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i capito
6 전투
아, SAT8 씨!
드디어 빠져나오셨군요!
응~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이쪽이 마지막 의체인가요?
처음 보는 얼굴이 잔뜩이네...
괜찮지 않아?
그토록 오랜 시간 끝에 겨우 변화가 찾아왔는데.
트리엘라는 여전히 긍정적이구나.
현재 상황이 어떤진 알고 있어?
모르는 게 산더미라 질문이 잔뜩 있어요, 클라에스 선생님~
그런데, 헨리에타는?
맞아, 죠제 씨랑 함께 비타에 들어가지 않았어?
이 사람은 죠제 씨가 아니야.
지금 우리가 있는 곳도 공사가 아니고.
그래?
트리엘라는 전혀 놀라지 않는 모습이었다.
눈치챘어?
처음부터 여러 가지로 이상하게 느껴졌거든.
자세하게 설명 부탁해, 선생님.
클라에스는 한숨을 쉰 뒤, 자신이 알고 있는 전부를 모두에게 설명했다.
그녀에게서 진실을 듣자, 모두 웃음기를 잃고 침묵에 빠졌다.
모두 사라진 거구나... 그리고 우리들도...
결국 여기도 사라지는 날이 왔구나.
그말인즉, 우리의 진짜 담당관들은 영영 돌아올 리 없단 거네.
이 "죠제 씨"는 바깥에서 헨리에타에게 끌려온 아이들을 되찾으러 왔어.
결코 우릴 속일 셈으로 담당관의 연기를 한 게 아니야.
그럼, "죠제 씨"를 닮은 지휘관님? 이제 어떡하실 생각이시죠?
이 공간이 곧 붕괴된다는데, 지금이라도 떠나면 늦지 않을 거예요.
헨리에타를 대신해 사과드립니다, 우리 사정에 당신들까지 끌어들여서 죄송해요.
헨리에타는 잘못하지 않았어. 그리고 나도 이대로 너희가 사라지는 걸 눈 뜨고 지켜보기만 하진 않겠어.
너희를 새로운 공간으로 데려가 줄게. 거기서 계속 살아갈 수 있어.
하지만... 그 전에 한 명 더 찾아와야겠지.
정원의 끝자락이 점점 사라져 갔고, 하늘에는 먹구름이 밀려왔다.
그 "비타"였던 건물은 화사한 정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전혀 다른 으스스한 분위기의 건물로 변했다.
여기는...?
이게 헨리에타의 비타의 본모습이겠죠.
이곳을 수정하는 데 쓰던 연산력까지 잃어서 원래 모습이 드러난 거예요.
신 토리노 원전... 저희와 공사가 쟈코모 단테와 결전을 벌였던 곳이에요.
그럼 헨리에타는 저 안에 있겠군.
금방 다녀올게.
하지만 헨리에타는 당신을 피하려 할걸요.
들키면 혼자 사라질 수 없으니까.
그 녀석... 이 공간과 함께 사라지기로 결심한 모양이네.
잠시만요. 저 안에는 적이 잔뜩 있을 거예요. 저희가 같이 들어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너희는 들어가 봤자 목소리밖에 안 남을걸? 걱정 말고 내게 맡기렴.
공간이 언제 붕괴될지 모르니, 한시라도 빨리 헨리에타를 찾아내야 해.
카노, 시노, SPAS, SAT8.
네!
갔다 올게, 애들을 부탁한다.
......
나는 발소리를 죽이며 쑥대밭이 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자료에 적힌 대로, 여긴 신 토리노 원자력 발전소였다.
기록대로라면 헨리에타는 지금 터빈 동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저 멀리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내 무장을 확인해봤다. 551 이오텍이 부착된 P90. 투명한 탄창에 든 건 아마 SS190탄이다.
매우 난감한 상황에 봉착했다.
완전무장한 테러리스트가 상대인데, 5.7mm 탄으론 근거리에서도 방탄 삽판을 뚫기 힘들다. 왜 공사는 이딴 걸 무장으로 지급했지?
불편한 마음으로 방탄조끼의 멜빵을 단단히 조였다. 구식 장구류라 기분이 영 거북한 데다, IMTV는 품질이 조악한 레플리카라 전혀 안전하단 느낌이 들지 않았다.
헨리에타, 내 말 들리니?
헨리에타?
무전기로 헨리에타를 호출해봤지만, 응답은 없었다.
멀리서 또 총격전이 벌어졌다. 내 기억이 맞다면, 저기는 터빈 동의 반대편... 공사의 소대가 제5공화국파와 결전을 벌인 그곳이다. 헨리에타는 분명 지금 거기서 싸우고 있을 것이다.
총성이 들린 방향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터빈 동의 반대편으로 통하는 길은 일직선이고, 통로 양측에 안쪽으로 움푹 파인 벽이 있어 엄폐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통로에는 이미 시체가 잔뜩 널브러져 있는 걸로 보아, 전투가 아주 치열함이 틀림없었다.
저 앞에서 시체를 확인 중인 적병 두 명이 보였다. 그들도 내가 접근하는 소리를 듣고 몸을 돌렸지만, 내가 방아쇠를 당기는 속도가 더 빨랐다.
기관단총을 소사해 첫 번째 놈의 머리를 맞췄다. 두 발이 방탄모에 튕겨 나갔지만, 세 발째에 관통되었다.
다른 한 명은 상황이 불리한 걸 보곤 냅다 반대 방향으로 도망쳤다.
등에 몇 발 명중시키긴 했지만, 그놈의 방탄 삽판 덕분에 잠깐 움찔한 것이 전부였다.
이어지는 내 사격을 피한 놈은 귀퉁이의 벽 뒤로 숨어, 통신으로 지원을 요청했다.
