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 그레이 진 믹스
2Z64 구역 거주 단지의 카페.
지휘관은 세월 속에 멈춘 골동품 시계 진열장을 무덤덤하게 지나쳤다.
카페에 어서 오세요, 주문 도와드릴까요?
안녕하세요, 036호. 커피 두 잔 부탁드려요, 계산은 제가 할게요.
아니, 난 얼 그레이 진 믹스 한 잔.
지휘관이 입을 열 때마다 390호는 계속 허를 찔렸다.
얼 그레이 진 믹스요...?
무슨 칵테일 이름 같네요.
맞아, 네가 새로 개발한 칵테일.
호수처럼 평온하던 036호의 눈동자에 아주 잠깐 놀람이 스쳤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다시 평온하게,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차분히 지휘관에게 차를 한 잔 따랐다.
그 얼 그레이 진 믹스의 이야기,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추측하자면, G36이 끓인 얼 그레이 티에, 네 엘더플라워 시럽과 진을 섞어서......
......
죄송합니다 지휘관님, 2Z64 구역에 주류는 없습니다.
최대한 흥을 깨지 않도록, 390호는 목소리를 한껏 낮춰서 말했다.
견디기 힘든 침묵이었지만, 036호의 미소는 여전했다.
레시피도 흥미롭겠지만, 그보단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어요?
...나는 마시지 못했어.
정말 아쉬우시겠군요, 엄청 기억에 남을 맛일 것 같은 이름인데.
그렇지... 어쩌면 평생 마실 날이 오지 않을지도.
그리폰 기지 정기 순시 기록\n기록 부관 - HK433
오후 2시 10분 ~ 2시 15분, 순시 지점 -카페\n"안에 느긋한 공기가 아니라 수심의 구름이 갇혀 있었다."
어서 오세요, 지휘관님. 늘 마시던 걸로 드릴까요?
......
지휘관의 시선은 스프링필드를 넘어, 카페 안을 맴돌았다.
저쪽이 신경쓰이세요? 지금 부업으로 돈을 벌 수 있을지 논의 중이랍니다.
곧 크리스마스라서, 사고 싶은 선물이 있으니까요.
그냥 부업에 관한 이야기야? 다들 안색이 별로인걸.
어려운 문제라도 있는가 보죠. 너무 걱정은 마세요, 어려움은 천천히 해결되기 마련이니까요.
살아가는 한, 어려움은 저절로 생겨나니 말이지...
지휘관님도 달콤한 거라도 드시면서 기분을 푸시는 게 어떨까요?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열량 보충도 제대로 하지 않으셨잖아요.
난 괜찮아.
저희가 최근 신메뉴를 냈답니다, 얼 그레이 진 믹스라고 평가가 제법 좋아요. 지휘관님도 한 잔 어떠세요?
고마워, 하지만 다음에.
난 여태껏 "다음"이 아주 쉽게 찾아오는 것이라 생각했어. 고개를 돌려 석양을 보는 것처럼. 혹은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줍는 것처럼 쉬운 일.
하지만 현실에선 종종, 뒤돌아 봤을 때 석양이 이미 졌거나, 허리를 숙일 때 동전이 맨홀 구멍 속으로 떨어진 뒤일 때가 있더군...
우리가 정말 가볍게 다음을 이야기할 때, 다음은 이미 없을지도 몰라.
......
지휘관은 눈앞의 찻잔을 살며시 밀어내고 일어서, 카페 밖으로 나섰다.
지휘관님?!
390호가 다급히 뒤따라 나섰고, 조용해진 카운터 앞에는 036호만 홀로 남아 입도 대지 않은 찻잔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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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Z64 구역 거주 단지의 카페.
지휘관은 세월 속에 멈춘 골동품 시계 진열장을 무덤덤하게 지나쳤다.
카페에 어서 오세요, 주문 도와드릴까요?
안녕하세요, 036호. 커피 두 잔 부탁드려요, 계산은 제가 할게요.
아니, 난 얼 그레이 진 믹스 한 잔.
지휘관이 입을 열 때마다 390호는 계속 허를 찔렸다.
얼 그레이 진 믹스요...?
무슨 칵테일 이름 같네요.
맞아, 네가 새로 개발한 칵테일.
호수처럼 평온하던 036호의 눈동자에 아주 잠깐 놀람이 스쳤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다시 평온하게,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차분히 지휘관에게 차를 한 잔 따랐다.
그 얼 그레이 진 믹스의 이야기,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추측하자면, G36이 끓인 얼 그레이 티에, 네 엘더플라워 시럽과 진을 섞어서......
......
<size=25>죄송합니다 지휘관님, 2Z64 구역에 주류는 없습니다.</size>
최대한 흥을 깨지 않도록, 390호는 목소리를 한껏 낮춰서 말했다.
견디기 힘든 침묵이었지만, 036호의 미소는 여전했다.
레시피도 흥미롭겠지만, 그보단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어요?
...나는 마시지 못했어.
정말 아쉬우시겠군요, 엄청 기억에 남을 맛일 것 같은 이름인데.
그렇지... 어쩌면 평생 마실 날이 오지 않을지도.
그리폰 기지 정기 순시 기록\n기록 부관 - HK433
오후 2시 10분 ~ 2시 15분, 순시 지점 -카페\n"안에 느긋한 공기가 아니라 수심의 구름이 갇혀 있었다."
어서 오세요, 지휘관님. 늘 마시던 걸로 드릴까요?
......
지휘관의 시선은 스프링필드를 넘어, 카페 안을 맴돌았다.
저쪽이 신경쓰이세요? 지금 부업으로 돈을 벌 수 있을지 논의 중이랍니다.
곧 크리스마스라서, 사고 싶은 선물이 있으니까요.
그냥 부업에 관한 이야기야? 다들 안색이 별로인걸.
어려운 문제라도 있는가 보죠. 너무 걱정은 마세요, 어려움은 천천히 해결되기 마련이니까요.
살아가는 한, 어려움은 저절로 생겨나니 말이지...
지휘관님도 달콤한 거라도 드시면서 기분을 푸시는 게 어떨까요?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열량 보충도 제대로 하지 않으셨잖아요.
난 괜찮아.
저희가 최근 신메뉴를 냈답니다, 얼 그레이 진 믹스라고 평가가 제법 좋아요. 지휘관님도 한 잔 어떠세요?
고마워, 하지만 다음에.
난 여태껏 "다음"이 아주 쉽게 찾아오는 것이라 생각했어. 고개를 돌려 석양을 보는 것처럼. 혹은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줍는 것처럼 쉬운 일.
하지만 현실에선 종종, 뒤돌아 봤을 때 석양이 이미 졌거나, 허리를 숙일 때 동전이 맨홀 구멍 속으로 떨어진 뒤일 때가 있더군...
우리가 정말 가볍게 다음을 이야기할 때, 다음은 이미 없을지도 몰라.
......
지휘관은 눈앞의 찻잔을 살며시 밀어내고 일어서, 카페 밖으로 나섰다.
지휘관님?!
390호가 다급히 뒤따라 나섰고, 조용해진 카운터 앞에는 036호만 홀로 남아 입도 대지 않은 찻잔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