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를 뚫고
M870팀 서브 스토리 1
00시 06분, 뉴욕 맨해튼.
한차례의 격전이 끝난 뒤, 한 형체가 산처럼 쌓인 시체 더미를 밟고 주차장 한가운데에 버려진 자동차 위로 올라섰다.
크하하하핫! 우리가 왔다!
맨해튼의 얼간이들아, 각오해라!
뭐야 이게, 무슨 삼류 영화의 악당 등장 씬도 아니고...
에이, 악당이 없으면 게임에 재미가 없지~♪
뒤이어 두 명의 작은 형체가 나타나, 조금 힘겹게 차 지붕 위로 올랐다.
스톱! 대사 또 틀렸잖아! 왜 자꾸 대사를 멋대로 바꿔대!?
너네의 마인드맵 용량이 작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좀 심각한 거 아니야?
몇 마디도 안 되는 대사에 리허설까지 잔뜩 했는데 또 까먹었어?!
아니 그게 아니라, 네... 누님이 짠 대사가 너무 쪽팔린단 말이야.
아무렴 어때, 등장 씬은 스킵하고 바로 맨해튼 침공을 개시하자!
ART556이 가리킨 손가락 앞에는, 21세기 초 맨해튼의 560번 지하 주차장이 펼쳐져 있었다.
흥, 수십 년 전의 주차장은 이런 꼴이구나?
그리폰의 지하 창고랑 별반 다를 바 없네.
뭐랄까, 고전적인 감성이 물씬 풍기는걸?
착각하지 마셔 아가씨들, 여기 주차칸 하나만 해도 너네가 몇 년을 프레임 빠지게 일해도 살 수 있을까 말까니까.
뭐어? 이딴 데를 누가 돈 주고 사?
누님, 이 게임 엄청 오래된 작품인데, 정말 우리 말고도 접속한 사람이 있을까?
그야 당연하지! 내가 왜 "맨해튼 순찰대"를 만들어서 한번 제대로 놀아보자고 너희를 불렀겠어?
후후후, 그래서 원래 하려던 일도 미루고 누님을 따라 왔다구.
게임 속에서라도 경찰 놀이 실컷 해보고 싶었어!
경찰 행세를 하면서 횡포를 부리는 거야♪
그런데 정말 우승 상금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행세라니 말조심해라! 그리고 상금이야 받으면 좋겠지만, 우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신나게 즐기기니깐♪
이 누님만 믿으라고, 상금이 아니어도 벌금 딱지로 질리게 벌 수 있어! 크흐흐흐...
그래 그래, 모처럼 무슨 짓을 해도 안 혼나는 기회가 생겼는데 그까짓 돈이 중요해? 우히힛♪
옳소 옳소! 그럼 모두 함께 잘해보자!
헤헤헤헤헤...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세 인형은 서로에게 하이파이브를 하며 상쾌하게 "순찰"의 시작을 선언했다.
하지만 시선이 분산된 순간, ART556은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P7의 등에 몰래 점착폭탄을 붙였다.
헤, 헤, 헤... 어디 실력 좀 보자고, P7...
아 참, 깜빡할 뻔했네. ART556, 네 명성은 전부터 많이 들었어! 이렇게 협력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사람들이 "말썽쟁이 양대산맥"이네 뭐네 해서 나중에는 대결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니까?
하하하, 이런 게 바로 인연이란 거지! 앞으로도 잘 부탁해♥
인연은 무슨, 내가 안 불렀으면 어디서 빈둥대고 있었을 녀석들이.
응, 다 M870 누님 덕분이야!
고마워 누님! 우리의 만남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방금 주운 식량을 나눠...
...주려고 했는데 주차장 입구에다 두고 왔네. 금방 갔다 올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잠깐!
P7은 찰나에 스친 그 위험한 기운을 놓치지 않았다.
나도 들어 줄게, 같이 가자!
괘, 괜찮아! 나 혼자서 다 가져올 수 있어!
에이, 사양 말고~ 우리, "같은 편"이잖아?
ART556은 차 지붕에서 뛰어내려 도망치려 했지만, P7이 그녀의 팔을 단단히 붙잡고 놓질 않았다.
다른 한 손에 리모컨을 쥐고 있는 ART556으로선 붙잡힌 팔로 P7을 밀어낼 수밖에 없었고, 둘의 실랑이는 점점 격해졌다.
물건 안 많으니까 넌 여기서 누님 말상대나 하고 있어!
그게 무슨 소리야~? 혼자 가면 위험하지~!
야, 니들 뭐하냐? 나 놔두고 드라마라도 찍어?
쓸데없는 실랑이에 짜증난 M870이 두 꼬맹이들을 떼어냈다.
예상치 못하게 밀쳐진 탓에 ART556은 실수로 리모컨을 떨어뜨렸고, 분위기는 그대로 바깥의 겨울 날씨보다도 싸늘해졌다.
......
망했다.
......
내 이럴 줄 알았지. ART556 이 녀석, 벌써 이렇게 나왔구나!
이건 또 뭐――?!
리모컨을 주으려 허리를 숙이는 M870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P7과 ART556이 동시에 리모컨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리고...
빠악! 두 머리가 충돌했다.
그리고 세 인형은 서로 엉겨붙은 채로 차 위에서 굴러떨어졌다.
끄아아아악!!
아으으으으...
아직 눈앞이 번쩍이는 와중, ART556은 P7의 등에 있어야 할 점착폭탄이 차 창문에 붙은 것을 보았다.
들키기 전에 회수하면 넘어갈 수 있어!
아야야... 뭐야 너네들, 이거 하나 뺏으려고 그렇게 치고박고 싸웠어?
뭔데 이게, 안에 캣닢이라도 들었냐?
아무것도 모르는 M870은 리모컨을 쥐고 이리저리 살펴봤다.
헉!
잠깐만 누님! 그건――
그리고 몸을 일으켜 세우면서, M870은 무심코 리모컨의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그 시각, 지하 주차장 밖.
야아, 와서 좀 봐봐아, 빨리이...
...또 "한 병 더" 당첨됐어?
아니 그게 아니라! AK-47 좀 보라고오...
VSK-94는 갸우뚱하며 AK-47이 있는 방향을 보았다.
어디 보자, 다크존으로 가려면 앞으로...
으에, 이렇게나 머러!? 이 에이스더러 맨발로 거기까지 걸어가란 마리야?!
아니 이 밥팅아, 그건 맨해튼 끝까지고! 우리가 갈 곳은 여기라니까 그러네...
AK-47은 시모노프와 함께 지도를 보면서 논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손... AK-47 손 좀 잘 봐봐...
여전히 갸우뚱하며, VSK-94는 이번엔 초점을 지도 위 AK-47의 손가락에 집중했다.
