽해!
(힘내자, M4!)
(넌 할 수 있어!)
전장에 나가는 것마냥, M4A1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굳센 눈빛으로 거울 옆의 탁상에 놓인 사진을 보았다. 사진 속엔 서로 다른 풍채의 소녀들 3명들 사이에 수줍은 얼굴을 한 M4A1 자신도 있었다.
......
단체 사진,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
......
캬하~ 술맛 끝내주네!
M16A1이 단숨에 술잔을 비우고는 개운한 듯 소리를 냈다.
언니, 아직 무도회도 시작 안 했는데 벌써부터 취하진 말아 주세요.
연회고 무도회고, 나한텐 내 손에 술잔 들린 그 순간부터 시작이라고.
근데, 연회 현장에 술 따로 준비됐다더니 이건 뭐야? 남는 거?
마음에 드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응?
아, 크흠! 마침 생각났는데, 무도회 중간에 쉬는 시간에 무대 쪽으로 와 주실래요?
오? 뭐야, 네가 공연이라도 하는 거야?
그, 그건 아니고요.
뭐어야, 이 언니를 위해 깜짝 이벤트라도 준비한 줄 알았더니만.
그게 아니라... 저희 다 같이...
응? 다 같이 뭐?
아아, 아뇨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흐응...?
M16.
돌연 나타난 OTs-14가 대화를 도중에 끊었고, 그녀와 소리 낮춰 대화하던 M16A1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럼 당장 가자고.
언니?
무슨 일이죠? 적의 동향이라도 있나요?
아니 아니, 적 같은 거 아니니까 걱정 마. 그냥 누가 연회용으로 준비된 술을 몽땅 마셔버리려 한다길래, 술을 보호하러 가려고.
하지만 방금 표정이...
이야기는 이따 돌아와서 다시하자, 알았지? 그동안 SOP2랑 같이 놀고 있어.
M16A1은 둘째 잔도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 술 고맙다 M4, 딱 내 취향이야.
술잔을 내려놓고, M16A1은 OTs-14와 함께 떠났다.
......
탁상 위의 빈 술잔을 본 M4A1은 소소하게 기쁜 마음이 들었다.
눈치 챘구나, 내가 특별히 준비한 술인 걸.
......
그런데, SOP2는 어딨지?
그 애의 성격상 벌써 여기 오고도 남았을 텐데...
주위를 두리번겨러도, SOP2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같이 다니기로 약속했는데... 아무리 드레스가 익숙치 않더라도 이렇게 늦을 리가...)
......
(일단 주위를 돌아다녀보자.)
어? 여기에도 무대가 있었네?
SOP2를 찾을 겸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M4A1은 연회장의 한구석에서 막 세운 듯한 무대를 찾아냈다.
무도회가 곧 시작되려는 지금, 그곳에서는 인형 몇 명이 춤 연습에 열중이었다.
아하, 이벤트 코너의 리허설을 여기서 하는 거였구나.
공연이라...
무대를 지켜보던 M4A1의 눈에, 춤추는 인형들에게 점점 친숙한 모습이 겹쳐졌다.
그리고 규칙적인 리듬에 그녀의 의식이 점차 몽롱해졌다...
"쉬잇, 저기 저 창가에서 터져 나오는 빛은 무엇이지?"
"저쪽은 동녘이니, 줄리엣이 바로 태양이로구나! 밝은 태양이여, 떠오르시오!"
어?!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아, 빛나는 천사여! 계속 말하시오!"
RO...? 지금 뭐하는 거예요?
컷! 컷!
뭐야 M4! 대사를 말해야지!
SOP2도?
지금은 SOP2 감독님이야!
우리도 공연을 준비했던가요...?
그나저나, 방금 대사는 혹시...
"로미오와 줄리엣". 네가 줄리엣 역을 맡기로 했던 거 벌써 잊었어?
그, 그랬던가요?
집중하세요 M4 씨, 저도 이제 겨우 무대울렁증을 극복했단 말예요...
아, 네...!
어...
뭐야 M4, 설마 대사 하나도 안 외웠어? 내가 못 살아... 자, 따라해.
"당신의 이름만이 저의 원수가 됐을 뿐이에요. 몬태규가 아니라도,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에요."
우와, M16이 그러니까 진짜 여자애 같다.
아앙?
케흠!
자, M4!
어... 그러니까...
"다, 당신의 이름만이 저의 원수가 됐을 뿐이에요. 몬... 어..."
"몬태규"!
아, "몽타주가 아니라도,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에요!"
......
분위기가 썰렁해진 바로 이 순간이 바로 "갑분싸"라는 것을, M4A1은 절감했다.
푸하하하! 몽타주라니 뭐야 그게!
아... 으...
프흡... 대사 외우는 데에 시간 좀 걸리겠는데요.
흥... 그래도 너답긴 하네.
그, 그게... 아하, 하하하하...
아이 참, 진지하게 하라고 진지하게!
SOP2가 대본을 동그랗게 말아 탕탕 쳤지만, 가벼워진 분위기를 돌려놓을 순 없었다.
그리고 그 장면이 렌즈에 포착되어, 아름다운 모두의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읏... 플래시가 엄청 눈부시네요...
M4A1이 그 눈부신 빛을 손으로 가렸다.
마인드맵 속의 상상극장에서 나온 M4A1은, 방금 그 눈부신 빛은 그저 무대 위의 조명이었음을 깨달았다.
한편, 무대 위의 인형들은 일찍 연습을 끝내고 내려오는 참이었다.
...그러다 촬영되면 어떤 사진이 나올지 상상이 안 가네.
아니, 애초에 그런 연극이 있을 리가... 하하하...
...어라?
문득 시선을 다시 무대 위로 돌리니, 예상밖에 친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R, RO?
AR-15도!?
앗, M4 씨!
시선이 마주치자, M4A1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무대 위의 그들이 방금까지 했던 상상과 겹쳐 보이려는 것을 애써 무시하면서, 손짓하는 RO635에게 다가갔다.
어으...
...? M4, 왜 그렇게 긴장했어?
기, 긴장이요!?
릴렉스하거라, 이렇게 기념비적인 순간에 어색한 모습을 남겨선 안 되니까.
어, 지금 바로 사진 찍어요?!
당연하죠. 먼저 시범 삼아 찍어보고, 이따가 단체 사진 촬영할 거예요.
다, 단체 사진요? 설마 모두...!?
아 참, 깜빡할 뻔했네.
"이쪽은 얼마 안 걸리니까 좋은 자리 남겨 둬라!"
...라고 M16이 말헀어.
다, 다 들켰어요...?
M4 씨는 이런 거 잘 못 숨기니까 말이죠.
으... 다음엔 더 주의할게요...
나 참, 그딴 걸 노력해서 뭐해?
네!? 아뇨, 그런 게 아니라...!
푸훗!
아, 슬슬 시간이네요.
뭐야... M16 녀석, 얼마 안 걸린다더니 아직 코빼기도 안 보이네. 그리고 SOP2는 또 어디 갔길래 안 오는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그리고, 이참에 어떡하면 사진이 잘 나올지 미리 테스트해볼 수도 있잖아?
M4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핫, 그로자랑 일 끝나자마자 AR-15가 내 흉을 보네.
기다리게 했네. 내가 너무 늦진 않았지?
전혀요! 그럼 KSVK 씨, 부탁드려요!
좋아, 그럼 모두 한자리에 모이도록.
한데 모인 AR팀은 KSVK의 지시를 따라 자리를 잡았다.
곧 완성될 새 단체 사진을 상상하니, M4A1의 얼굴엔 절로 행복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KSVK도 그 절묘한 순간에 셔터를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