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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보 · 공각기동대

벚꽃과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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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2Z64 구역, 지하철역.

어제에 비해 지휘관은 가상 세계의 감각에 어느 정도 적응했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내리면서 가장 처음 마주친 얼굴은, 여전히 지휘관의 눈살을 찌푸려지게 했다.

미즈카네 스즈카

오늘은 꽤 일찍 왔군, 지휘관.

지휘관

......

미즈카네 스즈카

어젯밤 잠자리가 불편했어?

지휘관

......

미즈카네 스즈카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네. 얼마든지 질문해도 좋아, 지금 기분이 괜찮거든.

지휘관

왜 나한테 집착하지? 그냥 깔끔하게...

미즈카네 스즈카

너의 존재를 지워버려도 되는데 말이지? 후후, 그렇지.

하지만 너는 매우 특별해, 최소한 지금 이곳을 건설하는 인형들에게 있어서.

지휘관

......

미즈카네 스즈카

신기하지? 분명 다들 너를 기억하지 못하는데.

하지만 그들의 마인드맵은 너와 근접해 있으면 이상하게도 무척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해.

네가 항상 그들 곁에 있어 준다면, 우리가 번잡하게 따로 조치를 취할 필요도 없어지지.

지휘관

내게 양치기 일을 시키겠다는 거군.

미즈카네 스즈카

어떻게 이해하든 자유야.

지휘관

네 의도대로 움직일 생각 없어.

미즈카네 스즈카

내가 이렇게 대놓고 우리의 계획을 너에게 밝히는 건, 그만큼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지.

지휘관

......

미즈카네 스즈카

이 이야기는 그만하자. 오늘 할 일에 대해서 말인데...

미즈카네가 손뼉을 쳐서 누군가를 불렀다.

미즈카네 스즈카

오늘 너의 견학 가이드는 390호 말고도 임시로 한 명이 더 붙을 거야.

지휘관

......

미즈카네 스즈카

왜 흥미가 없어 보이지? 어제까지만 해도 동료들이 어디 있는지 캐묻더니...

지휘관

보이스? 푸린?

미즈카네 스즈카

보이스는 아직 사상 교정이 끝나지 않았어. 검증을 통과한 다음에야 2Z64 구역에 들어올 수 있어.

지휘관

그렇다면 푸린이겠군...

미즈카네 스즈카

그렇지.

미즈카네는 미소지으며 천천히 인파 사이로 물러났다. 지휘관은 그녀의 눈빛에서 어렴풋한 조롱을 느꼈다.

미즈카네 스즈카

그럼 나는 이만 실례하지, 지휘관.

오늘을 즐기도록 해, 우리가 준비한 선물이 마음에 들길 바라.

지휘관

......

미즈카네는 흡사 모래 속에 숨는 소라게처럼 눈 깜짝할 새 인파 사이로 모습을 감췄다.

잠깐 숨을 돌리려 할 때, 누군가 지휘관의 어깨를 두드렸다.

에사키 푸린

헬로, 지휘관님!

지휘관

푸린! 너 무사하지?

에사키 푸린

무사해요.

지휘관

저들한테 무슨 짓 안 당했어? 그리고, 보이스는?

에사키 푸린

별 짓 안 했어요. 그리고 보이스도 무사하니까 안심하세요.

푸린은 평소처럼 해맑게 눈을 깜빡였다.

지휘관

......

두 눈으로 직접 푸린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긴 했지만, 지휘관의 가슴엔 여전히 불안함이 남아있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에사키 푸린

가죠, 저쪽에서 지휘관님께 큰 선물을 준비했대요!

대체 뭘지 어서 가봐요!

지휘관

앗, 잠깐만.

지휘관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푸린은 지휘관의 팔을 붙잡고 끌고 갔다.

2Z64 구역의 어딘가.

지휘관

......

벚꽃이 필 계절이 아닌데도, 가상의 세계에선 기후의 제한 없이 꽃이 피어났다.