흐음... 지금 우리의 행군 속도라면 대략 잡아 8시간 정도 걸리겠다.
그럼 더 서둘러야지!
그 사이에 좋은 자리 다 뺏기겠다!
그러체! A91, VSK! 속도를 올린다!
알았어.
동지드――을! 승리를 향해 전진이드아!
살을 에는 칼바람을 맞으며, AK-47은 위풍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 그녀 옆의 시모노프는 또 다시 탄산음료 한 병을 단숨에 비웠다.
아이 진짜, 여기 술은 물을 너무 많이 탔네...
방금 봤지이...?
AK-47 선배의 손가락이 늘어났단 소리거든 제발 하지 말아 줘.
아니아니아니, 손가락이 몇 개 줄었짜나!
한쪽 손가락이 5개야! 근데 이거 봐, 내 이쪽 손은 손가락이 8개라구!
......
A91의 손가락 사이로, VSK-94는 시모노프가 휘청이며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전진! 전진! 목표를 향해 전진!
어라, 너네 언제 우리보다 앞서 가써?
......
선배가 반대 방향이야.
VSK-94는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양손에 각각 A91과 시모노프의 손을 끌고 AK-47을 따라잡았다.
잠시 후, 지하 주차장 입구 부근에서 AK-47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흐흐흐... 여기다, 560번 지하 주차장.
이얏호~!
8기통 타고 가즈아――!!
시동 걸리는 것만 찾아내면 이동 시간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어!
저기... 혹시나 싶어서 말하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본 차량은 전부 작동 안 했단 걸 잊진 않았지?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고 계속 찾아봐야지!
세기의 명마가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알아!
VSK-94는 어두컴컴한 지하 주차장의 입구와 잔뜩 흥분한 팀원들을 번갈아 보았다.
빠르게 돌아가는 그녀의 마인드맵이, 팀이 온갖 방식으로 허무하게 전멸하는 시뮬레이션을 수도 없이 연산했다.
잠시 후, VSK-94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입을 열었다.
그럼 내가 먼저 정찰하고 올게.
지금 우리 상태로는 무작정 들어갔다간 아마 살아 나오지 못할 거야.
아 글쎄 걱정 말라니까? 저 봐, 무지 조용하잖아!
그렇게 걱정되면 술병 하나 던져서 반응 없나 보자고.
그런 단순무식한 방법이 통하려나...
AK-47이 주차장 입구의 내리막길로 막 비운 병을 굴려 보내고 귀를 기울였다.
봐, 아무 일도 없잖――
퍼――엉!!
바로 근처에서 일어난 폭발이 AK-47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
......
내가 몇 뻔을 말해써 AK-47!
술병 함부로 버리면 천벌받는대찌!
탄산음료인데.
으흐흐, 반응 한번 격하네!
까다로운 싸움이 되겠어. 모두 비켜! 이 전장은 내가 지배한다!
난데없이 목소리가 험악해진 A91이 비수를 뽑아 들어, 날카로운 칼날을 앞으로 뻗었다.
야 이 겁쟁이드라아아! 당장 튀어나와아아!
잘한다 A91! 바로 그 기세야!
가라 A91~!
선배, 피스톨 소드 거꾸로 잡았어! 그렇게 잡고 쏘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VSK-94가 자리를 박차고 뛰어가 A91을 저지해, 파지법을 고쳐 주려 했다.
NRS-2는 칼끝을 자신한테 향해야 해!
아앙? NRS가 뭔데? 엥, 뭐야, 이거 놔!
하지만 A91은 VSK-94가 칼을 뺏으려는 줄 알고 반발했다.
이바 신참! A91이 전투 모드일 때 가까이 가면 위험해!
야, 너네 뭐하는 거야?!
아래에 있는 놈들이 총 쏘면 어쩌려고 그래!
결국 AK-47와 시모노프까지 비수 쟁탈전에 끼어들었다.
뭐야, 비겁하게 10 대 1이냐아아!!
엥, 10명? 어디!? 아무튼 모두 손 놔아!!
손톱으로 내 손 찌르지나 마!
내가 할 테니까 다들 방해 좀 말아 봐!
이게... 여럿이서 덤비면 내 칼을 뺏을 수 있을 줄 알고?!
얼른 안 놔!? 나 몰로토브 칵테일 잔뜩 있어!
...뭐?!
네가 다 마신 술병 마리야? 그거 내가 다 버려써!
뭐어? 이 나쁜 자식, 그러지 마! 왜 자꾸 내 술병 버려대!
AK-47이 술병 던지면 항상 귀차는 일이 생긴단 말야!
아니 그거랑 나랑 뭔 상관인데?!
아... 잠깐만. AK-47, 너 방금 마신 술병 어디 가써?
어딨긴, 여기... 우왁!?
술병을 찾는 AK-47에게 모두의 주의가 끌린 그때, A91이 몸부림쳐 모두를 밀쳐냈다.
그리고 시모노프가 넘어진 순간, 내리막길을 따라 빈병 몇 개가 A91의 발치로 굴러들었다.
찾았다, 내 칵테일!
A91은 반가운 마음에 몸을 앞으로 숙였다.
...다시 지하 주차장 내부. 폭발 후, 세 "경찰"들은 바닥에 뻗어 있었다.
......
누구 짓이니――?
......
쟤요.
너냐?
아... 그게...
M870은 천천히 일어나, ART556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살기 그 자체였다.
누, 누님? 일단 제 말부터 들어――
듣긴 뭘 들어! 걸레짝된 피통가지고 어떻게 공무 집행하란 거야!
지, 진정해 누님! 이 정도 체력으로 충분한 허접들이야 널리고 널렸을 테니까...
허접같은 소리하고 앉았네, 이 상태로 누굴 이겨?! 아주 술에 절은 놈들 아니면――
떼구르르르...
그때, 어디선가 유리병이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M870은 하던 말을 멈추고, 곧장 P7과 ART556을 덥썩 집어 들어 함께 차량 뒤로 몸을 숨겼다.
뭐, 뭐였어?
쉬잇. 누가 온다.
세 인형들은 정신을 곤두세우고 주차장의 입구를 주시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잘못 들은 거 아니야?
폭발로 청각 모듈 고장나기라도 했어?
입 다물고 주위 경계해.
잠시 후.
나 무릎 아파...
아무 일도 없네. 이제 됐지 누님?
아 글쎄 기다려 보라고.
그리고 마침내, 주차장 입구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와아아아아——
아하하하――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아~!!
예상을 아득히 벗어난 소리에 M870 팀이 경악에서 헤어나오기도 전에,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뭉치"가 주차장으로 굴러들어왔다.
저거... 뭐야?
