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재
밤이 되자 지휘관은 조용히 로렌스의 숙소로 잠입했다.
존경의 뜻으로 로렌스가 사망한 후에도 방은 원래 모습 그대로 유지되었고, 병원에서 고인의 유품을 정리할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지저분하네...
지휘관은 서류와 잡동사니로 가득 찬 방을 조심스럽게 돌아다니며 유용한 단서를 찾았다.
병례...
의학 서적...
구매 목록? ...허, 욕심쟁이네... ...잠깐만, 아니...
지휘관은 구매 명세서 뭉치를 손에 들고 재빨리 금액을 살펴보았다.
340만, 570만, 215만... 많이 떼이긴 했지만, 에비타는 왜 이렇게 많은 자금을 여기에 투자한 거지?
의뢰인 일 수익이 이렇게나 짭짤한가?
지난번 마룰로스에서 에비타와 만났을 때 좀 더 가격을 깎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지휘관의 머리를 스쳤다.
그래, 이건 내가 손대면 안 될 비밀일지도 모르지.
지휘관은 구매 명세서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옆에 놓인 액자를 들어 올렸다.
이 사람은?
"탁". 침실 쪽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이 기척에 지휘관은 반응하지 않고 듣지 못한 척을 했다. 책상을 원래대로 정리하고 방 안의 서랍들을 뒤지며 점점 침실 쪽으로 다가갔다.
한쪽 발이 문턱을 넘는 순간, 지휘관은 머리 뒤에서 강한 바람이 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기습이다!
기습을 예상하고 있던 지휘관은 신속히 옆으로 피했다. 상대가 휘두른 무기가 허공을 가르는 순간, 상대는 지휘관의 발차기를 맞고 엎어졌다.
으윽!
낮에 길을 알려준 부인이었다.
부인이 몸부림치며 일어나려 하자, 지휘관은 재빨리 그녀의 손에 든 칼을 걷어차고, 병실에서 가지고 온 링거 호스로 부인의 손을 묶었다.
당신 뭐야?
당신이 로렌스 의사를 죽였지?
그걸 어떻게 알았어?
찍었지.
자잘한 질문은 됐어, 나는 그 사람 복수를 하러 온 게 아니니까.
사무실 책상 위에 당신과 로렌스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놓여 있더군. 둘이 어떤 관계인지 좀 들어보실까?
그걸 내가 왜 알려줘야 해?
지휘관은 주머니에서 천천히 테이프가 돌아가는 작은 녹음기를 꺼냈다.
방금 당신이 스스로 살인을 인정한 건 녹음했어.
이 비겁한!
증거는 항상 준비해 둬야 하니까.
녹음기부터 꺼.
...그러지
지휘관이 녹음기를 끄자, 부인은 한숨을 내쉬며 몸에 힘을 풀고 문틀에 기대었다.
맞아, 난 로렌스와 연인 사이였어.
그럼 왜 죽였지?
로렌스가 중간에서 돈을 챙긴 거 알고 있지?
지휘관이 고개를 끄덕이자, 부인은 묶여 있는 두 손을 들어 왼손 중지에 낀 금반지를 보여주었다.
그 사람을 따라다니면서 나도 나름 잘 살고 있었어. 그런데 2주 전, 갑자기 진료소를 떠나겠다고 해서 나도 같이 가겠다고 했더니 거절당했지.
그이가 가면 나는 어떻게 먹고 살아?
또 2주 전.
그래서 죽였다?
원래 죽일 생각은 없었어.
갑자기 떠나겠다고 하니 이상하더라고. 알다시피, 여기 있으면 돈을 꽤 벌 수 있었는데 말이야. 돈줄을 포기해야 할 정도의 이유가 있었던 게 분명해.
그래서 송별회랍시고 취하게 해서 물어봤지.
뭐라고 하던데?
기밀 문서를 입수해서, 그걸로 협박해 카모나에서 빠져나갈 거라고.
문서? 어떤 문서?
잘은 몰라. 누군가의 신분과 관련 있는 것 같긴 한데, 너무 취해서 '가짜', '위장', '첩보원'같은 말만 반복했으니.
