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 밑에서Ⅱ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총성과 함께 날아드는 총탄, 발걸음과 비명소리, 방사선을 머금은 폭풍우가 거리를 뒤덮고 있었다.
방위군이 격리벽 밑에 펼친 방어선은 붕괴되어, 감염자들의 파도에 휩쓸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여기는 16번 정화탑 방위대! ELID가 탑 밑의 사각지대에서 기어오르려 한다! 지금 저곳을 사격 가능한 사람 없는가!?
동부 4번 문 방위대에서 탄약 보급을 요청한다! 지금 이쪽으로 보낼 수 있는 드론이 있나?!
총성이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다. 무전기는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비명소리를 토해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제기랄, 총알이 바닥났다!
여기 마지막 탄창 받아! 낭비하지 마!
빌어먹을... 어느 쪽에서 올지 예측이 안 돼. 빨리 다른 거점으로 이동... 으아아악!!
ELID가 벌써 여기까지 침입한 건가?! 이대로는...
타타탕!
어, 너는... 방금 전의 아군 인형이잖아?
여기서는 더는 못 버팁니다, 빨리 후퇴하세요!
웃기지 마, 어떻게 전우를 버리고 혼자 도망쳐!?
지금 자존심이 중요한가요? 아직 늦지 않았으니, 빨리 가세요!
그런 말 할 여유 있으면 가서 총알이나 더 가져와! 싸움은 아직 안 끝났어!
어째서죠...?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죠?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바로 뒤에 우리 집이 있다고!
여긴 너처럼 싸울 생각 없는 여자애가 있을 곳이 아니야!
M4A1은 고개를 저으면서, 격리벽 옆의 방위군 벙커를 떠났다.
어때? 네 제안을 받아들인 사람은 있었어?
저분들... 이유는 각자 다르지만, 모두 철수를 거부했습니다.
어떤 이는 공포에 떨면서 말도 제대로 못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억지로 웃으면서 비아냥거렸다.
또 어떤 이는 전사한 전우의 장비로 탄약을 보충했고...
어떤 이는 묵묵히 M4에게 경례할 뿐이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던 M4A1은, 목숨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싸우기로 결심한 병사들을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야 그렇겠지. 애초에 도망칠 생각인 사람들은 첫번째 구멍이 터졌을 때 이미 도망쳤을걸.
여기 남아있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끝까지 남기로 결심한 사람들뿐이야. 그리고 이제와서 철수하기엔 너무 늦었고...
저들은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먼저 가세요. 저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없는지 더 찾아보겠습니다.
걱정 마, 널 기다릴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어서 안 그래도 이동하는 중이야.
네... 그럼 됩니다.
그런데 너는 어쩌려고? 방금 안젤리아가 내린 명령을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
아직 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결국 쓸데없는 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건 너였네.
그런 네가 마지막에는 어떻게 될지 엄청 관심 있으니까, 나 없는 데서 멋대로 죽지는 말아줘.
AK12와의 통신을 마친 M4A1은, 어느 건물의 옥상에 올라 파괴된 격리벽을 바라보았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 국면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총성은 여전히 울려퍼지고, 격리벽 주변에서는 총구가 뿜어내는 불빛이 반짝였다.
... 안젤리아 씨, 들리십니까?
잘 들려. 무슨 일인데?
저기... ELID의 침입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를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난 아까 네게 합류 지점까지 이동하라고 명령했어. 쓸데없는 짓 하지 마.
끝까지 들어 주세요. 제 화력 지원 플랫폼에, 아직 탄약이 남아있습니다. 그걸 한꺼번에 폭파시키면, 첫 번째 구멍을 메울 수 있을지도 몰라요.
너무 위험해! 지금 그 구멍에서 ELID가 쏟아지는 거 안 보여?!
그리고 첫 번째 구멍을 막았다 치자. 두 번째 구멍은 어쩌려고? 지금 네가 가진 건 그거 하나뿐이잖아.
죄송해요...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M4A1이 격리벽을 향해 발을 돌리려는 순간,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부글부글 끓는 마인드맵 속에 날카로운 이명이 울렸다.
으윽...!
넌 아주 중요한 아이야. 이런 위험에 뛰어들어서는 안 돼.
왜... 왜 저를 막는 거예요!
