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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제12전역

환영 추적

꽃과 조각 속에 가려진 진실의 일각을 엿보게 되었어요.

12-2-1 →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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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들라이

데이터 전송 시작.

전송이 시작되자마자, SOP2의 품에 얌전히 안겨 있던 "바나나"가 갑자기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무언가로부터 도망이라도 치려는 듯한 발버둥이었다.

RO635

바나나의 상태가 영 불안정한 것 같은데... 전송되는 데이터가 너무 큰 탓일까?

댄들라이

외장형 설비니, 연산 효율은 인형보다 훨씬 떨어지겠지.

데이터 분석 효율이 너무 낮아, CPU가 과부하 된 모양이야.

이대로라면 회로가 타 버릴지도 몰라.

M4 SOPMOD II

뭐어?!

안 돼! 그럼 바나나가!

우으으으...

RO635

울지 마... 망가지면 한 마리 다시 잡아다 줄게.

M4 SOPMOD II

다른 건 안 돼!

바나나는 RO의 마인드맵을 담았던 걸 페르시카가 개조해 준 애라구!

내가 특별히 RO랑 같은 색으로 칠했는데!

바나나는 둘도 없는 애란 말이야!

RO635

그래서 볼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고...

계속 보고 있으면 못 참고 부숴 버릴 것만 같아...

지휘관

댄들라이,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어?

댄들라이

여기 있는 인형들에게 분석을 분담시키도록 하죠.

많은 연산이 필요한 분석 작업을 마치면, 나머지는 데이터를 읽어 들이는 것뿐이니까요.

그 정도라면, 이 디너게이트만으로도 충분합니다.

M4A1

알겠습니다. 제가 처리할게요.

RO635

아뇨, 제가 할게요. 전자전은 제 특기니까요.

그리고 M4 씨는 이미 지휘 통제와 마인드맵 백업의 저장까지 맡고 있잖아요.

AR15

RO의 말이 맞아. 전투가 없는 동안엔 넌 연산력을 최대한 아끼도록 해.

M4 SOPMOD II

그럼... RO가 바나나를 구해주는 거야...?

RO635

......응.

M4 SOPMOD II

눈 돌리지 말고 똑바로 보면서 말해 줘!

댄들라이

그리고 지휘관님, 이건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진행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지휘관

뭐지?

댄들라이

루니샤는 현재 자신의 마인드맵 공간에 그리폰 인형의 마인드맵 백업을 저장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 연산을 보조하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데이터가 매우 거대합니다.

그러니 루니샤가 메모리를 절약할 수 있도록, 그녀의 기억도 디너게이트에게 전송하려 합니다.

M4A1

제 기억을요?

댄들라이

루니샤는 항상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매우 큰 부담을 견뎌 왔습니다.

저는 지휘관님이 루니샤를 더욱 깊이 이해하여, 그녀의 죄책감과 불안감을 해소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그녀의 기억을 열람하셨으면 합니다.

지휘관

그건 M4의 기억이야. 본인의 동의 없이는 볼 수 없어.

댄들라이

그렇겠죠. 하지만 이 또한 루니샤의 진심입니다. 저는 그저 그녀의 속마음을 대신 말해드렸을 뿐입니다.

M4A1

전 그런 생각...

......

M4A1은 말꼬리를 흐렸지만, 고개를 숙이더니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M4A1

...네, 지휘관님. 댄들라이의 말이 맞아요.

그게 제 진심입니다.

과거의 저는 나약하고 미숙해서 모두에게 폐를 끼쳤고... 이 기억 속에는 말로 꺼내지 못한 망설임과 후회가 담겨 있어요.

하지만... 그래도 지휘관님께서 저를 더 많이 알아주셨으면 해요.

저도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저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해요.

AR15

M4, 정말 괜찮겠어?

예전에 있었던 일들은 너한테...

M4A1

괜찮아요 AR-15. 피하기만 하면 상처가 더욱 깊어질 뿐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지휘관님께 숨길 것도 없잖아요.

RO, 그 데이터를 분리해 주세요. 지휘관님, 그리고 모두가 저에 대해 더 많이 알기를 바라요.

RO635

M4 씨...

AR15

M4가 그렇게 정했으니, 따를 수밖에.

RO635

AR-15...

네, 다 같이 처리할게요.

