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사춘기
......
약간 늦은 시간, 그리폰 시티.
음... 이쯤인 것 같은데...
VA-11... 응, 여기구나.
화이트 나이트 한 명이 가게의 문을 열었다.
Present Day, Present Time.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시길.
좋은 남반구, 화이트 나이트 손님.
어... 안녕하세요.
킁킁... 여기 냄새, 제리코 대장이 말씀한 것보다 훨씬 기묘하네요...
아, 말이 이상했나요? 죄송해요.
아뇨,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말해주셨어요.
손님이 제리코가 자주 말하는 파트너군요. 제리코는 여기 단골이니까 편하게 앉으세요.
네, 오늘 여기서 만나기로 했거든요. 당신이 이곳의 오너인가요?
네, "질"이라 불러 주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화이트 나이트 씨. 손님도 765 블리츠크리그 군단 소속인가요?
네. 제리코 대장의 부사수, "세이 P. 아사기리"라고 합니다.
어... 일단 뭐라도 주문하는 게 좋겠죠?
메뉴 여깄습니다. 여긴 처음이실 테니, 주문 도와드리죠. 화끈한 술을 원하시나요? 인형이 즐겨 마시는 술은 어떠신지?
전 이런 곳은 잘 안 와서요. 그리고 곧 임무도 있고 하니...
음... 슈가 러쉬 한 잔 부탁할게요.
참, 오늘 밤은 임무가 있으니까, 카모트린은 빼 주실 수 있나요?
문제없습니다. 제리코가 미리 알려줬거든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역시 제리코 대장이시군요... 그런데, 점장이시면서 바텐더 일도 하세요?
"길리안"이라는 직원이 한 명이 있는데, 오늘은 모래비 대책 항의 시위에 나갔어요. 알고 계시죠? 사람들이 엄청 몰려들었다던데 말이죠.
네, 저도 지나쳐 오는 길이에요. 시위 규모가 정말 크더라고요.
그런데, 손님과 이런 주제로 대화해도 괜찮은 건가요? 화이트 나이트는 시위대와 대치하는 입장일 텐데요.
화이트 나이트가 무슨 암흑 제국의 앞잡이 같은 것도 아닌걸요. 우린 그저 월급의 노예일 뿐이에요.
하하, 이해해요. 더구나, 그 시위대의 참가자들은 모두 화기를 지니고 있으니까요.
그러게 말이에요. 특히나 그중 일부는 어떻게 장전하는지도 모른다던가, 손질을 제대로 한 적도 없어서 오발탄이 터진다던가 할 수도 있어서 더더욱 위험하죠.
그나마 발키리 부대가 구급 상황이나 소방 임무를 위해 대기 중이라서 다행이에요.
그럼 이번엔 총리가 나타날 것이라고 보시나요?
글쎄요, 총리는 오락 활동만 책임지니까요. 재난 대응책보다, 칼군무 매뉴얼을 더 잘 짤걸요?
정말 총리가 이 도시의 관리자가 맞는 건지 의심되네요...
당신도 그 루머를 들으셨군요?
도로시 헤이즈 총리는 그저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고, 이 도시를 지배하는 자는 따로 있다는 소문을...
하지만, 그 진짜 지배자가 정말 있다면 왜 달마다 모래비를 내려서 이 도시를 파괴하려 하는 걸까요?
저번 달에 채식주의 햄버거집 앞을 지나다 어느 노숙자가 하는 말을 들었는데, 인류 문명 시대에는 세상을 창조한 신이 인간을 시험했다고 해요.
하지만 신자들은 자신이 믿는 신을 시험하지 못하죠. 그건 불공평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세상을 창조한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일까요?
우린 인형을 창조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원주민"이죠. 사회적 약자예요.
아무튼 전 이 일에 대해서 뭐라고 할 수가 없어요, 제 업무와 주변 사람들만 신경 쓰는 것으로도 충분하니까요.
좋은 마음가짐이네요. 저도 조금 궁금했을 뿐이에요. 누구나 음모론이라면 솔깃해하잖아요?
그리고, 헬멧 벗으셔도 돼요. 그걸 쓰고서 원주민 거주구역을 돌아다니면 안 좋은 눈길만 받을 뿐이에요.
아, 죄송해요. 저도 이걸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쓰고 다니면 어떤 느낌인지 느껴보고 싶었거든요.
그 심정도 이해해요. 저도 좋아하는 포스터를 일주일 내내 걸어두기도 하니까요.
자, 주문하신 슈가 러쉬입니다.
세이는 헬멧을 벗어 옆에 내려놓았다.
감사합니다... 와, 이거 정말 맛있네요.
영광이네요. 오늘 밤의 첫 손님이 화이트 나이트인 것도 포함해서요.
음? 손님...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요?
어? 그런가요?
...아, 스텔라 호시이의 보디가드 맞죠? 스텔라 씨가 거리에서 연설하던 때 곁에 있는 걸 본 적 있어요.
어... 거의 2년 전의 일이네요. 스텔라를 아세요?
물론이죠. 그리폰 시티에서 가장 부자인 원주민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I.O.P 재단을 이끌고 그리폰 시티를 위해 정말 많은 일을 했잖아요. 매년 크리스마스와 메가 크리스마스마다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기도 했고요.
그리고 스텔라 씨도 여기에 와서 마신 적이 있어요. 오래전의 일이긴 하지만...
