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달 등롱
DP12
회장 문 엽니다, 주의하세요!
어머? 아직 배치가 다 안 끝났는데 벌써 손님이...
어쩐담, 이 옷장을 어디다 놓지?
죄송해요 DP-12 씨, 혹시 아직 배치 못한 물건이 있나요?
금방 도와드리러 갈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여긴 내가 처리할 수 있으니 괜찮아, JS 9.
우선 너부터 진정하렴.
아... 목소리만 들어도 티가 나나요?
내가 듣기에는.
역시, 전 이런 일이 안 맞는 걸지도...
맞는지 안 맞는지는 해보지 않으면 모른단다.
그러니 지금은 최선을 다하렴. 나도 같이 힘낼 테니까.
네... 헤헤, 그 말을 들으니 왠지 조금 안심이 되네요.
그럼 나중에 봐요!
그래, 이따 봐.
통신 종료.
자아, 그럼 이 옷장을 대체 어떻게 할까...
오, 여긴 꽤 그럴싸하게 꾸며놨... 잠깐, 침대가 거울이랑 마주보고 있잖아? 이봐 아가씨, 이거 풍수에 안 좋아!
죄송합니다, 아직 배치가 덜 된 상태예요. 저 거울은 측면에 부착하려는 건데, 흥미 있으신가요?
뭐? 아직 안―― 억, 으어어...
왜 그러세요?
혹시 체하신 건 아닌가요? 여기 물 좀 드세요.
어윽... 꿀꺽꿀꺽꿀꺽쿨럭쿨럭!
어우, 덕분에 살았네! 아, 아니 딱히 흥미 있는 건 아닌데...
방금 풍수지리를 말씀하셨는데, 혹시 새집의 인테리어로 고민 중이신지요?
어... 그런 것까지 알 수 있어?
가구 전시회에 오신 손님이니, 가구를 보러 오셨겠죠.
어... 그렇지! 좋은 가구 있나 보러 온 거지... 아무튼, 여기 가구 배치가 풍수에 아주 안 좋다니까!
댁은... 어...
제가... 어떤데요?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아, 아니, 어디다 시선을 둘지 모르겠어서...
시선 둘 곳을 모르겠다니, 무슨 뜻이신가요?
이해하기 쉽게 말씀해 주시지 않으면 곤란해요.
어머, 저기 점원 되게 예쁘다...
그러게. 가구보다 저쪽이 더 눈에 띄네.
......
그러니까, 그게, 어... 그게 말이지...
제 얼굴 때문인가요?
......
뭐, 반반하게 생겼네.
후훗, 감사합니다.
어쨌든, 아직 준비 중이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배치가 다 끝난 다음에 다시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으아아아 그렇게 고개를 숙이면...! 아아아알았으니까 빨리 고치세요!
DP-12 씨! 늦어서 죄송... 어라? 저 사람 어딜 저렇게 급하게 달려가는 거죠?
...코피까지 흘리네?
글쎄? 그런데 코피라니, 몸이 편찮은 와중에도 방문해 주신 고마운 분이었구나.
인간의 고집은 잘 모르겠지만요. 아직 배치가 안 끝난 것들은 이건가요?
응, 특히 이 옷장이 문제야. 대체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어.
아, 이거라면 벽에다 붙이고, 침대와 한 이 정도 거리를 두면... 침대와 가까우면서도 옷장을 여는데 방해되지 않으니, 일어나서 입을 옷을 고르기 편하겠죠?
하지만 이러면 거울의 위치를 바꿔야 하는데...
옷장 문 안쪽에 걸어 두면 어떨까?
오! 그게 좋겠네요. DP-12 씨는 인테리어 지식도 풍부하신가 봐요.
미관과 합리성을 추구했을 뿐이야.
수고했어, 역시 JS 9이구나. 정말 큰 도움이 됐어.
아이 참, 부끄럽게 그렇게까지 말할 것까진... 그럼 먼저 가볼게요.
응, 너무 무리하진 말고.
JS 9을 돌려보내기가 무섭게, 어째선지 손님들이 다시 몰려들었다.
DP-12가 소개하는 가구들은 불티나게 팔렸고, 손님들도 가격을 따지지 않는 눈치였다.
덕분에, 고급 가구로 가득하던 DP-12의 부스는 금세 휑해졌다.
그런데도 이 옷장은 여전히 안 팔리네...