마침 같이 연못가를 걷고 있었어. 내가 같이 가자고 몇 번 더 물었더니, 나한테 욕을 퍼붓더라니까!
나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서, 바로... 바로... 그놈은 죽어도 싸!
그 문서는 어디에 있지?
몰라. 나도 오늘 그걸 찾으러 왔어. 그런데 어쩐 일인지 여기가 너무 어질러져 있어서, 아직 찾진 못했어.
어떻게 생긴 서류인데?
그이가 실수로 뿌린 레드 와인 얼룩이 묻은 빨간 봉투.
제가 좀 바빠서요. 쉬고 계시면 약 교체하기 전에 다시 올게요.
잠깐만!
지휘관은 바닥에 떨어진 붉은 봉투를 가리켰다. 봉투에는 검붉은 얼룩이 묻어 있었다.
이거 떨어뜨렸잖니.
앗, 고마워요! 이만 가볼게요. 무슨 일 있으시면 큰 소리로 부르세요!
수잔은 바닥에 떨어진 붉은 봉투를 주워 서류 뭉치에 꽂고 병실을 떠났다.
가라, 오늘 너와 나는 못 본 거다.
지휘관이 부인의 손에 감긴 호스를 풀어주자, 부인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떠나려 했다.
그리고 그 봉투에 대해서도 잊어버려. 살고 싶다면.
지휘관이 조용히 문을 열자, 불이 꺼진 밤의 병실은 칠흑 같았다.
지휘관은 자신의 병상 옆을 더듬다가, 침대 위에 검은 그림자가 있는 것을 보았다.
또 몰래 빠져나갔군요!
!
수잔은 지휘관의 병상에 앉아 두 다리를 아래로 늘어뜨린 채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쉿... 조용히. 우리 나가서 얘기하자.
병실 안의 다른 사람들을 깨울까 봐, 지휘관은 수잔과 함께 진료소 밖으로 나왔어.
나 정말로 괜찮아졌으니까, 병실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하려고 왔어요. 선생님이 내일 퇴원 하셔도 될 것 같대요.
잘됐네.
맞아, 어제 내가 처음 왔을 때 보니까 서류뭉치를 안고 있던데, 어떤 서류들이었어?
자료실에서 정리한 오래된 서류들이에요. 이미 가져가서 폐기했어요.
태웠어?
네, 대부분 보관용 자료니까요.
그때 빨간 봉투 하나를 놓고 갔던 것 같은데?
그건 왜요?
지휘관의 질문에 수잔은 경계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소녀는 지휘관을 똑바로 바라보았고, 그 눈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그 봉투, 내가 떨어뜨린 물건인 것 같아서.
네? 하지만 이미 태워버렸는데요.
열어봤어? 내용은?
열어보진 않았어요... 중요한 건가요? 정말 제가 태워버린 건 아니겠죠...?
괜찮아, 그렇게까지 종요한 건 아니야. 친구한테서 온 편지였어.
세상에! 정말 죄송해요. 열어서 확인 했어야 했는데.
수잔은 속상한 듯 발을 동동 굴렀거, 지휘관은 그녀를 위로하려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내가 막 깨어났을 때라 몰랐던 거지. 편지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까?
머리 만지지 마세요. 저도 이제 다 컸다구요.
오오?
제가 마룰로스에 있는 병원에 견습 신청했다고 했던 거 기억나요?
방금 소식이 왔어요! 저 합격했어요! 그리고 여동생도 같이 와도 된다고 했어요!
축하해. 소원을 이뤘구나!
감사해요! 다음 달에 떠날 생각만 해도 너무 신나요.
마침내 제가 되고 싶은 모습이 될 기회가 생겼어요. 그ㅡ 병원에서 에비타 선생님을 만날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만날 수 있을 거야.
네! 만나면 드릴 선물도 준비했다고요!
수잔은 주머니에서 반짝이는 투명 구슬 한 줄을 꺼냈다. 형형색색으로 빛나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사탕 같죠?
...약간.
제가 직접 엮은 거예요. 오랫동안 모아서 겨우 하나 완성했어요...
