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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보 · 좀비랜드 사가

4일차·야간

-5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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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고요한 수목원.

습하고 무거운 밤공기 속에서, 당신은 홀로 은근히 축축한 벤치에 앉아 맞은편 나무의 잎사귀가 가로등 빛에 반짝이는 것을 멍하니 바라봤다.

한낮에 선명한 흰색으로 반사되던 빛이 밤인 지금은 안개처럼 몽롱한 것이, 마치 눈가에 맺힌 눈물 같았다.

한동안 그렇게 멍하니 있던 당신은 마침내 힘없이 한숨을 내뱉고는 혼신의 힘을 다해 짰던 "지옥 훈련 계획"을 꺼내, 오늘의 시간표를 가득 채웠던 트레이닝 내용에 각주를 달았다.

지휘관

훈련 계획 1일차. 트레이닝 자체가 고강도였거니와 프랑슈슈가 자발적으로 난이도를 높인 탓에 멤버들 모두가 감당 가능한 범주를 심각하게 초과해 버렸다.

사쿠라는 목이 쉬었고, 아이와 준코는 컨디션 하락, 릴리와 타에는 아예 탈진, 유우기리도 괜찮은 척하지만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오후의 일과를 멍하니 되짚어 보던 중, 손에서 훈련 계획서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그리폰에서 작전 계획을 수립할 때도 이렇게까지 심각한 사고는 벌어진 적 없었건만.

게다가 이게 최악의 상황이 아니란 사실이 더욱 끔찍했다.

지휘관

......

설마, 내 재능은 전술적으로만 유용하고 아이돌 프로듀싱엔 전혀 안 맞는 건가?

어휴, 기지에 연락만이라도 된다면 좋을 텐데... 최소한 무대에 서본 경험 있는 애들한테 조언을 구할 수 있을 테니...

???

어떤 이는 눈앞에 있으면서도 하늘 너머고.

어떤 이는 하늘 너머에 있으면서도 바로 눈앞이니.

지휘관

...닌자냐.

나지막한 목소리가 바스락대는 나뭇잎 사이로 내려왔다.

닌자

어느 세계에서도 너는 눈앞의 인연을 소중히 하지 않는군.

지휘관

프랑슈슈랑 직접 마주보고 소통해서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란 소리야?

아주 일리 있는 말이네, 어제오늘 특히나 그리폰 생각이 많이 나니...

닌자

아니다.

내 말은――

닌자

이 전문가에게 전화 안 하고 뭐했냔 뜻이다!

지휘관

......

또다 싶어 자리를 뜨려 했지만, 이번에도 닌자가 당신의 무릎을 단단히 누르는 통에 실패했다.

닌자

땅바닥의 이건, 네가 구상한 트레이닝 계획인가?

지휘관

맞아, 효과는 영 엉망이었지만.

당신이 떨어뜨린 계획서를 주워서 찬찬히 읽은 닌자의 그 잔잔한 호수 같던 눈동자가... 순식간에 화산 분화구로 돌변했다.

닌자

<size=50>뭐어야아 이게에에에!!!</size>

지휘관

어우 깜짝야... 프랑슈슈의 긴급 특별 트레이닝 계획인데.

닌자

<size=50>트레이니잉~? 뭔 놈의 트레이닝이 이따구야!? 좀비를 다시 죽일 셈이냐!!</size>

지휘관

어... 좀비라면 한두 번쯤은 죽어도 괜찮지 않을까?

닌자

괜찮기는 개뿔이!

아무리 프랑슈슈라 해도 이딴 초고강도 훈련은 못 버틴다!!

닌자

<size=50>로봇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은!!</size>

지휘관

아하... 어쩐지, 이 위화감이 대체 뭔가 했더니 내 지시 따르는 애들은 인형이었지...

닌자

뭘 혼자 헛소리하는 거야? 그리고, 여기에 단 각주는 또 뭐야?!

지휘관

아, 그거? 오늘 상황 정리한 거.

닌자

......

닌자의 눈 속 화산에서 뿜어져 나오던 용암은 끝내 팍 식은 화산재가 되어버렸다.

닌자

끔찍하다... 내가 살면서 본 것 중 최고로 끔찍해...

닌자

<size=50>3만 명짜리 공연장에 500명밖에 안 온 것보다 끔찍하다고!!!</size>

지휘관

...사실, 더 끔찍한 게 있어.