그 꽐라 녀석들 같은데? 아니 근데, 이 게임 아이템 중에 술이 있던가?
꽐라들이 취하는데 술이 필요하겠냐? 쟤넨 그냥 생수 한 병 줘도 헤롱헤롱댄다고.
저 봐라 저, 사이다를 술마냥 퍼마시고 앉았지.
헤헤, 딱 좋은 목표가 굴러들어왔네!
음? 저기 쟤는 처음 보는데, 누구야?
저 금발머리? VSK-94란 앤데, 우리 기지에 새로 온지 얼마 안 됐대.
그런데 왜 하필 쟤네랑 같이 있는 거지...
정신도 말짱한 게, 꽤 강해 보이는걸.
누님, 우리 승산 있을까?
저 꽐라들 셋뿐이었으면 낙승이었겠지만...
뭘 무서워하는 거야? 오히려 잘됐어, 저 VSK란 애를 우리 팀에 영입하면 더 대놓고 활보할 수 있지! 꺄하핫!
아, 생각났다. 내가 전에 들었는데...
주차장의 다른 쪽. 엉켜 있던 인형들이 비틀거리며 겨우 일어났다.
니들 대체 뭐야아?
이거 그냥 칼이거드은? 왜 뺏으려고 이 난리야아?
뭐...? 그냥 칼?
VSK-94가 A91의 팔을 붙잡고 다시 확인했다.
언뜻 보기엔 NRS-2 피스톨 소드와 매우 비슷했지만, 그저 비슷하기만 할 뿐 평범한 비수였다.
......
푸하하핫! 신참, 봤지?
우리랑 함께면 서프라이즈가 잔뜩이라구!
......
오히려 호러야...
그래도 방금 있었던 폭발을 잊지 않은 VSK-94는 주차장을 경계하며 적이 숨었을 만한 곳을 찾았다.
안심해, 적이 있었으면 진작부터 쏴댔을 테니까.
퍽이나 안심이 대게따!
내가 술병 함부로 버리지 말라고 몇――번을 말했는데, 엉!?
시모노프...? 왜 내 멱살을 잡아?
하하하! 미안 미안, 다음엔 조심할게!
아무튼 주차장에 무사 진입한 걸 축하하는 뜻으로, 다 같이 건배~!
뭐? 예정보다 훨씬 지체했는데 여기서 또 마신다고?
이게 바로 보드카 스피릿이란 거지!
모르겠음 일단 마시고 봐!
신참, 술은 우리가 우정과 팀워크를 다지는 방식이라고.
우리랑 더 잘 어울리고 싶으면 너도 얼른 한잔해!
아 참, 근데 나 술 다 떨어졌어. A91, 신병한테 한 병 따 줘!
어엉? 내 거 주라고...?
A91이 흠칫하며 자신의 배낭을 뒤졌다. VSK-94는 배낭 속을 휘적이는 그녀의 손 사이로 반짝이는 탄산음료병들을 분명히 봤지만, A91은 끝내 뻔뻔한 얼굴로 배낭의 지퍼를 닫았다.
어떡하지, 나도 다 떨어졌네에...
나도 이게 마지막이야.
그, 그럼 난 주변을 정찰하고 올게!
하는 수 없지. 갔다 와~
VSK-94는 자신의 물건을 챙기고 후다닥 주차장 안으로 향했다.
자아~ 그럼, 우리가 여기까지 온 걸 축하하면서!
우리를 기다리는 승리를 위하여~ 건배!
마셔 마셔, 쭉쭉 마셔! 취할 때까지 마신다아――!
M870 팀이 숨죽이고 지켜보는 앞에서, 주정뱅이 인형들은 탄산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꿀꺽꿀꺽... 캬하――!! 조오~아쓰, 나 저 차 시동 걸리나 보고 오께에... 꺼억.
안이 넓은 차로 부타캐~
짭새한테 쪼낄 때 낑기기 싫어어...
소용없어, AK-47이 핸들을 잡으면 아무리 자리가 널버도 부딪힐 수밖에 없는거얼~
아 시꺼! 술 마시고 운전하는 거 또 카리나한테 걸렸다간――
...잠깐, 여긴 게임 안이었지? 에헤헤...
으흐흐, 그럼 지히간도 카이나도 머라 못하겠네에~
야 이 쫄보드랑, 혼나는 게 무서버서 술 안 마실 거냐!
머래, 누가 혼나는 게 무섭다고.
들켜 봤자 금주 교정 프로그램 이수받는 게 다구마안...
어디 쬐끄만 방에다 가둬 노코, 하루 좽~일 교통 안전법 교육 영상 틀어 놓고, 술 한 방울도 안 주는 거밖에 안 대는데 머!
이 그리폰의 에이스가 그딴 걸 무서워하겠어?!
그치 그치...
괴로운 기억이 떠오르자, 주정뱅이 인형들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그리고 그때, 눈부신 서치라이트와 함께 우렁찬 고함이 그녀들을 덮쳤다.
거기 모두 손 들어!
그렇게 취하고도 운전할 생각이냐!?
누구도 도망칠 생각 마라!
낯선 세 모습이 AK47 옆의 자동차 지붕 위에 나타났다.
NYPD다, 꼼짝 마!
음주운전 집중 단속 기간에 배짱 한번 좋구나!
경찰이다!
손 들어!
......
......
......
얌마! 리액션 좀 해봐!
제기랄! 오늘 집중 단속 날이었어!?
잔말 말고 빨랑 튀어!
시모노프! 출구 이쪽이야!
잠까아안! 여기 게임 안이잖아?
아, 맞다. 뭐야 그럼, 왜 경찰이 여기 있어?
그럼 왜 그러케 걸음아 나 살려라야?
이건 몸이 저절로 반응하는 거고!
경찰이란 소리만 들으면 나도 모르게 도망치게 되더라!
으이이 너네 두우울, 나보다 빨리 튈 생각 마아아!
눈 깜짝할 새에, 세 주정뱅이 인형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황량한 주차장엔 어안이 벙벙한 M870 팀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
...저거, 인형이 낼 수 있는 속도야?
와 씨, 핵 쓴 줄 알았네!
선배들, 나 돌아왔어!
앗, 누님! VSK 왔어!
어떡하지?!
침착해!
VSK-94가 정찰을 마치고 돌아왔지만, AK-47 일행은 온데간데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는 낯선 세 인형이 그녀를 맞이했다.
NYPD다, 음주운전 집중 단속 중이야!
거기 너! 손 들어!
손 들어!
번쩍 들어!
......
VSK-94는 체념한 듯 얌전히 손을 들고, M870이 들이댄 음주측정기를 불었다.
...흥, 정상 수치네.
저기... 경찰 동지, 혹시 내 팀 못 봤어?
