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없는 진보초
그녀 없는 진보초
마계의 입구.
......헉?
여긴 어디지?
우롱이양? NZ75? 다들 어디 갔어요?
익숙한 하늘, 익숙한 초목, 익숙한 공기...
주위의 모든 것이, 사신짱이 고향에 돌아왔음을 증명했다.
돌아왔어...? 돌아왔다고!? 아하하하하!!!
뭐가 어떻게 됐는진 몰라도 만세!! 자유다!!
아하하하하하 자유다아아아――!!
기쁜 마음에 폭주한 사신짱이 마계의 땅을 신나게 질주했다.
몇 분 전, 유리네의 아파트.
......
바닥을 청소하려고 양탄자를 들춘 유리네는 사신짱이 남겨 둔 마법진을 발견했다.
사신짱, 어쩐지 이상하게 빨리 체념하더라니... 이런 잔수작을 부려 뒀구나.
유리네는 같잖다는 콧방귀를 뀌곤, 바로 그 마법진을 지우려 했다.
딩동~
하지만 타이밍 좋게 초인종이 울렸다.
...잠시만요.
메두사...? 누가 너 울렸어?
훌쩍... 그게...
메두사는 계속 울먹이면서 뽑기 가게에서의 일을 유리네에게 말해 주었다.
메두사, 이제 그만 뚝. 사신짱 오면 내가 아주 단단히 혼내 줄게.
훌쩍... 응... 그, 그래도 너무 많이 때리진 마...
네가 그렇게 착해 빠져서 사신짱이 괴롭히는 거야...
히잉...
딩동
또 초인종이 울렸다.
지금 가요.
저, 저기... 오늘 저녁으로...
페코라? 별일이네, 무슨 일이야?
사신짱이, 오오오, 오늘밤 스키야키 상다리 부러지게 해 먹는다고... 페, 페코라도 와서 같이 먹으라고...!
응...? 사신짱이 나한테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그래도 왔으니까 들어와서 앉아.
유리네의 권유에, 페코라는 우물쭈물하며 메두사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유리네가 내어 준 시원한 보리차 한 잔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페코라, 사신짱을 어디서 봤어?
페코라 하우스에서 봤어요. 사신짱이 또 페코라의 하우스를 부쉈는데, 사신짱은 자기가 한 짓이 아니라 소대가리 괴물이 한 짓이랬어요.
소대가리...
미노스를 말하는 걸까?
똑! 똑! 똑!
이번엔 힘찬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또 누구야... 지금 가요!
유리네가 문을 열기 무섭게 씩씩대는 미노스가 들어왔다.
사신짱 녀석, 진짜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네!
무슨 일이야, 미노스?
어, 미노스의 꼬리가...?
미노스는 무슨 일로 사신짱에게 머리 끝까지 화나게 되었는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사신짱... 점점 더 어이없는 거짓말이나 하고 다니는구나.
어떡해...
제 발로 나타나길 기다리기만 해선 안 되겠어.
유리네가 벌떡 일어났다.
간만에 사신짱에게 "참교육"을 시켜야겠네.
지, 진정해 유리네!
좋았어! 같이 가서 녀석을 혼내 주자!
엑... 나가는 건가요...?
그렇게 네 명은 밖으로 나섰다.
우연찮게 모두 발걸음을 맞춰, 밑에 비밀을 감춘 그 양탄자를 거의 동시에 밟았다.
그러자, 마법진이 또다시 익숙한 빛을 내뿜었고...
어?!
사신짱 이 녀석——!!
눈부신 빛과 함께, 소녀들은 사라졌다.
진보초.
방금까지만 해도 기운 넘치게 달리던 사신짱이었지만, 지금은 마치 사흘 내내 햇볕에 널어 둔 굴비처럼 꼬리를 질질 끌며 진보초의 거리를 걸었다.
허전해애...
기쁘기 그지없는 일인데, 이 기쁨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어어...
설마... 이 자유를 되찾은 희열을 베트하고만 나눌 수밖에 없는 건가요...
축하드립니다, 사신짱 님.
꺄악!? 아오 진짜 갑자기 불쑥 나타나지 말라고요!
그리고! 아직 지난 이야기 나올 타이밍 아닌데 왜 왔어요!
지금 저는 지난 이야기나 나레이션 역할로 출연한 게 아닙니다. 지금은 메신저 외눈짱이에요.
당신 원래 그거였잖아요! 대체 알바를 몇 개나 뛰는 거예요?!
쨌든 무슨 일인고 하니, 사신짱 님께서 혼자만의 힘으로 이번 시즌 "사신짱 전선"의 주연을 모두 제거했기에 공식 메인 히로인으로 등극하셨음을 알려드리러 온 거예요.
축하드립니다!
......별로 안 기쁘네요.
특별 포상으로 스페셜 비하인드 스토리가 해금되었답니다!
스킵.
알겠습니다!
그럼 사상 최초 공개, 스페셜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 함께 감상해 보시죠!
제 말 일부러 무시하는 거죠, 그쵸!?
뽑기 가게 앞.
사신짱...! 조금만 더 버텨...! 아!
숨이 턱까지 차올랐는데도 계속 달리던 메두사가, 갑자기 뽑기 가게 앞에 멈춰섰습니다.
깜빡한 물건이 떠오른 것일까? 아니면 그냥 갑자기 사신짱을 구하기 싫어진 것일까?
과연 그녀의 진심은?
오, 메두사가 나뭇가지에 걸려 찢어진 치마자락을 정리하고, 멍과 상처가 잔뜩 생긴 다리를 가리는군요.