겉보기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에요.
스텔라가 들으면 정말 기뻐하겠는걸요? 하지만 보시다시피, 지금 저는 화이트 나이트에서 일하고 있어요. 스텔라와는 더 이상...
실례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주시겠어요?
처음 와보는 술집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제리코 대장께서 당신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하셨어요. 저도 당신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렇게 느껴지네요.
이게 제 일이니까요. 좋아하기도 하고. ...개나 진상 손님만 없다면요.
세이는 몇 모금 더 들이켰고, 술잔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저와 스텔라는 소꿉친구예요. 어느 놀이터에서 처음 만났어요.
아, 연설에서 들었어요. 그 놀이터에서 손님과 함께 놀던 중 철혈에게 습격을 받았고, 화이트 나이트의 출동이 늦어지는 바람에 한쪽 눈이...
저도 그러기를 독려하긴 했지만, 그때의 일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건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거예요. 철혈과 맞서 싸우는 건, 화이트 나이트만의 일이 아니에요.
저도 스텔라도,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로 결심했죠...
좋은 결심이네요.
네. 하지만 지금 세상의 종말이 코앞까지 다가왔어요.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일들도 잔뜩이고요.
하지만 어려움과 마주하면, 스텔라는 항상... 억지로 이겨내려고 해요.
3년 전, 모래비가 처음 내렸을 때부터... 갈수록 극단적으로 변했어요. 점점 더 함께 일하기가 힘들어졌고...
어째서죠? 무슨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아마 철혈을 뒤쫓고 있었을 거예요. 그 습격으로 오른쪽 눈을 잃었으니, 평생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겠죠...
증오...라기 보단, 일종의 두려움에 가까운 감정이겠지만요...
그러고 보니, 최근 3년 동안 철혈의 습격이 많이 줄었는데, 스텔라 씨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몰라요. 아무도 몰라요. 누구에게도 말해주지 않으니까요.
자주 어디론가 홀로 사라지곤 했어요. 저까지... 보디가드까지 두고서요.
그래서 그 일로 말다툼을 했고, 보디가드 일을 그만둔 뒤 그녀를 떠났어요...
그리고 화이트 나이트에 들어간 건가요?
네. 화이트 나이트는 철혈을 섬멸하고 도시를 수호하는 사명을 갖고 있으니까요.
저는 이 도시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고, 시민들의 생각도 알고 싶어요. 비록 다투긴 했지만, 저만의 방식으로 스텔라를 돕고 싶었죠.
하지만 스텔라는 그 후로 계속 저를 피했어요. 아니, 모든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요? 스텔라가 아직도 좋은 사람이라고 저는 굳게 믿고 있지만, 조금... 거리가 멀어졌어요...
확실히, 지난 3년간 소식이 뜸해지긴 했네요. 요 몇 달 동안은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조차 않았고.
지금 어떤가요? 아직도 연락하나요?
아뇨, 어젯밤까지는 연락이 없었어요.
딱 어젯밤, 갑작스럽게 저한테 메시지를 보냈더라고요.
...메시지요?
무슨 뜻인지는 이해가 잘 가질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 제가 하는 일을 알고서 보낸 거라고 봐요.
적어도... 아직 저를 잊지 않았다고 봐도 되겠죠?
하지만 무슨 소용이겠어요? 지금이라면 분명 새로운 보디가드가 생겼겠죠. 저도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떨어져는 있어도, 여전히 친구잖아요?
제 생각엔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 보는 것이 좋다고 봐요.
...그렇네요. 이번 작전이 끝난 뒤에 한번 고민해봐야겠어요.
남반구마저 모래에 파묻힐 때까진 아직 시간이 넉넉히 남았으니까요.
이야기해 줘서 고마워요. 제가 한 잔 쏠 테니, 더 마시고 싶은 거 있나요?
정말요? 저 오늘 여기 처음 온 건데...
사양 말고 주문하세요. 손님께서 하는 일이든 스텔라 씨가 하는 일이든, 다 제 삶에 직결된 일인데요.
그리고, 오늘 이렇게 손님과 만난 건 제 행운이니――
우정을 위해 건배하는 데 나를 빼면 안 되지.
앗, 좋은 남반구입니다, 제리코 대장!
많이 늦었네요, 제리코 씨.
말썽이 좀 있었다. 그 바게트로 인형 때려잡는 자경단 녀석이랑 걔가 주운 애완동물 때문에 말이야...
하지만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어. 놈의 메모리를 스캔해서 좌표도 확정했고, 작전 방안도 세웠다.
질, 세이에게 알코올을 먹이진 않았겠지?
부탁한 대로, 한 방울도 안 넣었어요.
그럼 어서 적당히 하나 만들어 줘. 다 마시는 대로 바로 출발해야 하니까.
아뇨, 당장 가요. 모두가 기다리는데, 여기서 이렇게 느긋하게 있을 순 없어요.
나중에 또 올게요, 질 씨. 그땐 축배로 화끈한 술 부탁할게요.
엄청 중요한 임무인가 봐요?
너한테 누설했다간 귀여운 총리께서 직접 내 각인을 뜯어낼 정도로 중요한 작전이다. 일 끝나면 나도 함께 한잔하지.
제리코와 세이는 질에게 인사하고 술집에서 나왔다.
드디어 엘리사의 위치를 찾아낸 건가요?