네가 겨우 이 정도로 흔들리다니, 정말 의외야. 지금 마음 아파하는 걸 보니, 아직 감정을 버리지 못했구나.
하지만 네겐 아직 끝마쳐야 할 사명이 있어.
M4, 내 말 들려? M4!
...네.
M4는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진정하고 내 말 잘 들어, 알았지?
무작정 행동하려 하지 마. 병력에 한계가 있어. 지금 너희 모두가 내게 협력해 줘야 해.
하지만 저 사람들이 아직도 싸우고 있어요! 격리벽에 아직 사람들이... 뭐라도 하지 않으면...
격리벽이 두 번이나 폭발을 겪은 상태에서, 3번째 폭발도 버텨낼 수 있을지 계산할 시간도 없어.
네가 만약 구멍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벽을 통째로 무너뜨리게 된다면 더 큰 문제가 일어날 거야. 그리고 현 상황에서는 그렇게 될 확률이 매우 높아.
알아요... 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드라고비치 소위와 그의 부하들은 맡은 소임을 다했어. 그들은 스스로를 희생했어, 이건 돌이킬 수가 없어..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희생을 헛되이 해서는 안 돼.
폭탄을 터뜨린 그놈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도록 놔두는 것이야말로 모두의 희생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짓이야.
M4, 너도 그렇게 되길 원하진 않잖아?
...네.
M4는 길게 한 숨을 쉬고, 어깨의 힘을 풀었다.
하지만... 조금 분해요...
페르시카가 네게 준 자유로운 마인드맵은 소중한 자산이지만, 그걸 이런 데서 탕진해서는 안 돼.
심리상담을 방해할 생각은 없는데, AR15가 통신을 보냈어.
아무래도 큰 골칫거리가 생겼나봐.
안젤리아! 여기는 AR15!
임무는 성공했어?
미안하지만, 아니. 위치는 찾았지만, 지금 상황이 안 좋아!
긴급 상황이야. 우리의 현재 좌표를 보냈어. 지금 M16이 철혈을 이끌고 나타나서 하얀 세력과 교전 중인데, 우린 아마 승리한 쪽하고 또 싸우게 되겠지...
M16과 철혈...?
그것 참 혼란스런 상황이군. 알았어, 지금 이쪽도 바쁘지만 되도록 빨리 증원을 보낼게.
그때까지 어떻게든 버티고 있어.
들었지, M4?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빨리 합류해. AR15와 AN94를 지원하러 가야지.
라저.
삐익.
안젤리아는 하늘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별일이네.
뭐가?
당신이 한숨을 쉬는 건 처음 들었어,.적어도 내 앞에서는 한숨 같은 거 쉰 적 없잖아? 그래서 좀 궁금해졌어.
또 M4의 마음과는 정반대의 명령을 내리고 말았어. 또 그 아이에게 상처를 줬겠지...
틀린 판단은 아니야. 우리가 모두를 다 구할 수는 없어.
모두를 구할 순 없다... 라. 어떨 땐, 우리 자신마저 구하지 못하고 있단 느낌이 드는걸...
베오그라드의 거리.
M4A1은 격리벽을 뒤로 하고, 안젤리아가 지정한 합류 지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쪽이 맞을 거야... 음?!
이상한 소리가 난 곳을 향해 총구를 돌렸다. 확인해 보니, 그곳엔 병사 한 명이 길가에 쓰러져 있었다.
그의 주위엔 ELID의 시체가 산더미였다.
크으윽...
괜찮으세요?
M4는 황급히 병사에게 다가갔다. 그의 보호복은 만신창이였고, 부상도 매우 심각했다.
그래도, M4는 그를 인근의 가옥으로 끌고 들어갔다. 붕괴 방사선 피폭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려는 심산이었다.
하... 한가지... 부탁할 게 있어...
제가 가능한 일이라면, 얼마든지요.
그, 그만... 편하게 해줘... 머리에, 한 발이면 돼...
그런...!
배와 머리가... 아파... 변이의 초기증상이야...
손가락이... 방아쇠도 못 당길, 정도로... 굳어버려서...
난, 괴물이 되기 싫어... 적어도... 인간으로서... 크허헉!
...알겠습니다.
M4는 무기를 들어, 그의 머리를 조준했다.
