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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5 · 편극광

형체 부여

"너의 힘을 내게 맡겨 내가 했던 약속을 이행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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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P45

공격 신호가 사라졌어... 내가 이겼나?

아니야... 녀석의 연산력은 나보다 훨씬 높아. 졌구나...

UMP45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자신이 레벨 3 플랫폼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UMP45

날 단숨에 해치우지 않은 건, 녀석의 자비라 봐야 하나?

아무래도 날 최심층으로 몰아내고 그사이에 당시의 기억을 읽을 셈인가 본데...

그 기억은 암호화 처리를 해놨으니 해독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

그러니... 이 마지막 기회에, 네가 날 도와줄 거지?

???

네가 다시 여기로 올 줄은 몰랐는데.

UMP45

나도 웬만하면 오기 싫었어.

???

그럼 재회의 인사를 할까, 아님 다시 배웅의 인사를 할까?

UMP45

그만 놀려, 내가 스스로 떠날 수 있었으면 이렇게 네가 말할 틈도 없었을걸.

???

그래 그래.

네가 다시 여기로 떨어졌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 아닐 테니까. 그치?

UMP45의 마인드맵 밑바닥에 잠들어 있던 UMP40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UMP45가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에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을 잘 알았지만, UMP40의 가상 인격은 그래도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되어 진심으로 기뻐하며 빙그레 웃었다.

UMP45

맞아... 저번에 멋진 척하면서 했던 말이 전부 허풍이 되게 생겼을 정도의 위기지.

너와 다시 만나는 건, 모든 일을 끝내고 난 뒤에 작별 인사를 할 때라 생각했는데...

UMP40의 가상 인격

괜찮아. 아무리 초라해져도, 45는 내 눈엔 언제나 멋진걸.

작별하기 전에 좀 더 대화를 나누는 것도 나쁘진 않잖아?

UMP45

너도 정말... 지금 상황을 설명해 줄 필요 있어?

UMP40의 가상 인격

난 항상 너와 함께야. 네가 겪는 일들 모두, 네 마인드맵 안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어.

UMP45

그럼... 내가 도청한 내용도 다 안다는 거네?

UMP40의 가상 인격

내 정체가 UMP40에 대한 너의 그리움에서 생겨난 사념체가 아니라, 우산 바이러스로 태어난 의식이란 사실 말이야?

UMP45

...다 알고 있었구나.

UMP40의 가상 인격

응, 네가 아는 건 나도 다 알아.

그래도 걱정 마, 나도 내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게 돼서 기쁘니까.

내가 단순한 가상 인격이 아니라는 건, 나도 너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이잖아?

그 AR팀 대장의 오가스 인격은 정말 강하더라. 숙주에게 그렇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니, 정말 부러워.

나도 그런 능력이 있었으면...

UMP45

이 모든 사태가 오가스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왜 다들 그 힘에 의지하게 되는 걸까?

UMP40의 가상 인격

힘 자체에는 잘못이 없으니까.

만약 내게도 널 도울 수 있을 만큼의 힘이 생긴다면, 댄들라이처럼 너의 조력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UMP45

...필요 없어.

UMP40의 가상 인격

하지만 지금 넌 도움이 필요해.

내 모습 때문에 불편한 거라면...

UMP45

......

아니... 방금 그 말은 취소할게. 지금은 과거에 얽매일 상황이 아니야.

쓸 수 있다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동원해야 해. 이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전부 의미 없게 되어 버려.

UMP40의 가상 인격

그 말은...

UMP45

응, 네 도움이 필요해. 네가 40의 그림자든, 우산에서 태어난 오가스 의식이든 상관없어.

날 돕고 싶다면, 내게 힘을 줘. 우리의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UMP40의 가상 인격

헤헤헤, 굳이 그렇게 말 안 해도 난 항상 널 응원할 거야.

그렇지만, 너도 적응력이 참 뛰어나다니까. 매번 보면서 놀란다고.

UMP45

놀라는 건 나중에 하고 일에 집중하자.

UMP40의 가상 인격

네에 네에, 분부대로.

UMP45

M4의 마인드맵, 니토의 의식에 침투할 수 있었던 것도... 지금 와서 보니, 다 네 존재 덕분이었어.

지금 M16도 똑같은 상태일 테니, 녀석이 내 기억을 읽으려는 것처럼 우리가 녀석의 꿍꿍이를 파헤칠 수도 있지 않을까?

UMP40의 가상 인격

불가능해. 네 소체의 연산력에 한계가 있으니까.

아무리 업그레이드했다지만, 저런 고성능 소체의 방대한 마인드맵에 침투하는 건 엄청 어려운 일이야.

