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야의 댄서
ZasM76
그마――안!!!
사무실에서 돌연 고함이 터져 나왔다.
깜짝이야... 이해가 안 되는데, 왜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시치미 떼지 마, 방금 전부터 트집만 잡고 있잖아!
내가 일부러 신경써서 너랑 같이 여흥 코너 생각해보자고 했더니만!
대체 나한테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하?
저는 합리적인 분석에 기반한 의견을 제시했을 뿐인데요.
웃기고 있네, 그냥 시비 거는 거지!
됐어, 나 혼자 할 거야! 괜히 신경써 줬어 정말!
그건 안 되죠, 이미 이 일에 협력하기로 약속했는걸요.
약속했으니 도중에 그만둘 수 없어요.
맘대로 하세요, 나 알아서 다 할 거야!
아하...! 그래, 그럼 우리 각자 따로 기획서를 써서, 카리나 씨한테 누구 게 더 좋은지 평가해 달라고 하자!
...좋아요.
M1911은 씩씩대며 문을 박차고 나가, Zas M76만 홀로 사무실에 남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 시비 거는 투였나?
처음으로 지적당한 사항에, Zas M76은 곤혹스러웠다. 반성하는 마음은 들었지만, 여태까지 자각조차 없었던 걸 어찌하겠는가.
정말 매너 없어 보였다면... 다음에 사과해야지.
선배는 선배니까.
하지만...
하지만 이대로 고개 숙일 생각은 없어.
따로 기획서를 써서 승부를 내자고?
상대가 SVD가 아니더라도, 승리는 절대 양보 안 해.
뭐가 됐든 한다면 최선을 다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겨루게 되었다면 반드시 우위를 점한다.
그것이 Zas M76의 철칙이었다.
그럼...
......
얼마 후.
응, 기획서는 잘 받았어. 그런데...
왜 각자 따로 한 장씩 낸 거야?
흥!
어떻게 된 일이냐면요...
논의 중에 의견 충돌이 생겨서, 각자 기획을 제출해보기로 했어요.
누구 게 더 낫다고 보시나요, 카리나 씨?
으음...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걸...
둘 다 장단점이 명확해서, 좋고 나쁨을 비교하기가 좀 그렇네.
흐음... 굳이 말하자면, 이 둘을 합친다면 완벽할 거 같아!
아, 특히 M76이 제안한 이거. 나 이거 엄청 좋다고 생각해!
어느 거요?
무도회 말이야!
무, 무도회?!
사교 댄스 같은 거 추는 무도회 말이야?
네.
모처럼 다들 예쁜 드레스를 입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이런 여흥 코너가 빠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응, 좋아! 채용! 이따 지휘관님께 전달할게!
지휘관님도 분명 이런 이벤트는 대찬성이실 거야!
이, 일이 이렇게 되면 어떻게든 달링을 초대해야...
핫!
무어라 중얼대던 M1911이 무언가 번뜩 떠오른 듯한 표정으로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그런 M1911을 무시하고, Zas M76은 결산을 정리하는 카리나를 바라봤다.
카리나 씨, 최종 채용할 기획서를 확인할 수 있을까요?
응? 물론이지, 안 그래도 너희한테도 한 장씩 주려 했어.
근데 M1911 쟤 엄청 빠르네...
......
왜 그래? 표정이 좀 이상한데.
카리나 씨... M1911의 기획서에서 채용한 사항이, 제 기획서의 것보다 하나 더 많네요?
어, 그랬나? 몰랐네.
너희가 제출한 기획서 전부 다 훌륭하지만, 코너를 진행할 시간은 한정적이잖아. 그래도 하이라이트는 네가 제안한 무도회야.
저는... M1911만도 못한 건가요...
저쪽이 선배긴 하지만... 엄청 구식 모델인데...
SVD 상대로는 절대 지지 않을 텐데...
M76...?
그런 거 아니니까 너무 고민할 것 없어, 응?
아 그래, 방금 M1911은 지휘관님을 댄스 파트너로 초대할 생각인 거 같더라.
M76은 생각해 둔 사람 있어?
아직 시간 있으니 미리 가서 준비하는 게 어때?
춤...
M1911이 나가기 직전 보인 열정으로 반짝이는 눈빛을 떠올리자, 우울했던 Zas M76의 기분이 변했다.
...네.
기획서는 졌지만, 아직 무도회는 시작하지도 않았죠! M1911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어요!
어어... M76?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카리나 씨 말대로, 아직 여유가 있는 참에 연습해야겠어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앗.
왜 둘 다 발이 저렇게 빨라?!
나머지 작업을 누구한테 맡기란 건데!
......
좋아, 여기서 하자.
인기척 없는 정원 안을 돌아다니며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Zas M76은, 마인드맵에서 그녀가 가진 사교 댄스에 관한 모든 관련 자료를 검색했다.
타... 타타, 타타타...
어설프게나마 박자에 맞춰, Zas M76은 엉거주춤 스텝을 밟았다.
그녀의 숙적은 SVD지만, 결판을 내기 전까진 그 누구에도 질 수 없었다.
오기든 억지든, M1911에게 한 방 먹은 이상 그녀를 다시 이겨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SVD한테 도전장을 내밀지 못한다.
......
...이런 승부욕, 괜한 고생 아닐까?