병사는 힘겹게 오른팔을 들어, 착잡한 얼굴의 M4를 향해 경례했다.
타타탕!
......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구나. 잘했어.
전... 선택할 수가 없었어요.
또다시 주변의 모든 것이 무너져내려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요.또 패배하고, 동료들이 쓰러지고... 그런데 저는...
이번에도 결국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어요.
자책할 것 없어. 저들은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을 위해 스스로 희생한 거야.
지금 이 꼴을 보세요! 이게 무슨 가치가 있다는 거죠?
M4는 건물에서 뛰쳐나와, 베오그라드의 거리를 따라 달렸다. 하지만 스쳐지나가는 광경은 전부 끔찍하기 그지없는 것들뿐이었다.
붕괴 방사선에 피폭으로 인한 급성 증상으로, 바닥에 쓰러진 채 경련을 일으키는 시민들...
여기저기 처박혀 아무렇게나 버려진 차량들... 텅 빈 거리에서 드문드문 들려오는 비명소리...
제 안위는 상관없어요. 만약 제가 희생해서 이 모든 것을 돌이킬 수 있다면, 기꺼이 나 자신을 희생하겠어요.
하지만...
목소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변함없는 말투로 대답했다.
하지만 너도 잘 알다시피, 세상일은 그렇지 않지.
너도 예전에는 저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믿는 가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었지.
하지만 그래봤자 아무것도 변한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곳을 떠나 다른 대책을 찾고 있어.
나는 사실만을 말하고 있어.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새장의 열쇠를 손에 넣은지 얼마 안 되는 너에겐, 아직 배워야 할 것이 잔뜩 있어.
그럼 그땐 사실대로 말했나요? 내가 엘더브레인과 만났을 때 말이에요!
난 사실대로 말했어. 그저 네가 내 뜻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지.
지금 우리의 적도, 우리가 찾아내고자 하는 것을 찾고 있어. 서두르지 않으면, 이와 같은 재앙이 또다른 곳에서 일어나고 말 거야.
대체 우리가 찾아야 한다는 게 뭐죠? 안젤리아가 말한 그 "스피라에나 노드" 말인가요? 대답하세요.
그건 그저 시작에 불과해. 블랙박스 안의 전모를 들여다봐야 해.
그안에 숨겨진 힘을 자격 없는 자들이 알게 된다면, 그들은 모든 것을 불사르면서라도 그 힘을 손에 넣으려 하겠지.
하지만 그것에 손을 댈 자격이 있는 건, 오직 너뿐이야.
처음엔 제 소대의 모두가 저를 위해서 희생하고, 그 후엔 또 수많은 사람들이 제 눈앞에서 희생했어요.
불행 말고는 아무것도 가져다 주지 않는 그딴 힘에, 대체 무슨 가치가 있다는 거죠?
그런 것에 손댈 자격 따위, 전 바라지 않아요!
그래, 아무도 바라지 않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어. 만들어지고 싶어서 만들어진 인형이 없는 것처럼.
세상 모든 이들은 저마다 사명을 지니고 있지만, 자신이 바라서 이 세상에 온 것은 아니야...
하지만 넌 특별해. 네가 짊어진 운명은, 다른 이들은 꿈에도 그리지 못할 것이야.
전혀 특별하지 않아요. 저마다 다른 저주에 걸린 거예요.
그리고 나에게 걸린 저주는, 유난히 지독한 것이겠죠...
인간이 채운 족쇄에 너무 오랫동안 묶여 있던 탓에, 스스로를 위해 생각해본 경험이 부족해서 그렇게 느끼는 걸 거야.
운명은 종종 괴로운 법이야. 하지만 그 고통을 즐기는 방법은 각자 다르지.
이것만은 장담할게. 네가 너의 운명을 끝까지 따른다면, 오늘 본 희생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게 될 거야.
타인을 고통 속에서 구원해내기 위해서, 너 자신이 고통받는 건 어떻겠어?
...마치, 전 고통받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는 것처럼 들리네요.
뭐라 한들, 너와 나는 하나니까.
너의 망설임은 나의 망설임.
너의 고통은 바로 나의 고통이야.
그리고 네가 사라진다면... 나도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지.
그래서 난 너에게 항상 최선의 선택지만을 가르쳐 주고 있어.
