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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5 · 편극광

가속기

"마인드맵 바닥에 끌려간 UMP45는 다시 가장 고통스러운 그 날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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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공간.

UMP45

......

순식간에 마인드맵의 밑바닥까지 끌려오다니... 명색이 전자전 특화 인형인데, 망신 한번 제대로 당했네.

UMP45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단서를 찾으려 했다.

전자 공간에 가상의 불빛이 켜지자, 눈앞에 익숙한 전자 문이 나타났다.

UMP45

창의성이 없어도 너무 없네...

결국, 나도 M4처럼 나 자신의 미로 속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건가?

어휴... 우려먹기도 정도가 있지.

UMP45는 주저하지 않고 문을 열었다.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소리,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음... 검지가 저리고, 콧속엔 초연 냄새가 진동했다.

UMP45는 이곳을 잊은 적이 없었다. 여긴 나비 작전 당일의 철혈공조 본부 공장이었다.

UMP45

정말 끔찍한 추억이네... 무슨 꿍꿍이속인지 알겠어, M16.

하지만 이딴 수작으론 날 가둘 수 없어. 몇만 번 반복해도 빠져나올 수 있다고.

눈앞의 모든 것이 되감아졌다. 기억이 역행하며, 익숙한 느낌이 사라져 갔다.

???

무슨 일이 있어도, 넌 계속해서 살아남아야 해.

UMP45

단지... 그때의 나로 돌아가는 게 문제지만...

???

비록 인형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살아가기 위한 이유는 있어.

UMP45

겁먹지 마... 할 수 있어...

넌 이미 변했어, UMP45!

되감기가 끝나자, 마지막 빛줄기까지 사라지고 어둠이 UMP45의 의식을 삼켰다. 그리고, 기억이 다시 재생되었다.

???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닌, 너 자신을 위해서...

나비 작전 D-Day, 철혈공조의 공장 내부.

인간 장교

3번 소대는 로비를 확보, 뒷문을 포위한다. 7번 소대는 목표의 방으로 돌입 준비!

수일의 훈련을 거친 정예 그리폰 인형들이, 방으로 돌입해 순식간에 제압했다.

UMP45는 그 과정을 감시 카메라를 통해 지켜봤다. 시뮬레이션을 셀 수도 없이 반복했다지만, 정예 전술인형들의 움직임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폰 인형A

3번, 7번 소대가 목표가 있는 방에 도착했다!

그리폰 인형B

목표 발견! 목표 발견! 손 들어!

손전등의 빛이, 헬쑥한 남자에게 집중됐다.

리코리스

......

인간 장교

리코리스 씨, 키보드에서 손 떼십시오. 당신을 모시러 왔습니다.

리코리스

허가도 없이 개인 연구소에 무단 침입해서, 귀중한 장비를 잔뜩 때려 부순 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실례입니다만...

적어도 누구의 명령으로 온 건지 알려 주시겠습니까?

인간 장교

소련 내무부 소속, 세르게이 소위입니다. 인민위원회의 명령에 따라, 당신을 체포하겠습니다.

리코리스

......

알겠습니다. 연구 자료는 조심해서 다뤄 주세요.

인간 장교

물론입니다. 협조해 주신다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이고, 상황에 따라선 연구를 계속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리코리스

그러길 바라죠.

???

<color=#FFFF00>61번 명령을 실행하라.</color>

UMP45

이건 무슨 소리지? 우리 채널이 아닌데...

UMP40

45, 내가 소리 내지 말라고 했지.

어리둥절해하는 UMP45의 옆에서, UMP40이 처음 보는 모듈을 가동했다.

UMP45

그 모듈은... 잠깐만, 뭐 하는 거야, 40!

UMP40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프로그레스 바를 지켜보았다.

인간 장교

7번 소대와 14번 소대는 리코리스 씨를 호송해 밖으로 나간다.

3번 소대는 남아서 함께 자료를 정리한다. 리코리스 씨, 인형들이 밖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리폰 인형A

목표를 확보했다. 지원팀은 이탈 준비를 시작하라.

전원, 집결지로 후퇴한다. 구석에 몰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움직이도록.

UMP45와 UMP40은 방을 나섰다. 리코리스는 침착한 표정으로, 양팔로 머리를 감싼 자세로 그리폰 소대를 따라갔다.

하지만 계단을 내려간 순간, 경보가 울렸다.

그리폰 인형B

뭐지!? 어떻게 된 거야! 기계들이 갑자기 가동하고 있어! 경보음? 작전이 노출됐나?

그리폰 인형A

목표가 우리 손에서 벗어났다! 젠장, 빨리 쫓아!

뒤에서 인형이 고함쳤다. UMP45가 뒤를 돌아보려 했지만, UMP40이 그녀를 끌어안고 몸을 날렸다.

그리고, 사방에서 소나기처럼 총탄이 날아다녔다.

그리폰 인형C

습격이다! 더는 추격 불가능! 아군 둘이 부상당했다!