아가씨, 갑자기 흥미진진한 부분에서 뚝 끊으면 어떡해요? 얘기 계속해 줘요!
아, 네. 손님께서 구매하신 이 발보상은 최근에 제작된 제품이지만, 그 유래는 아주 깊답니다.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공예품이기에 어느 것이든 가격이 상당하죠. 이걸 구입하신 손님도 분명 부유하시겠네요.
후후후, 그야 물론이죠.
침대로 취급하지만 사실상 단칸방에 더 가까운 것이기에, 사람들은 이걸 주로 야외에 두었답니다. 물론, 외형만 아니라 다른 이유도――
으아앙!!
응...? 이게 무슨 소리지?
엄마아... 엄마...
엄마 어딨어... 히끅... 엄마...
잘못 들은 게 아니야... 어린애가 울고 있어.
외형 말고... 뭐요, 다른 이유가 뭔데요?
아, 죄송합니다. 어린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리는데, 잠시 실례해도 될까요?
애가 운다고요? ...어머, 정말이네.
DP-12는 인파 속으로 들어가, 귀를 기울이며 그 희미한 울음소리가 나는 방향을 쫓았다.
엄마...
엄마아... 흐윽... 훌쩍!
정말 어린 아이구나.
안녕 꼬마야, 엄마를 잃어버렸니?
......
괜찮아, 누나는 나쁜 사람 아니에요.
히끅...
어머, 딸꾹질할 정도로 울었니? 엄마 기다리느라 오래 있었나 보네.
어... 엄마가 모르는 사람이랑 말하지 말랬는데...
그래, 네 엄마 말이 맞아.
하지만 누나는 정말 나쁜 사람이 아니야. 저기 가게 보이니? 누나는 저 가게를 보고 있어. 학교에서 밖에서 길을 잃으면 주변의 가게로 가서 도와 달라 하라고 배웠지?
......응.
그럼, 누나가 뭘 도와줄까?
엄마... 엄마가 안 보여...
그거 큰일이네. 엄마가 언제부터 안 보였니?
몰라... 시계가 없어서...
누나, 나 무서워...
괜찮아, 괜찮아. 누나네 가게는 밝고 넓어서 어디서든 눈에 띈단다. 저기서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릴까?
응...
어머나, 아가씨 아이에요?
후후후, 설마요. 엄마와 떨어져서 저쪽에서 울고 있있어요. 인파 속에서보다, 여기서 기다리게 하는 게 더 안전할 것 같아서요.
......
어머, 리본 당기면 안 돼요. 왜, 아직도 무섭니?
호호호, 그 정도면 되게 씩씩한 아이예요. 내가 요만했을 때 부모님을 잃어버렸다면 엄마가 와서 안아 줄 때까지 누가 아무리 달래도 계속 엉엉 울었을걸요?
아하... 그럼 정말 씩씩한 아이네요.
누나가 안아 줄까?
아니...
근데... 엄마가 나 없어진 줄도 모르고 집에 가면 어떡해...?
걱정 마렴, 엄마도 분명 지금 널 찾고 있을 거란다. 이 회장이 워낙에 넓어서 시간이 좀 오래 걸릴 뿐이야.
응...
그러니 안심하고 여기서 기다리렴.
엄마는 대단하니까, 네가 어디 있어도 분명 찾아낼 거야.
응...! 우리 엄마 엄청 대단해!
아이 달래는 솜씨가 훌륭하네요. 아가씨도 혹시 아이 있어요?
후훗, 글쎄요? 그리고 그런 칭찬을 받기엔 아직 멀었어요.
이 아이의 어머니께서 빨리 나타나셔야 할 텐데 걱정이네요. 아이는 가족 곁에 있어야 진심으로 안심하거든요.
아무튼 아이도 달랬겠다, 궁금해 죽겠으니까 이 발보상 얘기나 계속해 줘요.
발보상?
아, 이 침대의 이름이란다.
엄청 크다...
과학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엔, 이런 침대를 만드는 데 평균 3년이나 걸렸다고 해요. 도안을 하나하나 손으로 정성 들여 깎아야 했기에 제작 비용도 어마어마했죠.
그래서 중국 남부의 귀족들은, 딸을 시집보낼 때 이런 발보상을 혼수품으로 선물했답니다.
물론, 현대엔 혼수품으로서만이 아니라 더 많은 의미가 생겼죠. 존재 자체가 동화책 같다고나 할까요?
동화책?
