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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보 · 건슬링거 걸

저녁의 별빛

2막간

-3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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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우리는 어느샌가 안젤리카의 비타에서 바깥의 정원으로 돌아와 있었다.

헨리에타의 모습도 다시 내 곁에 나타났고, 내 손은 지금 내 무릎을 베고 자는 두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태양은 어둠을 상대로 마지막 빛을 내뿜어 구름을 붉게 달궜지만, 서서히 내려앉는 노을에 밀려나고 있었다.

헨리에타

세상모르고 자고 있네요, 안젤리카도 카노도.

설마 안젤리카의 비타가 그렇게 진행될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지휘관

의외였니?

헨리에타

네... 의외였어요.

의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담당관을 잊어선 안 돼요. 제 생각엔... 그런 건 일종의 배신이에요.

지휘관

하지만... 만약 그게 담당관이 바란 결말이었다면?

헨리에타

마르코 씨가 그렇게 바랐다는 건가요?

지휘관

"이야기" 속에서, 그 담당관의 미안함과 후회를 느꼈어. 그가 안젤리카에게 품었던 감정도.

"의체로서 나를 대신해 희생되는 것보단, 차라리 모든 걸 잊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대충, 그런 느낌이었달까...

헨리에타

그런가요... 마르코 씨는 그렇게 생각하셨군요...

하지만, 제가 안젤리카였다면 절대로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예요.

지휘관

의체의 감정은 다 "조건 강화" 때문이잖니.

강제적으로 부여된 감정 때문에 스스로를 희생할 필요는 없다 생각하는데.

헨리에타

아니요!

죠제 씨에 대한 제 감정은 조건 강화랑은 상관 없어요! 만약 죠제 씨가 저한테 죠제 씨를 잊으라고 한다면, 저는... 차라리...!

헨리에타가 격하게 반응하며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곧바로 자신의 실언을 깨닫고,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다시 의자에 앉았다.

헨리에타

...죄송해요, 함부로 성질부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그래도... 만약 제가 그렇게 다 잊어버린다면, 죠제 씨가 다시 전부 떠올릴 수 있도록 해 주셨으면 해요.

그대로 죠제 씨를 영영 잊어버리는 건 싫어요.

지휘관

어... 응.

카노와 안젤리카도 헨리에타의 목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두 사람은 눈을 비비며 일어나,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리번댔다.

카르카노M1891

어라...? 여긴 어디지... 엥, 지휘관님?

카리나

<color=#00CCFF>카노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아요! 저 애들이 들어선 안 되는 말도 있으니, 카노도 암호화 통신으로 대화하는 게 좋겠어요.</color>

지휘관

<color=#00CCFF>카리나 말 들었지?</color>

카르카노M1891

<color=#00CCFF>네... 뭐가 뭔진 모르겠지만요.</color>

지휘관

<color=#00CCFF>기억은 돌아왔어? 내가 누군지 알겠니?</color>

카르카노M1891

<color=#00CCFF>이상한 질문이네요. 지휘관님은 지휘관님이시잖아요?</color>

<color=#00CCFF>으음... 그런데 아직 좀 어질어질한 게, 왠지 엄청 긴 꿈을 꾼 것 같아요.</color>

지휘관

<color=#00CCFF>인형도 꿈을 꾸던가...?</color>

카르카노M1891

<color=#00CCFF>헤헤, 꿈에서 지휘관님을 본 것 같은 기분이에요.</color>

<color=#00CCFF>참, 다른 사람들은요? 시노는 어디 있어요?</color>

지휘관

<color=#00CCFF>그건 내가 묻고 싶은걸. 여긴 어떻게 들어왔니?</color>

카르카노M1891

<color=#00CCFF>SAT8이 마침 재밌어 보이는 레벨 2 플랫폼 공간을 찾았다길래, 피자를 먹으면서 같이 구경하러 들어와봤는데요...</color>

<color=#00CCFF>정신 차리고 보니, 지금 이렇게 지휘관님이랑 마주보고 있네요.</color>

카리나

<color=#00CCFF>흐음... 아무래도 우리 인형들은 이 공간의 이야기 속에서 길을 잃었다고 봐야겠네요. 마인드맵을 빼앗겨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연산하고 있는 거예요.</color>

<color=#00CCFF>그래서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이 공간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거고요.</color>