......
M4는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가볍게 쓴웃음을 지었다.
방금 그 한마디가, 여태까지 했던 말 중 제일 솔직하게 들렸어요.
네가 나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나도 노력하고 있거든.
오해하진 마세요. 마인드맵 속에 웬 불청객이 눌러앉아 있는 건 정말 골치 아프다고요.
하지만... 방금 그 모든 광경을 보고 나니, 이런 상황에서 내 힘이 얼마나 부족한지 깨달았어요.
내 힘은 너무나도 보잘것없어요. 사람들을 지키는 것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할 만큼.
그러니 전 쓸 수 있는 모든 힘을 빌려야만 해요. 리벨리온, 지휘관님, 그리고 당신까지도.
그럼, 운명과 마주할 준비는 됐니?
그전에, 안젤리아가 부탁한 임무가 남아있어요.
그리고... 안젤리아 씨가 계속 일을 늘리려는 심정도 이제 조금은 이해가 가요.
명령에 복종하든 당신의 충고를 따르든, 결국 선택하는 건 저예요.
무슨 선택을 하든, 기대하고 있을게.
고독한 인형은 불타오르는 성벽을 등지고, 무너져가는 도시의 거리를 빠르게 달려갔다.
그 눈빛에 흔들림은 이제 없었다. 오직 합류 지점을 향해 곧장 달려갈 뿐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성벽이 무너지고 병사들이 쓰러져도, 방사능 폭풍우가 적의 행진곡처럼 매섭게 휘몰아쳐도...
그녀에게 있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체 대사 보기 (144줄)
총성과 함께 날아드는 총탄, 발걸음과 비명소리, 방사선을 머금은 폭풍우가 거리를 뒤덮고 있었다.
방위군이 격리벽 밑에 펼친 방어선은 붕괴되어, 감염자들의 파도에 휩쓸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color=#00CCFF>여기는 16번 정화탑 방위대! ELID가 탑 밑의 사각지대에서 기어오르려 한다! 지금 저곳을 사격 가능한 사람 없는가!?</color>
<color=#00CCFF>동부 4번 문 방위대에서 탄약 보급을 요청한다! 지금 이쪽으로 보낼 수 있는 드론이 있나?!</color>
총성이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다. 무전기는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비명소리를 토해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제기랄, 총알이 바닥났다!
여기 마지막 탄창 받아! 낭비하지 마!
빌어먹을... 어느 쪽에서 올지 예측이 안 돼. 빨리 다른 거점으로 이동... 으아아악!!
ELID가 벌써 여기까지 침입한 건가?! 이대로는...
타타탕!
어, 너는... 방금 전의 아군 인형이잖아?
여기서는 더는 못 버팁니다, 빨리 후퇴하세요!
웃기지 마, 어떻게 전우를 버리고 혼자 도망쳐!?
지금 자존심이 중요한가요? 아직 늦지 않았으니, 빨리 가세요!
그런 말 할 여유 있으면 가서 총알이나 더 가져와! 싸움은 아직 안 끝났어!
어째서죠...?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죠?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바로 뒤에 우리 집이 있다고!
여긴 너처럼 싸울 생각 없는 여자애가 있을 곳이 아니야!
M4A1은 고개를 저으면서, 격리벽 옆의 방위군 벙커를 떠났다.
<color=#00CCFF>어때? 네 제안을 받아들인 사람은 있었어?</color>
저분들... 이유는 각자 다르지만, 모두 철수를 거부했습니다.
어떤 이는 공포에 떨면서 말도 제대로 못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억지로 웃으면서 비아냥거렸다.
또 어떤 이는 전사한 전우의 장비로 탄약을 보충했고...
어떤 이는 묵묵히 M4에게 경례할 뿐이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던 M4A1은, 목숨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싸우기로 결심한 병사들을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color=#00CCFF>그야 그렇겠지. 애초에 도망칠 생각인 사람들은 첫번째 구멍이 터졌을 때 이미 도망쳤을걸.</color>
<color=#00CCFF>여기 남아있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끝까지 남기로 결심한 사람들뿐이야. 그리고 이제와서 철수하기엔 너무 늦었고...</color>
<color=#00CCFF>저들은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color>
먼저 가세요. 저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없는지 더 찾아보겠습니다.