그래, 드디어...
엘리사가 숨은 곳은 역시 아키텍트가 알고 있었어!
그렇게 흥분하시다니 별일이네요, 대장.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데!
엘더 브레인을 붙잡으면, 철혈의 악행을 완전히 끝낼 수 있어.
모래비는 어찌 못하지만, 그리폰 시티의 시민들이 조금이라도 안심하고 외출할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저도 알아요, 제리코 대장.
이번 작전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다. 아키텍트까지 잡은 이상, 이제 철혈은 어중이떠중이밖에 없으니까.
긴장하지 않았어요. 그저...
질 씨와 잔뜩 이야기하고 보니, 대장에게 직접 감사하다고 말한 적이 없다는 게 떠올라서요... 1년 반 동안 많은 걸 배웠는데.
세이, 넌 그냥 사교성이 모자란 편이 나하고 맞아.
내게 있어 화이트 나이트는 그저 직업이다. 널 친구로 본 적도 없어.
널 높게 평가하긴 하지만... 난 "우정"이란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 내 마인드맵은 그런 컨셉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서...
괜찮아요, 대장.
원주민인 저를 평범하게 동료로 봐 주시잖아요. 무시하거나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는 이 정도가 적당해요.
제리코는 세이를 바라봤다.
난 내가 좋은 대장이라 생각한 적 없다. 그러니... 오히려 내가 너에게 고맙다고 해야겠지.
아무튼, 현장에 도착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
......
저... 여긴 원주민 거주구 아닌가요? 여기서 엘더 브레인을 수색한다고요?
아키텍트에게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철혈의 아지트는 원주민 거주구에 위치한 항상 비어 있는 창고라고 한다.
대체 누가 놈들을 그런 곳에 숨겨놓은 건지 원. 죄질이 무거워.
철혈이... 이 창고에 숨어 있었다고요?
저랑 스텔라도 이 거리에서 자랐는데...
뭔데?
아, 아뇨. 혼잣말이에요.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중하도록. 그리폰 시티를 수호하는 마지막 싸움이다.
전 유닛, 작전 개시. 엘더 브레인 엘리사가 숨은 곳을 찾아라!
블리츠크리그 군단은 목표 지점인 한 창고에 도착했다.
대장, 여길 보세요.
정보대로 비밀문이 있어요.
암호... 인증 통과. 열렸다. 아키텍트의 정보가 확실하군.
이 통로는... 지하로 통하는 건가? 내부는 신호가 차단되는군. 직접 들어가 살펴볼 수밖에 없다.
너무 쉬운데요. 현재 철혈의 전력이 엉망이긴 하지만, 혹시 함정이 아닐까요?
가능성은 충분하지. 그래서 사전에 마인드맵을 백업해 뒀다.
내가 들어가서 정찰하지. 날 엄호할 사람 한 명 나와라.
제가 하겠습니다.
인간의 뇌를 백업하는 기술은 아직 없어. 다른 지원자 없나?
네, 인간의 목숨은 하나뿐이죠. 질리도록 들은 말이에요.
하지만 원주민이 항상 무시당하는 이유가 그거잖아요?
세이, 내 뜻은 그게 아니야.
인형이 백업을 가지고 모험을 한다면, 인간은 용기를 가지고 똑같은 일을 할 수 있어요.
전 그걸 증명하기 위해 화이트 나이트에 입대했습니다.
......
하아... 내가 네 안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겠지?
내겐 인간이든 인형이든, 그저 부려먹을 수 있는 부하다. 하등 차이 없어.
감사합니다, 대장.
좋아. 세이 부대장, 내 후방 경계를 맡기겠다. 나머지는 바깥에서 대기하도록.
철혈이 저 아래에 숨긴 게 엘더 브레인인지, 아니면 다른 헛수작인지 보자고.
10분 후, 제리코와 세이는 지하 통로를 지나 탁 트인 공간에 도착했다.
인근에서 철혈 유닛을 비롯한 다른 신호는 포착되지 않습니다.
여긴... 공장인가요?
버려진 것 같군. 몇 년 동안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 여기가 정말 철혈의 본거지군요.
엘더 브레인은 어디 있을까요? 당장 수색하죠.
네가 용기 있다는 건 알겠지만, 목숨은 소중히 해.
제가 똑똑하진 않지만 멍청이는 아니에요, 대장.
음? 이 캡슐 안에 뭔가가...
대, 대장! 빨리 이쪽으로 와 보세요!
제리코와 세이는 캡슐의 뚜껑을 열었다.
............
이것이...
이게 바로 철혈의 최고 지휘 개체, 엘더 브레인 "엘리사"다.
드디어 찾아냈다.
......
그런데... 왜 안 움직이죠?
어디...
...방전되었군.
네...? 방전됐다고요?
이 공장과 마찬가지로, 최소한 2~3년간은 미동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그럴 리가요?! 지난 3년간 철혈들은 아주 멀쩡하게 활동했는데!
제리코는 세이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계속 엘더 브레인을 살펴보았다.
이 녀석... 지휘 모듈도 없어진지 오래야.
......
그렇다는 건...
3년 동안 철혈을 조종한 진짜 범인은 엘더 브레인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란 말인가요?
그런 것 같군...
제기랄, 당했다. 아키텍트의 진짜 주인이 녀석에게 가짜 기억을 심어 우릴 속인 거야.
