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뿐일 평화Ⅰ 서브 스토리
"밖의 잔챙이를 다 처리한 다음에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해야지."
베오그라드, 어느 세이프 하우스.
지휘관님, 카리나 씨, 이쪽으로 오십시오.
여기는 어디죠?
우리의 세이프 하우스 중 하나다.
이 도시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이곳을 지휘부로 쓰도록 해.
여기 있는 설비의 성능이라면, 이 도시 안에서의 작전 중 얼마든지 인형들과 통신을 유지할 수 있을 거야.
이건...! 50식 투 웨이 저주파 MSE 시스템이잖아요?! 그것도 3대나!?
내부 차폐 장치까지! 우와, 방마다 설치되어 있어...
저, K 씨. 이런 군용급 장비들을 정말 저희가 마음대로 써도 되는 건가요...?
임무 수행에 도움이 된다면야, 얼마든지.
따로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마호로에게 말해. 가능한 건 다 들어줄 테니까.
별다른 일이 없다면, 다음 정기 연락 시간 때 다시 보지.
나머진 부탁한다, 마호로.
네, 주인님.
K 씨는 정보 관련으론 쩨쩨하게 굴면서, 다른 건 아낌없이 다 주네요...
카리나 씨,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습니까?
아, 괜찮다면 안젤리아 씨에 대해서 좀 말해주실 수 있나요?
그럴 수 없습니다.
아, 역시...
그래, 그냥 포기하자. 마호로 씨, 이곳을 안내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
탄약고는 이쪽입니다.
화장실은, 이 복도 끝에서 우회전하십시오.
화장실이 너무 적네요... 모두가 이용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요.
일반적으로, 인형은 화장실을 이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
...저도 알아요! 제 말은 저희 후방 인력 말이에요!
이 세이프 하우스의 위치를 다수에게 공개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다른 그리폰의 인원들은 기존의 거점에서 대기하면 됩니다.
으으... 그러죠...
그럼, 안내를 재개하겠습니다.
이 중앙에 위치한 방은 MSE 시스템의 중추 구역입니다. 이곳과 저곳 모두, 이중 긴급 전원 처리를 했습니다.
배선도는 여기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으며, 병렬 포트와 전송 회로의 청사진도 이미 전송해드렸습니다.
오오... 이렇게 설치할 수도 있구나... 참고해둬야지.
이 설비들을 조금 개조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괜찮습니다.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좋아! 이걸로 호환성도 상승했어!
고마워요, 마호로 씨, 당신의 데이터 안에 그렇게 많은 방안이 있다니 놀랐어요!
과찬입니다.
원래 기지에서 쓰던 배치랑 꽤 비슷하게 됐어요. 이렇게 하면 지휘관님도 사용하기 편하시겠죠.
다른 용건이 없다면, 이만 대기 모드로 전환하겠습니다.
아, 잠깐만요! 우리 얘기 좀 나눠봐요!
얘기 말입니까?
네! 얘기요!
무슨 얘기 말입니까?
아... 어... 음...
딱히 하실 말씀이 없다면, 이만 대기 모드로 전환하겠습니다.
아이, 기다려봐요!
음... 아, 마호로 씨, K 씨는 평소에 어떤 분이신가요?
질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어떻게 생활하는지라던가요.
예를 들자면... 만나는 사람은 있나요?
저희의 원칙은 행적을 되도록 숨기는 것입니다, 주동적으로 찾아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 K 씨는 마호로 씨와 대화를 나누나요?
주인님께선 매일 정보의 수집과 분석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십니다.
사사로운 대화에 할애할 시간은 매우 적습니다.
아무 말도 않으면서 지내는 건 그다지 좋은 자취 방식이 아닌데요...
일에 몰두하는 것도 적당히 해야 하잖아요?
주인님을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주인님은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시며, 건강 상태도 제가 엄밀히 관리하고 있습니다.
규칙적인 생활이요?
주인님은 스스로 시간표를 작성하여 행동하십니다.
언제나 빈틈없고 시간과 정력도 낭비하지 않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생활을 유지하고 계십니다.
1초도 안 틀리고요?
그렇습니다.
어... 왠지 무섭네요.
설마, K 씨는 사실 일만 하는 자율인형인 건 아니죠?