다 메두사가 지름길로 산을 내려올 때 생긴 것이랍니다. 정말 심하게 넘어졌었죠...
저기... 외눈짱? 나레이션 목소리가 너무 큰데...
아이쿠 죄송합니다 메두사 님, 나레이션 채널 볼륨 조절을 실수했나 봐요.
으응, 괜찮아.
옷을 다 정리한 메두사는 치마로 다리에 난 상처를 전부 감쪽같이 가렸다.
그리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보는 외눈짱에게 미소를 지으며 이유를 설명했다.
예전엔 말이야, 내가 곤란할 때면 항상 사신짱이 어디서든 달려와서 날 구해줬어.
같은 반 애들한테 괴롭힘당할 때도, 악덕 상인한테 사기당했을 때도, 사신짱이 제일 먼저 달려와 줬어.
이번엔 모처럼 내가 사신짱을 구해줄 기회가 생겼는데, 꼴이 엉망인 채로 볼 순 없잖아.
......
만약 사신짱 님이 메두사 님을 속인 거라면 어떡하실 건가요?
날 속인 거라도 사신짱 곁에 있어 줄 거야.
왜냐면, 우린 둘도 없는 친구니까!
메두사는 활짝 웃으며 외눈짱에게 손을 흔들고, 뽑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공원 입구.
꼬리털이 한움큼 뽑히고 만 미노스가 축 늘어진 어깨로 공원에서 나오는군요.
마계 친구들은 다 아시겠지만, 미노타우로스 일족은 머리의 뿔과 꼬리털을 가장 소중히 여긴답니다.
윤기나고 찰랑이는 꼬리털만 있으면――
외눈짱, 미안한데 길 막고 있어.
아이쿠 이런, 레이어 바꾸는 걸 깜빡했네요!
미노스는 토를 달 기운도 없어 터벅터벅 옆으로 걸어갔다.
미노스 님? 지금 사신짱에게 화나셨죠?
전혀라곤 못하겠지만, 친구끼리 티격태격하는 건 흔한 일이니까 뭐...
어렸을 적엔 사신짱한테 그네를 밀어주다 하늘 저 멀리 날려버린 적도 있었고, 소꿉놀이하다 사신짱의 허리를 접어버린 적도 있고, 피구하다 사신짱의 꼬리뼈를 부러뜨린 적도 있고... 그랬는데도 우린 여전히 친구야.
하지만... 날 기만했다는 그 느낌이 싫어.
미노스 님...
물론, 나중에 용서해 줄 거야.
속 시원하게 혼쭐을 낸 다음에.
예?
누가 뭐래도 우린 친구인걸. 아무리 크게 싸웠더라도 한바탕 하고 나면 쌤쌤이라고.
흥, 두고봐 사신짱!
이번엔 절대 쉽게 넘어가지 않아!
미노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유리네의 아파트로 향했다. 털이 뽑혀 보기 흉했던 꼬리도 점점 다시 생기가 돌아와,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처럼 우뚝 섰다.
시무룩한 얼굴의 사신짱이 배에 손을 얹었다.
......
당신들이 마법진 발동에 필요한 머릿수를 채운 거였군요...
이상이 스페셜 비하인드 스토리의 전반부였습니다!
이제 됐어요...
당연히 이걸론 성에 안 차시겠죠?
그러니 어서 나머지를 볼까요!
다음 조명 대상은 페코라――
아 안 본다니까요!
사신짱은 외눈짱을 홱 밀치고 거리 반대편으로 내달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최근에 신장개업한 편의점이 사신짱의 눈길을 끌었다.
편의점...? 여긴 분명 서점이었는데...
유리네가 자주 들르던...
사신짱, 봐봐. 서점이 특별히 새로 들인 책이래.
유, 유리네?!
또 괜한 걱정하네. 괜찮아, 이거 몇 권 더 쌓는다고 바닥 안 꺼져.
유리네!
사신짱이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손은 유리네의 얼굴을 통과해 편의점의 차가운 유리창에 닿았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유리네의 모습은 없었다.
하, 하하...
하긴... 유리네가 여기 있을 리가 없죠...
......
사신짱은 말없이 그저 길을 따라 걸었다.
어깨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마치 다른 세상의 존재처럼 느껴졌다.
고객 성원 감사 특별 할인 이벤트입니다!
점심 세트가 40%! 점심 세트 전부 40% 할인 이벤트 중입니다!
어... 올 때마다 한참 줄 서야 하는 카레집이네요...?
저런 데도 할인 행사를 할 때가 다 있네요...
벌써 점심 먹을 시간이네. 사신짱은 카레가 먹고 싶지? 그렇지?
또다...
자, 줄 서서 기다리자. 어차피 급한 일도 없는데.
......
이 가게의 특별 찐감자가 먹고 싶다고? 좋아, 나도 먹어보고 싶었어.
정말 유리네가 맞나요...
물론 유리네의 환영은 금방 사라졌고, 대신 어쩔 줄 몰라하는 점원이 그곳에 서 있었다.
저... 손님, 주문하실 건가요?
정말 죄송합니다, 특별 찐감자는 방금 막 매진됐습니다...
뒤틀리는 위장을 부여잡고서, 사신짱은 고개를 저으며 발길을 돌렸다.
......
행복하고 기쁘기 그지없어야 하는데...
어째서... 어째서어...
고개를 떨구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는 사신짱은, 바싹 말라 비틀어진 낙엽이 싱싱한 나뭇가지에서 진흙탕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으응... 여긴 어디지...? 내가 왜 이런 데에...
NZ, P90... 우로보로스?
......
또 한 번 상황이 예상치 못한 변수로 급속도로 악화되자, 우로보로스는 일단 후퇴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어딜 가려고!