여기 아직 공사의 놈이 있다!
지원 바란다!
제기랄...!
난 탄이 바닥난 P90을 버리고, 권총을 뽑아 엄폐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놈이 무전기를 놓고 다시 총을 들기 전에 바로 달려들어, 머리에 몇 발 쏘아 제압했다.
적들이 몰려올 텐데, 권총만으론 무리였다. 놈에게서 돌격소총을 뺏어 잔탄을 확인하고, 탄창도 꺼냈다.
그와 동시에, 통로 끝에서 손전등의 빛이 번쩍였다. 적의 증원이 벌써 도착한 것이었다.
이쪽이다, 쏴라!
내가 다시 벽 뒤로 숨자마자, 총탄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내가 총알 세례를 피하느라 정신없는 사이, 적의 증원 벙력이 양 출구를 확보해 버렸다.
어떻게든 반격하고 싶었지만, 두 방향에서 쏟아지는 교차 사격으로 인해 전혀 틈이 나질 않았다.
놈을 제압했다! 밀어붙여!
적들이 제압 사격을 유지하면서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코앞까지 오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난 지면에 바싹 엎드린 채,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을 굴렸다. 동시에, 다른 손의 엄지손가락으로 총의 조정간을 자동으로 돌렸다.
전방 수류탄!
적들은 수류탄을 보자 헐레벌떡 벽 뒤로 숨었다.
수류탄이 터지면서 일어난 먼지를 연막 삼아, 난 엄폐물을 박차고 나와 노획한 돌격소총을 소사하면서 눈앞의 벽으로 돌진했다.
폭발을 피한 좌측의 병사가 몸을 내밀어 다시 사격하려 했지만, 이번에도 내가 더 빨랐다. 하지만 오른쪽에 한 명이 더 있었고, 놈의 반격까지 피할 순 없었다.
명중했다! 돌격해!
복부가 미칠 듯이 아팠다. 자세를 바로잡으려 해도 하반신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바닥에 쓰러진 채, 적들이 내게 달려오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던 그때였다.
죠제 씨!
...!
후방에 적이다!
돌연 헨리에타가 제 5공화국파 병사들의 배후에서 나타나, 엄청난 속도로 적의 사각지대로 파고들었다. 놈들은 뒤를 볼 새도 없이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과연 의체라 해야 할까? 명중률이 인형과 거의 비슷했다. 물론, 지금 인형이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 고생할 필요도 없었겠지만.
나도 모르게 내가 그리폰 소속이라 다행이다 싶었다.
죠제 씨! 다치셨어요?!
그런 것 같네... 생각보다 아픈걸...
움직이지 마세요, 제가 확인할게요!
나는 손으로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댔고, 헨리에타가 내 총상을 살펴봤다.
두 발은 방탄조끼가 막았지만, 한 발이 복부에...
관통상이에요, 당장 지혈할게요!
이래서 반쪽짜리 방탄복은 영 못미덥다니까...
하지만 헨리에타가 구급상자를 열기도 전에 총알이 근처의 벽에 구멍을 냈다.
적이 더 왔어요!
젠장... 부상 조치는 나중에 하고, 적부터 해치워!
하지만...!
놈들이 접근하면 우리 둘 다 끝장이야, 어서 반격해!
네!
헨리에타는 즉시 반대쪽 벽에 숨어, 돌격해 오는 적들을 향해 사격했다.
순식간에 선두의 두 명이 고꾸라졌고, 나머지 놈들은 허겁지겁 주변의 엄폐물 뒤로 숨었다.
놈들이 수류탄을 던질 거리까지 오게 둬선 안 돼.
잔탄수에 주의하면서, 최대한 점사로 제압해.
네!
이 정도 부상으로 죽을 내가 아니다.
이건 애들 장난인 수준으로 더 심한 일도 겪어봤는데, 고작 테러리스트에게 당할쏘냐. 아직 버틸 수 있다...
헨리에타가 시간을 버는 동안, 난 무릎으로 서서 고통을 참으며 지혈대로 배를 감쌌다.
진통제가 돌기 시작해 한결 나아지고 난 후, 나는 빈 탄창을 버리고 남은 탄약을 확인했다.
...남은 탄창은 두 개.
최대한 벽 가까이 기어가, 엄폐물에 몸을 의탁한 채로 헨리에타와 함께 반격을 퍼부었다.
카리나, 헨리에타를 찾았어. 작업은 얼마나 더 걸려?
거의 다 됐어요, 조금만 더 버텨 주세요!
서둘러 줘...
열정적인 손님들이 끊이질 않는다고...
"만약 누군가가 좋아서 미칠 것만 같은데..."
......
"그럼에도 그 사랑이 영원히 보상받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면..."
......
"저라면... 상대를 죽이고..."
......
"그리고..."
이 자식들은 어떻게 끝이 없냐!!
시체가 산처럼 쌓이면서, 주위의 공간이 서서히 사라져 갔다.
아마 신 토리노 원전의 모든 제5공화국파 놈들이 모두 여기로 모여든 듯했다.
이제 남은 적은 단 3명. 하지만 남은 것도 악착같은 놈들이고, 우리가 탄약이 거의 바닥난 것을 눈치채기가 무섭게 이판사판으로 달려들었다.
돌격소총은 진작에 탄창이 텅텅 비었기에, 권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권총에선 달칵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젠장! 이것도 바닥났나!
달려드는 적을 피해 엄폐물로 돌아가려 했지만, 부상을 입은 몸은 제대로 움직이질 않았고, 적은 그대로 총구를 내 머리를 향해 겨눴다.
죠제 씨!!
위기일발의 순간, 헨리에타가 내 앞에 뛰어들었다.
총구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고, 발사된 총탄이 헨리에타의 가슴팍에 박혔다. 하지만 헨리에타도 동시에 단도를 적에게 던졌다.