눈앞의 도로는 양쪽 모두 화사하게 피어난 벚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마치 지금 피지 못하면 영원히 필 수 없기라도 한 것처럼.

푸린이 손을 흔들자, 따스한 바람이 벚꽃잎을 싣고 불어와 지휘관의 머리카락 사이에 살며시 기념품을 남겼다.

지휘관

여기는?

에사키 푸린

새로 개발 중인 구역이에요, 여기에 상업 구역을 확장할 예정인가 봐요.

영원히 시들지 않는 벚나무 옆에 가게를 열다니, 참 좋은 선택이네요!

지휘관

가게를 열다니? 무슨 뜻이야?

에사키 푸린

음... 아마 지휘관님이 가만히 계시질 못하는 게 걱정스러워서, 뭐라도 할일을 찾아 준 거겠죠~

지휘관

그게 무슨 황당한 소리야!?

내 모든 것을 빼앗고 이딴 식으로 얼버무리겠다고?

푸린은 지휘관의 분노에 반응하지 않고, 그저 싱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마치 개구쟁이 고양이가 주인이 아끼는 컵을 테이블에서 떨어뜨리기라도 한 것처럼.

에사키 푸린

화내지 마세요, 지휘관님. 그들한테 악의는 없으니까요.

지휘관

푸린, 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에사키 푸린

아무것도요. 마주쳤을 때 살짝 마찰이 있긴 했지만, 이젠 다 해결됐잖아요?

지휘관님은 지금 이대로가 나쁘다고 생각하세요?

지휘관

......

지휘관은 지금 눈앞에 있는 소녀에게서 더 이상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자신이 당한 일을 전해들었을 때, 그토록 함께 분노해 줬던 아이가...

에사키 푸린

자자, 그렇게 삐져있지 마시고요, 일단 지휘관님의 선물을 보러 가자고요!

맞다, 오늘 390호도 올 거예요~~

지휘관

390호... 너 지금 걔를 390호라고 부른 거야?

에사키 푸린

390호 씨! 이쪽 이쪽이요!

390호

네.

흩날리는 벚꽃 속, 그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불안이 묻어나는 얼굴이 다시 지휘관의 시야에 나타났다.

390호

안녕하세요, 지휘관님. 저 반성했어요. 어제 안내 업무에 확실하게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해서 보다 나은 경험을 제공하겠습니다. 부디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세요.

390호는 허리를 살짝 숙이면서 지휘관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휘관

......

390호

......

에사키 푸린

빨리 악수하고 화해해요~ 기다리다 해 지겠어요!

아무래도 악수하지 않으면 손을 내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지휘관은 손을 내밀어 390호의 손을 잡았다.

390호

신뢰에 감사드립니다. 반드시 믿음에 부응하겠습니다.

지휘관

......

에사키 푸린

그래야죠~

390호가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가더니 길가에 있는 가게를 가리켰다. 간판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390호

지휘관님, 여기가 2Z64 구역에서 지휘관님을 위해 배정한 점포입니다.

자세한 용도를 아직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점포의 간판, 인테리어 모두 공백인 상태입니다.

혹시 뭔가 아이디어가 있으신가요?

지휘관

아니, 애초에 무슨 장사 하려고 여기 온 것도 아니고...

390호

알겠습니다. 그럼 무슨 용무로 오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지휘관

......

지휘관은 몸을 돌려 약간 착잡한 심정으로 390호의 맑은 두 눈을 응시했다.

390호

부담 갖지 마시고 말씀해 주세요.

지휘관님의 수요에 맞춰 점포 개장을 돕는 것이 오늘 저의 임무입니다.

지휘관

......

아무거나 해, 뭐든 상관 없으니까.

이 매사에 진지한 인형 앞에서, 지휘관은 자꾸만 고집이 꺾였다.

에사키 푸린

지휘관님의 과거 경력을 감안하면, 지휘관님께 어울릴만한 일은...