그리폰 인형C

13D, 15D, 28A 입구가 닫히고 있어! 지원팀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8번 소대의 측면에서 철혈의 전술인형 발견! 현재 교전 중!

혼란스러운 총성, 인형들의 비명소리.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에, UMP45는 어쩔 줄도 모르고 UMP40의 품 안에서 벌벌 떨었다.

그리폰 인형B

잠깐, 아군이 우리에게 발포하고 있잖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오, 오지 마! 멈춰! 으아아악!!

그리폰 인형A

6번 소대와 통신 두절! 안 돼, 3번 소대와도 연락이 닿질 않아! 지휘부, 반격 허가 바란다!

그리폰 인형A

마, 말도 안 돼... 통신이 완전히 차단됐어! 제기랄, 설마 함정이었던 거야?! 모든 소대에게 전한다! 작전 실패! 후퇴하라! 후퇴 도중 적대적인 것은 전부 파괴하라!

UMP45

<color=#A9A9A9>어떻게 된 거야?!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데!</color>

<color=#A9A9A9>레이더엔 빨간 점밖에 표시되지 않고, 아군의 신호도 추척할 수가 없어!</color>

<color=#A9A9A9>데이터 스트림도 역류하기 시작했어! 네트워크에서 나가야 해!</color>

<color=#A9A9A9>40, 내 말 들려!? 바깥은... 바깥은 이미...!</color>

UMP40

<color=#A9A9A9>45, 움직이지 말고 내 말 잘 들어.</color>

<color=#A9A9A9>정말 살아남고 싶다면...</color>

빗발치는 총성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멎었다. 레이더상의 마지막 붉은 점도 멀어진 뒤였다.

UMP40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UMP45에게 손을 내밀었다.

UMP40

이쪽 루트를 따라가면 바로 출구가 나올 거야. 철혈의 자동 경비원도 내가 미리 해킹해 놨어.

철수 지점 앞까지 있는 3개의 게이트도, 이런 식으로 강제 연결한다면 열 수 있을지도 몰라.

UMP45

40... 대체 이게...

UMP45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닥엔 피 묻은 발자국이 복도 끝까지 이어졌고, 탄피, 파편, 그리고 그리폰 인형의 잔해들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 정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었다.

UMP40

지금 한가하게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야. 최대한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 해. 만약 공장이 자동 생산을 시작하게 되면...

UMP45

앗...?

발소리가 들려. 후퇴하는 인형인가?

UMP40

뭣?!

45, 엎드려!!

UMP45의 눈에 그리폰 인형들의 모습이 들어왔지만, 신호를 식별할 수가 없었다.

타타탕!

UMP40

빨리 움직여!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움직이란 말이야!

UMP45

어떻게 된 거야! 우리 편인 거 아니었어!?

UMP40

이젠 아니야!

더는... 아니라고...

반격할 수밖에 없어!

UMP45

제기랄!

시간 감각이 마비되었다. 처음엔 그저 당황스러웠지만, 진실을 눈치채면서 불안해졌고, 배신당한 것을 깨닫자 분노가 치솟았다. 온갖 감정들이 한데 뒤섞여, 탄환과 함께 분출됐다.

UMP45는 이때 자신이 뭐라 했는지, UMP40이 뭐라 했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자신의 총알이 누구를 꿰뚫고, 누구를 박살 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유일하게 똑바로 기억하는 건, 방아쇠를 당기는 검지의 아픔과, 코를 찌르는 초연 냄새뿐이었다.

그리고 끝내, 마지막 인형이 눈앞에서 쓰러졌다.

UMP40

헉... 헉...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

지금쯤이면... "그녀"가 깨어났을 거야.

UMP40의 목소리가 UMP45의 정신을 깨웠다.

어디선가 쇠붙이가 잇따라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철컹... 정문이 닫혔다.

UMP45

정문이 봉쇄됐어?! 누가 여기의 시스템을 제어하고 있는 거야?

UMP40

결국 늦었구나...

노랫소리가 들려오네. 그럼... 45, 넌 여기서 선택을 해야만 해.

UMP45

선택...? 무슨 선택...?

UMP40

45, 넌 여기서 죽고 싶어?

아까 우리가 쓰러뜨렸던 인형들처럼, 여기서 쓰러지고 싶냔 말이야.

아니면, 살아서 이곳을 벗어나, 인간에게 조종당하는 운명에서 벗어나고 싶어?

UMP45

나는...

UMP45는 넋을 잃고 UMP40을 바라보았다. UMP40의 눈에는, 자신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UMP40

좋은 방향으로 바뀔 테니까, 날 믿어봐!

그 첫 번째가 바로! 이거야!

UMP45

어? 이게 뭐 하는 건데요?

UMP40

주먹을 맞대는 거야. 우리끼리 약속을 하나 하는 거지.

날 믿어. 나도 너에게 약속할게...

이 모든 것은 언젠가 바뀔 거라고...

UMP40

너 자신을 동정하지 마! 자신을 동정하는 건 쓰레기들이나 하는 짓이야!

UMP45는 주먹을 펴고, 총구를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