조금 전만 해도 여기 있었는데.
여기서 사이다로 술판 벌이던 그 꽐라들 말이야?
...응, 맞을 거야.
우릴 보자마자 도망치더라!
슝~ 하고 사라졌어!
역시...
어이없어하는 VSK-94의 모습을 살피면서, M870은 P7과 ART556에게 눈치를 줬다.
NYPD 맨해튼 담당 M870이야. 그리고 얘네는 내 부하 P7이랑 ART556이고.
반갑습니다 아가씨, 순경 P7이라고 합니다.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순경 ART556입니다.
어... 너희도 그리폰 인형 맞지?
왜 뉴욕 경찰을 사칭해?
이게 우리 임무니까지. 임무를 받은 이상, 제대로 수행해야지 않겠어?
게임 속 폐허가 된 도시라 해도, 경찰로서 정의 수호에 앞장서야지.
옳소!
맞아 맞아!
VSK-94는 이 경찰 행세를 하는 인형들이 상처투성이인 것을 발견했다.
......
아, 이 상처? 좀 전에 술 취한 폭도들을 처단하던 중에 폭발에 휘말려서 생긴 거야.
맞아 맞... 응?
그런 설정 있었나?
애드리브 몰라? 애드리브!
...고생하네.
하아아... 안 그래도 인력 부족인데, 내 부하들은 경험 부족이라서 말이지...
맨해튼만 해도 엄청 넓은데 너희들뿐이라고?
다른 경찰들은 다 떠났어...?
그래, 너도 오면서 지금 뉴욕이 어떤 상황인지 봤지?
응, 엄청 심각했어...
우리들만으로라도 도시의 정의를 수호하면서 동료를 모으고 있지만, 역시 일이 잘 안 풀리네.
......
우리 얘기는 이쯤하고...
아가씨, 네 친구들은 다 도망가버렸는데 이제 어떡할 거야?
난...
내면의 갈등을 겪는 VSK-94에게, P7과 ART556이 타이밍 좋게 천진난만한 얼굴로 그녀에게 달라붙었다.
그 초롱초롱한 눈빛에, VSK-94는 그 주정뱅이들의 흐리멍텅한 눈이 떠올랐다.
범죄자라지만, 일말의 주저도 없이 동료를 버리고 도망치는 놈들은 처음 봤다니까.
걱정 마, 우린 어려움에 처한 시민을 끝까지 도울 거니까.
혼자 행동하기 무섭다면, 그 녀석들을 찾을 때까지 우리가 같이 있어 줄게.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우리의 영광입니다!
......아니, 됐어.
그 술고래들한테 보드카 살 돈을 쥐여 주느니, 너희와 함께 도시의 정의를 수호할래.
뭐...? 그럼...!
내 이름은 VSK-94, 그리폰에 들어오기 전에 한동안 파출소에서 일한 적 있으니 내 경험이 도움이 될 거야.
나도 너희 팀에 끼워 줘.
얼마든지! 우리야 대환영이지!
그럼 잘 부탁할게.
만세!
잘됐다!
고마워, 넌 우리 맨해튼 순찰대의 큰 힘이 될 거야!
응.
VSK-94는 자신의 짐을 정리하고 앞장서 움직였다.
그런 그녀 뒤에서, 세 인형들은 사악한 안광을 번뜩였다.
헤헤, 성공이다.
싱겁다 싱거워!
이게 다~ 이 누님의 완벽한 계획 덕분 아니겠냐!
십몇 분 전.
아, 생각났다. 내가 전에 들었는데...
뭔데?
얼마 전에 경찰 몇 명이 기지로 와서 지휘관을 찾았는데, 지휘관 표정이 무지무지 심각하길래 궁금해서 사~알짝 엿들었거든?
대충 요약하자면, AK-47네 녀석들이 과속 음주운전하다 단속 중이던 경찰한테 잡혀 왔더라고.
벌금 왕창 깨져서 카리나는 혼절할 뻔했고, 지휘관도 어~엄청 화나서 걔네를 아주 호되게 혼냈어.
그러니까, 저 녀석들은 경찰을 무서워한다?
푸히히히힛, 진짜 웃긴다!
뭐, 저 꽐라들 상대하는덴 딱이겠네.
하지만 저 VSK-94란 녀석은 아는 게 없으니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네...
우리 셋이서 쟤 한 명을 못 이기겠어?
네 폭탄만 아니었어도 우리가 지금 여기서 쭈그리고 있을 필요 없었거든?
우으으... 미안하다니까...
오! 누님, VSK가 딴 데 갔어!
운이 따라 주네. 그럼 가 보실까.
VSK가 갑자기 돌아오면 어떡해?
흐흥~ 좋은 수가 떠올랐으니까 괜찮아.
뭔데?
지금 가서, 저놈들을 음주운전 혐의로 체포하는 거야.
그럼 우린 정당하게 범죄자를 처벌하는 쪽이 되지.
VSK가 자기 동료들을 구하려 할 텐데?
염려 붙들어 매셔, 걔가 돌아왔을 땐 우리가 정의를 행사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될 테니까.
그리고 저 녀석, 전직 경찰이 분명해. 분명 정의를 거역할 순 없겠지!
그러니까... 우리가 정의인 척해서 VSK를 꼬드기자고?
그 말 당장 취소해!
지금부터 우리는 진짜 정의의 사도다!
알았나!
알겠슴다!
문제없슴다!
후후후, 좋았어... 지금이다!
거기 모두 손들어!
중계 스트리밍 중인 지휘실.
카리나는 눈을 질끈 감고 손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그 괴로운 기억을 되살리지 마아아아...!
으으으... 그때 진짜 돈 엄청 깨졌는데...
진정해 카리나, 다 예전 일이잖니.
그래도 그때 벌금으로 잔고에서 빠져나간 액수를 다시 떠올리자니...
너무 가슴 아파요! 히잉...
그럼 저 베팅 화면을 봐봐, 기분이 어때?
와하! 우헤, 우헤헤...
탐스러운 숫자에, 카리나의 눈가에 맺혔던 눈물이 바로 증발했다.
좋았어, 그럼 실시간 투표를 계속할까요!
지금 생중계를 보고 계신 인형 여러분! 현재 두 팀 사이에서 중대한 인원 변동이 일어났습니다!
AK-47 팀 소속의 VSK-94가 M870 팀의 회유에 넘어가 전향했네요!
유능한 팀원을 잃은 AK-47 팀!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M870 팀에겐 과연 이것이 전환점이 되어 줄까요?
게임은 이제 막 시작된 참입니다, 채널 고정!
전체 대사 보기 (309줄)
00시 06분, 뉴욕 맨해튼.