아하하... 농담이에――
발언을 철회하십시오.
...네?
주인님은 비록 절대적인 규율로 생활을 컨트롤하고 계시지만, 결코 감정이 없는 기계가 아닙니다.
주인님은 모두를 지키기 위해 이런 생활을 선택하셨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방식이라 하여도 말입니다.
때문에, 주인님을 그렇게 평가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죄, 죄송해요...
언젠가는 여러분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다른 용건이 없다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네...
마호로가 떠났다.
이해받지 못하는 방식이라...
입장이 다르다는 것만 빼면, 서로 닮았을지도 모르겠네...
휴우...
손이 꽤 많이 가긴 했지만, 그래도 이 임시 지휘부도 꽤 괜찮네.
다 끝났니?
네, 최대한 기지의 지휘부와 같은 배치와 기능을 갖추도록 했어요. 그리고 약간 손을 봐서, 비교적 안전한 통신 방식으로 외부와 연락할 수도 있게 했고요.
그럼 이제 페르시카와도 연락이 가능해진 건가?
그렇긴 하지만... 당분간 페르시카 씨와는 연락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분명 엄중하게 감시받고 있을 거예요...
그밖에 다른 건?
WAVE 사와도 교섭했어요. 비트킨 씨가 추천한 정보공업사라 조금 의심스럽지만, 이보다 나은 선택지도 없으니...
벌써 무슨 정보를 얻은 것 같은데.
네, 지금 말하려던 참이었어요.
WAVE에서 따로 정보 수집을 해주었어요. 많이 비싸긴 했지만... 값어치는 있었죠.
설명해줘.
비트킨 씨가 말하시길, 이 임무는 안전국에서 저희에게 간접적으로 내린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전 처음엔 K 씨가 안전국 소속의 요원 비스무리한 사람인가 했어요. 그런데 수집한 자료를 보니... 저희의 지위가 엄청 낮은 거 있죠...
일단, K 씨는 안전국 소속이 아니에요. 적어도 명단에는 없어요. 그러니까, 저희는 안전국의 하청...의 하청인 셈이에요.
"장갑" 위에 덧씌운 "장갑"이란 뜻인가...
그리고, 안젤리아 씨 말고도 다른 안전국 요원들도 이 도시에서 정식 명령을 받아 활동 중이에요. 사흘 뒤 베오그라드에서 아주 중요한 회담이 열릴 예정이라서, K 씨가 저희한테 사전에 하얀 세력의 침투 부대를 처치하라 시킨 것도 이해는 가요.
저번에 TV에서 보도한 회담 말이군.
맞아요. 하지만 뭔가 좀 이상해요.
지금 베오그라드에 정식으로 파견된 요원과 K 씨와 접선한 인원 모두, 총국이 아니라 내무부 안전 제6사무국에서 파견한 인원이에요.
제6사무국이라고?
대외 보안 업무는 제9사무국 담당일 텐데...?
네, 제6사무국의 주요 담당 분야는 첨단 과학 기술이나 군수업 관련 기밀 처리죠.
그래서 이상하다는 거예요!
단순히 회담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다른 데도 아니고 제6사무국이 나설 이유가 없잖아요?
왜 K 씨는 과학 기술 기밀 처리 부서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걸까요?
이게 대체 안젤리아 씨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
주의해야겠어.
안젤리아에 관해서 더 알아낸 건 없고?
몇 가지 찾아내기는 했는데...
다 매우 얕은 수준이에요.
대부분의 자료는 안젤리아 씨가 과거에 그리폰의 전술지휘관으로서 수행했던 전투 기록들이에요. 이것만 빼고요.
삐익.
[파일을 읽을 수 없습니다.]
손상된 건가?
아니요. 디테일을 볼 때, 이건 인위적으로 말소된 거예요.
이 일자는... 나비 사건이 발발했을 즈음의 행동 기록이야...
WAVE와 협력해서 복구할 수 있겠어?
이미 시도해봤어요...
하지만 인위적으로 파괴된 데이터라서, 복구할 수가 없었어요.
......
새벽.
난 자리에 앉아, 카리나의 발견과 이 도시의 모든 것을 되짚어 보았다.
......
(K가 우리와 안전국 사이의 접선이라는 건, K와 안전국의 입장이 일치하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과연 K도 안전국의 진짜 목적을 알고 있을까?)