이런 무의미한 수작을... 지금 당장 돌아간다. 아키텍트 놈의 머릴 짬통에 담금질해서라도 진짜 주인... 철혈의 지휘 모듈을 가져간 범인을 찾아내겠어!
............
...세이, 왜 그러지?
기분 풀어라. 마무리가 과정이 됐을 뿐이야, 다 조사의 일환이야. 계속 추적하면 될 일이다.
버려진 창고들이 철혈의 아지트였단 것을 알았으니, 이 건물의 소유주가 누구인지 조사하면 금방――
제리코 대장...
사실... 어젯밤에 스텔라가 제게 메시지를 하나 보냈어요.
...그런데?
메시지로...
"우리가 어렸을 적 숨바꼭질했던 곳, 아직도 기억해?"
"그곳의 비밀을 잘 지켜줘."라고 했어요.
그게 무슨 뜻이지?
대장, 이 거리는 저와 스텔라가 아직 어렸을 때 숨바꼭질하며 놀던 장소예요.
제가 술래일 때, 그녀를 찾아낸 건 손에 꼽을 정도예요. 항상 이 창고의 아무도 모르는 구석에 숨어서...
그리고 어느 날, 제게 말해 주었어요. 여기의 창고들은 다 그녀의 가문 소유라고...
뭐라고?
잠깐, 그럼 엘리사의 지휘 모듈을 가져간 건 그녀란 말이야?!
스텔라 호시이... 그녀가 바로 아키텍트와 철혈의 진짜 주인이었어!
제리코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는 그 순간, 그녀의 뒤에서 총알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세이.
스텔라가 지시한 거냐?
아뇨. 스텔라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어요...
스텔라는... 직접 제게 이런 부탁을 해도...
오히려 제가 말릴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이게 스텔라의 계획이라는 거군.
아키텍트를 시켜 일부러 우리에게 잡힌 다음, 우릴 속여서 이곳에 오게 해 너의 손으로 날 제거한다...
전 그저... 왠지 심상치가 않아서, 대장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따라온 거였는데, 설마...
설마 자신이 그 "만일의 경우"일 줄은 몰랐겠지.
죄송해요, 제리코 대장...
지금 제겐 달리 선택지가 없어요...
스텔라가 화이트 나이트에게 체포당하도록 놔둘 수 없어요. 반드시... 지켜야 해요...
그럼 어떻게 될지도 잘 알고 있겠군.
여긴 신호가 완전히 차단되어서, 난 지금 실시간 마인드맵 백업이 불가능하다.
네가 그 방아쇠를 당기면, 난 저 위에서 깨어나 창고의 비밀 통로로 발을 내디뎠다는 사실만을 기억하겠지.
네, 알아요...
그리고 전 대장이 믿을 만한 거짓말을 꾸밀 거고요...
그리고 난 그 말을 철석같이 믿겠지. 넌 내가 가장 신뢰하는 부하니까. 이 빌어먹을 마인드맵은 그렇게 프로그램되었으니까.
그리고 나를 죽인 범인과 함께 친구로서 그 술집에 돌아가, 껍데기뿐인 승리를 축하하겠지!
이게 공평하다고 생각해? 철혈조차도 날 죽이지 못했다. 단 한 번도!
그런데 지금 너는 날 죽이고, 철혈을 부리고 우산 바이러스를 가진 인간을 도우려 해? 그 여자가 그리폰 시티를 어떤 위기에 밀어 넣으려는지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전... 모르겠어요... 저도 이러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저는 스텔라를 반드시 지켜야만 해요. 그녀에게도 이유가 있을 거예요.
대장, 전 대장과는 달라요. 목숨이 하나뿐이고, 기회도 단 한 번뿐인 인간이에요...
그녀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밖에 없어요. 어떤 일이라도 하겠어요!
진심인가? 넌 그 방아쇠를 당기지 못해. 너무 흥분한 탓에 주체를 못 하고 있어. 세이, 전혀 너답지 않아...
이게 제 진심입니다, 제리코 대장!
정치적 입장이고 사회 여론이고 인권 책임이고 인형이고 인간이고 나발이고 전부 관심 없어요!
제가 이러는 이유는... 그저 스텔라가 저를 믿으니까, 제가 이렇게 하리라 믿으니까...
전 그저... 친구를 위해 뭐라도 하고 싶어서...
제리코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친구"라... 정말 이해가 가질 않는다니까...
만약 내가 인간이고 스텔라가 인형이었다면, 넌 어떻게 했을 것 같아?
...모르겠어요.
대장과 스텔라가 달랐다면, 저도 지금의 제가 아니었겠죠.
그건 그렇군...
"우정"이라니... 정말 인간이나 믿을 물건이야.
그럼, 마지막 질문이다.
각인을 받은 인형의 대응 사격 능력이...
...모든 면에서 인간을 압도한다는 건 알고 있겠지?
...!
탕!
대... 대장?
특히나... 침착함이 말이야...
역시 넌... 지금 너무 흥분했어...
제리코는 바닥에 쓰러졌다.
대장... 대장!
정말로 쏠 생각은 없었어요! 저... 전...!
괜찮아...
괜찮아, 세이...
어째서... 대장...
미안해요... 제가...
이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괜찮아... 나도 가끔은...
너희처럼...
