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길의 인도자
M16A1
......
황야에 마지막 총성이 울려퍼진 뒤, 전장은 다시 적막해졌다.
M16A1은 총을 거두고 OTs-14에게 고개를 돌렸다.
OTs-14는 상황 종료를 알리는 수신호를 보냈고, M16A1은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끄응... 시간이 예상보다 훨씬 오래 걸렸는걸.
나도 설마 며칠씩이나, 이렇게 잔뜩 돌아다닐 줄은 몰랐어.
M16A1은 OTs-14의 시선을 따라, 기지가 있는 방향을 응시했다.
미리 지휘관에게 말해 둬서 다행이지만, 이 정도 시간이라면... 파티는 진작에 시작됐으려나.
많이 기대했나 봐?
당연하지. 모두 함께 떠들고, 맛있는 걸 먹으면서, 평온을 즐기는 일...
총 들고 싸우는 것보다 훨씬 좋잖아?
훗, 하긴. 얼른 돌아가자, 잘하면 파티장 정리가 끝나기 전엔 도착할 수 있을지도 몰라. 좋은 술도 있다면 좋겠는데...
본부, 여기는 M16A1. "청소" 끝인데, 현재 위치가 도보로는 기지로 복귀하기 멀으니 헬리콥터를 9번 전투 지역의 3번 헬리포트로 보내 줘.
수고했어! 바로 보낼 테니까 좀만 기다려~
땡큐.
카리나의 가벼운 목소리에, M16A1의 신경도 조금 풀어졌다.
지금 이 전장에는 둘을 제외하면 움직이는 물체는 아무것도 없었다.
M16A1은 조용히 눈을 감고, 천천히 컨디션을 조절하면서 전투로 인한 긴장감을 풀었다.
...헬기 왔다. 어서 타자.
프로펠러의 소음을 들으며, 둘은 복귀길에 올랐다.
지금쯤이면 파티도 시작됐겠지. 막 뛰어다니는 SOP2를 RO가 붙잡으러 뒤쫓고 있을 테고... AR-15는 혼자 술 마시고 있으려나.
M4는... 뭘 하고 있을까?
다른 애들처럼 파티를 즐기는 중일까? 아니면...
...큰일났다.
응? 무슨 일인데?
그게... M4랑 파티에 같이 가자고 약속했거든. 무슨 서프라이즈를 준비한 모양이던데.
그 말을 듣고 현재 시각을 본 OTs-14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미안해.
직장 동료인데 뭘, 미안해할 것 없어.
하지만 "소중한 가족"과의 약속이잖아? 자의든 타의든 그걸 어기는 건 천벌받을 일이야.
그럼――
내일 네 무덤에 조화 들고 갈게.
아니 그럼 전우로서 어드바이스라도 좀 달라고.
외골격 입은 채로 파티 갈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그렇다고 벗으면 M4의 공격을 못 버티겠지만.
그럼 역시 내일 조화로 뭘 준비해야 할지나 생각해 둬야겠네.
그럼 네 발목 붙잡고 같이 지옥 가야지 뭐.
농담은 이쯤하고.
이미 지각한 건 어쩔 수 없으니, 사과의 선물이라도 준비하는 게 어떨까?
그게 좋겠네... 고민 좀 해봐야겠다.
M16A1은 땅이 꺼져라 푹 한숨을 쉬었다.
그걸 본 OTs-14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도착했어.
그로자, M16! 어서 돌아와~!
연회 거의 끝날 참이니까 얼른 지휘관님이 준비해 두신 드레스 입고 오도록 해!
드레스?
...검정색이네. 흰색 머리랑은 안 어울리지 않나?
아무래도 만든 사람이 네 예전 증명사진을 보고 만든 모양이야. 확실히 어색하겠는걸.
끄응, 그렇다고 안 입을 수도 없는데... 지금 가서 이걸 하얀색으로 바꾸기엔...
많이 늦었지.
...아. 지금 드레스를 하얗게 바꾸긴 무리지만, M4A1에게 줄 서프라이즈를 준비할 순 있겠다.
뭐?
인형의 머리색을 바꾸는 건 인간보다 훨씬 쉽잖아.