RO635

으음... 아무래도 자료를 정리하는 일도 나한테 잘 맞는 모양이야.

만약 퇴역하게 된다면 비슷한 직업을 찾아봐도 되겠어.

댄들라이

다행이네. 그럼 내 연산에 맞춰서 기억 부분을 분리 추출해.

RO635

알았어, 시작할게.

광활한 전자 공간에 정교하게 장식된 문이 나타났다.

문에는 활짝 핀 꽃들과 길게 뻗은 덩굴이 조각되어 있었다.

댄들라이

기억 파편을 찾았구나.

RO635가 천천히 문을 열자...

익숙한 꽃밭에, 전부 비슷한 생김새의 이성질체들이 평온하게 누워 있었다.

부드러운 달빛을 받으며, 그들의 몸은 공중으로 붕 떠오르더니 투명한 분홍색 조각들로 흩어졌다.

조각들의 표면에는 기억의 단편들이 엿보였다.

RO635

이게 오가스와 융합된 이성질체들의 기억 파편인가?

여기엔 댄들라이의 기억도 섞여 있을 테니, 집중해서 찾아야겠네...

댄들라이

네가 접촉하는 기억들은 전부 화상 설비로 전송될 거야.

우리도 외부에서 기억 파편의 내용을 볼 수 있어.

RO635

좋았어, 그럼 이 파편들부터 처리할게.

RO635가 손을 뻗어, 색이 칙칙한 기억 파편을 건드려 보았다.

M16A1

"네가 더욱 강해졌을 때, 다시 만나게 될 거야."

M4A1

......

AR15

이건... 그때?

M4A1

네, 붕괴액 폭탄을 터뜨리고 난 뒤, 엘더 브레인을 쫓을 때의 기억이에요.

지휘관

역시 엘더 브레인을 놓고 군과 싸운 건 너희였구나.

M4A1

지휘관님도 아셨나요?

지휘관

그때 폭발이 일어난 후, 안젤리아에게서 간결하게 브리핑을 받았거든.

하지만 안젤리아도 너희와 연락이 끊겨서, 나도 너희가 쫓아갔다는 것밖에 몰랐어.

M4A1

죄송해요, 지휘관님... 그때 붕괴액 폭탄을 기폭시킨 건 저예요...

그 폭발로 지휘관님도 크게 다치셨다고 들었어요.

그리폰도 우수한 인형을 많이 잃었고...

그들의 기억이 영원히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도록 만들었어요...

만약, 제가 그때 더 잘할 수 있었다면...

지휘관

네가 그때 폭탄을 터뜨리지 않았다면, 나도 꼼짝없이 죽었을 거야.

전장에서 "만약"은 없어. 너는 최선을 다했고, 덕분에 우린 살아남았어.

M4A1

하, 하지만 그렇게 많은 희생을 치르고도 임무를 달성하지...

M4A1은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았다.

탄창이 텅텅 비었음에도, M4A1은 방아쇠를 당기고 또 당겼다.

온 세상이 조용해졌다.

대륙간 열차가 흔들리는 소리...

살을 에는 차가운 바람의 소리...

쌓인 눈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는 나뭇가지의 소리...

전부 들리지 않았다.

M4A1이 허무하게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만이 들렸다.

그녀 본인조차 자신이 정말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마저 환청인지 알 수 없었다.

딸깍, 딸깍, 딸깍...

M16A1

때가 됐다.

M4A1이 고개를 드니, 어느새인가 사다리를 늘어뜨린 수송기가 머리 위에 나타났고, M16A1은 그 사다리를 잡고 있었다.

M16A1은 마지막으로 M4A1을 바라본 뒤, 엘리사를 등에 업고서 사다리를 타고 수송기에 올랐다.

열차 위에는 M4A1 혼자 남게 되었다.

멀어져 가는 M16A1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M4A1의 소리 없는 세상이 돌연 바람에 펄럭이듯 흔들렸다.

열차 선두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격렬한 진동과 불길이 덮쳐 오자, M4A1은 휘청이며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균형을 잡고, 뒤돌아 열차의 후미를 향해 달렸다.

M4A1

M16 언니...

어째서...

대체 어째서!!

선두를 시작으로, 열차의 차량이 차례차례 폭발했다. 후미에 다다른 M4A1은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M4A1

이제 끝인가...