소녀는 불빛 아래에서 들뜬 얼굴로 자신의 작품을 지휘관에게 자랑하며 구슬 하나하나 어디서 얻었는지 설명했다. 신난 소녀는 앞에 있는 남자가 오랫동안 말없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어쨌든, 제가 직접 에비타 선생님께 드릴 거예요.
많이 늦었네요. 푹 쉬세요. 내일 또 만나요.
수잔은 구슬을 조심스럽게 다시 주머니에 넣었고, 지휘관과 작별 인사를 한 뒤, 오솔길의 끝을 향해 달려갔다.
저기!
네?
수잔은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았고, 깜빡이는 가로등이 그녀의 얼굴에 불규칙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편지는 우리만의 비밀로 하자! 내가 실수한 것 같아서 조금 부끄럽거든!
하하하하... 알겠어요.
에비타한테도 안돼!
수잔은 알겠다는 듯 손을 흔들었고, 지휘관은 그녀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았다.
밤의 연못은 낮보다 더 고요했다. 지휘관은 주위에 누군가 숨지 않았는지 철저히 확인한 뒤 공터로 걸음을 옮겼다.
여보세요?
어땠어?
조사 다했어. 로랜스는 살해당한 게 맞아.
그는 계속해서 물품 조달 권한을 악용해서 사익을 챙겨왔어. 그의 연인도 덩달아 적잖은 돈을 챙겼지.
얼마 전 로렌스가 이곳을 떠나려 했지만 그녀를 데려가지 않으려 했어. 그 이야기를 들은 그녀가 홧김에 로렌스가 술에 취한 틈을 타 그를 연못으로 밀어버렸고.
그리고 다른 건?
내 임무는 로렌스의 사인을 조사하는 거야. 그 외에는 나랑 상관 없잖아.
로렌스가 남긴 유품 같은 건 없어?
유품은 전부 그의 집에 남아 있어. 병원에서 사람을 보내 정리한다고 하던데.
다른 건 없어?
다른 거?
아냐.
이번에도 잘 해줬네. 약속한 보수 준비해둘게.
고마워.
그리고 하나 더, 얼마 전에 강도가 진료소를 털어가서 물건을 꽤 많이 뺏겼다고 들었어.
놈들의 거점 정보를 보내 줄테니까, 내일 "잘 부탁"할게.
영광이네. 걱정 마.
다음 날.
이틀 내내 누워있었더니, 이제야 몸이 좀 풀리는 것 같아.
지휘관은 거점에서 가져온 전리품을 들고 마을로 돌아왔다.
이 정도면 이틀간 돌봐준 값으로 충분하겠지.
빨리! 불이 더 번진다!
누군가가 물통을 들고 급히 지휘관 옆을 지나갔다.
!
지휘관은 남자를 따라 뛰었고, 남자가 향하는 곳은 진료소 쪽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모퉁이를 돌자 지휘관은 진료소 창문에서 짙은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다. 방금 전 남자는 물통을 들고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안에 아직 사람이 있어!
지휘관은 외투를 벗어 옆 물통에 담가 머리에 뒤집어쓴 채 진료소로 뛰어들었다.
자료실에서 불이 났고, 지휘관은 막힌 문을 발로 차서 열었다.
자료실 바닥에는 쓰러진 자료 보관 선반들에 둘러싸인 사람이 하나 쓰러져 있었고, 바닥에는 서류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 중 일부는 불에 타서 재가 되어 있었다.
어젯밤의 그 부인이었다.
더 고민할 틈도 없이, 지휘관은 의식을 잃은 부인을 들고 출구를 향해 내달렸다.
"안에 남은 사람 더 있어?"
"없어. 다 나왔어."
"아이들은?"
뭐라고?!
지휘관은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 불길 속으로 뛰어들려 했으나, 주위 사람들에 붙잡혀 저지당했다.
"불이 너무 세! 너 죽고 싶어!?"
이거 놔!
걔들은... 펼쳐 보지 않았다고...!
들어가지 마요, 무서워요... 흑흑...
지휘관의 옷자락이 당겨졌다. 울먹이고 있는 테스와 수잔이었다.