가느다란 팔을 살짝 굽혀 보니, 다행히도 인형의 사지로도 충분히 우아한 곡선을 그릴 수 있었다.
경쟁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인형으로 태어난 내가 남들과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알아...
중얼대는 Zas M76의 스텝은 점점 능숙해져 갔다.
수년에 걸쳐 연습해야 하는 인간과 달리, 인형에게 움직임을 분석하고 따라하는 것쯤 마인드맵의 성능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Zas M76은 모방의 달인이다.
하지만... 인간의 눈엔 어떤 안무가 좋은 거고, 어떤 안무가 나쁜 거지?
그저 동작을 따라하는 걸로 충분할까? 자료의 일류 댄서에 비해선 뭔가 부족한 느낌인데...
부스럭...
응?
온정신을 집중해 연습하던 그때,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Zas M76은 움직임을 멈추고 정원 입구 쪽의 복도를 보았다.
잘못 들었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에, Zas M76은 고개를 젓곤 다시 연습에 몰두했다.
......
딴.. 따딴, 따따딴, 따...
그렇게 너무 몰두한 나머지, 주위가 어두워진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해가 지고 떠오른 달은 마치 스포트라이트처럼 정원의 고독한 댄서를 환히 비추었다.
짝짝짝...
똑같은 안무를 몇십 번째로 마쳤을 때, Zas M76의 등뒤에서 갑자기 박수 소리가 들렸다.
앗? 지, 지휘관님?!
...어라? 날이 어두워졌잖아!? 지금 몇 시예요?!
정말 잘 추는구나, M76.
안절부절 못하는 Zas M76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지휘관은 그저 웃으며 천천히 박수를 치고 손을 내렸다.
무도회... 끝났나요?
무도회가 진작에 끝났음을 깨달은 Zas M76은 후회막급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어째선지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M1911이 여기로 데려왔어.
M1911이...
역시 지휘관님과 춤을 췄군요?
걔가 널 엄청 걱정하더라.
지휘관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떨군 Zas M76에게 두 발짝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무도회는 끝나긴 했지만...
그래도, 나랑 한 곡 같이 춰 주겠니?
......
이것이 바로 M1911이 지휘관을 이곳으로 안내한 이유일 것이다.
만약 낮에 그 소리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면. 그 소리가 자신이 연습하는 모습을 본 M1911이 낸 소리였다면.
오지랖 넓은 그녀의 성격상, 이렇게 하지 않고는 못 배겼을 것이다.
그리고 지휘관... 항상 누구에게나 다정한 지휘관은, 당연히 휘하 인형의 호의를 무시할 리가 없었다.
...영광입니다.
Zas M76은 지휘관이 내민 손을 잡았다.
...M1911한테 지기 싫어서, 여기서 춤 연습을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M1911은 처음부터 저를 전혀 경쟁 상대로 보지 않았고, 그냥 저 혼자 억지 부리던 거였어요.
결국 그 때문에 무도회도 놓치고, 지금 이렇게 그녀의 도움까지 받다니...
저, 정말 한심하네요...
M76.
자책하는 Zas M76의 말에, 지휘관은 고개를 저었다.
네가 자존심이 강한 건 알지만, 동료의 호의를 받는다고 네 품격에 흠집이 생기거나 하진 않아.
네, 무슨 뜻인지 알아요.
Zas M76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더더욱 M1911 선배의 호의에 부응해야겠죠?
기획서 승부는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지만, 다음번엔 기필코 이기고 말겠어요.
무도회도 놓쳤지만... 다음번엔, 그녀보다 먼저 지휘관을 초대하겠어요.
그래, 기대할게.
그리고 그때, 다시 드레스를 입고서 지금보다 훨씬 멋진 춤을 선보일 거예요.
오, 그건 정말로 기대해야겠는걸?
...감사합니다.
말을 마친 Zas M76은 지휘관 앞에서 달빛을 받으며 다시 솔로 댄스를 선보였다.
지휘관도, 춤추는 그녀를 말없이 지켜보았다.
......
다음날.
그리폰 기지의 카페.
그마아아아안!!!
M1911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너하고 화해하려고 선물까지 가져왔는데! 너 대체 태도가 그게 뭐야!!
선배의 호의는 감사히 받을게요.
하지만 도저히 이해가 안 가네요. 지금 여기엔 저희 둘밖에 없는데, 왜 꼭 케이크를 여덟 조각으로 잘라야 하는 거죠?
이건 예술이라고! 예! 술! 8등분이 아닌 케이크는 케이크라 할 수 없어!
애초에 내가 가져온 케이크인데 어떻게 자르든 내 맘이지!
하지만 저한테 주는 선물이잖아요? 그럼 저한테도 결정권이 있어요.
으아아아아아!!!
......
M1911이 분을 못 이겨 머리를 쥐어뜯자, Zas M76은 더는 참지 못하고 피식 웃었다.
뭘 잘했다고 웃어!
아뇨, 선배는 진짜 선배 노릇 못 한단 생각이 들어서요.
뭐어야아?! 결투다! 나랑 결투해, 당장 결투해! 사격장으로 따라와!
싫어요, 케이크 먹을 거예요.
그 케이크는 누가 가져온 건데!!!
...이렇게, 그리폰은 오늘도 평화로운 새 하루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