<size=50>의뢰를 받는 심부름 센터 어때요!?</size>

390호

에사키 씨의 뜻은... 대충 알겠습니다.

지휘관

뭘 알겠다는 건데...

지휘관이 의자에 앉아 한숨을 내뱉는 사이, 390호가 점포를 깔끔하게 정리한 뒤 백지 상태인 간판을 꺼냈다.

"아무거나"

390호는 진지하게 간판에 그렇게 적고서 점포 밖의 가장 눈에 띄는 곳에 걸어놓았다.

에사키 푸린

응응! 아주 보기 좋네요!

지휘관

뭐하는 건데?

390호

지휘관님의 요구사항을 정리하여 점포 운영을 조정 중입니다.

지휘관

난...

지휘관은 간판 위의 글씨를 보며 마지못해 한숨을 뱉었다. 하지만 문득, 그녀가 뭘 계획하든 자신이 안 따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사키 푸린

그럼 두 분은 의뢰를 처리하고, 푸린은 가게 홍보를 도울게요~

지휘관

기다려!

에사키 푸린

<size=50>신장개업! 신장개업!</size>

<size=50>무슨 일이든 합니다! 의뢰만 해 주세요!</size>

지휘관

푸린?!

푸린이 폴짝폴짝 멀어져갔다. 지휘관은 쫓아가서 붙잡으려 했지만, 390호에게 제지당했다.

390호

에사키 씨의 일을 방해하지 말아 주세요. 홍보를 하지 않으면, 지휘관님이 새로 영업을 시작했다는 걸 아무도 알 수 없어요.

지휘관

난 이런 거 전혀 필요 없다고!

390호

그럼 원하시는 건 무엇인가요?

지휘관

......

지휘관은 사실 알고 있다. 390호는 그저 임무에 관한 사항을 묻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지휘관의 사고는 저 먼 곳으로 뻗어나갔다...

예전엔 자신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참호에 들어가 인형들의 잔해가 즐비한 광경을 볼 때면, 익숙한 S09 기지에 다신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식할 때면...

인형들을 데리고 보다 단순하고 평온한 생활을 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은 지휘관도 해봤었다.

에사키 푸린

승전보를 전해드립니다! 바로 첫 번째 손님을 모셔왔어요!

390호

안녕하세요.

203호

...여기 정말 무슨 의뢰든 해결해 주는 건가요?

390호

네, 203호.

의뢰 접수는 여기 점장님께 부탁드려요.

지휘관

아니, 나 아직 고민 중이거든...

203호

<size=50>저 좀 도와주세요! 그——</size>

390호

점장님은 지휘관이라 부르시면 됩니다.

203호

지휘관님! 우리 집 베이트를 찾아 주세요!

에사키 푸린

어서 이분을 도와 주세요!

지휘관

......

지휘관은 익숙한 상황에 잠깐 방향 감각을 잃어버렸다. 자신이 지금 어느 시공에 있는지 헷갈렸다.

아주 잠깐, 자신이 S09 지역 기지의 지휘실에 돌아와 있고 허니뱃저가 언제나처럼 헐레벌떡 들어와 도움을 청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390호

조금 진정하세요. 그 베이트의 외모상 특징과 마지막으로 목격했을 때의 상황을 말해 주세요.

203호

아 그렇지. 베이트는 등은 하얗고 배는 검은——

지휘관

오소리, 벌꿀오소리지...

베이트가 또 담을 넘어 가출한 거야?

203호

어떻게 아셨어요?! 굉장하다!

지휘관

그럼 대강 누가 사탕을 먹으면서 담 너머를 지나가고 있어서 녀석의 주의가 끌린 거겠지.

그 인물은 높은 확률로 진한 분홍 머리카락을 하고 있을 거고...

203호

아! 그러고 보니까 오늘 028호를 보지 못했어요. 바로 028호한테 가서 물어볼게요!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지휘관님!