AR15

M4——!!!

빨리 뛰어——!!!

AR-15의 외침이 M4A1의 고막을 깨웠다.

모든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와 맹렬한 폭음이 M4A1을 덮쳐, 그녀를 어지럽게 했다.

AR-15는 바이크를 타고 열차를 뒤쫓고 있었다.

액셀을 마구 밟으며 어떻게든 열차에 더 가까이 붙으려고 노력했다.

불길은 이미 코앞까지 닥쳐, M4A1은 더는 주저할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 AR-15에게 응답하려 해도, 움직일 공간조차 없었다.

AR15

받아 줄 테니까 빨리 뛰어내려!

M4A1

AR-15! 부탁해요!

M4A1은 펄쩍 뛰어내렸고, AR-15는 그녀를 받아내기 위해 바이크의 핸들을 꺾었다.

M4A1은 AR-15의 위로 떨어졌고, 그 충격으로 바이크는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두 인형은 바이크에서 내팽개쳐져, 땅에 굴러떨어졌다.

그리고 폭발하던 열차는 결국 궤도를 이탈했다.

땅에 처박힌 열차는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 철혈의 수송기를 가려 버렸다.

AR15

콜록콜록... M4, 괜찮아...?

M4A1

괜찮아요... 골격이 약간 손상됐지만... 일어설 수 있어요.

AR15

설마 마지막 순간에 철혈이 엘더 브레인을 구출할 줄이야.

저 수송기를 어떻게든 쫓아가야 해.

M4A1

아뇨... 철혈이 아니에요...

AR15

철혈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뜻이야?

M4A1

엘더 브레인을 데려간 건...

그건...

M4A1은 입술을 깨물었고, AR-15는 말없이 지켜보았다.

M4A1

엘더 브레인을 데려간 건... M16이에요.

M16 언니가... 우릴 배신했어요...

AR15

뭐...라고...?

M4A1

SOP2와 RO도, 어쩌면 이미...

그렇다면, AR팀은... 이제 없어요...

AR15

...........

모든 것이 침묵에 싸여, 들리는 것은 오직 이글거리는 불길의 타닥이는 소리뿐이었다.

M4A1

이제... 우리 소대는 없어요... 임무도 실패했어요...

그리폰도 저 때문에 와해됐을지도 몰라요...

전장은 오염지대가 되어 버렸는데...

인간인 지휘관님과 안젤리아 씨는... 어쩌면...

AR15

그만 말해!

M4A1

전부 제 탓――

AR15

그만 말하라고 했잖아!

M4A1

...........

AR15

빨리 여길 벗어나야 해.

M4A1

우리에게 갈 곳이 있나요...

AR15

그건... 몰라...

M4A1

역시... 어디에도 갈 수 없게 됐군요...

AR15

그만 말하라고 했지. 여기서 기다려,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10분 후.

AR15

안 되겠어... 바이크가 완전히 망가졌어.

수리에 필요한 부품도 없고...

M4, 통신기에 반응 있어?

M4A1

......

AR15

M4!

M4A1

없어요... 어디를 호출해도 다 응답이 없어요...

AR15

나도 마찬가지야...

M4A1

이제... 다 쓸모없어요... 돌아갈 곳도 없어요...

AR15

분명 누가 응답해 줄 거야, 분명...

M4A1

정말로요...?

우리가 엘더 브레인을 쫓기 전 상황을 생각해 봐요...

그 상황에서... 누가 살아남을 수 있겠어요?

AR15

그... 그건...

M4A1

............

AR15

............

M4A1

있잖아요, AR-15... 저는 AR팀의 리더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스스로 결단을 내린 적이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제가... 지금 결단을 하나 내린다면, 동의해... 줄 건가요?

AR15

...항상 형편없는 대장이라 생각했지만, 네 명령을 어긴 적은 없어.

M4A1

그런가요...

그럼... M16 언니가 남긴 이 입자포를 과부하 시켜서...

이걸... 폭파시켜서, 우리 모두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든다면...

AR15

......

M4A1

그래도... 절 말리지 않을 건가요...?

AR15

...네가 정말 그러길 원한다면.

M4A1

전...

아무래도...

정말로 지친 것 같아요...

M4A1은 입자포를 포구를 닫은 채 충전시켰다.