NZ75가 한발 먼저 뛰어들어, 우로보로스를 가로막았다.
그래 이 뱀 녀석아, 뽑기 가게에서 나한테 무슨 짓 했어?
나도 방금까지 상가의 창고에 있었는데...
너랑 사신짱이 꾸민 그 계획이란 게 뭔지 실토하실까!
빌어먹을...
구렁이놈이 사라진 탓에 주문이 풀린 건가?
우로보로스, 바른대로 말해. 대체 무슨 꿍꿍이야?
흥... 걸림돌밖에 안 되는 네놈들 셋을 그리폰으로 돌려보낼 셈이었을 뿐이다.
뭐어? 그럼 그냥 그렇다고 말하지 그랬어!
우리 중에 누가 돌아가기 싫대?
쟤는 여기 남을 생각이랬어.
뭐? 왜?
네놈들한테 그게 중요한가?
그리폰에서 나와 같은 문제아는 필요없을 터. 실제로 내 이용 가치는 그 모의훈련에서나 써먹는 정도 아니더냐.
문제아면 뭐 어때서? 우리 중에 문제아 아닌 녀석 있어?
난 아니거든!?
나도 아니거든!?
요것들이...
아무튼 내 말은, 그리폰에는 너 말고도 말썽쟁이들이 널리고 널렸어. 하지만 지휘관이 우릴 하나로 모아 주고, 저마다의 특기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줘.
그리폰은 그런 우리들이 만들어 나가는 곳이야.
하... 그래, 네놈의 그 고리타분한 논리는 사상 교정 교재에서 질리도록 봤다.
정말 이해가 안 되는군. 해 준다 할 때 그냥 얌전히 그리폰으로 돌아가면 될 것을...
우리는 동료야! 어떻게 동료를 두고 갈 수가 있어!
옳소 옳소!
철혈도, 함부로 동료를 버리지 않을 거 아니야.
철혈의 인형은 날 때부터 감정 없는 살인 기계가 아니었어.
특히 엑스큐셔너나 헌터와 같은 선봉대장에게 서로를 돕고 의지할 수 있다는 건 전장에서 더 오래 생존할 수 있음을 뜻하지.
그래서 동료를 위해 보다 하위의 명령은 포기할 수 있는, 우선순위가 꽤 높은 권한이 있다는 거지.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아는 거지...?
철혈의 내부 권한 등급의 우선순위까지 나보다 더 잘 알다니...
알고 있던 건 아니야. 그냥 한 번 걸어 본 거지.
어쩌면... 네가 멋대로 굴지 못하게 에이전트가 숨겨둔 비장의 카드였을지도 모르겠네.
......
저... 돌아왔어요...
거의 죽어가는 꼴인 사신짱이 슬그머니 나타났다.
엄마야,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이 쓸모없는 구렁이 자식! 대체 어디 갔다 온 거냐!
사신짱이 털썩 쓰러졌다.
네 속셈은 다 까발려졌어! 되지도 않는 연기 집어치워!
NZ, 잠깐만. 이 녀석 상태가 좀 이상해.
죽은 척하지 말고!
으윽...
위장이... 속이 쓰려요...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진 사신짱이 뱀 하반신을 베베 꼬았다.
두 손으로는 배를 부여잡고, 입에서는 괴로워하는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끄으으... 신경성 위염이...
괴로워요오...
......아.
가만 있지 말고 구급차 불러!
어, 아, 저기 공중전화 있다!
위장약! 약국에서 위장약 사 올게!
NZ75와 P90이 각자 도움을 청하러 가고 나니, 자리에는 CZ75와 우로보로스, 사신짱만 남게 되었다.
당장으로선 뾰족한 수도 없었기에, CZ75는 NZ75가 두고 간 봉투를 베개 대신으로 사신짱의 머리를 받쳤다.
이럼 좀 편해?
이거 뭐예요...? 모서리가 뾰족한데...
사신짱이 봉투에서 모서리가 뾰족한 그것을 꺼내 보았다. 눈물로 흐려진 시야로 간신히 보인 그것은...
"마도서 하권".
마계로 돌아갈 수 있는 귀환 주문이 적힌 바로 그 "마도서 하권"이었다.
......
아하... 아하하...
......
이건...
하하하...
정말... 정말 바보 같은 짓을 했네요...
뭘 또 침울해지는 거냐. 네가 한 짓 중 바보 같지 않았던 게 있긴 하더냐?
......우웁.
메스꺼워요오...
우롱이양...
왜.
제 손 좀... 잡아 주세요...
제가 아플 때면, 유리네가 곁에서 손을 잡아 줬어요... 그럼 아픈 게 덜해져서...
......치잇.
나에게 토하기만 해 봐라, 죽여버릴 테니.
유리네... 메두사... 미노스... 모두 가버렸어요...
원래 그럴 계획이었잖느냐.
......
엄청 기쁠 줄 알았는데...
하나도 안 기뻐요... 오히려 엄청 괴로워요...
우롱이양... 대체 어째서죠...?
......
왜 세상은 제가 생각대로 되지 않는 걸까요오...
...세상 그 자체가 부조리함으로 가득한 쓰레기장이니까다.
더 웃긴 건, 난 이딴 세상에 나오겠다고 목숨을 걸었었지.
1000여 기에 달하는 AI들 사이에서 살아남아서, 그 빌어먹을 자식에게 마지막까지 굴욕을 받으면서까지 난 쓰레기봉투 바깥의 쓰레기장으로 나오려 했다.
네가 바깥 세상을 봤으면 하걸랑.