지휘관

<color=#00CCFF>그렇다면, 모두를 안전하게 데리고 나가려면 모든 이야기를 찾아내서 결말까지 이끌어야 한다는 소리네?</color>

카리나

<color=#00CCFF>무식하게 밀어붙이는 수도 있겠지만, 그게 가장 평화적인 방법이겠죠... 이 공간의 소녀들의 의식에서 딱히 악의가 느껴지진 않으니까, 되도록이면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고 해결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color>

지휘관

<color=#00CCFF>그냥 네가 이야기를 다 보고 싶은 게 아니라?</color>

카리나

<color=#00CCFF>아, 아하하하... 그래도 꽤 재밌어 보이잖아요!</color>

카르카노M1891

<color=#00CCFF>그럼 제가 도와드릴 일은 있나요?</color>

카리나

<color=#00CCFF>그 정원에 돌아왔다면 세이프니까 됐어. 카노는 먼저 복귀해도 돼.</color>

카르카노M1891

<color=#00CCFF>음... 여기가 안전하다면, 전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저 혼자 먼저 복귀했다간 시노가 삐져서 투정 부릴 테니까요.</color>

지휘관

<color=#00CCFF>계속 여기에 있게 해도 괜찮을까?</color>

카리나

<color=#00CCFF>이미 확인해 두긴 했어요. 그 정원이 있는 공간은, 어... 로비 같은 데라, 누가 다른 설정을 덮어씌우거나 하진 못해요. 함부로 돌아다니지만 않으면 안전할 거예요.</color>

카르카노M1891

<color=#00CCFF>카리나 씨도 괜찮다 하니 있어도 되죠? 그리고, 저 긴 머리인 애가 이상하게 신경 쓰여요. 왠지 어디서 만난 것 같은 기분이랄까...</color>

잠에서 깬 안젤리카는 이제 헨리에타와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담당관들이 언제 돌아오냐는 질문에 헨리에타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고, 안젤리카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안젤리카

몸 상태가 많이 나아졌어. 빨리 마르코 씨한테 보여드려야 안심하고 임무에 데려가 주실 텐데...

헨리에타

금방 돌아오실 거야. 죠제 씨도 이렇게 돌아오셨는걸.

안젤리카

그렇겠지? 곧 돌아오시겠지?

카르카노M1891

저, 저기... 안녕? 난 카노라고 해. 얘기하는 데 끼어도 될까?

안젤리카

어... 응. 새로 온 의체야?

카르카노M1891

의체? 어... 대충 비슷하려나?

안젤리카

그런데, 왠지 낯이 많이 익은데...

카르카노M1891

그거 참 신기하네, 나도 그렇거든!

저기, 그러니까... "파스타 왕자 이야기"라고 들어봤어?

마치 아주 오랫동안 알고 지내다 간만에 다시 만난 친구들처럼, 카노와 안젤리카는 자연스럽게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자리를 비켜 주면서, 헨리에타는 내 손을 잡고 조용히 정원을 빠져나왔다.

헨리에타

죠제 씨, 여기서 잠깐 쉬어요.

지휘관

그래.

나와 헨리에타는 정원 반대편의 벤치에 앉았다. 석양은 거의 다 저물어, 지평선에 희미한 분홍색이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헨리에타는 깍짓손을 계속 꼼지락거렸다. 아직도 아까 있었던 일에 대해 고민하는 듯했다.

지휘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헨리에타

아... 죄송해요, 죠제 씨...

비타에서 왜 안젤리카에게 진실을 말해 주지 않으셨는지, 전 역시 이해가 안 가요.

죠제 씨가 마르코 씨는 아니지만, 의체와 담당관의 관계가 어떤 건지는 아시잖아요.

그 말에, 인형들과 함께 지내는 나날이 떠올랐다. 클라우드 마인드맵이란 것이 있어서 다행이지, 만약 그 애들이 밖에 파괴되고, 함께했던 모든 일을 잊어버린 채로 돌아온다면 난 분명 괴로워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가능하다면 인형들을 위험한 싸움에 내보내는 것은 피하고 싶다. 세상 그 누구도, 다른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것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꼴을 보고만 있진 않을 테니까.

지휘관

미안해, 내가 멋대로 저질렀는지도 모르겠네.