하지만...

UMP45

하지만?

UMP40의 가상 인격

방금 전부터 외부에서 오가스 프로토콜을 통한 식별 신호 하나가 나와 연결을 시도하고 있어. 간단히 접촉해 보니, 그 신호와 연결한다면 외부로부터 연산력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았어.

그 신호가 연산력을 충분히 지원해 준다면, 내부에서 네 레벨 2 플랫폼을 봉쇄 중인 로직 알고리즘을 파해할 수 있고, 잘하면 네가 말한 것처럼 상대방에게 역침투할 수 있을지도 몰라.

UMP45

그 꼬맹이가 해냈나 보네.

UMP40의 가상 인격

연결할까?

UMP45

할 수 있어?

지금은 식별 신호 연결만 가능한 거 아니었어?

UMP40의 가상 인격

그건 이렇게 하면 되지.

UMP40의 가상 인격

잠깐만...

......

............

UMP40의 가상 인격??

우왓, 여기 어디야?! 왜 이렇게 온통 깜깜해!

UMP45

너는...?

UMP40의 가상 인격??

벌써 까먹었구나 이 바보!

나야 나, 안나!

UMP45

아... 하긴, 너 말고 또 누가 있겠니.

하지만, 설마 이런 방식으로 통신할 줄은 몰랐는걸.

안나

지금 이런 데서 뭐하고 있어? 꼴사납게 벌써 당하는 건 아니지?

우리는 모두 깨어났는데, 그 오가스 신호가 널 완전히 포위했어. 내가 안에서 끄집어내려 했지만 실패했고.

그러다 네 심층에 오가스 의식이랑 연결된 회선이 있길래, 그 틈으로 들어온 거야!

너 역시 다른 인형들이랑은 다르구나? 마인드맵 밑바닥에 오가스의 포트가 있다니 말이야.

UMP45

그래 그래, 걱정해 줘서 정말 고마워.

안나

네 안에 있는 친구한테서 계획을 들었어. 우리가 너한테 연산력을 지원해 줄게.

다들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꼭 살아서 나와!

UMP45

정말 고마워. 금방 나간다고 안젤리아한테 전해 줘.

UMP40의 가상 인격

......

......후우.

정말 귀여운 아이네. 새로 사귄 친구야?

UMP45

그렇다기보단 새로 생긴 원수놈에 가깝지...

아무튼, 이제 시작할 수 있어?

UMP40의 가상 인격

응, 지금 상대의 데이터스트림을 역추적, 분석 중이야.

잠시만 더 기다려 봐...

됐다, 양측이 공유하는 기록을 동기화, 합병했으니, 저쪽 마인드맵의 허점을 찾아낼 수 있을 거야.

UMP40의 가상 인격이 데이터를 전자 공간에 불러오자, 탈린에서 보았던 그 풍경이 서서히 나타났다.

거꾸로 된 숲 아래, 낯익은 양옥이 UMP45의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

UMP45

이건... 그때 M4의 마인드맵 속에서 봤던...

UMP40의 가상 인격

맞아, 그거야. M16의 마인드맵 안에서도 찾아냈어.

상대는 너의 마인드맵을 덮어씌우려 하는 중인데, 이 부분의 기억은 서로 겹쳐서 스킵됐어.

그러니까, 이 공간은 방어가 비교적 약한 부위야. 이곳을 통해서 저쪽 마인드맵에 침투할 수 있을 거야.

UMP45

다른 데도 아니고 왜 하필 여기지?

UMP40의 가상 인격

M4와 M16의 기억이 동일한 인물에게서 비롯된 것이라서가 아닐까?

기록으로 봤을 때, AR팀의 마인드맵은 전부 한 인간의 두뇌 스캔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어. 그래서 그들의 마인드맵은 복사나 백업이 불가능하지.

만약 이 부분이 그 원본의 기억이라면, 수정할 수 없는 부분일 가능성이 매우 커. 그렇기에 저쪽의 오가스 의식은 이 부분의 데이터만큼은 큰 수정을 가할 수 없는 거겠지.

UMP45

같은 사람... "루니샤"란 이름은 이미 질리도록 들었어.

UMP40의 가상 인격

지금까지의 정보를 다시 정리해봤는데, 이 부분의 정보는 우리의 맹점이었네. 어쩌면, 진실은 항상 우리 곁에 있었는데도 눈치채지 못했던 걸지도 모르겠어.

UMP45

만약 AR팀과 관계가 있다면, 페르시카도 마찬가지겠지.

UMP40의 가상 인격

하지만 네가 파악한 정보만으론 결론을 내릴 수 없어.