양심이 찔려, 당신은 그 말을 하면서 시선을 돌렸다.

지휘관

공연 주최 측에서 전화가 왔는데, 사흘 후 있을 공연을 카리나 엔터테인먼트의 다른 그룹에게 양보하라더라...

"그레이 트리", 너도 들어봤지? 내가 알아본 바로는 나이트 카페보다 실력이 뛰어난 그룹이라던데...

닌자

......

지휘관

...닌자?

닌자

......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은 닌자는 어째선지 반응이 없었다.

......

약 1시간 후, 당신은 레슨 스튜디오에 있던 프랑슈슈를 억지로 끌고 나와 함께 저택으로 돌아왔다.

미나모토 사쿠라

지휘관, 왜 갑자기 이런 데 오자 한 거예요?

미즈노 아이

저녁 식사라면 로비에서 해도 되지 않아?

야마다 타에

우물우물우물우물... (뭔가 씹는 중.)

지휘관

너희에게 할 아주 중요한 말이 있어서.

당신은 칠판 옆에 서서, 프랑슈슈와 진지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이곳은 당신이 눈을 뜨고 프랑슈슈와 처음 만났던 바로 그곳. 특별한 의미가 있기에 모두를 여기에 모았다.

호시카와 릴리

설마... 릴리랑 모두 두고 떠나려고...?

지휘관

그럴 리가. 약속했잖아.

아니, 약속이 없더라도 이제 난 너희와 끝까지 함께할 거야.

유우기리

지휘관님...

니카이도 사키

다, 닭살 돋게 한밤중에 뭔 소리여!

콘노 준코

그래서, 저희에게 하실 말씀이 뭔가요?

지휘관

후우......

지금부터 하는 말은 한 마디 한 마디 전부 중요하기에, 당신은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지휘관

――미안하다.

미나모토 사쿠라

엑?! 와, 와 갑자기 사과하는데요!?

지휘관

내가 트레이닝 계획을 너무 생각 없이 짜고 말았어.

아이돌이란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효율만 생각한 탓이야.

계획 구상 때 너희의 의견도 물어보지 않고, 나 혼자서 판단한 탓이야.

오늘 너희가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그 지경으로 지친 걸 보고서야 깨달아서, 정말 미안해.

미즈노 아이

...지휘관, 지휘관만의 잘못이 아니야.

나도... 초조함과 걱정에 사로잡혀서, 지휘관의 계획에 한술 더 뜨는 짓을...

콘노 준코

저희 모두 마찬가지예요.격차를 느끼고 패닉에 빠져서, 좀비처럼 아무 생각 없이 마구 트레이닝을 해버렸어요... 좀비지만.

유우기리

오늘 일은 누구 한 명만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니에요, 우리 모두가 범인이죠. 아무도 나무랄 수 없어요.

호시카와 릴리

응응! 우리는 일심동체!

프랑슈슈 모두가 의자에서 일어나 당신에게 모여들었다.

미나모토 사쿠라

지휘관, 긍께 사과하지 말어야...

니카이도 사키

그딴 거 말 안 해도 다 알어.

지휘관

그래도 꼭 말하고 싶었어. 오늘 내가 여태까지 너희와 속마음까지 터놓고 교류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거든.

서로가 어떤 생각인진 진작에 알았는데 말이지...

모두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중, 당신이 모두의 손을 한데 모았다.

지휘관

그리고, 우린 앞으로 더 험난한 도전과 마주해야 하니까.

미나모토 사쿠라

알아요... 사흘 뒤의 공연 섭외가 취소된 거.

미즈노 아이

그래서 다른 곳을 알아보는 중이야.

콘노 준코

갑작스러운 변경이라 규모가 작은 장소밖에 못 찾았지만요.

니카이도 사키

으쨌든 라이브 콘서트는 할 거다! 프랑슈슈는 어디서든 프랑슈슈라고!

필사적으로 아무렇지도 않아 하면서 당신을 위로까지 하는 프랑슈슈에게, 당신은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휘관

누가 나한테 이렇게 말했어, 아이돌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무대에 올라야 마땅하다고.

그러니까, 사흘 뒤 프랑슈슈의 라이브 공연 장소는 여기 말곤 없다! 알았나!?

당신이 손에 쥔 공연 포스터를 높이 들었다. 원래대로라면 프랑슈슈가 있어야 할 자리지만...

미나모토 사쿠라

하, 하지만 거긴 그레이 트리가 공연하기로 예정이 바뀌었잖어...