불이 너무 커요! 저 무서워요...
소녀들이 양옆에서 달려들었다. 지휘관은 앙상한 두 몸이 품속에서 떨고 있는 것을 느끼며 이들을 꼭 껴안아 주었다.
안 무서워. 이제 다 괜찮아... 다 괜찮아.
우리는... 오늘 진료소에 가지 않았어요... 저기, 여기 어떻게 된 일이에요?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화재 진압에 여념이 없었고, 의사는 10여 분간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다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부인의 눈을 감겨 주었다.
지휘관은 간호사에게 두 소녀를 맡기고, 눈을 감은 부인에게 가까이 다가가 콧구멍을 손으로 닦아보았다.
재가 없어...
"발화 원인을 찾았어. 약제실에서 약품이 쏟아지면서 두 약품이 섞여서 불이 났대. 그게 커튼으로 옮겨붙고 자료실까지 번지게 된 거고..."
오늘 누가 여기에 왔었나요?
아뇨.
에비타도요?
에비타 씨요? 아뇨, 요즘 마룰로스에서 진료소에 새 장비를 기부하느라 바쁘셔요. 그것도 소방 장비들을요...
조금만 빨랐다면......
의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언니... 우리...
쉿! 우리 약속했잖아.
수잔은 여동생의 중얼거림을 끊고 오른손으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주머니를 더듬었다. 구슬 묶음이 들어 있던 작은 주머니가 비어 있었다.
뜻 밖의 사고라고 밖엔...
...사고?
"잠깐만, 한 명 빠진 것 같은데? 엊그저께 새로 온 환자."
"그렇네, 왜 안 보이지? 오른손이 전부 화상 흉터로 덮인 사람인 걸로 기억하는데..."
......
둘 다 앞으로 건강하게 지내야 한다.
지휘관은 두 소녀의 머리를 마지막으로 쓰다듬고 자리를 떴다.
어디로 가십니까?
...저도 잘 모르겠네요.
진료소의 불길은 잡혔다. 사상자 앞에서 울거나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의료기구를 정리하고 부상자를 옮기느라 분주했다...
이런 갑작스러운 이별에 모두 익숙해져 있었다.
지휘관은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를 했다.
그래도 이제 카모나에서 더 이상의 '사고'는 없어야 해.
전체 대사 보기 (190줄)
밤이 되자 지휘관은 조용히 로렌스의 숙소로 잠입했다.
존경의 뜻으로 로렌스가 사망한 후에도 방은 원래 모습 그대로 유지되었고, 병원에서 고인의 유품을 정리할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지저분하네...
지휘관은 서류와 잡동사니로 가득 찬 방을 조심스럽게 돌아다니며 유용한 단서를 찾았다.
병례...
의학 서적...
구매 목록? ...허, 욕심쟁이네... ...잠깐만, 아니...
지휘관은 구매 명세서 뭉치를 손에 들고 재빨리 금액을 살펴보았다.
340만, 570만, 215만... 많이 떼이긴 했지만, 에비타는 왜 이렇게 많은 자금을 여기에 투자한 거지?
의뢰인 일 수익이 이렇게나 짭짤한가?
지난번 마룰로스에서 에비타와 만났을 때 좀 더 가격을 깎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지휘관의 머리를 스쳤다.
그래, 이건 내가 손대면 안 될 비밀일지도 모르지.
지휘관은 구매 명세서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옆에 놓인 액자를 들어 올렸다.
이 사람은?
"탁". 침실 쪽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이 기척에 지휘관은 반응하지 않고 듣지 못한 척을 했다. 책상을 원래대로 정리하고 방 안의 서랍들을 뒤지며 점점 침실 쪽으로 다가갔다.
한쪽 발이 문턱을 넘는 순간, 지휘관은 머리 뒤에서 강한 바람이 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기습이다!
기습을 예상하고 있던 지휘관은 신속히 옆으로 피했다. 상대가 휘두른 무기가 허공을 가르는 순간, 상대는 지휘관의 발차기를 맞고 엎어졌다.
으윽!
낮에 길을 알려준 부인이었다.