칼은 방탄모를 뚫고 적의 미간에 박혔다.
탄환에 맞은 충격으로 헨리에타는 나와 부딪혔고, 그걸 본 나머지 적병 둘이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시간이 느려진 것처럼 느껴졌다. 손의 권총을 내던지고 헨리에타의 허리춤에서 그녀의 권총을 뽑아 들었다.
이 총이 무엇인진 자료를 봐서 알았다.
죠제포 클로체가 헨리에타를 처음 만났을 때 준 SIG P239였다.
난 그대로 P239를 최후의 두 제5공화국파 병사들에게 향했고, 상대도 우리를 조준했다.
타앙——!
타앙————!!
난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고, 헨리에타도 내 위에 엎어졌다.
...아직 실력이 녹슬진 않았네. 평소에 훈련을 꾸준히 한 보람이 있어.
죠제 씨!
난 괜찮아. 헨리에타는?
저도... 괜찮아요. 방탄조끼가 총알을 막아 줬어요.
헨리에타가 몸을 일으켰다. 그 말대로, 그녀의 방탄조끼엔 납작해진 탄두 두 개가 박혀 있었다.
휴우... 다행이다...
나도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헨리에타는 나를 등지고, 엉망이 된 터빈 동을 바라봤다.
바닥에는 온통 제5공화국파 병사들의 시체로 가득했고, 피가 지면을 검붉은색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초연 냄새 가득한 연기 속에서, 헨리에타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수천 번이나 싸워서... 드디어...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헨리에타의 뒷모습에, 나는 손을 뻗어 그애를 다독여야 할지 망설여졌다.
저희... 이긴 건가요?
그래, 우리가 이겼어.
......
이제 여기서 나가자.
그렇게 말하면서, 난 헨리에타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손을 피하더니, 뒤돌아 내게서 뒷걸음질 쳤다.
......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리고 그녀의 총구가 날 향했다.
아뇨...
당신과 함께 떠나진 않겠어요.
헨리――
오지 마세요! 가까이 오면 쏘겠어요.
......
왜?
모르는 척하기예요?
우리가 이겼잖아.
그런데도, 예전처럼 날 쏠 셈이야?
아뇨... 전 당신을 쏜 적 없어요.
단 한 번도...
당신은... 죠제 씨가 아니잖아요.
......
눈치챘구나.
사실, 전 당신이 죠제 씨라 믿고 싶었어요. 그래서 계속 저 자신을 속였어요. 당신은 죠제 씨가 맞다고, 저 자신에게 거짓말했어요.
하지만, 죠제 씨가 이런 식으로 싸우실 리 없어요...
죠제 씨가 의체를 잊으실 리 없어요...
죠제 씨가 동료 담당관을 잊으실 리가 없어요...
죠제 씨가, 프라텔로의 신조와 관계를 절대 잊으실 리 없다고요!
왜냐면, 죠제 씨는... 죠제 씨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죠. 애당초, 저와 죠제 씨만의 추억을 알 리도 없겠죠.
당신은 그저 담당관인 척하고 있었을 뿐이에요.
......
그래서 날 쏘려고?
내가 널 속였으니까?
아뇨... 당신을 원망하진 않아요. 덕분에 깨달았거든요.
당신은 죠제 씨가 아니고, 저도 헨리에타가 아니란 사실을.
여기 있는 것 전부, 여기 있는 사람 모두, 다 시뮬레이션이에요. 이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의 감정도... 다 허구였어요...
......
저희 모두... 시뮬레이션으로 재현된 기억의 단편에 불과했어요. 모두... 모두 진작에 죽었어요.
......죠제 씨도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시겠죠.
헨리에타...
그래도... 괜찮아요. 이제 아쉬운 건 없어요.
죠제 씨와 다시는 만날 수 없다면... 이 정원을 더는 지킬 수 없다면...
그럼, 마지막으로 여태까지 줄곧 실패하기만 하던 곳을 승리로 장식하는 것도 나쁘진 않잖아요?
클라에스가 말한 대로였어요, 모든 건 끝날 때 끝나야 했어요. 그게 이야기가 마땅히 가질 결말이에요.
제가 모두를 속였단 것도 이미 아시겠죠? 당신도 이제 당신의 프라텔로를 다 되찾으셨고요.
그럼 됐어요... 그걸로 된 거예요.
여긴 이제 사라질 거예요. 모든 것이 끝나기 전에, 제 소원을 이루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누구든, 정말 고마워요.
끝...?
아니, 아직 끝이 아니야.
너희에겐 아직 희망이 있어. 지금 내가――
지금 뭘 하고 계신진 알아요.
권한도 이미 다 가져가셨으니, 언제든지 떠나셔도 돼요.
..."너"는?
전 모두와 함께 그곳에 갈 자격이 없어요. 제 친구들을... 잘 부탁드려요.
어째서?
전 모두에게 나쁜 짓을 했는걸요... 그리고...
죠제 씨가 없으면... 담당관이 없으면... 의체는 존재할 이유가 없어요.
너무 많이 반복해서... 전 이제 지쳤어요.
그러니까...
......
그러니까... 그만 돌아가 주세요. 죠제 씨의 모습으로 저를 찾아와 주셔서, 제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서, 너 혼자 여기 남겠다고?
아뇨, 이 공간은 곧 사라져요. 여기 남아 있으면, 저도 함께 사라지겠죠.
......
난 더는 망설이지 않고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헨리에타도 한 걸음 더 물러섰다.
오지 마세요.
가까이 가면, 쏘려고?
......저는 이제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 당신은 어차피 저와 아무 관계도 아니잖아요.
당신은 담당관이 아니면서... 죠제 씨가 아니면서...