(아니면 우리 모두 그저 장기말에 불과한 걸까?)
안젤리아는, 여기서 대체 무슨 역할을 맡고 있는 걸까?
정말 K의 말대로 안젤리아가 여전히 안전국이 내린 명령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면, 안전국은 어째서 나를 또 하나의 카드로 내세운 걸까?
지원하기 위해서...?
아니면, 감시하기 위해서...?
만약 안젤리아가 정말로 안전국의 명령을 일부 어기고 있다면... K는 또 무슨 역할을 맡고 있는 걸까?
그때, 누군가 방의 문을 두드렸다.
지휘관님, 아직 안 주무시나요?
아, 곧 자러 갈 거야.
조금...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말이지.
밤 새면 몸에 안 좋다구요.
자아, 따뜻한 우유 한 잔 드세요!
음, 고마워.
마호로 씨가 저쪽의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권한을 줘서, 지금까지 계속 쓸만한 자료는 있는지 찾고 있었어요.
그러다 의외의 물건을 발견해서, 지휘관님께 바로 달려온 거예요.
하지만... 지휘관님은 역시 지금 안젤리아 씨에 대해서 생각하고 계시죠?
그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무 이상해.
마치 조각 몇 개가 빠진 퍼즐처럼, 서로 이어지지가 않아.
다 그 K라는 사람이 정보를 가지고 쩨쩨하기 구니까 그런 거죠 뭘!
임무를 완수할 때마다 정보를 더 제공하겠다고 했는데, 여태까지 받은 것 좀 보세요! 하나같이 완전 쓸모도 없는 것들뿐이잖아요!
시킨 일을 다 끝내도, 저희가 알고 싶은 걸 다 털어놓지 않을 게 분명하다구요!
설령 그렇다 해도 우리가 맡은 역할은 끝까지 연기해야지.
도구가 되라 한다면, 얌전히 도구가 되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야.
하지만...
카리나도 나도, 잠시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끄응...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는 문제는 일단 내버려두죠.
아무튼, 조만간 열릴 회담에 대해 더 자세한 자료를 찾았어요.
이걸 보세요, 어제자 지방 신문이에요.
"근일 개최되는 국제 회담을 맞아, 시 정부는 치안 공지 17조항을 새로이 발표, 회담과 그 개막식의 안전을 보장할 것을..."
베오그라드는 유럽의 정치 판도에서 중립지대에 속해서, 양측 정상회담을 여기서 개최하게 됐대요. 신 소련과 국련의 각 대사가 대표로서 참석하고요.
이 도시는 양측 세력의 힘이 닿지 않는 곳이라서, 꽤 오래 고민한 끝에 회의 장소를 이곳으로 선택한 거라고 생각해요.
중립지대라... 대립하는 서로간 신용을 쌓는 것은 역시 어려우니만큼, 중립지대의 장점인 양측 모두 압력을 넣을 수 없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겠지...
하지만 그 반대로, 회담이 성사되지 않기를 바라는 세력도 손쉽게 침투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어.
네, 맞아요...
그리고, 사실 이곳도 국련에 가입할 의향이 있었다고는 해요. 하지만 적이었던 자들과 손을 잡을 수는 없다며 국내에서 큰 반발이 일어서 무산되었대요.
다들 말로는 평화가 제일이라면서, 속으론 아닌가 봐요...
원수와 악수하기도 쉽지는 않지.
그리고 어떤 이들은 세계의 갈등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니까.
으으... 너무 어려워요...
이밖에 찾아낸 건 없어?
아, 깜빡했다!
이것 좀 보세요.
카리나는 서류 더미를 탁상에 늘어놓았다.
어디...
칼럼과 회고 성향의 보도...
국련의 전쟁에 대한 반성, 그에 관련된 여러 성명... 그런데, 날짜가 전부...?
네, 2년 전 거창하게 진행됐던 3차 세계 대전 종전 10주년 행사일이에요.
K 씨는 그때의 자료를 유난히도 많이 수집했어요. 그리고 여기, 계속 나오는 문구를 표기해뒀죠.
......
"루크사트주의".
네... 이거 전부, 루크사트주의와 관련된 행사예요.