부인이 몸부림치며 일어나려 하자, 지휘관은 재빨리 그녀의 손에 든 칼을 걷어차고, 병실에서 가지고 온 링거 호스로 부인의 손을 묶었다.
당신 뭐야?
당신이 로렌스 의사를 죽였지?
그걸 어떻게 알았어?
<color=#A9A9A9>찍었지.</color>
자잘한 질문은 됐어, 나는 그 사람 복수를 하러 온 게 아니니까.
사무실 책상 위에 당신과 로렌스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놓여 있더군. 둘이 어떤 관계인지 좀 들어보실까?
그걸 내가 왜 알려줘야 해?
지휘관은 주머니에서 천천히 테이프가 돌아가는 작은 녹음기를 꺼냈다.
방금 당신이 스스로 살인을 인정한 건 녹음했어.
이 비겁한!
증거는 항상 준비해 둬야 하니까.
녹음기부터 꺼.
...그러지
지휘관이 녹음기를 끄자, 부인은 한숨을 내쉬며 몸에 힘을 풀고 문틀에 기대었다.
맞아, 난 로렌스와 연인 사이였어.
그럼 왜 죽였지?
로렌스가 중간에서 돈을 챙긴 거 알고 있지?
지휘관이 고개를 끄덕이자, 부인은 묶여 있는 두 손을 들어 왼손 중지에 낀 금반지를 보여주었다.
그 사람을 따라다니면서 나도 나름 잘 살고 있었어. 그런데 2주 전, 갑자기 진료소를 떠나겠다고 해서 나도 같이 가겠다고 했더니 거절당했지.
그이가 가면 나는 어떻게 먹고 살아?
또 2주 전.
그래서 죽였다?
원래 죽일 생각은 없었어.
갑자기 떠나겠다고 하니 이상하더라고. 알다시피, 여기 있으면 돈을 꽤 벌 수 있었는데 말이야. 돈줄을 포기해야 할 정도의 이유가 있었던 게 분명해.
그래서 송별회랍시고 취하게 해서 물어봤지.
뭐라고 하던데?
기밀 문서를 입수해서, 그걸로 협박해 카모나에서 빠져나갈 거라고.
문서? 어떤 문서?
잘은 몰라. 누군가의 신분과 관련 있는 것 같긴 한데, 너무 취해서 '가짜', '위장', '첩보원'같은 말만 반복했으니.
마침 같이 연못가를 걷고 있었어. 내가 같이 가자고 몇 번 더 물었더니, 나한테 욕을 퍼붓더라니까!
나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서, 바로... 바로... 그놈은 죽어도 싸!
그 문서는 어디에 있지?
몰라. 나도 오늘 그걸 찾으러 왔어. 그런데 어쩐 일인지 여기가 너무 어질러져 있어서, 아직 찾진 못했어.
어떻게 생긴 서류인데?
그이가 실수로 뿌린 레드 와인 얼룩이 묻은 빨간 봉투.
제가 좀 바빠서요. 쉬고 계시면 약 교체하기 전에 다시 올게요.
잠깐만!
지휘관은 바닥에 떨어진 붉은 봉투를 가리켰다. 봉투에는 검붉은 얼룩이 묻어 있었다.
이거 떨어뜨렸잖니.
앗, 고마워요! 이만 가볼게요. 무슨 일 있으시면 큰 소리로 부르세요!
수잔은 바닥에 떨어진 붉은 봉투를 주워 서류 뭉치에 꽂고 병실을 떠났다.
가라, 오늘 너와 나는 못 본 거다.
지휘관이 부인의 손에 감긴 호스를 풀어주자, 부인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떠나려 했다.
그리고 그 봉투에 대해서도 잊어버려. 살고 싶다면.
지휘관이 조용히 문을 열자, 불이 꺼진 밤의 병실은 칠흑 같았다.
지휘관은 자신의 병상 옆을 더듬다가, 침대 위에 검은 그림자가 있는 것을 보았다.
또 몰래 빠져나갔군요!
!
수잔은 지휘관의 병상에 앉아 두 다리를 아래로 늘어뜨린 채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쉿... 조용히. 우리 나가서 얘기하자.