M4A1

이제 그만... 끝내도...

청아한 목소리

안 돼, 아직 끝낼 때가 아니야.

M4A1

!!!

청아한 목소리

이제 겨우 시작이야. 그런 선택을 해서는 안 돼.

M4A1

제게 선택권이 주어진 적이 있긴 한가요?!

아무도 제게 선택권을 주지 않았어요!

이젠 질렸다고요!

청아한 목소리

선택은 살아남아야만 할 수 있는 거야. 내 말을 듣고――

M4A1

싫어요! 당신의 목소리는 더는 듣기 싫어요!

청아한 목소리

그래도 들어. 새로운 적이 나타나 인근에서 진을 구축하고 있어.

그리폰도 신호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야. 아직 작전은 끝나지 않았어.

M4A1

다 끝났어요!

전 실패했어요! 제가 다 망쳤다고요!

전 이제... 존재할 이유가 없어졌어요...

청아한 목소리

아니, 넌 사라져서는 안 돼.

너의 과거, 너의 존재, 너에게 얽힌 수수께끼를 네가 풀어내야 해.

M4A1

당신이나 궁금한 수수께끼겠죠!

당신의 목적이 대체 뭔지는 몰라도, 여태까지 절 속이고, 가지고 놀기만 했잖아요!

됐어요! 당신도 저와 함께 사라져 버려요!

청아한 목소리

......그럼 어쩔 수 없구나.

나도 이러기는 싫었는데. 다 너, 우리를 위해서야.

M4A1

......!

AR15

M4... 왜 그래?

M4A1

............

AR15

M4?

M4A1은 방아쇠를 누르던 손가락을 떼더니, 입자포를 다시 등에 멨다.

M4A1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 당장 군의 통신 중계소를 찾아야 합니다.

군의 네트워크를 해킹하면, 현재 전장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AR15

응...? 너 방금은...

M4A1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전장에서 너무 멀리 떨어졌으니, 빨리 통신을 복구해야 합니다.

안젤리아든 그리폰이든, 어느 한쪽과 연락해야만 합니다.

AR15

맞는 말인데...

갑자기 왜 그렇게 차분해졌어?

M4A1

이런 때일수록 침착해야죠. 서둘러 움직입시다.

RO635

이때... 댄들라이가 M4 씨의 몸을 차지했구나?

댄들라이

다른 방법이 없었어. 당시 루니샤는 완전히 의지를 잃고 좌절했으니까.

그래서,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내가 직접 나서야 했어.

전술인형 둘이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머무르면 패러데우스에게 금방 들켰을 거야.

만약 "아버님"에게 끌려갔다면, 형세는 돌이킬 수 없었겠지.

RO635

그 하얀 놈들... 그땐 디너게이트의 눈으로 봤지만, 아직도 잊혀지질 않아.

지휘관

공격을 튕겨내서 성가신 놈들이었지...

댄들라이

네. 그래서 저는 패러데우스를 피하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AR-15, 너는 그때 루니샤가 다르단 것을 눈치챘지?

AR15

뭐... 느닷없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건 전혀 M4답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위험한 상황에서 M4를 벗어나게 할 수 있다면, 나도 참을 수밖에 없었지.

댄들라이

최후에 승리를 거머쥘 수만 있다면, 다른 것들은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다.

과연 AR팀의 스타일이야.

지휘관

M4와 AR-15가 무사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네가 개입해서였군.

댄들라이

루니샤가 입은 마음의 상처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끊임없이 자책하고 괴로워했죠.

하지만 루니샤는 쉽게 자신을 파멸시켜서는 안 됩니다. 루니샤의 가치는 모든 이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으니까요.

지휘관

그게 무슨 뜻이지?

댄들라이

천천히 깨닫게 될 겁니다. 지금은 우선 루니샤의 기억을 전부 업로드하고 싶군요.

지휘관

...알았다.

M4A1

전... 그렇게 떠받들어지고 싶지 않아요.

댄들라이

너의 가치는 객관적이야. 네가 부정해도 변하지 않아.

지휘관

크흠.

그래서, 어떻게 무사히 전장을 이탈했지?

철수 작전 중 너희의 종적은 발견하지 못했는데.

AR15

계속 보세요, 지휘관. 다 M4의 기록으로 남아 있으니까요.

저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시게 될 거예요.