한차례의 격전이 끝난 뒤, 한 형체가 산처럼 쌓인 시체 더미를 밟고 주차장 한가운데에 버려진 자동차 위로 올라섰다.
크하하하핫! 우리가 왔다!
맨해튼의 얼간이들아, 각오해라!
뭐야 이게, 무슨 삼류 영화의 악당 등장 씬도 아니고...
에이, 악당이 없으면 게임에 재미가 없지~♪
뒤이어 두 명의 작은 형체가 나타나, 조금 힘겹게 차 지붕 위로 올랐다.
스톱! 대사 또 틀렸잖아! 왜 자꾸 대사를 멋대로 바꿔대!?
너네의 마인드맵 용량이 작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좀 심각한 거 아니야?
몇 마디도 안 되는 대사에 리허설까지 잔뜩 했는데 또 까먹었어?!
아니 그게 아니라, 네... 누님이 짠 대사가 너무 쪽팔린단 말이야.
아무렴 어때, 등장 씬은 스킵하고 바로 맨해튼 침공을 개시하자!
ART556이 가리킨 손가락 앞에는, 21세기 초 맨해튼의 560번 지하 주차장이 펼쳐져 있었다.
흥, 수십 년 전의 주차장은 이런 꼴이구나?
그리폰의 지하 창고랑 별반 다를 바 없네.
뭐랄까, 고전적인 감성이 물씬 풍기는걸?
착각하지 마셔 아가씨들, 여기 주차칸 하나만 해도 너네가 몇 년을 프레임 빠지게 일해도 살 수 있을까 말까니까.
뭐어? 이딴 데를 누가 돈 주고 사?
누님, 이 게임 엄청 오래된 작품인데, 정말 우리 말고도 접속한 사람이 있을까?
그야 당연하지! 내가 왜 "맨해튼 순찰대"를 만들어서 한번 제대로 놀아보자고 너희를 불렀겠어?
후후후, 그래서 원래 하려던 일도 미루고 누님을 따라 왔다구.
게임 속에서라도 경찰 놀이 실컷 해보고 싶었어!
경찰 행세를 하면서 횡포를 부리는 거야♪
그런데 정말 우승 상금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행세라니 말조심해라! 그리고 상금이야 받으면 좋겠지만, 우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신나게 즐기기니깐♪
이 누님만 믿으라고, 상금이 아니어도 벌금 딱지로 질리게 벌 수 있어! 크흐흐흐...
그래 그래, 모처럼 무슨 짓을 해도 안 혼나는 기회가 생겼는데 그까짓 돈이 중요해? 우히힛♪
옳소 옳소! 그럼 모두 함께 잘해보자!
헤헤헤헤헤...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세 인형은 서로에게 하이파이브를 하며 상쾌하게 "순찰"의 시작을 선언했다.
하지만 시선이 분산된 순간, ART556은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P7의 등에 몰래 점착폭탄을 붙였다.
<color=#A9A9A9>헤, 헤, 헤... 어디 실력 좀 보자고, P7...</color>
아 참, 깜빡할 뻔했네. ART556, 네 명성은 전부터 많이 들었어! 이렇게 협력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사람들이 "말썽쟁이 양대산맥"이네 뭐네 해서 나중에는 대결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니까?
하하하, 이런 게 바로 인연이란 거지! 앞으로도 잘 부탁해♥
인연은 무슨, 내가 안 불렀으면 어디서 빈둥대고 있었을 녀석들이.
응, 다 M870 누님 덕분이야!
고마워 누님! 우리의 만남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방금 주운 식량을 나눠...
...주려고 했는데 주차장 입구에다 두고 왔네. 금방 갔다 올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잠깐!
P7은 찰나에 스친 그 위험한 기운을 놓치지 않았다.
나도 들어 줄게, 같이 가자!
괘, 괜찮아! 나 혼자서 다 가져올 수 있어!
에이, 사양 말고~ 우리, "같은 편"이잖아?
ART556은 차 지붕에서 뛰어내려 도망치려 했지만, P7이 그녀의 팔을 단단히 붙잡고 놓질 않았다.
다른 한 손에 리모컨을 쥐고 있는 ART556으로선 붙잡힌 팔로 P7을 밀어낼 수밖에 없었고, 둘의 실랑이는 점점 격해졌다.
물건 안 많으니까 넌 여기서 누님 말상대나 하고 있어!
그게 무슨 소리야~? 혼자 가면 위험하지~!
야, 니들 뭐하냐? 나 놔두고 드라마라도 찍어?
쓸데없는 실랑이에 짜증난 M870이 두 꼬맹이들을 떼어냈다.
예상치 못하게 밀쳐진 탓에 ART556은 실수로 리모컨을 떨어뜨렸고, 분위기는 그대로 바깥의 겨울 날씨보다도 싸늘해졌다.
......
<color=#A9A9A9>망했다.</color>
......
<color=#A9A9A9>내 이럴 줄 알았지. ART556 이 녀석, 벌써 이렇게 나왔구나!</color>
이건 또 뭐――?!
리모컨을 주으려 허리를 숙이는 M870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P7과 ART556이 동시에 리모컨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리고...
빠악! 두 머리가 충돌했다.
그리고 세 인형은 서로 엉겨붙은 채로 차 위에서 굴러떨어졌다.
끄아아아악!!
아으으으으...
아직 눈앞이 번쩍이는 와중, ART556은 P7의 등에 있어야 할 점착폭탄이 차 창문에 붙은 것을 보았다.
<color=#A9A9A9>들키기 전에 회수하면 넘어갈 수 있어!</color>
아야야... 뭐야 너네들, 이거 하나 뺏으려고 그렇게 치고박고 싸웠어?
뭔데 이게, 안에 캣닢이라도 들었냐?
아무것도 모르는 M870은 리모컨을 쥐고 이리저리 살펴봤다.
헉!
잠깐만 누님! 그건――
그리고 몸을 일으켜 세우면서, M870은 무심코 리모컨의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그 시각, 지하 주차장 밖.
야아, 와서 좀 봐봐아, 빨리이...
...또 "한 병 더" 당첨됐어?
아니 그게 아니라! AK-47 좀 보라고오...
VSK-94는 갸우뚱하며 AK-47이 있는 방향을 보았다.
어디 보자, 다크존으로 가려면 앞으로...
으에, 이렇게나 머러!? 이 에이스더러 맨발로 거기까지 걸어가란 마리야?!
아니 이 밥팅아, 그건 맨해튼 끝까지고! 우리가 갈 곳은 여기라니까 그러네...
AK-47은 시모노프와 함께 지도를 보면서 논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손... AK-47 손 좀 잘 봐봐...
여전히 갸우뚱하며, VSK-94는 이번엔 초점을 지도 위 AK-47의 손가락에 집중했다.