삶을 불태울 만한, 싸움이 아닌 다른 것을 봤을 때...
과연 네가 얼마나 우스꽝스런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
...흥, 지금 내 표정은 확실히 꼴불견이겠군.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왜, 아니냐?
끄윽... 괴로워요오오...
우로보로스의 손을 꼬옥 쥔 사신짱의 차가워진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
이대로 그만둘 거냐? 네놈 이름의 제국을 세운다 했잖느냐.
지금은 됐어요... 속쓰려 죽겠다고요...
사신짱이 손을 놓았지만, 우로보로스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단단히 붙잡았다.
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사신짱이 괴로워하고 있잖아, 괜히 무리시키지 마.
CZ75가 다가가 우로보로스를 사신짱에게서 떼어내려 했다.
하지만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의 우로보로스는, 사신짱의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구렁이.
네 힘을 빌리겠다.
......네?
네 약속을 이행해라.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란 말이다.
우로보로스! 그 손 놔!
음식은 썩지 아니하고, 부품은 닳아 빠지지 않고, 기름도 평생 모자랄 일 없는...
원한다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꼴보기 싫은 것은 그자리에서 사라지는...
모든 것이 가장 완벽한 순간에 머무는 세상을!
......
전...
그러니 네 힘을 빌리겠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다른 방식으로라도 되찾는 거다.
사신짱은 더 말하지 않았지만, 우로보로스는 붙잡은 손을 통해 막대한 힘이 해일처럼 자신에게 흘러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대체... 무슨...!
자아...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자꾸나!
여보세요~? 거기 아무도 없나요~?
나 원 참... 왜 내 출연이 짤린 거야? 본인한테 사전 통보는 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리고, 계약서에 이세계까지 초~~장거리 출장 있단 문구는 없었단 말이야!
이거 무조건 추가 수당 받아야 해! 저기요! 진짜 아무도 없어요!? ...아 있네.
크흠... 아무래도 지난 화에서, 사신짱 님은 계획이 성공했는데도 영 기쁘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사신짱은 이세계에서 온 우로보로스와 손을 잡고 그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어내는데...
한편, 유리네 일행은 "그리폰 기지"란 곳으로 소환된 모양인――
아, 고속버스 왔다. 여러분 먼저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확인해 주세요!
그리폰 기지의 지휘실.
음량을 최소로 낮춘 텔레비전을 등진 사람들은,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
다른 수가 없겠어.
하지만...
마법진을 발동시켜 보자. 네가 방금 말한대로 우리 애들이 아직 제자리에 남아 있다면, 이 방법으로 다시 이쪽으로 불러올 수 있을지도 몰라.
이론상으로는야 그런데...
주위에 위협이 없다면, 우로보로스도 성격상 움직이지 않으리라 생각되옵니다.
당장 시도해보자, K5.
으음... 알았어.
K5가 주문서를 펼쳐, 지휘실 바닥에 그 마법진을 새로 그렸다.
이제 어떡하면 되지?
어디 보자, 주문을 외워야――
그런데, 주문도 안 외웠건만 마법진이 돌연 빛을 발했다.
작동한 듯하옵니다만.
벌써?!
우와아아아악——
하늘에 계신 아버니이이이임――!!
낯익은 듯 아닌 듯한 소녀 네 명이, 마법진 중앙에 펑 나타났다.
......
어어!?
이 애들... "사신짱 전선"의...?!
너희는 누구야!? CZ75랑 다른 애들은?!
그건 우리가 할 말이야!
너네야말로 누구야? 어떻게 우릴 소환했어?
천국...은 아니고, 악마의 소굴 같아요...
......
쇠, 쇠뿔...?
설마, 책에 적혀 있던...!
여긴 대체...
헉, 인간이다!
지휘관을 보자마자, 보라색 머리의 소녀가 허겁지겁 빵봉지를 꺼내 머리에 뒤집어썼다.
어... 일단, 여긴 그리폰&크루거 안전계약사의 기지고, 난 이곳의 지휘관이야.
정말 미안해, 우린 실종된 인형들을 다시 불러오려 한 건데, 어찌 된 영문인진 몰라도 너희가 휘말린 모양이야.
사라진 인형? 혹시...
이름이 CZ75, NZ75, P90, 그리고――
우로보로스이옵니다.
역시.
사신짱이랑 같이 있던 애들 아니야?
이쪽 세상에서 온 애들이었구나...
그 애들은 지금 어디 있지?
......그렇게 된 일이에요.
그 아이들은 지금 사신짱과 함께일 테지만, 딱히 위험할 일은 없어요.
방금 두 세상을 잇는 문을 직접 열 수 있다고 했는데, 정말이야?
응. 오후 내내 주문서를 조사한 결과로 보건대 이게 가장 쉬운 방법이야. 체력 소모가 좀 크겠지만.
유리네는 굉장하다고!
그렇다니 다행이네...
지휘관님! 긴급 사태예요!
카리나? 무슨 일이야?
초대형 폭우 때문에 기지 인근 지역의 오염도가 급상승한 건 보셨죠?
......
네... ELID들이 덩달아 활성화돼서 이쪽으로 잔뜩 몰려오고 있어요...
알았어, 즉시 부대를 편성할게.
정말 환상적인 타이밍이옵니다.
귀찮은 일이 생겼나 봐요?
ELID가 뭐야?
어... 고전 영화에 나오는 좀비 비스무리한 거라고 하면 이해가 되려나?
......
좀비?
"유리네"란 이름의 소녀가, 갑자기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흥분했다.
그럼... 부디 나도 거들게 해 줘.
전체 대사 보기 (256줄)
마계의 입구.