<color=#00CCFF>걱정 마, 널 기다릴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어서 안 그래도 이동하는 중이야.</color>
네... 그럼 됩니다.
<color=#00CCFF>그런데 너는 어쩌려고? 방금 안젤리아가 내린 명령을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color>
아직 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color=#00CCFF>결국 쓸데없는 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건 너였네.</color>
<color=#00CCFF>그런 네가 마지막에는 어떻게 될지 엄청 관심 있으니까, 나 없는 데서 멋대로 죽지는 말아줘.</color>
AK12와의 통신을 마친 M4A1은, 어느 건물의 옥상에 올라 파괴된 격리벽을 바라보았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 국면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총성은 여전히 울려퍼지고, 격리벽 주변에서는 총구가 뿜어내는 불빛이 반짝였다.
... 안젤리아 씨, 들리십니까?
<color=#00CCFF>잘 들려. 무슨 일인데?</color>
저기... ELID의 침입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를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color=#00CCFF>난 아까 네게 합류 지점까지 이동하라고 명령했어. 쓸데없는 짓 하지 마.</color>
끝까지 들어 주세요. 제 화력 지원 플랫폼에, 아직 탄약이 남아있습니다. 그걸 한꺼번에 폭파시키면, 첫 번째 구멍을 메울 수 있을지도 몰라요.
<color=#00CCFF>너무 위험해! 지금 그 구멍에서 ELID가 쏟아지는 거 안 보여?!</color>
<color=#00CCFF>그리고 첫 번째 구멍을 막았다 치자. 두 번째 구멍은 어쩌려고? 지금 네가 가진 건 그거 하나뿐이잖아.</color>
죄송해요...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M4A1이 격리벽을 향해 발을 돌리려는 순간,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부글부글 끓는 마인드맵 속에 날카로운 이명이 울렸다.
으윽...!
넌 아주 중요한 아이야. 이런 위험에 뛰어들어서는 안 돼.
왜... 왜 저를 막는 거예요!
네가 겨우 이 정도로 흔들리다니, 정말 의외야. 지금 마음 아파하는 걸 보니, 아직 감정을 버리지 못했구나.
하지만 네겐 아직 끝마쳐야 할 사명이 있어.
<color=#00CCFF>M4, 내 말 들려? M4!</color>
...네.
M4는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color=#00CCFF>진정하고 내 말 잘 들어, 알았지?</color>
<color=#00CCFF>무작정 행동하려 하지 마. 병력에 한계가 있어. 지금 너희 모두가 내게 협력해 줘야 해.</color>
하지만 저 사람들이 아직도 싸우고 있어요! 격리벽에 아직 사람들이... 뭐라도 하지 않으면...
<color=#00CCFF>격리벽이 두 번이나 폭발을 겪은 상태에서, 3번째 폭발도 버텨낼 수 있을지 계산할 시간도 없어.</color>
<color=#00CCFF>네가 만약 구멍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벽을 통째로 무너뜨리게 된다면 더 큰 문제가 일어날 거야. 그리고 현 상황에서는 그렇게 될 확률이 매우 높아.</color>
알아요... 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color=#00CCFF>드라고비치 소위와 그의 부하들은 맡은 소임을 다했어. 그들은 스스로를 희생했어, 이건 돌이킬 수가 없어..</color>
<color=#00CCFF>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희생을 헛되이 해서는 안 돼.</color>
<color=#00CCFF>폭탄을 터뜨린 그놈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도록 놔두는 것이야말로 모두의 희생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짓이야.</color>
<color=#00CCFF>M4, 너도 그렇게 되길 원하진 않잖아?</color>
...네.
M4는 길게 한 숨을 쉬고, 어깨의 힘을 풀었다.
하지만... 조금 분해요...