203호는 헐레벌떡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뛰어나갔다.

에사키 푸린

오오, 첫번째 의뢰부터 엄청 순조롭네요.

두 분은 여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푸린이 가서 손님을 더 끌어올 테니까요!

지휘관

......

390호

아차!

지휘관

왜 그래?

390호

요금을 받는 걸 깜빡했어요...

지휘관

......

괜찮아. 오픈 첫날이니까, 홍보용으로 무료 행사도 할 수 있지.

390호

지휘관님...

별로 안 내키시던 것 아니었나요...

지휘관

그걸 알면서 왜 이렇게까지 사서 고생하는 거지?

390호

그건...

지휘관

엘리트로서 받은 임무는 반드시 최선을 다해야 하니까겠지.

390호

어떻게 그걸...

지휘관이 뭐라 더 말하기도 전에 누군가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048호

안녕, 저쪽의 에사키 양한테 들었는데, 여기가 뭐든지 해주는 가게라며...

390호

안녕하세요, 048호. 무슨 의뢰가 있나요?

048호

......

048호

사실 내가 요즘 요리를 연습하고 있거든. 근데 아무도 시식을 도와주지 않아.

그래서 어떻게 하면 발전할 수 있을까 해서...

지휘관

기다려, 그 의뢰는 받아줄 수——

390호

알겠습니다. 시식 의뢰를 맡기고 싶으신 거죠?

맡겨주세요, 저희가 반드시 객관적인 의견을 드리겠습니다.

지휘관

아니, 이건 정말로 무리라고...

390호

우린 분명 할 수 있어요.

048호

고마워! 사실 여기 챙겨왔거든.

048호가 도시락통을 꺼내는 사이, 지휘관은 바로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390호가 곧바로 지휘관을 붙잡았다.

390호

엘리트로서 받은 임무는 반드시 최선을 다해야 해요.

몇 시간 후.

지휘관은 겨우 숨 돌릴 기회를 얻어, 바로 가게 셔터문을 내리고 마감 준비를 했다.

에사키 푸린

가게 운영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어요, 에고고!

지휘관

잘도 말한다...

390호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휘관

...너도 수고했어.

지휘관은 맥이 빠진 채 탁자에 기댔다. 이 가상 세계의 지나치게 현실적인 감각이 원망스러웠다.

390호

저는 이제 돌아가서 보고를 올려야 해서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에사키 씨, 지휘관님. 푹 쉬세요.

지휘관

그래.

에사키 푸린

390호 씨도 푹 쉬어요~!

390호

...내일 다시 봬요, 지휘관님.

390호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문틈 너머로 사라졌다.

세상이 다시 조용해졌고, 지휘관은 옆에 한가하게 늘어진 푸린에게 고개를 돌렸다.

지휘관

......

에사키 푸린

응? 왜 그러세요?

지휘관

지금 우리 둘밖에 안 남았는데, 나한테 뭐 해명할 것 없어?

에사키 푸린

에... 무슨 해명이요?

지휘관

너의 태도.

에사키 푸린

푸린의 태도...요?

에사키 푸린

갑작스런 일이 잔뜩 일어난 거 알아요, 지금 받아들이기 힘드신 것도 알아요. 하지만!

푸린이 함께 해결해 드릴게요!

......

그들의 음모를 기필코 저지하고, 인형들도 되찾은 다음,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갈 거니까요!

그들이 다시 AI를 이용해 멋대로 굴게 두지 않겠어요...!

지휘관

시마무라 타카시 일당이 한 짓 말인데, 너는 분명 그들을 막기 위해 왔다고 했으면서, 왜 지금은 그들과 같은 편이 된 거지?

에사키 푸린

오해하신 거예요.

지휘관

오해?

에사키 푸린

푸린이 언제나 하고 싶은 일은,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거예요. 이 세상에 어두운 구석이 없도록요.

지휘관

여기라면 그걸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에사키 푸린

네, 여기에선 가능하다고 믿어요.