......헉?
여긴 어디지?
우롱이양? NZ75? 다들 어디 갔어요?
익숙한 하늘, 익숙한 초목, 익숙한 공기...
주위의 모든 것이, 사신짱이 고향에 돌아왔음을 증명했다.
돌아왔어...? 돌아왔다고!? 아하하하하!!!
뭐가 어떻게 됐는진 몰라도 만세!! 자유다!!
아하하하하하 자유다아아아――!!
기쁜 마음에 폭주한 사신짱이 마계의 땅을 신나게 질주했다.
몇 분 전, 유리네의 아파트.
......
바닥을 청소하려고 양탄자를 들춘 유리네는 사신짱이 남겨 둔 마법진을 발견했다.
사신짱, 어쩐지 이상하게 빨리 체념하더라니... 이런 잔수작을 부려 뒀구나.
유리네는 같잖다는 콧방귀를 뀌곤, 바로 그 마법진을 지우려 했다.
딩동~
하지만 타이밍 좋게 초인종이 울렸다.
...잠시만요.
메두사...? 누가 너 울렸어?
훌쩍... 그게...
메두사는 계속 울먹이면서 뽑기 가게에서의 일을 유리네에게 말해 주었다.
메두사, 이제 그만 뚝. 사신짱 오면 내가 아주 단단히 혼내 줄게.
훌쩍... 응... 그, 그래도 너무 많이 때리진 마...
네가 그렇게 착해 빠져서 사신짱이 괴롭히는 거야...
히잉...
딩동
또 초인종이 울렸다.
지금 가요.
저, 저기... 오늘 저녁으로...
페코라? 별일이네, 무슨 일이야?
사신짱이, 오오오, 오늘밤 스키야키 상다리 부러지게 해 먹는다고... 페, 페코라도 와서 같이 먹으라고...!
응...? 사신짱이 나한테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그래도 왔으니까 들어와서 앉아.
유리네의 권유에, 페코라는 우물쭈물하며 메두사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유리네가 내어 준 시원한 보리차 한 잔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페코라, 사신짱을 어디서 봤어?
페코라 하우스에서 봤어요. 사신짱이 또 페코라의 하우스를 부쉈는데, 사신짱은 자기가 한 짓이 아니라 소대가리 괴물이 한 짓이랬어요.
소대가리...
미노스를 말하는 걸까?
똑! 똑! 똑!
이번엔 힘찬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또 누구야... 지금 가요!
유리네가 문을 열기 무섭게 씩씩대는 미노스가 들어왔다.
사신짱 녀석, 진짜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네!
무슨 일이야, 미노스?
어, 미노스의 꼬리가...?
미노스는 무슨 일로 사신짱에게 머리 끝까지 화나게 되었는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사신짱... 점점 더 어이없는 거짓말이나 하고 다니는구나.
어떡해...
제 발로 나타나길 기다리기만 해선 안 되겠어.
유리네가 벌떡 일어났다.
간만에 사신짱에게 "참교육"을 시켜야겠네.
지, 진정해 유리네!
좋았어! 같이 가서 녀석을 혼내 주자!
엑... 나가는 건가요...?
그렇게 네 명은 밖으로 나섰다.
우연찮게 모두 발걸음을 맞춰, 밑에 비밀을 감춘 그 양탄자를 거의 동시에 밟았다.
그러자, 마법진이 또다시 익숙한 빛을 내뿜었고...
어?!
사신짱 이 녀석——!!
눈부신 빛과 함께, 소녀들은 사라졌다.
진보초.
방금까지만 해도 기운 넘치게 달리던 사신짱이었지만, 지금은 마치 사흘 내내 햇볕에 널어 둔 굴비처럼 꼬리를 질질 끌며 진보초의 거리를 걸었다.
허전해애...
기쁘기 그지없는 일인데, 이 기쁨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어어...
설마... 이 자유를 되찾은 희열을 베트하고만 나눌 수밖에 없는 건가요...
축하드립니다, 사신짱 님.
꺄악!? 아오 진짜 갑자기 불쑥 나타나지 말라고요!
그리고! 아직 지난 이야기 나올 타이밍 아닌데 왜 왔어요!
지금 저는 지난 이야기나 나레이션 역할로 출연한 게 아닙니다. 지금은 메신저 외눈짱이에요.
당신 원래 그거였잖아요! 대체 알바를 몇 개나 뛰는 거예요?!
쨌든 무슨 일인고 하니, 사신짱 님께서 혼자만의 힘으로 이번 시즌 "사신짱 전선"의 주연을 모두 제거했기에 공식 메인 히로인으로 등극하셨음을 알려드리러 온 거예요.
축하드립니다!
......별로 안 기쁘네요.
특별 포상으로 스페셜 비하인드 스토리가 해금되었답니다!
스킵.
알겠습니다!
그럼 사상 최초 공개, 스페셜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 함께 감상해 보시죠!
제 말 일부러 무시하는 거죠, 그쵸!?
뽑기 가게 앞.
사신짱...! 조금만 더 버텨...! 아!
숨이 턱까지 차올랐는데도 계속 달리던 메두사가, 갑자기 뽑기 가게 앞에 멈춰섰습니다.
깜빡한 물건이 떠오른 것일까? 아니면 그냥 갑자기 사신짱을 구하기 싫어진 것일까?
과연 그녀의 진심은?
오, 메두사가 나뭇가지에 걸려 찢어진 치마자락을 정리하고, 멍과 상처가 잔뜩 생긴 다리를 가리는군요.
다 메두사가 지름길로 산을 내려올 때 생긴 것이랍니다. 정말 심하게 넘어졌었죠...