맞아, 난 죠제포 클로체가 아니지.
무슨 담당관인지 뭔지도 아니고, 의체와는 아무 상관 없어.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도 의체가 아니야. 그저 도움이 필요한 여자애지.
아뇨! 전 여자애가 아니에요!
전 의체예요! 기계에요! 킬러라고요!
죠제 씨가 없는 세상, 미련 따위 없어요!
그래도 넌 살아가야 해, 이미 죽은 이의 무거운 과거를 짊어졌더라도.
죠제 씨도, 네가 이 공간과 함께 사라지길 원치 않았을 거야.
제가 진짜 헨리에타라면... 그렇겠죠.
하지만 전 헨리에타가 아니에요, 그저 데이터에 불과해요.
그저 악몽에 사로잡힌 유령이에요. 진작에 죽었는데, 아직도 남아 있는 망령이라고요! 제가 계속 존재할 이유가 대체 어디 있죠?!
그러니?
그래요...
당신의 은혜는, 마지막까지 감사할게요.
하지만... 이만 돌아가 주세요.
그럼 이 권총은 안 돌려줘도 되겠지?
!!!
헨리에타가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내 손에서 그 권총을 뺏으려 했다.
하지만 난 잽싸게 물러나, 헨리에타가 아직 사라지지 않은 지면에 발을 디디게 만들었다.
미련 따윈 없다며?
전...
헨리에타는 눈물 어린 눈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네가 이 권총에 반응했단 건, 아무리 시뮬레이션이라도 그와의 추억이 거짓이 아니라는 증거야.
그것도 부정한다면... 이 총을 그냥 버려도 상관없겠지?
아... 안 돼요!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면서, 헨리에타를 한 걸음씩 무너져 가는 공간의 중앙으로 데려왔다.
내가 걸음을 멈추자 그녀도 제자리에 멈춰 섰다.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됐지만, 헨리에타는 망설였다. 대신, 내가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자, 돌려줄게.
......
소중한 보물이지?
......네.
헨리에타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내가 그 권총을 내밀자, 헨리에타는 무기를 놓고 내 손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이 담긴 보물을 돌려받았다.
죠제 씨...
헨리에타는 권총을 품에 꼬옥 안았고, 눈가에 맺혔던 눈물도 흘러내렸다.
그 사람은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아무리 그리워하며 기다려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헨리에타는 입술을 깨물어 울음소리를 참았다. 마음이 찢어지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참았다.
지휘관님, 공간이 붕괴되기 직전이에요! 당장 나오셔야――
잠깐만, 잠깐이면 되니까...
조용히 훌쩍이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역시 그만두고 팔을 내렸다.
헨리에타가 고개를 숙여, 손 안의 권총을 바라봤다. 한 방울 한 방울, 눈물이 권총의 총몸에 떨어졌다.
저... 어떡하면 좋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게 묻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난 그저 묵묵히 기다렸다.
주변의 세계가 점점 무너져 가는 와중, 우린 그저 조용히 마주서고 있었다.
잠시 후, 헨리에타가 고개를 들었다.
떠나간 사람은 돌아오지 않지만, 남은 사람은 계속 살아나가야 해.
자신이 무엇인지에 집착할 필요는 없어. 의체가 아니어도, 진짜 헨리에타가 아니어도, 넌 계속 살아갈 자격이 있어.
저 끝에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든, 어떤 방식으로든.
하지만... 그럼 전 무엇으로서 살아가야 하나요?
헨리에타도, 의체도 아닌 제게 존재하는 의미는 대체 뭐죠?
그거야 나도 모르지.
너 자신의 존재 의미는 너 스스로 정하는 거니까.
그래도, 이 공간을 만들었던 사람은 분명 너희가 세상에게 계속 기억되길 바랐다고 생각해.
너희들의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도록, 과거가 담긴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이곳을 만들었을 거야.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너희는 너희야. 싸움이 끝난 너희들은 예전보다 행복하게 살 자격이 있어.
싸우지 않아도, 과거의 상처를 짊어지지 않아도, 과거의 자신이 이미 죽었더라도, 헨리에타는 헨리에타야.
......
헨리에타는 헨리에타...
헨리에타의 이야기를, 네가 계속 써 내려 가는 거야.
비록 진짜 헨리에타는 아니지만, 그녀의 모든 것을 이어받은 넌 지금 이렇게 존재하고 있어.
헨리에타의 과거와 미래, 모두 너에게 달린 거지.
아니면, 아직도 이 모든 걸 받아들이기 싫니? 모두에게 이대로 잊혀져도 괜찮아?
전... 전 잊혀지기 싫어요...
세상에서 잊혀지는 건 누구도 좋아하지 않아. 그건 죽은 이들이라도 마찬가지지.
네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상, 그들의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아. 그들을 위해서라도 살아가렴.
비록 세상이 전보다 더 나아지지 않았을진 몰라도, 그들 같은 사람이 있는 한 아직 이 세상에 희망은 있어.
그러니 너희의 추억도 사라져선 안 돼. 이대로 모두에게서 잊혀져선 안 돼.
모두가... 모두가 잊혀지는 건 싫어요...
죠제 씨... 공사의 다른 분들...
그럼 내게 들려줄 수 있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헨리에타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친구들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
......네.
알겠습니다.
들려드릴게요, 몇 번이고 들려드릴게요. 당신이 절대 잊지 못하도록.
하하, 기대할게.
헨리에타가 뒤를 돌아봤을 때, 터빈 동은 사라지고 없었다.
수많은 생명들이 꺼져 갔던 곳이, 지금은 공백이 되었다.
하지만 과거의 끝은 미래로의 시작을 알리는 기적소리다.
안녕, "비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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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SAT8 씨!
드디어 빠져나오셨군요!