헨리에타

아뇨, 죠제 씨의 마음은 이해해요. 죠제 씨는 상냥하신 분이니까...

평범한 여자애는 평범하게 사는 것으로 충분하겠죠.

지휘관

난 너희도 평범한 여자애라고 생각하는걸.

헨리에타

하지만, 저희는 결코 평범한 여자애가 아니에요... 평범한 여자애가 총에 맞아도 아파하지 않고, 맨손으로 사람을 살해할 수 있나요?

저희는 평범한 여자애가 아니라 의체예요. 의체에겐 의체로서의 삶이 있어요.

저희에게서 프라텔로로서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건, 죽음보다 괴로운 일이에요.

제가 평범한 여자애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죠제 씨에게 도움이 되려면 평범한 여자애로는 부족하다고요!

지휘관

<color=#A9A9A9>평범하지 않은 아이라... 그렇게 순진무구한 얼굴로 그런 말을 해도, 나로선 납득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정면으로 반박할 수도 없는 노릇이군.</color>

미안해. 헨리에타의 각오는 잘 알았어.

그럼 다음 비타로 갈까? 다른 애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헨리에타

...지금 당장 가야 하나요?

지휘관

새로 온 동료들을 빨리 데리고 나와야 해. 중요한 임무가 기다리고 있거든.

헨리에타

비타 안에서라면 안전한걸요? 어쩌면 이따가 알아서 나올 수도 있는데, 죠제 씨가 그렇게 고생하실 필요가 있나요?

지휘관

이게 내 임무니까.

헨리에타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엔 리코에게 가봐요. 리코의 비타는 찾기 쉬워요, 정문에서 왼쪽으로, 두 번째 창문 뒤에 있어요.

지휘관

그래, 그럼 거기로 가자.

헨리에타

네.

그런데... 저... 가기 전에, 조금만 더 같이 있어 주실 순 없을까요?

안젤리카의 비타에서 얌전히 있었으니까... 상으로...

지휘관

음... 그렇게 부탁한다면 들어줘야지.

내가 뭘 해 줬으면 좋겠니?

헨리에타

에헤헤...

죠제 씨는 아무것도 안 하셔도 돼요. 그대로 앉아 계셔 주세요.

헨리에타는 슬며시 내 어깨에 기대고, 고개를 들어 완전히 어두워진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도 그 시선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니, 희미하게 반짝이는 별빌들이 바람을 따라 흐르는 구름 사이로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헨리에타

오늘도 별이 정말 예쁘네요.

지휘관

별, 좋아하니?

헨리에타

네. 기억 안 나세요? 죠제 씨가 망원경으로 별을 보여 주시면서, 별들에겐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고 가르쳐 주셨잖아요.

죠제 씨는 정말 모르시는 게 없다니까요. 헤헤, 오늘은 출장 때문에 피곤하셔서 그런 것 같지만요.

이렇게 별을 올려다볼 때마다, 그때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상냥한 죠제 씨의 모습이 떠올라요.

지휘관

그렇구나...

헨리에타

그래서, 저는 죠제 씨에게 힘이 되어드리고 싶어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요.

죠제 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잊고 싶지 않아요...

지휘관

죠... 나도, 영원히 널 잊지 않아.

헨리에타

헤헤헤... 죠제 씨...

우리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저 벌레의 울음소리를 듣고 꽃향기를 맡으며, 조용히 밤하늘을 감상했다.

반딧불이 몇 마리가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손을 뻗어보았지만, 바로 코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음에도 전혀 닿지 않았다.

내 어깨에 기댄 헨리에타의 숨소리가 부드러워졌다. 피곤해 보이더니, 결국 잠든 모양이다.

이 아이는 여기서 홀로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린 걸까? 만약 내가 접속하지 않았다면, 언제까지 "죠제 씨"를 기다릴 셈이었을까?

그리고, 그 "죠제 씨"는 또 어디로 간 것일까? 정말 이 아이를 버린 걸까?

그 아주 오래된 접속 기록... 방금은 듣기 좋은 말로 달랬지만, 이 아이는 본디 속했던 세상으로부터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었다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슬픈 기분이 들었다.

헨리에타도 그렇기에 그토록 격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리라.

"잊혀지는 것만은 죽어도 싫다." 그것이 이 소녀들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소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