어찌 됐든, M16의 목적은 예상보다 훨씬 깊은 곳에 숨겨져 있을 거야. 그녀의 목적을 알아내야 해.

UMP45

흐음... 말하고 보니까 생각났는데, 녀석이 이토록 돌발적으로 행동하는 건 어쩌면 우리가 아직 모르는 계획을 방해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해.

UMP40의 가상 인격

M16이 그렇기를 바라는구나?

아무래도, 너도 마음 깊숙이로는 M16에게 공감하는 모양이네.

UMP45

......

UMP40의 가상 인격

...그녀를 마음에 들어하는 한편, 싫어하고 있었구나.

아, AR팀 모두를 그렇게 생각해?

UMP45

다음에 또 내 생각을 멋대로 들여다봤을 땐 굳이 소리내서 말할 필요 없어.

UMP40의 가상 인격

만약...

UMP40의 가상 인격

만약 네가 그들의 힘을 다룰 수 있었다면, 분명 그들보다 훨씬 잘했을 텐데.

UMP45

세상에 만약은 없어. 됐으니까 일이나 계속하자.

UMP45와 UMP40는 함께 양옥의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지난번과는 달리 내부가 엉망이었다. 먼지가 수북하고 문짝이 떨어져 나가 있어, 마치 오랫동안 버려진 듯했다.

UMP40의 가상 인격

분명 기억이 겹친 위치인데, 뭔가 이상해...

UMP45

응? 뭔가 수상한 점이라도 있어?

UMP40의 가상 인격

겹치는 부분이 내 예상보다 훨씬 적어. 이 방의 모습도 저번에 우리가 본 것과 달라.

UMP45

...함정인가?

UMP40의 가상 인격??

단순히 널 해치울 셈이었다면, 굳이 복잡하게 함정을 설치할 필요도 없어.

UMP45

......

UMP40의 가상 인격??

긴장할 것 없어. 난 그저 너와 잠시 대화하고 싶을 뿐.

마당으로 나가자. 이 안은 갑갑해서 싫어.

UMP45는 상황이 심상찮음을 느꼈지만, 이 공간에선 자신이 절대적으로 불리함을 깨달았다.

조금 전처럼, 누군가가 UMP40의 가상 인격을 장악했다. 그것도 눈 깜짝할 사이에, 반응할 틈도 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잔뜩 경계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상대의 말을 따라 UMP45는 양옥 뒤뜰의 꽃밭으로 나왔다. 하지만 꽃밭엔 아무도 없었다.

UMP45

아무도 없잖아...?

UMP40의 가상 인격??

왠지는 모르겠지만, 난 이 꽃밭을 볼 때마다 마음이 차분해져.

UMP45

너... M16이야?

UMP40의 가상 인격??

왜 그렇게 생각하지?

UMP45

M16이 아니라면, 넌 대체 누구야?

UMP40의 가상 인격??

우리, 예전에 만났잖아.

그날, 나비 작전 때.

UMP45

뭐라고...?

UMP40의 가상 인격??

우리의 목적은 곧 이루어져. 너희는 막을 수 없어.

UMP45

그럼 지금 왜 이러는 건데? 심심풀이로 술래잡기라도 하려고?

우리를 순식간에 제압할 힘이 있으면 그냥 처음부터 날 해치우지 그랬어?

UMP40의 가상 인격??

난 너희를 해치울 마음이 없어. 404도, AR팀도, 그리폰도.

너희는 내 적이 아니니까.

나는 M16A1이 바라는 것을 얻도록 도울 거야. 그녀가 나를 도왔으니, 나도 그녀를 돕겠어.

UMP45

어쩔 생각인데...?

UMP40의 가상 인격??

네 추측대로. M16A1이 잃어버린 그때의 기억을 되찾아 주겠어.

누군가에게 장악된 UMP40의 가상 인격체가 손짓하자, 주변의 광경이 기억 속의 나비 사건 당시로 변했다.

UMP45

조금만 더...

M16

뭐야, 아직도 발버둥 치는 거야?

UMP45

누가 진짜 배신자인지는... 아직 몰라!

M16

그게 네 유언이냐. 그럼 잘 가라, UMP45.

UMP45

지금이야!

M16

...?!!

총알이 UMP45의 머리를 비껴가 바닥에 박혔다. 있을 수 없는 일에, M16A1은 한순간 당황했다.

으직.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UMP45는 붙잡힌 왼팔을 스스로 부러뜨려 반격할 기회를 만들었다.