국련의 창립도 루크사트주의자들에 의해 추진되었고, 3차 대전의 종결도 그들의 힘이 작용했다고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것을 수집하는 것이 비정상적인 건 아니야. 비록 직접 밖으로 나가 참여하지는 않지만, K는 자신만의 확고한 정치 관념이 있다고 봐도 되겠지.
하지만 그런 타입의 사람이 왜 이런 극단적인 이상주의를 지지하는지는 이해가 가지 않는군.
한 가지 더 있어요. K 씨가 저희를 선택한 이유를 찾아낸 것 같아요... 이 신문을 보세요.
이건...?
"금년 5월까지, 국련 가입국 중 25개국이 루크사트주의를 국가의 기반으로 삼았음을 공식 선포하였다."
"루크사트주의를 시행하는 국가는 대부분 국민의 지지도가 70%를 넘어섰다."
"새로운 운명 공동체가 탄생한 것이다. 이제 인류는 서로를 믿고 돕는 새로운 시대로 발을 내딛을 것이다."
"한편, 국련의 고위 관리는 '세상을 새로 쓸 칼날은 이미 준비되었고, 앞으로 인류의 발전을 추진할 새로운 정책이 더 많이 시행될 것이다' 라고 발표하였다."
잠깐, 뭐라고...?
네, 저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세상을 새로 쓸..."
"세상을 새로 쓸 칼날."
루크사트주의의 표어예요.
저희 그리폰보다 훨씬 앞서 써왔던 거예요.
......
우리나라에선 루크사트주의 전파가 금지라서, 저희로선 전혀 알 수가 없었던 거죠...
크루거 씨가 어째서 이 표어를 그리폰의 사훈으로 삼았는지도 전혀 모르겠어요...
......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네?
계속 고민해봤자 현재로선 아무것도 도움이 되질 않아. 내일 또 수행할 임무가 있으니, 이만 일찍 자자.
네... 그렇네요. 그럼 저도 이만 자러 갈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
대화를 도중에 끊을 수밖에 없었다. 병상에 눕혀져 니토에게 감시받던 그때보다도 심한 초조함과 불안감이 나를 덮쳤기 때문이다.
"세상을 새로 쓸 칼날"이라...
대체 무슨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걸까...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끔찍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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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그라드, 어느 세이프 하우스.
지휘관님, 카리나 씨, 이쪽으로 오십시오.
여기는 어디죠?
우리의 세이프 하우스 중 하나다.
이 도시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이곳을 지휘부로 쓰도록 해.
여기 있는 설비의 성능이라면, 이 도시 안에서의 작전 중 얼마든지 인형들과 통신을 유지할 수 있을 거야.
이건...! 50식 투 웨이 저주파 MSE 시스템이잖아요?! 그것도 3대나!?
내부 차폐 장치까지! 우와, 방마다 설치되어 있어...
저, K 씨. 이런 군용급 장비들을 정말 저희가 마음대로 써도 되는 건가요...?
임무 수행에 도움이 된다면야, 얼마든지.
따로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마호로에게 말해. 가능한 건 다 들어줄 테니까.
별다른 일이 없다면, 다음 정기 연락 시간 때 다시 보지.
나머진 부탁한다, 마호로.
네, 주인님.
K 씨는 정보 관련으론 쩨쩨하게 굴면서, 다른 건 아낌없이 다 주네요...
카리나 씨,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습니까?
아, 괜찮다면 안젤리아 씨에 대해서 좀 말해주실 수 있나요?
그럴 수 없습니다.
아, 역시...
그래, 그냥 포기하자. 마호로 씨, 이곳을 안내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
탄약고는 이쪽입니다.
화장실은, 이 복도 끝에서 우회전하십시오.
화장실이 너무 적네요... 모두가 이용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요.
일반적으로, 인형은 화장실을 이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
...저도 알아요! 제 말은 저희 후방 인력 말이에요!
이 세이프 하우스의 위치를 다수에게 공개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다른 그리폰의 인원들은 기존의 거점에서 대기하면 됩니다.
으으... 그러죠...
그럼, 안내를 재개하겠습니다.
이 중앙에 위치한 방은 MSE 시스템의 중추 구역입니다. 이곳과 저곳 모두, 이중 긴급 전원 처리를 했습니다.