응~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이쪽이 마지막 의체인가요?
처음 보는 얼굴이 잔뜩이네...
괜찮지 않아?
그토록 오랜 시간 끝에 겨우 변화가 찾아왔는데.
트리엘라는 여전히 긍정적이구나.
현재 상황이 어떤진 알고 있어?
모르는 게 산더미라 질문이 잔뜩 있어요, 클라에스 선생님~
그런데, 헨리에타는?
맞아, 죠제 씨랑 함께 비타에 들어가지 않았어?
이 사람은 죠제 씨가 아니야.
지금 우리가 있는 곳도 공사가 아니고.
그래?
트리엘라는 전혀 놀라지 않는 모습이었다.
눈치챘어?
처음부터 여러 가지로 이상하게 느껴졌거든.
자세하게 설명 부탁해, 선생님.
클라에스는 한숨을 쉰 뒤, 자신이 알고 있는 전부를 모두에게 설명했다.
그녀에게서 진실을 듣자, 모두 웃음기를 잃고 침묵에 빠졌다.
모두 사라진 거구나... 그리고 우리들도...
결국 여기도 사라지는 날이 왔구나.
그말인즉, 우리의 진짜 담당관들은 영영 돌아올 리 없단 거네.
이 "죠제 씨"는 바깥에서 헨리에타에게 끌려온 아이들을 되찾으러 왔어.
결코 우릴 속일 셈으로 담당관의 연기를 한 게 아니야.
그럼, "죠제 씨"를 닮은 지휘관님? 이제 어떡하실 생각이시죠?
이 공간이 곧 붕괴된다는데, 지금이라도 떠나면 늦지 않을 거예요.
헨리에타를 대신해 사과드립니다, 우리 사정에 당신들까지 끌어들여서 죄송해요.
헨리에타는 잘못하지 않았어. 그리고 나도 이대로 너희가 사라지는 걸 눈 뜨고 지켜보기만 하진 않겠어.
너희를 새로운 공간으로 데려가 줄게. 거기서 계속 살아갈 수 있어.
하지만... 그 전에 한 명 더 찾아와야겠지.
정원의 끝자락이 점점 사라져 갔고, 하늘에는 먹구름이 밀려왔다.
그 "비타"였던 건물은 화사한 정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전혀 다른 으스스한 분위기의 건물로 변했다.
여기는...?
이게 헨리에타의 비타의 본모습이겠죠.
이곳을 수정하는 데 쓰던 연산력까지 잃어서 원래 모습이 드러난 거예요.
신 토리노 원전... 저희와 공사가 쟈코모 단테와 결전을 벌였던 곳이에요.
그럼 헨리에타는 저 안에 있겠군.
금방 다녀올게.
하지만 헨리에타는 당신을 피하려 할걸요.
들키면 혼자 사라질 수 없으니까.
그 녀석... 이 공간과 함께 사라지기로 결심한 모양이네.
잠시만요. 저 안에는 적이 잔뜩 있을 거예요. 저희가 같이 들어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너희는 들어가 봤자 목소리밖에 안 남을걸? 걱정 말고 내게 맡기렴.
공간이 언제 붕괴될지 모르니, 한시라도 빨리 헨리에타를 찾아내야 해.
카노, 시노, SPAS, SAT8.
네!
갔다 올게, 애들을 부탁한다.
......
나는 발소리를 죽이며 쑥대밭이 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자료에 적힌 대로, 여긴 신 토리노 원자력 발전소였다.
기록대로라면 헨리에타는 지금 터빈 동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저 멀리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내 무장을 확인해봤다. 551 이오텍이 부착된 P90. 투명한 탄창에 든 건 아마 SS190탄이다.
매우 난감한 상황에 봉착했다.
완전무장한 테러리스트가 상대인데, 5.7mm 탄으론 근거리에서도 방탄 삽판을 뚫기 힘들다. 왜 공사는 이딴 걸 무장으로 지급했지?
불편한 마음으로 방탄조끼의 멜빵을 단단히 조였다. 구식 장구류라 기분이 영 거북한 데다, IMTV는 품질이 조악한 레플리카라 전혀 안전하단 느낌이 들지 않았다.
헨리에타, 내 말 들리니?
헨리에타?
무전기로 헨리에타를 호출해봤지만, 응답은 없었다.
멀리서 또 총격전이 벌어졌다. 내 기억이 맞다면, 저기는 터빈 동의 반대편... 공사의 소대가 제5공화국파와 결전을 벌인 그곳이다. 헨리에타는 분명 지금 거기서 싸우고 있을 것이다.
총성이 들린 방향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터빈 동의 반대편으로 통하는 길은 일직선이고, 통로 양측에 안쪽으로 움푹 파인 벽이 있어 엄폐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통로에는 이미 시체가 잔뜩 널브러져 있는 걸로 보아, 전투가 아주 치열함이 틀림없었다.
저 앞에서 시체를 확인 중인 적병 두 명이 보였다. 그들도 내가 접근하는 소리를 듣고 몸을 돌렸지만, 내가 방아쇠를 당기는 속도가 더 빨랐다.
기관단총을 소사해 첫 번째 놈의 머리를 맞췄다. 두 발이 방탄모에 튕겨 나갔지만, 세 발째에 관통되었다.
다른 한 명은 상황이 불리한 걸 보곤 냅다 반대 방향으로 도망쳤다.
등에 몇 발 명중시키긴 했지만, 그놈의 방탄 삽판 덕분에 잠깐 움찔한 것이 전부였다.
이어지는 내 사격을 피한 놈은 귀퉁이의 벽 뒤로 숨어, 통신으로 지원을 요청했다.
여기 아직 공사의 놈이 있다!
지원 바란다!
제기랄...!