OTs-14가 눈을 깜빡이며 힌트를 주었다.
그 의도를 읽은 M16A1은, 드레스를 들고 곧장 탈의실로 향했다.
약 30분 후, 막바지에 접어든 연회장.
M16A1은 OTs-14를 뒤따라 옆문으로 조용히 안으로 들어와, 소중한 "그 사람"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M16!
엥, SOP2? 넌 또 어디서 튀어나왔어?
지금 어디 가?
아... M4 대신 가져올 게 있어서.
SOP2는 M16A1이 지각한 것을 아직 모르는 눈치였다.
내심 다행이다 생각하며, M16A1이 발길을 옮기려던 그때였다.
...가지 마.
어?
갑자기 M16A1의 허리가 세게 조여졌다. SOP2가 양팔로 M16A1의 허리를 감싼 것이었다.
그리곤, 무작정 그녀를 번쩍 들어올렸다.
뭐, 뭐야!?
동생의 돌발행각에 깜짝 놀란 M16A1은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복잡한 심경이었다.
바로 SOP2에게서 나는 진한 술냄새 때문이었다. 지금 SOP2는 진탕 취한 상태였다.
더군다나, 그 은은한 체리향 덕에 SOP2가 무슨 술을 마셨는지도 단박에 알아챘다.
어... 야 SOP2, 이게 무슨 짓이야?
SOP?! 뭐하는 거예요!?
아무데도오오... 어라? 또 돌아왔다...?
M16A1이 어리둥절해하는 와중, SOP2는 입에 초록색 쿠키를 물곤 홱 뒤돌아 도망쳤다.
SOP2――!!
으으, 너무 빨라...
하하... 걱정 마 M4, 쟤 잡을 사람은 따로 있어.
M16A1은 어물쩡 넘어가려고 M4A1의 어깨를 다독였지만, 그 시도는 보기좋게 실패했다.
바로 고개를 들어 단단히 삐진 표정으로 약속을 어기고 지각한 언니를 매섭게 쏘아보니, 당장에라도 따질 셈인 듯했다.
나, 나 왔어 M4~ 드레스 정말 예쁘네~?
...고마워요.
윽... 역시 화났구만...
그게, 사정이 있었거든. 우선 내 말부터 들어 줄래?
......
뜻밖에도, M4A1은 뭐라 더 말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갔다. M4A1의 눈동자에 비친 M16A1은, 과거의 그 모습이었으니까.
모든 것이 예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지만... 모두가 너무나도 잘 알다시피, 지금 그들은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멀리 왔다. 물론, 그럴 필요는 전혀 없었다.
어... M4?
저, 지금 언니를 엄청 오랜만에 보는 기분이에요.
마지막으로 본게 고작 며칠 전인데도요.
아... 하하하.
역시 이 모습이 더 익숙하지?
엄청 그리운 느낌이에요, 마치 엣날로 돌아간 것만 같아요.
화 안 났어?
한 마디만 더 해봐요, 진짜 화낼 거예요.
때마침 잔잔한 왈츠가 흘렀다.
절호의 기회를 놓칠세라, M16A1은 M4A1에게 손을 내밀며 눈을 찡긋했다.
그래, 너무 늦진 않았나 보네.
So... shall we dance?
Sure.
M4A1는 소중한 맏언니가 내민 손을 잡고 댄스 플로어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한 곡이 끝나자 M4A1은 자리를 AR-15에게 내어 줬고, M16A1도 다시 손을 내밀었다.
뭐야, 꼬시는 거야?
오랜만이잖아.
빙글빙글 돌며, 치맛자락이 부드럽게 펄럭였다.
AR팀의 맏언니는 그렇게 동생들 모두와 한 곡씩 추었고, 마지막으로 지휘관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아, 지휘관.
이번엔 우리의 재회를 축하하자고. 그리고 이따 같이 한잔, 어때?
......
나 참, 뭘 망설이고 그래? 눈치 볼 필요 없잖아.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M16A1은 지휘관의 손을 잡고서 다음 곡의 시작에 맞춰 함께 플로어로 다시 들어갔다.