배선도는 여기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으며, 병렬 포트와 전송 회로의 청사진도 이미 전송해드렸습니다.
오오... 이렇게 설치할 수도 있구나... 참고해둬야지.
이 설비들을 조금 개조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괜찮습니다.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좋아! 이걸로 호환성도 상승했어!
고마워요, 마호로 씨, 당신의 데이터 안에 그렇게 많은 방안이 있다니 놀랐어요!
과찬입니다.
원래 기지에서 쓰던 배치랑 꽤 비슷하게 됐어요. 이렇게 하면 지휘관님도 사용하기 편하시겠죠.
다른 용건이 없다면, 이만 대기 모드로 전환하겠습니다.
아, 잠깐만요! 우리 얘기 좀 나눠봐요!
얘기 말입니까?
네! 얘기요!
무슨 얘기 말입니까?
아... 어... 음...
딱히 하실 말씀이 없다면, 이만 대기 모드로 전환하겠습니다.
아이, 기다려봐요!
음... 아, 마호로 씨, K 씨는 평소에 어떤 분이신가요?
질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어떻게 생활하는지라던가요.
예를 들자면... 만나는 사람은 있나요?
저희의 원칙은 행적을 되도록 숨기는 것입니다, 주동적으로 찾아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 K 씨는 마호로 씨와 대화를 나누나요?
주인님께선 매일 정보의 수집과 분석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십니다.
사사로운 대화에 할애할 시간은 매우 적습니다.
아무 말도 않으면서 지내는 건 그다지 좋은 자취 방식이 아닌데요...
일에 몰두하는 것도 적당히 해야 하잖아요?
주인님을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주인님은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시며, 건강 상태도 제가 엄밀히 관리하고 있습니다.
규칙적인 생활이요?
주인님은 스스로 시간표를 작성하여 행동하십니다.
언제나 빈틈없고 시간과 정력도 낭비하지 않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생활을 유지하고 계십니다.
1초도 안 틀리고요?
그렇습니다.
어... 왠지 무섭네요.
설마, K 씨는 사실 일만 하는 자율인형인 건 아니죠?
아하하... 농담이에――
발언을 철회하십시오.
...네?
주인님은 비록 절대적인 규율로 생활을 컨트롤하고 계시지만, 결코 감정이 없는 기계가 아닙니다.
주인님은 모두를 지키기 위해 이런 생활을 선택하셨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방식이라 하여도 말입니다.
때문에, 주인님을 그렇게 평가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죄, 죄송해요...
언젠가는 여러분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다른 용건이 없다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네...
마호로가 떠났다.
이해받지 못하는 방식이라...
입장이 다르다는 것만 빼면, 서로 닮았을지도 모르겠네...
휴우...
손이 꽤 많이 가긴 했지만, 그래도 이 임시 지휘부도 꽤 괜찮네.
다 끝났니?
네, 최대한 기지의 지휘부와 같은 배치와 기능을 갖추도록 했어요. 그리고 약간 손을 봐서, 비교적 안전한 통신 방식으로 외부와 연락할 수도 있게 했고요.
그럼 이제 페르시카와도 연락이 가능해진 건가?
그렇긴 하지만... 당분간 페르시카 씨와는 연락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분명 엄중하게 감시받고 있을 거예요...
그밖에 다른 건?
WAVE 사와도 교섭했어요. 비트킨 씨가 추천한 정보공업사라 조금 의심스럽지만, 이보다 나은 선택지도 없으니...
벌써 무슨 정보를 얻은 것 같은데.
네, 지금 말하려던 참이었어요.
WAVE에서 따로 정보 수집을 해주었어요. 많이 비싸긴 했지만... 값어치는 있었죠.
설명해줘.
비트킨 씨가 말하시길, 이 임무는 안전국에서 저희에게 간접적으로 내린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전 처음엔 K 씨가 안전국 소속의 요원 비스무리한 사람인가 했어요. 그런데 수집한 자료를 보니... 저희의 지위가 엄청 낮은 거 있죠...
일단, K 씨는 안전국 소속이 아니에요. 적어도 명단에는 없어요. 그러니까, 저희는 안전국의 하청...의 하청인 셈이에요.
"장갑" 위에 덧씌운 "장갑"이란 뜻인가...