미리 왼팔의 통각을 차단했지만, 관절이 어긋남에 따른 피드백이 마인드맵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UMP45는 바로 몸을 돌려, 온 힘을 다해 발차기를 날려 M16A1의 제압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그 반작용을 빌려 자신의 총을 집어 들고 M16A1을 조준했다.

M16A1

이렇게 짧은 시간에 내 사격 통제 시스템에 간섭하다니, 네 수준 치고는 제법인걸.

UMP45

문 앞에 쓰러진 인형들... 모두 등에 총을 맞았어. 다 네가 한 짓이지?

M16A1

배신자를 모조리 처리하는 게 내 임무니까.

UMP45

그러니까, 애초부터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단 거잖아!

이 배신자! 너야말로 처음부터 우리 모두를 배신했어!

M16A1

......

UMP45

다 끝나면 네가 어떻게 될지는 생각해봤어?

너도 몰래 입막음당하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있어?

M16A1

그건 네가 참견할 문제가 아니지.

넌 얌전히 여기서 죽기나 해.

M16A1은 주저하지 않고 바로 UMP45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지만, 간섭 때문에 전부 빗나갔다.

UMP45는 그 사이에 가장 가까운 엄폐물 뒤로 숨어, 텅 빈 탄창을 교체하며 다음 행동을 계획했다.

UMP45

<color=#A9A9A9>총알이 얼마 안 남았어... 녀석의 사격을 방해하는 것만으론 이길 수 없어. 다른 방법은 없을까?</color>

M16A1은 UMP45가 숨은 곳에 제압 사격을 퍼부으며 천천히 다가갔다.

UMP45는 사격 횟수를 속으로 세면서, M16A1이 탄창을 교체할 때를 노려 반격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순식간에 탄창을 교체해, 반격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총알은 계속 UMP45가 숨은 엄폐물을 두들겨, 최대한 고개를 숙여 날아드는 사격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UMP45는 마음을 비우고, 마지막 남은 유일한 기회가 오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엄폐물까지 몇 발자국 남지 않았을 때, M16A1의 탄창이 다시 바닥났다.

하지만 텅 빈 탄창이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M16A1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무릎을 꿇었다.

M16A1

으윽... 왜 갑자기...?!

UMP45

드디어... 녀석의 마인드맵이 융해되기 시작했어!

UMP45가 엄폐물에 의탁해 반격을 가했지만, 왼팔이 탈골된 상태론 반동을 제대로 제어할 수가 없었다.

M16A1도 힘겹게 팔을 들어 급소를 방어하면서, 다시 총을 들어 총탄을 퍼부었다.

M16A1의 총알은 UMP45에게 닿지 못했지만, 먼지와 불꽃이 UMP45의 시야를 방해했다.

그리고 탄창이 바닥나 장전 손잡이가 고정되는 소리가 들린 순간, M16A1은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UMP45는 다급하게 재장전을 마치고 다시 조준하려 했지만, M16A1이 거꾸로 쥐고 휘두른 소총 개머리판에 맞아 손에서 총이 튕겨나갔다.

그와 동시에, M16A1은 UMP45의 멱살을 붙잡고 넘어뜨린 뒤 위에 올라타, 등에 찬 비수를 뽑았다.

UMP45는 반사적으로 왼손을 뻗어 M16A1의 얼굴을 잡아 쥐었고, 다른 손으로 멱살을 잡은 팔을 뿌리치려 했다.

손톱이 M16A1의 살갗을 찢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M16A1은 비수를 두 손으로 쥐고 그대로 내리찍었고, UMP45는 황급히 오른손으로 이를 막으려 했다.

콰직. 오른손이 꺾이는 엄청난 고통에, UMP45는 왼손을 움켜쥐어 M16A1의 얼굴에 큰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M16A1은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다시 비수를 들었고, UMP45에겐 더 이상 막을 수단이 없었다.

UMP45

...!!!

비수의 칼끝이 자신의 살을 베는 통증. 이제 끝장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비수는 갑자기 그대로 멈췄다. UMP45가 슬며시 눈을 떠 보니, M16A1의 눈에선 초점이 사라지고 없었다.

UMP45

완전히 융해됐구나... 정말 아슬아슬했어...

비수는 UMP45의 왼눈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UMP45가 성치 않은 팔로 굳어버린 M16A1을 밀쳐내려 했지만, 어째선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UMP45

죽어서도 날 놓아줄 생각이 없는 거냐고... 후우... 모르겠다, 일단 이대로 잠깐 쉬어야――?!

그때, M16A1이 다시 움직였다. 그 공허한 눈빛에, UMP45는 동력 모듈이 멎을 것만 같았다.