그래도 역시... 이렇게 지휘관이랑 다시 만나 춤까지 추는 날이 올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어.
내 춤 솜씨, 괜찮은 편이지?
지휘관이 인형이랑 춤출 때 어느 쪽인진 모르겠지만, 난 리드할 줄밖에 모르니까 지휘관이 팔로우해 줘.
잠시후, M16A1과 지휘관은 플로어의 정중앙에 다다랐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그녀는 지휘관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함께 전장을 헤쳐 나가고, 평화로울 때 함께 춤출 수 있어서 기뻐. 진심으로.
음악이 끝나자, M16A1은 이번엔 지휘관의 손을 놓고 유유히 플로어의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그래서, 넌 왜 춤 안 춰?
이렇게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거든.
흐음. 그럼 한 곡 추시렵니까, 아가씨?
미안하지만 거절할게, 그냥 여기서 구경할래.
M16A1도 더는 억지 부리지 않고, OTs-14와 함께 플로어 한쪽에서 모두가 춤추는 광경을 지켜봤다.
뭐 봐?
넌 뭐가 보이는데?
사람들, 미소... 평화. 넌?
너랑 비슷한 거.
나하곤 보이는 게 좀 다를걸?
분석 모듈이나 성격 설정, 경험이 다르니.
그래도 비슷한 점은 있지.
좋아하는 사람, 가족, 친구들과 함께 근심 걱정 없이 춤추고, 맛있는 디저트를 먹고, 끝내주는 술을 즐기고.
보기만 해도, 우리가 여태까지 싸워 온 게 헛되지 않았단 느낌이 들지?
이해심이 좋구나.
대장으로서의 소양이지.
뭐 어쨌든... 평화와 소중한 사람의 미소보다 중요한 게 어딨겠어.
그걸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 한몸 으스러지는 것쯤 가벼운 대가지.
그래도 자신을 더 아끼도록 해.
그나저나, 드물게 네가 이런 감성적인 대화를 하네. 평소엔 전술 얘기밖에 안 하지 않았어?
나랑 AR-15를 헷갈린 건 아니고?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하핫, 평화를 위하여.
후훗, 건배.
짠. 술잔을 부딪히고, 두 인형은 잔을 단숨에 비웠다.
주모~옥!
다들 재밌게 놀았나요~?
네――!!
그럼 오늘의 마지막 코너! 금일 한정 특별 갤러리 쇼가 있겠습니다~!
우리의 촬영사 KSVK와 M200이 연회의 준비 단계서부터 지금까지의 많은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그 사진들 중 어쩌면 당신의 모습이 담겼을지도?
찬찬히 감상하고,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에 투표해 주세요~!
그런 이벤트도 준비했어? 재밌네.
......
M16?
맘에 드는 사진을 찾았다, 당장 현상하러 가야겠어!
OTs-14가 뭐라 덧붙이기도 전에, M16A1은 그 사진 아래에 표기된 촬영사, KSVK를 찾아갔다.
그리고 방금 막 밖에서 돌아온 참인 KSVK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앞을 가로막았다.
음? M16...?
여어 KSVK, 미안하지만 AR팀이 찍힌 사진 복사해 주겠어?
아하, 얼마든지. 기념할 만한 추억은 모두와 공유해야지.
안 그런가, 숙녀분들?
엥?
M16A1이 뒤를 돌아보니, AR팀의 나머지 네 명이 있었다.
그렇게 다섯이서 어색하게 시선만 주고받다, AR-15가 먼저 시선을 돌리니 그 자리의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럼, 이왕 이렇게 한자리에 모였으니 한 장 더 찍는 건 어떠한가?
난 아무래도――
찬성!
AR팀은 잠시 우왕좌왕한 끝에 포즈를 취했다.
중앙으로 떠밀려 M4A1과 어깨동무를 하게 된 M16A1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M4의 말대로야. 이렇게 모여있는 게, 마치 꿈만 같아...
그래... 더 많이 이렇게 있을 수 있다면, 난 그 어떤 대가라도 치를 수 있어.
좋아. 그럼 하나, 둘――
KSVK의 신호에 AR팀의 맏언니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카메라 렌즈를 향해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셋!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