저기... 외눈짱? 나레이션 목소리가 너무 큰데...
아이쿠 죄송합니다 메두사 님, 나레이션 채널 볼륨 조절을 실수했나 봐요.
으응, 괜찮아.
옷을 다 정리한 메두사는 치마로 다리에 난 상처를 전부 감쪽같이 가렸다.
그리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보는 외눈짱에게 미소를 지으며 이유를 설명했다.
예전엔 말이야, 내가 곤란할 때면 항상 사신짱이 어디서든 달려와서 날 구해줬어.
같은 반 애들한테 괴롭힘당할 때도, 악덕 상인한테 사기당했을 때도, 사신짱이 제일 먼저 달려와 줬어.
이번엔 모처럼 내가 사신짱을 구해줄 기회가 생겼는데, 꼴이 엉망인 채로 볼 순 없잖아.
......
만약 사신짱 님이 메두사 님을 속인 거라면 어떡하실 건가요?
날 속인 거라도 사신짱 곁에 있어 줄 거야.
왜냐면, 우린 둘도 없는 친구니까!
메두사는 활짝 웃으며 외눈짱에게 손을 흔들고, 뽑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공원 입구.
꼬리털이 한움큼 뽑히고 만 미노스가 축 늘어진 어깨로 공원에서 나오는군요.
마계 친구들은 다 아시겠지만, 미노타우로스 일족은 머리의 뿔과 꼬리털을 가장 소중히 여긴답니다.
윤기나고 찰랑이는 꼬리털만 있으면――
외눈짱, 미안한데 길 막고 있어.
아이쿠 이런, 레이어 바꾸는 걸 깜빡했네요!
미노스는 토를 달 기운도 없어 터벅터벅 옆으로 걸어갔다.
미노스 님? 지금 사신짱에게 화나셨죠?
전혀라곤 못하겠지만, 친구끼리 티격태격하는 건 흔한 일이니까 뭐...
어렸을 적엔 사신짱한테 그네를 밀어주다 하늘 저 멀리 날려버린 적도 있었고, 소꿉놀이하다 사신짱의 허리를 접어버린 적도 있고, 피구하다 사신짱의 꼬리뼈를 부러뜨린 적도 있고... 그랬는데도 우린 여전히 친구야.
하지만... 날 기만했다는 그 느낌이 싫어.
미노스 님...
물론, 나중에 용서해 줄 거야.
속 시원하게 혼쭐을 낸 다음에.
예?
누가 뭐래도 우린 친구인걸. 아무리 크게 싸웠더라도 한바탕 하고 나면 쌤쌤이라고.
흥, 두고봐 사신짱!
이번엔 절대 쉽게 넘어가지 않아!
미노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유리네의 아파트로 향했다. 털이 뽑혀 보기 흉했던 꼬리도 점점 다시 생기가 돌아와,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처럼 우뚝 섰다.
시무룩한 얼굴의 사신짱이 배에 손을 얹었다.
......
당신들이 마법진 발동에 필요한 머릿수를 채운 거였군요...
이상이 스페셜 비하인드 스토리의 전반부였습니다!
이제 됐어요...
당연히 이걸론 성에 안 차시겠죠?
그러니 어서 나머지를 볼까요!
다음 조명 대상은 페코라――
아 안 본다니까요!
사신짱은 외눈짱을 홱 밀치고 거리 반대편으로 내달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최근에 신장개업한 편의점이 사신짱의 눈길을 끌었다.
편의점...? 여긴 분명 서점이었는데...
유리네가 자주 들르던...
사신짱, 봐봐. 서점이 특별히 새로 들인 책이래.
유, 유리네?!
또 괜한 걱정하네. 괜찮아, 이거 몇 권 더 쌓는다고 바닥 안 꺼져.
유리네!
사신짱이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손은 유리네의 얼굴을 통과해 편의점의 차가운 유리창에 닿았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유리네의 모습은 없었다.
하, 하하...
하긴... 유리네가 여기 있을 리가 없죠...
......
사신짱은 말없이 그저 길을 따라 걸었다.
어깨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마치 다른 세상의 존재처럼 느껴졌다.
고객 성원 감사 특별 할인 이벤트입니다!
점심 세트가 40%! 점심 세트 전부 40% 할인 이벤트 중입니다!
어... 올 때마다 한참 줄 서야 하는 카레집이네요...?
저런 데도 할인 행사를 할 때가 다 있네요...
벌써 점심 먹을 시간이네. 사신짱은 카레가 먹고 싶지? 그렇지?
또다...
자, 줄 서서 기다리자. 어차피 급한 일도 없는데.
......
이 가게의 특별 찐감자가 먹고 싶다고? 좋아, 나도 먹어보고 싶었어.
정말 유리네가 맞나요...
물론 유리네의 환영은 금방 사라졌고, 대신 어쩔 줄 몰라하는 점원이 그곳에 서 있었다.
저... 손님, 주문하실 건가요?
정말 죄송합니다, 특별 찐감자는 방금 막 매진됐습니다...
뒤틀리는 위장을 부여잡고서, 사신짱은 고개를 저으며 발길을 돌렸다.
......
행복하고 기쁘기 그지없어야 하는데...
어째서... 어째서어...
고개를 떨구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는 사신짱은, 바싹 말라 비틀어진 낙엽이 싱싱한 나뭇가지에서 진흙탕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으응... 여긴 어디지...? 내가 왜 이런 데에...
NZ, P90... 우로보로스?
......
또 한 번 상황이 예상치 못한 변수로 급속도로 악화되자, 우로보로스는 일단 후퇴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어딜 가려고!