친구를 위해... 뭐라도 해주고 싶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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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 늦은 시간, 그리폰 시티.
음... 이쯤인 것 같은데...
VA-11... 응, 여기구나.
화이트 나이트 한 명이 가게의 문을 열었다.
Present Day, Present Time.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시길.
좋은 남반구, 화이트 나이트 손님.
어... 안녕하세요.
킁킁... 여기 냄새, 제리코 대장이 말씀한 것보다 훨씬 기묘하네요...
아, 말이 이상했나요? 죄송해요.
아뇨,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말해주셨어요.
손님이 제리코가 자주 말하는 파트너군요. 제리코는 여기 단골이니까 편하게 앉으세요.
네, 오늘 여기서 만나기로 했거든요. 당신이 이곳의 오너인가요?
네, "질"이라 불러 주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화이트 나이트 씨. 손님도 765 블리츠크리그 군단 소속인가요?
네. 제리코 대장의 부사수, "세이 P. 아사기리"라고 합니다.
어... 일단 뭐라도 주문하는 게 좋겠죠?
메뉴 여깄습니다. 여긴 처음이실 테니, 주문 도와드리죠. 화끈한 술을 원하시나요? 인형이 즐겨 마시는 술은 어떠신지?
전 이런 곳은 잘 안 와서요. 그리고 곧 임무도 있고 하니...
음... 슈가 러쉬 한 잔 부탁할게요.
참, 오늘 밤은 임무가 있으니까, 카모트린은 빼 주실 수 있나요?
문제없습니다. 제리코가 미리 알려줬거든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역시 제리코 대장이시군요... 그런데, 점장이시면서 바텐더 일도 하세요?
"길리안"이라는 직원이 한 명이 있는데, 오늘은 모래비 대책 항의 시위에 나갔어요. 알고 계시죠? 사람들이 엄청 몰려들었다던데 말이죠.
네, 저도 지나쳐 오는 길이에요. 시위 규모가 정말 크더라고요.
그런데, 손님과 이런 주제로 대화해도 괜찮은 건가요? 화이트 나이트는 시위대와 대치하는 입장일 텐데요.
화이트 나이트가 무슨 암흑 제국의 앞잡이 같은 것도 아닌걸요. 우린 그저 월급의 노예일 뿐이에요.
하하, 이해해요. 더구나, 그 시위대의 참가자들은 모두 화기를 지니고 있으니까요.
그러게 말이에요. 특히나 그중 일부는 어떻게 장전하는지도 모른다던가, 손질을 제대로 한 적도 없어서 오발탄이 터진다던가 할 수도 있어서 더더욱 위험하죠.
그나마 발키리 부대가 구급 상황이나 소방 임무를 위해 대기 중이라서 다행이에요.
그럼 이번엔 총리가 나타날 것이라고 보시나요?
글쎄요, 총리는 오락 활동만 책임지니까요. 재난 대응책보다, 칼군무 매뉴얼을 더 잘 짤걸요?
정말 총리가 이 도시의 관리자가 맞는 건지 의심되네요...
당신도 그 루머를 들으셨군요?
도로시 헤이즈 총리는 그저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고, 이 도시를 지배하는 자는 따로 있다는 소문을...
하지만, 그 진짜 지배자가 정말 있다면 왜 달마다 모래비를 내려서 이 도시를 파괴하려 하는 걸까요?
저번 달에 채식주의 햄버거집 앞을 지나다 어느 노숙자가 하는 말을 들었는데, 인류 문명 시대에는 세상을 창조한 신이 인간을 시험했다고 해요.
하지만 신자들은 자신이 믿는 신을 시험하지 못하죠. 그건 불공평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세상을 창조한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일까요?
우린 인형을 창조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원주민"이죠. 사회적 약자예요.
아무튼 전 이 일에 대해서 뭐라고 할 수가 없어요, 제 업무와 주변 사람들만 신경 쓰는 것으로도 충분하니까요.
좋은 마음가짐이네요. 저도 조금 궁금했을 뿐이에요. 누구나 음모론이라면 솔깃해하잖아요?
그리고, 헬멧 벗으셔도 돼요. 그걸 쓰고서 원주민 거주구역을 돌아다니면 안 좋은 눈길만 받을 뿐이에요.
아, 죄송해요. 저도 이걸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쓰고 다니면 어떤 느낌인지 느껴보고 싶었거든요.
그 심정도 이해해요. 저도 좋아하는 포스터를 일주일 내내 걸어두기도 하니까요.
자, 주문하신 슈가 러쉬입니다.
세이는 헬멧을 벗어 옆에 내려놓았다.
감사합니다... 와, 이거 정말 맛있네요.
영광이네요. 오늘 밤의 첫 손님이 화이트 나이트인 것도 포함해서요.
음? 손님...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요?
어? 그런가요?
...아, 스텔라 호시이의 보디가드 맞죠? 스텔라 씨가 거리에서 연설하던 때 곁에 있는 걸 본 적 있어요.
어... 거의 2년 전의 일이네요. 스텔라를 아세요?
물론이죠. 그리폰 시티에서 가장 부자인 원주민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I.O.P 재단을 이끌고 그리폰 시티를 위해 정말 많은 일을 했잖아요. 매년 크리스마스와 메가 크리스마스마다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기도 했고요.
그리고 스텔라 씨도 여기에 와서 마신 적이 있어요. 오래전의 일이긴 하지만...