병실 안의 다른 사람들을 깨울까 봐, 지휘관은 수잔과 함께 진료소 밖으로 나왔어.
나 정말로 괜찮아졌으니까, 병실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하려고 왔어요. 선생님이 내일 퇴원 하셔도 될 것 같대요.
잘됐네.
맞아, 어제 내가 처음 왔을 때 보니까 서류뭉치를 안고 있던데, 어떤 서류들이었어?
자료실에서 정리한 오래된 서류들이에요. 이미 가져가서 폐기했어요.
태웠어?
네, 대부분 보관용 자료니까요.
그때 빨간 봉투 하나를 놓고 갔던 것 같은데?
그건 왜요?
지휘관의 질문에 수잔은 경계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소녀는 지휘관을 똑바로 바라보았고, 그 눈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그 봉투, 내가 떨어뜨린 물건인 것 같아서.
네? 하지만 이미 태워버렸는데요.
열어봤어? 내용은?
열어보진 않았어요... 중요한 건가요? 정말 제가 태워버린 건 아니겠죠...?
괜찮아, 그렇게까지 종요한 건 아니야. 친구한테서 온 편지였어.
세상에! 정말 죄송해요. 열어서 확인 했어야 했는데.
수잔은 속상한 듯 발을 동동 굴렀거, 지휘관은 그녀를 위로하려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내가 막 깨어났을 때라 몰랐던 거지. 편지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까?
머리 만지지 마세요. 저도 이제 다 컸다구요.
오오?
제가 마룰로스에 있는 병원에 견습 신청했다고 했던 거 기억나요?
방금 소식이 왔어요! 저 합격했어요! 그리고 여동생도 같이 와도 된다고 했어요!
축하해. 소원을 이뤘구나!
감사해요! 다음 달에 떠날 생각만 해도 너무 신나요.
마침내 제가 되고 싶은 모습이 될 기회가 생겼어요. 그ㅡ 병원에서 에비타 선생님을 만날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만날 수 있을 거야.
네! 만나면 드릴 선물도 준비했다고요!
수잔은 주머니에서 반짝이는 투명 구슬 한 줄을 꺼냈다. 형형색색으로 빛나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사탕 같죠?
...약간.
제가 직접 엮은 거예요. 오랫동안 모아서 겨우 하나 완성했어요...
소녀는 불빛 아래에서 들뜬 얼굴로 자신의 작품을 지휘관에게 자랑하며 구슬 하나하나 어디서 얻었는지 설명했다. 신난 소녀는 앞에 있는 남자가 오랫동안 말없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어쨌든, 제가 직접 에비타 선생님께 드릴 거예요.
많이 늦었네요. 푹 쉬세요. 내일 또 만나요.
수잔은 구슬을 조심스럽게 다시 주머니에 넣었고, 지휘관과 작별 인사를 한 뒤, 오솔길의 끝을 향해 달려갔다.
저기!
네?
수잔은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았고, 깜빡이는 가로등이 그녀의 얼굴에 불규칙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편지는 우리만의 비밀로 하자! 내가 실수한 것 같아서 조금 부끄럽거든!
하하하하... 알겠어요.
에비타한테도 안돼!
수잔은 알겠다는 듯 손을 흔들었고, 지휘관은 그녀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았다.
밤의 연못은 낮보다 더 고요했다. 지휘관은 주위에 누군가 숨지 않았는지 철저히 확인한 뒤 공터로 걸음을 옮겼다.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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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다했어. 로랜스는 살해당한 게 맞아.
그는 계속해서 물품 조달 권한을 악용해서 사익을 챙겨왔어. 그의 연인도 덩달아 적잖은 돈을 챙겼지.
얼마 전 로렌스가 이곳을 떠나려 했지만 그녀를 데려가지 않으려 했어. 그 이야기를 들은 그녀가 홧김에 로렌스가 술에 취한 틈을 타 그를 연못으로 밀어버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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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임무는 로렌스의 사인을 조사하는 거야. 그 외에는 나랑 상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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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품은 전부 그의 집에 남아 있어. 병원에서 사람을 보내 정리한다고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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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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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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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이네. 걱정 마.