지휘관

......

에사키 푸린

지금 분명 푸린이 정신 나갔다고 생각하시겠죠. 하지만 지휘관님, 솔직히 지휘관님도 오늘 꽤 즐거우셨죠?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잔혹한 전장에 비해, 편안하고 평범한 평화로운 일상이 더 좋지 않나요?

지휘관

그렇다고 그걸 가상 세계에서 실현해 봤자...

에사키 푸린

현실이든 가상이든 그게 무슨 차이인가요?

푸린의 관점에선 그리폰 기지 역시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된 가상 세계인걸요. 그래도 푸린은 그 안에 있는 당신도 진심으로 신경쓰잖아요.

지휘관

......

에사키 푸린

자, 자, 금방 마음을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거 알아요.

고민하시는 동안 2Z64 구역을 좀 더 느껴보세요. 이 문제의 답안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지휘관

...난 먼저 로그아웃한다.

에사키 푸린

네. 그럼 푸린도 이만 갈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푸린이 폴짝 일어서서 지휘관의 머리를 쓰다듬고선 길거리를 떠났다.

지휘관

......

고요해진 길거리에 지휘관만 남았다. 하지만 낮의 기억이 이 작은 점포 안에서 역재생되었다.

지휘관은 영문도 모른 채 오후 내내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의뢰를 맡기러 온 인형들이 이 작은 점포를 거의 파묻을 지경이었고, 의뢰 내용도 여러가지였다.

자신이 쓴 시의 의견을 구하거나, 오늘의 헬스 트레이닝 스케줄을 함께 소화해 달라거나, 외계에서 온 스파이라며 고양이를 잡아달라거나...

지휘관

정말로 이게 내가 원하던 것일까?

찝찝하다, 여전히 어딘가 찝찝하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겉면은, 마치 예쁜 무늬의 두꺼운 카펫처럼 모든 오물과 먼지를 그 밑에 감추고 있는 것 같았다...

미즈카네 스즈카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르지. 진정으로 마주했을 때야 알아차리고.

유령의 속삭임 같은 목소리에 지휘관은 의자에서 까무러칠 뻔했다.

지휘관

뭐하러 온 거냐?

미즈카네 스즈카

오늘의 체험은 좀 괜찮았는지 보러 왔지, 390호가 너의 평가를 상당히 신경 쓰거든.

지휘관

......

미즈카네 스즈카

익숙한 이들에게 둘러싸이니 이곳의 생활이 조금씩 적응되나 보군.

지휘관

저리 가, 난 이제 로그아웃할 테니까.

미즈카네 스즈카

우리의 제안을 다시 고려해 보지 않겠어?

이 전뇌화 에뮬레이션도 체험감은 꽤 괜찮지만, 접속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곳의 감각은 점점 약해질 거야.

전뇌를 사용하면 이런 걱정도 없어지지.

지휘관

알아.

미즈카네 스즈카

그리고, 이미 전에 한번 말해 줬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줄게.

네가 여기서 뭔가 어리석은 짓을 해서 목숨을 잃으면, 다신 이 세상에 들어올 수 없어.

지휘관

참 무섭네.

미즈카네 스즈카

이건 농담이 아니야, 지휘관. 기회를 소중히 여기도록 해.

신세계에서 사업을 이룩할지, 그 지저분한 구세계에서 계속 발버둥칠지, 선택권은 너에게 있어.

지휘관

......

미즈카네가 문틀에 기댔다.

미즈카네 스즈카

아참, 혹시나 모를까봐 알려줄게. 2Z64 구역은 가상 세계이긴 하지만, 인형이 여기서 소멸하거나 하면...

그 인형의 의식은 다신 소체로 돌아갈 수 없어. 사실상 죽음과 마찬가지지.

지휘관

지금 날 위협하는 거냐?

미즈카네 스즈카

위협일지 상냥한 귀띔일지, 그건 너 하기 따름이야.