그리고, 안젤리아 씨 말고도 다른 안전국 요원들도 이 도시에서 정식 명령을 받아 활동 중이에요. 사흘 뒤 베오그라드에서 아주 중요한 회담이 열릴 예정이라서, K 씨가 저희한테 사전에 하얀 세력의 침투 부대를 처치하라 시킨 것도 이해는 가요.
저번에 TV에서 보도한 회담 말이군.
맞아요. 하지만 뭔가 좀 이상해요.
지금 베오그라드에 정식으로 파견된 요원과 K 씨와 접선한 인원 모두, 총국이 아니라 내무부 안전 제6사무국에서 파견한 인원이에요.
제6사무국이라고?
대외 보안 업무는 제9사무국 담당일 텐데...?
네, 제6사무국의 주요 담당 분야는 첨단 과학 기술이나 군수업 관련 기밀 처리죠.
그래서 이상하다는 거예요!
단순히 회담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다른 데도 아니고 제6사무국이 나설 이유가 없잖아요?
왜 K 씨는 과학 기술 기밀 처리 부서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걸까요?
이게 대체 안젤리아 씨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
주의해야겠어.
안젤리아에 관해서 더 알아낸 건 없고?
몇 가지 찾아내기는 했는데...
다 매우 얕은 수준이에요.
대부분의 자료는 안젤리아 씨가 과거에 그리폰의 전술지휘관으로서 수행했던 전투 기록들이에요. 이것만 빼고요.
삐익.
[파일을 읽을 수 없습니다.]
손상된 건가?
아니요. 디테일을 볼 때, 이건 인위적으로 말소된 거예요.
이 일자는... 나비 사건이 발발했을 즈음의 행동 기록이야...
WAVE와 협력해서 복구할 수 있겠어?
이미 시도해봤어요...
하지만 인위적으로 파괴된 데이터라서, 복구할 수가 없었어요.
......
새벽.
난 자리에 앉아, 카리나의 발견과 이 도시의 모든 것을 되짚어 보았다.
......
(K가 우리와 안전국 사이의 접선이라는 건, K와 안전국의 입장이 일치하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과연 K도 안전국의 진짜 목적을 알고 있을까?)
(아니면 우리 모두 그저 장기말에 불과한 걸까?)
안젤리아는, 여기서 대체 무슨 역할을 맡고 있는 걸까?
정말 K의 말대로 안젤리아가 여전히 안전국이 내린 명령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면, 안전국은 어째서 나를 또 하나의 카드로 내세운 걸까?
지원하기 위해서...?
아니면, 감시하기 위해서...?
만약 안젤리아가 정말로 안전국의 명령을 일부 어기고 있다면... K는 또 무슨 역할을 맡고 있는 걸까?
그때, 누군가 방의 문을 두드렸다.
지휘관님, 아직 안 주무시나요?
아, 곧 자러 갈 거야.
조금...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말이지.
밤 새면 몸에 안 좋다구요.
자아, 따뜻한 우유 한 잔 드세요!
음, 고마워.
마호로 씨가 저쪽의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권한을 줘서, 지금까지 계속 쓸만한 자료는 있는지 찾고 있었어요.
그러다 의외의 물건을 발견해서, 지휘관님께 바로 달려온 거예요.
하지만... 지휘관님은 역시 지금 안젤리아 씨에 대해서 생각하고 계시죠?
그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무 이상해.
마치 조각 몇 개가 빠진 퍼즐처럼, 서로 이어지지가 않아.
다 그 K라는 사람이 정보를 가지고 쩨쩨하기 구니까 그런 거죠 뭘!
임무를 완수할 때마다 정보를 더 제공하겠다고 했는데, 여태까지 받은 것 좀 보세요! 하나같이 완전 쓸모도 없는 것들뿐이잖아요!
시킨 일을 다 끝내도, 저희가 알고 싶은 걸 다 털어놓지 않을 게 분명하다구요!
설령 그렇다 해도 우리가 맡은 역할은 끝까지 연기해야지.
도구가 되라 한다면, 얌전히 도구가 되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야.
하지만...
카리나도 나도, 잠시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끄응...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는 문제는 일단 내버려두죠.
아무튼, 조만간 열릴 회담에 대해 더 자세한 자료를 찾았어요.
이걸 보세요, 어제자 지방 신문이에요.