겉보기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에요.
스텔라가 들으면 정말 기뻐하겠는걸요? 하지만 보시다시피, 지금 저는 화이트 나이트에서 일하고 있어요. 스텔라와는 더 이상...
실례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주시겠어요?
처음 와보는 술집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제리코 대장께서 당신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하셨어요. 저도 당신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렇게 느껴지네요.
이게 제 일이니까요. 좋아하기도 하고. ...개나 진상 손님만 없다면요.
세이는 몇 모금 더 들이켰고, 술잔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저와 스텔라는 소꿉친구예요. 어느 놀이터에서 처음 만났어요.
아, 연설에서 들었어요. 그 놀이터에서 손님과 함께 놀던 중 철혈에게 습격을 받았고, 화이트 나이트의 출동이 늦어지는 바람에 한쪽 눈이...
저도 그러기를 독려하긴 했지만, 그때의 일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건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거예요. 철혈과 맞서 싸우는 건, 화이트 나이트만의 일이 아니에요.
저도 스텔라도,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로 결심했죠...
좋은 결심이네요.
네. 하지만 지금 세상의 종말이 코앞까지 다가왔어요.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일들도 잔뜩이고요.
하지만 어려움과 마주하면, 스텔라는 항상... 억지로 이겨내려고 해요.
3년 전, 모래비가 처음 내렸을 때부터... 갈수록 극단적으로 변했어요. 점점 더 함께 일하기가 힘들어졌고...
어째서죠? 무슨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아마 철혈을 뒤쫓고 있었을 거예요. 그 습격으로 오른쪽 눈을 잃었으니, 평생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겠죠...
증오...라기 보단, 일종의 두려움에 가까운 감정이겠지만요...
그러고 보니, 최근 3년 동안 철혈의 습격이 많이 줄었는데, 스텔라 씨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몰라요. 아무도 몰라요. 누구에게도 말해주지 않으니까요.
자주 어디론가 홀로 사라지곤 했어요. 저까지... 보디가드까지 두고서요.
그래서 그 일로 말다툼을 했고, 보디가드 일을 그만둔 뒤 그녀를 떠났어요...
그리고 화이트 나이트에 들어간 건가요?
네. 화이트 나이트는 철혈을 섬멸하고 도시를 수호하는 사명을 갖고 있으니까요.
저는 이 도시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고, 시민들의 생각도 알고 싶어요. 비록 다투긴 했지만, 저만의 방식으로 스텔라를 돕고 싶었죠.
하지만 스텔라는 그 후로 계속 저를 피했어요. 아니, 모든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요? 스텔라가 아직도 좋은 사람이라고 저는 굳게 믿고 있지만, 조금... 거리가 멀어졌어요...
확실히, 지난 3년간 소식이 뜸해지긴 했네요. 요 몇 달 동안은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조차 않았고.
지금 어떤가요? 아직도 연락하나요?
아뇨, 어젯밤까지는 연락이 없었어요.
딱 어젯밤, 갑작스럽게 저한테 메시지를 보냈더라고요.
...메시지요?
무슨 뜻인지는 이해가 잘 가질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 제가 하는 일을 알고서 보낸 거라고 봐요.
적어도... 아직 저를 잊지 않았다고 봐도 되겠죠?
하지만 무슨 소용이겠어요? 지금이라면 분명 새로운 보디가드가 생겼겠죠. 저도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떨어져는 있어도, 여전히 친구잖아요?
제 생각엔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 보는 것이 좋다고 봐요.
...그렇네요. 이번 작전이 끝난 뒤에 한번 고민해봐야겠어요.
남반구마저 모래에 파묻힐 때까진 아직 시간이 넉넉히 남았으니까요.
이야기해 줘서 고마워요. 제가 한 잔 쏠 테니, 더 마시고 싶은 거 있나요?
정말요? 저 오늘 여기 처음 온 건데...
사양 말고 주문하세요. 손님께서 하는 일이든 스텔라 씨가 하는 일이든, 다 제 삶에 직결된 일인데요.
그리고, 오늘 이렇게 손님과 만난 건 제 행운이니――
우정을 위해 건배하는 데 나를 빼면 안 되지.
앗, 좋은 남반구입니다, 제리코 대장!
많이 늦었네요, 제리코 씨.
말썽이 좀 있었다. 그 바게트로 인형 때려잡는 자경단 녀석이랑 걔가 주운 애완동물 때문에 말이야...
하지만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어. 놈의 메모리를 스캔해서 좌표도 확정했고, 작전 방안도 세웠다.
질, 세이에게 알코올을 먹이진 않았겠지?
부탁한 대로, 한 방울도 안 넣었어요.
그럼 어서 적당히 하나 만들어 줘. 다 마시는 대로 바로 출발해야 하니까.
아뇨, 당장 가요. 모두가 기다리는데, 여기서 이렇게 느긋하게 있을 순 없어요.
나중에 또 올게요, 질 씨. 그땐 축배로 화끈한 술 부탁할게요.
엄청 중요한 임무인가 봐요?
너한테 누설했다간 귀여운 총리께서 직접 내 각인을 뜯어낼 정도로 중요한 작전이다. 일 끝나면 나도 함께 한잔하지.
제리코와 세이는 질에게 인사하고 술집에서 나왔다.
드디어 엘리사의 위치를 찾아낸 건가요?