그 유령 같은 목소리와 함께, 미즈카네의 모습은 또 홀연히 방 안에서 사라졌다.

지휘관은 식은땀을 흘리며 탁자에 기댔다. 방금까지 마치 온천에 몸을 담근 것 같던 느슨함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지금, 평화로운 겉면이 들춰지고 두꺼운 카펫 밑에서 조롱하는 음모가 드러났다.

지휘관

여긴 페르시카 씨가 말한 유토피아가 전혀 아니야, 그저 잘 꾸며진 연극에 불과해.

그 빅 브라더라는 자는 막후에 숨어서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고...

하지만, 자신을 맴돌던 그 수많은 화목한 웃음 소리는? 이 세상은 가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간만에 듣는 웃음 소리는 진실이었다.

정말 이런 세상이 있다면. 모두가 영원히 평화롭고 즐겁게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 그게 마냥 거짓이라 해도, 누군가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 해도 무슨 상관일까?

이 두터운 카펫 위에 누워 단잠을 이룰 것인가, 아니면 카펫을 들추어 밑에 숨겨진 진실을 볼 것인가?

지휘관

......

지휘관은 손가락을 떨구었다. 가슴에 피어오른 불안을 어떻게든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불안감은 자신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마치 발목부터 조금씩 차오르는 따듯한 수면처럼. 날카로움이 없는 위기감이지만, 치명적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 어지러운 생각에 화답하듯, 방 밖의 수풀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

지휘관

누구냐?

활짝 열린 문 밖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지휘관

미즈카네? 아니면 푸린이냐?

또 무슨 일인데?

데구르르...

술병 하나가 문 밖에서 굴러왔다.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것은 지휘관이 어젯밤 비운 그 술병과 똑같았다.

지휘관

술병? 여기는 알코올의 존재를 금지하지 않았나?

???

벌써 이곳의 사고 방식에 물들어 버린 거야, 지휘관?

문 밖의 벚나무 아래에 익숙한 여인이 서 있었다.

아니, 익숙하다고 하기에는 미묘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지휘관은 그녀와 한 마디도 말을 나눠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의지로 충만했던 지휘관이 점점 꺾여가는 과정을 조용히 지켜봤었다.

쿠사나기 모토코

처음 뵙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이런 시시콜콜한 인삿말부터 해야 할까?

지휘관

아니, 필요 없어. 네가 에사키 푸린의 대장인 쿠사나기 모토코 맞지?

푸린이 전에 너한테 구조 요청 메일을 보냈다고 했었어.

그리고 푸린이 너희의 의체도 만들었었지. 너희가 의체에 액세스하는 걸 기다리는 동안 나는 그걸 더미 인형으로 썼고. 그런데 왜 지금 다시...

쿠사나기 모토코

구조 요청 메일을 받은 건 맞아. 모든 것을 잃어버린 불쌍한 분이 있으니 도와 달라고.

쿠사나기 모토코

단서를 따라서 겨우 왔더니만, 오자마자 기절해 버린 그 불쌍한 사람을 들쳐메고 포위를 돌파해 기지로 되돌려놓아야 하질 않나, 한 바퀴 조사하고 돌아왔더니 그 불쌍한 사람이 가상 세계에서 팔자 좋게 지내고 있질 않나.

지휘관

......

쿠사나기 모토코

그래서 어떡하면 되지?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치고 난 돌아갈까?

지휘관

......

물이 차오른다.

따듯한 수면이 이미 목까지 차올랐다. 마치 부드러운 손처럼 지휘관의 얼굴을 받치고 수면 밑으로 끌어당기는 듯했다.

이대로 포근한 품 속에 잠길 것인가, 아니면 고개를 들어 현실의 차가운 공기를 마실 것인가?

지휘관

......

아니, 가지 마.

지휘관은 온 힘을 다해 포근한 만류 속에서 일어서, 살을 에는 찬바람에 몸을 맡겼다.

지휘관

...나를 도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