미즈노 아이

분하지만 어떡해, 그레이 트리는 업계에서도 유명한 실력파 데스메탈 그룹인걸.

지휘관

그래서 어쩌라고! 너희의 롹 스피릿은 벌써 다 잊어먹은 거냐!!

콘노 준코

우리의... 록 스피릿...?

당신이 스피커의 버튼을 누르자, 강렬한 음악이 터져 나와 지하실을 진동시켰다.

지휘관

<size=50>우리가 누구냐? 프랑슈슈다!</size>

<size=50>사흘 뒤, 우리는 되찾으리라!</size>

니카이도 사키

<size=50>그래애 기합이다 기합! 프랑슈슈는! 당한 빚은 반드시 갚는다!</size>

지휘관

<size=50>누가 감히 우리의 무대를 뺏는다면!</size>

니카이도 사키

<size=50>마이크를 치켜들고 다시 차지한다!</size>

지휘관 & 사키

<size=50>네버! 기브업! 뚜 잇! 나우!</size>

――딸깍.

아이가 스피커를 끄며 제지했다.

미즈노 아이

둘 다 진정해, 기합이야 마음껏 넣어도 되지만 현실을 무시하면 안 되잖아.

유우기리

비이성적이고 광적이기만 한 구호는 자욱한 안갯길에서 길만 잃을 뿐이와요.

호시카와 릴리

릴리도 그런 무대에서 공연하고 싶지만, 역시...

지휘관

걱정 마, 방법은 진작에 생각해 뒀으니까.

콘노 준코

방법이요?

회심의 미소에는 다 이유가 있었으니, 당신은 다시 씨익 웃으며 닌자가 마련해 준 것을 꺼냈다.

2시간 전, 수목원.

계속 흔든 끝에, 정신이 가출했던 닌자가 헛구역질을 하며 의식을 되찾았다.

지휘관

괜찮아?

닌자

우웩...

지휘관

정신 차렸구나, 깜짝 놀랐네.

닌자는 말없이 일어나서 허공을 주시하며 한참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지휘관

뭐야... 왜 그래?

닌자

방법을 강구 중이다.

지휘관

설마 그럴까 싶지만... 닌자라고 그레이 트리를 암살할 셈은 아니겠지?

닌자

여기가 뭐라 생각하는 거냐, [닌자의 신조]?

닌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품에서 포스터 한 장을 꺼냈다.

지휘관

이건...?

닌자

역시 이 수밖에 없겠군... 그레이 트리를 꺾고 그 자리를 탈환한다.

지휘관

......

닌자

......

지휘관

차라리 암살이 낫겠다...

어차피 그레이 트리 얘네도 다 인형이니까 소체 제어 권한만 어떻게든 확보하면 잠시 행동을 정지시킬 수 있――

닌자

헛소리 집어쳐어어! 프랑슈슈는! 정정당당히 이겨야 한다아앗!!

지휘관

아니 아무리 그래도...

닌자

너는 본 적 없어서 모르겠지. 프랑슈슈의 데스메탈 실력은 그레이 트리에 절대 뒤지지 않아.

게다가 무대는 바로 여기 사가. 사가 관객들 마음 깊숙이에 잠든 록 스피릿을 깨운다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

지휘관

흠... 그럼 그걸 어떻게 하는데?

닌자

그건 너와 프랑슈슈가 생각할 문제다.

미나모토 사쿠라

......

제가 이해한 게 맞다면... 그러니까...

우리더러 그레이 트리한티 도전하라고? 이겨서 공연 무대 탈환이고?

지휘관

그래.

옆에서 잠자코 지켜보던 유우기리가 손으로 살며시 당신의 이마를 짚었다.

유우기리

열은 없는 것 같은데...

콘노 준코

몸이 안 좋아서 제정신이 아닐 수도 있어요, 일단 한숨 푹 주무시고 난 다음 이야기를...

미즈노 아이

그건 억지야, 지휘관.

지휘관

우리에겐 필승의 비법이 있대도?

호시카와 릴리

필승의 비법? 뭔데? 릴리한테도 있어?

딸깍.

당신은 냅다 스피커를 다시 켰다.

지휘관

스피릿! 오픈 더 사가의 롹 스피릿!!

지휘관

<size=50>로큰롤 네버 다이!! 너희도 네버 다이!! 너희가 바로 롹이다아앗!!!</si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