그래, 드디어...
엘리사가 숨은 곳은 역시 아키텍트가 알고 있었어!
그렇게 흥분하시다니 별일이네요, 대장.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데!
엘더 브레인을 붙잡으면, 철혈의 악행을 완전히 끝낼 수 있어.
모래비는 어찌 못하지만, 그리폰 시티의 시민들이 조금이라도 안심하고 외출할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저도 알아요, 제리코 대장.
이번 작전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다. 아키텍트까지 잡은 이상, 이제 철혈은 어중이떠중이밖에 없으니까.
긴장하지 않았어요. 그저...
질 씨와 잔뜩 이야기하고 보니, 대장에게 직접 감사하다고 말한 적이 없다는 게 떠올라서요... 1년 반 동안 많은 걸 배웠는데.
세이, 넌 그냥 사교성이 모자란 편이 나하고 맞아.
내게 있어 화이트 나이트는 그저 직업이다. 널 친구로 본 적도 없어.
널 높게 평가하긴 하지만... 난 "우정"이란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 내 마인드맵은 그런 컨셉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서...
괜찮아요, 대장.
원주민인 저를 평범하게 동료로 봐 주시잖아요. 무시하거나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는 이 정도가 적당해요.
제리코는 세이를 바라봤다.
난 내가 좋은 대장이라 생각한 적 없다. 그러니... 오히려 내가 너에게 고맙다고 해야겠지.
아무튼, 현장에 도착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
......
저... 여긴 원주민 거주구 아닌가요? 여기서 엘더 브레인을 수색한다고요?
아키텍트에게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철혈의 아지트는 원주민 거주구에 위치한 항상 비어 있는 창고라고 한다.
대체 누가 놈들을 그런 곳에 숨겨놓은 건지 원. 죄질이 무거워.
철혈이... 이 창고에 숨어 있었다고요?
저랑 스텔라도 이 거리에서 자랐는데...
뭔데?
아, 아뇨. 혼잣말이에요.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중하도록. 그리폰 시티를 수호하는 마지막 싸움이다.
전 유닛, 작전 개시. 엘더 브레인 엘리사가 숨은 곳을 찾아라!
블리츠크리그 군단은 목표 지점인 한 창고에 도착했다.
대장, 여길 보세요.
정보대로 비밀문이 있어요.
암호... 인증 통과. 열렸다. 아키텍트의 정보가 확실하군.
이 통로는... 지하로 통하는 건가? 내부는 신호가 차단되는군. 직접 들어가 살펴볼 수밖에 없다.
너무 쉬운데요. 현재 철혈의 전력이 엉망이긴 하지만, 혹시 함정이 아닐까요?
가능성은 충분하지. 그래서 사전에 마인드맵을 백업해 뒀다.
내가 들어가서 정찰하지. 날 엄호할 사람 한 명 나와라.
제가 하겠습니다.
인간의 뇌를 백업하는 기술은 아직 없어. 다른 지원자 없나?
네, 인간의 목숨은 하나뿐이죠. 질리도록 들은 말이에요.
하지만 원주민이 항상 무시당하는 이유가 그거잖아요?
세이, 내 뜻은 그게 아니야.
인형이 백업을 가지고 모험을 한다면, 인간은 용기를 가지고 똑같은 일을 할 수 있어요.
전 그걸 증명하기 위해 화이트 나이트에 입대했습니다.
......
하아... 내가 네 안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겠지?
내겐 인간이든 인형이든, 그저 부려먹을 수 있는 부하다. 하등 차이 없어.
감사합니다, 대장.
좋아. 세이 부대장, 내 후방 경계를 맡기겠다. 나머지는 바깥에서 대기하도록.
철혈이 저 아래에 숨긴 게 엘더 브레인인지, 아니면 다른 헛수작인지 보자고.
10분 후, 제리코와 세이는 지하 통로를 지나 탁 트인 공간에 도착했다.
인근에서 철혈 유닛을 비롯한 다른 신호는 포착되지 않습니다.
여긴... 공장인가요?
버려진 것 같군. 몇 년 동안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 여기가 정말 철혈의 본거지군요.
엘더 브레인은 어디 있을까요? 당장 수색하죠.
네가 용기 있다는 건 알겠지만, 목숨은 소중히 해.
제가 똑똑하진 않지만 멍청이는 아니에요, 대장.
음? 이 캡슐 안에 뭔가가...
대, 대장! 빨리 이쪽으로 와 보세요!
제리코와 세이는 캡슐의 뚜껑을 열었다.
............
이것이...
이게 바로 철혈의 최고 지휘 개체, 엘더 브레인 "엘리사"다.
드디어 찾아냈다.
......
그런데... 왜 안 움직이죠?
어디...
...방전되었군.
네...? 방전됐다고요?
이 공장과 마찬가지로, 최소한 2~3년간은 미동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그럴 리가요?! 지난 3년간 철혈들은 아주 멀쩡하게 활동했는데!
제리코는 세이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계속 엘더 브레인을 살펴보았다.
이 녀석... 지휘 모듈도 없어진지 오래야.
......
그렇다는 건...
3년 동안 철혈을 조종한 진짜 범인은 엘더 브레인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란 말인가요?
그런 것 같군...
제기랄, 당했다. 아키텍트의 진짜 주인이 녀석에게 가짜 기억을 심어 우릴 속인 거야.