<color=#00CCFF>페르시카가 네게 준 자유로운 마인드맵은 소중한 자산이지만, 그걸 이런 데서 탕진해서는 안 돼.</color>
<color=#00CCFF>심리상담을 방해할 생각은 없는데, AR15가 통신을 보냈어.</color>
<color=#00CCFF>아무래도 큰 골칫거리가 생겼나봐.</color>
<color=#00CCFF>안젤리아! 여기는 AR15!</color>
<color=#00CCFF>임무는 성공했어?</color>
<color=#00CCFF>미안하지만, 아니. 위치는 찾았지만, 지금 상황이 안 좋아!</color>
<color=#00CCFF>긴급 상황이야. 우리의 현재 좌표를 보냈어. 지금 M16이 철혈을 이끌고 나타나서 하얀 세력과 교전 중인데, 우린 아마 승리한 쪽하고 또 싸우게 되겠지...</color>
<color=#00CCFF>M16과 철혈...?</color>
<color=#00CCFF>그것 참 혼란스런 상황이군. 알았어, 지금 이쪽도 바쁘지만 되도록 빨리 증원을 보낼게.</color>
<color=#00CCFF>그때까지 어떻게든 버티고 있어.</color>
<color=#00CCFF>들었지, M4?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빨리 합류해. AR15와 AN94를 지원하러 가야지.</color>
라저.
삐익.
안젤리아는 하늘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color=#00CCFF>별일이네.</color>
뭐가?
<color=#00CCFF>당신이 한숨을 쉬는 건 처음 들었어,.적어도 내 앞에서는 한숨 같은 거 쉰 적 없잖아? 그래서 좀 궁금해졌어.</color>
또 M4의 마음과는 정반대의 명령을 내리고 말았어. 또 그 아이에게 상처를 줬겠지...
<color=#00CCFF>틀린 판단은 아니야. 우리가 모두를 다 구할 수는 없어.</color>
모두를 구할 순 없다... 라. 어떨 땐, 우리 자신마저 구하지 못하고 있단 느낌이 드는걸...
베오그라드의 거리.
M4A1은 격리벽을 뒤로 하고, 안젤리아가 지정한 합류 지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쪽이 맞을 거야... 음?!
이상한 소리가 난 곳을 향해 총구를 돌렸다. 확인해 보니, 그곳엔 병사 한 명이 길가에 쓰러져 있었다.
그의 주위엔 ELID의 시체가 산더미였다.
크으윽...
괜찮으세요?
M4는 황급히 병사에게 다가갔다. 그의 보호복은 만신창이였고, 부상도 매우 심각했다.
그래도, M4는 그를 인근의 가옥으로 끌고 들어갔다. 붕괴 방사선 피폭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려는 심산이었다.
하... 한가지... 부탁할 게 있어...
제가 가능한 일이라면, 얼마든지요.
그, 그만... 편하게 해줘... 머리에, 한 발이면 돼...
그런...!
배와 머리가... 아파... 변이의 초기증상이야...
손가락이... 방아쇠도 못 당길, 정도로... 굳어버려서...
난, 괴물이 되기 싫어... 적어도... 인간으로서... 크허헉!
...알겠습니다.
M4는 무기를 들어, 그의 머리를 조준했다.
병사는 힘겹게 오른팔을 들어, 착잡한 얼굴의 M4를 향해 경례했다.
타타탕!
......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구나. 잘했어.
전... 선택할 수가 없었어요.
또다시 주변의 모든 것이 무너져내려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요.또 패배하고, 동료들이 쓰러지고... 그런데 저는...
이번에도 결국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어요.
자책할 것 없어. 저들은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을 위해 스스로 희생한 거야.
지금 이 꼴을 보세요! 이게 무슨 가치가 있다는 거죠?
M4는 건물에서 뛰쳐나와, 베오그라드의 거리를 따라 달렸다. 하지만 스쳐지나가는 광경은 전부 끔찍하기 그지없는 것들뿐이었다.
붕괴 방사선에 피폭으로 인한 급성 증상으로, 바닥에 쓰러진 채 경련을 일으키는 시민들...
여기저기 처박혀 아무렇게나 버려진 차량들... 텅 빈 거리에서 드문드문 들려오는 비명소리...
제 안위는 상관없어요. 만약 제가 희생해서 이 모든 것을 돌이킬 수 있다면, 기꺼이 나 자신을 희생하겠어요.
하지만...
목소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변함없는 말투로 대답했다.
하지만 너도 잘 알다시피, 세상일은 그렇지 않지.
너도 예전에는 저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믿는 가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었지.
하지만 그래봤자 아무것도 변한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곳을 떠나 다른 대책을 찾고 있어.