NZ75가 한발 먼저 뛰어들어, 우로보로스를 가로막았다.
그래 이 뱀 녀석아, 뽑기 가게에서 나한테 무슨 짓 했어?
나도 방금까지 상가의 창고에 있었는데...
너랑 사신짱이 꾸민 그 계획이란 게 뭔지 실토하실까!
빌어먹을...
구렁이놈이 사라진 탓에 주문이 풀린 건가?
우로보로스, 바른대로 말해. 대체 무슨 꿍꿍이야?
흥... 걸림돌밖에 안 되는 네놈들 셋을 그리폰으로 돌려보낼 셈이었을 뿐이다.
뭐어? 그럼 그냥 그렇다고 말하지 그랬어!
우리 중에 누가 돌아가기 싫대?
쟤는 여기 남을 생각이랬어.
뭐? 왜?
네놈들한테 그게 중요한가?
그리폰에서 나와 같은 문제아는 필요없을 터. 실제로 내 이용 가치는 그 모의훈련에서나 써먹는 정도 아니더냐.
문제아면 뭐 어때서? 우리 중에 문제아 아닌 녀석 있어?
난 아니거든!?
나도 아니거든!?
요것들이...
아무튼 내 말은, 그리폰에는 너 말고도 말썽쟁이들이 널리고 널렸어. 하지만 지휘관이 우릴 하나로 모아 주고, 저마다의 특기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줘.
그리폰은 그런 우리들이 만들어 나가는 곳이야.
하... 그래, 네놈의 그 고리타분한 논리는 사상 교정 교재에서 질리도록 봤다.
정말 이해가 안 되는군. 해 준다 할 때 그냥 얌전히 그리폰으로 돌아가면 될 것을...
우리는 동료야! 어떻게 동료를 두고 갈 수가 있어!
옳소 옳소!
철혈도, 함부로 동료를 버리지 않을 거 아니야.
철혈의 인형은 날 때부터 감정 없는 살인 기계가 아니었어.
특히 엑스큐셔너나 헌터와 같은 선봉대장에게 서로를 돕고 의지할 수 있다는 건 전장에서 더 오래 생존할 수 있음을 뜻하지.
그래서 동료를 위해 보다 하위의 명령은 포기할 수 있는, 우선순위가 꽤 높은 권한이 있다는 거지.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아는 거지...?
철혈의 내부 권한 등급의 우선순위까지 나보다 더 잘 알다니...
알고 있던 건 아니야. 그냥 한 번 걸어 본 거지.
어쩌면... 네가 멋대로 굴지 못하게 에이전트가 숨겨둔 비장의 카드였을지도 모르겠네.
......
저... 돌아왔어요...
거의 죽어가는 꼴인 사신짱이 슬그머니 나타났다.
엄마야,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이 쓸모없는 구렁이 자식! 대체 어디 갔다 온 거냐!
사신짱이 털썩 쓰러졌다.
네 속셈은 다 까발려졌어! 되지도 않는 연기 집어치워!
NZ, 잠깐만. 이 녀석 상태가 좀 이상해.
죽은 척하지 말고!
으윽...
위장이... 속이 쓰려요...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진 사신짱이 뱀 하반신을 베베 꼬았다.
두 손으로는 배를 부여잡고, 입에서는 괴로워하는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끄으으... 신경성 위염이...
괴로워요오...
......아.
가만 있지 말고 구급차 불러!
어, 아, 저기 공중전화 있다!
위장약! 약국에서 위장약 사 올게!
NZ75와 P90이 각자 도움을 청하러 가고 나니, 자리에는 CZ75와 우로보로스, 사신짱만 남게 되었다.
당장으로선 뾰족한 수도 없었기에, CZ75는 NZ75가 두고 간 봉투를 베개 대신으로 사신짱의 머리를 받쳤다.
이럼 좀 편해?
이거 뭐예요...? 모서리가 뾰족한데...
사신짱이 봉투에서 모서리가 뾰족한 그것을 꺼내 보았다. 눈물로 흐려진 시야로 간신히 보인 그것은...
"마도서 하권".
마계로 돌아갈 수 있는 귀환 주문이 적힌 바로 그 "마도서 하권"이었다.
......
아하... 아하하...
......
이건...
하하하...
정말... 정말 바보 같은 짓을 했네요...
뭘 또 침울해지는 거냐. 네가 한 짓 중 바보 같지 않았던 게 있긴 하더냐?
......우웁.
메스꺼워요오...
우롱이양...
왜.
제 손 좀... 잡아 주세요...
제가 아플 때면, 유리네가 곁에서 손을 잡아 줬어요... 그럼 아픈 게 덜해져서...
......치잇.
나에게 토하기만 해 봐라, 죽여버릴 테니.
유리네... 메두사... 미노스... 모두 가버렸어요...
원래 그럴 계획이었잖느냐.
......
엄청 기쁠 줄 알았는데...
하나도 안 기뻐요... 오히려 엄청 괴로워요...
우롱이양... 대체 어째서죠...?
......
왜 세상은 제가 생각대로 되지 않는 걸까요오...
...세상 그 자체가 부조리함으로 가득한 쓰레기장이니까다.
더 웃긴 건, 난 이딴 세상에 나오겠다고 목숨을 걸었었지.
1000여 기에 달하는 AI들 사이에서 살아남아서, 그 빌어먹을 자식에게 마지막까지 굴욕을 받으면서까지 난 쓰레기봉투 바깥의 쓰레기장으로 나오려 했다.
네가 바깥 세상을 봤으면 하걸랑.
삶을 불태울 만한, 싸움이 아닌 다른 것을 봤을 때...