흐음... 지금 우리의 행군 속도라면 대략 잡아 8시간 정도 걸리겠다.
그럼 더 서둘러야지!
그 사이에 좋은 자리 다 뺏기겠다!
그러체! A91, VSK! 속도를 올린다!
알았어.
동지드――을! 승리를 향해 전진이드아!
살을 에는 칼바람을 맞으며, AK-47은 위풍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 그녀 옆의 시모노프는 또 다시 탄산음료 한 병을 단숨에 비웠다.
아이 진짜, 여기 술은 물을 너무 많이 탔네...
방금 봤지이...?
AK-47 선배의 손가락이 늘어났단 소리거든 제발 하지 말아 줘.
아니아니아니, 손가락이 몇 개 줄었짜나!
한쪽 손가락이 5개야! 근데 이거 봐, 내 이쪽 손은 손가락이 8개라구!
......
A91의 손가락 사이로, VSK-94는 시모노프가 휘청이며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전진! 전진! 목표를 향해 전진!
어라, 너네 언제 우리보다 앞서 가써?
......
선배가 반대 방향이야.
VSK-94는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양손에 각각 A91과 시모노프의 손을 끌고 AK-47을 따라잡았다.
잠시 후, 지하 주차장 입구 부근에서 AK-47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흐흐흐... 여기다, 560번 지하 주차장.
이얏호~!
8기통 타고 가즈아――!!
시동 걸리는 것만 찾아내면 이동 시간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어!
저기... 혹시나 싶어서 말하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본 차량은 전부 작동 안 했단 걸 잊진 않았지?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고 계속 찾아봐야지!
세기의 명마가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알아!
VSK-94는 어두컴컴한 지하 주차장의 입구와 잔뜩 흥분한 팀원들을 번갈아 보았다.
빠르게 돌아가는 그녀의 마인드맵이, 팀이 온갖 방식으로 허무하게 전멸하는 시뮬레이션을 수도 없이 연산했다.
잠시 후, VSK-94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입을 열었다.
그럼 내가 먼저 정찰하고 올게.
지금 우리 상태로는 무작정 들어갔다간 아마 살아 나오지 못할 거야.
아 글쎄 걱정 말라니까? 저 봐, 무지 조용하잖아!
그렇게 걱정되면 술병 하나 던져서 반응 없나 보자고.
그런 단순무식한 방법이 통하려나...
AK-47이 주차장 입구의 내리막길로 막 비운 병을 굴려 보내고 귀를 기울였다.
봐, 아무 일도 없잖――
퍼――엉!!
바로 근처에서 일어난 폭발이 AK-47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
......
내가 몇 뻔을 말해써 AK-47!
술병 함부로 버리면 천벌받는대찌!
탄산음료인데.
으흐흐, 반응 한번 격하네!
까다로운 싸움이 되겠어. 모두 비켜! 이 전장은 내가 지배한다!
난데없이 목소리가 험악해진 A91이 비수를 뽑아 들어, 날카로운 칼날을 앞으로 뻗었다.
야 이 겁쟁이드라아아! 당장 튀어나와아아!
잘한다 A91! 바로 그 기세야!
가라 A91~!
선배, 피스톨 소드 거꾸로 잡았어! 그렇게 잡고 쏘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VSK-94가 자리를 박차고 뛰어가 A91을 저지해, 파지법을 고쳐 주려 했다.
NRS-2는 칼끝을 자신한테 향해야 해!
아앙? NRS가 뭔데? 엥, 뭐야, 이거 놔!
하지만 A91은 VSK-94가 칼을 뺏으려는 줄 알고 반발했다.
이바 신참! A91이 전투 모드일 때 가까이 가면 위험해!
야, 너네 뭐하는 거야?!
아래에 있는 놈들이 총 쏘면 어쩌려고 그래!
결국 AK-47와 시모노프까지 비수 쟁탈전에 끼어들었다.
뭐야, 비겁하게 10 대 1이냐아아!!
엥, 10명? 어디!? 아무튼 모두 손 놔아!!
손톱으로 내 손 찌르지나 마!
내가 할 테니까 다들 방해 좀 말아 봐!
이게... 여럿이서 덤비면 내 칼을 뺏을 수 있을 줄 알고?!
얼른 안 놔!? 나 몰로토브 칵테일 잔뜩 있어!
...뭐?!
네가 다 마신 술병 마리야? 그거 내가 다 버려써!
뭐어? 이 나쁜 자식, 그러지 마! 왜 자꾸 내 술병 버려대!
AK-47이 술병 던지면 항상 귀차는 일이 생긴단 말야!
아니 그거랑 나랑 뭔 상관인데?!
아... 잠깐만. AK-47, 너 방금 마신 술병 어디 가써?
어딨긴, 여기... 우왁!?
술병을 찾는 AK-47에게 모두의 주의가 끌린 그때, A91이 몸부림쳐 모두를 밀쳐냈다.
그리고 시모노프가 넘어진 순간, 내리막길을 따라 빈병 몇 개가 A91의 발치로 굴러들었다.
찾았다, 내 칵테일!
A91은 반가운 마음에 몸을 앞으로 숙였다.
...다시 지하 주차장 내부. 폭발 후, 세 "경찰"들은 바닥에 뻗어 있었다.
......
누구 짓이니――?
......
쟤요.
너냐?
아... 그게...
M870은 천천히 일어나, ART556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살기 그 자체였다.
누, 누님? 일단 제 말부터 들어――
듣긴 뭘 들어! 걸레짝된 피통가지고 어떻게 공무 집행하란 거야!
지, 진정해 누님! 이 정도 체력으로 충분한 허접들이야 널리고 널렸을 테니까...
허접같은 소리하고 앉았네, 이 상태로 누굴 이겨?! 아주 술에 절은 놈들 아니면――
떼구르르르...
그때, 어디선가 유리병이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M870은 하던 말을 멈추고, 곧장 P7과 ART556을 덥썩 집어 들어 함께 차량 뒤로 몸을 숨겼다.
뭐, 뭐였어?
쉬잇. 누가 온다.
세 인형들은 정신을 곤두세우고 주차장의 입구를 주시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잘못 들은 거 아니야?
폭발로 청각 모듈 고장나기라도 했어?
입 다물고 주위 경계해.
잠시 후.
나 무릎 아파...
아무 일도 없네. 이제 됐지 누님?
아 글쎄 기다려 보라고.
그리고 마침내, 주차장 입구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와아아아아——
아하하하――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아~!!
예상을 아득히 벗어난 소리에 M870 팀이 경악에서 헤어나오기도 전에,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뭉치"가 주차장으로 굴러들어왔다.
저거... 뭐야?