난 탄이 바닥난 P90을 버리고, 권총을 뽑아 엄폐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놈이 무전기를 놓고 다시 총을 들기 전에 바로 달려들어, 머리에 몇 발 쏘아 제압했다.
적들이 몰려올 텐데, 권총만으론 무리였다. 놈에게서 돌격소총을 뺏어 잔탄을 확인하고, 탄창도 꺼냈다.
그와 동시에, 통로 끝에서 손전등의 빛이 번쩍였다. 적의 증원이 벌써 도착한 것이었다.
이쪽이다, 쏴라!
내가 다시 벽 뒤로 숨자마자, 총탄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내가 총알 세례를 피하느라 정신없는 사이, 적의 증원 벙력이 양 출구를 확보해 버렸다.
어떻게든 반격하고 싶었지만, 두 방향에서 쏟아지는 교차 사격으로 인해 전혀 틈이 나질 않았다.
놈을 제압했다! 밀어붙여!
적들이 제압 사격을 유지하면서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코앞까지 오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난 지면에 바싹 엎드린 채,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을 굴렸다. 동시에, 다른 손의 엄지손가락으로 총의 조정간을 자동으로 돌렸다.
전방 수류탄!
적들은 수류탄을 보자 헐레벌떡 벽 뒤로 숨었다.
수류탄이 터지면서 일어난 먼지를 연막 삼아, 난 엄폐물을 박차고 나와 노획한 돌격소총을 소사하면서 눈앞의 벽으로 돌진했다.
폭발을 피한 좌측의 병사가 몸을 내밀어 다시 사격하려 했지만, 이번에도 내가 더 빨랐다. 하지만 오른쪽에 한 명이 더 있었고, 놈의 반격까지 피할 순 없었다.
명중했다! 돌격해!
복부가 미칠 듯이 아팠다. 자세를 바로잡으려 해도 하반신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바닥에 쓰러진 채, 적들이 내게 달려오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던 그때였다.
<size=60>죠제 씨!</size>
...!
후방에 적이다!
돌연 헨리에타가 제 5공화국파 병사들의 배후에서 나타나, 엄청난 속도로 적의 사각지대로 파고들었다. 놈들은 뒤를 볼 새도 없이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과연 의체라 해야 할까? 명중률이 인형과 거의 비슷했다. 물론, 지금 인형이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 고생할 필요도 없었겠지만.
나도 모르게 내가 그리폰 소속이라 다행이다 싶었다.
죠제 씨! 다치셨어요?!
그런 것 같네... 생각보다 아픈걸...
움직이지 마세요, 제가 확인할게요!
나는 손으로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댔고, 헨리에타가 내 총상을 살펴봤다.
두 발은 방탄조끼가 막았지만, 한 발이 복부에...
관통상이에요, 당장 지혈할게요!
이래서 반쪽짜리 방탄복은 영 못미덥다니까...
하지만 헨리에타가 구급상자를 열기도 전에 총알이 근처의 벽에 구멍을 냈다.
적이 더 왔어요!
젠장... 부상 조치는 나중에 하고, 적부터 해치워!
하지만...!
놈들이 접근하면 우리 둘 다 끝장이야, 어서 반격해!
네!
헨리에타는 즉시 반대쪽 벽에 숨어, 돌격해 오는 적들을 향해 사격했다.
순식간에 선두의 두 명이 고꾸라졌고, 나머지 놈들은 허겁지겁 주변의 엄폐물 뒤로 숨었다.
놈들이 수류탄을 던질 거리까지 오게 둬선 안 돼.
잔탄수에 주의하면서, 최대한 점사로 제압해.
네!
이 정도 부상으로 죽을 내가 아니다.
이건 애들 장난인 수준으로 더 심한 일도 겪어봤는데, 고작 테러리스트에게 당할쏘냐. 아직 버틸 수 있다...
헨리에타가 시간을 버는 동안, 난 무릎으로 서서 고통을 참으며 지혈대로 배를 감쌌다.
진통제가 돌기 시작해 한결 나아지고 난 후, 나는 빈 탄창을 버리고 남은 탄약을 확인했다.
...남은 탄창은 두 개.
최대한 벽 가까이 기어가, 엄폐물에 몸을 의탁한 채로 헨리에타와 함께 반격을 퍼부었다.
<color=#00CCFF>카리나, 헨리에타를 찾았어. 작업은 얼마나 더 걸려?</color>
<color=#00CCFF>거의 다 됐어요, 조금만 더 버텨 주세요!</color>
서둘러 줘...
열정적인 손님들이 끊이질 않는다고...
"만약 누군가가 좋아서 미칠 것만 같은데..."
......
"그럼에도 그 사랑이 영원히 보상받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면..."
......
"저라면... 상대를 죽이고..."
......
"그리고..."
이 자식들은 어떻게 끝이 없냐!!
시체가 산처럼 쌓이면서, 주위의 공간이 서서히 사라져 갔다.
아마 신 토리노 원전의 모든 제5공화국파 놈들이 모두 여기로 모여든 듯했다.
이제 남은 적은 단 3명. 하지만 남은 것도 악착같은 놈들이고, 우리가 탄약이 거의 바닥난 것을 눈치채기가 무섭게 이판사판으로 달려들었다.
돌격소총은 진작에 탄창이 텅텅 비었기에, 권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권총에선 달칵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젠장! 이것도 바닥났나!
달려드는 적을 피해 엄폐물로 돌아가려 했지만, 부상을 입은 몸은 제대로 움직이질 않았고, 적은 그대로 총구를 내 머리를 향해 겨눴다.
<size=60>죠제 씨!!</size>
위기일발의 순간, 헨리에타가 내 앞에 뛰어들었다.
총구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고, 발사된 총탄이 헨리에타의 가슴팍에 박혔다. 하지만 헨리에타도 동시에 단도를 적에게 던졌다.