"근일 개최되는 국제 회담을 맞아, 시 정부는 치안 공지 17조항을 새로이 발표, 회담과 그 개막식의 안전을 보장할 것을..."
베오그라드는 유럽의 정치 판도에서 중립지대에 속해서, 양측 정상회담을 여기서 개최하게 됐대요. 신 소련과 국련의 각 대사가 대표로서 참석하고요.
이 도시는 양측 세력의 힘이 닿지 않는 곳이라서, 꽤 오래 고민한 끝에 회의 장소를 이곳으로 선택한 거라고 생각해요.
중립지대라... 대립하는 서로간 신용을 쌓는 것은 역시 어려우니만큼, 중립지대의 장점인 양측 모두 압력을 넣을 수 없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겠지...
하지만 그 반대로, 회담이 성사되지 않기를 바라는 세력도 손쉽게 침투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어.
네, 맞아요...
그리고, 사실 이곳도 국련에 가입할 의향이 있었다고는 해요. 하지만 적이었던 자들과 손을 잡을 수는 없다며 국내에서 큰 반발이 일어서 무산되었대요.
다들 말로는 평화가 제일이라면서, 속으론 아닌가 봐요...
원수와 악수하기도 쉽지는 않지.
그리고 어떤 이들은 세계의 갈등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니까.
으으... 너무 어려워요...
이밖에 찾아낸 건 없어?
아, 깜빡했다!
이것 좀 보세요.
카리나는 서류 더미를 탁상에 늘어놓았다.
어디...
칼럼과 회고 성향의 보도...
국련의 전쟁에 대한 반성, 그에 관련된 여러 성명... 그런데, 날짜가 전부...?
네, 2년 전 거창하게 진행됐던 3차 세계 대전 종전 10주년 행사일이에요.
K 씨는 그때의 자료를 유난히도 많이 수집했어요. 그리고 여기, 계속 나오는 문구를 표기해뒀죠.
......
"루크사트주의".
네... 이거 전부, 루크사트주의와 관련된 행사예요.
국련의 창립도 루크사트주의자들에 의해 추진되었고, 3차 대전의 종결도 그들의 힘이 작용했다고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것을 수집하는 것이 비정상적인 건 아니야. 비록 직접 밖으로 나가 참여하지는 않지만, K는 자신만의 확고한 정치 관념이 있다고 봐도 되겠지.
하지만 그런 타입의 사람이 왜 이런 극단적인 이상주의를 지지하는지는 이해가 가지 않는군.
한 가지 더 있어요. K 씨가 저희를 선택한 이유를 찾아낸 것 같아요... 이 신문을 보세요.
이건...?
"금년 5월까지, 국련 가입국 중 25개국이 루크사트주의를 국가의 기반으로 삼았음을 공식 선포하였다."
"루크사트주의를 시행하는 국가는 대부분 국민의 지지도가 70%를 넘어섰다."
"새로운 운명 공동체가 탄생한 것이다. 이제 인류는 서로를 믿고 돕는 새로운 시대로 발을 내딛을 것이다."
"한편, 국련의 고위 관리는 '세상을 새로 쓸 칼날은 이미 준비되었고, 앞으로 인류의 발전을 추진할 새로운 정책이 더 많이 시행될 것이다' 라고 발표하였다."
잠깐, 뭐라고...?
네, 저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세상을 새로 쓸..."
"세상을 새로 쓸 칼날."
루크사트주의의 표어예요.
저희 그리폰보다 훨씬 앞서 써왔던 거예요.
......
우리나라에선 루크사트주의 전파가 금지라서, 저희로선 전혀 알 수가 없었던 거죠...
크루거 씨가 어째서 이 표어를 그리폰의 사훈으로 삼았는지도 전혀 모르겠어요...
......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네?
계속 고민해봤자 현재로선 아무것도 도움이 되질 않아. 내일 또 수행할 임무가 있으니, 이만 일찍 자자.
네... 그렇네요. 그럼 저도 이만 자러 갈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
대화를 도중에 끊을 수밖에 없었다. 병상에 눕혀져 니토에게 감시받던 그때보다도 심한 초조함과 불안감이 나를 덮쳤기 때문이다.
"세상을 새로 쓸 칼날"이라...
대체 무슨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걸까...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끔찍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