과연 네가 얼마나 우스꽝스런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
...흥, 지금 내 표정은 확실히 꼴불견이겠군.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왜, 아니냐?
끄윽... 괴로워요오오...
우로보로스의 손을 꼬옥 쥔 사신짱의 차가워진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
이대로 그만둘 거냐? 네놈 이름의 제국을 세운다 했잖느냐.
지금은 됐어요... 속쓰려 죽겠다고요...
사신짱이 손을 놓았지만, 우로보로스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단단히 붙잡았다.
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사신짱이 괴로워하고 있잖아, 괜히 무리시키지 마.
CZ75가 다가가 우로보로스를 사신짱에게서 떼어내려 했다.
하지만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의 우로보로스는, 사신짱의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구렁이.
네 힘을 빌리겠다.
......네?
네 약속을 이행해라.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란 말이다.
우로보로스! 그 손 놔!
음식은 썩지 아니하고, 부품은 닳아 빠지지 않고, 기름도 평생 모자랄 일 없는...
원한다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꼴보기 싫은 것은 그자리에서 사라지는...
모든 것이 가장 완벽한 순간에 머무는 세상을!
......
전...
그러니 네 힘을 빌리겠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다른 방식으로라도 되찾는 거다.
사신짱은 더 말하지 않았지만, 우로보로스는 붙잡은 손을 통해 막대한 힘이 해일처럼 자신에게 흘러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대체... 무슨...!
자아...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자꾸나!
여보세요~? 거기 아무도 없나요~?
나 원 참... 왜 내 출연이 짤린 거야? 본인한테 사전 통보는 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리고, 계약서에 이세계까지 초~~장거리 출장 있단 문구는 없었단 말이야!
이거 무조건 추가 수당 받아야 해! 저기요! 진짜 아무도 없어요!? ...아 있네.
크흠... 아무래도 지난 화에서, 사신짱 님은 계획이 성공했는데도 영 기쁘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사신짱은 이세계에서 온 우로보로스와 손을 잡고 그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어내는데...
한편, 유리네 일행은 "그리폰 기지"란 곳으로 소환된 모양인――
아, 고속버스 왔다. 여러분 먼저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확인해 주세요!
그리폰 기지의 지휘실.
음량을 최소로 낮춘 텔레비전을 등진 사람들은,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
다른 수가 없겠어.
하지만...
마법진을 발동시켜 보자. 네가 방금 말한대로 우리 애들이 아직 제자리에 남아 있다면, 이 방법으로 다시 이쪽으로 불러올 수 있을지도 몰라.
이론상으로는야 그런데...
주위에 위협이 없다면, 우로보로스도 성격상 움직이지 않으리라 생각되옵니다.
당장 시도해보자, K5.
으음... 알았어.
K5가 주문서를 펼쳐, 지휘실 바닥에 그 마법진을 새로 그렸다.
이제 어떡하면 되지?
어디 보자, 주문을 외워야――
그런데, 주문도 안 외웠건만 마법진이 돌연 빛을 발했다.
작동한 듯하옵니다만.
벌써?!
우와아아아악——
하늘에 계신 아버니이이이임――!!
낯익은 듯 아닌 듯한 소녀 네 명이, 마법진 중앙에 펑 나타났다.
......
어어!?
이 애들... "사신짱 전선"의...?!
너희는 누구야!? CZ75랑 다른 애들은?!
그건 우리가 할 말이야!
너네야말로 누구야? 어떻게 우릴 소환했어?
천국...은 아니고, 악마의 소굴 같아요...
......
쇠, 쇠뿔...?
설마, 책에 적혀 있던...!
여긴 대체...
헉, 인간이다!
지휘관을 보자마자, 보라색 머리의 소녀가 허겁지겁 빵봉지를 꺼내 머리에 뒤집어썼다.
어... 일단, 여긴 그리폰&크루거 안전계약사의 기지고, 난 이곳의 지휘관이야.
정말 미안해, 우린 실종된 인형들을 다시 불러오려 한 건데, 어찌 된 영문인진 몰라도 너희가 휘말린 모양이야.
사라진 인형? 혹시...
이름이 CZ75, NZ75, P90, 그리고――
우로보로스이옵니다.
역시.
사신짱이랑 같이 있던 애들 아니야?
이쪽 세상에서 온 애들이었구나...
그 애들은 지금 어디 있지?
......그렇게 된 일이에요.
그 아이들은 지금 사신짱과 함께일 테지만, 딱히 위험할 일은 없어요.
방금 두 세상을 잇는 문을 직접 열 수 있다고 했는데, 정말이야?
응. 오후 내내 주문서를 조사한 결과로 보건대 이게 가장 쉬운 방법이야. 체력 소모가 좀 크겠지만.
유리네는 굉장하다고!
그렇다니 다행이네...
<color=#00CCFF>지휘관님! 긴급 사태예요!</color>
카리나? 무슨 일이야?
<color=#00CCFF>초대형 폭우 때문에 기지 인근 지역의 오염도가 급상승한 건 보셨죠?</color>
......
<color=#00CCFF>네... ELID들이 덩달아 활성화돼서 이쪽으로 잔뜩 몰려오고 있어요...</color>
알았어, 즉시 부대를 편성할게.
정말 환상적인 타이밍이옵니다.
귀찮은 일이 생겼나 봐요?
ELID가 뭐야?
어... 고전 영화에 나오는 좀비 비스무리한 거라고 하면 이해가 되려나?
......
좀비?
"유리네"란 이름의 소녀가, 갑자기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흥분했다.
그럼... 부디 나도 거들게 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