나는 사실만을 말하고 있어.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새장의 열쇠를 손에 넣은지 얼마 안 되는 너에겐, 아직 배워야 할 것이 잔뜩 있어.
그럼 그땐 사실대로 말했나요? 내가 엘더브레인과 만났을 때 말이에요!
난 사실대로 말했어. 그저 네가 내 뜻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지.
지금 우리의 적도, 우리가 찾아내고자 하는 것을 찾고 있어. 서두르지 않으면, 이와 같은 재앙이 또다른 곳에서 일어나고 말 거야.
대체 우리가 찾아야 한다는 게 뭐죠? 안젤리아가 말한 그 "스피라에나 노드" 말인가요? 대답하세요.
그건 그저 시작에 불과해. 블랙박스 안의 전모를 들여다봐야 해.
그안에 숨겨진 힘을 자격 없는 자들이 알게 된다면, 그들은 모든 것을 불사르면서라도 그 힘을 손에 넣으려 하겠지.
하지만 그것에 손을 댈 자격이 있는 건, 오직 너뿐이야.
처음엔 제 소대의 모두가 저를 위해서 희생하고, 그 후엔 또 수많은 사람들이 제 눈앞에서 희생했어요.
불행 말고는 아무것도 가져다 주지 않는 그딴 힘에, 대체 무슨 가치가 있다는 거죠?
그런 것에 손댈 자격 따위, 전 바라지 않아요!
그래, 아무도 바라지 않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어. 만들어지고 싶어서 만들어진 인형이 없는 것처럼.
세상 모든 이들은 저마다 사명을 지니고 있지만, 자신이 바라서 이 세상에 온 것은 아니야...
하지만 넌 특별해. 네가 짊어진 운명은, 다른 이들은 꿈에도 그리지 못할 것이야.
전혀 특별하지 않아요. 저마다 다른 저주에 걸린 거예요.
그리고 나에게 걸린 저주는, 유난히 지독한 것이겠죠...
인간이 채운 족쇄에 너무 오랫동안 묶여 있던 탓에, 스스로를 위해 생각해본 경험이 부족해서 그렇게 느끼는 걸 거야.
운명은 종종 괴로운 법이야. 하지만 그 고통을 즐기는 방법은 각자 다르지.
이것만은 장담할게. 네가 너의 운명을 끝까지 따른다면, 오늘 본 희생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게 될 거야.
타인을 고통 속에서 구원해내기 위해서, 너 자신이 고통받는 건 어떻겠어?
...마치, 전 고통받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는 것처럼 들리네요.
뭐라 한들, 너와 나는 하나니까.
너의 망설임은 나의 망설임.
너의 고통은 바로 나의 고통이야.
그리고 네가 사라진다면... 나도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지.
그래서 난 너에게 항상 최선의 선택지만을 가르쳐 주고 있어.
......
M4는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가볍게 쓴웃음을 지었다.
방금 그 한마디가, 여태까지 했던 말 중 제일 솔직하게 들렸어요.
네가 나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나도 노력하고 있거든.
오해하진 마세요. 마인드맵 속에 웬 불청객이 눌러앉아 있는 건 정말 골치 아프다고요.
하지만... 방금 그 모든 광경을 보고 나니, 이런 상황에서 내 힘이 얼마나 부족한지 깨달았어요.
내 힘은 너무나도 보잘것없어요. 사람들을 지키는 것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할 만큼.
그러니 전 쓸 수 있는 모든 힘을 빌려야만 해요. 리벨리온, 지휘관님, 그리고 당신까지도.
그럼, 운명과 마주할 준비는 됐니?
그전에, 안젤리아가 부탁한 임무가 남아있어요.
그리고... 안젤리아 씨가 계속 일을 늘리려는 심정도 이제 조금은 이해가 가요.
명령에 복종하든 당신의 충고를 따르든, 결국 선택하는 건 저예요.
무슨 선택을 하든, 기대하고 있을게.
고독한 인형은 불타오르는 성벽을 등지고, 무너져가는 도시의 거리를 빠르게 달려갔다.
그 눈빛에 흔들림은 이제 없었다. 오직 합류 지점을 향해 곧장 달려갈 뿐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성벽이 무너지고 병사들이 쓰러져도, 방사능 폭풍우가 적의 행진곡처럼 매섭게 휘몰아쳐도...
그녀에게 있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