그래, 동화책. 여기 뭐가 조각되어 있는지 보이니?
어... 검이랑, 호리병이랑... 꽃이랑...
피리도 있네요.
제대로 보셨네요.
이건 "암팔선"이라는 것으로, 행운을 부르는 의미로 여덟 신선들의 상징물들을 조각한 것이랍니다.
그리고 여기, 이 꽃바구니가 상징하는 선인의 이름은 "한상자"라고 해요.
그게 누구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신선이랬죠?
네, 한상자는――
DP-12의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지나가다 발길을 멈추고 듣는 방청객이 점점 늘어났다.
――그제서야 한상자의 삼촌은, 조카가 쓴 시가 바로 이 풍경을 그린 것임을 깨달았답니다.
여기까지가 한상자의 이야기예요.
오오...
아이를 찾습니다. 밍밍 어린이, 밍밍 어린이의 어머니께서 아이를 찾고 있사오니, 밍밍 어린이를 보호 중이신 분은 즉시 1번 카운터로――
아, 엄마다!
누나 말이 맞지? 어서 엄마한테 가야겠네.
응! 그런데... 1번 카운터가 뭐야?
이쪽, 이 빨간 카펫을 쭉 따라가면 1번 카운터가 보일 거야. 누나는 가게를 비워선 안 되는데, 혼자 갈 수 있겠니?
응!
자, 그럼 어서 가렴. 엄마 기다리시게 하면 안 돼요.
아이는 걸상에서 내려와 달려가다, 갑자기 다시 돌아와 DP-12를 꼭 껴안았다.
고마워 누나!
어머어머... 천만에.
침대 운반할 사람도 왔다니 나도 가야겠네. 고마워요, 이야기 정말 재밌었어요.
상품 구입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후우... 이제 좀 쉴 수 있으려나?
어... 저기, 방금 거 같은 이야기 더 해 줄 수 있나요?
민속 이야기에 흥미 있으신가요?
그 "하선고"란 선녀 이야기가 궁금해서요. 그리고 아가씨가 이야기를 참 잘하길래!
감사합니다, 원하신다면――
저 누나 또 이야기한대!
어머나... 방청객이 생각보다 훨씬 많아졌네요.
그때, 마지막 남은 그 옷장이 DP-12의 눈에 띄었다.
흐음... 그럼 여러분, 저와 내기는 어떠세요?
담력에 자신 있으신 분은, 입장권을 가지고 이 옷장 안에서 제가 들려드리는 무서운 이야기를 듣는 거예요.
만약 도중에 밖으로 나오지 않고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분에겐, 회장 전체에 적용되는 25% 할인 쿠폰을 드리겠습니다. 한 장밖에 없으니, 선착순 1명이랍니다.
25%?! 다른 부스에서도 쓸 수 있는 거 맞죠?
네. 자아, 도전하실 용감한 분 계신가요?
......
후우... 아직 완전히 끝나진 않았구나.
좋아, 다들 뭐하고 있는지 볼까.
와아아아아악 기권!! 기궈어어어언!!!
무슨 일이지?
저도 기권요... 내, 내보내 주세요...
기습 테러...일 리는 없고, 무슨 소란이지? 저긴 DP-12의 담당 부스인데...
가서 봐야겠다.
으아... 후으... 안 되겠다, 기권. 심호흡... 심호흡 좀 해야겠어...
아까워라, 조금만 더 버티시면 됐는데 말예요.
아직까지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는데, 도전자분 더 없나요?
DP-12? 지금 무슨 이벤트 중이니?
댁도 도전하려고? 그만둬, 나도 잠깐 들었을 뿐인데 무서워서 다리가 다 후들거리더라니까...
무섭다니 대체 무슨... DP-12?
담력 내기랍니다.
DP-12가 뒤에 활짝 열린 옷장을 가리켰다.
별로 깊지도 않은 옷장이건만, 마치 끝없는 심연으로 이어지는 입을 벌린 것처럼 으스스한 분위기였다.
지휘관님도 도전해보시겠어요?
안 그래도 당신께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 잔뜩 있는데요.
어... 아니, 사양할게, 지, 지금 마무리 작업해야 하거든! 너도 너무 지나치게 장난치면 안 된다!
그래요? 정말 아쉽네요.
그래도 앞으로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테니... 이번에는 얌전히 포기할게요.
자아, 그럼 이 옷장을 어떻게 팔아 치울지 다시 고민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