그 꽐라 녀석들 같은데? 아니 근데, 이 게임 아이템 중에 술이 있던가?
꽐라들이 취하는데 술이 필요하겠냐? 쟤넨 그냥 생수 한 병 줘도 헤롱헤롱댄다고.
저 봐라 저, 사이다를 술마냥 퍼마시고 앉았지.
헤헤, 딱 좋은 목표가 굴러들어왔네!
음? 저기 쟤는 처음 보는데, 누구야?
저 금발머리? VSK-94란 앤데, 우리 기지에 새로 온지 얼마 안 됐대.
그런데 왜 하필 쟤네랑 같이 있는 거지...
정신도 말짱한 게, 꽤 강해 보이는걸.
누님, 우리 승산 있을까?
저 꽐라들 셋뿐이었으면 낙승이었겠지만...
뭘 무서워하는 거야? 오히려 잘됐어, 저 VSK란 애를 우리 팀에 영입하면 더 대놓고 활보할 수 있지! 꺄하핫!
아, 생각났다. 내가 전에 들었는데...
주차장의 다른 쪽. 엉켜 있던 인형들이 비틀거리며 겨우 일어났다.
니들 대체 뭐야아?
이거 그냥 칼이거드은? 왜 뺏으려고 이 난리야아?
뭐...? 그냥 칼?
VSK-94가 A91의 팔을 붙잡고 다시 확인했다.
언뜻 보기엔 NRS-2 피스톨 소드와 매우 비슷했지만, 그저 비슷하기만 할 뿐 평범한 비수였다.
......
푸하하핫! 신참, 봤지?
우리랑 함께면 서프라이즈가 잔뜩이라구!
......
오히려 호러야...
그래도 방금 있었던 폭발을 잊지 않은 VSK-94는 주차장을 경계하며 적이 숨었을 만한 곳을 찾았다.
안심해, 적이 있었으면 진작부터 쏴댔을 테니까.
퍽이나 안심이 대게따!
내가 술병 함부로 버리지 말라고 몇――번을 말했는데, 엉!?
시모노프...? 왜 내 멱살을 잡아?
하하하! 미안 미안, 다음엔 조심할게!
아무튼 주차장에 무사 진입한 걸 축하하는 뜻으로, 다 같이 건배~!
뭐? 예정보다 훨씬 지체했는데 여기서 또 마신다고?
이게 바로 보드카 스피릿이란 거지!
모르겠음 일단 마시고 봐!
신참, 술은 우리가 우정과 팀워크를 다지는 방식이라고.
우리랑 더 잘 어울리고 싶으면 너도 얼른 한잔해!
아 참, 근데 나 술 다 떨어졌어. A91, 신병한테 한 병 따 줘!
어엉? 내 거 주라고...?
A91이 흠칫하며 자신의 배낭을 뒤졌다. VSK-94는 배낭 속을 휘적이는 그녀의 손 사이로 반짝이는 탄산음료병들을 분명히 봤지만, A91은 끝내 뻔뻔한 얼굴로 배낭의 지퍼를 닫았다.
어떡하지, 나도 다 떨어졌네에...
나도 이게 마지막이야.
그, 그럼 난 주변을 정찰하고 올게!
하는 수 없지. 갔다 와~
VSK-94는 자신의 물건을 챙기고 후다닥 주차장 안으로 향했다.
자아~ 그럼, 우리가 여기까지 온 걸 축하하면서!
우리를 기다리는 승리를 위하여~ 건배!
마셔 마셔, 쭉쭉 마셔! 취할 때까지 마신다아――!
M870 팀이 숨죽이고 지켜보는 앞에서, 주정뱅이 인형들은 탄산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꿀꺽꿀꺽... 캬하――!! 조오~아쓰, 나 저 차 시동 걸리나 보고 오께에... 꺼억.
안이 넓은 차로 부타캐~
짭새한테 쪼낄 때 낑기기 싫어어...
소용없어, AK-47이 핸들을 잡으면 아무리 자리가 널버도 부딪힐 수밖에 없는거얼~
아 시꺼! 술 마시고 운전하는 거 또 카리나한테 걸렸다간――
...잠깐, 여긴 게임 안이었지? 에헤헤...
으흐흐, 그럼 지히간도 카이나도 머라 못하겠네에~
야 이 쫄보드랑, 혼나는 게 무서버서 술 안 마실 거냐!
머래, 누가 혼나는 게 무섭다고.
들켜 봤자 금주 교정 프로그램 이수받는 게 다구마안...
어디 쬐끄만 방에다 가둬 노코, 하루 좽~일 교통 안전법 교육 영상 틀어 놓고, 술 한 방울도 안 주는 거밖에 안 대는데 머!
이 그리폰의 에이스가 그딴 걸 무서워하겠어?!
그치 그치...
괴로운 기억이 떠오르자, 주정뱅이 인형들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그리고 그때, 눈부신 서치라이트와 함께 우렁찬 고함이 그녀들을 덮쳤다.
<size=40>거기 모두 손 들어!</size>
<size=45>그렇게 취하고도 운전할 생각이냐!?</size>
<size=50>누구도 도망칠 생각 마라!</size>
낯선 세 모습이 AK47 옆의 자동차 지붕 위에 나타났다.
NYPD다, 꼼짝 마!
음주운전 집중 단속 기간에 배짱 한번 좋구나!
경찰이다!
손 들어!
......
......
......
얌마! 리액션 좀 해봐!
제기랄! 오늘 집중 단속 날이었어!?
잔말 말고 빨랑 튀어!
시모노프! 출구 이쪽이야!
잠까아안! 여기 게임 안이잖아?
아, 맞다. 뭐야 그럼, 왜 경찰이 여기 있어?
그럼 왜 그러케 걸음아 나 살려라야?
이건 몸이 저절로 반응하는 거고!
경찰이란 소리만 들으면 나도 모르게 도망치게 되더라!
으이이 너네 두우울, 나보다 빨리 튈 생각 마아아!
눈 깜짝할 새에, 세 주정뱅이 인형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황량한 주차장엔 어안이 벙벙한 M870 팀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
...저거, 인형이 낼 수 있는 속도야?
와 씨, 핵 쓴 줄 알았네!
선배들, 나 돌아왔어!
앗, 누님! VSK 왔어!
어떡하지?!
침착해!
VSK-94가 정찰을 마치고 돌아왔지만, AK-47 일행은 온데간데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는 낯선 세 인형이 그녀를 맞이했다.
NYPD다, 음주운전 집중 단속 중이야!
거기 너! 손 들어!
손 들어!
번쩍 들어!
......
VSK-94는 체념한 듯 얌전히 손을 들고, M870이 들이댄 음주측정기를 불었다.