이런 무의미한 수작을... 지금 당장 돌아간다. 아키텍트 놈의 머릴 짬통에 담금질해서라도 진짜 주인... 철혈의 지휘 모듈을 가져간 범인을 찾아내겠어!
............
...세이, 왜 그러지?
기분 풀어라. 마무리가 과정이 됐을 뿐이야, 다 조사의 일환이야. 계속 추적하면 될 일이다.
버려진 창고들이 철혈의 아지트였단 것을 알았으니, 이 건물의 소유주가 누구인지 조사하면 금방――
제리코 대장...
사실... 어젯밤에 스텔라가 제게 메시지를 하나 보냈어요.
...그런데?
메시지로...
"우리가 어렸을 적 숨바꼭질했던 곳, 아직도 기억해?"
"그곳의 비밀을 잘 지켜줘."라고 했어요.
그게 무슨 뜻이지?
대장, 이 거리는 저와 스텔라가 아직 어렸을 때 숨바꼭질하며 놀던 장소예요.
제가 술래일 때, 그녀를 찾아낸 건 손에 꼽을 정도예요. 항상 이 창고의 아무도 모르는 구석에 숨어서...
그리고 어느 날, 제게 말해 주었어요. 여기의 창고들은 다 그녀의 가문 소유라고...
뭐라고?
잠깐, 그럼 엘리사의 지휘 모듈을 가져간 건 그녀란 말이야?!
스텔라 호시이... 그녀가 바로 아키텍트와 철혈의 진짜 주인이었어!
제리코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는 그 순간, 그녀의 뒤에서 총알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세이.
스텔라가 지시한 거냐?
아뇨. 스텔라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어요...
스텔라는... 직접 제게 이런 부탁을 해도...
오히려 제가 말릴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이게 스텔라의 계획이라는 거군.
아키텍트를 시켜 일부러 우리에게 잡힌 다음, 우릴 속여서 이곳에 오게 해 너의 손으로 날 제거한다...
전 그저... 왠지 심상치가 않아서, 대장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따라온 거였는데, 설마...
설마 자신이 그 "만일의 경우"일 줄은 몰랐겠지.
죄송해요, 제리코 대장...
지금 제겐 달리 선택지가 없어요...
스텔라가 화이트 나이트에게 체포당하도록 놔둘 수 없어요. 반드시... 지켜야 해요...
그럼 어떻게 될지도 잘 알고 있겠군.
여긴 신호가 완전히 차단되어서, 난 지금 실시간 마인드맵 백업이 불가능하다.
네가 그 방아쇠를 당기면, 난 저 위에서 깨어나 창고의 비밀 통로로 발을 내디뎠다는 사실만을 기억하겠지.
네, 알아요...
그리고 전 대장이 믿을 만한 거짓말을 꾸밀 거고요...
그리고 난 그 말을 철석같이 믿겠지. 넌 내가 가장 신뢰하는 부하니까. 이 빌어먹을 마인드맵은 그렇게 프로그램되었으니까.
그리고 나를 죽인 범인과 함께 친구로서 그 술집에 돌아가, 껍데기뿐인 승리를 축하하겠지!
이게 공평하다고 생각해? 철혈조차도 날 죽이지 못했다. 단 한 번도!
그런데 지금 너는 날 죽이고, 철혈을 부리고 우산 바이러스를 가진 인간을 도우려 해? 그 여자가 그리폰 시티를 어떤 위기에 밀어 넣으려는지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전... 모르겠어요... 저도 이러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저는 스텔라를 반드시 지켜야만 해요. 그녀에게도 이유가 있을 거예요.
대장, 전 대장과는 달라요. 목숨이 하나뿐이고, 기회도 단 한 번뿐인 인간이에요...
그녀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밖에 없어요. 어떤 일이라도 하겠어요!
진심인가? 넌 그 방아쇠를 당기지 못해. 너무 흥분한 탓에 주체를 못 하고 있어. 세이, 전혀 너답지 않아...
이게 제 진심입니다, 제리코 대장!
정치적 입장이고 사회 여론이고 인권 책임이고 인형이고 인간이고 나발이고 전부 관심 없어요!
제가 이러는 이유는... 그저 스텔라가 저를 믿으니까, 제가 이렇게 하리라 믿으니까...
전 그저... 친구를 위해 뭐라도 하고 싶어서...
제리코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친구"라... 정말 이해가 가질 않는다니까...
만약 내가 인간이고 스텔라가 인형이었다면, 넌 어떻게 했을 것 같아?
...모르겠어요.
대장과 스텔라가 달랐다면, 저도 지금의 제가 아니었겠죠.
그건 그렇군...
"우정"이라니... 정말 인간이나 믿을 물건이야.
그럼, 마지막 질문이다.
각인을 받은 인형의 대응 사격 능력이...
...모든 면에서 인간을 압도한다는 건 알고 있겠지?
...!
탕!
대... 대장?
특히나... 침착함이 말이야...
역시 넌... 지금 너무 흥분했어...
제리코는 바닥에 쓰러졌다.
대장... 대장!
정말로 쏠 생각은 없었어요! 저... 전...!
괜찮아...
괜찮아, 세이...
어째서... 대장...
미안해요... 제가...
이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괜찮아... 나도 가끔은...
너희처럼...
친구를 위해... 뭐라도 해주고 싶거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