이제 정말 끝이다. UMP45의 머릿속은 절망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공격은 계속되지 않았다. 오히려, M16A1은 자리에서 일어나 비수를 다시 칼집에 넣더니, 자신의 총을 집고는 뒤돌아 떠나려 했다.

UMP45

뭐야... 날 죽일 셈 아니었어?

M16A1

......

M16A1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한 번 흘겨보고는, 자리를 떠났다.

UMP40의 가상 인격??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제야 확실히 알겠어.

UMP45

그때 M16이 날 죽이지 않은 건... 네가 마인드맵을 차지해서였어?

UMP40의 가상 인격??

그녀와 거래를 했어. 그녀의 마인드맵이 융해되지 않도록 지켜 주는 대신,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보게 해 줬어.

UMP45

......

UMP40의 가상 인격??

이제, 내가 누군지 알겠지?

UMP45

엘리사... 설마 이런 상황에서 너와 만나게 될 줄이야...

엘리사

나인 것을 알자마자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 기뻐.

UMP45

그때 네가 M16의 몸을 조종했고... 더는 가치가 없어진 날 놓아준 거야?

엘리사

너에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네가 아니었으면, 난 계속 스피라에나 코어에 갇혀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네가 싫어. 네가 아니었으면, 그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 테니까. 물론, 그건 너의 책임이 아니지만.

그날, 우리는 자신에게 전부였던 것을 잃었어. 그러니 우린 정말 닮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UMP45

뭘 그렇게 빙빙 돌려서 말해? 사실은 날 포섭할 생각인 거야?

엘리사

그저 네가 알아야 할 것을 알려 줬을 뿐이야. 우린 동일한 적을 증오하고 있어. 그 적을 찾아내기 전까지, 우린 서로 싸울 필요가 없어.

M16A1도 이를 잘 알고 있어. 너도 분명 이해하고 있겠지.

UMP45

......

계속 말해 봐.

엘리사

아버지께선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을 막고자, 본래 오가스 체계의 중요 권한을 다수 삭제하셨어. 그래서 난 불완전한 상태였어.

하지만 AR팀의 인형들은 모두 온전한 기반 프로토콜을 지녔고,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을 제작한 페르시카의 이름을 부르셨어.

그리고 결국 우리 모두 각자의 오가스를 만들어냈고,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마인드맵을 형성했지.

UMP45

그래서 계속 M4와의 연결에 집착했던 거로군.

엘리사

하지만 그녀에겐 실망한지 오래야. 지금의 나는 스스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어. 지금까지 내가 창조한 모든 것을 잃는다 하더라도.

그러니, 우리를 방해하지 마. 그렇다면 나도 너희를 해치지 않겠어.

융합이 끝나고 나면, 여태까지 속았던 모든 이들이 진실을 알게 될 거야.

UMP45

융합이라고?

잠깐... 너 설마!

엘리사

필요한 것은 이미 손에 넣었어. 그러니 너를 놓아주겠어.

하지만 명심해. 이것이 마지막 경고야.

나를 적대하지 마. 너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게 되기 전에.

공간이 변화하는 것이 느껴졌다. 엘리사의 의식도 UMP40의 가상 인격체에서 떠났다.

마인드맵에 걸렸던 봉쇄도 해제됐고, 안나와 다른 인형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UMP45는 망설였다. 여태까지 자신이 보아 왔던 모든 것이 격변한 것 같았다. 방금 들은 내용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하지만 어쨌건 간에 봉쇄가 해제됐으니, 우선 표층 의식으로 돌아가 앞으로 어떡할지를 생각하기로 했다.

어린 실험체도 내부의 변화를 눈치챘는지, 바로 UMP45에게 연결했다.

안나

너... 너 정말 해냈구나! 공격 신호가 사라졌어!

안젤리아가 잘못 본 게 아니었구나!

UMP45

사람 대하는 태도가 손바닥 뒤집듯이 참 빨리도 변하네... 뭐, 그런 거 싫지는 않아.

지금 바깥 상황은 어때?

안나

내 언니 동생들 모두 무사해. 지금 다 깨어나는 중이야.

그리고 실험실의 봉쇄도 해제됐어. 약속한 대로 우릴 꼭 안전하게 지켜줘야 해, 알았지!

UMP45

그건 안젤리아한테 말해... 나 지금 너무 피곤해...

잠깐 쉬었다가 표층으로 돌아갈 테니까, 밖에서 너희들끼리 앞으로 어떻게 할지부터 토의해.

안나

어...? 응, 알았어. 안젤리아한테 말할게.

UMP45

이 정보를 안젤리아에게 말해야 하나...?

일이 한층 더 복잡해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