칼은 방탄모를 뚫고 적의 미간에 박혔다.
탄환에 맞은 충격으로 헨리에타는 나와 부딪혔고, 그걸 본 나머지 적병 둘이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시간이 느려진 것처럼 느껴졌다. 손의 권총을 내던지고 헨리에타의 허리춤에서 그녀의 권총을 뽑아 들었다.
이 총이 무엇인진 자료를 봐서 알았다.
죠제포 클로체가 헨리에타를 처음 만났을 때 준 SIG P239였다.
난 그대로 P239를 최후의 두 제5공화국파 병사들에게 향했고, 상대도 우리를 조준했다.
타앙——!
타앙————!!
난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고, 헨리에타도 내 위에 엎어졌다.
...아직 실력이 녹슬진 않았네. 평소에 훈련을 꾸준히 한 보람이 있어.
죠제 씨!
난 괜찮아. 헨리에타는?
저도... 괜찮아요. 방탄조끼가 총알을 막아 줬어요.
헨리에타가 몸을 일으켰다. 그 말대로, 그녀의 방탄조끼엔 납작해진 탄두 두 개가 박혀 있었다.
휴우... 다행이다...
나도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헨리에타는 나를 등지고, 엉망이 된 터빈 동을 바라봤다.
바닥에는 온통 제5공화국파 병사들의 시체로 가득했고, 피가 지면을 검붉은색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초연 냄새 가득한 연기 속에서, 헨리에타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수천 번이나 싸워서... 드디어...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헨리에타의 뒷모습에, 나는 손을 뻗어 그애를 다독여야 할지 망설여졌다.
저희... 이긴 건가요?
그래, 우리가 이겼어.
......
이제 여기서 나가자.
그렇게 말하면서, 난 헨리에타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손을 피하더니, 뒤돌아 내게서 뒷걸음질 쳤다.
......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리고 그녀의 총구가 날 향했다.
아뇨...
당신과 함께 떠나진 않겠어요.
헨리――
오지 마세요! 가까이 오면 쏘겠어요.
......
왜?
모르는 척하기예요?
우리가 이겼잖아.
그런데도, 예전처럼 날 쏠 셈이야?
아뇨... 전 당신을 쏜 적 없어요.
단 한 번도...
당신은... 죠제 씨가 아니잖아요.
......
눈치챘구나.
사실, 전 당신이 죠제 씨라 믿고 싶었어요. 그래서 계속 저 자신을 속였어요. 당신은 죠제 씨가 맞다고, 저 자신에게 거짓말했어요.
하지만, 죠제 씨가 이런 식으로 싸우실 리 없어요...
죠제 씨가 의체를 잊으실 리 없어요...
죠제 씨가 동료 담당관을 잊으실 리가 없어요...
죠제 씨가, 프라텔로의 신조와 관계를 절대 잊으실 리 없다고요!
왜냐면, 죠제 씨는... 죠제 씨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죠. 애당초, 저와 죠제 씨만의 추억을 알 리도 없겠죠.
당신은 그저 담당관인 척하고 있었을 뿐이에요.
......
그래서 날 쏘려고?
내가 널 속였으니까?
아뇨... 당신을 원망하진 않아요. 덕분에 깨달았거든요.
당신은 죠제 씨가 아니고, 저도 헨리에타가 아니란 사실을.
여기 있는 것 전부, 여기 있는 사람 모두, 다 시뮬레이션이에요. 이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의 감정도... 다 허구였어요...
......
저희 모두... 시뮬레이션으로 재현된 기억의 단편에 불과했어요. 모두... 모두 진작에 죽었어요.
......죠제 씨도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시겠죠.
헨리에타...
그래도... 괜찮아요. 이제 아쉬운 건 없어요.
죠제 씨와 다시는 만날 수 없다면... 이 정원을 더는 지킬 수 없다면...
그럼, 마지막으로 여태까지 줄곧 실패하기만 하던 곳을 승리로 장식하는 것도 나쁘진 않잖아요?
클라에스가 말한 대로였어요, 모든 건 끝날 때 끝나야 했어요. 그게 이야기가 마땅히 가질 결말이에요.
제가 모두를 속였단 것도 이미 아시겠죠? 당신도 이제 당신의 프라텔로를 다 되찾으셨고요.
그럼 됐어요... 그걸로 된 거예요.
여긴 이제 사라질 거예요. 모든 것이 끝나기 전에, 제 소원을 이루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누구든, 정말 고마워요.
끝...?
아니, 아직 끝이 아니야.
너희에겐 아직 희망이 있어. 지금 내가――
지금 뭘 하고 계신진 알아요.
권한도 이미 다 가져가셨으니, 언제든지 떠나셔도 돼요.
..."너"는?
전 모두와 함께 그곳에 갈 자격이 없어요. 제 친구들을... 잘 부탁드려요.
어째서?
전 모두에게 나쁜 짓을 했는걸요... 그리고...
죠제 씨가 없으면... 담당관이 없으면... 의체는 존재할 이유가 없어요.
너무 많이 반복해서... 전 이제 지쳤어요.
그러니까...
......
그러니까... 그만 돌아가 주세요. 죠제 씨의 모습으로 저를 찾아와 주셔서, 제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서, 너 혼자 여기 남겠다고?
아뇨, 이 공간은 곧 사라져요. 여기 남아 있으면, 저도 함께 사라지겠죠.
......
난 더는 망설이지 않고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헨리에타도 한 걸음 더 물러섰다.
오지 마세요.
가까이 가면, 쏘려고?
......저는 이제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 당신은 어차피 저와 아무 관계도 아니잖아요.
당신은 담당관이 아니면서... 죠제 씨가 아니면서...