...흥, 정상 수치네.
저기... 경찰 동지, 혹시 내 팀 못 봤어?
조금 전만 해도 여기 있었는데.
여기서 사이다로 술판 벌이던 그 꽐라들 말이야?
...응, 맞을 거야.
우릴 보자마자 도망치더라!
슝~ 하고 사라졌어!
역시...
어이없어하는 VSK-94의 모습을 살피면서, M870은 P7과 ART556에게 눈치를 줬다.
NYPD 맨해튼 담당 M870이야. 그리고 얘네는 내 부하 P7이랑 ART556이고.
반갑습니다 아가씨, 순경 P7이라고 합니다.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순경 ART556입니다.
어... 너희도 그리폰 인형 맞지?
왜 뉴욕 경찰을 사칭해?
이게 우리 임무니까지. 임무를 받은 이상, 제대로 수행해야지 않겠어?
게임 속 폐허가 된 도시라 해도, 경찰로서 정의 수호에 앞장서야지.
옳소!
맞아 맞아!
VSK-94는 이 경찰 행세를 하는 인형들이 상처투성이인 것을 발견했다.
......
아, 이 상처? 좀 전에 술 취한 폭도들을 처단하던 중에 폭발에 휘말려서 생긴 거야.
맞아 맞... 응?
<size=25>그런 설정 있었나?</size>
<size=25>애드리브 몰라? 애드리브!</size>
...고생하네.
하아아... 안 그래도 인력 부족인데, 내 부하들은 경험 부족이라서 말이지...
맨해튼만 해도 엄청 넓은데 너희들뿐이라고?
다른 경찰들은 다 떠났어...?
그래, 너도 오면서 지금 뉴욕이 어떤 상황인지 봤지?
응, 엄청 심각했어...
우리들만으로라도 도시의 정의를 수호하면서 동료를 모으고 있지만, 역시 일이 잘 안 풀리네.
......
우리 얘기는 이쯤하고...
아가씨, 네 친구들은 다 도망가버렸는데 이제 어떡할 거야?
난...
내면의 갈등을 겪는 VSK-94에게, P7과 ART556이 타이밍 좋게 천진난만한 얼굴로 그녀에게 달라붙었다.
그 초롱초롱한 눈빛에, VSK-94는 그 주정뱅이들의 흐리멍텅한 눈이 떠올랐다.
범죄자라지만, 일말의 주저도 없이 동료를 버리고 도망치는 놈들은 처음 봤다니까.
걱정 마, 우린 어려움에 처한 시민을 끝까지 도울 거니까.
혼자 행동하기 무섭다면, 그 녀석들을 찾을 때까지 우리가 같이 있어 줄게.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우리의 영광입니다!
......아니, 됐어.
그 술고래들한테 보드카 살 돈을 쥐여 주느니, 너희와 함께 도시의 정의를 수호할래.
뭐...? 그럼...!
내 이름은 VSK-94, 그리폰에 들어오기 전에 한동안 파출소에서 일한 적 있으니 내 경험이 도움이 될 거야.
나도 너희 팀에 끼워 줘.
얼마든지! 우리야 대환영이지!
그럼 잘 부탁할게.
만세!
잘됐다!
고마워, 넌 우리 맨해튼 순찰대의 큰 힘이 될 거야!
응.
VSK-94는 자신의 짐을 정리하고 앞장서 움직였다.
그런 그녀 뒤에서, 세 인형들은 사악한 안광을 번뜩였다.
헤헤, 성공이다.
싱겁다 싱거워!
이게 다~ 이 누님의 완벽한 계획 덕분 아니겠냐!
십몇 분 전.
아, 생각났다. 내가 전에 들었는데...
뭔데?
얼마 전에 경찰 몇 명이 기지로 와서 지휘관을 찾았는데, 지휘관 표정이 무지무지 심각하길래 궁금해서 사~알짝 엿들었거든?
대충 요약하자면, AK-47네 녀석들이 과속 음주운전하다 단속 중이던 경찰한테 잡혀 왔더라고.
벌금 왕창 깨져서 카리나는 혼절할 뻔했고, 지휘관도 어~엄청 화나서 걔네를 아주 호되게 혼냈어.
그러니까, 저 녀석들은 경찰을 무서워한다?
푸히히히힛, 진짜 웃긴다!
뭐, 저 꽐라들 상대하는덴 딱이겠네.
하지만 저 VSK-94란 녀석은 아는 게 없으니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네...
우리 셋이서 쟤 한 명을 못 이기겠어?
네 폭탄만 아니었어도 우리가 지금 여기서 쭈그리고 있을 필요 없었거든?
우으으... 미안하다니까...
오! 누님, VSK가 딴 데 갔어!
운이 따라 주네. 그럼 가 보실까.
VSK가 갑자기 돌아오면 어떡해?
흐흥~ 좋은 수가 떠올랐으니까 괜찮아.
뭔데?
지금 가서, 저놈들을 음주운전 혐의로 체포하는 거야.
그럼 우린 정당하게 범죄자를 처벌하는 쪽이 되지.
VSK가 자기 동료들을 구하려 할 텐데?
염려 붙들어 매셔, 걔가 돌아왔을 땐 우리가 정의를 행사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될 테니까.
그리고 저 녀석, 전직 경찰이 분명해. 분명 정의를 거역할 순 없겠지!
그러니까... 우리가 정의인 척해서 VSK를 꼬드기자고?
그 말 당장 취소해!
지금부터 우리는 진짜 정의의 사도다!
알았나!
알겠슴다!
문제없슴다!
후후후, 좋았어... 지금이다!
거기 모두 손들어!
중계 스트리밍 중인 지휘실.
카리나는 눈을 질끈 감고 손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그 괴로운 기억을 되살리지 마아아아...!
으으으... 그때 진짜 돈 엄청 깨졌는데...
진정해 카리나, 다 예전 일이잖니.
그래도 그때 벌금으로 잔고에서 빠져나간 액수를 다시 떠올리자니...
너무 가슴 아파요! 히잉...
그럼 저 베팅 화면을 봐봐, 기분이 어때?
와하! 우헤, 우헤헤...
탐스러운 숫자에, 카리나의 눈가에 맺혔던 눈물이 바로 증발했다.
좋았어, 그럼 실시간 투표를 계속할까요!
지금 생중계를 보고 계신 인형 여러분! 현재 두 팀 사이에서 중대한 인원 변동이 일어났습니다!
AK-47 팀 소속의 VSK-94가 M870 팀의 회유에 넘어가 전향했네요!
유능한 팀원을 잃은 AK-47 팀!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M870 팀에겐 과연 이것이 전환점이 되어 줄까요?
게임은 이제 막 시작된 참입니다, 채널 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