다음 날.
이틀 내내 누워있었더니, 이제야 몸이 좀 풀리는 것 같아.
지휘관은 거점에서 가져온 전리품을 들고 마을로 돌아왔다.
이 정도면 이틀간 돌봐준 값으로 충분하겠지.
빨리! 불이 더 번진다!
누군가가 물통을 들고 급히 지휘관 옆을 지나갔다.
!
지휘관은 남자를 따라 뛰었고, 남자가 향하는 곳은 진료소 쪽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모퉁이를 돌자 지휘관은 진료소 창문에서 짙은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다. 방금 전 남자는 물통을 들고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안에 아직 사람이 있어!
지휘관은 외투를 벗어 옆 물통에 담가 머리에 뒤집어쓴 채 진료소로 뛰어들었다.
자료실에서 불이 났고, 지휘관은 막힌 문을 발로 차서 열었다.
자료실 바닥에는 쓰러진 자료 보관 선반들에 둘러싸인 사람이 하나 쓰러져 있었고, 바닥에는 서류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 중 일부는 불에 타서 재가 되어 있었다.
어젯밤의 그 부인이었다.
더 고민할 틈도 없이, 지휘관은 의식을 잃은 부인을 들고 출구를 향해 내달렸다.
"안에 남은 사람 더 있어?"
"없어. 다 나왔어."
"아이들은?"
뭐라고?!
지휘관은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 불길 속으로 뛰어들려 했으나, 주위 사람들에 붙잡혀 저지당했다.
"불이 너무 세! 너 죽고 싶어!?"
이거 놔!
걔들은... 펼쳐 보지 않았다고...!
들어가지 마요, 무서워요... 흑흑...
지휘관의 옷자락이 당겨졌다. 울먹이고 있는 테스와 수잔이었다.
불이 너무 커요! 저 무서워요...
소녀들이 양옆에서 달려들었다. 지휘관은 앙상한 두 몸이 품속에서 떨고 있는 것을 느끼며 이들을 꼭 껴안아 주었다.
안 무서워. 이제 다 괜찮아... 다 괜찮아.
우리는... 오늘 진료소에 가지 않았어요... 저기, 여기 어떻게 된 일이에요?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화재 진압에 여념이 없었고, 의사는 10여 분간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다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부인의 눈을 감겨 주었다.
지휘관은 간호사에게 두 소녀를 맡기고, 눈을 감은 부인에게 가까이 다가가 콧구멍을 손으로 닦아보았다.
재가 없어...
"발화 원인을 찾았어. 약제실에서 약품이 쏟아지면서 두 약품이 섞여서 불이 났대. 그게 커튼으로 옮겨붙고 자료실까지 번지게 된 거고..."
오늘 누가 여기에 왔었나요?
아뇨.
에비타도요?
에비타 씨요? 아뇨, 요즘 마룰로스에서 진료소에 새 장비를 기부하느라 바쁘셔요. 그것도 소방 장비들을요...
조금만 빨랐다면......
의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언니... 우리...
쉿! 우리 약속했잖아.
수잔은 여동생의 중얼거림을 끊고 오른손으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주머니를 더듬었다. 구슬 묶음이 들어 있던 작은 주머니가 비어 있었다.
뜻 밖의 사고라고 밖엔...
...사고?
"잠깐만, 한 명 빠진 것 같은데? 엊그저께 새로 온 환자."
"그렇네, 왜 안 보이지? 오른손이 전부 화상 흉터로 덮인 사람인 걸로 기억하는데..."
......
둘 다 앞으로 건강하게 지내야 한다.
지휘관은 두 소녀의 머리를 마지막으로 쓰다듬고 자리를 떴다.
어디로 가십니까?
...저도 잘 모르겠네요.
진료소의 불길은 잡혔다. 사상자 앞에서 울거나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의료기구를 정리하고 부상자를 옮기느라 분주했다...
이런 갑작스러운 이별에 모두 익숙해져 있었다.
지휘관은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를 했다.
그래도 이제 카모나에서 더 이상의 '사고'는 없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