맞아, 난 죠제포 클로체가 아니지.
무슨 담당관인지 뭔지도 아니고, 의체와는 아무 상관 없어.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도 의체가 아니야. 그저 도움이 필요한 여자애지.
아뇨! 전 여자애가 아니에요!
전 의체예요! 기계에요! 킬러라고요!
죠제 씨가 없는 세상, 미련 따위 없어요!
그래도 넌 살아가야 해, 이미 죽은 이의 무거운 과거를 짊어졌더라도.
죠제 씨도, 네가 이 공간과 함께 사라지길 원치 않았을 거야.
제가 진짜 헨리에타라면... 그렇겠죠.
하지만 전 헨리에타가 아니에요, 그저 데이터에 불과해요.
그저 악몽에 사로잡힌 유령이에요. 진작에 죽었는데, 아직도 남아 있는 망령이라고요! 제가 계속 존재할 이유가 대체 어디 있죠?!
그러니?
그래요...
당신의 은혜는, 마지막까지 감사할게요.
하지만... 이만 돌아가 주세요.
그럼 이 권총은 안 돌려줘도 되겠지?
!!!
헨리에타가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내 손에서 그 권총을 뺏으려 했다.
하지만 난 잽싸게 물러나, 헨리에타가 아직 사라지지 않은 지면에 발을 디디게 만들었다.
미련 따윈 없다며?
전...
헨리에타는 눈물 어린 눈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네가 이 권총에 반응했단 건, 아무리 시뮬레이션이라도 그와의 추억이 거짓이 아니라는 증거야.
그것도 부정한다면... 이 총을 그냥 버려도 상관없겠지?
아... 안 돼요!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면서, 헨리에타를 한 걸음씩 무너져 가는 공간의 중앙으로 데려왔다.
내가 걸음을 멈추자 그녀도 제자리에 멈춰 섰다.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됐지만, 헨리에타는 망설였다. 대신, 내가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자, 돌려줄게.
......
소중한 보물이지?
......네.
헨리에타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내가 그 권총을 내밀자, 헨리에타는 무기를 놓고 내 손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이 담긴 보물을 돌려받았다.
죠제 씨...
헨리에타는 권총을 품에 꼬옥 안았고, 눈가에 맺혔던 눈물도 흘러내렸다.
그 사람은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아무리 그리워하며 기다려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헨리에타는 입술을 깨물어 울음소리를 참았다. 마음이 찢어지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참았다.
<color=#00CCFF>지휘관님, 공간이 붕괴되기 직전이에요! 당장 나오셔야――</color>
<color=#00CCFF>잠깐만, 잠깐이면 되니까...</color>
조용히 훌쩍이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역시 그만두고 팔을 내렸다.
헨리에타가 고개를 숙여, 손 안의 권총을 바라봤다. 한 방울 한 방울, 눈물이 권총의 총몸에 떨어졌다.
저... 어떡하면 좋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게 묻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난 그저 묵묵히 기다렸다.
주변의 세계가 점점 무너져 가는 와중, 우린 그저 조용히 마주서고 있었다.
잠시 후, 헨리에타가 고개를 들었다.
떠나간 사람은 돌아오지 않지만, 남은 사람은 계속 살아나가야 해.
자신이 무엇인지에 집착할 필요는 없어. 의체가 아니어도, 진짜 헨리에타가 아니어도, 넌 계속 살아갈 자격이 있어.
저 끝에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든, 어떤 방식으로든.
하지만... 그럼 전 무엇으로서 살아가야 하나요?
헨리에타도, 의체도 아닌 제게 존재하는 의미는 대체 뭐죠?
그거야 나도 모르지.
너 자신의 존재 의미는 너 스스로 정하는 거니까.
그래도, 이 공간을 만들었던 사람은 분명 너희가 세상에게 계속 기억되길 바랐다고 생각해.
너희들의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도록, 과거가 담긴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이곳을 만들었을 거야.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너희는 너희야. 싸움이 끝난 너희들은 예전보다 행복하게 살 자격이 있어.
싸우지 않아도, 과거의 상처를 짊어지지 않아도, 과거의 자신이 이미 죽었더라도, 헨리에타는 헨리에타야.
......
헨리에타는 헨리에타...
헨리에타의 이야기를, 네가 계속 써 내려 가는 거야.
비록 진짜 헨리에타는 아니지만, 그녀의 모든 것을 이어받은 넌 지금 이렇게 존재하고 있어.
헨리에타의 과거와 미래, 모두 너에게 달린 거지.
아니면, 아직도 이 모든 걸 받아들이기 싫니? 모두에게 이대로 잊혀져도 괜찮아?
전... 전 잊혀지기 싫어요...
세상에서 잊혀지는 건 누구도 좋아하지 않아. 그건 죽은 이들이라도 마찬가지지.
네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상, 그들의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아. 그들을 위해서라도 살아가렴.
비록 세상이 전보다 더 나아지지 않았을진 몰라도, 그들 같은 사람이 있는 한 아직 이 세상에 희망은 있어.
그러니 너희의 추억도 사라져선 안 돼. 이대로 모두에게서 잊혀져선 안 돼.
모두가... 모두가 잊혀지는 건 싫어요...
죠제 씨... 공사의 다른 분들...
그럼 내게 들려줄 수 있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헨리에타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친구들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
......네.
알겠습니다.
들려드릴게요, 몇 번이고 들려드릴게요. 당신이 절대 잊지 못하도록.
하하, 기대할게.
헨리에타가 뒤를 돌아봤을 때, 터빈 동은 사라지고 없었다.
수많은 생명들이 꺼져 갔던 곳이, 지금은 공백이 되었다.
하지만 과거의 끝은 미래로의 시작을 알리는 기적소리다.
안녕, "비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